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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69건

  1. 2016.07.01 뭍에서 욕정의 밤에 나눈 사랑 씨앗 ‘조금새끼’
  2. 2015.11.30 무턱대고 그림과 글 한점씩 주라했더니, 결과는?
  3. 2015.08.09 자녀와의 소통 더 늦출 수 없는 이유는?
  4. 2015.05.08 어버이 날, 선물 카네이션과 유자빵 그리고 삶
  5. 2015.04.30 오빠 동생에서 여보 당신, 다시 오빠 동생으로
  6. 2014.02.03 ‘아빠가 가정교육 잘못시켰다’는 아들에게
  7. 2013.12.31 부의 승계가 한 몫 차지하고 있었는지도
  8. 2013.12.24 원금이 오백만원인데 이자가 일억이라...
  9. 2013.10.30 결혼, 하는 게 좋을까? 안 하는 게 좋을까?
  10. 2013.10.23 “내가 주법을 가르쳐야겠어. 모두 이리로…….”
  11. 2013.08.26 어른들에게 전어 대접하는 곁님의 마음에 감동 (1)
  12. 2013.08.12 아들의 '이제야 아빠 같다’는 말에 띵~
  13. 2013.07.26 버스 안에서 만난 딸과 주고받은 문자 소통, ‘큭’
  14. 2013.07.23 ‘아빠, 그 말투 기분 나빠요’ 어찌 해야 할까?
  15. 2013.07.10 아내의 깜짝 데이트 제안에 응했다가, ‘감동’ (1)
  16. 2013.06.18 막장 드라마와 우리 현실에 대한 3가지 단상
  17. 2013.05.08 어버이날, 전혀 챙기지 않는 아이들 보니
  18. 2013.05.07 앞당겨 치룬 ‘어버이 날’ 뜻밖의 아내 반응
  19. 2013.04.29 핸드폰 문자 씹는 아이들, 왜? 누구 탓일까?
  20. 2013.01.22 목욕탕 진상 손님 VS 아름다운 손님
  21. 2012.09.04 아빠가 엄살이 심하다고? 야속한 아들과 딸
  22. 2012.04.04 많은 사람 앞에서 결혼하는 3가지 이유
  23. 2012.03.27 유채꽃 한 다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둔 사연 (1)
  24. 2011.12.14 ‘브레인’ 신하균 Vs 정진영, 무릎 눈물의 숨은 의미
  25. 2011.09.30 아버지, 여행에서 자녀와 보이지 않는 거리감 줄이다
  26. 2011.08.10 그릇쟁이의 화두, 죽는 날까지 공부해야 하는 '불'
  27. 2011.08.09 티격태격 싸우는 부부 모습 잠재운 아내의 문자
  28. 2011.08.08 학교 성적 바닥권인 중 1 딸이 쓴 독서록 (1)
  29. 2011.07.12 신입사원들이 첫 직장 잘 견뎌야 하는 까닭
  30. 2011.05.16 어머니에게 꾸중 듣는 아빠를 본 아이들 소감 (1)

사연 속 바닷가 마을, ‘조금새끼’를 아시나요?
#1. 스물 언저리 그는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2. ‘호로새끼’ 애비 없는 새끼, 보리밥과 불문율
임호상 시인의 서사시 ‘조금새끼로 운다’ 전문
[시인 읽기]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



 

 


이런 시(詩) 처음입니다. 아버지,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 등 부부 섹스를 밝히다니.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섹스 준비 상황까지 그리다니. 부부, 사랑 나눌 테니 조용하라고 직접 경고하다니...


 

 


불합리한 유년의 기억. 남이 낳은 새끼도 남편 핏줄이라고? 자기는 그렇게 태어났다는 누이. 여인이었던 어머니를 이해하는 누이….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문학의 전당, 9천원)>를 펼쳤습니다. 가슴 먹먹했습니다. 그동안 섬에 다니는 이유는 ‘징허디, 징헌’ 우리네 삶 속으로 쑥 들어가기 위함이었지요.


 

 


그런데, 다소 긴 산문 형식의 임호상의 시 ‘조금새끼로 운다’에 섬사람들의 가슴 아린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습니다. 임호상의 시는 꾸깃꾸깃 꼬불쳐뒀던 두 가지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에겐 유년의 기억이 특별합니다.




 

 



# 1. 스물 언저리 그는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방 내줬으니 내일부터 엄마랑 같이 지내야 한다.”


 

 


유년의 기억.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어머니는 하루 전에 통보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미치고 팔딱 뛸 일. 당시엔 ‘그런가 보다’였지요. 집이 부족해 방만 있으면 세 줬던 시절이었으니...


 

 


제 방을 차지했던 사람은 뱃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중선 배’ 선원이었습니다. 스물 언저리 총각이었던 그는 화장,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은 드물었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이면 수북한 하얀 쌀밥, 갈치, 과자 등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건넨 덕분이었지요. 그건 뱃사람들이 보름 여 동안 바다 위에서 먹을 식량 등을 준비하는 ‘시꼬미’였습니다.


 

 


먹을 것에 넘어 갔을까. 형 하고 따랐습니다. 그는 고주망태 상황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이 산 세월은 4년 남짓. 이후 어머니를 통해 소식을 종종 들었습니다. 그는 ‘쫑포’(여수시 종화동)에 산다 했습니다. 대학시절, 방학 때 집에 내려왔다가 술집서 우연히 그를 만났지요. 고주망태 상황에서 그의 집으로 갔던 기억….


 

 


훗날, 그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 ‘조금’이란 걸 알았지요. 결국, 그가 바다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형은 갈치조림을 잘했습니다.




 

 


# 2. ‘호로새끼’ 애비 없는 새끼, 보리밥과 불문율



 

 


“쌀 좀 갖다 주고 와라.”


 

 


어머니는 어려운 중에도 한사코 심부름 시켰습니다. “이번에는 왜 쌀 빌려 달라 안하지?” 궁금해 하며. 저요? 그냥 싫었습니다. 당시엔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훗날, 알게 된 사실. 이게 어머니가 사람 챙기며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이라 걸 알았습니다. 존경의 어머니였습니다.


 

 


동네에 아버지 없는 집이 네 집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중 한 집을 지목했습니다. 가장 형편이 어려운 집이었습니다. 다른 집은 자식 넷. 이 집은 다섯이었습니다.


 

 


그들 어머니는 발품으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그렇지만 먹고 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 집은 늘 보리밥이었습니다. 이도 없어서 굶을 지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일부러 찾는 구수한 보리밥이건만….

 

 



당연히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왜? 그들 집에는 아버지가 없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말이 있었지요. ‘호로 새끼’. 애비 없는 새끼란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호로 새끼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바른 몸가짐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데도 죽어라 가르쳤습니다. 강한 생활력으로 버텼지요. 그리고 직업 선택에 불문율이 따랐습니다.


 

 


“너희들은 배타지 마라.”


 

 




임호상 시인입니다.




 

 


임호상 시인의 서사시 ‘조금새끼로 운다’ 전문

 

 




             조금새끼로 운다


                                                            임 호상



  중선 배 타고 나간 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조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초여드레, 스무이틀 간만의 차가 없는 조금이면 바다로 나갔던 아버지들 돌아오는 날. 조금이 되면 어머니 마음도 분주하다. 뜸을 들이는 무쇠솥처럼 이미 뜨거워져 있다. 바다에서 몇 바지게씩 고기를 져다 나르는 날이면 앞마당에 호야불 켠다. 당신의 마당에도 불이 켜진다. 보름을 바다에 있다 보면 얼마나 뭍이 그리웠을까,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 어머니 마음도 만선이다. 뜨거워진 당신은 선착장 계선주에 이미 밧줄을 단단히 동여맸다. 아버지도 그랬지만 선착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머니도 그랬다. 조금이 돼야 뜨거워질 수 있었던 그때, 갯내음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조금새끼



  서방 들어오는 날 속옷을 널어 방해하지 말라는 수줍은 경고가 마당에서 춤을 춘다. 어머니의 빨랫줄에 속옷과 함께 널린 고등어 세 마리, 누구 것인지 알 사람 다 안다. 호루라기 불면 들어오라 했는데 어머니의 호루라기는 한참이 지나도 들리지 않고 오도 가도 못한 조금새끼들은 정박한 배처럼 문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어머니는 보름을 기다려 하루를 살지만 조금새끼는 한 달에 두 번 문밖에서 하루를 산다. 바다에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도 홀로 남는 어머니도 참 많았다. 아버지 한 분에 어머니 둘, 조금새끼 십 남매 그때는 다 그랬다. 한 그물 속에서 그렇게 섞여 살았다고 누이는 막걸리초에 지나온 세월을 버무린다.



  어쩌면 남편을 바다로 보내는 어머니는 모두 다 작은 각시 아닌가. 바다는 아버지를 데려다가 보름이 되어서야 돌려보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청상과부 작은어머니가 아버지를 차지하고 어머니는 살을 대지도 못했다. 한 달에 이틀뿐인데 그 이틀도 어머니는 멍청이 세월로 살았다. 조금이 돼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의 바다에는 소리 내지 못하는 파도가 쳤다.



  남의 뱃속에서 낳은 새끼도 남편 핏줄이라고 내색 못해 큰어머니가 엄마가 되는 먹먹한 유년을 살았다. 두 분 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낡은 풍경처럼 서로를 인정해주며 그렇게 섞여 살았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구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며 조금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육자백이, 먼 바다를 향해 청솔개비 두드리던 그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막걸리초처럼 속으로 삭히며 핏줄이 되었다. 오랜 기다림을 절여 아버지의 입맛을 달래는, 아버지의 하루를 훔치는 어머니의 막걸리초가 되었다.



  어머니의 바다는 속 깊은 먼 바다, 겉으로 파도가 쳐도 깊은 속을 다 알 수가 없다. 날이 새면 어김없이 바다로 가는 아버지를 묶어놓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샌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밤새 하현달로 떠 있는 밤, 이번 조금 아버지 돌아오시면 당신의 아랫목 오래도록 따뜻할 수 있을까. 평생 바다를 보고 살아온 아버지도 어머니도 40년 배를 탔다던 정씨 아저씨도 바다가 무섭다는 말에 술잔에서 파도가 쳤다.



  문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파도 소리 자꾸만 자꾸만 어머니의 가슴을 쳤다.





바다는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뭍에서 욕정의 밤에 나눈 사랑 씨앗 ‘조금새끼’



 

 


‘조금새끼’, 뭔가 했습니다. ‘조금(潮―)’은 조수 간만의 차가 없는, 바닷물이 가장 낮은 때를 말합니다. 매달 음력 초여드레와 스무 사흘이 해당됩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알지요. ‘조금’은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어부들에겐 꿀 같은 휴식기라는 걸. 이 때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못한 것을 뭍에서 푸는 욕정의 밤을 맞이합니다.


 

 


모든 원인은 ‘바다’였습니다. 떠나는 아버지를 부여잡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한 바다. 남편을 잡아먹은 바다. 어머니를 청상과부로 만든 바다. 덕분에 배다른 새끼까지 거둬야 하는 삶의 바다. 어머니에게 바다는 원한 가득한 기다림의 바다였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 생명의 바다이기도 했습니다.


 

 


임호상 시인에게 시 ‘조금새끼로 운다’를 어떻게 썼는지 물었습니다.

 

 



“다들 직접 경험한 걸로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시로 옮긴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렇게 썼습니다.”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는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시를 읽는 내내,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습니다. 이밖에도 ‘실직’, ‘징함네’, ‘야근’, ‘그냥’, ‘분만 대기실에서’, ‘오동도’, ‘목욕탕에서’, ‘똥빨’, ‘세월’, ‘모기’, ‘여수의 노래’, ‘섬’, ‘당신’ 등 개념 있고, 지역사랑 이 깃든 주옥같은 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임호상 시인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창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살랐습니다.

 

 


꿈, 모든 이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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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람, 모든 게 자기 마음에 있다
“그림 한 점과 글씨 한 점을 제게 주십시오!”
“꽃향기는 천리를 가고 덕의 향기는 만리간다”
청학동 화봉 최기영 님의 붓글씨 쓰는 과정과 인연

 

 

 

경남 하동군 청학동에 걸린 곶감

스님께서 흔쾌히 내어 주신 동양화

 

 

 

“그림 한 점과 글씨 한 점을 제게 주십시오.”

 

 

왜 그랬을까. 무작정 졸랐습니다. 남해사 혜신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중, 무의식 속에 필연적으로 나왔지 싶습니다. 입으론 말하고 있었으나, 귀는 놀랐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너무나 즉흥적으로 터진 탓이었습니다. 스님께선 기다렸다는 듯 빛의 속도로 반응했습니다.

 

 

“그러지요. 그림과 글씨를 갖게 되면 부담이 생길 겁니다. 잘 극복하시길.”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스님께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에 걸린 세 그림 중 마음에 든 그림 하나를 골라잡길 종용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이 그림 중 하나는 자네 것이야. 왜 이제 가져가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무안함과 고마움을 변명으로 대신했습니다.

 

 

서예실 앞에 선 화봉 최기영님, 공예가 장형익님, 혜신스님(우로부터)

 

 

 

 

“아버지로써 사춘기 아이들에게 남기고픈 정신적 메시지를 그림과 글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요.”

 

 

고민 끝에 해정 조성순 님의 동양화 한 점을 골랐습니다. 이와 동시에 스님께선 표구 째 즉석 포장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집까지 손수 배달해 주셨습니다. 느닷없이 엉겁결에 그림 한 점을 얻게 되었습니다. 글씨 한 점은 서예가를 직접 만나 작품과 인연이 닿는지 여부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찾은 곳이 경남 하동군 청학동의 화봉 최기영 님의 ‘수미산방’이었습니다.

 

 

붓끝에서 나오는 글씨를 보며 거미줄을 떠올렸습니다. 왜?

 

 

 

 

아버지의 바람, 모든 게 자기 마음에 있다?

 

 

청학동의 화봉 선생을 만났습니다. 선생과 만나는 동안 두 개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을 받게 될지 말지와 상관없이. 인연에 맡기는 길 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로 꽂힌 글귀는 선생의 집 안방에 걸렸던 이것입니다.

 

 

“길상여의(吉祥如意) 길하고 상서로운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란다.”

 

 

꽂힌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들이 그저 “세상사 모든 것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이룰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게 일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걸 깨우치는 순간, 욕심까지 버렸으면 하는 아비의 바람이었지요. 두 번째로 꽂혔던 건 수미산방에 걸렸던 작품입니다.

 

 

 

 

 

“화향천리(花香千里)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덕인만리(德人萬里) 덕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글은 꽃 향과 사람의 덕 향기를 담은 듯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구는 “난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묵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덕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난향백리(蘭香百里) 묵향천리(墨香千里) 덕향만리(德香萬里)’”와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난의 향보다 먹물 향이, 묵향보다 사람에게 나오는 덕의 향기가 더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

 

 

 

화봉 선생 

먹의 농도를 이렇게 써보고 조절한다 합니다.

먹은 이렇게 붙여서 쓰신다더군요...

 

 

 

 

“그림 한 점과 글씨 한 점을 제게 주십시오!”

 

 

“쓰다 남은 먹은 이렇게 붙여서 마지막까지 쓰고 있습니다. 먹 하나라도 그냥 버리는지 않습니다.”

 

 

수미산방 안 묵향이 은은했습니다. 그가 커피를 권했습니다. 고요 속에 먹을 갈았습니다. 수줍은 웃음을 살며시 띤 채 먹을 갈던 그가 설명했습니다. 먹이라도 손에 익은 걸 버리자니 무척이나 아쉬웠던 게지요. 검소한 삶으로 읽혔습니다.

 

 

 

 

글씨를 쓰기 전 잠시간의 침묵 속에는 모든 게 들어 있었습니다.

 

 

 

 

“….”

 

 

붓을 움직이기 전 잠시 잠깐의 침묵. 그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긴장이 휘몰아쳤습니다. 붓이 움직였습니다. 어떤 글자를 쓸까, 하는 궁금증은 뒷전이었습니다. 글을 써 내려가는 붓을 보니 떠오른 상황 하나가 있었습니다. 왜 하필 거미 똥구멍이었을까. 그건 똥구멍에서 나오는 실로 자신의 집을 짓는 거미의 규칙적이고 열정적인 움직임 때문이지 싶습니다.

 

 

 

 

 

 

“吉(길)ㆍ祥(상)ㆍ如(여)ㆍ意(의)”

 

 

그가 글을 완성했습니다. 많은 낙관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낙관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가 봉투에 제 이름을 쓴 후 글을 담아 주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닿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전하려는 삶의 의미가 빛을 발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덕이 향을 발할 것이라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빠, 저 봐. 절박하면 폼이 중요하지 않다!”
여고생 딸이 제안한 ‘아빠를 부탁해’ 직접 해보니

 

 

 

 

 

“아빠, 왜 그래?”

 

‘뭘 어쨌다고?’ 반발하고 싶으나 꾹 참습니다.

 

어제 저녁, 딸의 불만 섞인 목소리. 딸은 기다렸다는 듯, “더 늦기 전에 딸이 원할 때 같이 놀아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침대에 엎드려 있는 제 등에 거꾸로 누워 “가자”며 폭풍 애교까지 선보입니다. 반응이 없자, 결국 반 협박입니다.

 

 

“여고생 딸이 아빠한테 운동 같이 가자고 하는 집이 어디 있는지 알아?”

 

 

고등학교 2학년 딸, 여름방학이라 여유가 생겼습니다.

 

방학도 오늘로 끝입니다. 그동안 딸은 방학에 운동하며 몸매 관리에 매진하는 눈치였습니다. 밥도 다이어트 한다고 하루 한 끼. 이게 말이 됩니까.

 

그나저나 우리 공주님, 공부하랴, 몸매 관리 하랴, 참 불쌍합니다. 튕기는 것도 이쯤에서 멈추고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다들 대학 간다고 죽어라 공부하는데, 운동이라니 그게 말이 돼? 하하하~”
“아빠, 진짜 왜 그래?”


“뭘. 아빤 너무 더워 걷기 싫은데….”
“딸이 하잘 때 하지. 더 크면 아빠한테 관심조차 없을 걸. 아빠는 지금 딸이 같이 뭘 하려는 것만으로도 엄청 행복한 줄 알아야 돼.”

 

 

헐. 그게 뭐 벼슬이라고 협박(?)인지.

 

그러니까, 딸은 같이 시간 보내려 하는 시도 자체를 영광으로 알라는 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흐뭇했습니다. 왜냐하면 밤에 운동 삼아 혼자라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지라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셈이니까.

 

하여, 흔쾌히 동행을 허락했습니다. 딸과의 데이트를 놓칠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계기가 있었지요.

 

 

 

 

 

‘아버지’

 

단어 자체만으로도 무게가 엄청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마냥 "우리 아빠가 최고"라 여기기에 사랑만 줘도 무방했습니다. 차츰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버지 역할에 변화가 요구되었습니다.

 

최고였던 아버지는 어느 새 부족함이 많은 아버지로 바뀌어 있었지요. 그래, 떠나지 않은 생각 하나가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아버지일까?’

 

 

그러던 중, 눈에 띠는 TV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50대 아버지와 20대 딸의 소통 과정을 그린 ‘아빠를 부탁해’입니다. 강석우·강다은, 이경규·이예림, 조민기·조윤경, 조재현·조혜정 부녀의 소통 과정을 보면서 그들에 빙의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나였고, 딸이었으니까.

 

 

<아빠를 부탁해>에서 보여준 아버지와 딸의 서먹한 모습은 나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주위의 아버지들은 딸과 추억을 만든다며 여행 등을 하며 정을 쌓더군요.

 

그런데 저는 딸과 말 섞기조차 제대로 변변하게 한 적이 드물었던 사정이라 반성되더군요. 이 같은 느낌은 딸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딸의 운동 제안은 역동적인 관계 개선의 강한 의지였던 셈입니다. 먼저 다가 온 딸이 무척 고마웠지요.

 

 

 

 

하여간, 썰렁한 아빠와 딸이 밤 걷기에 나섰습니다.

 

여수시 소호 요트장 주변 해안도로는 많은 사람들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바다에는 국내 유일의 범선이 떠 있었습니다. 간혹 바람이 살랑댔습니다만 흐르는 땀을 닦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딸은 걸으며 쉼 없이 재잘거렸습니다. 그 중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놀다가 밤늦게 들어오면 엄마 아빠가 막 화냈잖아.

이제야, 왜 화 냈는지 알겠어. 지금은 열시 넘어 들어와도 아무 말 않잖아.

오히려 어서 오라며 막 반기잖아. 살아보니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등에 맞는 귀가 시간이 있더라고. 때가 있다는 걸 이제 알았어.”

 

 

귀를 의심했습니다.

 

딸은 학교에서 그저 시간 때우기 용 야간 자율학습에 매달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때가 있다는 걸 알았다”니, 대견했습니다.

 

이건 마치 옛날 스승들이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 하산해라!”던 순간처럼 여겨졌습니다. ‘때’의 소중함을 알면 굳이 머리 싸매고 죽어라 공부하지 않아도 될 일 아닐까!

 

 

더 놀랐던 건, 저만치서 어색하게 팔을 휘저으며 힘껏 걷는 젊은 처자 둘을 보며 던진 딸의 소감이었습니다.

 

 

“아빠, 저 봐. 절박하면 폼이 중요하지 않다!”

 

 

이 말에, ‘정녕 내 딸이 맞나?’ 싶었습니다.

 

물론 젊은 여자들의 몸은 살빼기 위해 열심히 운동할 수밖에 없는 절실함을 온몸으로 절절히 내 품고 있었습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쑥 훑어보고 그 속내까지 읽어내는 눈썰미에 혀를 내둘렀지요.

 

 

이렇게 비로소 딸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은 아빠가 자기에게서 눈을 떼고 있던 수년간,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자기만의 자양분을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그걸 아빠만 모르고 있었던 게지요.

 

“자식은 부모가 키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큰다!”더니, 그 말이 와 닿습니다. 우연히 딸의 새로운 모습과 마주하게 된 건 큰 행복이었습니다.

 

자녀와의 소통 더 늦출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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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
당신의 삶이 묻어 있는 향기로운 빵과 카네이션
장모님, 애지중지 키운 딸 고생시켜 죄송합니다!

 

 

 

 

 

어버이 날 가슴에 다시는 카네이션에는 뿌듯함이 서려 있습니다.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해라!”

 

 

5월 8일.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왜 인지 가슴 답답합니다. 자식으로 부모님께 한 게 있어야지요. 부모님께서는 “니들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만으로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자식 입장에선 효(孝)를 다하지 못함에 미안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꼭 내리사랑 때문만은 아니지요.

 

 

“아이 고맙다!”

 

 

올해 87이신 아버지의 전화.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또 거두절미하시고 바로 본론이셨습니다. 예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전화비 많이 나오니 전화는 빨리 끊는 게 상책”이라는 주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왜 무엇이 고맙다는 건지 말을 나눠봐야 압니다.

 

 

“아버지, 뭐가 고맙다는 거예요?”
“우리 아들이 갖다 준 유자빵 맛있게 잘 묵었다!”

 

 

아내가 가져 다 준 선물 등 잘 받았다는 표시입니다.

술 담배 안하시는 아버지, 심심풀이로 ‘딱’이었나 봅니다. 아내는 뭐만 생기면 아버님 댁을 부리나케 드나듭니다. 빵, 떡, 과자, 라면, 쌀, 과일 등을 수시로 사다 나르는 아내가 무척 고마울 뿐입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결혼 잘 했고 땡 잡았지요.

 

 

어버이 날, 부모님께 미리 거제 특산품 유자빵을 선물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

 

 

언제부터였을까?

아버지께선 어느 때부터인지 매사에 감사하셨습니다. 세상은 불만보다 고맙고 감사할 게 더 많다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바뀌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마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삶의 지혜이지 싶습니다. 원망하고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 거죠.

 

 

“네 아버지가 유자빵 하나를 뜯어서 혼자 벌써 다 드셨다.”

 

 

어느 새 어머니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전활 뺐긴 겁니다. 어머니, 반가움에 “잘 사냐?”란 인사말부터 나눌 법한데, 말이 급하시나 봅니다. 빵 잘 드시는 빵보 아버지가 나눠먹지 않고 혼자 드셔서 밉다는 건지, 더 없냐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마움의 표시라는 것쯤은 알지요.

 

 

“아버지가 요즘 감기를 달고 사신다. 유자빵은 감기에 좋잖아. 좀 더 구해봐라.”

 

 

하하하하~, 부모님 꼭 짜신 거 같습니다.

지난 4월 말, 거제도 여행길에 빵보 아버지 생각하고 가져 온 유자빵. 다 드셨나 봅니다. 덤으로 아들이 보고 싶나 봅니다. 나이 드신 아버지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시 한 수 읊지요. 거제도 시인, 김용호 님의 시(詩) ‘유자빵’입니다.

 

 

유자빵 속에는 아버지의 삶이 녹아나 있었습니다.

 

 

 

당신의 삶이 묻어 있는 향기로운 빵과 카네이션

 

 

           유 자 빵


                                 김용호

 

  세상에는 빵도 많다 외로움 또한 많다
  작은 빵 한 개로서 허기가 달래질까
  그러나 가을향기로 채워주는 빵이 있다

 

  세속에 휘둘리고 불안에 흔들리고
  서있는 방향조차 분간하기 쉽지 않다
  한 줄기 위안이 되려 기꺼이 여기 있다

 

  두려워 하지마라 찬찬히 살펴보라
  삶 속에 묻어있는 작은 향기 즐겨본다
  오히려 소박하여라 유자빵 여기 있다

 

 

김용호 시인, 거제 태생답게 거제도 특산품 유자빵에 대해 자랑입니다. 오죽했으면 유자빵은 외로움과 허기를 채워주며 위안까지 준다 할까. 이는 아마도 저희 아버지께서 갖고 있는 ‘빵에 대한 개념’처럼 여겨집니다. 당신의 삶이 묻어 있는 빵이라는 거죠.

 

 

“어머니, 카네이션 달았어요? 저녁에 들릴게요.”
“알았다. 카네이션은 안 사와도 된다. 누나하고 형이랑 보냈더라.”

 

 

말은 그래도 얼굴 뵙지 않으면 서운해 하실 부모님입니다. 아내는 저녁에 고등학생이라 어른보다 더 바쁜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 댁에 간다 합니다. 아내가 시댁에 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처갓집에 생색날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미안할 따름입니다. 대신, 장모님께 전화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거제도 특산품 유자빵의 달달하고 은은한 유자향이 좋았나 봅니다.

 

 

 

장모님, 애지중지 키운 딸 고생시켜 죄송합니다!

 

 

“장모님, 카네이션 달았어요?”
“아니. 큰 사위가 안 달아주는데 누가 달아 주겠어?”


“왜 그러세요. 큰 아들 작은 아들이 잘 하잖아요. 손자 손주들도 그렇고.”
“아들이랑 사위랑 같아?”


“알았어요. 작은 사위가 잘하잖아요. 별 일 없지요?”
“별 일 있지 왜 없어. 큰 사위가 전화한 게 별일이지.”


“쑥스럽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아이들이랑 다음에 갈게요.”
“우리 큰 사위 전활 다하고 고맙네.”

 

 

장모님께 아침부터 전활 넣었는데, 받질 않으셔서 오후에서야 통화했습니다. 장모님께서는 어버이 날이랍시고 전화 한 통 달랑 넣은 사위에게 오히려 더 고맙다 하십니다. 전화도 잘 하지 않는 사위가 뭐가 좋다고 고맙다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키워 보니 이런 부모 마음 좀 알겠더군요.

 

 

아내는 장모님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던 딸”이었습니다. 장모님은 “초등학교 운동회 등에도 그 많은 학생 가운데 딱 꼬집어 딸을 바로 발견했다”더군요. 아내는 그런 어머니를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학교 행사에 가 보면 많은 아이들 중 내 아이들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딸 데려와선 고생만 시키니 죄송할 뿐이지요.

 

 

길거리에는 가슴에 카네이션 꽂은 어르신들이 많이 눈에 띱니다. 카네이션 단 가슴을 유독 앞으로 내미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카네이션 한 송이 다신 걸 가지고도 으쓱 뻐기시는 걸 보면 부모 마음은 아주 단순한 것 같습니다. 그게 부모인 것을….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 사랑합니다!!!

 

 

 

장모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참, 거제도 특산품 유자빵 구입 문의는 거제시 농산물 수출영농조합법인(☎055-636-1494)으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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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동생에서 여보 당신, 다시 오빠 동생으로
“오늘부터 아빠에게 여보 안하고 오빠~ 할꺼당~^^”
부부생활 위한 삶의 지혜 알려주는 주례사 없는 이유
딸 시집보낸 아빠 심정, “못해준 것만 생각난다!”
‘신랑 박재영 군과 신부 박다연 양 결혼식’ 소회

 

 

 

결혼, 새로운 출발입니다. 살면서 그 의미를 알게 되지요.

 

 

 

 

결혼.

 

“이 사람과 같이 평생을 하고 싶다!”란 믿음에서 하지요. 그러니까 행복하기 위한 결정입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에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살아 본 남자들 말로는 “결혼은 절집에 들어가 머리 깎는 것과 같은 고난의 길이요, 수행 길!”이랍니다. 어째, 이런 일이….

 

 

 

결혼식에 갔다 온 후 아내가 갑자기 미친 까닭

 

 

“나도 오늘부터 당신한테 ‘오빠’라 할래.”

 

헐~. 신혼 초, 오빠 소리가 듣고 싶어 아내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내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부부 사이가 ‘여보 당신’이지, 어찌 ‘오빠 동생’이 될 수 있냐!”는 논리였습니다. 그랬던 아내, 지난 주 결혼식 다녀와선 ‘오빠’라 부르겠다는 겁니다. 저야 고맙지요.

 

 

헌데, 오빠는 그냥 ‘오빠’라 부르면 재미없습니다. 콧소리 비음이 약간 섞인 “오빵~”하고 불러야 제 맛이지요. 과연 아내가 애교 만점이라는 코맹맹이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요거, 잘못 부르면 죽도 밥도 아니지요. 상상만으로도…. 고개 가로 젓고 호통 쳤습니다.

 

 

“당신, 결혼식에 가서 뭘 잘못 먹었어?”
“호호호호~, 아니에용~. 오빵^^”

 

 

아내, 단단히 미쳤습니다. 오래 살다보니 진짜 별일 다 있대요. 근데 어이 할꼬. 막상 눈앞에서 “오빵”하니 들어줄만 하더라고요. 남자는 다 똑 같다더니, 남자들이란…. 무슨 연유에서 오빠라 부르기로 했을까? 아내는 결혼식장에서 만난 닭살 부부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결혼, 축하합니다.

 

 

신부, 그 아름다움...

 

 

결혼 양가의 결합이지요. 왜?

 

 

 

“오늘부터 아빠에게 여보 안하고 오빠~ 할꺼당~^^”

 

 

“저 요즘 우리 남편한테 여보라 안 부르고 오빠라 해요!”
“안 그랬잖아요. 왜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남편에게 한 번은 ‘오빠~, 이것 좀 해줘’했더니, 좋아하면서 두 말 않고 해주는 거 있죠. 혹, 안 해주면 ‘오빠가 이것도 안 해줘’하면 빼다가도 부리나케 해주더라고요. 이거 남는 장사 아니에요? 남편이 오빠로 호칭 바꾼 후 더 잘해줘요. 한 번 해봐요.”

 

 

참나~. 아무나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이제부터 나도 그럴라고. 오빠가 더 잘해 줄 거지?”라며 용기 냈습니다. “그래 알았어!” 맞장구치며 침대에서 한참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웃음소릴 듣고 와서는 ‘왜 그래?’란 표정이더군요. 아내는 “너희는 몰라도 돼!”하며 그러더군요.

 

 

“엄마도 오늘부터 아빠에게 여보 안하고 오빠~ 할꺼당~^^”

 

 

아이들 덤덤하대요. 평소 닭살부부 행각을 많이 봤던 뒤끝이었지요. 흔히, 남자와 여자 사이는 “오빠 동생”이었던 관계가, 언제 그랬나 싶게 “여보 당신”으로 변한다죠? 그러다 세월 가면 다시 “오빠 동생”이 되는 거 같습니다. 연인에서 가족으로 변하는 거죠. 암튼, 아내의 <오빠! 선언>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말짱 도루묵이었습니다.

 

 

 

 

주례사는 왜 판박이일까?

 

 

결혼 생활의 시작과 끝은 배려입니다.

 

 

행복의 시작은 어디일까?

 

 

 

건강한 부부생활 위한 삶의 지혜 알려주는 주례사 없는 이유

 

 

지난 일요일, 지인과 함께 경남 창원에서 진행된 ‘신랑 박재영 군과 신부 박다연 양 결혼식’에 갔습니다. 지인은 주례 선생님, 저는 하객 입장이었지요. 신부 아버지 박천제 씨와 40년 친구인 지인, 식장 가던 도중 주례 원고를 주며 손 좀 봐 달라대요. 주례가 청춘남녀에게 하는 당부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부부간에는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교감하라!’
둘째, 부모님에 대해서도 ‘바꾸려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교감하라!’
셋째,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나’를 앞세우지 말고, ‘우리’를 먼저 생각하라!”

 

 

빼고 자시고 할 게 없었습니다. 결혼생활, 별 거 있던가요. 당사자인 부부, 키워주신 양가 부모님, 살아 온 사회에 ‘배려’면 그게 최선이죠. 근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기’밖에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배려하며 화합하길 바라는 게지요. 주례사 읽은 후 말없이 혼자 씩 웃었습니다. “왜 웃어?” 묻대요.

 

 

“주례사를 상식적인 말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괜히 씁쓸해서요.”

 

 

사실, ‘주례사는 왜 파 뿌리며, 부모 등의 말만 할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부부 화합, 부부 관계, 자녀 키우기입니다. 이와 관련한 건강한 부부생활을 위한,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주례사는 들어 본 적 없습니다. 왜 그럴까? 물었습니다.

 

 

 

 

딸 가진 아버지의 행복...

 

 

손을 건네주는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 딸 잘 컸구나... 

 

 

 

딸 시집보낸 아빠 심정, “못해준 것만 생각난다!”

 

 

“결혼식에는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오잖아. 부부 관계 등에 대한 당부 등이 들어가면 19금에 걸리기 때문인 것도 같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무난히 결혼식 마치려는 양가 입장을 대변하는 거 같은데.”

 

 

수긍했습니다. 그렇더라도,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사자. 부부 화합, 부부 궁합, 자녀 양육 등 난제(難題)들이 많습니다. 모두 두 사람이 풀어야 합니다. 살아 보니,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기본이더군요. 배려 없이는 원만한 부부 생활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아내들 불만이 적은 경우는 대부분 “가정 일 도와주는 남편” 여부에 따라 희비가 갈렸습니다.

 

 

결혼식 후, 신부 집에 갔습니다. 딸 둘 시집보낸 지인 위로 명분이었습니다. 식당에서 밥 먹으면 끝인 결혼식. 그런데 집에까지 또 음식을 정성껏 준비했더군요. 막걸리에서 국수까지 푸짐했습니다. 딸 보내기 서운해 장만했다대요. 신부 아빠, 딸 보낸 아버지 입장을 한 마디로 정리하대요.

 

 

“딸한테 잘해 준 거는 하나도 생각 안 나는데, 못해준 것만 생각난다. 미안하고 고맙데이.”

 

 

그러면서 “결혼시켜보니 지금껏 세상을 너무 쉽게 봤구나 싶다!”고 덧붙이대요. 어디 세상뿐이겠어요. 결혼, 너무 만만하게 생각지 말고 정성들여 열심히 살라는 당부인 게죠. 결혼, 수행 길이 되지 않으려면, 때론 “오빵!”하고, 애교도 피우며 알콩달콩 사는 게 효(孝)지요. 부부, 둘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는 세상입니다! 행복하시길….

 

 

 

 

 

엉......

 

 

주례 선생님의 세가지 당부 기억하시길...

 

 

결혼,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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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젓가락질 가르친 걸로 아는데….”
중학생 아들의 돌 직구에 ‘허허~’ 웃으며 뒤끝 작렬

 

 

 

 

 

 

설 잘 쇠셨어요?

명절 분위기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지요...

 

그럼 제 이야기 시작 할게용~^^

 

 

부모 노릇 쉽지 않습니다.

 

올 3월,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아들이 식탁에서 밥 먹다 말고 한소리 하더군요.

 

 

“아빠가 아들 가정교육 잘못시켰어요.”

 

 

이건 또 뭔 소리당가?

살다 살다 이런 말 처음입니다.

 

중학생 아들의 난데없는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에 기가 찼습니다.

아들의 돌직구에 얼굴이 화끈화끈. 그렇더라도 사태를 파악해야 했습니다.

 

 

“아들. 왜 아빠가 가정교육 잘못시켰다는 거야?”

 

 

가정교육을 잘못시킨 아빠의 죄(?)의 원인을 알 겸 아들에게 조심히 물었습니다.

 

아들, 겸연쩍게 씨~익 웃으며 답하더군요.

 

 

“중학생 아들이 아직도 젓가락질을 못하니 가정교육 잘못시킨 거 아니남?”
“맞다, 맞다!”

 

 

기상천외한 아들의 대답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성질 같아선 ‘어유~, 저걸 그냥 확 한 대 쥐어박아?’ 싶었습니다.

하지만 때리는 아빠 될까 봐, 말로 아들의 의견에 반박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젓가락질 가르친 걸로 아는데, 그거 기억 안나?”
“기억나요. 그래도 더 강력히 젓가락질 하도록 했어야죠.”

 

 

나 원 참. 이런 억지가 어디 있담!

한편으로 생각하면 맞기도 합니다.

 

아빠의 우월적 힘을 동원해 강제로 시킬 수도 있었지요.

허나…. 아빠 입장에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교육은 원리를 가르쳐 주고. 스스로 하도록 하는 거야. 억지로 떠 먹여주는 게 아니란다. 노력 하지 않은 너 잘못이 더 커.”
“아빠. 아들이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완전 뒤끝 작렬이다!”

 

 

아들이 뒤끝이라 해도, 아빠로써 할 말은 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뒤에 원망(?)을 듣지 않을 테니, 이참에 확실히 할 필요가 충분했습니다.

 

 

”누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교육용 젓가락을 지 용돈으로 사서 젓가락질 연습 많이 한 거 봤지? 그런데 우리 아들은 뭐했을까?”
“알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고 보니, 저도 중학교 3학년 때 젓가락질을 완전 익혔습니다.

무엇이 젓가락질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이끌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여튼 어떤 계기가 있었겠죠.

이번에 아들이 제대로 배우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설이 되었습니다.

설 하루 전날 조카며느리 둘, 조카사위 하나, 손주 둘까지 북적북적했습니다.

음식이 만들어지고, 덕담이 오가고….

 

저녁에 아버지를 중심으로 밥상에 둘러앉았습니다.

여기서 아들을 향한 아빠의 뒤끝이 여지없이 작렬했습니다.

 

 

“아들, 젓가락질 제대로 해라.”

 

 

가족들 앞에서 겸연쩍게 씩 웃는 아들의 얼굴에는 무안함이 들어 있었습니다.

녀석이 아빠의 의도를 알았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교육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너 어디 한 번 당해봐라’하고 아들에게 한 방 갈긴 겁니다.

 

미안하다, 아들!

 

 

 

 

 

 

말 나온 김에, 젓가락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 알아보죠.

 

 

<젓가락의 올바른 사용법>

 

1. 안쪽 젓가락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 깊이 넣고 중지 손톱위에 얹는다.


2. 바깥쪽 젓가락은 엄지 손톱아래에 넣고 검지 안쪽에 닿도록 하여 중지 끝 쪽에 가서 중지 손톱부분에 고정시킨다.


3. 1번의 안쪽 젓가락을 고정시킨 후 2번의 바깥쪽 젓가락을 엄지에 고정한 후 검지와 중지에 잡혀 있는 젓가락을 안쪽으로 움직인다.

 

 

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젓가락 사용법을 강조하는 이유는 젓가락을 사용하면 손가락의 분화 기능도 발달시키고, 뇌 발달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등 어른들 앞에서 젓가락질 하는 아들, 죽을 맛입니다.

설날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야 감이 오더군요.

녀석이 제대로 젓가락질 배울 것 같다는….

 

 

오늘 아침도 아들의 젓가락질은 여전히 서툴렀습니다.

그런데도 열심히 배우려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더군요.

 

아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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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68

 

 

비상도의 사부가 이소룡과 겨룰 뻔 했다?
“이름자로 형님을 가리자고 했다지 아마.”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주제는 권선징악이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매스컴은 비상도에 관한 일이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였다. 비상도에 관한 새로운 기사를 얼마나 많이 싣느냐에 따라 신문의 선호도가 높았고 기자들은 비상도가 갈만한 곳을 찾아 나섰지만 늘 뒷북만 쳤다.

 

 

 어제 체육관에서 있었던 일만 해도 그랬다. 그곳에 있었던 누군가가 제보를 하였고 기자들이 그곳에 갔을 때는 비상도가 벌써 빠져나간 뒤였다. 사람들은 모였다하면 비상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 그 이야기로 끝을 맺을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시중에 떠돌기도 했다.

 

 

  “자네 이야기 들었나?”
  “무슨?”


  “글쎄, 비상도의 사부가 이소룡과 겨룰 뻔 했다는 말.”
  “그런 일이 있었어?”

 

 

 희한한 것은 겨룬 것이 아니고 겨룰 뻔 했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두 영웅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한 이야기였지만 지어낸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이소룡과 그의 사부가 서로 겨루기로 하고 약속장소에 나갔는데.”


  “아따 이 사람, 뜸 좀 그만 들이고 본론으로 들어가.”
  “서로를 노려보던 사람이 십여 분의 시간이 지나도 공격을 하지 않았어. 그리고는 서로 벗어 놓은 옷을 입었다는 거야.”


  “왜?”
  “서로가 공격할 틈을 보이지 않았던 거지. 영웅은 능히 영웅을 알아본다잖아?”


  “그래서 어찌 됐어?”
  “이름자로 형님을 가리자고 했다지 아마.”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고 있었다.

 

 

  “이상한데?”
  “하여튼 그래서 이소룡과 김대한 두 사람은 가운데 이름자인 ‘소’와‘대’를 가지고 비상도의 사부인 김대한이 형님이 되었다는 말이지.”
  “하여튼 저 사람 거짓말하는 데는…….”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누군가가 지어낸 말인 것을 알고 그냥 웃고 넘겼지만 사람들은 비상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희열을 느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은 봄비가 제법 굵은 장대비로 바뀌어 아스팔트 위에도 제법 빗물이 고였다.

 

 

 비상도는 점심때가 지났을 쯤 우산을 받쳐 들고 숙소를 나섰다. 어젯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조천수 회장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방 하나를 얻었던 것이다.

 기분이 묘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자꾸만 느려졌다.

 

 

 처음 그분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많은 갈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모든 짐 내려놓고 그곳으로 들어가고도 싶었다. 얼마 남지 않았을 부모님의 여생을 생각할 땐 더욱 그랬다. 하지만 하룻밤을 생각한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동안 마음이 흔들렸던 자신의 마음속에는 부의 승계가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계속…)

 

 

 

 장편소설 <비상도>가 2014년에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기에 연재 오늘로 중단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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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64

 

 

차비조로 내가 오천 원은 줄 수 있는데…

그 많은 재산 아까워 어째 죽었을까?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주제는 권선징악이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다른 곳에 가서 알아보시오. 그리고 남의 일에 괜히 나서지 말고, 손 부장 손님 내보내라.”

 

 

 손 부장이라는 자가 창문을 쾅 하고 닫으며 씨부렁거렸다.

 

 

  “여기까지 온 성의를 봐서 차비조로 내가 오천 원은 줄 수 있는데 어쩔 거요?”
  “그러지. 그 돈이라도 주면 받아야지.”

 

 

 그자가 호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비상도에게 건네는 순간이었다.

 

 

  “아악!”

 

 

 비상도가 전광석화같이 손바닥을 돌려 그자의 수갑리를 움켜잡은 것이다. 그는 손등의 급소를 잡혀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원금이 오백만원인데 이자가 일억이라. 어때 원금만 받는다면 이 자리에서 돌려 줄 수가 있어. 그렇지만 말도 안 되는 이자를 받고자 한다면 난 줄 수가 없어.”

 

 

 그때였다. 밖이 소란스러워지며 여남은 명의 양아치들이 들이닥쳤다. 그들 손에는 몽둥이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나를 치겠다는 말인가?”
  “이자를 주겠다는 각서를 쓰면 곱게 돌려 보내주지.”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나는 어차피 이자를 줄 생각이 없으니 말일세. 내가 너희 모두를 상대로 싸워 내가 이기면 원금만 주기로 하고 내가 지면 이자까지 주겠다는 각서를 쓰지.”

 

 

 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불법이었고 경찰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이자 또한 물 건너 갈 것이 뻔했다. 아니 이자는 고사하고 협박죄로 쇠고랑을 찰 노릇이었다.

 

 

 이 사람을 보아하니 예사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곳에 와 있는 깡패들의 몽둥이만 보아도 바짓가랑이에 오줌을 싸기 마련이었다. 뭔가가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렇다 해도 싸움이라면 이골이 나 있는 건달들 열다섯 명을 이기는 것은 소설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장고를 거듭하던 그때 비상도에게 손을 잡힌 녀석이 소리를 내질렀다.

 

 

  “사장님. 날 죽이려 그러슈?”

 

 

 마침내 사장이 입을 열었다.

 

 

  “좋소. 단 내가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요.”
  “나 또한 부탁을 하나 하지. 그 누구도 무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게 어떤가? 생각 외로 시끄러워질 수가 있으니 말일세.”


  “좋소.”
  “장소를 말해보게”


  “오늘 밤 구로동에 있는 칠성체육관이요.”
  “그러면 저녁에 만나세.”

 

 

 이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릴 조짐이 보였다.
 그곳을 벗어난 비상도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점심때가 지나서인지 식당 안은 한산했다. 비상도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바로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참 산다는 것이 허무해. 그 일성그룹 조천수 회장 말이야. 오늘 아침에 심장마비로 죽었다지.”

 

 

 비상도가 듣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렸다.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글쎄 말이야. 돈이 저리도 부질없는 것인 줄을 눈으로 보면서도 이렇게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니, 참 아이러니야.”

  “그 많은 재산 아까워 어째 죽었을까? 아직 부인이 있긴 하지만 그분도 지병이 있다지?”


  “언젠가 들은 얘긴데 어릴 때 잃어버린 자식이 있었다던데?”
  “나도 어디서 들은 것도 같아. 가만히 있어도 그 많은 재산 다 물려받았을 텐데, 참 복도 지질이도 없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게나.”

 

 

 그들은 괜히 입맛을 다셨다.

 

 

  “나쁜 짓도 많이 했지만 하여튼 돈 버는 데는 타고난 수완을 가진 사람이었어.”

 

 

 비상도는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뜨거운 액체가 목젖을 타고 올라왔다. 조부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의 궁색했던 변명,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패륜에 대한 회한이 형용키 어려운 감정으로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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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24

 

 

“중학교엘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네가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비상도는 용화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갔다. 요 근래 자주 집을 비운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용화는 기분이 좋은지 스승님께 말을 걸어왔다.

 

 

  “스승님, 내년에는 중학교엘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당연히 가야지.”

 

 

 비상도는 아이를 더 큰 도시로 보내 공부를 시킬까를 생각하고 있었고 며칠 전 성 여사와도 그 문제에 대해 의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용화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기로 했다. 용화는 그제야 안심을 하는 모양이었다.
 멀리 산골짜기로부터 서서히 어둠이 묻어오고 있었다.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느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스승님, 얼마 전에 오신 사장님께서 스승님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럴 거라 생각하느냐?” 


  “느낌으로 알았습니다.”
  “네가 그 분을 좋아하는 모양이로구나.”


  “스승님께서 어떻게?”
  “짐작이었느니라.”

 

 

 마음을 들킨 용화가 눈덩이를 걷어찼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던 새들이 화들짝 놀라 날아올랐다.

 용화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 결혼은 하는 것이 좋습니까? 안 하는 것이 좋습니까?”

 

 

 누군가의 말처럼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빨리 오는 모양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스승님을 뵈면 자유로운 것 같아 보이고 또 한편으론 슬퍼 보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넌 자유를 원하느냐?”
  “네.”


  “그러면 결혼을 해야지.”
  “스승님처럼 결혼을 안 해야 자유롭지 않습니까?”


  “어떤 자유를 말하는고?”
  “이를테면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고 또 집을 비워도 되고…….”


  “이놈아, 너는 자유를 집에서 찾으려하느냐? 밖에서 찾으려 하느냐?”

 

 

 두 사람이 들어간 곳은 치킨 집이었다. 옛날 남재 형이 군대 가기 전 스승님께서 사 오신 치킨 맛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맛으로 기억에 남은 까닭이었다.

 

 

  “용화야, 나는 네가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용화가 본 스승님의 모습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스승님은 자꾸만 치킨을 용화 쪽으로 밀어 놓았다.  (계속…)

 

 

 

 

 

 위는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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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19

 

 

아버지께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법도
만사의 시작과 끝은 인사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비상도가 자리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스님이든 아니든 남의 일에 왜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거야?”

 

 

 그가 다시 젊은이들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런가, 술을 먹었으니 장유의 질서도 모른다는 말이지?”

 

 

 밖에는 어떨지 몰라도 아직까지 산중의 법도에는 엄연히 장유의 질서가 존재하였고 특히 예의 가르침을 받은 그에겐 나이는 위아래를 구분 짓는 질서인 동시에 초면에 서로를 인정하는 수단이었다.

 

 

  “내가 주법을 가르쳐야겠어. 모두 이리로…….”

 

 

 채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한 젊은이가 귀찮은 듯 그를 밀쳐 내려고 손을 내뻗는 순간이었다. 작은 비상도의 움직임이 있었고 곧 젊은이는 몸을 숙인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의 동공이 반쯤 풀려 있었다.

 


 나머지 젊은이들이 의자에 급히 앉은 것은 그 다음이었다. 모두들 술이 확 깬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바닥에 누가 가래침을 뱉었느냐?”
  “…….”

 

  “너희 놈들 입에서 나온 것이니만큼 너희들 입으로 주워 담는 것이 맞겠지?”
  “스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스님이 아니라고 했느니라.”
  “저, 선생님 하지만…….”

 

  “너희 놈들은 자신들 방에 가래침을 뱉느냐?”
  “아닙니다.”

 

  “이곳도 방이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깨끗하게 사용해야 할 곳이니라.”
  “잘못했습니다.”


  “그럼 휴지로 깨끗이 닦아라.”

 

 

 그들은 눈치를 살피며 그것들을 말끔하게 치웠다.

 

 

  “탁자 위에 널려 있는 담배꽁초들도 재떨이에 넣어라.”
  “예.”

 

  “그리고 너의 아버지 연세가 몇이냐?”
  “올해…. 쉰다섯 입니다.”

 

  “그럼 저 분들과 비슷한 연배가 아니냐. 아버지께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법도이니 가서 사과하라.”

 

 

 그들은 잰걸음을 놓으며 어른들께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 세상이, 아니 너희들 부모가 그리고 선생이 가르쳐 주지 못한 소중한 것들을 내가 일러준 것이니 그 첫째가 몸을 낮추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몸으로 직접 행하는 공부가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교훈으로 준 것이야.”

 

 

 여느 때 같으면 그냥 술잔만 비우고 일어났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끓고 있는 분노를 누구에게라도 풀고 싶은 마음이었다.

 

 

 비상도는 성 사장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그런데 그가 뭘 두고 나왔는지 다시 술집으로 들어갔다.

 

 

  "젊은 친구들, 내게 인사를 했던가?”

 

 

 그들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가르침을 준 스승님이 나가시는데 인사 정도는 해야지. 만사의 시작과 끝은 인사인 것이야.”
  “아 예, 안녕히 가십시오.”

 

 

 그는 오늘따라 자신이 왜 이러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는 그의 눈에 얼핏 눈물이 비쳤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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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자랑질이야, 이런 여인 정말 사랑스럽다! 

 

 

 

구십을 바라보시는 부모님과 이모님입니다.

 

전어 모듬이 푸짐하니 좋습니다.

 

 

 

 

'이런 부부 되게 하소서!'

 

이런 마음으로 결혼하는 게 살다보면 그게 어디 되던가요...

 

 

이번에는 대놓게 자랑하오니,

 

‘어디서 자랑질이야?’

 

하지 마시고, 함 덤덤히 읽어주시길….

     .

     .

     .

     .

     .

 

 

“오늘, 어른들과 식사해요.”

 

 

어제, 곁님의 갑작스런 제안.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요즘 전어가 많이 난다며 어른들에게 전어를 대접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따지고 말고 할 게 없었습니다. 흔쾌히 OK였습니다.

 

 

“여보, 이모님 부부도 초대해요.”

 

 

곁님, 이모님 부부까지 모시재요.

어른들 모실 때마다 이모님 부부까지 늘 함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어머니는 아를 무척 고마워 하십니다.

이유는 사소합니다.

 

 

“90을 바라보시는 어른들이 서로 말 벗하시면서 사시는데 좋지 않겠어요.”

 

 

이런 곁님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합니다.

어쨌거나, 어른들을 모시고 식당에 앉았습니다.

 

 

전어 모둠을 시켰습니다.

모둠을 시키면 전어 사시미, 전어회, 전어구이가 차례로 나옵니다.

여기에 어른들 립 서비스도 나옵니다.

 

 

이모 : “잊지 않고 매번 이렇게 불러 줘 고맙다.”
이모부 : “네가 각시를 아주 잘 만났어. 최고다 최고.”

 

 

이모님과 이모부에게 공치사를 들으니 기분 업입니다.

어른들이 맛있게 드시니 덩달아 기분 좋습니다.

어른들을 집에 모셔다 드린 후, 집에 오는 길에 아내에게 이모부 부부까지 모시는 마음을 물었습니다.

 

 

“부모님 모시는 거에 숟가락 한 쌍 더 얹은 것뿐이야. 그게 어렵겠어?”

 

 

어른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하시도록 겸손해하는 곁님의 배려가 고마웠습니다.

마음 씀씀이가 이렇게 넉넉하니, 이런 아내가 자랑스럽지 않겠어요?

 

이런 여인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1928년과 1929년생이신 아버지와 이모부입니다. 

전어가 된장밥에 빠진 날... 

아 잘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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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 하실 만 합니다. 최고세요...^^

    2013.08.26 21:19 신고

아빠들도 최소 10가지 요리는 해야 한다고?

 

 

 

아빠표 김치볶음밥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열대야~~~

 

때 아니 게,

 

‘무더위에 지친 저녁,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 먹게 해 줘야지.’ 싶었습니다.

 

 

“얘들아, 우리 뭐 먹을까?”

 

 

서비스에 들어 간 겁니다.

이에 대한 식구들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아내 : “당신, 뭐 먹고 싶은데?”
딸 : “아빠, 왜 그래?”
아들 : “해만 줘. 뭐든 먹을게.”

 

 

놀람과 반가움, 설마 등의 역설이 난무했습니다.

간편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단순한 게 최고.

 

주방에서 참기름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데 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아빠도 요리 할 줄 알았어?”
“아빠도 종종 했잖아. 닭도리탕도 해주고, 라면도 끓여주고.”
“얼마나 했다고….”

 

 

요거 하나에 온 가족이 좋아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요즘 뜸했습니다.

 

예전, 후배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빠들도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최소 10가지 요리는 해야 한다.”

 

 

당시 이 말을 듣고, 헉 10가지나? 했습니다.

이유는 “맞벌이 시대에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 먹일 아빠 요리 레시피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후배는 찔리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선배는 당연히 10가지 요리 하시죠?”

 

 

‘헉’이었습니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럴 땐 침묵이 금. 속으로 할 줄 아는 요리를 꼽아 보았습니다.

 

라면, 김치찌개, 두부조림, 달걀 프라이, 닭도리탕…. 몇 가지 없었습니다.

이런~, 엄청 찔렸습니다.

 

어쨌거나, 식구들을 위해 종종 요리하는 남편 및 아빠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김치볶음밥이 완성되자 식탁을 차린 후 식구들을 불렀습니다.

식구들, 한 마디씩 터졌습니다.

 

 

아내 : ”남편이 해 준거라 더 맛있겠당~^^“
딸 : “아빠가 이걸 했다 이거지~^^”
아들 : “아빠가 해 준 볶음밥 맛있네~^^”

 

 

김치 볶음밥은 가짜 아빠를 참 아빠로 만들었습니다~^^

 

 

 

 

품평이 좋으니 기분 짱이었습니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여기서 끝이었으면 가족을 위한 한 번의 봉사(?) 쯤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근데, 음식을 먹으면서 아들이 기어코 뼈아픈 농담을 던졌습니다.

 

 

“이제야 아빠 같네.”

 

 

이제야 아빠 같다니 머리가 띵했습니다.

이렇게 섭섭한 말을 하다니, 충격이었습니다.

 

요리로 표현된 아빠의 사랑이 아들에겐 감동이었을까?

중학교 2학년 아들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

 

 

“우리들이 먹던 말건, 뭘 먹던 신경 안 쓰던 아빠가 이제야 식구들 먹는 것에 신경 쓰는 것 같아, ‘이제야 아빠 같다’고 느꼈다!”

 

 

그게 아닌데…. 궁금했는데….

여하튼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니 흐뭇했습니다.

 

아버지란 역할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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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자리 있어?” … “아니.” … “자리 있다.”
아빠와 딸의 이심전심과 “사랑한다, 우리 딸”

 

 

 

버스에서 딸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낯익다. 맞다. 꿈에서 본 듯하다.”

 

 

살다보면 이런 우연 있습니다. 특히 기막힌 우연을 두고 인연 혹은 필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인연이더라도 맞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집니다. 그러니까 우연도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재미있습니다.

 

 

어제 딸과의 기막힌 우연에 얽힌 사연입니다. 버스를 탔습니다. 뒤에 앉아 집으로 오던 중 딸을 닮은 여학생이 언뜻 보였습니다. 승객 사이로 자세히 보니 영락없는 제 딸이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만남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헉, 이러면 딸 바본가?)

 

 

승객이 많아 큰 소리도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서로 눈 마주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눈이 마주쳤습니다. 놀라움에 커진 딸의 동공에 아빠가 비칠 정도였습니다.

 

서로 방가방가~^^ 말 대신 방긋 웃음 지었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이심전심입니다.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문자 메시지였습니다. 발신인은 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기계를 기막히게 이용한다더니 실감했습니다.

 

사람 많은 버스 안에서 앞뒤에 있는 아버지와 딸이 핸드폰을 이용해 소통할 줄 어찌 알았겠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소통 방법은 기성세대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뒤에 자리 있어?”
“아니.”
“그럼 말지 뭐.”

 

 

허허~. 아빠에게 올 줄 알았더니 오진 않더군요. 사람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귀찮다는 겁니다.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었습니다.

 

승객들이 하나 둘 내리고 자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딸을 불러 말아? 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자리 있다.”

 

 

썰렁한 부녀지간입니다. 그렇지만 생각지도 않은 딸과의 만남은 또 다른 행복이었습니다.

 

 

“사랑한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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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쟁이 사춘기 중2 아들의 놀라운 변화

부자지간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 상의 변화

 

 

 

 

커가는 아이들 키우기 힘듭니다.

날마다 새로우니까...

 

 

“아빠, 저 병원에서 자고 가면 안 돼요?”

 

 

2주전, 인생에서 제일 무섭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절친 두 명이 같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한 명은 운동하다 다리가 부러졌고,

한 명은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병원에서 잔다니 쉽게 허락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지지난 주말에도 같은 요구를 했었습니다.

 

 

“아빠, 제발 병원에서 친구들과 자게 해줘요!”

 

 

아들의 외침에도 냉정하게 결정을 미뤘습니다.

게다가 아이들 엄마에게 결정을 맡기기까지 했습니다.

 

아내는 분명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요즘 아들이 통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건 다반사.

전화도 안 받고, 약속은 쉽게 어깁니다.

 

아내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착한 아들이 달라졌다. 이제 내 아들 아니다. 당신 아들 해.”

 

 

20일, 아들은 전화로 외박 허락을 요구했습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엄마에게 허락 받아” 했더니, 아들은 한 술 더 떴습니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이 어딘지, 냄새 맡는데 도가 텄습니다.

 

 

“아빠, 제발…. 엄마는 안 된다고 할 게 뻔해. 아빠가 허락 해줘요.”
“그러게 엄마에게 점수 좀 따지 그랬어.”

 

“그럴 게요. 아빠가 허락해 주세요.”

“그래라. 엄마에겐 네가 직접 전화해서 다시 허락 받고.”

 

“헉, 엄마는 안 된다니깐. 아빠가 엄마 좀 설득해 주라니까.”

“엄마 아들이었던 녀석이 왜 이리 됐어. 그래도 네가 전화해라.”

 

 

요즘 아들과 아빠, 밀월 관계입니다.

예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대화가 필요해>에서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요. 저희 집 부자관계와 비슷했습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완전 좋아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아버지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인 저의 변화는 아이들이 다니는 여수무선중학교에서 7월 중순 2주 일정으로 진행했던 <행복한 아버지 학교>를 다닌 후부터입니다.

 

이 교육에서 부모는 럭비공 같은 아이들의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더군요.

아이들의 반항은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니 자연스레 받아 들여야 한다더군요.

이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여, 변화를 도모했습니다.

 

 

“~안 돼.”
“~해.”

 

 

이처럼 그동안 제가 아이들에게 사용한 말투는 과거 아버지의 상징(?)처럼 권위적이고 무미건조했습니다.

 

아이들도 “아빠 그 말투 기분 나빠요”할 정도였습니다.

계속 이렇게 했다가는 자식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 혹은 “친구 같은 부모”는 물 건너갈 게 뻔합니다. 때문에 말투를 좀 더 부드럽게 바꿔가는 중입니다.

 

 

“이거 좀 해라.”
“~생각 좀 해보자.”

 

 

명령적인 말투를, 아이들 입장까지 고려하는 청유형으로 바꿨더니, 아이들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귀에 귀마개를 했는지, 말을 씹던 아들이 달라진다는 건 놀라운 변화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바람직한 변화라 기분 좋습니다.

 

 

변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주에 부자지간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아들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태빈아, 9시10분쯤 병원 앞 도로변으로 나오시게….”
“5분쯤 늦겠네.”
“5분 더 기다려야 할 듯….”

 

“버스정류장 쪽에 있어요.”

 

“가방 열렸다. 잠궈.”
“나오시게 아들.”

 

 

그냥 일반적인 부자지간 대화 같은가요?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알겁니다.

 

혹 그동안 썼던 명령조 어투도 섞였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나오시게”, “늦겠네” 등에서 보듯, 예사 높임 어투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어투를 쓰는 까닭은 부모에게 속한 자식에서 벗어나 한 인격체로 대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자기 존재감(자존감)을 높여 스스로 아버지와 대화하려는 등의 열린 마음을 일깨운 겁니다.

 

그 전까지요? 아빠는 멀뚱멀뚱, 주로 엄마와만 대화했습니다.

여하튼, 아들의 외박을 허락했으니 아이들 엄마 설득은 제 몫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문자를 날렸습니다.

 

 

 

 

“태비니 자라했네. 낼 집 청소하는 조건으로….”

 

 

답신이 없어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들에게 전화 왔었다고 하더군요. 자기도 허락했다더군요.

아들이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아들이 대견합니다.

 

 

역시, 자기부터 바뀌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꾸기 힘든 세상임을 실감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친구 같은…’이 붙어가는 중입니다.

 

한 가지 걱정입니다. 부자 간 밀월 관계가 언제 어느 순간 물거품이 될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사 공짜로 생기는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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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는데, 번호표 받고 기다려야 하는 거 아냐?”
예상치 못한 아내의 깜짝 행동에 감동하다!!!

 

 

 얼음이 사르르르~, 열무막국수입니당~^^

 

 

“여보, 같이 점심 먹어요.”

 

 

어제 아내의 깜짝 데이트 제안이었습니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뭘 먹을 건데 물었더니, 냉면을 외치더군요. ‘콜’했습니다.

 

냉면은 면발 좋아하는 아내가 최고로 꼽는 여름 별미 중 하나입니다.

아내와 만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말을 잘 못 알아들어 걱정이에요.”

 

 

점심 먹으러 가는 것과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지 싶었습니다.

그렇잖아도 한 번 찾아뵐 때가 됐는데….

 

 

“어머님께 점심하게, 모시러 간다 했는데 그걸 못 알아들어요.”

 

 

알고 보니, 아내는 어머니께 전화해 점식 예약을 했더군요.

 

그래, 부모님 집에 갔는데 아버지는 운동 나가시고, 어머니는 집에서 드신다고 “너희들끼리 먹어라”하더라는 겁니다.

 

 

이 소릴 들으니 괜히 기분 좋대요.

왜냐하면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저희 부부의 단란한 데이트로만 알았지, 부모님과 함께하리란 제안을 했으리란 건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부모님께 신경 쓰는 아내가 고마워 갑자기 콧노래까지 나오더군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식사 안 가신다 하셔셔 딸딸 긁어 어머니께 용돈 드리고 왔어요.”

 

 

이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가슴에 한 번씩 대못 박는 못난 남편이 뭐가 좋다고, 아내는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지…. 처가에 잘하지도 못하는데, 미안할 따름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예상 못한 아내의 깜짝 행동은 제게 작은 감동이었습니다.

이런 게 행복일까?

 

 

국물이 깔끔해 여름 별미로 즐깁니다용~^^

 

 

“빨리 오긴 왔는데, 번호표 받고 기다려야 하는 거 아냐?”

 

 

국물이 깔끔해 자주 찾는 음식점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이 줄까지 설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내는 열무냉면을, 저는 열무막국수를 시켰습니다.

 

 

남편에게 작은 감동을 선사한 아내가 예쁘게 보이니 대하는 것도 달라지더군요.

 

뭐냐고요?

 

평소 같으면 아내가 알아서 잘라 먹게 놔뒀을 텐데, 이번에는 아내가 먹기 좋게 냉면을 가위로 잘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

 

 

“어머, 당신이 웬일?”

 

 

그러고 보면, 사람 마음 참으로 간사합니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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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elevigirl.tistory.com/ BlogIcon 테레비소녀   수정/삭제   댓글쓰기

    퇴근시간임박..아..군침살살..ㅠ_ㅠ 다이어트고 뭐고 먹으러가야겠슴다!!

    2013.07.10 17:36 신고

 

 

 

# 1. 이혼에 대하여

 

“아빠 엄마 이혼하면 넌 누구 따라 갈거니?”
“난? 엄마.”

 

 

TV를 보던 중 가볍게 딸에게 물어 봤습니다.

물으면서도 속으로는 ‘왜 이혼해요. 이혼하지 마세요.’ 할 줄 알았습니다.

 

근데 너무 쿨하게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빠를 포기하고 엄마를 따르겠다니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이 왔습니다.

 

 

이혼이 상식화 된 세상이라서 그럴까? 한 술 더 뜬 아내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넌 임씨 집안이니 임씨들끼리 잘 살아. 호호~."

 

 

어쨌든 농담으로라도 이런 허튼소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2. 막장 드라마에 대하여

 

 

TV 드라마를 보면 가관입니다.


실제로 백년의 유산, 출생의 비밀, 금 나와라 뚝딱, 최고다 이순신, 대왕의 꿈, 원더풀 마마 등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는 잔잔한 일상을 통해 삶의 그 무엇을 느끼고 배우며 즐기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충격요법을 통한 호기심 끌기로 막장화 되었습니다.

이 중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게 출생의 비밀입니다. 뭐가 그렇게 비밀이 많은지…. 아무리 드라마상의 설정 중 하나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느낌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다른 아이, 아버지가 다른 아이… 등등.

그러니까 막장 드라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륜 혹은 불법을 부축이고 있습니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아이들이 호강하는 도구로 출생의 비밀이 이용된다는 겁니다.

 

 

가난한 아버지, 가난한 어머니는 하찮은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허구라는 틀을 무기 삼아 아무렇지 않게 불륜, 혹은 불법을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은연 중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는 사회와 드라마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3. 아버지에 대하여

 

 

“우리 아버지 죽었으면 좋겠어.”
“우리 아버지가 아닌 다른 부자 아버지가 나타날 것만 같아.”

 

 

버스 안에서 청소년기 여학생들의 대화 중 우연히 들었던 말입니다.

아버지가 죽어야 할 대상, 부자 아버지를 그리는 엉뚱한 상상에 그만 뒤로 까무러칠 뻔 했습니다.

 

물론, 세상이 이렇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 교육의 역할 부족.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정치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통용되는 배경 사회 등.

 

이 모든 건 철학의 빈곤이 원인일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시청률을 담보로 이혼과 불륜 등을 주 무기로 내세우는 공중파 방송이 만들어낸 막장 드라마를 꼽고 싶습니다.

 

 

건강한 드라마와 훈훈한 세상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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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카네이션 한 송이의 소중한 의미가 간절히 느껴집니다.

 

어버이날 아침부터 은근히 서운합니다.

 

아니, 어제 밤부터 서운했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 말했거든요.

 

 

“너희들 카네이션 샀어?”

 

 

그런데 오늘 아침, 은근히 바랐던 카네이션도 편지도 없습니다. 부모는 아이들 수학여행 등을 간다고 어린이날 옷과 가방 등을 사줬는데...

 

‘기대하지 않으면서 내심 기대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라더니 그렇습니다.

 

대신, 자기들 수학여행과 수련회 떠날 준비하느라 정신없습니다. 아침부터 말이 곱지 않게 나갑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쓴 어버이날 편지입니다.

 

 

“중학생이나 된 것들이 카네이션 하나 없냐?”
“….”

 

“너 친구들은 카네이션 안 사디?”
“예. 아무도 안사던데요.”

 

“엄마 아빠가가 부모님과 식사하고, 용돈 드리고, 전화하는 거 못 봤어?”
“….”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먹고 있습니다. 아내가 한 마디 거듭니다.

 

 

“그래, 너희들이 챙기지 않는 건 잘못이다. 마음이 있어야 챙기지….”

 

 

예전에도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아이들을 닥달해 저녁에야 편지를 받았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나 봅니다. 이거 부끄러워 할 말 없습니다.

 

아내의 치명적 한 마디에 가슴 아픕니다.

 

 

“우리가 보여준 게 없나 봐요.”

 

 

그러고 보니 가슴 깊게 반성됩니다.

 

예전 학창시절 어머님이 생각납니다. 한 번은 어버이날 그냥 지나쳤더니, 저녁에 단단히 화가 나신 어머니의 맺힌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가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카네이션 하나 못 달아 주냐? 내가 아이들을 잘 못 가르쳤지….”

 

 

꼭 이 마음입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아이들은 "죄송하다""태어나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다음부턴 잘 챙기겠다"는말을 남기고 수학여행과 수련회를 떠났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좀 풀립니다.

 

 

어쨌거나, 부모 자식 간에도 오고 가는 정이 있어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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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어머님과 식사 할 시간이 오늘 밖에 안 되는데, 당신이 연락 좀 해봐요.”

 

 

어제 오후 아내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8일 어버이날 시간을 낼 수 없다니 일정을 조정하는 수밖에. 부모님께 전화했습니다.

 

 

“오늘 저녁 시간 어때요?”
“어버이날 때문에 그러지? 우린 괜찮다. 식사 범위는?”
“이모와 이모부까지요.”

 

 

아이들에게도 일찍 집에 올 것을 문자로 요청했습니다.

저녁에 서둘러 어른들을 모시러 갔습니다. 팔십 중반 연세에도 아직 건강하신 어른들이지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 우리까지 안 챙겨도 되는데 고맙네.”

 

 

이모부는 타지에 나간 상황이라 혼자 나온 이모님께서 “다 죽고 둘밖에 안 남은 자매가 다 늙어 힘이 된다.”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팔십 중반의 어머님과 이모님, 서로 많은 의지가 되나 봅니다.

 

 

“언니,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내복을 아직도 입고 있소.”
“나도 그러네. 자네도 그런가. 몸조심이 제일이야.”
“이제 나도 예전 같지 않아, 언니.”

 

 

전 같지 않다는 말에 미안한 마음입니다.

식사 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린이 날 용돈을 쥐어 줍니다. 아이들 뜻하지 않은 횡재에도 반가운 표정을 애써 감추며 “됐어요, 할머니”합니다. 수학여행 갈 아들은 두둑히 용돈을 챙겼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어버이날 해야 하는데 그리 됐어요.”
“아니다. 괜찮다. 니가 항상 고맙다.”

 

 

아내가 봉투를 건넵니다.

그리고 챙겨 둔 떡까지 나누어 건넵니다. 그걸 보던 이모님 한 마디 합니다.

 

 

“며느리가 별 걸 다 챙기네. 자네는 며느리 잘 얻어 좋겠다.”

 

 

아내는 싱글 생글. 어른들이 내리자 아내가 하는 말이 뜻밖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미리해도 소용없어요. 당일 날 가야 덜 서운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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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아버지, 가족과 소통 이렇게 하시면…

 

 

 

다화개별꽃입니다.

 

 

아버지들 고생 많습니다.

무한도전 무한상사 편에서 정준하의 해고는 많은 아버지들의 현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자녀 교육으로 인한 기러기 아빠도 우리네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아버지들은 이런 현실에서도 가족과 소통은 쉽지 않습니다. 소통을 위해서 또 노력해야 합니다.

 

 

 

어제 지인과 집 뒷산인 안심산에 올랐습니다.

여수 가막만의 섬들과 해안선이 그림처럼 펼쳐진 다도해 풍경을 보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풍경이 너무 예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묵묵부답.

 

 

“야~, 철쭉이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었네~”

 

 

안심산 정상 밑 8부 능선에 예쁜 철쭉이 피었더군요.

지인은 이 철쭉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문자로 보내더군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소통은 문자가 제일이야~. 그것도 짧은 문자로 여러 번~”

 

 

듣고 보니, 맞는 소리였습니다.

긴 문자를 보냈는데 간단히 여러 번 보내는 게 좋다는 겁니다.

 

또한 아내에게만 풍경 문자를 보낼 게 아니라 딸과 아들에게도 함께 보냈어야 했는데 싶더라고요. 뒤늦게 ‘아차~’ 했습니다. 철쭉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문자를 날렸습니다.

 

 

“안심산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네... 우리 아이들처럼 예쁘네...ㅋ~^^”

 

 

 

 

 

 

저희 아이들의 답신은 없었습니다.

중간고사 시험 준비에 바쁜 탓도 있지만, 아빠의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지인은 딸에게 문자 답신이 왔습니다.

 

 

“아빠 너무 좋아요~”

 

 

지인이 평소에 자녀들에게 투자한 보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부럽더군요. 어쨌거나 지인의 모습은 배움이었습니다. 대신 아내에게 들꽃 사진을 찍어 문자를 보냈습니다.

 

 

“당신을 닮은 꽃이 있어 반갑구먼!”

 

 

 

 

 

아내의 답신을 기다리며 안심산 둘레 길을 걸었습니다. 지인이 평소 궁금했던 걸 물더군요.

 

 

“핸드폰 문자에서 ‘ㅠㅠ’는 무슨 뜻이야?”
“눈물 많이 난다는 슬프다는 의미.”


“그래? 그럼 ‘ㅜㅜ’는?”
“조금 슬프다. 아니 저도 모르던 ‘ㄴㄱㅇㄴ’을 찍어 보낸 사람이 ‘ㅠㅠ’와 ‘ㅜㅜ’를 모르다니 의외네.”

 

 

예전, 지인에게 받은 문자 중 아주 생소한 ‘ㄴㄱㅇㄴ’을 보고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문자 속에서 물어봐도 묵묵부담. 결국 뒤에 만나서 직접 물었더니 그러더군요.

 

 

“‘ㄴㄱㅇㄴ’이 궁금해? ‘놀고 있네’.”

 

 

‘놀고 있네’라니 말 되더군요.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한담을 나누는 사이 아내에게 문자 답신이 왔습니다.

 

 

“그런 인기 발언을… 다화개별꽃”

 

 

이것도 웃음을 주더군요.

하여튼 아이들과 소통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만 내세웠던 탓입니다. 반성 많이 했습니다. 산행에서 배운 건, 자녀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좋은 아빠 되려고 부단히 힘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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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살 찌푸리게 하는 진상 손님 4가지 유형
목욕탕서 아름다운 본보기 손님 2가지 유형

 

 

 

 

 

 

“자기 것이라면 그렇게 할까?”

 

 

일전에 목욕탕에 같이 갔던 지인이 나오면서 툴툴거렸습니다. 왜 그러나 싶었습니다. 기다렸더니 알아서 이실직고 하더군요.

 

 

“로션은 얼굴에만 바르는 거 아냐? 그걸 가슴, 팔, 다리까지 온몸에 바르는 거야. 그래서 공중도덕 교육이 필요하다니까.”

 

 

비판의 원인은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는 없다는 겁니다. 자기만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긴 합니다. 저는 목욕 후 얼굴과 가슴 부분까지 바르는 사람은 봤습니다. 하지만 팔과 다리까지 바르는 사람은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 시큰둥했습니다.

 

 

지인은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 차 안에서도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기사님도 “그런 몰상식한 사람들이 있다”며 원인은 “공중질서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고 풀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다중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옆 사람을 배려하는 교육이 철저하다 합니다. 공공시설은 자기만 이용하는 게 아니니 조심히 행동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겠습니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진상 손님 4가지 유형

 

지난 일요일, 목욕탕에 갔다가 진상 손님을 보았습니다.

 

 

첫째, 때를 밀 때 보통 앉는 의자를 닦고 앉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때를 밉니다. 여기까진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진상인 건, 다른 사람이 쓰던 물건은 깨끗이 씻고 사용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다 사용한 후에는 나 몰라라 합니다. 주위에 때가 덕지덕지 있어도 말입니다. 뒤 사람을 위해 깨끗하게 뒷정리를 하면 좋겠습니다.

 

 

둘째, 물장구입니다.

 

간혹 아이들이 물안경과 물놀이 장난감까지 챙겨옵니다. 자식 키워 본 경험상 애교로 봐 줍니다. 왜냐면 아이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문제는 주위 사람들이 짜증 날 정도로 놀아도 부모가 아이를 가만 놔둔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를 지적하면 더 화를 냅니다. 아주 꼴불견입니다.

 

 

셋째, 수건 많이 사용하는 건 그렇다고 칩시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거울 앞에서 드라이기를 잡을 경우입니다. 머리만 말리는 줄 알았더니 온 몸을 거쳐, 겨드랑이와 중요 부위까지 죄다 드라이기로 말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도 그럴 수 있겠다 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넷째,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로션을 온 몸에 바르더군요.

 

로션을 듬뿍 묻혀 팔과 다리 및 발까지 뽀득뽀득 문질렀습니다. 그러고 끝인 줄 알았더니, 심지어 중요 부위까지 바르고 있습니다. 이러니 지인이 지적했던, “자기 집 로션이었다면 과연 그렇게 발랐을까?” 싶었습니다.

 

 

 

 

목욕탕에서 아름다운 본보기 손님 2가지 유형

 

제 입장에서 남탕에서 보는 아름다운 손님 유형입니다.

 

첫째, 혼자 씻기도 힘든데 아이까지 씻기는 아버지입니다.

 

대개, 아이들 목욕은 아내 몫으로 치부합니다. 이건 아버지 역할을 방기하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혼자가 아닌 두 아들을 낑낑거리며 정성껏 씻기는 아버지의 모습은 흐뭇합니다.

 

둘째,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든 아버지를 모시고 온 중년의 아들입니다.

 

정성껏 부모를 씻기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입니다. 더군다나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까지 앉아 때를 미는 삼대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들을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물론, 이런 모습 ‘별 거 아닌데 왜 그래?’, ‘당연한 거 아냐?’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아마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그 아들에게 베풀지 않았다면 이런 풍경은 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효의 실천 현장 교육이 더욱 부럽습니다.

 

 

위 두 가지 경우를 특히 아름답게 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때밀이에게 맡기지 않고 부모 자식 간에 직접 민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스킨십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은 아버지에게 부모에게 해야 할 근본을 몸 부대끼며 배우는 거니까. 그러면서 부자지간 정까지 돈독해지는 거죠.

 

목욕탕에서 아름다운 이런 풍경 많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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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위해 곰국 끓인 아내 VS 엄살 심한 아빠
밤늦게 사골국 끓인 아내, 남편 향한 사랑?
“아빠, 엄살은. 우리 아빠는 엄살이 너무 심해.”

 

 

 

 별 거 다하는 닭살 부부입니다.

 

 

“사모님 잘 계시죠?”
“아니. 지금 엄청 고생하고 있어.”

 

 

지인은 의례적 물음에 고생 중이라고 했습니다.

 

남편 먹일 사골 곰국 끓이다 얼굴, 팔, 다리 등을 데었다고 합니다. 머리카락까지 탔다더군요. 걱정 속에 농담 한 마디 던졌습니다.

 

 

“각시가 집에서 곰국 끓이는 건 남편 버리는 준비라던데, 혹시 사모님도?”

 

 

지인은 펄쩍 뛰었습니다.

“내가 한 눈 안 팔고 얼마나 잘하는데, 그럴 리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처럼 “아내에게 져 주며, 맞춰 사는 사람이 없을 거다” “한 여자도 벅찬데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릴 생각은 애초에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지난 일요일, 김헌ㆍ신재은 부부와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당초 목적지는 전남 장성 축령산 ‘치유의 숲’이었으나, 가던 도중 전북 고창 ‘고창읍성’과 ‘선운사’로 바뀌었습니다. 미리 보는 단풍 구경 겸이었습니다.

 

 

밤늦게 사골국 끓인 건 남편 향한 사랑이었다?

 

 

재밌게 사는 김헌 신재은 부부입니다.

 

 

 

땅을 밟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죠.

싸였던 스트레스 등을 버리니 가벼워지는 이치입니다. 지인 아내가 사골 국 끓이다 다친 이야기가 화제로 등장했습니다.

 

 

“입술은 이제 다 나은 거죠?”
“다 나았는데, 입술이 두꺼워진 느낌이야. 남편이랑 뽀뽀도 못한다니까.”


“엥, 50 중년 부부가 아직 뽀뽀를 해요?”
“우린 아침 출근할 때 뽀뽀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애정 넘치는 부부였습니다.

 

서로에게 헌신적인 부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다친 아내 간호는 어느 정도까지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이 구구절절 이어졌습니다.

 

 

“난, 아내가 새벽에 곰국 끓이다 데였을 때, 화기 빼느라 한 숨도 못자고 9시간 내내 간호했어. 그리고 오전에는 회사 일, 오후에는 병원을 오가며 아내 치료에 매달렸다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었습니다.

 

지인 아내도 “밤늦게 사골 국 끓이다 다친 건 남편을 향한 나의 사랑이었다”고 항변했습니다. 이들의 닭살 행각에, 손을 내밀며 화제를 돌렸습니다.

 

 

“아빠, 엄살은. 우리 아빠는 엄살이 너무 심해.”

 

 

 

삼겹살 굽다 손가락이 데였습니다.

 

 

 

 

“이 손 좀 보세요.”
“어, 손 왜 그래?”

 

“집에서 아이들 삼겹살 구어주다가 기름에 데었어요.”
“그건, 자식 위하는 아버지의 영광스런 상처야.”

 

 

뜻하지 않게 칠칠치 못한 아빠에서 영광스런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머쓱하대요. 사실은 아들이 삼겹살 구울 때가 생각났습니다.

 

 

“아빠, 아빠가 삼겹살 좀 구워 줘요.”
“네가 구워.”


“기름이 튀어 무섭단 말예요.”
“엄살은, 조심히 구우면 돼지.”

 

 

이랬던 아빠가 데었으니 체면이 영 아니었습니다.

손 데인 후 “따갑다”고 했더니, 아들과 딸에게 말이 되돌아왔습니다.

 

 

“아빠, 엄살은. 우리 아빠는 엄살이 너무 심해.”

 

 

이랬는데, 지인은 자식을 위한 영광의 상처로 대접한 겁니다. 찔리긴 하대요. 아버지로써 자식에게 해야 할 일에 대해 반성 많이 했습니다.

 

하여튼 누군가를 위해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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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결혼식, 부모가 보여준 이색 편지

 

 

요즘 트렌드는 ‘특별함’이라고 합니다.

그래선지,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결혼식은 남들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차별화 된 결혼식을 꿈꾼다고 합니다. 부모도 자녀의 색다른 결혼식을 생각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지인 큰 딸 결혼식이 지난 토요일에 있었습니다. 저는 2012여수세계박람회 자원봉사자 교육에 참여 하느라 아내만 갔습니다.

결혼식에 다녀 온 아내, 그간 아무 말 없다가, 어제서야 “여보 결혼하는 딸에게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담은 편지가 참 멋있어요.”라고 하지 뭡니까.

어쨌거나, 색다른 결혼식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은 젊은이들과는 달리 범위가 좁긴 합니다. 결혼 당사자에게 결혼식 프로그램을 맡기다 보니 제한적이지요. 주인공은 바로 신랑 신부이니까.

어제, 아내가 보여준 색다른 결혼 이벤트였던 '편지' 보시죠.

빛나는 좋겠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활짝 피어나는 봄날,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선소 앞 
바닷가
마리나 웨딩홀에서
멋진 신랑 ‘양성식’군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지금껏 산 날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
통틀어
가장 큰 행운일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찾아 오셔서
진심으로 네 앞날을 축복해 주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먼 거리 마다 하지 않고,
바쁜 일 다 제쳐두시고 찾아오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뿐 아니라
그 집의 크고 작은 일 가리지 않고
정성을 다 할 것이지만,
너희들도 똑같이 오래오래 간직하길 바란다.

빛깔 고운 여수의 마음으로
이 감동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삶으로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2012 봄이 시작하는 달 끝날

이걸 보고, 중학교 2학년인 딸 결혼식은 어떻게 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뻥 뚫린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부의 사랑, 하객들에 대한 믿음, 부모의 염원, 지역(나라) 사랑 등을 포괄적으로 당부하는 글이어서입니다. 이게 부모 마음일 겁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결혼식을 하는 건 다양한 ‘선전포고’가 담겨 있습니다. 그 선전포고를 3가지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결혼하는 3가지 이유 

1. 이제부터 진정 어른이다!

남녀가 자식 낳아 길러보지 못하면 어른이 아니라고 합니다. 겪어야 할 경험이 그만큼 값지다는 겁니다. ‘희ㆍ노ㆍ애ㆍ락’이란 삶에서의 가슴 진한 근본을 알고 느껴야 한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참 어른으로의 변신인 게지요. 

2. 주인 의식이다!

‘이 남자 혹은 이 여자는 내 사람이다’라고 공표해 다른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는 효과입니다. 감히 넘보지 마라는 것이지요. 이는 임자 있음을 강조함과 동시에 서로 신뢰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참 주인으로의 변화인 게지요. 

3. 잘 살아라!

많은 하객 앞에서 양가 부모를 모시고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결혼 했는데도 어그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지 마라는 것이지요. 부부로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비를 어떻게 슬기롭게 넘기느냐? 하는 참 인내의 각오인 게지요.

 결혼식의 의미를 되새기며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부부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행복하게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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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 눈 한 번 떠보지 못하고 가다니….”
부모의 가슴 저민 마음을 가득 담은 유채꽃 한 다발

유채꽃을 든 벗.

지난 17일, 제주 여행에서 친구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한 큰 상처를 보게 되었습니다. 송악산으로 향하던 중 운전하던 벗은 차를 잠시 멈추고 아름다운 유채꽃을 한웅큼 꺾었습니다. 그걸 보고 한 마디씩 했습니다.

“저걸 왜 꺾을까?”
“유채를 누구에게 주려나. 아내? 아님 딸? 아님 이 차의 여인들?”

벗이 유채꽃을 꺾는 모습을 보며 다양한 추측이 뒤따랐습니다. 벗은 일행의 기대를 여지없이 저버렸습니다. 아~ 글쎄, 운전대 앞쪽에 놓는 것 아니겠어요. 궁금한 건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유채, 여기에 있는 누구에게 주려던 거 아니었어?”
“….”

대답이 없었습니다. 궁금했지만 더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벗은 송악산 입구에서 한 손에 유채를 들고 내렸습니다. 여기에는 말 못할 사연이 숨어 있었습니다.

유채꽃을 든 채 송악산 정상을 오르는 벗.

송악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사방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벗은 유채꽃을 들고 분화구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일행이 놀라 말렸습니다. 무슨 일 있나? 싶었습니다. 5분여를 기다리니 벗이 나타났습니다. 손에 들었던 유채꽃은 없었습니다. 벗은 송악산을 내려오면서 속삭였습니다.

“내게 저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 소릴 듣는 순간, 멍 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몰랐던 친구의 가슴 속 멍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친구에게 송악산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된 사연이 있습니다.

벗은 유채꽃을 들고 송악산 분화구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친구 부부는 결혼 후 16년여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렵사리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서 아이가 숨을 멈추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때의 심정을 친구 표현을 빌자면 이렇습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눈 한 번 떠보지 못하고 가다니….”

이 비통한 부모 심정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벗은 눈 한 번 떠보지 못한 아이의 재를 흩뿌렸던 그곳에 아름다운 유채꽃을 깊은 가슴으로 아이에게 바친 것입니다. 봄이면 더욱 빛나는 유채꽃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속에 눈 한 번 뜨지 못하고 먼저 간 아이에게 바친 것입니다.

뒤에 합류한 친구 부인에게 꽃과 얽힌 사연을 말했더니, 엷게 웃으며 답하더군요.

“저 사람은 거기 갈 때, 꼭 야생화를 꺾어 가요!”

친구에게 검붉은 화산재와 야생화는 아이와 하나였습니다. 이게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 마음일 것입니다. 벗이 아이의 못 다한 생까지 안고 아름답게 살길 바랄 뿐입니다!!!

자식 잃은 아버지의 비통한 심정을 어찌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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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참으로 슬픈사연이로군요.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이리 슬프디 슬픈 이야길 ....
    게다가 저도 참 좋아하는 송악산이라니..
    앞으로 저길 갈때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나겠어요

    2012.03.28 00:01 신고

‘살려주십시오. 제발’ 눈물은 고통과 염원

 

'브레인'의 신하균과 정진영.(사진 출처 KBS)

 

‘브레인’의 히어로 신하균(이강훈 역)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를 둔 아들의 처절한 모습이 그려졌으니까요.

요즘 주위에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하여, 환자와 그 가족들을 봅니다. 그들은 침울하고 비통한 모습입니다. 이렇듯 신하균의 연기는 마치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생생한 마음이 스며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 거겠죠.

신하균은 13일 방영된 ‘브레인’에서 최후의 자존심까지 버린 채 정진영(김상철 교수 역)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며 악성 뇌암(교모세포종)에 걸린 어머니(송옥숙 분) 치료를 애원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여기서 ‘브레인’의 멘티와 멘토였던 두 의사 ‘신하균 Vs 정진영’의 비교가 가능할 것입니다. 지난주까지 확인된 두 사람의 성격은 이러했습니다.

신하균은 냉정한 성격과 독선적 빠른 판단력 등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근접하기 힘든 의사로 꼽힙니다. 그렇지만 수술 실력은 뛰어난 강인한 의사입니다. 이런 그에게 스승은 의사로서 갖춰야 할 인간적인 면을 특히 강조합니다.

정진영은 따뜻하고 소탈한 성품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실력이 어우러져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의사입니다. 따뜻함과 배려가 가득한 의사로 신하균을 이끌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랬던 두 사람은 이번 주 180도 달라진 반전을 맞이했습니다. 성격이 뒤바뀐 것입니다. 원인은 신하균의 아버지 죽음을 둘러싼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교수님이었다니, 이 모든 걸 숨기고 뻔뻔하게 살아왔다니….”

이어 신하균은 어머니의 악성 뇌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완치를 위해 백방으로 병원을 알아보지만 돌아오는 건 절망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은 현실에도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불치병 환자와 가족들이 느끼는 좌절은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불치병 환자 가족과 의사, 그리고 어머니.(사진 출처 KBS)

 

신하균은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정진영을 찾아갑니다. 불치병 환자 가족이 최후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심은 비통한 심정으로. 여기에서 신하균은 정진영 앞에 무릎 꿇고 “살려주십시오. 제발!”하며 눈물로 호소합니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합니다.

"
살인자를 돕겠다?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사람에게 어떻게 어머니를 맡길 수 있나."

"잘못 알았습니다. 어머니를 살려주십시오!”

이로 인해, 신하균은 냉정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어머니를 살리고자 애쓰는 인간미 넘치는 효자 이미지가 빛을 발합니다. 하지만 정진영은 가면 뒤에 숨어 있은 냉철한 인간으로 그려졌습니다. 다음 주에는 신하균과 정진영의 반전 이유가 그려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하균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눈물은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가족 간 사랑’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미워한 어머니였지만 속으로는 이해했던 어머니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하균의 눈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고 있는 암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절망 속에 희망을 찾고자 하는 ‘염원’이었습니다. 그저 잘하는 의사를 찾을 수밖에 없는 한 어머니의 한 아들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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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놀 때 지켜보지 말고 함께 즐겨라!

 

 

설악 워터피아에서 아이들과 마음으로 가까워졌습니다. 여행이란 이런건가 봅니다.

 

“학교 중간고사 시험 공부해야 하는데…. 가족 여행 안 갈래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여행 가기 싫다는 아이들과 설악산 가족여행을 성사시켜 준 결정적인 게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딜’이었습니다.
설악 워터피아 가는 조건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물놀이가 그렇게도 좋나 봅니다.


“아빠, 같이 놀아요.”

가끔 아이들과 물놀이 가면 즐기기보다 지켜보는 편이라 아이들 재촉이 심합니다.
그럼에도 평상시에는 즐기기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 고쳐먹었습니다.
방관자 입장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적극적인 스킨십을 하며 소통키로 한 것입니다. 

 

 

 

설악 워터피아 내 수영장, 튜브 풀 등 놀이시설에서도 적극적으로 놀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과 아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더군요.

“아빠가 웬일이세요?”
“같이 부대끼며 놀아봐야 왜 놀이시설을 좋아하는지 알 거 아냐.”

워터피아는 좀 색달랐던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 “아이들과 함께 설악산에 가거든 워터피아에 꼭 가라”던 권유의 이유를 알겠더군요.

실내외 파도 풀, 레인보우스트림, 수영장 등 물놀이 시설과 웰빙스파, 시즌스파, 커플스파, 우드스파, 패밀리스파 등 다양한 야외 온천욕이 공존해 아이들과 어른의 구미를 충족시켜주었습니다.

 

 

즐겁게 노는 걸 보고 아내가 그러더군요.

“온천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놀이 시설이 같이 있어 우리 가족에게 맞춤형이다.”

그래선지 권위적이라는 아빠에게 필요한 말만 하고, 다른 말은 꺼리는 중학교 1학년 딸까지 먼저 말을 걸더군요.

“아빠가 놀이시설을 우리 보다 더 좋아하네.”

“아빠도 너희들과 같이 타니 좋다야~. 진즉 같이 즐길걸 그랬어.”
“그치, 재밌지. 튜브타고 내려 올 때 아빠가 괴성을 그렇게 지를 줄 몰랐어.”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도 좋지만 함께 즐기는 것은 더 좋대요.
어쨌거나 말 없던 딸과 아들, 입이 터지니 재잘재잘 끝이 없습니다.

시끄러워 입을 막아야 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걸 보던 아내가 완전 쾌재를 부르더군요.

“당신이 아이들 말을 안 막고 끝까지 들어주니 아이들이 아빠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하니 보기 좋네.”

아내가 뱉은 말이 제게는 충격이대요.
제 딴에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아빠, 문제없는 아버지라 여겼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나 봅니다.

아이들과 아내 눈에는 아빠랍시고 위압적인 가장이었나 봅니다.

 

 

 

돌이켜 보니,

“공부해”
“○○ 하지마”

등 명령조와 부정 화법에 치중했더군요.
그리고 칭찬에 인색했습니다. 정말이지 반성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놀다가 나오면서도 딸은 학교며 친구 이야기를 계속 해댔습니다.
저렇게 말 잘하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마음으로 다가간 결과였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워진 느낌은 이런 건가 봅니다.

아주~ 유쾌, 상쾌, 통쾌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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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시작한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진 ‘그’
“순백의 비대칭 미학, 이것이 달항아리의 묘미”
[인터뷰] 찻그릇과 달항아리 도예전 연 ‘김원주’

 

 

찻그릇과 달항아리.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 흙으로 만든 게 도자기입니다.”

언젠가 어느 도예가에게 도자기 굽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었다.
간단명료한, 게다가 철학적인 느낌까지 있어 이 말을 아직도 가슴에 담고 산다.

그러니까, 내가 도자기에 관심 가진 건 2000천년 전후.
지리산에서 야생녹차를 만들던 이를 알고부터였다.
당시, 차를 마시다가 다구 잡는 법, 보는 법 등에 대해 염탐한 게 시초였던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문화예술품이다. 도자기 또한 그러하다. 경험이 보는 눈을 만드는 법.

지난 토요일, 가족 여행길에 올랐다.
마침 지인인 김원주 씨가 <찻그릇과 달항아리>란 주제로 도예전(오는 15일까지)을 갖는 터라 남원 선원사 ‘선원문화관’이 첫 도착지였다.

김원주, 그를 알게 된 건 지난 해 말 전주에서였다.
그는 만남 자리에 밤늦게 나타났었다.

수염과 머리를 기른 모습은 퍽이나 세련되고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환쟁이 겸 도자기 꾼이었다. 퍽이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또 그는 진솔한 자신만의 영역을 갖고 있는 틀림없는 예술가란 생각을 했다.

 


남원 선원사 선원문화관에서 진행 중인 김원주의 <찻그릇과 달항아리> 도예전. 

 

백자의 하얀 색감과 냄새가 좋아 내가 수수해진 느낌

 

김원주, 그는 1997년부터 꾸준히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고 있다.
지난해에도 ‘술잔전(전주술박물관)’‘막걸리 막사발전(The K Gallery)’을 열었다.

가족 휴가 중 <김원주 도예전>을 둘러 본 딸은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시된 도자기가 작가를 닮았다. 처음에는 도자기들이 다 똑같이 보였는데 볼수록 밑이 길쭉하거나 휘어진 부분이 위, 중간, 밑 등 다양했다. 그리고 백자의 하얀색 색감과 냄새가 너무 좋았다. 내 자신이 수수해진 느낌이다.”

 

딸의 소감 앞에 지인인 작가 인터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김원주 도예전>은 딸과 아버지를 연결해주는 또 하나의 ‘소통 통로’였던 셈이다.

다음은 도예가 김원주 씨와의 인터뷰다. 

 


도예가 김원주 씨. 

 

도예전은 “자연을 닮고자하는 인간의 갈구와 지향”

 

- 회화 전공자가 도자기를 하는 이유는?
“격동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 미술운동을 하다가 작업과 삶의 일치를 위해 농촌으로 자리 잡은 곳이 여주였어요. 한 2년 농사도 짖고 그림도 그리며 살았는데, 아내와 나 둘 다 그림만 그리고 살다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지인의 소개로 도자기 공장에 그림 그리는 화공으로 취직해서 작업과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그러니까 돈 벌려고 도자기를 시작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어요.
흙으로 빚는 모습이 신기해서 혼자 물레연습도 하고 그러다가 1995년도에 집 앞 마당에 가마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흙과 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번 전시를 위한 작품 제작과정과 전시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자연스럽다’는 ‘자연’과 ‘스럽다’가 만나서 생긴 말입니다. 자연을 닮고자하는 인간의 갈구와 지향이 담긴 아름다운 말입니다. 정형화 되지 않고 작위적이지 않으며, 편안함과 희열로 안내하는 ‘자연스러움’이 제 작업과 삶 속에 늘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불 때기는 사투,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이며, 자연”

 

- 도자기를 제작 할 때의 매력은?
“흙이라는 1차적인 물성이 가마 속 불을 통해 도자기라는 전혀 새로운 물성의 변화를 이루어 냅니다. 그것도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말이죠. 좋은 도자기를 만들려면 어떤 흙을 찾는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좋은 유약이나 빚는 기술은 연마를 통해 시간이 가면 이룰 수 있지만 좋은 흙은 발품을 팔아 전국을 돌아다녀도 인연이 있으면 만날 수도 있고, 인연이 없으면 만나지 못합니다. 어렵게 찾은 흙을 불 때기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 결과가 나오면 잘 생겼건 못 생겼건 기물은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는 것입니다.

불 때기는 사투,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이며, 순간순간 어려운 결정을 요구합니다. 불은 두렵고도 정말 어렵습니다. 가마 안에서 일렁이는 불길은 내가 넣은 장작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렁이는 것, 정말 스스로 ‘자(自)’ 그럴 ‘연(然)’ 숭엄한 ‘자연(自然)’입니다.

내가 만들고 내가 땠지만 새 생명을 얻어 탄생된 도자기는 내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흙을 캐고, 빚고, 가마에 넣어 불을 때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흐트러짐 없는 자연과 합일 과정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매력적입니다.

 


백자에 대해 설명하는 김원주 씨. 

 

“순백의 비대칭 미학, 이것이 달항아리의 묘미”

 

- 장작 가마와 가스 가마 또는 전기 가마의 차이는?
“무엇이 좋다 나쁘다 평가 할 수는 없습니다. 가스 가마나 전기 가마는 다루기가 장작 가마에 비해 조금 더 편하고, 노동 강도를 줄이면서 효율적인 생산을 할 수 있는 과학문명이 만든 좋은 결과물입니다.

이에 반해 장작 가마는 날씨와 바람의 세기, 장작 굵기의 차이 등 자연과 자연물을 이용하며, 노동 강도가 높고 비효율적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좋은 작품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어떤 가마든 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죠. 불은 죽는 날 까지 공부해야 하는 그릇쟁이에게는 ‘화두’입니다.

 


백자 달항아리 <합일>

 

- 작품전 주제를 찻그릇과 달항아리로 정한 이유는?
“처음엔 달항아리전을 하려 했는데 전시회를 선원사라는 사찰 안의 갤러리에서 하다 보니 찻그릇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차를 올리는 ‘차례’는 제사나 추석, 또는 궁중에서만 행하여 진 의식이 아니라, 불가에서도 부처님께 차를 올리는 ‘다례’가 있고 그 의식에 사용된 차를 담는 용기가 찻사발입니다. 불가와 차는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죠.

전통 달항아리는 보통 40에서 50센티미터가 되는 17,8세기에 만들어집니다. 백자 항아리로는 그 당시 세계 최대의 항아리였습니다. 달항아리는 대접 모양의 큰 그릇 두 개를 위아래 붙여서 만드는데, 그 이유는 지금처럼 전기의 힘을 이용한 전동물레가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 사람의 발로 차서 기물을 만드는 나무물레였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물레 위에서 만들어진 두 개의 그릇은 보통 한쪽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두 개 중 하나의 그릇을 위로 올려 서로 맞붙여서 둥그런 구의 형태를 만듭니다. 이때 위에 올려진 그릇은 뒤집어서 붙여지기 때문에 아래 그릇과 반대의 회전결을 이루게 되는데 이 때문에 불속에서 일그러져 비대칭의 곡면을 만듭니다. 순백의 비대칭 미학, 이것이 달항아리의 묘미입니다.

 


찻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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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자에서 삶의 지혜 엿보다!

 

 

모임이나 행사 많지요?

행사 등에서 자신을 반기는지 아닌지,
있어야 할 자린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채야 합니다.

그러니까 살다보면 눈치가 있어야 합니다.
눈치 보는 거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서 어른들이 그랬나 봅니다.

“들 때와 날 때를 잘 알아야 한다!”

이것만 잘 알아도 현명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행사장에 갔었습니다.
행사장에 혼자가면 편하지요. 혼자 처신만 걱정하면 되니까.

이번에는 휴가철이라 가족과 함께 갔습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뭔가 해야 했거든요.

행사장에서 시간이 길어지니 불편하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무료해 하고, 저는 저대로 뻘쭘하고.
어디 한 군데 녹아나지 못하고 공중에 붕 뜬 기분이랄까.

그만큼 현명한 처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눈치가 없었나 봐요. 문자가 왔대요.

 

지난 주말 행사장서 옆에 있던 아내가 보낸 문자.

 

“언제 갈 거야? 이제 슬슬 어디라도 가야되지 않을까? 가세.”

일행과 이야기 중 옆에 앉았던 아내가 보낸 문자였습니다.
말로 하면 될 걸 문자로 보낸 겁니다.

참,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그들 앞에서 대놓고 '가자'고 채근하면 모양새 빠지지요.
그래서 자연스레 문자를 넣은 것 같더군요.

그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가 보낸 짧은 문자에서 삶의 지혜를 엿본 겁니다.

아내의 요청에 제가 화답해야 할 차례였습니다. 어떻게 할까?
어차피 가족 휴가를 작정하고 나온 이상 움직여야 했습니다.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행사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아내가 보낸 짧은 문자 하나가 티격태격하는 부부의 모습을 잠재운 겁니다.
때론 삶의 지혜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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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딸의 독서록]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내 아이는 어떤 꿈을 꿀까?
또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구체적인 건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 특성상 꿈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다만, 부모로써 방향성을 잡아주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일상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길 바란다.
또한 독서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자기 삶의 목표를 찾기를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딸에게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글 정철상, 출판사 라이온북스)>를 권했다. 아버지로써 딸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이것이었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 글의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라이온북스에 있습니다.)

 

또한 긍정 마인드를 갖고, 자기에게 맡는 직업을 생각하고,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내딛는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다음은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 했던 남자>를 읽고 쓴 중학교 1학년 딸이 쓴 독서록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그저 아빠의 협박(?) 때문이었다.

이 책은 나처럼 게을러빠지고 시간을 헛되이 하며 자신이 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 같았다.

맨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자서전 종류보다 공상소설 따위를 좋아하는 나에겐 너무나도 야속한 책이었다.

접한 시기가 해리포터 마지막 신드롬이 불 때였으니 말이다.
난 해리포터에 완벽히 빠져 다시 한 번 복습하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아빠가 내 방에 들어와 불호령을 내린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 몰두하게 되었다.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성공한 것을 처음으로 내세워 그 과정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신이 성공에 이르기까지 노력한 것, 멘토, 긍정적인 사람들의 자기 계발방법 등을 담고 있었다.

첫 번째 소주제가 ‘상상하라 20년 뒤의 모습을’인데 나는 상상할 것이 없다.
그러니까 꿈이 없어서다.
내가 한 학년씩 올라 갈 때마다 공부에 대한 압박감과 절망감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도전하고 있다.
바뀌고 있고 서로 밀치고 밟고 떨어뜨리고 있다.
어른에게 입시 탈락은 우리에게 실업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사회는 계속 순환하는 것과 똑같다. 아니 더욱 더 커지는 것이다.
작은 언덕을 지나면 산이 있고, 산을 지나면 산맥이 펼쳐지는 것과 같이 말이다.

 

성공은 끈질긴 노력 끝에 주어지는 것.

 

내 성적은 거의 밑이다.
하지만 난 긍정을 놓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너무 그래서 아예 움직이지 않는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장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 난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

그래서 직업의 종류를 담은 책을 뒤적거리다가 하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
축구에 관심이 있고,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에 꽂힌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다지 별로인 영어를 열심히 해야 되는 직업이니 만큼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나의 오랜 멘토는 박주영 선수다.
내가 연예인보다 축구에 관심을 두자 그저 축구 잘하는 선수로만 알고 있던 선수들이 점차 훌륭한 경험과 아픔들을 이겨낸 인생 멘토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박주영 선수는 겸손한 면과 따뜻한 마음에 멘토로 까지 삼게 되었다.

 

박주영 선수는 혼자인 외국선수를 가까이 하며, 기자들 앞에서 일부러 무뚝뚝하게 대해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동료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나누려 노력하며, 매일 연습하자고 동료에게 졸라 별명이 박 코치였다고 하니 나에게 부족한 겸손과 하자는 일은 다해내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정철상 교수님이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에서 말씀하시는 주변의 긍정적인 사고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은 나의 일상에도 많다.

 

 

 

학교 가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나에겐 버스기사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내리시는 분께 일일이 인사하시고 정류장에 정확히 내려주고 내가 일어서 있었는데 자리 뒤에 있으니까 얼른 앉으라고 위험하다고 하셔서 너무 멋있었다.

반면 다른 버스 기사 분은 욕하고 얘들이 많이 있었는데 타지 말라고 해서 신고하기도 했다.

정말 같은 직업임에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왜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 살아갈까?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삶을 살아가든,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행복과 불행을 가르기 때문이 아닐지.(책 101~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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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innam.com BlogIcon 진남   수정/삭제   댓글쓰기

    딸이 반항하는 이유를 알것 같군요

    2013.08.09 21:38 신고


첫 직장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
이겨내야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다

 

 

취직,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힘들게 들어간 직장, 남보란 듯이 적응하며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 쉽지 않다.

물론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왜 그럴까?

50대 중반 아버지들과 마주 앉았다. 한 아버지가 걱정 가득한 표정이다.

“걱정거리가 있냐? 무슨 걱정인지 말해 봐.”

머뭇거리던 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딸이 전화해서 울지 뭐야.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아무 일 아니라며 울기만 하더라고.”

어렵사리 꺼낸 사연은 이러했다.

올해 대학 졸업한 딸이 그 어렵다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축하도 많이 받고, 스스로도 대견해 했다. 주위 기대도 컸다.
그런 만큼 자기는 직장생활 잘하고 싶은데 힘이 든다.
남들은 척척 주어진 일을 해내는데 나만 처지는 것 같다.
자신감마저 없다. 직장에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말을 들은 지인이 조언하고 나섰다.

“다들 알지. 첫 직장이 얼마나 힘든 지. 아내는 뭐래?”

“힘들어 하는 딸, 옆에서 잘 토닥여 주라고만 해. 사람 대하기가 제일 힘들잖아.” 

“가만 기다려. 스스로 잘 견디기를 기다리는 게 최고야.”

“그걸 아는데도 우는 딸을 보는 아버지 가슴이 쓰리더라. 부랴부랴 서울 올라가서 딸을 만났는데 힘이 하나도 없더라고.”

그의 딸이 힘들어 하는 이유는 직장 상사였다.
무슨 일이든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는다는 것이었다.  

 

“첫 직장을 잘 견뎌야 하는 이유 알지?”
“알지.”

이유가 따로 있었나?
그들에게 새내기 신입사원들이 첫 직장에서 힘든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대학 등에 다니면서 자기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했다.
힘들 때면 친구나 부모에게 하소연하고 응석 부려도 다 받아줬다.
그런데 직장은 그게 아니다. 사회는 냉정하다. 별 사람 다 있다.
사회인으로 내딛은 첫발이 쉬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 첫 직장에서 힘들어하는 자녀를 보는 아버지는, “그랬구나!”하고 말은 들어 주되 해답은 주지 말라고 했다.

스스로 해답을 찾기까지 묵묵히 지켜보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과 딸들이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에서 잘 견뎌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간단히 정의했다. 

“첫 직장에서 잘 견디고 버텨야 어떤 일이든 자신감을 갖고 잘 할 수 있다.”

부모 품을 떠나 삶을 개척하기 시작한 새내기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눈일 게다.
세상은 만만치 않음을 알아야 세파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는 가르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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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 넘은 엄마가 꼭 이런 말 해야겠냐?
“엄마, 저 아빠 닮았나 봐요. 죄송해요!”

 

 

아이들과 어제 저녁 부모님 댁에 갔습니다. 어머니 기분이 별로더군요.
외식하러 나왔는데, 이동 중 어머니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셨습니다.

“어버이날 꽃 달아주고 용돈 주면 다냐?”

어투를 보아하니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했습니다. 바짝 긴장했지요. 

“평상시에도 전화 자주하고, 집에도 자주 와야지, 난, 너 그렇게 안 키웠다. 팔십 넘은 엄마가 꼭 이런 말 해야겠냐?”

아버지께서는 ‘내 말이…’ 하는 투로 입을 꾹 닫고 계시더군요. 아이들까지 있는데 완전 모양새 빠졌습니다.

2남 2녀 중 막내인 제가 부모님 옆에 있는지라 알아서 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탓입니다. 부모님께 잘못을 빌었습니다.

식당에 당도했습니다.
부모님 기분 풀어드리려면 90이 가까우신 이모와 이모부를 함께 모시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이모, 저녁 식사 하셨어요?”

“오래 만에 전화했네. 아직 안했다. 왜?”

“어머니랑 식사하시게요. 제가 모시러 갈까요?”

“아니다, 걸어도 금방인데 뭐 하러.”

이모 부부를 기다려 안으로 모셨습니다. 그제야 어머니 노여움이 좀 풀리시더군요.

“언니, 형부 오셨어요. 어서 앉으세요.”

“처제, 잘 살지? 저녁 먹자고 미리 연락을 해야지 갑자기 연락하면 어떡해.”
“형부 그리 됐어요.”

어머니와 이모부의 대화를 들으니 겸연쩍대요.
이모부께선 저녁을 혼자 먼저 드셨다면서 따끔한 말씀을 하시대요. 

“아이~, 이렇게 너희 얼굴 보니 좋다~ 야.
내년에도 내가 살아 있다면 이렇게 여기에 와서 또 저녁 먹자. 그때까지 살아 있으려나 몰라~.”

얼굴이 화끈거리데요. 주위도 살피야 하는데 도통 그게 마음먹은 대로 돼야 말이죠.

집으로 오는 도중, 전 과정을 지켜 본 딸이 한 마디 하대요.

“엄마, 저는 아무래도 아빠 닮았나 봐요. 할머니가 뭐라 해도 시큰 둥 한 걸 봐선. 엄마, 죄송해요. 앞으로 엄마 말 잘 들을 게요~^^”

헉, 딸이 던진 ‘KO’ 펀치에 녹다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보고 배운다 했나 봅니다. 남 부끄러워서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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