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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
스님, 깨우침과 깨달음의 차이는 뭡니까?
[해탈로 가기] 여수 돌산 용월사 법회와 방생






용월사 원일스님 법문 중입니다.


해탈이. 의자에 앉은 자세가 득도한 견공입니다.







“해탈아, 잘 있었냐?”
“….”


 

 


녀석 말이 없습니다. 대단합니다. 어찌 이름을 해탈이라 지었을까. 해탈을 꿈꾸는 인간의 염원을 담았을 거라 짐작 할 뿐.

 



“저 썩을 놈이 대답이 없네, 그려!”
“….”


 

 


저것이 어떻게 알아들을 거라고 말을 섞을까?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깔볼 일 아니지요. 절집에 있는 개는 세월 속에 불성(佛性)이 절로 생긴다잖아요. 혹시나 싶어 말을 섞은 겁니다.

 

 


의자에 앉은 해탈이 무아지경입니다. 폼으로만 따지면 이미 득도한 견공(犬公)입니다. 저놈 팔자가 부럽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거늘….




관세음보살이 바다를 지키고 있습니다.

무릇 중생이란...

나무 석가모니불!



 

 



방생,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


 

 


“차 마시러 오세요.”


 

 


전남 여수 돌산 용월사 원일 스님 요청입니다. 무슨 일일까. 은은한 목탁소리, 바람에 실려 옵니다. 대웅전인 무량광전 옆문에 신발이 즐비합니다. 음력 6월 초하루 법회 중입니다. 그동안 스님과 차 마시며 한담만 나눴습니다. 법회라니, 대중과 함께 스님 법문 들어볼 좋은 기회입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현실과 선계인 듯...

나무 관세음보살!


 


 



“사람 얼굴 보면 압니다. 복 받을 얼굴인지 아닌지. 그래 복 받으려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을 바치고, 심혈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삼보에 귀의하는 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는 걸 배우기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배웠으면 실천해야 하고,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과 행동이 안 바뀌고 그대론데 어찌 복 받겠습니까. 생각과 행동이 바뀌고 변해야 복 받습니다.


좋은 심보를 써야 복 받을 심보가 되는 것입니다.”


 

 


용왕전으로 이동합니다. 예불을 올립니다. 용왕전 옆에 마련된 방생 장소로 이동합니다. 바다 밑까지 오르내리는 수고를 덜기 위해 통으로 연결한 방생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절집들이 따로 방생 법회를 여는데 반해, 용월사는 매월 초하루 법회와 방생을 함께 진행한다네요. 방생 대상은 장어입니다. 신도들 장어 한 마리씩 바다로 방생합니다.

 

 



방생하는 곳입니다.

용왕전에서...

방생 공덕이...고




“장어는 오늘 아침 여수 남산수산시장 수족관에 있는 걸 사왔습니다. 이 장어들은 오늘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기만 기다리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생되어 바다로 살아 돌아가게 될 걸 알았을까?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입니다. 이게 다 인연법입니다.


우리네 삶도 보시와 방생 등으로 덕을 쌓으면 좋은 변화가 생깁니다. 세상은 인연법에 따라 흐르고 흐릅니다.”



방생을 위해 장어를 건집니다.

방생된 장어는 바다로...

나무 석가모니불!



 

 


스님, 깨우침과 깨달음의 차이는 뭡니까?


 

 


공양시간입니다. 청각, 고사리, 무생채, 고구마대나물 등을 넣은 비빔밥과 홍합국, 김치 등 조촐합니다. 스님과 앉았습니다. “오늘따라 특별이 홍합국이 준비됐는데 먹을 복이 있다”는 원일 스님의 덕담입니다. 따끈따끈한 홍합국이 속을 시원하게 풀어 줍니다. 공양 후, 스님께서 차를 냅니다.

 

 



홍합국입니다.

 

 



- 참 스님은 어떤 스님입니까?


“머리를 굴리지 않게 하는 스님이 참 스님입니다. 죽비로 어깨 등을 내리치는 건 머리 굴리지 말고 깨우치라는 의미입니다.”




- 깨우침과 깨달음의 차이는 뭡니까?


“깨우침은 지식을 갖고 추론하는 것이며, 개량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사색이고 사유입니다. 깨달으면 모든 게 하납니다. 우주와 내가 한 몸이요, 물과 내가 하납니다. 땅과 내가, 세상과 내가 하나입니다.”


 

 


불교에서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깨달음, 즉 해탈의 경지에 오른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인가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풍경이 그림입니다. 관세음보살님, 바다 위에 고고히 떠 있는 배들을 굽어보며 자비를 베풀고 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장어, 새 삶을 얻고...

이리 빠져야 바다로 가는데, 한치 앞을 모릅니다.

바다로 가기 직전입니다.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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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 있는 절 표현하기, 그림대회 1등은?
“계십니까? 스님, 차 한 잔 마시러 왔습니다!”
[경북 청도 선문답 여행] 절집과 깨달음 ‘대적사’

 

 

 

 

경북 청도 와인터널 옆 대적사 가는 길...

 

 

 

 

길을 걸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 낙엽이 반응합니다. 발로는 낙엽을 밟습니다. 귀로 낙엽 밟히는 소릴 듣습니다. 그런데도 낙엽 밟는 소릴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미천한 삶의 한계입니다. 이는 제가 세상을 더 살아야 할 이유지요.

 

 

경북 청도 여행의 핵심은 비구니 수행도량 ‘운문사’입니다. 그러나 아는 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데요. 우리네 삶에 수많은 숨은 고수들이 있듯, 절집에도 다양한 멋스러움이 존재하대요. 이걸 알기까지 오십일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고, 삶이 겸손해야 할 까닭이지요.

 

 

 

 

 

감이 계절을 재촉합니다. 

 

 

길을 걸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대적사 가던 길

 

 

 

“청도 와인터널 입구에서 왼쪽 길로 조금 오르면 대적사가 있다. 대적사에 가자.”

 

 

공덕진·김남숙 부부의 안내에 따랐습니다. ‘대적사’ 가던 길. 어디에선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습니다. 연기는 추억 속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아내 또한 추억이 그리웠나 봅니다.

 

 

“연기를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 하나가 있네요.”

 

 

연기에 홀렸을까. 아내 입에서 예상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아내가 꺼낸 이야기는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26~32쪽)였습니다. 그중, 두 번째 이야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였지요. 다만, 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각색했더군요.

 

 

 

 

낙엽 밟는 소리가... 

 

 

경북 청도 대적사 절집 계단 사이에 꽃이 피었습디다...

 

 

 

 

 

산 속에 있는 절 표현하기, 그림대회 1등은?

 

 

“그림을 사랑했던 어느 황제가 이런 제목으로 그림대회를 열었대요.

 

 

‘산 속에 있는 절 표현하기!’

 

 

그림대회에 참여한 화가들 대부분은 숲속에 절집을 그리거나, 탑이 솟아 있는 풍경을 그렸대요. 황제 마음에 든 그림이 없었대요. 황제는 마지막으로 한 화가가 제출한 그림을 보고서야 웃더랍니다. 그 화가는 무엇을 그렸을까요?

 

 

화가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절집 대신 깊은 산속 오솔길에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 올라가는 모습을 그렸대요. 황제는 비록 절을 그리지 않았지만, 물 길러 나온 스님을 보고 가까운 곳에 절이 있는 걸 알아 챈 겁니다. 이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란 의미지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산 속에 절만 있는 그림은 ‘절이 있다’는 느낌에 그칩니다. 하지만 물 길러 나온 스님을 보면, 찻물 용도인지, 공양 지을 용도인지, 혹은 그 스님께선 도를 통했을지, 등 많은 상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여튼, 아내는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절집으로 올라가는 산 입구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동자승 모습과 산 속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모습을 그리는 것도 산 속에 절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지요. 무엇이든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하다는 거죠.”

 

 

와인터널 옆으로 난 길을 한참 올라야 절집이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와인터널 입구 푯말에 쓰였듯, 대적사는 말 그대로 진짜 100여m 거리였습니다. 산사를 오르는 길에 들리는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가을 교향곡이었습니다. 가을 산사는 고즈넉했습니다.

 

 

 

 

 

길에서 낙엽이 인사했습니다.........

 

 

그림대회에서 이런 그림을 그려도 1등 했을 것이라는...

 

 

 

 

 

 

“계십니까? 스님, 차 한 잔 마시러 왔습니다!”

 

 

“대적사. 극락전 보물 제836호. 신라 헌강왕 2년(876년) 보조선사가 토굴로 창건해, 고려 초기 봉양이 중창하였다.”

 

 

헉! 이를 어째? 은연 중 ‘대적사’를 무시했나 봅니다. 보물에다, 보조선사와 인연까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절집 뒤편으로 올랐습니다.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계십니까? 스님, 차 한 잔 마시러 왔습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벙거지를 눌러쓴 백발의 스님이었습니다. 흰 눈썹이 휘날리는 걸 보니, 성질 꽤나 있으시겠다, 싶었습니다.

 

 

“뉘신데 차를 달라는 겁니까?”

 

 

역시나 까칠함이 엿보였습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나 봅니다. 까칠하신 스님은 근현대 선풍 진작의 중흥조인 경허, 만공스님의 덕숭 문중 법맥을 잇는 속리산 법주사의 총지선원장 등을 역임한 진광스님이었습니다. 선문답, 배움을 청했습니다.

 

 

“왜, 절집 홈페이지 스님 소개란에 ‘득도’를 밝히는 거죠?”
“...................”

 

“스님, 득도(得道)란 무엇입니까?”
“...................”

 

 

스님께선 차와 대답 대신 손수 오죽 지팡이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죽순이 피어날 때 연락하라 하셨습니다. 아둔한 중생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차 대신 오죽 지팡이를 만들어주시는 진광스님...... 

 

 

함께 여행 길에 나선 일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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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되겠다’던 행자님에게 옷 보시한 사연

“이런 귀한 보시 기회를 준 자네가 더 고맙네!”

  

 

 

전남 여수 돌산의 은적사입니다. 천년고찰이지요.

 

 

“스님.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하세요.”

 

절집에 가기 전, 스님과 전화 통화에서 빠지지 않은 대화입니다. 정신 휴식이 필요할 때 절집에 갑니다.

 

절집에 가는 이유는 자연 속에서 차 마시며 나누는 대화가 차분함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집 기운이 좋아 마음이 따뜻해져 쌓인 화를 지그시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기운을 받는 게 최고이니까요.

 

지난 7월, 여수 은적사에 갔습니다. 못 보던 스님이 밭에 줄 거름을 퍼 나르고 있었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자급자족이 원칙인 불가에서 키우는 고추, 상추 등 먹거리가 실해야 하니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지스님과 차를 앞에 두고 앉았습니다.

 

 

“스님. 스님 한 분이 늘었네요?”
“스님은? 승복 입는다고 다 스님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중이 되겠다고 2주 전에 찾아왔어.”

 

 

스님 지망생이 절집으로 찾아든 것이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스님,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세요? 고민 중

 

스님들이 입는 승복입니다.

 

 

결혼 전, 구도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결혼 후, 아내에게 “절에 들어가겠다”며 보내주길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참 염치없는, 무책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중은 희망사항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의 무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육십이 넘으면 벗과 함께 절집 마당을 쓸기로 다짐만 하고 있습니다. 하여, 늦은 나이에 중이 되겠다고 들어온 그가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스님, 그분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세요?”
“어떡하면 좋겠어?”

 

“관상을 보아하니 거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세상살이에 진이 다 빠져 여길 찾아왔어, 지금 고민 중이야.”

 

 

삶이 힘들어 절집을 찾았다던 그.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구도자가 되겠다고 절집으로 들어 온 그. 그에게 삶의 마지막 보루인 절집. 답은 하나였습니다. 지친 영혼을 내치지 않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게 절집의 임무(?) 아니겠습니까.

 

 

“결혼은 했대요?
“아니 혼자래. 그에게 입힐 ‘행자복’이 없어, 스님 옷을 입혔어.”

 

“스님, 그 옷 제가 보시할게요.”

“그래 주면 고맙지.”

 

 

 

이런 귀한 보시 기회를 준 자네가 고맙네!

 

절집에서 차를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절집에서 하루 밤 청했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터라 새벽 예불은 패스. 대신 아침 공양도 건너뛰었습니다. 불교 설화 책을 읽고 있는데, 스님의 “점심 공양 하세”란 소리가 들렸습니다. 공양 하러 갔습니다. 스님이 밥상머리에서 쪽지 하나를 건넸습니다.

 

“이거 행자복 맞춘 집 연락처와 계좌번호네.”

 

 

옷 보시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아마, 스님 마음이 움직였나 봅니다. 마음 변하기 전, 서두른 듯합니다. 공양 후,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육십이 넘으면 함께 절 마당 쓸기로 약속했던 벗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 옷 보시 한 벌 하시게나.”
“옷 보시? 그래 함세.”

 

“어이 친구, 고마우이.”
“고맙긴. 이런 귀한 보시 기회를 준 자네가 더 고맙네.”

 

 

스님에게 친구 마음을 전했더니, 고맙다고 하시대요. 아무래도 저는, 절집을 찾아든 행자가 스님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옷 보시를 해야 할까 봅니다. 아무튼 득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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