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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여행 이야기/경상도'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6.09.02 “내 복만 빌면, 욕심 많은 사람에게 복 주겠냐?
  2. 2015.11.30 무턱대고 그림과 글 한점씩 주라했더니, 결과는?
  3. 2015.11.12 “절을 하니까 다 내려놓게 되데요. 참 신기해요.”
  4. 2015.11.10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대적사 가던 길
  5. 2015.11.06 결혼 18년, 타고난 끼를 어찌 숨기고 살았을까!
  6. 2015.11.04 “국수 입간판이 있네. 저 집서 국수 먹을까?”
  7. 2015.10.20 [힐링 여행] 사천 ‘봉명산 다솔사’와 부처님 진신 사리 (1)
  8. 2015.05.28 여보게 친구,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9. 2015.04.10 아름다운 소유란, ‘남에게 쓰기 위해 갖는 것’
  10. 2014.08.14 군 폭력 및 사망과 세월호 사건은 인간 욕심의 결과
  11. 2014.05.19 선문답, '스님이 한 분 밖에 안 계신다'?
  12. 2013.11.08 가을 단풍이 나그네에게 요구한 세 가지는?
  13. 2013.11.06 주남저수지, 신 ‘호접지몽’이 던진 무언의 메시지
  14. 2012.10.24 산행 길에서 가장 우스운 질문은 무엇일까?
  15. 2012.10.01 행위예술 바디페인팅 문화충격으로 다가오다
  16. 2012.09.29 추석 연휴 마산 ‘창동’에 가시라, 왜? (3)
  17. 2012.09.24 합천스러운~, 공무원 아이디어 빛난 ‘소나무’
  18. 2012.09.20 ‘사람이 되어라’고 가르치는 모산재 산행 길
  19. 2011.11.08 ‘불상’도 생명력을 얻어야 ‘부처’가 되는 거구나 (1)
  20. 2011.11.02 천지에서 감이 익어가는 청도와 추억
  21. 2011.10.31 가을 비 속에 조용히 내려앉은 단풍의 ‘운문사’ (1)
  22. 2011.10.08 ‘무한도전’과 강동원의 ‘전우치’ 세트장 가다
  23. 2011.10.07 빛나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해인사 풍경
  24. 2011.10.05 합천 소리길, ‘나는 블로거다’ 배틀 가능할까?
  25. 2011.09.02 도살장에 선 스님이 전하는 현실과 속가의 차이 (1)
  26. 2011.08.30 만남은 인생을 좌우한다? 사명당과의 만남 (1)
  27. 2011.08.24 간절히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 만어사 (1)
  28. 2011.08.17 여름 피서철, 숙박업소 바가지 상술에 멍들다! (1)
  29. 2011.08.16 통큰 뻥쟁이의 말에 내가 빵 터졌던 이유는?
  30. 2011.05.18 모진 세월 가고,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쌍계사, 탑에 동전 붙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사람들이 말세라고들 하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선문답 여행] 경남 하동 쌍계사 - ‘문’의 의미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722) 대비, 삼법 두 화상께서 선종의 육조 혜능 스님 정상을 모시고 귀국, ‘눈 쌓인 계곡 꽃이 피어 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 인도로 절을 지은 것(성덕왕 23년)에서 유래됐다. 그 뒤 문성왕 2년(840) 진감선사께서 퇴락한 삼법 스님 절터에 옥천사를 중창하고 선의 가르침과 범패를 보급했다.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 사명을 내렸다.” - 출처 : 쌍계사 홈페이지 -



삼신산 쌍계사는 부처님께 향하는 마음가짐을 갖추기 위한 문이 중요합니다. 일주문은 속세를 벗어나 절집 부처님 세계로 들어서는 산문 중 첫 번째 관문입니다. 속세에서 찌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부처님께 향하면 좋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의미지요. 쌍계사 일주문은 “다른 일주문과 달리 다포 팔작지붕으로 기둥머리 장식 부재가 가늘고 섬세한 겹처마”라 화려한 느낌입니다.



금강문은 일주문을 지나면 두 번째로 만나는 문입니다. 이곳도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장소입니다. 특이한 점은 보통 사찰이 일주문 다음에 천왕문을 배치하는데 반해, 쌍계사는 그 사이에 금강문을 배치하였다는 점입니다.


금강문 안에는 불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금강역사상을 세워 절집 안으로 들어오는 악귀를 막습니다. 쌍계사 금강문은 “맞배지붕으로 기둥이 높고 겹처마”로 이루어졌습니다. 현판은 벽암 스님 글씨라고 합니다.



천왕문은 일주문, 금강문 다음으로 통과하는 세 번째 대문입니다. 이곳은 사천왕을 모십니다. 사천왕은 “수도승과 불자를 돕는 사방의 수호신으로,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지국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입니다.”


사찰에 천왕문을 건립하는 이유는 “절을 외호한다는 뜻 외에, 출입하는 사람이 수호신에 의해 도량 내 모든 악귀가 물러간 청정도량임을 심어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쌍계사 천왕문은 “맞배지붕의 건물로, 공포를 간략하게 처리”해 소박한 느낌입니다.




대공탑비는 최치원 비문으로 더 유명합니다.

탑에 동전 붙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나무 석가모니불





쌍계사, 탑에 동전 붙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천왕문, 9층 석탑, 팔영루를 지나니 유명한 대공탑비가 보입니다. 국보 제47호인 진감국사대공탑비(眞鑑國師大空塔碑)는 “신라 정강왕이 진감국사의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비의 높이는 3m 63cm, 탑신 높이는 2m 2cm, 귀부와 이수는 호강암, 비신은 흑대리석이다”고 합니다.


탑비보다 비문이 더 유명합니다. 최치원 쓴 우리나라 4대 금석문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최치원 선생의 서체 등을 감상합니다.



“동전 있나?”


“뭐하시려고?”


“복을 빌어볼까 해서.”




동행한 지인, 대웅전 앞에서 복이 고팠나 봅니다. 백 번 천 번 이해합니다. 그는 저 세상으로 아내를 먼저 보냈습니다. 홀로 세 아이 돌보느라 고생 많습니다. 한 눈 전혀 팔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중입니다. 어디 아이들이 제 마음 같던가요. 그가 복 빈다 하니 동전이란 동전은 죄다 주고 싶습니다.



이를 어째. 동전이 하나도 없네요. 없는 동전도 만들어서 주고 싶은 심정. 이를 알았을까. 그가 자기 주머니를 뒤적입니다. 두 개 있답니다. “동전 하나 줄까?” 묻습니다. 그에게 동전 얻어 복 빌 생각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가 바라는 복이 오길 간절히 바랄 뿐! 연못 등에 동전 던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헌데, 그게 아닙니다. 대웅전 앞, 탑으로 갑니다. 탑에 동전 붙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나 뭐라나. 다행이 동전 두 개가 철썩 붙었습니다.








“내 복만 빌면, 욕심 많은 사람에게 복 주겠냐?"



“절에 안 가봤다는 사람이 탑에 동전붙이는 건 어찌 알았을꼬?”
“탑을 보니 동전이 붙었더라고. 나도 해보고 싶대.”



눈이 보배였네요. 뒤에 알고 보니, 그는 탑에 동전 두 개 붙이면서 하나는 자기 몫, 하나는 제 몫이었다 합니다. 그래 물었지요.



“난 안 빌어도 되는데. 그냥 혼자 복만 빌지 왜 그랬어요?”
“동전 두 개 붙이면서 내 복만 빌면, 욕심 많은 사람에게 누군들 복 주겠냐? 진심을 다해 둘이 같이 복 받기를 빌었다.”



기대치 않았던 말에 괜히 고맙고 감사한 거 있죠. 저도 속으로 부처님께 ‘지인에게 우렁이 각시 한 명 점지해 주십사’ 빌었습니다. 이심전심이었나 봅니다. 보물 제500호 쌍계사 대웅전에 대한 설명입니다.



“대웅전은 부처를 모신 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계 건물이다.


중앙 3칸에는 사분합의 빗살문이 달렸고, 상부에는 창방 밑으로 광창을 달았다. 천장은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안쪽을 가린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내부 주불단 상부에는 닫집이 구성되었다.”




9층석탑





“사람들이 말세라고들 하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마애불은 큰 바위에 두터운 돌을 새김으로 불상을 새기고, 불상의 둘레를 깊이 파내, 감실에 모셔진 부처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머리가 크고 살집이 많은 얼굴에 어깨까지 쳐진 귀는 자비로운 느낌이다.

부처의 손은 법의로 덮여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아주 소박하여, 부처라기보다 승려의 모습과 같은 마애불이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대웅전 방향으로 돌아 나오면서 한 스님을 만났습니다. 외지에서 온 종문 스님입니다. 그를 따라 종무소로 향합니다. 유명한 하동 녹차를 마시기 위함입니다. 스님들 하안거가 막 끝난 후라 다들 출타 중이랍니다.


대신 종문 스님과 다원에서 차를 마시기로 합니다. 차, 잘 골라야 합니다. 어느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맛이 갈립니다. 차에 만든 사람의 기품이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차, 다행히 목 넘김이 부드럽습니다.









- 사람들이 지금은 말세라고들 하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부처님 이후 말씀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고, 지켜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제대로 지켜지면 말세라 할 필요 없겠지요.”




- 스님과 중생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일반 대중은 세상 속에 살다보니 사회생활에 있어 더 지혜롭습니다. 스님은 선정이나 깨달음에 대해 지혜롭습니다.”



60여년 살면서 쌍계사가 절 방문 두 번째라는 지인. 그러나 만해 한용운 선생 글을 좋아하는 지인. 스님과 이야기가 낯선 중에도 재밌나 봅니다. 그에게 쌍계사를 돌아 본 소감을 물었습니다.



“집착하지 마라는 것처럼, 마음 내려놓은 기분이었고, 구도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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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람, 모든 게 자기 마음에 있다
“그림 한 점과 글씨 한 점을 제게 주십시오!”
“꽃향기는 천리를 가고 덕의 향기는 만리간다”
청학동 화봉 최기영 님의 붓글씨 쓰는 과정과 인연

 

 

 

경남 하동군 청학동에 걸린 곶감

스님께서 흔쾌히 내어 주신 동양화

 

 

 

“그림 한 점과 글씨 한 점을 제게 주십시오.”

 

 

왜 그랬을까. 무작정 졸랐습니다. 남해사 혜신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중, 무의식 속에 필연적으로 나왔지 싶습니다. 입으론 말하고 있었으나, 귀는 놀랐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너무나 즉흥적으로 터진 탓이었습니다. 스님께선 기다렸다는 듯 빛의 속도로 반응했습니다.

 

 

“그러지요. 그림과 글씨를 갖게 되면 부담이 생길 겁니다. 잘 극복하시길.”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스님께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에 걸린 세 그림 중 마음에 든 그림 하나를 골라잡길 종용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이 그림 중 하나는 자네 것이야. 왜 이제 가져가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무안함과 고마움을 변명으로 대신했습니다.

 

 

서예실 앞에 선 화봉 최기영님, 공예가 장형익님, 혜신스님(우로부터)

 

 

 

 

“아버지로써 사춘기 아이들에게 남기고픈 정신적 메시지를 그림과 글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요.”

 

 

고민 끝에 해정 조성순 님의 동양화 한 점을 골랐습니다. 이와 동시에 스님께선 표구 째 즉석 포장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집까지 손수 배달해 주셨습니다. 느닷없이 엉겁결에 그림 한 점을 얻게 되었습니다. 글씨 한 점은 서예가를 직접 만나 작품과 인연이 닿는지 여부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찾은 곳이 경남 하동군 청학동의 화봉 최기영 님의 ‘수미산방’이었습니다.

 

 

붓끝에서 나오는 글씨를 보며 거미줄을 떠올렸습니다. 왜?

 

 

 

 

아버지의 바람, 모든 게 자기 마음에 있다?

 

 

청학동의 화봉 선생을 만났습니다. 선생과 만나는 동안 두 개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을 받게 될지 말지와 상관없이. 인연에 맡기는 길 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로 꽂힌 글귀는 선생의 집 안방에 걸렸던 이것입니다.

 

 

“길상여의(吉祥如意) 길하고 상서로운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란다.”

 

 

꽂힌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들이 그저 “세상사 모든 것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이룰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게 일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걸 깨우치는 순간, 욕심까지 버렸으면 하는 아비의 바람이었지요. 두 번째로 꽂혔던 건 수미산방에 걸렸던 작품입니다.

 

 

 

 

 

“화향천리(花香千里)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덕인만리(德人萬里) 덕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글은 꽃 향과 사람의 덕 향기를 담은 듯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구는 “난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묵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덕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난향백리(蘭香百里) 묵향천리(墨香千里) 덕향만리(德香萬里)’”와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난의 향보다 먹물 향이, 묵향보다 사람에게 나오는 덕의 향기가 더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

 

 

 

화봉 선생 

먹의 농도를 이렇게 써보고 조절한다 합니다.

먹은 이렇게 붙여서 쓰신다더군요...

 

 

 

 

“그림 한 점과 글씨 한 점을 제게 주십시오!”

 

 

“쓰다 남은 먹은 이렇게 붙여서 마지막까지 쓰고 있습니다. 먹 하나라도 그냥 버리는지 않습니다.”

 

 

수미산방 안 묵향이 은은했습니다. 그가 커피를 권했습니다. 고요 속에 먹을 갈았습니다. 수줍은 웃음을 살며시 띤 채 먹을 갈던 그가 설명했습니다. 먹이라도 손에 익은 걸 버리자니 무척이나 아쉬웠던 게지요. 검소한 삶으로 읽혔습니다.

 

 

 

 

글씨를 쓰기 전 잠시간의 침묵 속에는 모든 게 들어 있었습니다.

 

 

 

 

“….”

 

 

붓을 움직이기 전 잠시 잠깐의 침묵. 그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긴장이 휘몰아쳤습니다. 붓이 움직였습니다. 어떤 글자를 쓸까, 하는 궁금증은 뒷전이었습니다. 글을 써 내려가는 붓을 보니 떠오른 상황 하나가 있었습니다. 왜 하필 거미 똥구멍이었을까. 그건 똥구멍에서 나오는 실로 자신의 집을 짓는 거미의 규칙적이고 열정적인 움직임 때문이지 싶습니다.

 

 

 

 

 

 

“吉(길)ㆍ祥(상)ㆍ如(여)ㆍ意(의)”

 

 

그가 글을 완성했습니다. 많은 낙관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낙관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가 봉투에 제 이름을 쓴 후 글을 담아 주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닿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전하려는 삶의 의미가 빛을 발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덕이 향을 발할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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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아내가 남편과 동반 여행 꿈꾼 ‘운문사’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
어둠 속에 움직이는 비구니들 발걸음으로 ‘위안’
[경북 청도 선문답 여행] 학인스님들의 ‘운문사’

 

 

 

 

운문사 가는 길 

새벽예불 후 불이문으로 향하는 비구니 스님들.

운문사 입구 가는 길...

 

 

 

“처녀 때 청도에 세 번 왔어요. 두 번은 혼자 왔고, 한 번은 친구랑 같이 왔지요.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운문사 새벽예불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힐링’이 됐어요. 그땐 꿈도 많았는데….”

 

 

20여 년 전, 경북 청도 운문사 여행에 대한 아내의 회고담입니다. 여자 혼자 6~7시간 버스 타고 여행에 나선 자체가 놀랍습니다. 겁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집니다. ‘뻔’한 인생살이 남자의 옹졸한 변명 한 번 하지요. ‘꿈’ 좋지요. 그러나 삶에 대한 미련이 아직 있는 걸 보니, 삶이 별 거 아니라는 걸 여적 모르나 봅니다. 이걸 알면 벌써 도인 됐겠죠.

 

 

가을이 물든 운문사 

처진 소나무 

처진 소나무

 

 

 

“옛날엔 여수에서 청도로 바로 오는 버스가 없어, 경주를 거쳐 왔어요. 다시 오기가 힘들어 한번 오면 4박 5일씩 민박하며 머물렀죠. 당시에도 300여명이 함께 부르는 새벽 예불 소리는 듣는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어요. 이번에도 새벽예불은 꼭 하게요.”

 

 

아내는 추억담을 말하며 신이 났습니다. 지난 10월31일~11월1일 청도 운문사 가을여행엔 부산의 공덕진·김남숙 부부, 최명락 교수(전남대 생명산업공학부), 저희 부부까지 다섯이 나섰습니다. 당초 합류가 예정됐던 창원의 박천제·전영숙 부부는 큰 딸의 출산과 맞물려 무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하여튼 이번 여행의 백미는 운문사 새벽예불이었으니...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

 

 

 

“똑·똑·똑·똑·똑·똑·똑·똑·똑….”

 

 

도량석. 목탁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가로질러, 가람 사이를 돌아 나오더니, 공중으로 휘몰아치더이다. 이어 절집 주변을 밝히는 불이 하나 둘 켜지더이다. 운문사의 첫 새벽을 밝히는 목탁소리가 마치 소 울음소리처럼 들리더이다. 청아한 목탁소리. 누가 도량석을 쳤을까? 도량석에 이어 법고와 목어, 범종 등을 차례로 치더이다. 이를 보며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 말씀을 떠올렸더이다.

 

 

“도량석은 스님을 깨우는 자명종입니다. 도량석을 담당한 학인스님은 다른 학인스님보다 30분 먼저 깨어, 절 주위를 돌며 스님들이 일어나길 재촉하지요. 때문에 스님들은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려고 도량석 당번을 많이 꺼리지요. 번을 써는 스님 목탁소리에 따라 큰스님 기분이 달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하기 위해 나선 수행 길에도 걸림돌이 있는 걸 보니, ‘잠’은 공부하는 모든 이들이 넘어야 할 태산이나 보더이다. 2년 전, 우도 금강사에 잠시 머물 때, 새벽을 가르는 목탁소리에 깨어 허겁지겁 도량석 중인 스님의 뒤를 따르던 기억이 새롭더이다. 이런 날, 스님께선 아침 공양으로 마음 속 특별식을 내주셨더이다.

 

 

부지런한 스님들은 벌써 불이문을 넘어 대웅보전으로 향하더이다. 걸음걸음이 어찌나 사뿐이던지 발자국마저 남지 않은 것 같더이다. 뿐만 아니라 법고와 범종 소리가 공중을 가로질러 천지자연을 일깨우더이다. 학인스님들의 행렬이 바빠지더이다. 비로소 운문사 절집으로 오는 ‘솔바람 길’에 붙어 있던 문구를 떠올렸더이다.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 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입니다.” - 법구경 -

 

 

 

 

 

 

 

 

어둠 속에 움직이는 비구니들 발걸음으로 ‘위안’

 

 

건망증 때문일까. 운문사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걸 깜빡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에서 “운문사의 아름다운 다섯” 중 으뜸으로 꼽았던 “아직은 선량하고 앳되면서도 뭔가 해볼 의욕으로 빛나는” 학인스님들의 눈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 더 아쉬웠습니다. 대신 어둠 속에 움직이는 비구니들의 발걸음을 본 것으로 위안 삼았습니다.

 

 

학인스님을 따라 대웅보전에 들었습니다. 스님들은 층층이 앉았습니다. 스님 한분이 새벽예불에 참여한 중생들을 안내했습니다. 새벽예불이 시작되었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멀리서만 들었던 은은하고 낭랑한 비구니들의 합창소리를 법당 안 바로 옆에서 직접 들을 줄이야! 아마, 인연의 한 자락이 운문사와 맞닿았나 봅니다.

 

 

학인스님들이 거처하는 도량과 은행나무. 

불이문... 

불이문 안쪽의 모습은 정중동이었습니다.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 이미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공허한 공상에 젖지 말며, 오직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하라 -”

 

 

청도 여행 중, 최명락 교수가 차 안에서 정성들여 은은하게 암송해준 금강경 일부입니다. 그는 금강경 암송 후, 위 구절이 금강경의 핵심 중 하나라며 다시 또 자세히 풀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현행원품까지 알려주시데요. 이 때문일까. 법당에 올라 부처님 앞에서 처음으로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을 되새김질했습니다. 백팔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기온 0℃라는 일기예보 덕에 껴입었던 옷이 부담이었습니다.

 

 

새벽예불이 끝났습니다. 천천히 한 사람 한 사람 법당을 빠져나갔습니다. 댓돌에 놓여 있던 수많은 신발들이 하나 둘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자기 것인지 어떻게 알까? 아내 말로는 “자기만 아는 다양한 표식으로 구분한다!”더군요. 확인 못한 게 아쉽습니다. 암튼, 일렬로 줄지어 가는 학인스님들의 행렬에서 묘한 여운을 느꼈습니다.

 

 

 

도량석 후 불이문을 나서는 스님... 

 

새벽예불을 위해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스님...

 

 

 

 

“절을 하니까 다 내려놓게 되데요. 참 신기해요.”

 

 

“드디어 나도 소원을 하나 갖게 되었다. 늙어서 정년퇴직하고 나면 청도 운문사 앞 감나무 집을 사서 여관이나 하면서 사는 것이다.”(262쪽)

 

 

이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에서 “신경림 선생과 술자리에서 전해들은 소설가 이문구 씨의 평생소원을 전해 듣고 갖게 됐다”던 소원입니다. 유 교수가 감나무 집을 샀다는 소릴 아직 전해 듣지 못한 바, 그의 꿈은 아직 유효하겠죠. 그만큼 운문사가 탐이 났던 게지요. 욕심이 생기니 감나무 집까지 넘보게 되고...

 

 

 

도량석 후  법고, 목어, 범종을 칩니다.

무릇 수행이란... 

예불 후 불이문으로 향하는 스님들 행렬에서 묘한 여운을 느낍니다.

 

 

 

 

결혼 전, 아내 소원도 유홍준 교수 꿈과 엇비슷했습니다. 아니, 아내 소원이 유 교수보다 더 소박했습니다. 집을 사겠다는 유 교수의 소유욕(?)과 차원이 다르지요. 아내 소망은 단지 “남편과 함께 청도 운문사를 여행하는 것”뿐이었으니. 무욕(無慾)을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인이지 싶습니다. 이는 물론 아내가 유 교수의 가르침을 가슴에 간직했기에 받은 선물이리라!

 

 

“내 생애 두 번째로 법당에 올라 부처님께 절을 했어요. 첫 번째는 창원 성불사 법당이고, 두 번째가 여기 운문사에요. 내가 이렇게 많이 절을 하다니 놀라워요. 절을 하니까 다 내려놓게 되네요. 참 신기해요.”

 

 

아내 말에 공감입니다. ‘나를 내려놓게 만드는 힘’은 법당을 나가 일렬로 줄지어 되돌아가던 학인스님을 보면서 느꼈던 ‘묘한 여운’과 비슷했습니다. 아마도 이 ‘힘’ 때문에 유홍준 교수는 “운문사 앞 감나무 집 여관”을 소원했지 싶습니다. 또한 아내도 이 ‘여운’ 덕분에 “결혼 후 남편과 운문사 여행”을 꿈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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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 있는 절 표현하기, 그림대회 1등은?
“계십니까? 스님, 차 한 잔 마시러 왔습니다!”
[경북 청도 선문답 여행] 절집과 깨달음 ‘대적사’

 

 

 

 

경북 청도 와인터널 옆 대적사 가는 길...

 

 

 

 

길을 걸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 낙엽이 반응합니다. 발로는 낙엽을 밟습니다. 귀로 낙엽 밟히는 소릴 듣습니다. 그런데도 낙엽 밟는 소릴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미천한 삶의 한계입니다. 이는 제가 세상을 더 살아야 할 이유지요.

 

 

경북 청도 여행의 핵심은 비구니 수행도량 ‘운문사’입니다. 그러나 아는 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데요. 우리네 삶에 수많은 숨은 고수들이 있듯, 절집에도 다양한 멋스러움이 존재하대요. 이걸 알기까지 오십일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고, 삶이 겸손해야 할 까닭이지요.

 

 

 

 

 

감이 계절을 재촉합니다. 

 

 

길을 걸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대적사 가던 길

 

 

 

“청도 와인터널 입구에서 왼쪽 길로 조금 오르면 대적사가 있다. 대적사에 가자.”

 

 

공덕진·김남숙 부부의 안내에 따랐습니다. ‘대적사’ 가던 길. 어디에선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습니다. 연기는 추억 속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아내 또한 추억이 그리웠나 봅니다.

 

 

“연기를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 하나가 있네요.”

 

 

연기에 홀렸을까. 아내 입에서 예상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아내가 꺼낸 이야기는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26~32쪽)였습니다. 그중, 두 번째 이야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였지요. 다만, 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각색했더군요.

 

 

 

 

낙엽 밟는 소리가... 

 

 

경북 청도 대적사 절집 계단 사이에 꽃이 피었습디다...

 

 

 

 

 

산 속에 있는 절 표현하기, 그림대회 1등은?

 

 

“그림을 사랑했던 어느 황제가 이런 제목으로 그림대회를 열었대요.

 

 

‘산 속에 있는 절 표현하기!’

 

 

그림대회에 참여한 화가들 대부분은 숲속에 절집을 그리거나, 탑이 솟아 있는 풍경을 그렸대요. 황제 마음에 든 그림이 없었대요. 황제는 마지막으로 한 화가가 제출한 그림을 보고서야 웃더랍니다. 그 화가는 무엇을 그렸을까요?

 

 

화가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절집 대신 깊은 산속 오솔길에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 올라가는 모습을 그렸대요. 황제는 비록 절을 그리지 않았지만, 물 길러 나온 스님을 보고 가까운 곳에 절이 있는 걸 알아 챈 겁니다. 이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란 의미지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산 속에 절만 있는 그림은 ‘절이 있다’는 느낌에 그칩니다. 하지만 물 길러 나온 스님을 보면, 찻물 용도인지, 공양 지을 용도인지, 혹은 그 스님께선 도를 통했을지, 등 많은 상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여튼, 아내는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절집으로 올라가는 산 입구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동자승 모습과 산 속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모습을 그리는 것도 산 속에 절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지요. 무엇이든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하다는 거죠.”

 

 

와인터널 옆으로 난 길을 한참 올라야 절집이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와인터널 입구 푯말에 쓰였듯, 대적사는 말 그대로 진짜 100여m 거리였습니다. 산사를 오르는 길에 들리는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가을 교향곡이었습니다. 가을 산사는 고즈넉했습니다.

 

 

 

 

 

길에서 낙엽이 인사했습니다.........

 

 

그림대회에서 이런 그림을 그려도 1등 했을 것이라는...

 

 

 

 

 

 

“계십니까? 스님, 차 한 잔 마시러 왔습니다!”

 

 

“대적사. 극락전 보물 제836호. 신라 헌강왕 2년(876년) 보조선사가 토굴로 창건해, 고려 초기 봉양이 중창하였다.”

 

 

헉! 이를 어째? 은연 중 ‘대적사’를 무시했나 봅니다. 보물에다, 보조선사와 인연까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절집 뒤편으로 올랐습니다.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계십니까? 스님, 차 한 잔 마시러 왔습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벙거지를 눌러쓴 백발의 스님이었습니다. 흰 눈썹이 휘날리는 걸 보니, 성질 꽤나 있으시겠다, 싶었습니다.

 

 

“뉘신데 차를 달라는 겁니까?”

 

 

역시나 까칠함이 엿보였습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나 봅니다. 까칠하신 스님은 근현대 선풍 진작의 중흥조인 경허, 만공스님의 덕숭 문중 법맥을 잇는 속리산 법주사의 총지선원장 등을 역임한 진광스님이었습니다. 선문답, 배움을 청했습니다.

 

 

“왜, 절집 홈페이지 스님 소개란에 ‘득도’를 밝히는 거죠?”
“...................”

 

“스님, 득도(得道)란 무엇입니까?”
“...................”

 

 

스님께선 차와 대답 대신 손수 오죽 지팡이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죽순이 피어날 때 연락하라 하셨습니다. 아둔한 중생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차 대신 오죽 지팡이를 만들어주시는 진광스님...... 

 

 

함께 여행 길에 나선 일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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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8년, 타고난 끼를 어찌 숨기고 살았을까!
도로변에 주렁주렁 달린 사과와 감을 보며 ‘힐링’
[경북 청도 여행] 용감해진 아내 진면목에 ‘미안’

 

 

 

 

경북 청도는 감 천지였습니다.

 

 

과일가게에서 보던 사과를 이렇게 보다니...

 

 

청도 반시.

 

 

 

 

집 떠나면 누구나 용감해지나 봅니다. 때론 용감해지고 싶어 여행을 가는 거겠죠? 가을 부부여행에서 타고 난 자신의 끼를 발산한 아내의 진면목을 보니 안쓰럽고 미안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글쎄, 일행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경남 밀양과 경북 청도 일대를 여행하며 놀란 게 유실수입니다. 주렁주렁 달린 감과 사과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씨 없는 감 ‘반시’로 유명한 경북 청도 도로변 가로수가 감나무였는데 감이 주렁주렁 달렸습디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힐링’되었지요. 심지어 청도군청사에도 감이 열린 모습은 별천지였습니다. 눈물겨운 특산물 사랑이었지요.

 

 

특히 과일 가게 등에서 상품으로만 보았던 사과를, 노지 나무에 탐스럽게 익은 채 달려 있는 사과를, 눈으로 직접 보니 눈이 커질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눈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눈에 들어오는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와 감은 마음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신기한 건 손을 뻗으면 과일이 쉽게 잡히는데, 그걸 따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열매 보기 힘든 곳에서는 담 너머 과일을 따먹으려는 충동에 나쁜 손이 되곤 하는데 말이지요. 과일이 넘치는 무릉도원 같은 풍경에 차를 멈추고 사진을 마구 찍었습니다. 그러다 큰 사과 옆에 대롱대롱 달린 앙증맞고 작은 열매를 발견했습니다.

 

 

 

 

가로수가 감나무라니... 풍요로웠습니다.

 

 

 

청도군청사에도 감이... 특산품 사랑!!!

 

 

가로수 감은 무릉도원을 연상시켰습니다.

 

 

 

 

 

 

“이건 뭐지?”
“그것도 사과야.”


“그럴 리가.”
“사과라니까. 못 믿겠으면 몇 개 따 먹어봐.”

 

 

망설였습니다. 그렇지만 호기심이 더 컸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실직고 합니다. 네 개를 땄습니다. 손으로 문질러 하나를 먹었지요. 크기만 달랐지 영락없는 사과였습니다. 풍부한 단맛에 진한 신맛까지 어우러졌더군요. 신맛 좋아하는 제 입맛에 ‘딱’이었지요. 맛있게 씹어 먹고, 아내와 지인에게 하나씩 권했습니다. 둘이 한 입 베어 물더니, 바로 인상 쓰며 하는 말.

 

 

“시고 맛도 이상한데 이게 맛있어?”
“맛있는데 왜 그래?”

 

 

이상한 사람 보는 떱떠름한 표정이대요. 그들이 먹다 남긴 작은 사과를 받아먹었습니다. 달고 신 과즙이 한입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사과 하나를 남겼지요.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게 뭥미? 

 

 

 사과와 같은 종...

 

 

먹어보니 영락없이 사과네용~~~

 

 

 

 

 

 

“우리 내기해요.”

 

 

아내가 내기를 제안했습니다. 내기는 간단했습니다. 부산의 공덕진ㆍ김남숙 부부가 도착하면, 남편에게 작은 사과를 건네, 그가 먹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1. 전혀 먹지 않는다.(지인)
2. 조금 먹다 버린다.(아내)
3. 맛있게 다 먹는다.(나)

 

 

선택이 끝났습니다. 부산서 일행이 도착했습니다. 이에 맞춰 아내가 긴급 제안을 추가했습니다.

 

 

“진 사람은 늦게 온 공 회장님과 같이 펜션 앞의 개울가에 빠진다.”

 

 

복불복. 날씨는 이번 가을 들어 제일 추웠습니다. 영하 1도라나 뭐라나. 그렇지만 남정네들 시원하게 ‘콜’했습니다. 안 그랬다간 간댕이 작은 쪼잔한 남자로 찍힐까봐. “네 각시가 이런 사람이었나?”란 말까지 나왔으니 말해 뭐해.

 

 

작은 사과를 건네받은 지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입니다. 자기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앞에,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한 듯합니다. 그가 사과를 입에 댔습니다. 한 입 베어 물더니 인상 쓰며 버렸습니다.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아내가 정답을 맞춘 겁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오롯이 아내를 재발견한 시간이었습니다. 결혼 18년째, 어찌 타고 난 끼를 숨기고 살았을까!

 

 


 

 

감이 즐거움을 줍니다. 

 

 

영남 알프스

 

 

일행에게 사과가 추억을 선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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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3대 누각 영남루와 땀 흘리는 비석
표충사, 부처님 사리 6과 전시 중...관람하세요!

[경남 밀양 여행] 추어탕국수, 영남루, 표충비, 표충사

 

 

 

 

표충사에는...

 

 

 

가을,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 좋은 때입니다. 또한 가을은 나를 다스리기 쉬운 계절입니다.

 

 

“어디로~ 갈 꺼나~, 어디로~ 갈 꺼나~~~”

 

 

 

표충사 입구... 

경남 밀양 표충사는 중성적 느낌입니다.

 

 

 

영업이 10시부터? ‘의령소바’ 먹지 않은 이유

 

 

가을, 아내와 길을 나섰습니다. 일정은 ‘경남 의령소바 ~ 밀양 영남루 ~ 표충비각 ~ 표충사 ~ 경북 청도 운문사’였습니다. 첫 번째부터 일정이 어그러졌습니다. 8시에 의령 맛집에서 아침 먹으려했던 ‘의령소바’ 집이 손님을 받지 않은 겁니다. 이유가 어처구니없었습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영업시간은 10시부터입니다.”

 

 

이를 어쩌? 아! 뿔! 싸! 2년 전,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아내에게 맛 보여주려 했는데 안타까웠지요. 여행에서 두 시간이면 충분히 ‘나를 다스릴 수 있는 인내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단호하게 돌아섰습니다. 아침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니. 또한 가다가 인연 닿은 집에서 먹어도 되니까. 다만, 아내에게 “다음에 꼭 모시고 오겠다” 약속했지요. 아쉬움은 의령 망개떡 두어 개 먹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경상도 여행길에서 비교적 쉽게 접하는 풍경이 있지요. 전라도와 달리 도로변 에 국수집이 많다는 점입니다. 국수도 촌국수, 잔치국수, 막국수 등 다양합니다. 바로 이 점이 의령 소바를 먹지 않고 그냥 온 이유였지요. 그런데 의령에서 밀양으로 국도로 이동하는 중에 웬일인지 국수집이 안 보여 배를 쫄쫄 골았다는....

 

 

너무 일찍 갔더군요. 

의령 망개떡입니다.

 

 

 

 

 

우리나라 3대 누각 영남루와 땀 흘리는 비석

 

 

 

“저기 국수 입간판이 있네. 저 집서 국수 먹을까?”

 

 

두 말하면 잔소리. 두 시간 만에 드디어 국수집 간판이 보였습니다. 경남 창녕 도로변 가마골 식당. 여기서 처음으로 추어탕국수를 보았습니다. 이런 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지요. 추어탕국수는 경상도 특유의 맛이데요. 추어탕은 대개 전라도가 진하고 걸쭉한데 반해, 경상도는 하얗게 맑습니다. 추어탕국수도 경상도식 추어탕에 밥 대신 국수를 넣었습디다. 색다른 국수 먹는 맛이 재미지대요.

 

 

추어탕국수입니다.

잔치국수입니다.

 

 

 

경남 밀양 영남루는 보물 제 147호로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입니다. 영남루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계단이었습니다. 계단 오르기 불편한 분들을 위한 길을 중간에 만들었더군요. 계단 이렇게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필 영남루는 공사 중. 주위에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천진궁, 아랑각, 박시춘 옛집, 밀양 아리랑 노래비 등의 문화유적지가 있습니다. 여행 중에 밀양 아리랑 흥얼거리는 것도 좋지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영남루에 갔더니 공사 중이라는/// 

계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을이 앉은 영남루.

 

 

 

표충비는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한 사명대사의 뜻을 새긴 비입니다. ‘땀 흘리는 비석’이라고 하는데, “나라에 큰 사건이 있을 때를 전후해 비면에 땀방울이 맺혀 구슬처럼 흐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나라를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 한답니다. 높이 1.5m, 둘레 1.1m 크기의 300여년 된 향나무(노송나무)도 아주 볼만 합니다.

 

 

 

향나무입니다. 

사명대사의 영험함이 있다는 표충비입니다.

 

 

 

 

표충사, 부처님 사리 6과 전시 중...관람하세요!

 

 

 

천황산 표충사로 이동했습니다. 입구에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좌판을 펼치고  손님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석류에 눈이 쏠렸습니다. 벌써 입에 침이 고입니다. 요즘은 단맛의 수입 석류가 대부분인데, 시큼 달콤한 토종 석류를 보니 반갑더군요. 어릴 적 껍질을 톡톡 털고 나온 석류를 보고 자란지라 추억이 새롭대요. 석류는 시어 터져야 제 맛입니다. 그렇게 먹어야 사천왕상처럼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커지지요. 기어이 석류를 샀습니다.

 

 

표충사(表忠寺)는 사명대사의 호국성지입니다. 원효대사가 654년에 이곳에 절을 세웠답니다. 829년(신라 흥덕왕 4)을 전후해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악성 피부병에 걸려 전국을 돌던 중 이곳 약수를 마시고 치유했답니다. 그때 왕자가 마셨던 약수는 영험한 우물 약수라는 뜻의 ‘영정약수’라 불립니다. 피부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소식이네요. 약수 세 모금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표충사와 가을 하늘... 

 추억을 끄집어 낸 토종 석류입니다.

피부병에 좋다는 표충사 영정약수입니다.

 

 

 

 

표충사는 신라시대 때 적멸보궁이었답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부처님 사리를 말사로 옮겼다대요. 최근에 다시 부처님 사리 6과를 재 봉안 한다더군요. 그래 삼층 진신 사리탑 불사 중이더라고요. 이를 위해 중생들이 눈으로 직접 부처님 사리를 볼 수 있도록 대광전(대웅전)에 전시하대요. 보시를 통해 복 받기를 원하는 불자님들은 표충사 삼층 진신 사리탑 불사에 동참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대광전이 특이하게 옆에 섰네. 전체적으로 강한 남성적 지세가 절집이 앉아 중성적 기운으로 온화하게 만드는 것 같다.”

 

 

표충사를 둘러 본 아내의 소감입니다. 표충사는 가람을 다닥다닥 이어 붙여 지은 다른 절집과는 달리 배치를 양쪽으로 지어 절 마당이 넓게 보이고, 텅 빈 듯합니다. 이는 다른 절집보다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효과로 나타납니다. 여유로움이 마음에 달렸지 건물 배치에 있을까마는. 표충사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권유하는 듯 더욱 파랗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입니다. 

 

 

여유로운 표충사 경내입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전시 중입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탑 불사중이더군요. 보시하실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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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진신 사리 만진 영광, '다솔사'서 느끼다!

풍수지리설의 시조 도선 국사와 만남에 ‘감동’
‘고집멸도’, 모든 중생은 열반에 들 운명?
개, ‘네가 부처로구나’...염화미소와 이심전심

 

 

 

 

다솔사 가는 길입니다. 아름드리 숲길은 걸어주는 게 예의입니다.

 

 

 

 

가을 때문이지 싶습니다. 여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나를 되돌아보고픈 용기가 났습니다. 지인과 시절 인연을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국도와 지방도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여기 경남 사천 곤양에 다솔사라는 절이 있어. 아늑한 절이지. 40여 년 전 대학 때 갔었는데, 그 기억이 지금도 새롭네.”

 

 

지인의 설명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동안 듣도 보도 못했던 ‘봉명산(鳳鳴山) 다솔사(多率寺)’에 혹했습니다. 정처 없이 천천히 떠도는 중에도 가보고 싶었습니다. 하여튼 다솔사란 이름만으로도 묘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다솔사로 향하면서 지인이 말했습니다.

 

 

“옛날엔 차 몰고 가다가 들르고 싶으면 그때그때 쉬었다 가곤 했는데, 오랜만에 그런 여행 하는 기분이네.”

 

 

여행, 이런 게 맛있지요. 이런 여행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다솔사로 가는 내내 보너스 받은 것 같았습니다. 또한 저승사자에 이끌려 옥황상제 앞에선 중생이, 옥황상제에게 때를 쓴 끝에 며칠간의 삶을 보장받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분명한 건 정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봉명산 다솔사 가람 

편백나무 숲길

 

 

 

 

“교수님, 이런 길은 차를 두고 걸어가는 게 길에 대한 예의 같아요.”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너무나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차를 되돌려 주차 후, 약수 한 모금 마시고 걸었습니다. 아름드리 정겨운 솔밭과 쭉쭉 뻗은 편백나무 숲이 어우러진 맑고 싱그러운 길이 일주문(一株門)과 천왕문(天王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걷는 자체가 자연과 교감이었습니다.

 

 

“다솔사는 503년(신라 지증왕 4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영악사로 창건했다. 신라시대 자장 법사(610~654), 의상 대사(625~702), 도선 국사(827~898) 등에 의해 중수됐다. 도선 국사가 중수하면서 다솔사라 다시 개칭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숙종 때 재건되었다가 1914년에 불탄 걸 다시 지었다.”

 

 

1500여년 된 다솔사를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게다가 고려 태조의 출현 등을 예언한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시조이며, ‘도선비기’로 세간에 유명한 도선 국사와의 만남만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풍수지리설에 기반 한 해석이 뒤따랐습니다.

 

 

“다솔사가 앉은 봉명산은 명당 중의 명당인 장군대좌다. 봉명산 봉우리는 장군봉이다. 장군이 있으면 군사가 모여야 하고, 군사는 북을 쳐서 모으듯 절 뒤편 큰 바위가 북 바위고, 법당 앞에 흐르는 샘물이 장군수다. 풍수에 맞게 장군이 군사를 ‘많이 거느린다’는 의미로 다솔사라 했다.”

 

 

이를 증명하듯 다솔사 오르는 길에 ‘어금혈 봉표(御禁穴 封標-어명으로 다솔사 도량에 묘자리를 금하게 한 표석)’라는 음각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 설까. 땅의 음덕을 보려고 묘를 많이 썼다 합니다. 이곳에 묘를 쓰면 집안에 장군이 나온다나. 사람들이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자신이 지은 덕에 따른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모르는 게지요.

 

 

 

대양루 

어금혈 봉표 

1500여년 된 절집 다솔사 

 

 

 

대양루를 돌아 대웅전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대웅전에 ‘적멸보궁(寂滅寶宮)’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대웅전은 보통 부처님 불상이 앉아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적멸보궁은 부처님 몸인 진신사리가 있는 곳이라 불상이 없습니다. 부처님 몸을 불상이 대신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내부를 보니, 안에서 건물 밖의 부처님 진신 사리탑을 볼 수 있도록 벽면이 유리로 만들어졌습니다. 매무새를 추스르고 삼귀의(三歸依) 예를 차렸습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다솔사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발견된 건 “1978년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면서 적멸보궁 사리탑을 건립하고 불사리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는 두 종류입니다. 부처님 피부가 사리가 된 '백(흰색) 사리'와 혈관이 사리가 된 '적(붉은 색) 사리'로 나뉩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인 백사리와 흑사리입니다.

올 4월, 남해사 혜신스님의 도움으로 찍었습니다.

 

 

 

 

부처님과 인연이 남달랐을까. 올해 4월, 여수 남해사 혜신스님의 배려로 부처님 진신 사리인 백 사리와 적 사리 2과를 직접 손으로 만져 봤습니다. 당시, 사리를 손으로 만지면서도 무덤덤했습니다. 그랬는데, 이곳 다솔사 진신 사리탑을 보니 만져본 자체로도 영광임을 느낍니다. 3년 전, 어느 점술가의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스님 될 운명을 용케 피하셨습니다. 스님이 되셨을 때보다 덜하지만 문필가로 이름을 널리 알릴 운명입니다.”

 

 

웃어 넘겼습니다. 하지만 웃을 수만 없었습니다. 한 때 잠시 스님이 되고자 고민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이때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기독교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으나, 불교와 더 가깝게 지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전생부터 부처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탑 

대웅전 격인 적멸보궁 

사리탑을 돌며 소원을 빌면...

 

 

 

 

 

“참선본시불방편(參禪本是拂方便) 참선이 곧 부처님의 방편이라!
성공방각차신한(成功方覺此身閒) 공을 이루어 깨치면 이 몸 한가하리니!“

 

 

부처님 사리탑으로 돌아가던 길에 본 글귀입니다. 중생이 어찌 부처님의  큰 뜻을 헤아릴까. 마음 비워 합장하며, 부처님 사리탑 주위를 돌았습니다. 대박 수능, 대입 합격 등을 기원하는 소원이 많았습니다. 모든 중생들, 부디 부처님 전에 촛불 밝혀 경이로운 인연 짓기 바랄 뿐입니다. 다음은 다솔사가 권하는 부처님 사리탑 참배 방법입니다.

 

 

“연화대 차물에 손을 세 번 담궈 몸을 청정하게 한 후 탑전에 오르십시오. 호신불을 수지합장하고 사리탑전에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면서 소원을 기원합니다.”

 

 

부처님께선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뜻하는 ‘고(苦)’, 괴로움의 원인으로 번뇌의 모임인 ‘집(集)’,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인 ‘멸(滅)’,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이르는 ‘도(道)’ 등 ‘고집멸도’”를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이 곧 부처”라던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중생은 모두 열반에 들 운명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냐? 하는 것만 다를 뿐이지요.

 

 

 

 

나무의 위용에 압도당했습니다. 

 불상을, 유리를 통해 보는 부처님 진신 사리탑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숨결이 스며 있는 안심료.

 

 

 

 

안심료(安心寮)를 찾았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솔사 안심료는 “노년의 만해 한용운 선생이 주도한 항일 비밀 결사단체 만당의 근거지였으며,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곳이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동리 소설 <등신불>이 저술된 곳이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네가 부처로구나!”

 

 

안심료 앞에 앉아 있는 개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한 처사님, 저를 보더니 씩 웃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그의 염화미소(拈華微笑)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느꼈습니다. 해우소로 향했습니다. 몸에 쌓인 욕망 덩어리를 배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근심마저 시원하게 비웠습니다. 다솔사의 온화한 지세가 온 몸을 휘감았습니다.

 

 

“교수님, 다솔사를 안내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예정 없이 결행했던 다솔사 여행은 횡재였습니다. 소리 없이 가을이 깊어갑니다. 우리네 삶도 깊어가는 가을처럼 깊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고즈넉한 길에는... 

해우소에서 물욕을 내려놓았습니다. 

삶은 때때로 휴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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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anwhablog.com BlogIcon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즈넉하니 힐링하기 좋은 장소같습니다 :) 잘 보고 갑니다 ~

    2015.10.20 09:00 신고

부처님 안녕하셨습니까? 모두가 부처인 까닭
절집 비빔밥, 고추장 없이 먹어야 더 맛있는 이유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의 ‘부처님 오신 날’ 풍경

 

 

 

 

우리가 바라는 용화세상은...

 

 

나라의 평안을 빌고...

 

 

부처님이 어디 절집에만 있답디까?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대법회

 

 

연등을 접수하고...

 

나무 석가모니불!

 

 

 

어디 갈 데가 있다는 건 행복입니다.
반갑게 맞아 줄 이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어디로 갈까?

고민했습니다.

 

 

전남 여수 돌산 용월사 원일스님 등이 “석가탄신일, 오세요!”라고 요청하더군요. 하지만 올해 불사를 준비 중인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 청강스님에게 이미 마음을 허락한 뒤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몸은 따로 있되, 마음만은 하나였습니다.

 

 

 

관욕

 

 

관욕

 

관욕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법정스님 글귀 하나 읽고 가지요.

 

 

 

     산에 오르면


                               법정스님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있다네
  내 주위 가난한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부처라네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살아있는 지금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 마음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자네 마음이 부처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네

 

  여보시게 친구
  죽어서 천당가려하지 말고
  사는 동안 천당에서 같이 살지 않으려나?

 

  자네가 부처라는 걸 잊지 마시게
  그리고 부처답게 살길바라네
  부처답게…

 

 

그러게요. 법정스님 말씀이 백 번 천 번 맞습니다. 부처가 어디 산 속 절집에만 있답디까? 다들 세상에 널린 부처는 왜 보지 못한답니까? 천당과 지옥이 어디 저승에만 있답디까? 언제부터인가, 절에 스님만 있고 부처는 사라졌다더니 안타깝습니다. 그래 설까, 세상은 이미 아수라장입니다. 이걸 깨닫는 순간, 세상은 다시 용화세상이 되겠지요.

 

 

 

나무 석가모니불!

 

 

여항산 성불사 오세홍 종무원장

 

 

김영규 신도회 부회장 촛불 점등

 

 

정상식 신도회장 인사말

 

최명락 신도회 부회장 발원문 낭독

 

 

 

지난 25일 석가탄신일 새벽, 목욕재계했습니다. 아침, 속세에서 만남이란 시절인연을 타고 난 지인 두 분과 함께 창원 성불사로 향했습니다. 절집으로 가는 길, 지인이 암송하던 금강경을 직접 독송해 주신 덕에 귀와 마음 행복했습니다. 게다가 지인 자녀들이 절집에 함께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김밥으로 대신 싸준 덕분에 입까지 즐거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성불사 입구에 배치된 주차요원 신도님들과 인사 나눴습니다. 그들은 절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한 마음을 헤아린다는 듯 미소 지었습니다. 절집으로 가는 길에는 연등이 빙그레 길 밝히고 있었습니다. 공양 간에는 전과 고사리나물, 콩나물, 버섯나물 등 비빔밥 재료들이 푸짐하게 마련되었습니다. 한쪽에는 신도들과 나눌 떡을 싸고 있었습니다. 옆에서는 식혜로 목을 축이며 인사 건네고 있었습니다.

 

 

 

 

주차 봉사 등...

 

 

류지영 경기민요학원 부산지부 원장의 회심곡 음성 공양

 

배배갑종 이장님의 차량 봉사

 

 

10시, 여항산 성불사 오세홍 종무원장 사회로 ‘제2559년(2015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대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법회는 개회, 촛불 점등(김영규 신도회 부회장), 석문스님의 타종, 삼귀의 가창, 반야심경 독송, 봉축 점등(김갑남 신도회 부회장), 정상식 신도회장 인사말 등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이어 헌화 및 관욕, 예불 및 신중단 퇴공, 발원문 낭송(최명락 신도회 부회장), 청법가 가창, 청강스님 법문, 영단시식, 음성공양(회심곡-류지영 경기민요학원 부산지부 원장), 사홍서원 가창, 산회가 가창, 불자님들 상호 인사, 폐회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 주지 청강스님이 신도들께 인사 올립니다.

 

 

법당 밖에도 신도들이 앉았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부처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법문에 나선 청강스님의 엉뚱한 일갈(一喝)에 신도들 의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내 밝은 표정이 되었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이치를 아는 게지요. 그들은 법정스님께서 속세에 천지라던 그 부처님들이었습니다. 속세의 부처님들이 절집에 찾아든 겁니다. 그래서 청강스님은 절집을 찾은 속세 부처님들께 문안 인사를 올린 것입니다. 

 

 

“다들 눈을 감아 보세요. 자 이제 눈을 뜨십시오. 이게 바로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입니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눈을 뜨면 환하고 밝은 세상이 보입니다. 이렇듯 밝은 세상을 만들려고 부처님이 오신 겁니다.”

 

 

 

 

 

석문스님

 

 

후삼국시대, 궁예는 현세에서 용화세상과 미래불을 꿈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용화세상과 미래불을 맞이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어갔습니다. 왜일까? 항간에선 궁예가 욕심에 빠져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체를 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까 욕심으로 인해 백성을 등졌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이는 현실을 직시하는 ‘정견(正見)’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꿈을 이루고 싶다면 자기가 갈 길을 제대로 바르게 나아가야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초발심을 일으켜 행하면 그게 행복입니다.”

 

 

청강스님은 그러면서 불교 수행의 8가지 올바른 길인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정(正定) 등 ‘팔정도(八正道)’를 강조하셨습니다. 이게 어디 쉽습니까? 그래서 수행이 필요하겠지요. 법당 앞 공중에는 연등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습니다.

 

 

여항산 성불사 비빔밥

 

 

 

 

“절집에서 먹는 비빔밥은 고추장 없이 먹어야 더 맛있어.”

 

 

부처님 오신 날 나누는 공양, 맛있게 먹는 법입니다. 고추장 없이 먹어야 신선한 각 재료의 맛이 그대로 우러난다는 겁니다. 그래도 속세의 입맛에 맞춰 드시고 싶다면 입맛껏 드시는 것도 한 방편입니다. 다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라는 말만 기억하면 됩니다. 하여튼, 공양에는 많은 공양주 보살들의 보리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공양 준비

 

 

과일 공양 준비

 

 

떡 공양 준비 

 

설거지 공양

 

 

부처님께서 살아생전 제자들과 함께 탁발한 음식을 한 톨 남김없이 맛있게 드셨다고 합니다. 왜냐? 때문이 아니라 덕분에…. 이로 보면 음식 나누는 즐거움은 곧 부처되는 지름길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인 자녀들이 싸준 도시락도 열반으로 가는 공덕이지 싶습니다. 모두 성불하시길!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김갑남 신도회 부회장의 절

 

 

나무 석가모니불!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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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업 쌓기를 주저하는 건 왜일까, ‘욕심이…’
얼마나 더 살아야 ‘나’를 사랑하게 될까….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 선문답 여행에서 배운 것

 

 

 

 

 

 

 


 

만남과 대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순간 인생을 바뀐다고 합니다. 대화를 통해 받은 감명이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겠지요. 운명적인 만남이지요. 우리들이 성인 등 선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건 그들이 생을 통해 보여주었던 삶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바람일 것입니다.

 


‘무소유’.


법정스님이 강조하신 삶의 한 방법입니다. 무소유, 제에겐 두 가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첫째, 이처럼 아름다운 삶이 또 있을까. 둘째, 이 같이 살기엔 세상이 너무 힘들다. 왜냐면 무엇이든 가지고 마는 자본주의의 폐해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선업 쌓기를 주저하는 건 왜일까, ‘욕심…’

 

 

요즘 의도하지 않았던 절집으로의 선문답 여행 중입니다. 벚꽃, 진달래꽃 등이 만개해 향기 가득한 봄날은 사람들을 꾀어냈습니다. 봄의 손짓에 화답하듯 지난 주말,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로 향했습니다. 청강스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스님께 한 말씀 청했습니다. 스님께선 ‘인연’과 ‘업’을 화두로 내놓으셨습니다.

 

 

思量作一因  因生更諸果(사양작일인  인생갱제과)
果還造多業  業種分苦樂(과환조다업  업종분고락)

 

생각은 하나의 인연을 만들고
인연은 다시 모든 열매를 낳으며
열매는 되돌아 많은 업을 만드니
업의 씨앗은 괴로움과 즐거움으로 나뉜다!

 

 

불교에서 인연(因緣)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 원인인 인(因)과 간접 원인인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풀이 합니다. “‘나’라는 실제가 없는 무아(無我), 무상(無常)”이라는 겁니다. 무심코 맺은 인연이 열매를 맺고, 인연의 결실이 업으로 돌아온다니 쉬 간과할 일이 아닙니다.

 

 

업(業)은 “사람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선과 악의 소행 또는 전생(前生)의 행동에 의해 현생(現生)에서 받는 선악의 응보(應報)”라고 합니다. 즉, 삶이 즐겁고 행복하려면 악업보다 선업을 지으라는 겁니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선업 쌓기를 주저하는 건 왜일까. 욕심…. 청강스님과 일문일답에 돌입했습니다.

 

 

 

 

 

아름다운 소유란, ‘남에게 쓰기 위해 갖는 것’

 

 

- 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행복도 불행도 모두 스스로 짓는 겁니다. 남 탓이 아닌 내 탓이지요. 나보다 남을 위해 복을 짓고, 겸손한 마음으로 덕을 쌓아야 합니다. 죄악은 탐욕과 성냄 및 어리석음에서 생깁니다. 늘 참고,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방하착이 중요하지요.”

 

 

- 방하착(放下着)은 무엇입니까?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가지라는 겁니다. 마음속에 갖는 온갖 집착, 원망, 스트레스, 갈등 등을 홀가분하게 벗어 던져서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요.”

 

 

- 많이 가진 사람들이 다 가지려고 하는 건 어찌 봐야 합니까?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신만을 위해 무엇인가를 가졌다면, 앞으로 는 아름다운 소유가 되어야 하지요.”

 

 

 

 

- 아름다운 소유란 무엇입니까?


“요즘 빈부의 차가 큽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나누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가졌던 것을, 이제는 모두가 함께 행복하기 위해 가져야 합니다. 아름다운 소유란 내가 쓰기 위함이 아니라 남에게 쓰기 위해 갖는 거지요.”

 

 

- 아름다운 소유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내가 행복하려면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합니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돈을 번 게 아닙니다. 중생에게 받았으니 중생에게 다시 돌려주자는 겁니다. 고마움을 알면 다툼이 없지요.”

 

 

- 무엇을 고마워해야 합니까?


“얼굴 잘난 사람은 못난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못난 사람이 있어서 잘난 사람이 돋보이고 빛나는 것이니까. 이처럼 서로 경계가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돌봐야 합니다. 잘난 사람과 부자 등은 자신이 받은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돌려주는 ‘회향’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더 살아야 ‘나’를 사랑하게 될까….

 

 

충격이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는데, 저도 말과 생각뿐이었나 봅니다. 소유(所有). 그저 욕심(慾心)의 또 다른 말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소유 앞에 ‘아름다운’이 붙는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스님 덕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利己的)’ 소유에서, 남을 위한 ‘이타적(利他的)’ 소유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자본의 ‘소유’가 악업(惡業)이었다면, 앞으로 자본의 소유는 ‘아름다운 소유’, 선업(善業)이어야 합니다. 놀란 가슴 추스르는 사이, 스님께서 시조 한 수 또 읊으셨습니다.

 

 

憎愛與親疎  皆是自作客(증애여친소  개시자작객)
富貴又貧賤  此亦幻中塵(부귀우빈천  차역환중진)

 

미움과 사랑, 원한과 친분도
모두 스스로가 지어낸 길손이며
부하고 가난하고 귀하고 천함도
이 또한 변하는 것 중의 티끌이네

 

 

공(空)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디 그저 공이겠습니까! “부처가 따로 없”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곧 부처”란 게죠.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하는 법. 이로 보면 우리는 살면서 아직 자신을 사랑하지 않나 봅니다. 얼마나 더 살아야 ‘나’를 사랑하게 될까….

 

여행은 ‘무소유’와 ‘아름다운 소유’를 선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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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려놓으면 걸림이 없고, 자유로우며, 분별이 없다!

백중, 목련존자가 아귀도의 어머니를 구하는데서 유래
8월10일, 창원 성불사 백중 49재기도 회향법회 참관기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 백중 49재 화향법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조상님의 극락왕생을 비는 신도들이 모였습니다.

 

 

모든 삶에는 노력과 정성이 스며있습니다. 인연에 따른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더군요.

 

살아갈수록 불가에서 말하는 “삶=고행(苦行)”임을 느끼는 중입니다. 이 고행은 자신이 지은 업(業)으로 인한 것이기에 스스로가 이겨내는 길이 최선임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살이 만만찮습니다. 만만하고 편한 세상살이가 되려면 결국 <나>를 다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가 짓는 것이니, 결코 남을 탓할 일이 아니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덕을 쌓고, 남을 위하는 일로 복을 지을 수밖에.

 

 

삶, 쉽지 않습니다. 모든 죄악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 늘 참고, 적은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허나, 끝없는 욕심 속에서 좌절하고 분노하는 일상의 반복입니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몸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영혼과 육신의 자유를 구하기 위해 경남 창원 성불사에 갔습니다. 지난 8월10일(음력 7월15일) 백중을 맞아 백중 49재기도 회향법회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불사 백중기도는 지난 6월29일 1제를 시작으로 8월10일 회양까지 7회 동안 열렸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일은 모든 일의 출발점입니다.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입니다. 

 

 

 

백중, 목련존자가 아귀도의 어머니를 구하는데서 유래

 

 

“금강경 암송해 줄까?”

 

 

성불사로 가던 중 최명락 교수(전남대 생명공학과)가 차 안에서 의향을 물었습니다. 종종 있었던 일이라 “고맙습니다!”고 했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가 <금강경>에 독송에 몰입했습니다. 금강경이 무한 위로를 주었을까? 금강경을 온전히 담아 암송하는 그의 마음이 평안을 주었을까? 여유로운 기분이었습니다. 다음은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입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時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상이 상이 아님을 바로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 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 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응당 색(물질)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니,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 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해야 한다.”

 

이보현 보살의 극락왕생 춤 공양입니다.

잔을 올리고...

 

 

 

 

오전 9시40분. 성불사에 도착하니 회향 법회는 이미 시작되었더군요. 10여분 늦은 겁니다. 이 늦음은 차 안에서 금강경 독송을 들어야 했던 이유 같기도 합니다.

 

회향 법회는 천수경 독경, 일반 예불, 영가축원카드 낭독, 이보현 불교무용학원장의 영가 극락왕생 춤 공양, 주지 청강 스님 법문, 영가전 공양, 관계 영가님들의 옷 수령과 소각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란분경 등에 따르면, 백중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목련존자가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중제는 살아생전 자기가 지은 업으로 인해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영혼들이 부처님의 법력에 의해 해방되는 날입니다. 하여, 백중에는 절에서 부모 등 조상님 이름으로 음식이나 옷을 지어 올렸다더군요.

 

 

신도들은 저마다 신심으로, 윤회하며 각자 인연을 맺었던 조상과 부모 형제 및 수자영가 등 자신과 직접 인연이 있고 없음을 떠나 구천을 떠도는 모든 영가들이 극락으로 왕생하는 제를 올렸습니다. 두 손 모아 비는 그들의 모습이 열반을 향한 구도자의 아름다움처럼 보였습니다.

 

 

부처님 전에 올립니다! 

 나무아미타불...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의식을 진행 중입니다. 

영가들의 옷을 태우기 위한 의식입니다. 

 

 

 

나를 내려놓으면 걸림이 없고, 자유로우며, 분별이 없다!

 

 

성불사 주지 청강 스님은 이날 법문에서 화두로 “불가(佛家)에서 우주 공간 속에 살아가는 모든 우주만물 삶의 본질을 규정한 세 가지 기본 명제인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삼법인(三法印)”을 꺼내들었습니다.

 

 

“부처님은 ‘제행무상’이라 하여 모든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 역시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제법무아’입니다.

이로 인해 인간 삶은 고통, 즉 ‘일체개고’라고 설파했습니다.”

 

 

인간은 영원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존재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우주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고통마저도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청강 스님이 법문에서 특히 강조한 <제법무아>는 이러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것은 전부가 실체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인연 따라 잠시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때문에 나를 내려놓는 삶은 걸림이 없고, 자유로우며, 분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집과 분노, 소유욕, 어리석음 등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누가 이걸 모르나요. 실천궁행(實踐躬行)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네 삶을 고(苦)라고 했나 봅니다. ‘나’와 ‘너’의 구별이 불평등과 폭력, 행복과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는 인간관계 사이에서 오는 상호 비교가 가져 온 ‘분별’로 인한 고(苦)인 셈입니다.

 

 

 

 청강 스님 법문.

제행무상,제법무아, 일체개고가 뭐냐하면... 

부처님께 비옵니다!!! 

인연이 있든 없던 간에 극락왕생을 빌고... 

 

 

 

세월호 사건과 군 폭력 사망사건은 인간 욕심의 결과

 

 

“원래 인간에게 불행과 병, 고통 등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별이 생기면서 각자의 업에 따라 불행과 병, 고통 등이 뒤따랐습니다.

 

업은 마음에서 오는 것.

착한 마음이 일면 선업이 되고, 욕심이 생기면 악업이 됩니다.

욕심이 생기면 살인, 욕,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고, 화도 냅니다.

그 결과가 세월호 사건과 군 폭력 및 사망 사건 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법회에 참석한 성불사 신도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아는지, 빙그레 웃습니다. 스님께서 세월호 사건과 군 폭력 사망사건을 들먹일 때에는 “그래, 맞아!”라며 인간의 욕심을 타박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악업이 없어지길 바란다면 진심으로 참회해야 합니다.

진심어린 참회가 아니면 일시적으로 악업이 없어졌다가도 다시 나타납니다.

그 업은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자신의 행복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먼저 비는 것이 우선입니다. 항상 ‘나는 행복합니다!’ 라는 자세로 살아야 행복합니다.”

 

 

언제부턴가, 웃는 얼굴과 진실 된 말로 남을 대하기보다 거짓 표정과 삿된 말로 사람을 현혹하는 게 일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지은 선악의 결과는 반드시 스스로가 받게 되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또 업(業)을 짓고 있습니다.

 

 

나를 내려놓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삶은 부단한 정진과 수양이 필요하나 봅니다. 저와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의 행복과 건강을 빕니다.

 

백중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참 가벼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영가들을 위해 지은 옷은 의식 후 불에 태워집니다.

제를 올리고... 

조상님의 은덕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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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절집에 갑니다.


가는 이유는 여럿 있지요.

산행에 갔다가...

차 한 잔 마시려고...

스님이 보고 싶어서...

부처님을 만나려고... 등등



경남 창원 성불사에 갔다가 재미있는 선문답이 있어 소개합니다.







스님 : "종무원장님은 왜 큰스님이라 안하는 겨?"

사회 : "스님이 한 분 밖에 안 계셔서..."



우문현답이었습니다만, 

이 속에는 가르침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한 분인데 어찌 크고 작고가 있겠냐는 거였습니다.

원래 '천상천하 유아독존, 일체개고 오당안지'의 본질을 말하는 거였습니다.




이 답변을 끌어내기까지 몇 개의 관문이 숨어 있었습니다.


첫째, 스님은 '큰스님'이란 친근한 호칭을 통해 신도들의 눈과 귀를 모았습니다.

정신을 집중하는 한 순간에 얻을 수 있는 혜안의 누림을  노렸던 게지요.



둘째, '큰스님'이란 단어 속에서 큼과 작음의 경계를 없앴습니다.

그렇게 부르는 것과 부르지 않는 것의 구분없음을 깨닫기를 바라신 게지요.



셋째, 우리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스님을 어떻게 부르던 간에, 자신이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존재의 의미를 각인시켰습니다.


어쨌든, 


일체 중생의 고를 구제하기 위해 이 땅에 몸을 나투신 부처님을 향탕수로 관욕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향탕수로 관욕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정진>하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모습이 바로 구도자일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죽어 사후 세계로 들어가면 염라대왕을 거쳐 아미타불을 접견하고

이어 관세음보살을 만난다고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피조물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고 하는데

이는 깨달음의 차이가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절집 입구에 큰 사천왕상이 서 있는 건 

사후세계 극락을 보여주는 암시라고 하더군요...



성불하소서!!!





그대 성불 하리로다!!!



부처님의 공덕으로~~~~



청강 큰스님의 기도발이

부처님 전에 정성으로 닿아 

성불사 신도님들이 행복을 누리도록... 



부처시여!

모두 마음을 경건히 하여 

당신에게 귀의합니다~~~



성불사 신도님들

새롭게 돋아나는 신록의 싱그러움처럼

부처님을 향한 사랑이 쑥쑥 자라게 하소서!!!



올 한해 탈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하여 주옵시고...

돈발 끝내주게 받도록 해 주시옵소서!!!!!!! 부처시여~



신도들이 부처님 전에 구름같이 모였나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 법, 승 중의 승이란?



간절한 소망이 부처님 전에...



천상천하 유아독존

일체개고 오당안지...



마음마음 모아

세월호 사고로 가신 

영령의 명복을 빌고 빌었나이다!



엄숙한 마음으로 관욕하시는 신도님!



부디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 가정 행복하게 하소서!!!

이렇게 기특할 수가..............



주지스님의 설법을 경청하는 신도님들.

스님이 영험하긴 헌데, 내게도 그 영험이...



부처님께서

중생들의 염원을 들으시고

그 소원 이루게 하시더라!!!



내 그대들의 바람을  

곧 들어주겠노라!



세존이시여!

어떡하면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겠나이까?



설법하시는 스님이 

신도들을 웃게 하시고...



"내 너희들의 바람을 들어주겠노라.

앞으로 정성을 조금 더 들인다면...."


"부처님~^^ 그러신 법이 어디 있는 겨?"


"떽끼~ 이~~~놈! 자신이 쌓은 업이 하루 아침에 없어진다더냐?"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부처님 전, 정성 끝에 보이는 

청강 큰 스님의 염화미소~~~^^



스님의 염화미소에

화답하는 신도들.

어디 부처가 따로 있답디까!



인간계에서 깨달음이 

극락에서 몇 단계 높은 곳에 오르게 하리라!



"스님, 저희들도 극락에 가신다고요? 감사해요!"

"떽끼~, 그냥이 아니고 정성을 더 들여야. 지극정성이라는 말 들어 봤지? 바로 그거야."



붓도 크기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듯

무릇 중생도 그릇이 있나니....


부처님 전 기도는 그 크기를 키움이더라!



몸은 비록 이 자리에서 헤어지지만

마음은 언제라도 떠나지 마세.


거룩하신 부처님을 항상 모시고

오늘 배운 높은 법문 깊이 새겨서


다음날 반가웁게 한 맘 한 뜻으로

부처님의 성전에 다시 만나세!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그대, 성불 하세요!"



신도들이 밝힌 연등,

부처님이 보살피사...

성불과 극락으로 이끄시네...



부처님의 가피가 천지간에 가득하고...





푸른 솔에 눈서리가 내리면

그 모습 더욱 두드러지고

하늘과 바다가 한 색이 되어

삼천세계를 뒤덮었노라.




사바세계의 중생은 공명을 탐하고 이익을 얻어내는데

일생의 정력을 아끼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



그러나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영혼이 육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에 떨어져

윤회하는 것은 인연으로 지은 업 때문이다.



결국 업보에 의해 생활하고 또 고통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하루 빨리 본래 자기를 깨닫는 길이다.



자기를 깨닫는 방법은...?




- 어떻게 염불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어떻게 해야 가장 빠르게 득도할 수 있습니까?


= "선 정을 모두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심으로 염불하고, 염불참선하면 정도선이 됩니다.

마음으로 염불하는 것과 소리로 하는 염불이 하나가 되면 불성이 저절로 나타납니다.



깨어있는 자는 보살이요,

혼미에 빠져 있는 사람은 중생이라.

불법에는 인연이란 것이 있으니

인연을 만난 사람은 제도가 되는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가다듬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을 떨쳐내자...



공양이 주는 기쁨은...




워~매~~~ 맛난 거...



열심히 정진하면...복이 찾아들지니...



정성을 들이니 웃음이 일고...



낮은대로 임하니...

모든 신도님들, 성불 할 것이요~~~



노고를 치하합니다~~~



법당에서 절하던 이 공주님이 얼마나 예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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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열린 후, 자연을 보는 눈이 다르더이다!
웃음꽃이 수줍은 얼굴 단풍으로 변하더이다!
‘어이~, 동자승아. 죽비 어디 없을꼬?’
창원 성불사 신도들과가을 단풍 산행에서 배운 것

 

 

 

 

 

 

 

 

 

 

“차가 왜 이리 막히지?”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더이다.

‘단풍’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더이다.

도로가 짜증 날 정도이더이다.

 

짜증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는 마음이 아니더이다.

단풍 구경. 이는 잠시 자연을 잊고 지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더이다.

 

 

“단풍 보러 갈까?”

 

 

단풍 구경은 정해진 시간 속에 잠시의 움직임.

이 시간 요긴하게 쓰는 게 최선이더이다.

 

산 중에서 익어가는 감이 여유를 주더이다.

이렇게  낙남정맥 중 경남 창원과 함안을 아우른 여항산 단풍 나들이를 갔더이다.

 

 

여항산에 퍼질러 앉으려는 단풍이 나그네에게 세 가지 마음 준비를 요구하더이다.

창원 성불사 신도들 착착 마음 준비를 하더이다.

 

산행 길 입구에서의 단체사진이 그것이더이다.

사진 찍을 때의 우왕좌왕과 긴장, 그리고 올바른 몸가짐은 단풍에 요구에 부응하는 몸짓이더이다.

 

 

 

 

 

 

 

가을 단풍이 나그네에게 요구한 세 가지는?

 

 

첫째, 자연에 귀의할 마음가짐이더이다.

마음이 열려야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더이다.

 

둘째, 자연을 보는 눈이더이다.

자기 방식대로 감상하지 말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보는 무위자연을 요구하더이다.

 

셋째, 자신을 되돌아보라 하더이다.

지나 온 과거를 잊지 말고, 과거에서  배움을 구해 현재와 미래의 삶을 영위하라 하더이다.

 

 

가을 단풍이 나그네에게 요구한 세 가지 방법에 따라 산을 올랐더이다.

그랬더니 나그네가 되더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름에 있어 ‘헉헉’거림은 고단한 육신이 내뱉는 뱃고동 소리로 들리더이다.

항구에 도착을 알리는 굵은 저음의 뱃고동 소리는 마음이 열렸음을 의미하더이다.

 

 

 

 

 

 

 

 

마음이 열린 후, 자연을 보는 눈이 다르더이다!

 

 

스님 : “‘불이(不二)’는 뭔고?”
나그네 : “제 아호(雅號)입니다.”

 

스님 : “유일무이(唯一無二)의 무이(無二)도 있는데 왜 부리(不二)로 했을꼬?”
나그네 : “무리(無二)보다 부리(不二)가 좀 더 깊음이 있는 것 같아서요.”

 

스님 : “둘이 아니지만 하나란 의미도 아니야.”
나그네 : “그래도 하나지요.”

 

스님 : “…?”
나그네 : “…!”

 

 

 

 

 

 

 

 

산에 오르자 운해가 피었더이다.

경치가 감탄을 자아내더이다.

 

마음이 열리니 자연을 보는 눈이 정말 다르더이다.

지하세계와 인간계, 천상계 구분이 생기더이다.

세상을 이 삼계로 나누자 구름이 걸린 산봉우리가 산 중의 섬처럼 보이더이다.

 

 

바다 위의 섬이나 운해 위의 섬이나 무에 다를까마는.

섬과 산봉우리는 본디 하나였더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아귀다툼에 몰두하는 바람에 이를 잊고 있었더이다.

천상계와 인간계, 지하세계가 하나일진대 그걸 지나치고 있었더이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피안은 나그네에게 삶의 지혜를 안겨 주더이다.

 

그제야 웃음이 피어나더이다.

 

 

 

 

 

 

 

 

웃음꽃이 수줍은 얼굴 단풍으로 변하더이다!

 

 

가져 온 음식들을 공터에서 펼쳤더이다.

저 마다 솜씨를 발휘한 음식을 공양했더이다.

배려와 나눔의 장터이더이다.

 

맛있는 공양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나눠 주신 진리의 법문으로 씹히더이다.

그 씹힘이 어찌나 달달하던지 놀랍더이다.

 

 

 

“보증 때문에 재산 차압당하고 쫄딱 망해 너무 힘들게 살았어요.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술집까지 했으니 말 다했죠.

어떤 사람은 이런 일 할 것 같지 않은데 왜 이 일 하냐고 묻기도 했고요.

그 고충을 어찌 말로 다할까. 아이 셋 대학 보내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살만해요. 힘들 때 스님이 중심을 많이 잡아주셨어요.”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는 그녀의 얼굴에 점차 웃음꽃이 피더이다.

웃음꽃은 홍조로 변해 수줍은 얼굴 단풍으로 변하더이다.

 

그 모습이 자연 단풍보다 더 예쁘더이다. 이 어이 보살이 아니리오!

 

 

 

 

 

 

 

“사진 찍는 표정이 왜 그래요. 내 남편 보듬는다 생각 말고, 마음에 그리던 정든 님 보듬는다 생각하세요.”

 

 

그제야 여인네들 입과 얼굴에서 “호호호~” 웃음이 피어나더이다.

부부,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꼬.

 

그렇지만 현실은 정든 님 어디가고, 웬수만 남았을까.

이래서 산에 오르는 길은 수행 길이더이다.

 

 

 

 

 

 

 

 

 

‘어이~, 동자승아. 죽비 어디 없을꼬?’

 

 

 

“스님, 뭐하세요.”
“니는 보믄 모르나?”

 

 

봐도 보이지 않는 게 중생의 길. 그래서 스님을 따르는 것.

단풍 구경 온 중생들이 버린 마음 속 쓰레기를 줍고 계시더이다.

 

쯔쯔쯔쯔~, 가련한 중생의 길은 언제나 끝날꼬.

 

 

 

 

 

 

 

스님, 내려오던 길에 자작 시조 한 수 읊더이다.

웃음이 배시시 묻은 얼굴에서 승무의 춤사위처럼 나오는 목소리 하나하나가 단풍을 뚝뚝 물들이는 청음의 워낭소리로 들리더이다.

 

 

 

       단 풍


                                  청강스님

 

가을 산 단풍 빛이 몹시도 아름다워
오르는 사람마다 탄성이 잦다마는
아소서, 저들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해학이 덕지덕지 묻어나더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

스님에겐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생에겐 가당찮은 깨달음이더이다.

 

 

‘어이~, 동자승아. 어디 죽비 없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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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왔니? 이리 와 친구 되어 줄게!’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그래도 그림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둑길은 추억의 길이었다.

 

 

 

아침 산책이 주는 맛은 정적이라는 겁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하루를 살아가야 할 준비, 뭐 그런 거지요.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조심스레 다급하게) “이거 보셨어요?”
(웬 호들갑 하며~) “뭘요?”


(아쉬운 목소리로) “제 얼굴에 앉은 잠자리요. 에이~, 날아갔네.”
(부럽다는 듯) “잠자리가 얼굴에 앉다니 자연이네요.”

 

 

주남저수지 인근에서 창원 단감을 팔고 있었다. 

주남저수지는 생명의 원천이었다.

 

 

그랬다. 주남저수지 인근의 창원 단감의 달달한 향에 미친 잠자리였을까?

아님, 창원 단감 맛에 빠져 정신없던 잠자리였을까?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날개를 터득이던 잠자리였다.

잠자리가 내 뺨에 앉다니…. 무척 황홀했다.

 

주남저수지를 같이 걸었던 지인이 잠자리와 친구 된 모습을 보았다면 날 어설픈 도인쯤으로 여겼을까? ㅋㅋ~^^

 

 

‘잠자리가 왜 내 뺨에 앉았을까?’

 

 

개의치 않았다.

주남저수지에 그저 잠자리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대만족이었다.

잠자리가 찾아든 이유가 있었다.

 

잠시 접고 추억 속으로 빠져 보자.

대학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5~6년 전, 나비와 친구 된 적이 있었다.

이때의 감흥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시관도 보이고... 

주남저수지 흙길이 인상적이었다. 

주남저수지는 세계로 통화는 통로였다.

 

 

해가 뉘엿뉘엿 산자락을 넘을 무렵, 방으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갈 길 잃은 나비임이 분명했다. 왜 그랬을까.

 

나비를 보자, 장자의 나비의 꿈(호접지몽 胡蝶之夢)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당찮게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세상을 즐겼지만 난 현실에서 나비가 되어 놀아 보자’란 생각을 했다.

 

 

나비는 방 안 창문틀 주변을 날면서 쉴 곳을 찾고 있었다.

호흡을 골랐다. 잡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나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생각이 집중되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우주와 하나, 물아일체 속으로 빠져 들었다.

 

 

‘길을 잃었니? 외로워서 왔니? 이리 와 친구 되어 줄게!’

 

 

몇 번이나 텔레파시를 보낸 후에야 나비가 움직였다.

나비의 날개 짓이 유유자적 허공을 가르는 온화한 천사의 비행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나비는 쉬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비가 멈춘 곳은 내 머리 위에 있던 옷걸이였다.

나비는 ‘저 인간에게 가도 안전할까?’ 탐색 중이었다.

큰 숨을 내 쉰 후, 호흡을 멈추었다. 그러자 나비가 내 어깨에 와 앉았다.

 

 

손바닥을 폈다. 나비가 사뿐히 손 위에 앉았다.

 

감동이었다. 묵언. 나비에게 작별을 고하며 갈 길을 일러 주었다.

나비가 방안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이때까지 걸린 현실 속에서의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정신세계에선 찰나요, 영겁의 시간이었겠지만….

 

 

이 사건 후, 자연과 하나 될 틈이 없었다.

다만 하나 되려는 노력은 간간히 했었다.

그러나 진정성은 찾기 어려웠고, 마음뿐이었다.

 

세상에 물든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비와 나눈 무언의 대화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생명, 그 신비함은... 

추억이 새록새록 솟게하는 코스모스 피어난 둑길. 

사진은 그대로 추억으로 남는다.

 

 

 

그랬는데, 잠자리가 날아든 것이다.

주남저수지에서. 나는 마음을 열지 못했었다.

다만, 주남저수지 초입에서 본 볼품(?)없는 홍시에 넋이 빠져 있었을 뿐.

 

그러니까 잠자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날아 든 것이다.

그것도 주남저수지 둑길을 걷으며 새 무리에 날개 짓에 눈길을 주던 참에.

이렇듯 생명들은 앉을 곳을 쉼 없이 찾아 나선다.

 

 

지난 2일, 주남저수지에는 연꽃, 갈대, 억새가 어우러져 있었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둑길엔 가을이 차분히 앉아 있었다.

 

해가 생산한 영양분을 마음껏 먹으며 철새와 텃새, 잠자리, 메뚜기 등이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남자가 새들의 날개 짓을 이정표 삼아 묵묵히 폐달을 밞고 있었다.

 

 

어디 쯤 일까?

주남저수지 둑길에 TV가 버려져 있었다.

주남저수지는 이마저 품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했다.

 

제목,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됩니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땅에 앉았다.

고추잠자리의 빨간 색이 자연의 평화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주남저수지는 이마저 그림으로 만들었다.

 

 

 

철새와 사람 등 뭇 생명이 주남저수지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모두 하나 되기 위함이다.

생명의 터전을 빼앗긴 영혼들이 생명을 이어가려는 처절한 몸짓.

 

그렇지만 인간은 점점 생명의 터전을 밀어내려 하고 있다.

그 어리석음은 후세가 고스란히 넘겨받을 터.

자본주의에 물든 인간의 아둔함은 이를 망각하고 있다.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잠자리가 내 뺨에 앉은 건, 자본주의에 보내는 무언의 경고였다!

 

 

잠자리 땅 위에 앉았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새들의 날개짓이 살아 있는 주남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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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등 지인과 함께 한 마산 적석산 등반기
“저렇게 편한 얼굴로 살면 얼마나 좋겠어!” 

 

 

 

적석산에서 본 풍경입니다.

적석산 입구 저수지입니다.

적석산 초입입니다.

산행은 땀을 빼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저질 체력의 한계를 넘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한 게 산행입니다.

가능한 일주일에 한 차례는 꼭 오르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낭패의 끝은 저질 체력뿐임을 뻔히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창원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성불사 청강스님 등 지인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스님이 반가운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산에 갈까?”

 

 

너무나 반가운 소리라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렇잖아도 산행 하면 좋겠다는 생각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룰루랄라~, 산행 길에 나섰습니다. 스님께서 중간에 한 보살을 태웠습니다.

 

 

“김밥 샀어?”
“예. 넉넉히 샀습니다.”

 

 

오전임에도 차량과 사람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창원 적석산은 도심과 가깝고 짧은 시간에 등산이 가능하고 땀까지 쭉 뺄 수 있어 사람들이 몰린다고 합니다.

 

여섯 명이 적석산 입구에서 칡즙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 후 산에 올랐습니다.

 

 

중턱에서 본 자연 풍경입니다.

이런 풍광을 즐기는 것 또한 산행의 묘미입니다.

적석산 구름다리입니다.

정상에서 아이스크림을 문 일행입니다.

 

 

산행 길에서 가장 우스운 질문은 무엇일까?

 

 

“적석산은 왼쪽으로 오르면 가파르고 오른쪽은 여유롭게 오를 수 있어.”

 

저질 체력을 간파한 스님께서 손쉬운 길을 택했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적석산의 맑은 공기가 폐로 들어가자 심장박동이 경쾌합니다.

새들의 지저귐이 상쾌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편안한 산행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그렇다고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정상까지 얼마나 가야 하죠?”

 

 

스님께 질문하고 아차 싶었습니다. 산행에서 가장 우스운 질문입니다.

답은 뻔합니다. 

 

“조금만 가면 돼. 다 왔어”

“5분만 오르면 돼”

 

라는 두 가지가 대부분입니다.

 

스님께서 배시시 웃으시며 역시 “조금만 가면 돼”라고 합니다.

이처럼 속으면서 오르는 게 산행길입니다.

 

적석산(497m)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경남 고성군 화화면에 걸쳐 있습니다.

적석산은 이름대로 평평한 바위들을 쌓아 올린 바위산입니다.

'쌓을 적(積)' 자를 써서 '적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2005년 세운 구름다리, 일명 출렁다리가 눈길을 끕니다.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사는 게 힘들어요.…”

 

 

산행 길에서는 삶에 대한 이야기도 술술 나옵니다.

삶이 편안하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등산길처럼 삶도 굴곡이 있어야 사는 맛이 있는 이치입니다.

 

 

땀의 의미는...

산행은 삶을 돌아보는 길입니다.

30년 지기, 우정 영원하길...

 

 

“저렇게 편한 얼굴로 살면 얼마나 좋겠어!” 

 

정상 인근에 다다르자 아이스크림으로 갈증을 푸는 등산객들이 눈에 띱니다.

 

“정상에 아이스께끼 장사가 있다”며 친절하게 가격까지 “1,500원”이라고 알려줍니다. 땀 흘린 후 먹는 아이스크림 맛은 먹어본 사람들만 알겠죠?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남들이 먹는 걸 보니 입맛이 당기나 봅니다. 1시간여 만에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질펀하게 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어느 새 지인이 아이스크림을 건넵니다.

평상 시 같으면 먹지 않을 텐데, 산 정상이라 받아들어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꿀맛입니다.

 

소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김밥과 떡, 막걸리, 등산객이 건네 준 감 등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배가 부르니 생각이 한결 여유롭습니다. 청강스님이 한 마디 합니다.

 

 

“땀 흘린 사람들 표정 좀 봐. 산에서는 저렇게 편안하고 자비로운데, 세상에서는 왜 그리 인상을 쓰고 사는지…. 저렇게 편한 얼굴로 살면 얼마나 좋겠어.” 

 

 

그렇습니다. 편안한 표정으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삶이 편하지 않으니 얼굴에 수심이 끼는 거겠지요.

 

산행 길은 근심 걱정을 잊기 위함 아니겠어요?

 

 

풍경이 아름답더군요.

좁은 바위 틈 사이길이 지루함을 덜었습니다.

단풍이 들면 더 멋있을 듯합니다.

정상에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꽤 가파랐습니다. 다리가 후덜덜~^^

적석산 산행에 함께 한 일행입니다.

엥 코뿔소를 닮은 나무입니다.

요게 코불소를 닮았다네요~^^

돌을 쌓은 듯하다며 지은 적석산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적석산에서 본 다도해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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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래에게 “바디페인팅은 첫사랑 같은 것”
[창원 볼거리] 창동 문화예술촌 둘러보기

 

 

 

행위예술가 배달래 씨가 모델에게 바디페인팅을 시도하고 있다. 

 배달래의 바디페인팅. 흰 벽면과 바닥, 그들의 몸에 색들이 더해져 예술로 승화되었다. 

 
바디페인팅 퍼포먼스는 이렇게 관객과 하나되었다.  
 


"어~, 이런 예술도 있었네."

그랬다. 문화충격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예술 세계를 경험한다는 건 행운이었다.

지난 21, 22일 <경남도민일보>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주관하고 창원시가 후원한 '2012 창원 창동예술촌 블로거 팸투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바디페인팅 공연이었다. 이 생소하고 낯선 공연은 감동이었다.

바디페인팅 매력에 빠져들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공연 시작 전, 무대 바닥과 벽면에 흰 천이 걸리고, 그 앞에 페인트 통이 놓이고, 음악이 잔잔하게 깔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건 또 뭐야?"란 의문 속에 있었다.

관객 앞으로 빗자루를 든 작가가 조명 빛 아래 나타났다.

작가는 절제된 움직임으로 벽면의 하얀 천(순수한 영혼)에 빗자루(붓)로 그림을 그려댔다. 어떤 주제의 그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맨 몸의 남녀 모델이 등장했다.

작가는 흰 천과 그들의 몸에 손으로 물감을 덧칠하고, 뿌려댔다.

그들의 몸짓은 자연을 향한 교감이요, 절규였다.

또한 자연이기를 거부한 인간, 자연 파괴를 일삼는 인간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숨 쉴 수가 없었다. 1시간 여 간의 바디페인팅 공연이 끝나자 박수가 절로 터졌다.

 

작가와 바디페인팅에 대한 궁금증이 치솟았다.

 

 

 배달래의 퍼포먼스는 사회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었다.  
 

배달래. 이렇게 순박한 그녀가 강렬한 퍼포먼스를 표현하디니 놀라웠다. 

바디페인팅은 생명력의 표현이었다. 

 

 


행위예술가 배달래 "바디페인팅은 첫사랑 같은 것"


"바디페인팅은 첫사랑 같은 것이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온몸의 힘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 없기에 지워져야만 하는 순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배달래. 그녀에게 바디페인팅은 달콤하지만 씁쓸한 이별을 경험해야 하는 추억 속의 '첫사랑'이었다.

 

그래 설까, 그녀는 바디페인팅에 임하는 자세를 이렇게 소개했다.

"새로운 것에 아쉬워, 그리워 숨 쉬는 피부위에 살아 움직이는 근육위에 내가 사랑하는 색들을 올려놓는다. 그 색들이 꽃이 되고 나비가 되어 몸 위에서 움직일 때면 아름답고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바디페인팅은 움직이는 그림이자, 음악 흐름에 따라 흐르는 선과 색 자체였다.

바디페인팅을 행하는 배달래는 자연의 색으로 치장하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고자 하는 색과 자연의 마술사이기도 했다.

그녀는 적어도 화폭 앞에 서서 자신의 삶에 녹아 있는 모든 흔적과 사회체제 속에 가두어 둘 수밖에 없었던 모든 욕망, 사랑, 분노 등 모순과 부조리를 마음껏 토하며,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절감하는 왜소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렇게 창동예술촌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배달래가 온몸으로 그려낸 선과 색은 꽃이 되고 나비가 되었다. 

환한 웃음이 수줍은 배달래.

바디페인팅은 자연과의 조화였다.   

배달래 퍼포먼스가 끝나자 박수가 절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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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5 의거’와 ‘부마민주항쟁’ 혼이 깃든 창동
민주화 성지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창동’

 

 

 

마산 창동은 지금 축제 중입니다.

 

 

팔월 한가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적게는 3일에서 많게는 9일 간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연휴동안 휴가 떠날 분들은 대부분 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귀성객들은 아직 어딜 갈까? 막연하실 겁니다.

 

이럴 때 가족들과 나들이 할 수 있는 한 곳을 권합니다.

경상도 인근이라면 창원의 창동 예술촌을 강력 추천합니다.

 

마산 창동 예술촌 인근은 지난 22~23일, <경남도민일보>의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주관한 1박2일 투어에서 훑듯이 둘러보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습니다.

 

창동 예술촌은 회화, 도예, 조각, 공예, 사진 등 각 방면의 작가들을 모아 일반인들에게 체험과 작품 감상을 오픈한 열린 공간입니다.

 

취향에 따라 맞춤형 배움이 가능하니 자녀들의 재능 발굴을 원하신다면 이곳에서 체험하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창동 예술촌은 한 때 서울의 명동처럼 경남 최대의 상권으로 불렸던 거리였습니다.

 

이곳은 아구찜의 본 고장임을 자랑하는 ‘아구찜의 거리’에서 원조의 맛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통술, 활어회, 복어 요리까지 어울려 있습니다.

 

 

"저 잘하지요?" 예술가들이 직접 체험지도에 나섰습니다.

창동 예술촌 거리 벽화입니다. 

조각가 하석원 씨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ㆍ15 의거’와 ‘부마민주항쟁’ 혼이 깃든 창동

 

특히 창동 인근은 최근 역사 인식 관계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급기야 국민에게 사과까지 해야 했던 ‘3ㆍ15 마산의거’와 유신체제에 항거한 ‘부마민주항쟁’이란 국민의 자존심이 고스란히 남아 우리나라 민주성지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곳입니다.

 

잠시, ‘3ㆍ15 마산의거’와 ‘부마민주항쟁’을 살펴보겠습니다.

 

3ㆍ15 의거는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항하여 분연히 일어나 4ㆍ19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던, 근대 우리나라 민주화의 시발점이 된 곳입니다.

 

하지만 3ㆍ15 의거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입에 재갈이 물리고 침묵을 강요당하면서 그 정신이 폄하, 무시당한 질곡의 공간이자 유배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3ㆍ15의 고귀한 정신을 당당히 되돌려 놓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무일 것입니다.

 

 

마산 창동이 ‘3ㆍ15 의거’ 발원지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마산 창동이 민주화의 성지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민주화 항쟁에 참여했던 김용택 선생님(좌)이 과거를 떠올리며 웃고 있습니다.

 

 

 

 

민주화 성지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창동’

 

부마민주항쟁은 서슬 퍼런 긴급조치시대였던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의 민중들이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항거하여 급기야 10ㆍ26 사태와 유신정권을 몰락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항쟁입니다.

 

당시 마산의 민중들은 창동 일원에 모여 민주화를 외쳤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은 1980년대 광주항쟁과 6월 항쟁이라는 대규모 반독재 민주항쟁의 도래를 예고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창동이 민주화의 성지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곳에는 민주화를 알리는 표지석만 달랑 서 있을 뿐 숭고한 정신을 되살리고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여건이 전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창동의 역사와 더불어 예술가들의 혼을 살펴보는 것도 알찬 추석 연휴를 즐기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거 잘하네. 나도 함 해볼까."

민주화 노력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동 예술촌 거리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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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8 16:40 신고
  2.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3.10.09 22:04
  3. 문가영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이 포스트에 사용된 사진을 좀 쓰고 싶습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원본 파일을 메일로 좀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eyestarr@naver.com 제메일 남기고 갑니다. 부탁드립니다.

    2013.10.09 22:04 신고

공무원의 산 가꾸기 지혜가 돋보인 ‘모산재’
모산재에서 바라본 기막힌 풍경, 가야산은?

 

 

 

 경남 합천 모산재 소나무는 예술이었습니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했지, 요렇게 하면 좋았을 텐데….”

 

여행 다니다 보면, 만족보다 불만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예산을 집행하는 분 입장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서 사업을 진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입니다.

 

또한 조금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예산 낭비 비판에서 자유로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지난 15~16일, 경남 합천이 초청하고 경남도민일보의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주관한 1박2일 블로거 팸 투어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합천 어느 공무원의 지혜를 보았습니다.

현장에서 “참 잘했다”고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남 합천 모산재를 올랐습니다.

신선한 공기가 가슴 속까지 맑게 만들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가파른 비탈 계단을 오른 후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습니다.

바위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땀을 식혀 주었습니다.

 

그제야 멋진 소나무 자태가 보였습니다.

 

 이렇게 멋진 모산재 소나무들에게 반했습니다.

그저 자연 속 소나무로 알았습니다. 

소나무 하나하나에 감탄이 흘러나왔습니다.

 

어느 공무원의 아이디어가 빛난 소나무에 반하다

 

모산재 주변 풍경과 소나무 모습에 감탄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합천군 관광개발사업단 공기택 씨가 반기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 소나무들은 정원사가 예쁘게 가꾸는 소나무들입니다. 등산객들에게 소나무를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 위함입니다.” 

 

등산객 배려 차원에서 소나무를 가꾼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였다면 ‘거 괜찮네’ 하고 말았을 겁니다.

 

한 발 더 나아갔더니 산 가꾸기를 위한 합천 공무원의 지혜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 소나무들을 돌보는 예산은 얼마나 되나요?
“예산은 따로 없습니다.”

 

- 그럼 어떻게 소나무를 가꾼다는 거죠?
“다른 사업에 나무 관리를 덤으로 넣어서 합니다. 경남에서 유명한 정원사가 저기 저 소나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예산을 아끼면서 산천도 가꾸는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가 빛났습니다.

이런 공무원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소나무들이 달리 보였습니다.

 

이런 노력이 미래 합천을 돋보이게 할 작은 밀알이 될 것이라는 예감입니다.

 

 

 바위에 걸터앉은 소나무.

하늘 빛이 어떻든, 소나무는 고고했습니다.  

거대한 바위가 등산길이었습니다. 소나무는 연주소리 같았습니다.
 

 

모산재에서 바라본 기막힌 풍경, 가야산은?

 

예언서 <정감록>은 가야산 자락을 조씨의 천년 도읍지로 꼽고 있습니다.

물론 2천년 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게 현실로 다가 올 것인가? 예언에 그칠 것인가? 라는 건 그닥 중요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천년 도읍지로 가야산을 꼽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하나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서려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물론 역사에서 경험했듯, 기존 기득권 세력을 물리치기 위한 방편으로 도읍지를 옮겨,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 청사를 세종시로 옮기고자 계획했던 노무현 정권의 셈법도 미래를 내다본 혜안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정감록에서 예언했던 “정씨의 천년 도읍지 계룡산”을 실현시키기 위한 몸부림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정감록까지 끌어 들여 허튼소리를 하는 이유는 뭘까?

 

경남 합천 모산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기막히게 멋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야산 자락인 모산재 풍경이 이 정도인데, 가야산에서 보는 풍경은 보나마나 좋을까? 란 생각이 듭니다.

 

감히 모산재 오르기를 권합니다.

 

 

 소나무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모산재와 어울린 주변 풍경입니다.

이런 소나무를 보자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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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재가 던진 저질 체력에 대한 자연의 계시
아리랑 고개 넘듯 살랑살랑 넘어가는 여유 길

 

 

길. 그 의미는 무엇일까?

 

 

길….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내는 살면서 "남자들은 철이 없다니깐…"이란 말을 넘어 간혹 이렇게 확인했다.

"당신이 철없을 걸 알고 아버님께서 이름에 '철'자를 붙였나 봐요. '현철'이라고…."

그러니까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철든 사람'을 의미한다. 어느 새 오십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할 세월 앞에서 더욱 더 진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난 주말, 경남 합천이 초청하고 경남도민일보의 갱상도문화공동체가 주관한 1박2일 블로거 팸 투어가 있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모산재였다.

모산재를 오르내리는 '산행 길'은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사람이 되어라'고.

 


모산재가 던진 저질 체력에 대한 자연의 계시

 

경남 합천 모산재 산행 길 초입의 안내판이 해학스러웠다. 

모산재 산행길은 가파름의 연속이었다. 

돌 중간중간 가파름을 잇는 계단은 자연과의 교감 통로였다.

 

 

지난 주말, 우리나라를 향해 북상 중이었던 제 16호 태풍 산바 전야의 하늘은 찌푸렸다.

 

하지만 모산재로 오르는 초입 등산로는 귀여웠다.

나무로 만든 길 안내판이 해학적이었다.

 

게다가 등산객의 목마름을 짧은 순간에 해소시켜 줄 포장마차까지 있어 운치까지 넘쳤다.



"모산재 오르는 길 장난 아닙니다."


안내인은 겁을 잔뜩 주었다.

역시나 길은 시작부터 밧줄이 매달린 돌로 넘쳐났다.

가파른 계단까지 있었다. 자연스레 헉헉 댔다.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 한 저질 체력이 원인이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하라는 자연의 계시이기도 했다.

 


아리랑 고개 넘든 살랑살랑 넘어가는 여유로운 길

 

여느 산행길처럼 편안한 길도 있었다. 

 절벽을 대신해 오른 계단은 저질 체력을 꺼침없이 질타했다.

산행길 건너편에서 본 절벽 사이의 계단 길은 멋스러웠다.

 

 

산행 길은 흙길과 돌길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로 인해 지루함이 줄었다. 그 길은 뜻하지 않게 자신감을 선사했다.

 

그러자 모산재가 새롭게 보였다.

나무도 다양했다. 야생화도 피었다. 어느 새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모산재 산행 길은 힘든 것 같으면서도 아리랑 고개 넘든 살랑살랑 넘어가는 여유로운 길 같아요."

 


앞서가던 일행의 모산재 길에 대한 평이었다.

듣고 나니 덩달아 몸도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웠다.

 

바위는 앉아 쉴 의자가 되었다.

바람은 쌓인 마음을 수다로 비워 낼 친구가 되었다.

땀은 자연과 하나 되는 도구였다.

 

모산재 산행 길은 세파에 찌든 인간을 자연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스승이었다. 산행 길은 이런 맛….

 

모산재는 암벽 자체가 길이 되기도 했다.

소나무 사이로 드러난 황토 길이 운치를 더했다. 

우린 이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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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둘러보기] 경남 창원 성불사 점안식
 

점안식 전 가려진 불상과 후불탱화.

 

 

불상은 만들면 그저 불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불상도 의식을 통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태 기독교 신앙을 가졌던 지라 불교에는 관심이 없어 마음으로 보지 못한 탓입니다.

그저 우리네 문화인 것을….

 


점안식이 있던 일요일 새벽예불 모습입니다.

점안식에서 혜안 등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성불사는 지금은 달랑 가건물 한채였습니다만...

 

불상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부처로 탄생시키는 ‘점안식’을 가게 된 건 스님을 지인으로 둔 때문이었습니다.

청강 스님. 그는 해인사, 통도사, 무위사 등을 거쳐 새로운 절집을 창건하는 불사를 진행 중입니다.

점안식(點眼式)은 말 그대로 불상을 조각하거나 그린 다음 불상의 눈에 붓으로 동자를 찍는 의식을 말하며, 개안식이라고도 합니다.

새로 조성한 불상 등에 경전과 다라니 등의 복장을 넣고 나면 불상의 조성은 일단 완성됩니다.

점안식은 여기에 공양 등의 의식을 통해 부처의 영을 맞이하는 개안 의식입니다.
이는 부처가 가진 32상과 80종호의 장엄이 나타나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눈을 그리기 전에 불상의 눈이 육안ㆍ천안ㆍ혜안ㆍ법안ㆍ불안ㆍ십안 등의 성취를 기원하고 신비력의 효험 등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라밀예술단의 지우스님과 시용스님이 점안의식 중입니다.

점안의식. 

드디어 불상을 덮었던 가리개가 벗겨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화답하고 있습니다. 

법문 중인 해인사 도흥스님.

불상과 탱화를 감싸던 천들이 걷혀진 모습. 

신심을 얻기 위한 마음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상대방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합니다.

또한 자기 마음대로 상대방을 ‘옳다’, ‘그르다’, ‘예쁘다’, ‘밉다’ 등으로 단정 짓고 맙니다.

 

이러한 인간의 분별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행위가 점안식일 것입니다.

 

청강 스님을 만나기 이전까지만 해도 송광사, 선암사, 향일암, 문수사, 화엄사, 강천사, 쌍계사, 표충사, 만어사, 해인사, 운문사 등 남녘에서 비교적 크다고 알려진 절집만 다녔습니다.

 

하여, 새로운 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문외한이었습니다.

 

 

 점안식이 끝이나자 복을 기원합니다.

 물을 뿌려 효엄을 나누고 있습니다.

 점안 불공 중인 청강스님.

류지영국악원 원장과 문하생의 회심곡 공연입니다.

은송무용학원 김태순 원장 일행의 진혼무, 살풀이 공연도 있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인연 공덕으로 인해 창건 중인 절집 ‘성불사’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룻밤을 묵고 일요일 점안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절집 창건은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원효대사 등 큰 스님들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부처에 대한 가득한 열정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불사는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절집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랑 가건물 한 채만을 지어놓은 상태입니다. 차츰 절집으로 위용을 갖추겠지요.

불교에 귀의한 그가 신도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할 업보(?)요, 공덕인 셈입니다.

성불사에 갔더니 불상과 보살, 탱화 등이 천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가려진 천은 점안식이 끝난 후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점안식은 개회사, 삼귀의례, 반야심경 낭송, 찬불가, 발원문, 인사말, 봉축사, 법문, 살풀이, 산회가, 폐회, 점안 불공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점안식에는 아이도 참여했더군요.

부처가 걸었던 정법의 길을 그리는 사람들.

 

점안 법회는 우리들 가슴속에 부처님을 닮고자 하는 서원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특히 고통 속에 소외받는 이웃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나누고자 합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수많은 이들이 반목과 질시, 전쟁과 테러로 무지의 늪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생을 정법의 길로 인도하시길 바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모두들 성불하시길….



점안식 후 생명력을 받은 부처님 등 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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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phism-travel.tistory.com BlogIcon 무념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점안식이란 것이 있었군요~ 좋은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

    2011.11.08 14:07 신고

씨 없는 감, 청도 반시가 주는 즐거움

 

 

외갓집을 떠올리면 늘 웃음이 살며시 피어날 정도로 행복합니다. 
어릴 적 외가에는 이맘 때 쯤 언제나 감나무에 홍시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감 열린 모습을 보시며 그러셨지요.

“감 열린 풍경이 아주 예쁘지?”

그러면 저는 외할아버지께 심통을 부렸습니다.

“할아버지, 저 감 따주세요!”

그러면 외할아버지께선 긴 막대기를 가져와 감 하나를 뚝 따 손으로 살짝 문질러 주시면서 정겹게 말씀하셨지요.

“맛있게 먹어라!”

그러고선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셨지요.
또한 겨울철에 “옛다. 먹어라!”라고 내주시던 홍시 맛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습니다.
왜 그땐 감 열린 풍경의 아름다운 정취를 몰랐을까?
물론 어려서 그랬겠지요.

훗날 따먹는 감보다 주렁주렁 달린 감 익는 풍경이 더욱 정겹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외갓집이 그립나 봅니다.

 


청도 반시가 이렇게 제품으로 변신했습니다.

감은 들판에도 천지삐까리로 많더군요.

한 입 베어 문 반시. 

 

지난 달 경북 청도에 갔습니다. 
여기서 외가 풍경보다 더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나게 될 줄이야!
이리 봐도 감, 저리 봐도 감이었습니다.

이 풍경은 마치 자고 일어나니 천지가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감이 이렇게 많다니,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감은 집 안 조경수에도, 산자락에도, 밭에도, 가로수에도 주홍빛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려 웃고 있었습니다.

감 천지인 청도는 무릉도원, 그 자체였습니다. 

 


돌담과 어울린 감.

감 유용한 데가 많더군요.

천지에 널린 감 익는 풍경, 그림이더군요. 

 

특이한 점은 청도 홍시는 전국 유일의 씨 없는 감으로, ‘반시’라 부르더군요.
이유는 청도 감들이 쟁반 같은 모양이라서 그런다나요.

청도 반시가 ‘씨 없는 감’으로 유명한 건 “분지인 청도는 인근 지역의 공해를 산이 병풍처럼 막아줘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기 때문이다”네요.

청도 반시, 먹어보니 거의 씨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간혹 씨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감 고부가가치화클러스터사업단의 예정수 단장은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토질이나 환경이 나쁠 때 식물들이 꽃을 피워 종족 보존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의 본능으로 용불용설로 설명할 수 있다.”

추억과 가을의 정취를 한꺼번에 느끼는 방법으로 경북 청도 운문사와 감 익는 풍경을 보는 것도 아주 유쾌한 단풍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청도 반시는 단감인 줄 알았더니 떫은 감이더군요. 이런 모양이라서 반시라 합니다. 

천지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더군요. 요 풍경이 장난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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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 예찬한 운문사의 다섯 가지 아름다움


운문사에 내려앉은 단풍.


명품으로 꼽히는 여승들의 새벽 예불 등을 자랑하는 경북 청도 운문사(雲門寺).
그래선지 운문사를 떠올리면 항상 가슴이 저밉니다.

 


운문사 솔숲 길입니다.

담장 안에도 단풍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청도에 다녀왔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여승들이 수도 중인 운문사에 짙게 깔린 정적은 수양 정도를 나타내는 듯했습니다.
여기에 단풍까지 더해져 명불허전이었습니다.

 


길에도 단풍이 앉아 있었습니다.

단풍 정취 있었습니다.

운문사에는 일주문과 사천왕상이 없이 이렇게 바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입니다.

 

‘구름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운문사는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 가지’를 꼽을 만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서 항시 사미니계를 받은 200여명의 비구니 학인스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방문한 운문사에서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비구니의 모습은 뒷모습을 보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둘째는 장엄한 아침 예불입니다.

250여명의 낭랑한 목소리가 무반주 여성합창을 생음악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예불은 수년 전 아내와 여행에서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답니다.

셋째는 운문사 입구의 솔밭입니다.

운문사 진입로 1km 남짓한 길 양옆의 아리따운 홍송의 자태를 보고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소나무에는 아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동아 전쟁’ 때 송진을 공출하기 위해 받아낸 아픈 자국이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넷째는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입니다.

운문사는 연꽃이 소담하게 피어오르면서 꽃봉오리 화판이 아직 안으로 감싸인 자태이며 바로 그 화심에 해당되는 자리에 절집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운문사는 평안한 느낌이 크게 다가오나 봅니다.

다섯째, 일연스님의 삼국유사가 운문사에서 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산 자락에는 안개가 밀려들었습니다.

여승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고요는 천지에 깔려 있었습니다.

수행공간이라 합니다.

대웅보전은 묵언 수행 중이었습니다.

삼층석탑입니다. 

 

이 밖에도 운문사의 명물은 처진 소나무(반송, 천연기념물 180호), 금당 앞 석등(보물 193호), 작갑전에 모셔져 있는 사천왕 석주(보물 318호), 석조여래좌상(보물 317호), 삼층석탑(보물 678호) 등이 있습니다.

운문사는 가족 여행으로 와 보고 싶은 곳인데 미루다 저만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운문사에 자리한 2개의 대웅전을 보고 나니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그래, 내년 1월 1일 이곳에서 비구니의 새벽 예불을 함께 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단풍이 잦아들면 침묵에 휩싸이겠지요.

풍취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단풍은 또 싱그러움을 잉태할 것입니다.

마당을 쓸어도 공덕이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고요가 환희로 가득 찰 것입니다.

운문사를 둘러보는 것도 사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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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8 17:06 신고

주말 나들이 합천 영상테마파크도 '딱'

 

전우치의 강동원(사진 전우치)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 촬영한 작품들.

합천영상테마파크 내부.

  

대한민국 대표 꽃 미남 강동원.
그가 영화 <전우치>에서 하늘을 훨훨 날면서도 멋진 모습을 선보였던 그곳.

예능 프로그램의 대표주자 <무한도전>.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등이 ‘6월 달력’을 찍었던 그곳.

<태극기 휘날리며>,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 <제중원>, <욕망의 불꽃>, <써니>, <영웅시대> 등 영화와 드라마 화제작들이 촬영을 감행했던 그곳.

경남 합천 영상테마파크.

여기에 갔었습니다.
지난 9월29일부터 30일까지 경남도민일보와 쥬스컴퍼니가 주최하고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이 주관한 ‘합천 명소 블로거 탐방단’이 되어 합천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합천 영상테마파크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합천 영상테마파크에서 찍었던 무한도전 달력.(사진 무한도전) 
 
위의 사진은 이곳에서 찍었다던데 느낌이 완전 다르지요?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에 가면 놀라는 게 있습니다.
별 거도 아닌 것 같은데 화면으로 보면 어찌 그리 멋있고 예쁜지….
그래서 영상 예술이라 하나 봅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 관련 산업이 꽤 인기더군요.
그래선지 각 지자체들이 앞 다퉈 협찬 등의 광고에 나서고 있습니다.
합천 영상테마파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영상 테마파크를 둘러 본 느낌은 과거로의 유쾌한 ‘시간여행’이었습니다.

 

 

 

합천 영상테마파크는 2003년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대박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해 영화와 더불어 덩달아 유명해졌습니다.

세트로는 1920년대 경성(서울) 거리 풍경과 건물, 1960~70년대 모습의 시외버스 터미널, 1980년대 서울 거리와 기차역 등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선지 제게는 과거 시대에 대한 추억으로 다가왔습니다.
세트인 전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것도 재밌더군요.

또 진로 소주, 금성 텔레비전, 트라이 속옷 선전 등이 나오는 과거 영상들을 접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건물들이 추억속으로 이끌더군요.

점치는 집에서 빵터졌지 뭡니까.

 

일행에게 단연 인기였던 장소는 <무한도전>이 6월 달력을 찍었던 서바이벌 체험 무대였습니다.

제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곳은 영화 <전우치>에서 강동원이 대결 신을 펼쳤던 곳이었습니다.

주말 아이들과 합천 영상테마파크 나들이에 나서는 것도 세대 차이를 극복할 좋은 소재가 될 것입니다.

 


빵집의 추억이 고스란이 서려 있습니다.

여기가 전우치에서 강동원이 마지막 대결 신을 펼쳤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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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둘러보기] 34년 만에 찾은 해인사

 

 

해인사에 있는 성철 스님 사리탑입니다.

 

팔만대장경하면 떠오르는 사찰이 있습니다.
바로 경남 합천 해인사입니다.

해인사를 일러 ‘법보종찰’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불(佛)ㆍ법(法)ㆍ승(僧)을 두고 ‘삼보(三寶)’라 하는데 이 중 법보는 부처님 말씀을 말합니다. 이 부처님 말씀을 구현한 게 팔만대장경입니다.

그래서 해인사를 ‘법보종찰’로 부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불보사찰은 통도사, 승보사찰은 송광사입니다.

지난 9월29일부터 30일까지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고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이 주관한 ‘합천 명소 블로거 탐방단’이 되어 해인사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해인사는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들러보았으니 34년 만에 다시 찾은 셈입니다.
하여, 해인사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더 감개가 무량하다 할까요.

해인사 두 말하면 잔소리지요. 그냥 해인사 풍경 둘러보죠.

 


뒤 건물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곳입니다. 사진찍기는 NO더군요.
 


해인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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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 글쓰기 배틀 소리에 웃음 짓다

 

경남 합천 가야산 소리길입니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걷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소리길은 풍광뿐 아니라 오솔길 정취도 좋았습니다.

 

대중에게 알려진 경남 합천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가야산 자락에 위치한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일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초대 주한프랑스 대사였던 로제 샹바르 씨가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제2의 고향인 한국의 해인사에 뿌려 달라고 유언”했을까요.

합천의 매력은 팔만대장경만이 아닙니다.

‘가야산 소리 길’은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
여수 금오도의 비렁길 등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관광 합천을 알릴 주요 자원 중 하나였습니다.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행사장'에는
대장경 진본 등이 전시되어 발길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29일부터 30일까지 경남도민일보와 쥬스컴퍼니가 주최하고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이 주관한 합천 명소 블로거 탐방단(이하 팸 투어)’이 되어 해인사와 가야산 소리길,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행사장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이 ‘가야산 소리길’이었습니다.

가야산 홍류동 계곡의 소리길은 해인사 아래 영산교에서 부터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행사장에 이르는 6km 구간에 걸쳐
“물소리를 듣고 걷는” 풍류와 느림의 미학이 담긴 산책길이었습니다.

 


대장경 전시실에는 진본 등이 전시되었더군요. 사진은 NO, 눈으로만 확인 가능합니다.

 

소리길의 아름다움에 취했는지 블로거 한 분이 농담 삼아 그러더군요.

“소리길은 운치가 있어 글이 아주 다양하게 나오겠다.
일대일 글쓰기 배틀이 진행되면 아주 재밌겠다.”

이 말에 웃음 지었습니다.
예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글쟁이 배틀도 괜찮겠더군요.

소리길 감상은 사진으로 대신하고,
글쓰기 배틀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하여, 새로운 관광 거리를 찾아 나선 합천군과 경상남도에 제안합니다.

 


소리길에서 만난 운치는 풍류 자체였습니다. 

 

큰 틀은 이렇습니다.

배틀 제목은 ‘나는 블로거다’가 좋겠습니다.
방법은 이름께나 날리는 블로거 등을 초청해 일대일 배틀을 시키는 겁니다.
일대일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효과로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니 홍보가 가능하고,
덩달아 이벤트까지 가능한 관광 합천 또는 경상남도를 알리는
또 하나의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소리길을 걷는 내내 물소리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배틀 내용에 살을 좀 더 보태자면 방법은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형식은 시ㆍ도 혹은 지역별, 또는 세대별로 나눠도 가능합니다.
특히 잘 나가는 포털과 언론 블로거의 그룹 대결도 무방할 것입니다.

블로거 글의 우열을 가리는 것도 간단합니다.
소리길을 찾는 관광객을 판정단으로 삼아도 좋습니다.

또 지역 작가나 유명 작가 등을 심사위원으로 넣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상금 등의 포상도 필요하겠지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문제는 배틀 형식이 아니라 관광지를 알리려는 의지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관광 대안 모색에 몰두 중인 합천군과 경상남도 등이 또 하나의 대안을 찾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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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른 스님들까지 욕보이십니다!”

 

 

가을!

경남 창원 산골짜기로 길을 나섰습니다.

시린 가슴 안고.
이 시린 가슴, 누가 행여 따뜻하게 보듬아 줄까 기대하고서.

그렇게 한 스님과 마주하였지요.
곡차 한 잔 앞에 두고서.
곡차가 들어가니 용감 무식해 지더군요.


“왜, 스님이 되셨어요?”

“당신은 왜 살아?”


이렇게 된통 당했습니다.
그렇게 스님이 이야기 보따리 하나를 풀어 헤치더군요. 

 

정육점을 하는 한 보살이 고기 옮길 사람이 없다고 날 더러 그러대.

“고기 좀 같이 날라 주세요”
“그러마!”

하고 같이 나섰는데, 도살장인 거라.
도살장에 걸린 소들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한참 웃으며 구경 하는데,
한 여자 보살이 다가와 그러는 거라.

“스님 보기 안 좋습니다. 스님이 이런 데 오시려면 사복 입고 오시지 그걸(승복을) 입고 민망하게 그리 다닙니까. 스님, 그러면 다른 스님들까지 욕보이십니더.”

그 소리에 “보살, 이리 와 보소” 그랬지.
가까이서 보니 제법 공부한 티가 나. 두 말 않고 물었지.

“부처님의 가장 큰 가르침이 뭡니까?”
“자비!”

“그 다음으로 부처님의 큰 가르침이 뭡니까?”
“보시!”

“이 소들이 전생에 뭔지 모르지만 지금 현생에서는 소로 태어나 부처님의 큰 가르침인 보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웃으며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보고 또 보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가을이랍시고, 시린 가슴을 부여안은 ‘나’.
세상의 짧은 눈으로 보는 여자 보살과 다름없는 ‘나’였지요.

‘청강’, 그는 내게 이렇게 다가와 작은 희망과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스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스님은 그날 밤 제게, 곁을 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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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8 17:52 신고

“번뇌를 하지 않고 쓴 글은 소용없다!”
밀양 사명당 생가 터와 기념관, 표충비

 

경남 밀양의 사명당 생가 터입니다.

 

“만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인연이 한 사람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좋은 사람 만나면 오르막이, 나쁜 사람 만나면 내리막을 걷겠지요.
물론, 나쁜 사람을 만나도 교훈을 얻는다면 새로운 삶이 기다릴 것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눈물을 흘린다는 표충비.

얼음골, 만어석과 함께 밀양 3대 신비로 꼽히는 표충비각 주변 풍경.


표충비.

 

경남 밀양시가 주최한 팸 투어에서 뜻하지 않은 분을 만났습니다.
밀양이 고향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 그분’ 하실 만치 큰 분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적들 침입에 분연히 일어나 적장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분입니다.
이로 인한 많은 일화가 전해져 오며 위인전에도 나오는 큰 분입니다.

‘사명대사’.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는 사명대사 기념관과 생가 터 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또 인근에는 ‘얼음골’, ‘만어사 만어석’과 함께 밀양 3대 신비로 손꼽히는 ‘표충비각’(사명대사 땀비)이 자리해 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사명대사 유물 전시관.

사명당 동상. 


사명당 유물 전시관 내부. 

 

전우치처럼 신통한 일화가 많은 ‘사명당’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명대사의 삶을 잠시 살펴보죠.

사명대사(1544~1610)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호는 사명당(四溟堂), 송운(松雲)입니다. 속성은 임(任)씨며, 속명은 응규(應奎), 법명은 유정(惟政)입니다.

대사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웠고, 부모가 죽자 명종(1559년) 때 직지사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 후 묘향산 보현사에 있던 서산대사 휴정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아 의승도대장이 되어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웠습니다.

또한 네 차례나 왜군 진영에 들어가 휴전 협상을 벌이며 왜군이 제시한 휴전 내용의 모순과 죄악을 낱낱이 들추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의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선조 37년(1604년)에 다시 일본에 건너가 3,500여 명의 조선인 포로를 귀국시키는 등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사명당은 전우치처럼 신통력을 가진 일화가 많습니다.
일례로 사명대사가 일본에 갔을 때 그를 목욕탕에 넣고 불을 때었으나 얼음을 얼게 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사명당 시비와 사당. 


사명당 생가 터에서 가장 기가 센 곳입니다. 

 

“번뇌 하지 않고 쓴 글은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재 사명당 생가 터는 대문채와 사랑채, 안채가 석 삼(三)자 형태로 복원되었습니다. 사명대사에 생가 터에게 본 한 문구에 눈이 번쩍 띄더군요.

“번뇌를 하지 않고 쓴 글은 아무 소용이 없다.”

고통이 있어야 행복을 오감으로 느끼는 만물의 이치를 일찍이 간파한 그의 혜안에 감탄할 뿐입니다.

번뇌가 어디 글뿐이랴!
무수한 번뇌가 쌓여야 인생이 영그는 이치인 것을….

사명당 생가 터는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선지, 강한 기운이 느껴지더군요.

사명당 관련 유적지를 돌아 본 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풍수 동호회 등을 모아 역사와 풍수 교육의 장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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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iroso.kr BlogIcon feelosophy   수정/삭제   댓글쓰기

    밀양에도 꼭 가보고 싶네요.
    풍수관련한 건 잘 모르지만,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시니 그 기운도 좀 느껴보고 싶구요.
    ^^

    2011.08.30 16:51 신고

옛날 스토리텔링 기법이 엿보이는 만어사
[절집 돌아보기] 경남 밀양 만어사

 

 

경남 밀양의 3대 신비 중 하나를 간직한 만어사.

 

우리네 산천, 참 멋스럽습니다.

가파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지가 나옵니다. 또 평지인가 싶으면 여지없이 산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우리네 산야는 굴곡 있는 인간 삶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지난 20, 21일 경남 밀양시가 주최한 팸 투어에 다녀왔습니다.
일정 중 한 곳이 만어사(萬魚寺)였습니다.

만어사는 경석과 운해가 유명합니다.

만어사 경석입니다. 물고기를 닮아 만어석이라 하지요. 

 

“만어사에 가려면 작은 차로 바꿔 타야 합니다.”

도로 사정이 대형버스가 들어가기 힘들다는 이유였습니다.
의아했습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지요.
작은 암자라면 모를까, 하지만 만어사는 밀양이 얼음골, 표충비와 함께 3대 신비로 꼽을 만큼 관광객 유입 동기가 큰 절집인데 말입니다.

가보니 좁은 도로가 이해되더군요.
신비를 찾아가는 여행이라 편하게 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만어사는 불편을 느껴야 더욱 신비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그럴까? 살펴볼까요.

만어사는 그 흔한 일주문이 없더군요.

만어사 3층석탑과 삼신당.

 

간절히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 만어사 ‘만어석’

 

우선 밀양 만어사는 삼국유사 고기(古記)에 가락국 수로왕이 창건했다(서기 46년)는 기록이 있다는군요. 그래선지 절집 초입에 일주문이 없대요.

자연 자체가 일주문이란 의미로 해석되더군요.
삼라만상을 일주문으로 보는 원대한 시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두 번째로 만어사는 종소리 나는 돌로 유명합니다.
절집 밑으로 흐트러진 무수한 돌들이 물고기 모양을 닮아 만어석(萬魚石)이라 불리며, 돌로 바위를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난다 하여 종석(鐘石)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 설화가 얽혔더군요.

"만어사 계곡에 있는 바위들은 옛날에 이곳에 살던 나찰녀 다섯과 흑룡이 사귀면서 횡포를 일삼다 부처님 설법으로 돌로 변했다. 그래서 바위를 두드리면 종소리와 쇳소리, 옥소리 등으로 난다."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가 더해져야 신비한 맛이 배가되는 걸 선조들도 이미 알았나 봅니다.

옛날 선인들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빛나는 만어석.

두드리면 쇳소리, 종소리 등이 난다나요. 

 만어석과 운해 대신 풍경을 보았습니다. 운해는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나 봅니다.

 

“이거 들려야 좋나요? 안 들려야 좋은 건가요?”
“간절히 소원을 빌면 돌이 들리지 않아요.”

만어석을 놓고 소원을 빌면 쉽게 들리던 돌이 들리지 않는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시험을 하는데 정말 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더군요.

‘궁하면 통한다’더니, 지극정성 앞에서 통하지 않은 게 없나 봅니다.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성 부족한 탓을 해야겠지요.

저요? 아직 소원이 없어 빌지 않았습니다. 

"앗, 들리면 안되는데... "

 간절히 소원을 빕니다.

들렸을까? 안 들렸을까?

 

미륵전과 서민 불교를 대하는 듯한 ‘만어사’

 

세 번째로 미륵전입니다.
이곳은 만어사에서 꼭 봐야 할 곳이지요.

미륵전에는 말 그대로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시고 있더군요.
그런데 미륵불 대신 약 5m에 달하는 바위가 들어서 있더군요.

이 바위는 미륵바위 또는 미륵불이라 불린답니다.
이 바위는 오늘날로 치면 스토리텔링이랄 수 있는 설화가 있습니다. 

“용왕 아들이 부처님 설법을 듣고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돌이 된 것이다. 멀리서 보면 부처 형상이 보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부처 형상이 보이지 않다.”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다른 거겠죠.
특히 미륵바위 앞에서 간절히 소원을 빌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도 합니다.

 간절히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나요.

영험하다는 미륵전입니다. 

미륵전 뒤쪽 모습입니다.



또 사람들이 바위에 동전을 붙이더군요.
동전이 붙으면 정성이 통해서 원을 이룰 수 있다나 어쩐다나.
부디 중생들의 어리석은 염원 이뤄주소서!

이 밖에도 만어사에는 보물 제466호인 만어사 삼층석탑이 있더군요.

하나 더, 만어석에 이름 등을 새겨 훼손하면 이를 보는 이들의 저주대상이 되어 세상살이가 고달프다 하니 이름 새기기를 취미 삼은 분들은 각별히 조심해야겠습니다.

만어사를 둘러본 소감요? 선암사처럼 소박한 맛이 있대요.
하지만 절집 형태를 제대로 갖춘 선암사와는 또 다른 맛이었죠.
갖춰지지 않은 절집과 소원을 비는 모습에서 꾸밈없는 서민 불교를 엿본 듯한 느낌이었답니다.

밀양 만어사 대웅전입니다. 소박한 서민불교를 엿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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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8 17:53 신고

모텔 15만원, 민박 10만원. 현찰박치기?
휴가철 바가지요금, 당국은 뭐하나 몰라

 

지난 6일 순창에서 묵었던 모텔입니다. 6만원에 들었지요.

  

“광복절 낀 3일 연휴, 뭐 할 거예요?”

지난 6, 7일 전북 남원과 순창 등지를 돌았던 터라 이번 주는 방콕하려고 했지요.
대신 집 근처 산림욕장에 한 번 들를 생각이었지요.
이를 눈치 챘는지 아내가 의향을 묻더군요.  

“당신 가고 싶은 데 있어?”

“….”

지난 14일, 저는 장흥 누드 삼림욕장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경남 남해를 추천하더군요. 가족회의 끝에 남해로 결정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집안 청소를 먼저 끝낸 후, 부랴부랴 여행정보와 텐트 등을 챙겼습니다.
야영할 생각이었지요. 

“집 떠나면 개고생. 집이 최고지.”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언제나 드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떠날 때면 언제나 콧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이것 참 묘합니다.

남해에는 관광객이 미어터지더군요.
될 수 있는 한 피서철은 피하는데 어쩔 수 없었지요.
몇 군데를 거친 아이들이 해수욕을 원하더군요.

바다에 몸을 던졌지요. 그러는 사이 중 1학년 딸의 요구사항이 있었습니다.

“아빠, 오늘 밤 박지성의 맨유 경기를 보고 싶어요. 펜션이나 모텔에서 자요.”

은근 걱정이대요. 여행에서 잠자리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지난 해 아내와 부부 여행에서 다 좋았는데 방이 없어 바퀴벌레 등이 나오는 여인숙형 여관에서 잠을 자는 바람에 두고두고 원망(?)을 들어야 했거든요. 

 


펜션요금은 보통 10~20만원 선입니다.

 

보통 펜션 요금은 10~20만 원 선. 그런데 30~40여만 원으로 올랐더군요.
한 주인에게 펜션 요금이 비싼 이유를 물었더니 그러대요.

“그것도 없어 난리다. 더 이상 할 말 없다.”

그나마 이것마저 예약 완료 상태였습니다.

모텔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해수욕장 근처에서 겨우 모텔 방이 하나 있더군요. 비용을 물었습니다.

“4인 가족? 15만원 주세요.”

헉. 모텔은 보통 때 5만원, 성수기 7
만원이면 족합니다. 그런데 15만원이라니.

지난 6일, 전북 순창에서 성수기라도 6만원이었거든요.
아내는 너무 비싸다며 야영도 괜찮으니 더 구해보자더군요.  

 


고시된 모텔요금은 3~7만원 선입니다.

 

그러는 사이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렀습니다.

마침, 뉴스에 “바가지 상혼으로 봉이 된 피서객” 관련 소식이 나오더군요.
계곡과 해수욕장 자리세 5만 원, 텐트 빌리는데 5만 원 등 되풀이 되는 피서철 바가지 상혼과 단속 손 놓는 당국 실태가 리얼하대요.

식사 후 숙소를 잡기 위해 떠돌았습니다.
펜션, 모텔, 민박 등 가리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라 거절. 차츰 열도 받고, 걱정도 되데요.

그렇게 들어갔던 대교까지 다시 당도했습니다.
다리 밑에서 야영키로 하고 마지막으로 민박집에 들렀습니다. 방이 있더군요. 


고시된 민박 요금입니다.

 

“10만원입니다. 15만원에 예약한 사람이 안 와서 10만원 받는 거예요. 우리는 현찰만 받는데….”

민박 요금은 비성수기 3만원. 성수기 5만원이던 가격이 15만원까지 뛰었습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바가지 상술도 피서철 한철입니다.
바가지요금이 어디 여기뿐이겠습니까.  

 


가족이 묵었던 민박집입니다. 바가지요금을 감수해야 했지요~ㅠㅠ. 

 

문제는 누구나 아는 휴가철 바가지가 고질적이란 거지요.
그런데도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겁니다.
그날 다시 한 번 반성했습니다. 

‘피서철은 피하자’, ‘숙박 예약은 필수’

그런데 돌발 상황이 생겼습니다.
아, 글쎄~! 맨유 경기에 박지성 선수가 결장했지 뭡니까.
그럴 줄 알았으면 계곡이나 공원, 다리 등에서 텐트 치고 야영했을 텐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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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itachang.tistory.com BlogIcon Rita   수정/삭제   댓글쓰기

    숙박때문에 많이 고생하셨네요~ 가족과 함께라 이런저런 이유로 더 고생스러우셨을텐데... ^^
    그래도 나머지 여행은 즐거우셨기를 바랍니다.^^

    2011.08.17 14:49 신고

세상살이 가끔 웃음도 필요하다!

 

뻥쟁이 주위로 사람이 몰렸습니다.

 

사실, 자타 공인 우리나라 최고 뻥쟁이(?)는 허 모씨 아닐까 싶어요.(굳이 이름 말 안 해도 다들 아실 겁니다.)

그 정도라면 뻥쟁이 혹은 허풍이라기보다 거짓에 가깝지요.
그렇다면 허씨를 뺀 나머지 중에 우리나라에서 뻥의 절대 지존은 누굴까?

어쩌면 뻥의 종결자라 칭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살다 살다 이런 통큰 허풍쟁이는 처음입니다.

그럼, 종결자인지 아닌지 한 번 판단해 보시렵니까?


경북 상주에 갔었습니다.
거기서 일행들과 '가우정'이란 식당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하러 갔지요.
메뉴는 한방 오리였습니다. 맛있대요.
경상도 음식은 별로라는 전라도 사람의 편견을 깨기에 충분한 맛이었습니다. 

“내 이야기 좀 들어보소.”

맛있게도 냠냠하고 나와 차를 타려는데 주인장이 일행을 모조리 불러 세웠습니다.

“호랑이 봤어요? 나는 호랑이를 봤소.”

어쭈구리~, 첫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사람들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저기 저 앞 숲에, 풀이 우거진 곳에서 무슨 울음소리가 들리데. 그런데 한참을 우는 거야. 가만 들어보니 호랑이 울음소리더라고.”


웬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하면서도 모두들 귀를 쫑긋했지요.


“우리 육형제가 망설이다 각자 몽둥이 등을 하나씩 들고 나섰지. 엄청 떨리더라고.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어서. 용기를 냈지. 한발 한발 조심조심 다가서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호랑이와 대면하게 생겼는데 누군들 안 떨겠어?”


반신반의 하면서도 국내에서 보기 힘든 호랑이와 정말 대면했을까?

한편으로 포수도 잡기 힘든 호랑이를 몽둥이 등을 들고 잡으러 나섰다니, 간 큰 형제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육형제가 숲을 헤쳐 앞으로 조심조심 가는데 염소 울음소리까지 작게 들리는 거라. 염소가 호랑이한테 잡혔나 싶었지. 어흥~!”


“어흥”이란 추임새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에이~ 저거 뻥이다’란 생각이 번쩍 드는 겁니다.
사람들이 한두 명씩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려는 찰라, 그가 말하더군요.


“아이~, 진짜라니까. 진지하게 들어봐요.”


그가 주위를 환기시켰습니다. 일행들 다시 호기심 발동했습니다.
호랑이가 가만있었을까? 어쨌든 이야기는 절정이었습니다.


“호랑이와 지척거리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니 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더라고. 호랑이와 마주쳐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 육형제가 손에 든 무기를 내리쳤지. 그런데….”


뭥미?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호랑이는 없는 거라. 누가 숲에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은 거라. 허탈했지.”
“하하하하~. 와 뻥 엄청 심하네. 그 소릴 하려고 우릴 잡아놓은 거야?”


사람들 주인장 허풍에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웃음을 놓지 않더군요.
뻥쟁이에 실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귀엽게 보였습니다.

각박한 세상살이 가끔 이런 웃음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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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연인? 박경리 선생 앞에 서보니
통영 박경리 기념관과 묘소 둘러보기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님의 말입니다.

아내는 박경리 선생 묘소 옆의 정자에 걸린 현판을 보고, “저 문구 그대로 글을 써 집에 걸어두면 좋을 것 같다”더군요.

이유를 물었더니 철학자 같은 소릴 하대요.

“나이 먹고 늙어가는 게 서럽다는 생각을 뒤집는 말이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 글귀를 가슴에 안고 살면 좋겠다.”

 

 

 

 

 

아내와 지난 주말 통영으로 1박 2일 부부 여행을 하였습니다. 통영에서에서 처음으로 들렀던 곳은 ‘박경리 기념관’과 ‘박경리 공원’이었지요.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박경리 선생은 제가 대학 다닐 때 가슴 속 연인으로 삼았던 분입니다.

그녀가 떠나고 없는 지금, 그녀의 문학관과 묘소를 찾는 것이 한 때 연인으로 여겼던 마음속 사랑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그녀의 시 한 편 감상하지요.

 

                   눈먼 말
                                                 박경리

 

 

               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 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잡고
               여기까지 왔네

 

이랬던 그녀가 지금은 문학 속 작품으로 남아 많은 연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연과 생명의 존엄 작가, 혹은 <토지>의 작가로 알려졌습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 잘 나와 있습니다.

 

“자연이 인간의 근원이라면,
생명의 하나인 인간도 자연입니다.
그러니 자연과 자연이 합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고 섭리입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어요.”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자리 잡은 박경리 공원에는 시비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꽃들이 피어 그녀의 운치를 더해 주대요.

기똥차게 기분 좋았던 건 그녀가 몸을 누인 묘소였습니다. 겉치레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간 모습이 ‘역시 박경리 선생’이란 감탄이 나왔습니다.

 

 

그녀의 조촐한 묘소가 마음을 잡아 끌더군요.

 

그녀의 묘소 옆에 피었던 괭이밥이 눈길을 끌더군요.

 

묘소에서 바라보는 풍광 또한 운치가 철철 넘쳤지요.
바다와 마을을 약간 비껴서 바라보는 관조자의 모습이 그녀다움을 더욱 빛냈지요.

 

 그래선지, 아내는 한 때 남편의 마음 속 연인이었던 박경리 선생에게 찬사를 쏟아냈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 박경리 <마지막 산문> 중에서 -

 

삶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역경을 이겨내고, 그녀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었습니다. 

 

 

박경리 선생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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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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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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