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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간 친구, 가족과 우리나라로 여행 오다
식구들이랑 선암사에 있대. 우리끼리 봐야겠다!
“빨리 나와라. 안 오면 우리가 쳐들어간다!”
“연봉 일억 오천에 자식 네 명 가르치기 힘들다!”




오징어 회 압권이었습니다.

씹히는 맛이...





“오늘 시간 어때?”



통 연락이라곤 거의 하지 않는 친구. 그렇지만 언제든 서로 달려갈 채비가 된 10명의 고등학교 계 친구 중 한 명. 그가 전화해선 파격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시간이 없어도 무조건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YES’라 해야 될 판입니다. 그런데 달린 조건이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40년 지기들입니다.




처갓집 식구들이랑 선암사에 있대. 우리끼리 봐야겠다.



“병곤이랑, 준수랑 같이 보게. 친구들에게 연락해 볼게.”



둘이 저녁 6시30분 숯불 닭갈비집으로 정했습니다. 몸이 바빴습니다. 녀석에게 돌려줘야 할 계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장에 넣어두고 그냥 뒀는데, 이번에 줘야겠다 싶었지요. 친구 입장에선 책갈피에 묻어뒀던 공돈이 생긴 것처럼 기쁠 일이지요.



헐. 통장은 있는데 도장이 없더군요. 도장 분실신고 다음에 찾으려했더니, 무통장으로 찾으면 된다더군요. 다시 친구에게 전화 왔습니다.



“준수는 처갓집 식구들이랑 선암사에 있대. 우리끼리 봐야겠다.”



박준수. 그는 20대에 미국 유학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눌러 앉은 친굽니다. 학술 발표 등으로 가끔 국내에 들어올 때를 제외하곤 얼굴 보기 힘든 벗입니다. 국내 대학과 기업의 스카웃 제안에도 마다했던 친굽니다. 한 집안의 외동아들인 그가 내세운 이유는 “우리나라에선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겁니다. 뭐라 할 말 없대요.



1차에서 닭갈비를 두고 앉았습니다.




“빨리 나와라. 안 오면 우리가 쳐들어간다!”



친구가 귀국 인사라며 보낸 두 통의 메일입니다.



“한국에 휴가차 왔다. 잘 지냈지? 지금은 순천 처가집이고. 전화는 아직 없고. 여수 우리 집이나 처가 집 인터넷 연결이 여의치가 않네. 전화번호 바뀌셨나? 아님 옛날 전화번호로 나중에 또 연락 할게.”




“지금은 서울로 이동 중이고. 이번 주까지 거기서 친지들에게 인사드리고 다음 주 초에 내려갈 예정이다. 가족들이랑 휴가차 왔으니 좀 오래 있으며 이곳저곳 다닐 계획이고. 오늘 오후 서울서 핸 펀 생기는 데 곧 전화로 다시 연락 할게.”




2차로 옮겼던 오징어 회 한상입니다.



친구들, 녀석이 시간나기만 기다렸습니다. 도통 연락이 없는 겁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먼저 연락하는 수밖에. 알고 봤더니, 친구 부부, 아이들 넷, 친가, 외가 등과 제주도, 송광사 등 여기저길 다녔더군요. 가족들과 국내 여행 다니느라 정신없었더라고요.



이날은 장인어른과 조계산 자락에서 비빔밥에 막걸리 마신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이 친구를 제외한 세 명이 만나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술이 들어가니 오기발동.



“야, 친구들 셋이 모였다. 빨리 나와라. 안 오면 우리가 쳐들어간다. 상열이는 출장. 네가 온다면 광주 병구도 여수로 불러 내릴게.”



그제야, 순천서 택시 타고 오겠다는 겁니다. 우리 나이로 오십 둘. 여전히, 호기는 살아 있었습니다. 친구, 나이가 중요치 않은 법. 친구, 총알처럼 달려왔나 봅니다. 화장실 다녀 온 사이, 근 십 년 만에 보는 뒤통수 하나가 보였습니다.



오징어 회.


"자식 네 명 가르치기 힘들다!”




“아야. 아직도 머리 때리냐. 이제 머리는 그만 때리자.”



녀석, 웃으면서도 머리를 사수했습니다. 사실, 이건 아니지요. 그렇지만 세월이 주는 서먹함을 달래기 위해 쓴 전술이었습니다. 필요 없었던 행동이었지요. 장인어른과 조계산서 막걸리 한 잔 한 후 한숨 때리다 일어나 나왔답니다. 그저 반가웠습니다. 자리를 옮겼습니다. 발길 닿은 곳은 사계절 쉼터라는 ‘동네방네’였습니다. 오징어 회를 주문했습니다.



“국내에 들어 올 생각 없어?”
“들어오려 했으면 진작 왔지. 3년 전에도 들어올까 고민했어. 연봉 일억 오천에 오라는데 한국에서 그거 갖고 아이들 넷 키울 자신이 없더라고. 힘들어. 이제 포기했어. 너희들도 미국에 놀러 좀 와라.”



“어머니는 뭐라 하셔?”
“가족들이 더 반대야. 과외와 대학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적응하기 더 힘들 거라고. 내 생각도 그래. 미국서 그저 평범하게 자라길 바랄 뿐이야. 셋째가 중학교 클럽에서 축구하는데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어. 정성기, 너 아들 테니스 선수라고 하지 않았냐. 지금도 잘 해?”




오징어 회.

 



자식 교육,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



“운동도 돈 없으면 못해. 국내외에서 게임을 해야 포인트를 얻는데 그게 힘에 부쳐. 스폰서 구하기도 힘들고. 우리 아들도 초·중학교 때는 테니스 국가대표 상비군도 했는데 점점 힘들더라. 중학교도 마포중에 갔는데….

이젠 체육선생 되기만 바라보고 있어. 아들이 운동 하는 걸 즐기며 바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운동엔 동기부여와 근성이 중요한 거 같아. 요즘 운동선수들 보면 동기와 근성이 부족해. 축구하는 네 아들도 이걸 잘 지며봐.”


“아이들 가르치는데,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라잖아.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 않고, 아이 갖지 않는 것도 다 교육 때문이야. 말은 안 해도 다 공감하는데 어찌 결혼해라 하겠어.”



친구들과의 수다에는 자식 둔 중년 남자들의 어려움이 그대로 녹아났습니다. 웬일인지, 취하지 않았습니다. 마실수록 정신이 더 멀쩡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연봉 일억 오천에 자식 네 명 가르치기 힘들다”는 소리가 뱅뱅 돌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자식 교육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던 탓입니다. 녀석, 안주가 꽤 흡족했나 봅니다.



“오징어 회. 아주 탁월한 선택이다.”




무더위 잘 나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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