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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15.08.30 “여자 마술사? 속 편한 소리. 먹고 살기 힘든 세상”
  2. 2013.09.26 “스님 방에는 왜 책이 한 권도 없습니까?”
  3. 2013.09.25 “네가 방금 걸어온 길이 좁더냐? 넓더냐?”
  4. 2013.08.12 아들의 '이제야 아빠 같다’는 말에 띵~
  5. 2011.09.30 아버지, 여행에서 자녀와 보이지 않는 거리감 줄이다
  6. 2011.08.19 남해 보리암과의 인연이 더욱 기대되는 까닭 (1)
  7. 2011.07.04 아이들과 아내가 아빠에게 불만이 많은 이유
  8. 2011.06.21 전화 목소리 구분 힘든 아이들의 웃긴 이야기
  9. 2011.05.25 ‘웃어주는 친구 없다’던 임재범, 그럼 우리는?
  10. 2011.02.01 설날, 장인의 예비 사윗감 평가 기준은?
  11. 2010.12.30 위 내시경 등 건강보험의 건강검진 받아보니
  12. 2010.11.19 신기 발랄한 초딩 아들 땜에 빵 터진 사연 (1)
  13. 2010.11.13 여인네 마음을 사로잡은 선운사 '절대 단풍'
  14. 2010.10.19 용돈 주는 이, 만날 때마다 반갑고 교감된다?
  15. 2010.08.17 ‘형제가 최고라고?’ 다 빈말, 날선 비판
  16. 2010.08.14 ‘인셉션’, 무한한 상상력을 그린 철학적 영화 (2)
  17. 2010.06.08 햄스터를 찾아라, 뒤집힌 집 (1)
  18. 2010.02.13 막내아들 효도도 못 받아보고 가신 부모님
  19. 2010.01.15 먹는 게 남는 것, ‘닭 가슴살 모둠 꼬지’
  20. 2009.12.24 2년 된 몽돌이가 사랑받는 법 (6)
  21. 2009.12.04 직장생활 잘하는 조건, "상사ㆍ주특기ㆍ능력" (3)
  22. 2009.11.30 “아빠, 제 아르바이트 일자리 왜 뺏어요”
  23. 2009.11.06 “엄마. 아빠랑 헤어질 거야?”
  24. 2008.11.17 교대근무 노동자의 가족에 대한 변명

“여자가 사다리 타고 페인트 칠 하기 쉽겠나?”
“일복이 많다. 아무래도 팔자인가 하고 산다!”
여자 도장공, 유미자ㆍ양송남ㆍ주현숙 씨와의 한담

 

 

 

 

 

경력 5년의 주현숙 씨도 페인트를 칠하는 도장공 쪽에서는 초짜라 합니다.

아직 경력 2~30년씩 되는 언니들과 같이 일하려면 일 쫓아가기 힘들다네요.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생이라잖아요.”

 

 

주현숙. ‘삶=고행’인 걸 어찌 알았을까. 페인트를 칠 하던 그녀 얼굴에 허망함이 잠시 묻어났다 사라집니다. 인생길은 고행길이라는 거 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요. 아무래도 삶은 도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지 싶네요. 바닥에 떨어진 페인트를 닦으며 땀을 훔칩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내뱉은 말은 씁쓸합니다.

 

 

“부모 잘 만난 사람이나 편하게 살까, 누가 편하게 살겠어요. 우리 같이 부모 복 없는 사람들은 죽어라 일해야죠.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어요. 원망한다고 누가 먹여주나요. 가족하고 같이 먹고 살라면 또 열심히 일해야죠.”

 

 

페인트 칠 하는 여자 도장공 주현숙(45), 양송남(60), 유미자(65) 씨를 만난 건 지난 28, 29일. 그들은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어느 공장에서 페인트를 칠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의 손이 닿자, 낡은 건물이 동화 속의 집처럼 밝게 변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예쁘게 꾸미는 아름다운 여자 마술사였습니다.

 

 

“여보세요. 나 지금 일하는 중. 내일은 다른데서 일하기로 했는데. 누구? 가만 있어봐. 전화번호가 차에 있으니 이따가 찾아서 알려줄게.”

 

 

유미자 씨는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도 한 손은 일에 열심입니다. 그런데 움직이는 한 손이 장난 아닙니다. 척 봐도 고수입니다. 힘든 일에 도전한 열정적인 그녀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흰머리가 지나 간 세월을 엿보게 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말을 시켰습니다.

 

 

 

사'는 게 고행'이라지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게 그녀들의 지론입니다.

 

 

 

 

“여자가 사다리 타고 페인트 칠 하기 쉽겠나? 쉬운 일은 없더라.”

 

 

- 페인트 칠 하는 일은 언제 어떻게 시작했어요?


주현숙(이하 주) : “일한지 5년 됐다. 아이들 가르치려면 열심히 벌어야지 무슨 뾰쪽한 수가 있나. 지금 큰 딸이 중 3, 작은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다. 혼자 벌어서는 감당 못한다. 내년에는 아이들 가르치는데 돈이 제일 많이 들어간다는 중학생, 고등학생이다. 얘들 둘 가르치려면 죽어라 일하는 수밖에.”

 

양송남(이하 양) : “내 나이 서른 후반부터 했으니 20여년 됐네. 여자들이 할 일 많지 않다. 식당 일은 해 봐야 일하는 시간도 길다. 특히 돈이 적다. 그래 주위에 페인트 칠 하는 사람들이 많아 용기 내 따라 다닌 게 지금까지 왔다. 처음에는 몇 번이나 그만 뒀다. 냄새도 심하고, 온 천지가 아팠다. 말이 쉽지 여자가 사다리 타고 페인트 칠 하는 게 쉽겠나?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더라.”

 

유미자(이하 유) : “서른두 살 때부터 돈벌이를 했다. 처음에는 도로공사 일을 따라 다녔다. 이후 서른 중반부터 도장공을 하게 됐다. 내 나이 올해 육십 다섯이니 거의 30년이 됐다.”

 

 

- ‘송남’, 이름이 남자 이름이네요. 사연이 있어요?


양 : “내가 첫짼데, 첫째가 딸이라고 할머니가 서운해 하셨다. 다음에는 아들 낳으라고 내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게 효과가 있었다. 내 밑으로 내리 셋이 남동생이다.”

 

 

- 일당은 얼마고, 월급은 어느 정도에요?


주 : “나는 초짜라 일당이 약하다. 하루 팔만 원 받는다. 저 언니들은 완전 기술자라 일당이 많다. 돈 많이 받으려면 기술을 열심히 익혀야 한다.”

 

양 : “처음 일할 땐 하루 일당이 칠천 원이었다. 그 때는 초보라 삼십 일 일해 봐야 겨우 21만원이었지만 지금은 기술자라 꽤 번다. 월급이 많을 땐 오백, 적을 땐 이백만 원도 받아 봤다. 평균 월급은 삼백만 원 정도다. 그만큼 힘든 일을 하니까 봉급을 많이 받는 거다.”

 

유 : “이쪽 일은 힘들어 안하려고 해 일당이 세다. 남자는 십육만 원에서 십팔만 원. 여자는 기술자가 하루 십일만 원에서 십삼만 원 한다. 초짜는 팔만에서 십만 원이다. 많이 일하면 삼십일, 적은 달은 십일 정도 일한다.”

 

 

 

최고참 유미자 씨의 페인트 칠 하는 손놀림은 유유자적 예술입니다.

 

 

 

 

“일복이 많다. 아무래도 팔자인가 하고 산다!”

 

 

 

“빨리 하세. 토요일인데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지.”
“이 일이 빨리 끝낸다고 빨리 끝날 일이요.”

 

 

‘빨리 빨리의 나라’라던 대한민국. 역시나 그녀들 대화 속에도 ‘빨리’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사용 횟수 또한 엄청납니다. 집에 뭘 숨겨뒀을 리 만무하다. 집에 빨리 가고픈, 일하는 사람 마음 심리는 어디나 마찬가지나 봅니다. 이는 아마 집에 있는 <가족>이라는 보물이 그립고 사랑스러운 탓이겠지요.

 

 

 

- 남자들이 하던 페인트칠을 언제부터 여자들이 하기 시작했어요?


유 : “십 오륙년 됐을 거다. 그 전에는 여자들은 남자들이 페인트 칠 하기에 앞서 페인트 잘 묻으라고 옆에서 사포질이나 허드렛일만 했다. 그러다가 여자들에게 일을 시켜보니 꼼꼼히 일을 잘하니까 차츰 하게 된 거다. 지금은 주로 여자들은 낮은 곳, 남자들은 위험하거나 높은 곳에서 일한다. 요즘은 여자들 인건비가 남자들보다 싸니까 어지간한 일은 여자를 부른다.”

 

 

- 일감은 꾸준해요?


주 : “저 언니들은 일을 오래해 아는 사람이 많다. 일이 없을 때에도 오라는 데가 많고, 부탁할 곳도 많다. 아니면 자기가 일을 따서 직접 해도 된다. 그러나 나는 초짜라 일이 많지 않다. 벌이가 꾸준하지 않아 걱정이다. 남편도 이쪽 일을 하는데 고정 수입이 아니라 힘들다. 나라도 월급쟁이가 되면 좋을 텐데.”

 

유 : “옛날에는 일감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많아 일이 많다. 이 일은 주로 일하는 곳을 정해 두고, 일이 없을 땐 다른 곳에서 일한다. 지금은 남자 혼자 벌어선 돈 못 모은다. 남편은 월급쟁이로 철도 일 했는데 자기 쓰느라 정신없었다. 내가 버니까 그나마 돈 모아 아이들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손자들 용돈도 주고 글지.”

 

 

- 엄마로써 아이들 두고 일 다니기 힘들었을 텐데, 어땠어요?


유 : “일 시작할 때 아들은 네 살, 딸은 일곱 살이었다. 네 살짜리 아들을 일곱 살인 어린 딸에게 맡기고 나와 일했다. 아이들이 밥 먹게 한족에 밥상 차려서 보자기로 덮어두고 나왔다. 일하다 쉬는 점심때면 아이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가슴 아팠다. 엄마라면 그 속을 다 알 거다. 나는 일복이 많다. 아무래도 일하라는 팔자인가 하고 산다.”

 

 

 

남자 이름이라는 양송남 씨는 덕분에

자기 밑으로 내리 셋이 남동생이랍니다.

 

 

 

“여자 마술사? 속 편한 소리.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참된 행복.

 

행복은 자기가 입은 옷의 호주머니 안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인이 보내 온 문자입니다. 이 글귀를 보고 “맞다!”하며, 미친놈처럼 혼자 배시시 웃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에게 <가족>은 갈 곳이 없는 중에도, 돌아갈 곳이 있는 집이자 안식처입니다. ‘가족’은 겉으로 드러내 놓고 말 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큰 힘이요, 행복이지요.

 

 

- 일하는 엄마 모습을 아이들이 본 적 있어요?


양 : “있다. 아이들이 엄마가 힘들게 일하는 거 보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착하게 큰 거 같다. 그래선지 부모라면 깜빡 죽는다. 이 일이 보기에는 옷이 지저분하고 더럽지만 일 끝나는 시간이 빨라서 좋다. 작업복을 갈아입으면 감쪽같고 깨끗하다. 지저분한 건 일할 때뿐이다. 벌이도 좋고.”

 

 

- 앞으로도 계속 일하실 거예요?


주 : “아직 경력이 부족해 벌이가 들쭉날쭉하다. 다른 일을 찾을까 고민 중이다. 그런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사십 중반이라 나이 많다고 오라는 데가 없다. 아이들은 커가고, 교육비는 점점 늘어나 탈이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양 : “아이들이 엄마 힘들다고 일 그만 두라고 한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벌어야 누군들 돕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일손 놓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손자 보는 것보다 일이 더 편할 거 같다.”

 

 

- 일하면서 보람도 많았을 거 같아요?


양 : “보람이라면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킨 거다. 딸은 대학원 나왔다. 아들은 외국 어학연수도 일 년 보내고 대학 졸업했다. 아들은 거제도에 있는 삼성중공업에 다닌다. 딸은 재작년에 아들은 작년에 결혼했다. 결혼할 때 집 사라고 돈 많이 보탰다. 아이들이 착하게 잘 커 준 게 무엇보다 고맙고 감사하다.”

 

 

- ‘세상을 예쁘게 색칠하는 여자 마술사’란 생각 안 드세요?


주 : “페인트를 칠한 후 보면 깨끗해서 좋긴 하다. 그런데 ‘세상을 예쁘게 색칠하는 여자 마술사’란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예술가라면 모를까. 우리는 그냥 하루 먹고 하루 살기 바빠 이 일을 하는 거다. 여자 마술사? 속 편한 소리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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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3

 

 

“독립투사를 둔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내가 아느니”

“모두는 남재의 가족에게 빚을 지고 있음이야!”

 

 

 


  “형……”

 

 

 막혔던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그 때 담당의사가 보호자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고 두 사람은 그곳으로 향했다.

 

 

  “한쪽 팔과 다리는 보신대로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한쪽 눈마저 실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 눈도 장담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말이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님은 병원 문을 나서며 짧은 한마디 말을 남겼다.

 

 

  “살려만 주시오!”

 

 

 동해가 처음 남재 형을 만난 것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던 자신을 그가 이곳으로 데리고 오고부터였다.

 

 그 후로 동해는 자신보다 세 살 위인 남재를 친형처럼 의지하며 따랐고 남재는 그런 동생이 생긴 것이 신기했던지 어디를 가든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흔치는 않았지만 먹을 것이라도 생기면 형은 먼저 동생부터 챙겼다.

 

 뒤에 들어 알았지만 남재 형은 고모님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맡겨졌다고 했다.

 

 형의 조부님은 독립운동가로 그의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이 된지 오래였다. 아버지는 배움의 기회를 잃은 탓에 해방 후 노동판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아오다 오래전에 폐병으로 고인이 되셨고 작은 아버지가 있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백구하라는 이름자만 기억 할 뿐 행방을 감춘 지 오래되어 생사조차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유일한 혈육인 그의 고모님이 어린 조카를 절에 맡기며 스님께 당부의 말씀을 놓았다.

 

 

  “집안 재산은 독립자금으로 다 없어졌으니 남은 것이라곤 저 애 하나뿐이오. 독립투사의 손자이니 부디 큰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아흔이 가까운 그의 고모님께서 더 이상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스님께서는 할머니를 마을 아래까지 부축을 하시며 배웅을 해 드렸다.
 한사코 뿌리치시는 그분을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달래셨다.

 

 

  “제 어머님 생각에…….”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신 스님께 형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으나 스님은 형을 꼭 안으셨다.

 

 

  “독립투사를 둔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내가 아느니…, 왜놈의 밀정들이 빨래터에까지 따라 붙었느니라.”

 

 

 그 일은 오래토록 형의 가슴에 남았고 동해에게도 그 말이 전해졌던 것이다.
 스님께서는 특별히 형을 편애하지는 않았으나 가끔 지나가는 말을 동해에게 던지곤 했다.

 

 

  “모두는 남재의 가족에게 빚을 지고 있음이야!”

 

 

 동해가 산으로 들어온 이듬해였다. 스님은 두 아이를 불렀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른 스님의 모습에 잔뜩 긴장한 채 무릎을 꿇었다.

 

 

  “오늘부터 공부를 배우거라!”

 

 

 스님의 짧은 말씀이었다. 왜 공부를 하라는 것인지 무슨 공부를 하라는 것인지에 대해 일체 말씀이 없었고 다만 한문 한 구절을 붓글씨로 적어 주시며 깊이 파고들라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논어」의 학이편 이었음을 알았지만 그때 동해의 나이 겨우 여섯 살이었다. 

 

 

  “사람이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어야 하듯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새가 예에서 비롯되고 예로 끝나느니, 그것을 알려면 부지런히 배워야 하느니라.”

 

 

 지금도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때 스님께서 지그시 눈을 감으시며 한동안 옛 생각에 잠기시던 모습이었다.

 

 

  “나는 네 살에 그것을 배웠느니라. 나의 선인께서는 참 부드러운 분이셨어.”

 

 

 한창 공부에 재미를 붙여가던 어느 날 저녁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형이 불쑥 물었다.

 

 

  “스님 방에는 왜 책이 한 권도 없습니까?”

  “어느 해였던가, 겨울밤이 하도 추워 아궁이에 불을 지폈어”
  “아무리 그래도 그 아까운 것을…….”

 

 

 스님께서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시며 수저를 놓았다.

 

 

  “내가 앵무새가 되길 원하느냐?”
  “무슨 말씀이신지…….”

 

  “학자는 책을 가지려 노력하고 현인은 책을 감추려 애쓰며 성인은 책을 버리느니라.”
  “그렇다면 스님은 성인의 반열이십니까?”

 

  “아니다. 나는 진인(眞人)의 경계라도 갔으면 하느니라.”

 

 

 남재 형의 물음은 집요했다.

 

 

  “스님, 진인이 무엇입니까?”
  “내게 물을 가져다주겠느냐?”
  “예.” 

 

 

 형이 물을 그릇에 담아 내어왔다. 

 

 

  “이 그릇의 쓰임새가 무엇이냐?”
  “…….”
  “그릇의 용도는 비어 있음으로 쓰일 수가 있는 것이야. 그것처럼 비우고 있는 사람을 진인이라 하느니라.”

 

 

 스님의 사고가 노장사상이 바탕이었음을 뒷날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통 알지 못했다. 

 다시 형이 나섰다.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유고 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판 의뢰 및 드라마,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 기다립니다.

 

 

장편소설 비상도의 저자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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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 상 도 1-2

 

 

 


 “사람이 길을 잘못 든 것이냐? 길이 사람을 잘못 받아들인 것이냐?”

 

 

 동해는 영문을 몰라 밖에서 한참 동안이나 서성거렸고 간간히 터져 나오는 스님의 울음 섞인 말소리가 문틈을 새어나왔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스님께서 동해를 불렀다.

 

 

  “급히 나와 갈 곳이 있으니 채비 하거라.”

 

 

 스님의 표정으로 보아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으나 물을 수도 없는 분위기라 대충 짐을 챙겨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스님의 걸음이 여느 때보다 서두르시는 것 같았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무거운 정적을 깨고 스님께서 물었다.

 

 

  “네가 방금 걸어온 길이 좁더냐? 넓더냐?”

 

 

 감히 무어라 말을 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동해가 입을 닫았고 스님은 자신의 물음에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답을 놓았다.

 

 

  “혼자 걷기는 적당하지만 두 사람이 걷기에는 비좁을 것이야. 마음속에 든 사람을 잊어야 하느니, 그것이 운명이라면 잊어야 하느니.”

 

 

 들녘은 추수를 앞 둔 시점이라 농부들의 바쁜 손길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기계소리와 고함소리가 뒤섞여 모처럼 활기를 띄었다.

 

 무겁던 마음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말문을 닫고 있던 산에서 내려와 많은 사람들을 보니 비록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동해는 괜히 신이 나 평소에는 물을 수 없었던 질문을 했다.

 

 

  “스님께서는 왜 출가를 하셨습니까?”


  “나는 스님이 아니니라.”

 

  “예?”


  “다만 스님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니라.”

 

 

 동해가 남재 형에게 어렴풋이 그 말을 듣기는 했지만 스님께 직접 말씀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해가 스님을 따라 들어간 곳은 국군수도통합병원이었다. 그때까지도 스님께서는 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에 대해 함구하셨고 그는 병원의 간판을 보고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해는 계속해서 스님의 눈치를 살폈다.

 

 

  “남재가… 남재가 중상을 입었다는구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다리의 힘이 빠져나가며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하얀 종잇장처럼 텅 비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님께서 병실의 문을 열 때에야 겨우 벽을 짚고 일어서기는 했으나 차마 형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애써 고개를 돌리며 두서너 걸음을 옮겼을 때 독백 하는듯한 스님의 말씀이 낮게 깔렸다.

 

 

  “남재가 지뢰를 밟았다니…….”

 

 

 모든 기운이 일시에 빠져나가 몸속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한 줄기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동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스님 등 뒤에 숨어 겨우 감은 눈을 떴을 때는 시체처럼 누워 있는 형의 모습이 무섭게 다가왔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동여맨 것도 모자라 팔과 다리가 결박당한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누워 있는 형의 몸에서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말은커녕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스님께서도 하염없이 벽만 바라보고 서 계셨다.

 

 여간해서 시장음식을 사 오시지 않던 스님께서 남재 형이 군대를 가기 며칠 전 양념통닭 한 마리를 사 오셨다.

 

 그때 형이 넉살을 부렸다.

 

 

  “스님, 제가 제대하고 나올 때까지 이곳에 계셔야 합니다.”

 

 

 모처럼 스님께서도 환하게 웃으시며 대꾸를 했다.

 

 

  “그럼 나더러 여기에 꼼짝 않고 있으란 말이냐?”


  “그게 아니라……”


  “좋은 숲을 만들면 길조가 날아들기 마련이니라.”

 

 

 그 날의 대화를 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런 모양새로 돌아오다니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야 동해는 형의 몸에 손을 얹었다.

 

 

  “형……형!”

 

 

 차가운 감촉이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님의 미발표 유고 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장편소설 비상도의 저자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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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도 최소 10가지 요리는 해야 한다고?

 

 

 

아빠표 김치볶음밥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열대야~~~

 

때 아니 게,

 

‘무더위에 지친 저녁,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 먹게 해 줘야지.’ 싶었습니다.

 

 

“얘들아, 우리 뭐 먹을까?”

 

 

서비스에 들어 간 겁니다.

이에 대한 식구들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아내 : “당신, 뭐 먹고 싶은데?”
딸 : “아빠, 왜 그래?”
아들 : “해만 줘. 뭐든 먹을게.”

 

 

놀람과 반가움, 설마 등의 역설이 난무했습니다.

간편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단순한 게 최고.

 

주방에서 참기름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데 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아빠도 요리 할 줄 알았어?”
“아빠도 종종 했잖아. 닭도리탕도 해주고, 라면도 끓여주고.”
“얼마나 했다고….”

 

 

요거 하나에 온 가족이 좋아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요즘 뜸했습니다.

 

예전, 후배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빠들도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최소 10가지 요리는 해야 한다.”

 

 

당시 이 말을 듣고, 헉 10가지나? 했습니다.

이유는 “맞벌이 시대에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 먹일 아빠 요리 레시피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후배는 찔리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선배는 당연히 10가지 요리 하시죠?”

 

 

‘헉’이었습니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럴 땐 침묵이 금. 속으로 할 줄 아는 요리를 꼽아 보았습니다.

 

라면, 김치찌개, 두부조림, 달걀 프라이, 닭도리탕…. 몇 가지 없었습니다.

이런~, 엄청 찔렸습니다.

 

어쨌거나, 식구들을 위해 종종 요리하는 남편 및 아빠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김치볶음밥이 완성되자 식탁을 차린 후 식구들을 불렀습니다.

식구들, 한 마디씩 터졌습니다.

 

 

아내 : ”남편이 해 준거라 더 맛있겠당~^^“
딸 : “아빠가 이걸 했다 이거지~^^”
아들 : “아빠가 해 준 볶음밥 맛있네~^^”

 

 

김치 볶음밥은 가짜 아빠를 참 아빠로 만들었습니다~^^

 

 

 

 

품평이 좋으니 기분 짱이었습니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여기서 끝이었으면 가족을 위한 한 번의 봉사(?) 쯤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근데, 음식을 먹으면서 아들이 기어코 뼈아픈 농담을 던졌습니다.

 

 

“이제야 아빠 같네.”

 

 

이제야 아빠 같다니 머리가 띵했습니다.

이렇게 섭섭한 말을 하다니, 충격이었습니다.

 

요리로 표현된 아빠의 사랑이 아들에겐 감동이었을까?

중학교 2학년 아들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

 

 

“우리들이 먹던 말건, 뭘 먹던 신경 안 쓰던 아빠가 이제야 식구들 먹는 것에 신경 쓰는 것 같아, ‘이제야 아빠 같다’고 느꼈다!”

 

 

그게 아닌데…. 궁금했는데….

여하튼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니 흐뭇했습니다.

 

아버지란 역할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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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놀 때 지켜보지 말고 함께 즐겨라!

 

 

설악 워터피아에서 아이들과 마음으로 가까워졌습니다. 여행이란 이런건가 봅니다.

 

“학교 중간고사 시험 공부해야 하는데…. 가족 여행 안 갈래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여행 가기 싫다는 아이들과 설악산 가족여행을 성사시켜 준 결정적인 게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딜’이었습니다.
설악 워터피아 가는 조건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물놀이가 그렇게도 좋나 봅니다.


“아빠, 같이 놀아요.”

가끔 아이들과 물놀이 가면 즐기기보다 지켜보는 편이라 아이들 재촉이 심합니다.
그럼에도 평상시에는 즐기기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 고쳐먹었습니다.
방관자 입장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적극적인 스킨십을 하며 소통키로 한 것입니다. 

 

 

 

설악 워터피아 내 수영장, 튜브 풀 등 놀이시설에서도 적극적으로 놀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과 아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더군요.

“아빠가 웬일이세요?”
“같이 부대끼며 놀아봐야 왜 놀이시설을 좋아하는지 알 거 아냐.”

워터피아는 좀 색달랐던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 “아이들과 함께 설악산에 가거든 워터피아에 꼭 가라”던 권유의 이유를 알겠더군요.

실내외 파도 풀, 레인보우스트림, 수영장 등 물놀이 시설과 웰빙스파, 시즌스파, 커플스파, 우드스파, 패밀리스파 등 다양한 야외 온천욕이 공존해 아이들과 어른의 구미를 충족시켜주었습니다.

 

 

즐겁게 노는 걸 보고 아내가 그러더군요.

“온천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놀이 시설이 같이 있어 우리 가족에게 맞춤형이다.”

그래선지 권위적이라는 아빠에게 필요한 말만 하고, 다른 말은 꺼리는 중학교 1학년 딸까지 먼저 말을 걸더군요.

“아빠가 놀이시설을 우리 보다 더 좋아하네.”

“아빠도 너희들과 같이 타니 좋다야~. 진즉 같이 즐길걸 그랬어.”
“그치, 재밌지. 튜브타고 내려 올 때 아빠가 괴성을 그렇게 지를 줄 몰랐어.”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도 좋지만 함께 즐기는 것은 더 좋대요.
어쨌거나 말 없던 딸과 아들, 입이 터지니 재잘재잘 끝이 없습니다.

시끄러워 입을 막아야 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걸 보던 아내가 완전 쾌재를 부르더군요.

“당신이 아이들 말을 안 막고 끝까지 들어주니 아이들이 아빠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하니 보기 좋네.”

아내가 뱉은 말이 제게는 충격이대요.
제 딴에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아빠, 문제없는 아버지라 여겼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나 봅니다.

아이들과 아내 눈에는 아빠랍시고 위압적인 가장이었나 봅니다.

 

 

 

돌이켜 보니,

“공부해”
“○○ 하지마”

등 명령조와 부정 화법에 치중했더군요.
그리고 칭찬에 인색했습니다. 정말이지 반성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놀다가 나오면서도 딸은 학교며 친구 이야기를 계속 해댔습니다.
저렇게 말 잘하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마음으로 다가간 결과였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워진 느낌은 이런 건가 봅니다.

아주~ 유쾌, 상쾌, 통쾌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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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목탁 소리와 함께 보리암과 하나되다
[절집 둘러보기] 기도 도량 남해 보리암

 

▲ 경남 남해 보리암은 구름 속에 있었다.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여, 만남의 기회를 미뤘었다.

인연이 이제야 닿았을까.
드디어 지난 15일 광복절 아침,
경남 남해 보리암을 만났을 수 있었다.

사실, 남해는 내가 사는 여수와 가까운 거리다.
배로 30여분이면 닿을 수 있고, 육지로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남해의 다른 곳은 몇 번이나 갔는데 유독 보리암만은 만남이 어려웠다.
그러니까 남해 금산 보리암에 안기기까지 4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마~하~반~야~….”

거의 반 백 년 만에 얽힌 묘한 인연일까.
보리암과 상견례는 가족들과 함께 했다.
세상사 인연이라지만 절집은 공덕이 쌓여야 가능한 인연.
왠지 이제야 세상에 태어난 업보를 지운 느낌이다.

 


▲ 구름이 바위들을 가리고 있었다.
▲ 보리암 가는 길은 가파랐다.

▲ 보리암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은은한 목탁 소리와 함께 보리암과 하나 되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보리암 가는 길은 서늘했다.
보리암 오르는 길은 가파랐다.
쉬 오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꾸역꾸역 올랐다. 땀이 주르르 흘렀다.
공덕을 쌓는 것이라 여겼다.

보리암 가는 길은 여유가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 그저 마음의 여유랄까.

그 길에서 난 나그네일 뿐이었다.
보리암은 구름 속에 있었다.
속세의 고통을 짊어진 중생을 표현하는 듯했다.

‘똑~똑~똑~똑~’

목탁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가슴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렇게 난 보리암과 하나가 되었다.  

 


▲ 중생들이 끊임없이 기도를 드렸다.
 ▲ 중생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왜 그랬을까?
▲ 보리암에는 끊임없는 염원이 이어졌다.
▲ 보리암에 서니 나마저 동자승이 된 기분이었다.
  

 

자연 속에 절집을 넣은 듯 아기자기한 ‘보리암’

 

보리암은 바위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 정원이 인위적이라면,
한국 정원은 자연스러움이 빛나는 정원이라고 한다.
보리암은 자연과 어울리는 한국의 정원을 산중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다른 절집이 편평한 곳에 자리해 밋밋한 맛이라면,
보리암은 자연 속에 절집을 넣은 듯한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어터지나 보다.
기도도량 보리암은 자연 뿐 아니라 사람까지 품고 있었다.


하나 아쉬움이 있었다.
툭 트인 시야를 하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당초 생각했다. 한 번의 인연으로 보리암을 알 것이란 믿음은 없었다.
그래서 더 가슴에 넣었나 보다.

앞으로 맺을 보리암과 인연이 기대되는 까닭이었다.

 



▲ 보리암을 이렇게 가슴에 품었다.



▲ 무슨 복을 빌까?


▲ 절집 보리암은 기붕 마저 자연과 하나였다.
▲ 보리암과 인연이 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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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epaktakraw.life BlogIcon 모피우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님 기도 할 때 보리암에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받은 느낌은 하늘에 앉은 보리암이었습다.
    날씨가 너무 좋았었습니다. 오랜만에 보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2011.08.19 20:09 신고

“우리 집 치부를 드러내면 어떡해요.”
변명, 글이 진실해야 생명력이 있다!

 

 

 

아이들 불만이 많다. 아내 또한 그렇다.
이유는 이렇다.

“우리 집 치부를 드러내면 어떡해요.”

주로 쓰는 글이 가족 등의 ‘일상다반사’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있는 그대로 글을 쓰다 보니 “집안일을 까발려 사생활이 없다.”는 성토다.

하여, 아내는 시사 쓰기를 주문한다.
아내는 더 나아가 이런 선전포고까지 했다.

“가족 이야기, 계속 폭로하면 당신 앞에서 입을 닫는 수가 있어요.”

그야말로 폭탄선언이었다.
이럴 경우 부부 대화가 줄게 되고, 관계 급랭까지도 감수해야 할 처지.
아내의 불만이 폭발한 원인은 딸의 공개수업에 참여했던 느낌을 표현한 글 때문이었다.

“나만 공개적으로 나쁜 ×이 되었다. 남편이 내 말을 곡해해 각시 욕먹게 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글 내리기를 주문했다.
“이기적인 부모”라는 악플이 따랐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곡해한 부분에 대해 수정을 가했다.
랬더니 본래 의도가 왜곡되면서 내 자신만의 색깔이 사라졌다.

이때, “글?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눈앞에 닥친 글쓰기 위기를 어떻게 탈출해야 할까?


답은 두 가지.
첫째, 일상다반사를 그만 쓰기.
둘째, 내용을 에둘러 쓰기.

하지만 두 가지다 쉽지 않은 과제다. 

첫째, 내가 일상다반사를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는다는 점이다.
또 내 경험을 통해 놓치기 쉬운 일상에 대해 타인이 삶을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랬는데 가족들에게 경고 메시지가 날아들고 말았다.
사실 가족의 경고(?)는 이번  만이 아니다. 이전부터 있었지만 서로 조심했다.

아내와 딸, 아들은 하고픈 말을 조심씩 아꼈다.
나 또한 쓰고자 하는 걸 조금씩 줄여갔다. 말하자면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까발려야 스스로 배움을 얻든, 찾든 할 수 있으니까.
연유로 가족들은 간혹 글감을 몸소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블로그를 꿈꿨었다.

아버지는 아버지 입장에서, 엄마는 엄마 처지서, 딸과 아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각기 다른 시각으로 일상과 사물을 겹쳐 바라볼 수 있어서다.
그래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리라 여겼었다.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다들 자신의 공간을 마련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라서.
그렇지만 바쁘다는, 공부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말했다.

“내가 쓰면 당신은 죽었어. 옆에서 당신 이야기 발리면 당신이 남아날 줄 알아?”

그러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가족 소통의 출발이니까.


둘째, 가족 이야기를 에둘러 쓰는 건 어려워도 방법이 있다.
남 이야기를 많이 쓰면 된다.
하지만 가족 이야기를 에둘러 쓰면서 남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쓴다는 건 양심이 허락되질 않는다. 그래, 글쓰기가 고민이다. 방법은 있다.

내와 남의 경험을 혼합한 글감이 그것이다.
내 경우는 그대로 밝히고, 남 이야기는 가명 혹은 지인이란 통칭이면 되니까.
주위에선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경우 글쓰기를 허락한 상태이거나 양해를 구한다.
역시, 글쓰기란 쉽지 않다. 재주가 있든 없든 간에.

그렇다고 글쓰기를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다. 아빠의 글쓰기를 보는 가족의 불만에 대한 변명은 이것이다. 

“글쓰기의 생명인 진솔함을 놓치지 않는다면 어떤 글이든 감동이 있다. 진실과 솔직함이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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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누나(동생) 바꿔줄게.”
의심 많은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음

 


중1 딸 초6 아들, 전화 장난을 즐깁니다.

“여보세요. ~누나(동생) 바꿔줄게.”

그리고 그 자리에서,

“누나(동생) 전화 받아.”

라며 큰소리로 말하고는 천연덕스럽게 또 자기가 받습니다.
아들도 똑같은 장난을 칩니다.

아이들이 장난치는 걸 보노라면,

“저것들을 대체 뭐 먹고 낳을까?”

라던 아내 말이 떠오릅니다. 어쩌다 저런 장난을 즐기는 걸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녀석들 요즘은 된통(?) 당하고 있습죠.
현장 사진을 찍었더니, 딸이 그러대요. 

“아빠, 이거 제가 쓸게요.”

웬일인가 싶어요. 블로그 같이 운영하기로 했는데 귀찮다며 안한다더니… ㅋㅋ~.
또 자기 관련 글 쓰려면 쓰지 말라고 난리(?)더니 자기가 쓴답니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봐요~^^

 

전화 장난 중인 딸입니다.


 

 다음은 딸이 쓴 글입니다.

 

안녕하세영ㅋㅋ. 저는 유빈입니다.
음, 오랜만이네요. 편하게 갈께욬!!!

저희 집에서 일어나는 유쾌한 이야기를 들고 왔슴돠!
저희 집은 저와 동생 목소리 구분 못하는 친구들과 가족 때문에 늘 애먹음ㅋ
먼저 동생 친구 전화. 하도 속아서인지 제가 받아도 동생이 받아도

“동생 바꿔 줘”

라고 하는 것임. 내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거~
저와 동생 목소리 구분 하는 건 딱 5명밖에 없음
엄마, 아빠, 동생 친구 1, 동생 친구 2, 내 친구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차이 모름ㅋㅋ
그렇게 닮았는지 모르겠는데 동생 바꿔주기도 귀찮고, 동생도 귀찮아해서
그냥 능숙하게 대화하고 상대방한테 내용 전해주는 정도에 이르렀음

참 대단한 것 같음ㅋㅋ 완전 웃김ㅋㅋㅋㅋ

제 친구들은 잘 의심하지 않는데
동생 친구들은 엄청 의심해서 동생이 진저리 나있음.

전화 받다 진짜 웃겨서, 웃으면 바로 알아채는 기술도 생겼는데,
진짜 동생이 받으면 또 혼란에 빠지고….
친구 뿐 아니라, 엄마도 속고 아빠도 속고 다 속음ㅋㅋㅋㅋ

할머니도

“유빈이냐? 태빈이냐?”

물어보시고, 유빈이라고 해도

“태빈아!!”

라고 하시고... 대략난감!! 뭐라고 하기도 뭐하고.

친구들은 속여도 그만 안속여도 그만이지만
어른들한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음...
말 그대로 절레절레임...

좋은 점이 있다면 상대방이 귀찮을 때 좋다는 거임.
안 좋은 점은 계속 의심받는 것. 의심이 요즘은 너무 심해져서 문제라는 거임.

이제는 받기만 해도 바꿔달라고 해서 난감함.. 그럴 때 내가

“내가 이폰 주인임ㅋㅋㅋ 야 나 유빈이야!!”

라고 해도 안 믿음. 속고만 살았나?!!?!?!?!?! 그런데도 너무 웃겨서 웃으면 또

“너 유빈이 아니잖아!!”

라고 하고ㅋㅋ

“너무해 ㅠㅅㅠ”

이래야만 친구들이 믿고 할 말을 시작함. 아님 영상통화를 하던지!!
문자도 동생이 확인할 때가 있는데, 정말 문자로 해도 친구들이 안 믿는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동생 친구들은 너무 나쁨ㅋㅋ? 악마임요

내가 받으면 정색하면서,

“태빈이 바꿔!!”

이러면서 뭐라 하는데 무서워서 원ㅋㅋ
요즘은 속아주는 사람들이 고마울 따름임..

의심 많은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음. 전화 받기 두려워짐..

하...........그래도 힘 낼꺼임!!


으잉 끝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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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왜 그리 속이 없을까?’ 재미
“친구와 같이 있소. 이제 믿어도 돼요!”

 

 


임재범 씨가 ‘나는 가수다’에서 그러대요.

“제가 사실 친구가 없어요, 한명도….
사적인 것까지 털어놔도 허허하고 웃어주는 친구가 없어요.
그래서 친구가 그리웠나 보죠, 순간… 너무 외로웠으니까.
항상 혼자였으니까…. 그래서 다 쏟았어요….”

고독과 친구였던 삶에 대한 고백인 셈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임재범의 노래는 내공이 느껴지나 봅니다.

사실, 남자 세계에서 정말 이랬다간 완전 왕따입니다.
하여, 사람들이 일정 부분 세상에 맞춰 사는 것이지요.



50 중반인 지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이, 지금 나올 수 있지?”

“무슨 일인데요?”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로 나와 줘.”

TV에서 연예인들의 친구 찾기 프로그램처럼 다짜고짜 나오라는 겁니다.

젊은 날 친구들이 요런 수법을 쓸 때,

“야, 또 동원령이냐?”

하면서도 부단히 불려 나갔지요.


단정한 차림의 옷을 챙겨 입고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지인과 그 친구들이 있더군요. 상황을 설명하대요.

“우리 세 명은 마산이 고향인 중학교 동창이야.
객지에서 믿을만한 아우를 만났는지 시험했는데 자네가 왔어. 고마워~.”

헉, 예비군 훈련이었습니다.
중년 나이에도 이런 내기가 필요한 게 남자들인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보기에는 ‘남자들은 왜 그리 속이 없을까?’ 하겠지만,
이 또한 삶의 재미인 걸 어떡합니까.

특히 가족을 제외하고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선ㆍ후배가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입니다.

 

 

 소개 중에, 갑자기 지인 친구의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진짜 중학교 친구들이랑 있다니까. 바꿔 줘? 아나, 전화 좀 받아 봐라.”

헉, 이 무슨 추태? 말로만 듣던 아내의 확인 전화였습니다.
오십 중반 친구도 눈치 9단이더군요.

“제수 씨. 잘 사요?”

그런데 아직 믿지 못했는지 통화가 끝나지 않더라고요.

“… 거짓말이라고? 다른 친구 바꿔 줄 테니 목소리 잘 들어 봐.”

“진짜, 친구들과 같이 있소. 이제 믿어도 돼요!”

한바탕 웃음이 터졌지요. 참 뭐한 부부입니다.
모양새는 빠졌지만, 웃음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나저나 미주알고주알 이렇게 마음 터놓고 지낼 진정한 친구가 있을까 싶더군요!!!
‘Yes’란 답을 얻으려면 삶 잘 살아야겠지요.

가슴 나눌 벗들이 그립기만 합니다.

 

아래 추천해 주실 거죠? 고마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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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온 딸의 남자 친구 보고 내린 평가 기준
양가 상견례에서 사윗감 평가한 4가지 기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설날은 이런 맛이죠?


딸의 남자친구, 즉 예비 사윗감에 대한 부모의 평가는 모든 방향에서 이뤄진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시도 때도 없다. 물론, 예비 며느리 감도 예외일 수 없다.

이번 설날에도 수많은 남친, 예비 부부, 혹은 신혼부부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양가 어른들에게 예쁘게 보일 방법은 없을까?

걱정 혹은 긴장하는 분들 많을 거다. 그렇담, 그 해결책은?

지인에게 들은 예비 사윗감 평가 기준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보자.


인사 온 딸의 남자 친구를 보고 내린 3가지 평가

지인은 처음 인사 온 딸의 남자 친구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가 마음어 들어한 평가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그는 어른들은 계시는지?
어른들이 살아 계셔야 장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야 딸을 젊어서 과부 만들 확률이 적다는 거다. 부부의 백년해로가 기준이다.

둘째, 직장과 연봉은?
미래 비전과 딸을 먹여 살릴 남자의 능력을 따진 것이다. 연봉을 정확히 알아야 맞벌이 여부가 결정된다는 거다. 이것은 생활력과 관련된 기준이다.

셋째, 입맛은 어떤지?
직장생활 하느라 요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딸. 그런데 남자 입맛이 까다로우면 딸이 피곤하다는 거다. 다행히 밥 먹을 때 가리는 것 없이 아무거나 잘 먹었다나. 

그는 예비 사윗감을 보고 남자답다는 데서 후한 점수를 줬다. 이는 여성스러워 가는 세태에 대한 반증일 터. 특히 언제나 가족을 부양할 배짱이 있는지 여부를 남자다움으로 판가름했단다.


양가 상견례에서 사윗감을 평가한 기준 4가지

지인은 양가 상견례 날짜와 장소, 그리고 시간 등 제반사항을 예비 사윗감에게 위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가를 보기 위함이었다. 이에 더해 남자가 갖춰야 할 품성을 보았다.

첫째, 두 사람의 사랑
사랑은 살면서 가장 큰 평가 기준이다. 결혼을 결심했지만 부모 입장에서 사랑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노릇. 그런데 예비 사윗감이 상견례 자리에서 보여 준 사랑의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나.

둘째, 일에 대한 추진력
양가와 연락하며 적합한 날짜와 시간을 정해 장소까지 신속하게 잡았다. 자칫 예상되는 질질 끄는 맛을 제거한 것이다. 깔끔한 일처리에서 추진력을 엿본 것이다.

셋째, 적절한 분위기
처음 만나는 사돈지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상쇄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다. 튀지도 않고, 격이 없지도 않은 적당한 곳이었다나. 이게 부부싸움 뒤끝을 완만히 해결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나.

넷째, 배려하는 마음
긴장되는 상견례다. 혹시 양가 부모의 뜻이 어긋날 경우도 종종 있다. 하여, 예견되는 오해가 없도록 양가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야 하고, 혼수와 신혼 집 등에 대해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인은 예비 사윗감 보는 자리와 양가 상견례를 통해 “내 딸을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서 예비 사위들이 매 순간순간 긴장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게다.

그것은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 혼사를 허술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시선 하나하나가 날카롭게 그 사람을 판단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올 설을 전후해 이뤄질 중매 혹은 만남과 상견례에서 좋은 결과 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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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롭게 받길 원하면 그게 더 도둑놈이죠.”
만만찮았던 몸속에 집어넣은 위내시경의 위력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신, 건강검진 받으시오!”

지금껏 건강검진이라곤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를 향한 아내의 강압적(?) 요구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1월부터 줄그장창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 받길 요구했기에 할 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형식적인 건강검진 받아서 뭐할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낌새를 알았을까, 아내가 오금을 박았습니다.

“내가 당신 생각해서 건강검진 받으라는 줄 알아요? 천만의 말씀. 그거 안 받고 당신 죽으면 가족이 받을 연금을 못 받는단 말예욧!”

이 소리에 완전 백기 들었습니다. 어제 아침, 터덜터덜 병원으로 갔습니다. 가던 중, 아내는 또 한소리를 보탰습니다.

“빨리빨리 받으라니깐 말 안 듣더니…. 예전에는 귀한 대접 받으면서 검진했는데, 지금은 짐짝 취급이니 그리 알고 받아요.”


“한가롭게 받길 원하면 그게 더 도둑놈이죠.”

아내 말처럼 건강검진센터에는 사람이 바글바글 만원이더군요. 아는 얼굴도 꽤 보이대요.

“건강검진 받으러 왔어요.”

“안 받으려 버텼더니, 안 받으면 사업주가 고발된다고 엄포여서 할 수 없이 왔어요.”

“저도 각시가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왔어요. 사람 정말 많네요.”
“올해도 며칠 안 남았는데, 한가롭게 받길 원하면 그게 도둑놈이죠. 그럴 줄 알아야지.”

동의했습니다. 다른 병원의 건강검진도 사람이 넘친다더군요. 참고로, 일반건강검진은 남자의 경우 소변검사, 피검사, 키, 몸무게, 시력, 청력, 의사 면담, 치아검진, X-레이, 위내시경 등을 하더군요.

만만찮았던 몸속에 집어넣은 위내시경 위력

검진 중 피를 뽑으려고 줄을 섰는데, 한 아저씨 얼굴이 벌게져 다른 간호사를 대동하고 와선 “내가 빨리 왔는데 순서대로 안 해준다.”고 목청을 높이더군요. 피식 웃음이 나오더군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선 역시 순서가 말썽이었습니다.

눈을 질금 감고 피를 뽑았지요. 예전에 헌혈하러 갔다가 피가 잘 안 나와 도중에 그만 뒀던 경력(?)이 있는지라 긴장했는데 무난히 나오더군요. 고충이었던 건, 위내시경이었습니다.

남들은 검진 외의 자부담으로 3만원 내고 수면 내시경을 하던데, 생전 처음이라 무턱대고 그냥 받겠다고 부린 호기가 ‘으으으~’ 후회막급이었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굶었던 터라 토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나오질 않더군요. 

끝나고 나왔는데도 몸속에 집어넣었던 위내시경 위력(?)이 만만찮더군요. 어쨌든 건강검진을 마쳤습니다. 벌써부터 겸진 결과가 기다려지는군요. 올해 아직까지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분은 내년 초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서두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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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코에 그거 뭐야? 여보, 아들 좀 봐요.”
“음식 쓰레기를 냄새나게 왜 가만 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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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중인 아들.

“설거지 누가 할까?”

저녁 식사 후 물었더니, 초등 6학년 딸도, 5학년 아들도 말이 없었습니다. 대개 돌아가며 설거지를 하는지라 순번과 상황을 따졌습니다.

“아들 당첨. 아빠는 어제 저녁에, 누나는 고기 굽고 밥 차렸잖아.”
“알았어요. 좀 쉬었다가 할게요.”

어쩔 수 없단 말투였습니다. 설거지 빨리 해치우면 좋으련만 아들은 뜸을 들이더군요.


코에 테이프를 붙였습니다.

“아들, 코에 그거 뭐야? 여보, 아들 좀 봐요.”

“아들, 빨리 설거지 안하고 뭐해.”

설거지 폼을 잡던 녀석이 다른 짓입니다. 빨래집게를 찾아 코를 찝더니 아프다며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뒤늦게 퇴근한 아내, 설거지 중인 아들을 보더니 호들갑입니다.

“아들, 코에 그거 뭐야? 여보, 우리 아들 좀 봐요.”

녀석도 ‘씨~익’ 웃으며 한 소리 하더군요.

“헤헤~, 엄마 음식 쓰레기 냄새가 나서 테이프로 코를 막았어요.”

웃음을 터트리던 아내, 아들 모습 사진 찍길 요청하더군요. 아들은 손사래였습니다. 아내는 아들의 신기 발랄한 모습을 꼭 담아야 한다며 거듭 사진 찍기를 요구했습니다. 아들이 퉁명스레 말을 뱉었습니다.


“음식 쓰레기를 냄새나게 왜 가만 뒀어요.”

“나 힘들게, 음식 쓰레기 빨리 버리지 냄새나게 왜 가만 뒀어요.”
“미안~. 은갈치 다듬고 치우는 걸 깜빡했네. 이런 건 추억으로 남겨야지.”

그제야 아들은 사진 찍기를 허락했습니다. 글 올릴 경우 천원 주는 조건부로.(나 원 참, 더러버서, ㅋㅋ~) 빵 터진 건 그 후였습니다.

“엄마, 코가 넘 간지러워요. 코 좀 긁어줘요. 빨리~”
“거길 어떻게 긁어. 너가 긁어.”

그러면서 테이프 위에서 묘하게 긁고 긁히는 엄마와 아들 폼이 너무 우습더군요. 이렇게 온 가족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뜻하지 않았던 가족의 추억 쌓기였지요.

코가 가렵다며 긁어달란 소리에 엄마가 긁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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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impoman.tistory.com BlogIcon 지후니(심종열)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드님이 개그 감각이 있는데요.~~~ ^^
    온 가족이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셨겠네요.~~

    2010.11.19 07:47 신고

선운사 절대 단풍, 절정은 이번 주와 다음 주
“천천히 가. 단풍 두고 빨리 갈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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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아름다운 본연의 색으로 깔끔하게 물드는 이유는 낮과 밤의 일교차 때문입니다.

이는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에서 달군 쇠를 빼내, 찬물에 넣을 때 나는 ‘치지 직~’ 식는 쇳소리가 철에게 강인함을 얻는 이치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선운사 절대단풍을 찾아 온 연인들.

선운사 송악.

선운사 단풍은 물이 있어 완성미가 더합니다.

“야, 사람 많네. 사람 모으는 데는 단풍만한 게 없는 것 같아.”

전북 고창 선운사 단풍은 지나가는 사람의 말처럼 매력 덩어리였습니다. 문수사 단풍이 절제된 아름다움이라면 선운사 단풍은 개울이 있어 완성미가 높은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무얼 생각하고 걷고 있을까?

 아름다움 자체지요?

이 여인네들 땜에 가족들이 단풍 여행에 나섰습니다.

선운사 절대 단풍의 절정, 이번 주와 다음 주

아내가 바위에 앉아 사색을 즐기고 있더군요. 뒤에서 몰래 다가가 놀래 키려는데 누군가가 제 팔을 붙잡지 뭡니까. 예상치 못했던지라 깜짝 놀랐지요. 지인이더군요. 참 좁은 세상입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다니.

“아니, 어쩐 일이세요?”
“친구 부부와 선운산 등산하고 내려오는 길이야. 선운사 단풍이 우릴 부르더라고.”

그렇습니다. 선운사 단풍이 부르는 소리에 저희 가족과 아내 친구 가족이 함께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지요.

“선운사 단풍은 아직 절정이 아니네. 작은 나무는 단풍이 들었는데, 큰 나무는 아직 단풍이 덜 피었어.”

그렇습니다. 선운사 단풍은 이번 주말, 혹은 다음 주가 절정이지 싶습니다.

 단풍이 관광객의 발길을 끄는 요즘입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도랑을 걷는 스님 일행이 풍광의 운치를 더해주었습니다.

“천천히 가. 이런 단풍을 두고 빨리 갈 수 있겠어?”

단풍 구경 후 내려오다, 앞서 가던 중년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이 우리가 늦었다고 화낼라, 빨리 가자.”
“그냥 천천히 가. 이런 단풍을 두고 빨리 갈 수 있겠어? 남자들이 화내면 핑계대자고.”

“어떻게?”
“단풍에 취해 있는데 남자들이 말을 걸대. 그것도 뿌리치고 온 우리한테 화를 내? 멋진 남자들도 버리고 잘 서지도 않는 사람에게 왔는데….”

그러면서 서로 보며 “맞다, 맞다”하고 희희낙락이더군요. 그 모습에 허허 웃음이 나오더군요. 선운사 단풍은 이렇듯 별 희한한 핑계거릴 제공하는 아름다움 자체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가을 여행지로 선운사 ‘절대 단풍’을 구경하는 것도 잃은 점수 따기에 안성맞춤인 것 같습니다.

 선운사 절대 단풍은 눈이 즐거웠지요.

 물에 비친 단풍.

이번 주, 단풍이 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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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내 아이에게 주는 용돈 받아 말아, 부담
“용돈 주는 사람 마음이지, 받는 사람 마음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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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돈이 아까우면 남의 돈도 아까운 법.

어릴 때 어른들이 주시는 용돈을 넙죽넙죽 받았습니다. 자식 키우다 보니 남의 자식 용돈주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겠더군요.

지인 가족과 만날 때 간혹 보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주지 않는 편입니다. 가족끼리 종종 저녁 먹는 한 지인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용돈을 주시더군요.

그런데 지인 자녀는 외지에서 대학과 직장에 다니는 터라 만나질 못합니다. 번번이 제 아이들만 용돈을 챙기니 염치가 없더군요. 하여, 내린 처방전이 있었지요.

“용돈 주는 사람 마음이지, 받는 사람 마음이나.”

“형님, 제 아이들 만나면 용돈 주시지 마세요.”
“왜 그래? 줄만 하니 주지. 그리고 어린 아이들 용돈 주는 재미를 내게서 빼앗지 마.”

용돈 주는 재미도 있나 보더군요. 그래도 제겐 부담이라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때요? 천원을 주시면 저도 부담이 없을 것 같은데요.”
“에이~, 예쁘니까 주지. 용돈 주는 사람 마음이지, 받는 사람 마음이나. 그냥 냅둬.”

제가 이 같은 판단을 한 이유는 아이들이 지인을 만나면 은근히 또 용돈 주겠지 기대하는 몸짓이 보여섭니다. 어쨌거나 제 의사전달은 한 셈입니다. 이를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 생각은 좀 다르더군요.

용돈 주는 사람, 만날 때마다 반갑고 교감된다?

“나 어렸을 때 이런 사람이 제일 싫었어요. 오빠 둘, 나, 그리고 동생 순으로 5천원, 3천원, 2천원, 천원으로 나눠 용돈을 꼭 차별해서 주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냥 똑같이 주면 어디 덧나나?”

맞아요. 큰 아이와 작은 아이 구분이 있었지요. 저도 용돈을 달리 받으면서 이런 생각 안했는데, 아내는 생각이 한 발짝 더 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더군요.

“저는 용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어요. 그 분은 저를 무척 좋아해서 다른 형제들은 안 줘도 저는 꼭 따로 챙겨줬거든요. 그분을 만날 때마다 어찌나 반갑고 교감이 되던지 지금도 생각난다니까요. 이런 교감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가족과 친척 아닌 어떤 사람과 특별한 교감은 좋은 거지요. 하지만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내 주머니가 아까우면 남 주머니를 아껴주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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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웃보다 못하다
결혼이민자가 본 한국, 그리고  한국사람

“한국 사람은 자기 혼자만 안다.”

우리나라로 시집 온 중국인 강 모씨의 뼈아픈 말이다.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살기 빠듯하단 핑계로 다른 사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또 따뜻한 우리네 정이 많이 사라지기도 해서다.

결혼이민자로 시집 온 지 3년 밖에 안 된 그녀. 그녀는 왜 한국 사람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을까?

그녀의 시댁은 3남 2녀. 서로 돕고 오붓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가슴을 찌르는 비수처럼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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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한국에서는 어른들이 형제ㆍ자매가 최고라며 그 이상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돈벌이에 바빠, 바쁘다는 핑계로 형제간도 모른 채 산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친한 이웃보다 못하다.”

형제간에 어려우면 작은 거라도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만나면 서로 욕하고 싸우기까지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제사 등 집안 경조사가 닥치면 동서지간에도 일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눈치 보며 대는 핑계가 뻔한 발뺌용이라는 설명이다. 이쯤 되면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고 충고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녀는 형제가 많을수록 든든하고 좋다는 말보다, 이 말이 더 들어 맞는단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가지가 많은 나무는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흔들려 조용한 날이 없다’는 뜻이다. ‘자식을 많이 둔 부모에게 근심, 걱정이 끊일 날이 없다’란 의미다. 그녀는 자기 고향에선 그렇지 않다고 했다.

형제가 어렵게 사는데도 나 몰라라 한다?

“내가 살던 중국에선 어려운 사람에게 형제나 동네 사람들이 마음과 물질로 도왔다. 그러나 한국은 옆에 누가 사는 줄도 모르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혼자 밖에 모른다.”
 
좋은 점도 많은데 나쁜 것만 골라 본 느낌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더 뼈아픈 소릴 했다.

“형제 중 우리가 제일 어렵게 산다. 그런데 나 몰라라 한다. 혹시 도움이라도 요청할까봐 실실 피한다. 하지만 자기들 힘들 때는 없는 우리를 찾는다. 이로 인해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우울증에 시달린 주부들 비보를 간혹 접했던 터라 예삿일이 아니었다. 놀라는 반응에 웃으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단다. 다행히 우울증은 아이를 낳은 후 사라졌다고 했다.

그녀와 대화에서 우리네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내 자신부터 반성됐다. 바쁘다는 핑계로 형제를 거의 잊고 지냈다. 얼굴 보는 날도 기껏해야 년에 한두 번. 어떤 때는 이마저 쉽지 않았다.

추석이 앞으로 한 달 남짓. 형제들에게 안부라도 먼저 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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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훔치는 무궁무진한 정신세계 여행이 압권
틀에 갇힌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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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인셉션(Inception)은 무궁무진한 인간의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무의식인 꿈속에서 또 다른 꿈속으로 들어가는 생각을 어찌 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영화는 많았다. 그것은 육체의 과거였지, 정신(智)의 과거는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인셉션은 정신세계의 여행도 가능함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인셉션은 엉뚱하게 생각을 훔치는 범죄의 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일단, 충격적이었던 줄거리를 살펴보자.

생각 훔치는 무궁무진한 정신세계 여행과 영상이 ‘압권’

 

인간의 꿈속 여행이란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그는 꿈을 이용해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비밀을 훔친다. 그러던 중 아내를 살해한 누명을 쓰고 도망자가 된다. 이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코브는 새로운 생각을 심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거대 기업의 후계자 피셔(킬리언 머피 분)의 머릿속에 기업 합병을 막는 생각을 심는 것.

코브는 거액의 돈과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에 고민한다. 결국 의뢰를 수락한 코브는 꿈의 공간 설계자 등 최고 실력자 5명으로 팀을 꾸려 작전에 돌입한다.

그러나 표적인 피셔 진영의 반격도 만만찮다. 또한 코브가 사랑하는 아내 맬(마리온 코티아르 분)은 코브의 의식과 무의식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작전을 방해하는데….

 

인셉션, 삶과 정신세계를 파헤친 철학적인 영화

 

“머릿속 아이디어가 도시를 지을 수도 있지. 세계를 바꿀 수도 있고, 법을 만들 수도 있어.” - ‘인셉션’ 중 코브의 대사 -

그러려면 상상력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실제로 주인공 코브는 현실과 비현실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또 재벌 2세 피셔의 삶의 목표는 명확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들은 난관을 극복하고 삶의 목표를 분명히 세운다.

인셉션의 화려한 영상과 액션은 자신을 바로 세우기까지 상상의 세계를 어떻게 끄집어 낼 것인가 하는 수단일 뿐이다. 해리포터 등이 동화적 상상의 세계를 그렸다면, 인셉션은 현실의 정신세계를 상상으로 영상화한 대작이었다.

어쨌든, 인셉션은 삶과 정신세계를 마구 파헤친 철학적인 영화였다. 꿈과 이상을 갖는 인간에게 자아성찰의 계기를 던져 준 영화기도 했다. 특히 인간의 삶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고, 스스로 생산함을 강조한 영화였다.

삶의 지표가 흔들리는 분들에게 감히 이 영화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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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arketing360.tistory.com BlogIcon 미스터브랜드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순히 볼거리만 가득한 영화가 아니라..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영화네요..잘 보고 갑니다.

    2010.08.14 19:32 신고
  2. Favicon of http://www.edhardykleidungshop.com/ BlogIcon ed hardy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산으로 인한 형제간의 갈등을 심심찮게 접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쯧쯧쯧~’하고 혀를 차지만 실상 자신이 당사자가 된다면 ‘그깟 돈이 중요해? 형제간 우애가 더 중요하지!’라고 장담할 수 없다

    2010.09.19 17:47 신고

‘햄스터’ 얼렁뚱땅 새로운 가족으로 합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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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 햄스터가 기거했던 건 지난 5월 하순부터였습니다.

“햄스터 어디에서 난 거야?”
“친구에게 1주일간 빌렸어요.”

아이들은 1주일이 지나도 햄스터를 가져다 줄 생각을 않는 것이었습니다. 눈치가 이상했습니다. 어제 밤 햄스터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1주일 빌렸다고 하지 않았어?”
“내일 돌려 줄 거예요.”

그랬는데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아이들이 책장 틈새를 조심스레 뒤지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들 무얼 찾고 있는 거야?”
“아빠, 아니에요.”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10시 자야 할 시간임에도 아이들은 잘 생각을 않고 있었습니다.

“햄스터 탈출했지? 제대로 찾아라.”
“예.” 

강아지가 햄스터 냄새를 맡아 끙끙대는 책장 밑을 뒤지더니 어느 새 소파를 들어내고 있었습니다. 11시가 넘자 내일 찾도록 하고 잠을 재웠습니다. 그러면서 오금을 박았습니다.

“내일은 꼭 가져다 줘라.”

오늘 아침 7시, 늦잠 자던 아이들이 햄스터를 찾고 있었습니다. 햄스터는 거실을 벗어나 베란다로 옮겨갔던 모양입니다.

“저기 있다.”

환호성이 울렸습니다. 개 코인 강아지를 따른 결과였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대화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거 사는데 얼마 들었어?”
“2천 원요.”

“언제 샀어?”
“예전에 샀는데 친구 집에 맡겼어요.”

소리들을 걸 두려워 한 나머지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산 걸 다른 집에 맡길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햄스터 집에서 길러라.”

둘이었던 햄스터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는데 하나를 넣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이렇게 햄스터를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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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족이 하나 더 늘었군요.
    새카만 눈동자가 너무 귀여워요!!

    2010.06.08 11:54 신고

“부모는 살아 계신 것만으로 든든한 버팀목”
설 명절, 부모님께 얼굴 보여 드리는 게 효도


“부모님이 그립다!”

설을 맞아 어제 만난 지인은 회포를 풀던 중 부모님과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설인데 고향에 가면 되잖아요. 왜 안 가시게요?”
“아직 몰랐어? 두 분 다 고생만하시다 돌아가시고 안 계셔.”

헉. 그렇잖아도 그를 만나기 전, 통화한 다른 지인도 그랬었다.

“지난 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번 설에는 고향에 안가. 대신 어머니 생신이 설 일주일 뒤라서 그때 형제들이 다 만나기로 했어.”

젊었을 땐 거의 부모님이 살아 계셨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졌다. 세월은 이렇게 가족 여건을 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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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라도 꼭 가서 얼굴 내미는 자체로 효도”

“부모님이 안계시면 형제라도 모여 제사를 지내야죠?”
“내가 말 안했나. 우리 가족은 2남 2녀인데 형님이 돌아가셔 부모님 제사는 내가 지내. 부모님이 계셔야 가족이 모이지, 안 계시면 만나기도 어려워.”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때, 어머니는 군대 있을 때 돌아가셨어. 막내아들 효도도 못 받아보고 돌아가셨지.”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러면서 하는 말,

“부모님 계실 때 잘해. 부모는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야. 효도가 따로 없어. 명절에 늦더라도 꼭 가서 얼굴 내미는 자체가 효도야. 부모님 자주 찾아뵙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집에 온대요?”
“당연히 와야지. 우리 집은 늦더라도 꼭 와야 돼. 아버지가 용돈 줄 때는 명절에 꼭 오라는 조건부야, 조건부. 안 그래?”

옮은 소리다. 하지만 매번 바쁘다는 핑계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 속을 알면서도 잊는다. 명절, 부모님께 얼굴 보여 드리는 게 효도라니 늦기 전에 효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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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ㆍ어묵ㆍ닭 가슴살의 만남, 간식으로 짱!
방학 간식 만들기 프로젝트, 온가족 도전기


닭 가슴살 모둠 꼬지. 

신혼 초, 연년생인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절실했던 게 분유와 기저귀였습니다. 이 중 월급 타면 제일 먼저 챙겼던 게 아이들 먹을거리인 분유였습니다. 이것을 사고 나면 왠지 마음 든든했습니다.

그랬는데 어느 새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금에는 발육성장을 위한 간식이 주요 관심사로 변하더군요. 아내는 아이들 간식 만들기에 정성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 다이어트 식품의 대명사 닭 가슴살과 떡, 그리고 어묵을 조합한 ‘닭 가슴살 모둠 꼬지’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이러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라고 태클 걸까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금강산도식후경’이라 했으니 소개해도 무방하겠지요.


닭 가슴살

‘닭 가슴살 모둠 꼬지’ 만드는 과정

‘닭 가슴살 모둠 꼬지’ 만드는 과정을 살펴볼까요.

1. 닭 가슴살, 어묵, 떡 등 재료를 준비합니다.
2. 닭 가슴살을 얇게 잘라 남은 기름기를 뺍니다.
3. 후추 가루와 소금 등으로 닭 가슴살 간을 맞춥니다.
4. 떡과 어묵 등을 먹기에 적당한 크기로 자릅니다.
5. 꼬치에 닭 가슴살, 어묵, 떡 등을 끼웁니다.
6. 재료를 끼운 꼬지를 프라이팬 등에서 익힙니다.
7. 오렌지주스, 토마토케첩, 고춧가루, 고추장, 매실 등 입맛대로 소스를 만듭니다.
8. 꼬지에 소스를 바릅니다.


양념 소스.

닭 가슴살 모둠 꼬지.

방학 간식 만들기 프로젝트, 온 가족 도전기

이렇게 가족들이 모여 만든 ‘닭 가슴살 모둠 꼬지’가 완성되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쳤는데, 역시 만들어 놓으니 마음 든든합니다. 다음에 먹을 것을 남겨두고 일부만 먹었습니다. 

온 가족이 애쓰고 만든 ‘닭 가슴살 모둠 꼬지’ 맛은 어떨까요? 저마다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와~, 짱이다!”

감탄이 쏟아집니다. 아이들 교육에도 좋고, 건강에도 제격인 ‘간식 만들기 프로젝트’ 도전해볼만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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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가슴살 모둠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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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강아지 몽돌이의 생존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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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멋있게 찍어주세요."

강아지 기른 지 2년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반대했는데, 결국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나더군요.

배신을 모르는 것도 그렇고, 사랑받는 법을 알더군요.

식구들도 집에 오면 강아지 몽돌이부터 찾지요.

이게 생존법칙인가 보네요.

저희 집 강아지 귀여운 모습 한 번 보실래요.


산책 때 동종을 만나면 반가운가 봐요.
" 나 조는 모습 찍지 마요."

저희 집 강아지 몽돌이가 주인에게 사랑받는 생존법칙입니다.

1. 주인을 반긴다!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주인을 반깁니다.

저녁때면 아들 녀석 방에 있다가 가족이 다 들어와서야 딸 방에서 잠에 듭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저희 부부 방에 들어와 안부를 묻습니다.

꼭 가운데로 들어옵니다. 그럼, 이 노~ㅁ 하지요.


중성화 수술 후 며칠 앓았습니다.
"저 예뻐요?"

중성화 수술 후 아픔을 호소하는 몽돌이를 걱정스런 눈으로 보는 아들.

2. 용변은 정해진 곳에 본다!
요거 힘들더군요. 베란다에서 용변을 보게 했는데 아무데서나 싸는 겁니다.

먹이로 꼬셨지요. 그랬더니 차츰 질이 들더군요.

요즘은 용변 후 곁에 와서 꼬리를 흔듭니다. 살펴보면 영락없습니다. ‘간식 주세요’ 하는 소리지요.


산책.

"산을 탔더니 힘들어요"
"이거 장난이 아니네!"

3. 훔쳐 먹는 법이 없다!
주인이 식사 중이면 식탁 아래 있습니다.

고기반찬 냄새가 진동해도 코를 실룩거릴 뿐 가만있습니다.

식탐이 많은데도 먹는 걸 훔쳐 먹질 않습니다.

밥 먹어라 말이 떨어져야 먹는 귀염성이 있더군요.


"아이, 맛있다!"

다리 쭉 편 모습이 재밌습니다.
슬며시 눈을 뜨더니 다시 감았습니다.

덕분에 아이들 정서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가족들은 몽돌이가 좋아 늙어 힘없을 때에도 사랑해 줄 거라 합니다.

목숨이 다하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준다나요.


잠에 취해 뒤집어졌습니다.
몽돌이가 좋아하는 인형. 이거 뺏길까봐 여기서 잡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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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ue-paper.tistory.com BlogIcon blue paper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몽돌이 너무 귀여워요~ ^^

    2009.12.24 16:55 신고
  2. Favicon of http://blue-paper.tistory.com BlogIcon blue paper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몽돌이 너무 귀여워요~ ^^

    2009.12.24 16:55 신고
  3. Favicon of http://exceltong.tistory.com BlogIcon 엑셀통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존전략..와닿네요..즐거운 성탄되세요

    2009.12.24 17:28 신고
  4. Favicon of http://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아지 참 귀엽네요~
    인형과 구분이 안되요~

    2009.12.25 00:16 신고
  5. Favicon of http://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공. 사랑 받을 행동 골라하네요.ㅎㅎㅎ

    2009.12.25 08:15 신고

대기업 퇴사 후 다시 들어간 사연 들어보니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기업 울타리가 크다”

직장 구하기 힘들다죠?

그런데 한번 들어가기도 힘들다는 대기업을 퇴사 후 다시 들어간 지인이 있습니다. 그것도 사오정으로 불리는 40대 중반에 그랬으니 대단하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인은 2년전 잘 다니는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내 사업을 한 번 해봐야겠다.”면서. 그러다 올 1월, 다니던 대기업의 부름을 다시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전례는 없었다고 합니다.

지인이 다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이끌어주는 직장 상사. 둘째, 나만이 할 수 있는 주특기. 셋째, 자신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기업이 입주해 있는 여수국가산업단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기업 울타리가 크다”

- 대기업에서 퇴사한 후 다시 입사한 전례가 있었나요?
“그런 전례가 없었지요.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특히 대기업은 자기 발로 나간 사람을 다시 오라고 안 해요. 왜냐면 대기업은 기업에 대한 충성도를 매우 중요시 하거든요. 또 있던 사람도 자르는 게 기업인데 다시 부르기가 쉽겠어요.

- 기업에 다시 들어 갈 때 조건이 있었나요?
“충성도였어요. 다시 내 발로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해야 했어요. 한 번 퇴사한 사람이라 또 나갈 수 있다는 염려가 컸지요. 그래서 면접도 보고, 기업에서 인적 조사도 다시 체크하고 신입사원과 거의 같은 과정을 거쳤지요. 월급도 3년 전 연봉으로 받는 조건이었죠. 사업이 잘 됐으면 다시 들어갈 일은 없었겠죠. 그런데 사업이란 게 쉽지 않더군요. 먹고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 직장에 다니다 개인 사업을 해 본 소감은 어때요?
“대기업이 그냥 대기업이 아니더라고요. 대기업에 있을 땐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할 일도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내 일을 하니 찾는 사람이 팍 줄더군요. 내가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대기업 울타리 덕이 컸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 직장인에서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집안 분위기도 바뀌었을 것 같은데…
“정말 놀랐어요. 직장에 다닐 때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라 평범했어요. 그런데 개인 사업을 하고 보니 집 분위기가 다르대요. 어머니도, 아내도, 아이들도 아빠 눈치를 보대요. 아빠가 기분 좋으면 집 분위기가 좋고, 아닐 땐 다 나쁜 거예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지요. 아이들 학원도 끊고 그랬지요.”

"직장 생활 잘하는 조건, 상사ㆍ주특기ㆍ능력”

- 직장에 다시 들어가서 달라진 게 있나요?
“전에는 무얼 하든 자신감이 있었고, 승진에 대한 욕심도 많았지요. 다시 들어가니 욕심이 사라지더군요. 대신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상황을 좀 더 여유 있게 보는 눈이 생긴 것 같아요.”

- 직장에 다시 들어 갈 수 있었던 비결은 뭐였죠?
직장생활을 잘하는 조건은 3가지는 첫째 이끌어주는 직장 상사, 둘째 나만이 할 수 있는 주특기, 셋째 자신의 능력인 것 같아요.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인데 제 경우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정도로 통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가 제 인(人) 보증까지 서면서 불렀죠.”

- 아내의 내조도 무시 못 할 것 같은데…
“어렵고 힘들 때 가족과 아내가 버팀목이더군요. 옆에서 ‘힘들어 하지 마라’는 아내의 격려와 위로가 큰 힘이었지요. 가족은 서로에게 큰 힘인 것 같아요.”

한 번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대기업을 두 번이나 들어간 지인은 특별한 경우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소개하는 건 직장생활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비결이 뭔지를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원만한 직장생활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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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구절절이 옳는 말씀입니다.
    3박자가 맞아야 성공하는 군요~

    2009.12.04 09:52 신고
  2. Favicon of http://www.semiye.com BlogIcon 세미예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 티스토리 이사했죠.

    2009.12.04 10:00 신고

아빠, 아이 일자리 빼앗은 악덕 기업주?
집에서 때로는 엄마의 부재가 필요하다

집에 엄마가 없을 때 참 불편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집안 일거리가 넘친다는 겁니다. 아이들 밥 차려 줘야지, 설거지 해야지, 빨래 개야지, 집 청소해야지,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때론 귀찮습니다.

이럴 때 써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겁니다. 이도 간혹 해야 군소리 없이 잘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을 잘 안 듣거든요. 말을 듣지 않을 땐 또 다른 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시킬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너희들 이것 좀 할래?”

이렇게 하면 아이들 입이 대번에 튀어 나옵니다. 아빠가 집안일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에는 일회용으로 끝납니다. 아무리 제 자식이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마는. 약발이 오래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빠가 인심 썼다. 특별 용돈 쏜다.”

초등학교 4, 5학년인 아이들 어르고 달래기도 쉽지 않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쌓인 설거지.

“너, 돈으로 누나 매수하면 못 쓴다.”

식사 후 설거지,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때론 일이 밀려 설거지를 미룹니다. 이땐 아이들 힘을 빌립니다. 지난 금요일, 아내가 출장이라 식사 후 아이들에게 설거지를 요청했습니다.

“오늘은 너희들 설거지 좀 해라.”

연년생이라 티격태격 난립니다. 꼭 ‘누가’라고 지정해줘야 뒤끝이 없습니다. 아들에게 설거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 자신에게 할당된 일을 누나에게 천원 주고 아르바이트를 시키더군요. 그래 못을 박았습니다.

“너, 누나 돈으로 매수(?)하면 못 쓴다. 오늘 설거지는 네가 직접 해라.”
“알았어요. 용돈이 거의 떨어져 아깝기도 해요.”

이러고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상상도 못했던 반응이 딸에게서 나왔습니다.

아빠, 아이 일자리 빼앗은 악덕 기업주 되다?

“아빠, 왜 그러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막아요. 아르바이트는 제 일자리라고요, 일자리.”

헉. 그러면서 나쁜(?) 아빠라는 겁니다. 청년 일자리가 부족해 비정규직 88만원 세대. 아르바이트 44만원 세대는 들어봤어도, 초등생 일자리란 말은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아빠가 아이들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주가 된 것입니다. 가만있을 순 없었지요.

“집안 일 엄마만 하란 법 없고, 또 아빠만 하란 법도 없다. 집안일을 온 식구가 함께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그런데도 특별 용돈을 주는 건 너희들도 즐기면서 집안일을 하라는 의미야. 알겠니?”

아이들은 “아, 녜~녜~”합니다. 알았으니 그만하라는 게지요. 이쯤에서 그만둬야지 더 나갔다가는 역효과입니다. 어쨌든 아이들도 집안일을 하면서 엄마를 이해하며 소중함을 알아갑니다. 덤으로 아빠와 아이들 간 대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때론 엄마의 부재도 필요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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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 후 누나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킨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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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이혼, “아이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
부부만큼 중요한 게 ‘가족’임을 배운 하루

“아빠. 아빠는 엄마한테 말로 못 당하잖아요. 그러면서 왜 아빠는 엄마한테 이기려고 해요. 그냥 져요. 져.”

간혹 아내와 말다툼 때, 딸아이 훈수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랬는데 이틀 전 아침, 초등 5학년 딸아이가 방에서 나오더니 울먹이며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엄마. 아빠랑 헤어질 거야? 어른들은 이해가 안돼요.”

아내는 아이와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흐느낌과 이야기 소리가 났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한 마디를 남기고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지난 주 당신이 여행 가기 전, 아이들이 잘 때 우리가 잠시 다툰 걸 들었나봐.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악몽을 꿨나 봐요.”

지난 주 지인과 술 한 잔 하고 늦게 들어와 아내에게 큰 소리로 불만을 터트렸는데, 아이가 자다가 이걸 들었던 게 원인이라 짐작했습니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엄마랑 아빠가 헤어지려고 하는 꿈을 꿨대요.”

- 여보, 얘가 무슨 꿈을 꾼 거야?
“엄마랑 아빠가 헤어지려고 하고, 자기는 혼자 비를 맞고 마구 돌아다니는 꿈을 꿨대요. 꿈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실제로 겪은 일처럼 서럽게 울더라고. 얘가 얼마나 악몽이었으면 힘도 하나도 없이 흐느적거리며 나왔겠어요.”

- 뭐라고 토닥거린 거야?
“어른들도 의견이 맞지 않으면 싸우기도 해. 그렇다고 꼭 헤어지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는 이혼하지 않고 잘 살 거야 하며 꼭 안아줬어요. 그랬더니 아이 얼굴이 밝아지대요. 앞으로 당신에게 더 잘할 게요.”

헉! 아내의 입에서 “더 잘할 게요”란 말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이걸 전화위복이라 해야 할지, 속없다고 해야 할지 난감하더군요. 사실 아내는 슈퍼우먼입니다. 단, 한 가지 흠이라면 애교가 살짝 없다는 것 빼고 말입니다.(딸은 그 한 가지 흠도 없다 합니다.)

이런 아내에게 술 먹고 불만을 터트렸으니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은 철없는 남편이지요. 부부싸움이 아이에게 충격이었나 봅니다. 부부싸움 하지 않길 바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랬는데, 어제 밤 초고를 쓴 후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 너 어떤 꿈을 꾼 거야?
“엄마 아빠가 이혼한다고 이혼 여행을 가자는 거예요. 근데 큰~ 보따리를 들고 가자는 거예요. 저는 이혼 자체가 싫어서 강아지랑 도망을 갔죠. 한참 놀고 있는데 제 얼굴만 한 빗방울이 떨어지자 친구들이 집에 가더라고요. 저는 갈 곳이 없어 강아지와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들고 사정없이 마구 달렸어요. 팔이랑 다리가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요.”

-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꿈은 꿈이네. 근데 엄마가 이야기 하던 팩트랑 다르네. 네가 꾸었다는 꿈의 핵심이 뭐야?
“엄마 아빠 이별 여행 때문에 제가 비도 맞고, 무거운 짐을 들고 뛰어야했다는 거죠.”

헐! 부모와 자식 간 생각이 이렇게 다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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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못지 않게 가족도 중요하더군요.

“이기려 들지 말고, 아내 생각을 들으라고요!”

- 엄마 아빠가 자주 싸우는 편이야?
딸 아들 : “아뇨. 자주 싸우지는 않는데 간혹 심각할 때가 있어요.”

- 엄마 아빠 부부 사이를 점수로 매긴다면 몇 점이나 될 것 같아?
딸 아들 : “A+는 아니고 A에서 B+ 사이.”

아이들이 부부를 더 잘 아나 봅니다. 보고 배우니 그러기도 하지요. 부부 사이 평점이 높아 기분 좋았습니다. 마지막 결론은 아이에게 직접 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노트북에 앉아 이렇게 썼습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사유로 쉽게 이혼하지만 아이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남편 분들! 아내에게 잘 하세요! 이기려고 들지 말고, 아내의 생각을 들으시라고요!”

어쨌든 어제는 아이들에게 ‘부부’만큼 중요한 게 ‘가족’임을 배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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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장담할 수 없고 열심히 벌어야죠!”
“○서방. 자네는 처가에 잠자러 오는가?”


“쉬는 날? 자는 게 일이다.”

어느 교대근무 노동자의 쉬는 날 주된 모습입니다.
가끔 가족 나들이도 하지만, 대개 잠이 모자라 잠자는데 시간을 보낸다 합니다.

“다른 집은 주말이면 놀러간다고 난리인데 우리 집은 그게 없죠. 아빠가 주말에도 밤새 일하고 들어와 자고 있으면, 가족들은 쥐 죽은 듯이 지내야 하죠. 주말에 놀러 못가는 것 보다, 아빠 잔다고 숨죽이며 지내는 가족들이 더 미안하죠. 그 맘 아세요?”

교대 노동자들이 쌓인 피로 푸느라, 놀러 못가고 자면서 가족에게 미안해 할 것이라는 건 익히 짐작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쥐 죽은 듯 지내야 하는 가족에게 더 미안하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관련 기사 “그래 느그들끼리 잘 갔다 와라!”)

힘든 노동에 지친 아버지들의 마음을 이해해야겠지요.

"자더라도 밥은 먹고 자라"?

한번은 처가에서 장인이 술 한 잔 따르면서 그러더랍니다.

“‘○서방. 자네는 처가에 잠자러 오는가? 처가에 오면 맨 날 잠만 자’ 그러시데요. ‘이야기도 좀 하고 그러지 잠만 잔다’고. 막상 그 소릴 들으니 미안한데도 또 자요. 잠에는 장사 없다고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런데도 장인은 "밥 먹을 때면 자더라도 밥은 먹고 자라"며 꼭 깨운다 합니다. 처가에 가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데, 한 번은 열일곱 시간을 줄곧 잠만 잤다 합니다. 그러니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교대근무 이유, 불확실한 고용과 노후 준비

- 잠이 그렇게 부족한가?
“교대근무 하느라 생체리듬이 깨져 피곤한 것 같다. 쉬는 날에는 못다 한 일 보고 들어와 잔다. 피곤은 잠으로 풀 수밖에 없다. 잠이 최고다.”

- 잠 자는데 대한 가족들 반응은?
“쉬는 날 가족과 못 놀고 조합일이나 취미생활 한다고 나가도 아무 말 안한다. 틈틈이 아이들 가고 싶어 하는 놀이동산도 가고, 여기저기 다니긴 한다. 그게 성에 차겠냐? 그래 미안하다. 그저 믿어줘 고맙다. 내가 쉬는 날과 가족들이 쉬는 날인 주말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구석도 있다. 다 고생이다.” 

- 그렇게 피곤한데 왜 일근으로 바꾸지 않아요?
“우리는 퇴직금으로 노후 준비가 안 된다. 교대근무와 일근의 급여 차가 그것도 일 년이면 오륙백이나 된다. 그러니 교대근무를 안할 수가 없다. 또 고용을 장담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 수 밖에 없다.”


없는 데 가면 없는 게 없고…

그는 걷기와 마라톤 등의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한다 합니다. 요즘, 부부가 같이 즐길 공통의 취미를 찾는 중이랍니다. 그래야 소원한 아내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는 겁니다.

아이들과도 좀 더 같이 놀고 안아줘야 하는데 마음 뿐, 그게 잘 안된다 합니다. 신통한 건 “아이들이 잘 크는 것 같다.”“사람의 기본 도리는 가르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냅니다.

교대근무 노동자만 이런 생각 갖겠습니까. 세상 아버지들 모두, 사람의 기본 도리를 가르치려는 마음에서 고생하는 것이겠지요.

하여간 경제가 어렵다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각자 최선을 다할 밖에….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좋겠습니다.

“없는 데 가면 없는 게 없고, 있는 데 가면 없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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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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