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추억'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6.07.28 2% 부족했던 해금강과 외도, 100% 채운 건?
  2. 2016.06.13 결혼 19년, 처음 아내 여고 동창생을 만나다! (1)
  3. 2016.05.28 “밥만 먹고 어찌 사냐? 짜장 번개 어때요?”
  4. 2013.11.05 단풍, 자연 VS 단감 어느 게 멋있을까?
  5. 2013.10.28 “사는 것이 왜 이리도 허무한지 모르겠습니다.”
  6. 2013.09.05 누나가 마법사인줄 알았다는 아들, 지금은…
  7. 2013.08.24 정조대왕 넋이 살아있는 수원 화성의 낮과 밤 (1)
  8. 2013.07.15 분필과 칠판 닦기의 재밌는 변신
  9. 2013.01.11 40여년 만에 손에 쥔 석류로 인한 ‘식탐’에 빵터져
  10. 2012.03.29 섭지코지, 자연을 즐길 권리를 빼앗아도 즐긴다 (1)
  11. 2012.03.25 25년 만에 다시 찾은 성산 일출봉에 감탄한 사연
  12. 2012.01.02 새해 덕담, ‘저거 꽤 쓸만한 물건이구먼….’
  13. 2012.01.01 2012 새해 톡톡 튀는 문자 메시지^^ (1)
  14. 2011.09.27 가족 여행에서 쓰라린 잠자리의 추억을 한방에 만회하다 (2)
  15. 2011.09.15 오줌발 추억과 허벅지로 흐르는 오줌 진저리 (1)
  16. 2011.06.07 놀라 기절초풍하면서 빵 터진 초딩 아들 자태
  17. 2011.01.05 거나한 6천원 ‘보리밥’ 한상, 매력에 빠지다 (1)
  18. 2010.10.20 추억속 사랑으로 먹는 ‘메밀~묵~~’
  19. 2010.10.01 밥도둑 꽃게장과 어울린 추억의 도시락
  20. 2010.09.19 심심할 때 먹는 쥐포의 추억
  21. 2010.08.02 세상사가 '식은 죽 먹기'면 얼마나 좋을까? (1)
  22. 2010.07.09 결혼 전, 연애편지 꼭 버려야 할까? (4)
  23. 2010.07.08 학교 가자, 집에 오는 아이 친구를 보니 (1)
  24. 2010.03.29 동백 지존, 오동도 동백 활짝 피어오르다 (5)
  25. 2009.12.12 <군대 이야기> 호기심으로 피어나다 (1)
  26. 2009.01.22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추억을 그리다
  27. 2009.01.01 목욕 전후 부자지간 교감법
  28. 2008.12.25 연초에 갖은 마음, 연말에 다시 보니
  29. 2008.11.22 ‘폐업’, 심기 불편한 연탄공장 사람들
  30. 2008.11.08 추억으로 먹는 연탄불 ‘장어구이’

섬에서 섬으로의 여행은 설렘, 해금강과 외도
해금강 안 가고, 외도 가는 이유, 그런가 보다
해금강을 앞마당으로 둔 ‘서자암’, 대단한 안목
여행, 올려다보는 것과 내려다보는 것의 차이
[섬에서 함께 놀자] 거제도 해금강, 외도, 우제봉













거제도 하면 떠오르는 관광지는 ‘해금강’과 ‘외도’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18년 전에 왔습니다. 신혼 초, 아내와 함께였지요. 당시, 저 덕분에 결혼했던 부부의 초청으로 얼떨결에 나선 여행길에 우여곡절 많았습니다. 아! 글쎄, 고속도로를 타고 가던 중 차 본 네트가 일어나 식겁했지 뭡니까. 덕분에 아내에게 무지막지한 타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차 점검도 안하고, 어떻게 아내를 태우고 장거리 운전을 할 수가 있어?”



티격태격 한바탕 부부싸움까지 벌어졌지요. 지금 생각하면 신혼 초의 사랑 놀음인 부부싸움이 그립기도 합니다. 하여간, 철사 등으로 고정한 후 비상등을 켠 채 천신만고 끝에 겨우 당도했던 거제. 똥차에 대한 씁쓸한 기억이 아름다운 거제도 추억이 될 줄 예전엔 미처 몰랐네요.









해금강은 안 가고, 외도만 가는 이유, 그런가 보다




“교수님, 해금강하고 외도 가요.”
“난 외도는 안 갈란다. 너무 자주 갔다. 니 혼자 갔다 오라마.”



이번 거제 여행의 최대 목적인 해금강과 외도 중 하나가 사라질 판이었습니다. 딸랑 둘이 움직이는 여행에서 안 간다는 사람 붙잡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삐져봐야 자기만 손해. 이 일을 어이 할꼬? 거제 토박이들은 일하느라 바쁜 상황. 하여튼 해금강이라도 갈 요량으로 바람의 언덕 밑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해금강은 안 가고, 외도만 갑니다.”



난감하대요. 유람선이 해금강 안 간다는 생각 전혀 못했습니다. 어떻게 거제도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이라는 해금강, 수억 년간 파도와 바람에 씻기며 만들어진 그 자체가 아름다운 조각품이라는 해금강을 안 갈 수 있을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파도가 세 “그런가 보다” 했지요. 기필코 가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갈개마을로 이끌었습니다.



“해금강은 안갑니다.”



크게 실망하며 나왔습니다. 사정을 들은 지인 “코스는 갈낀데?” 합니다. 코스별로 출항기준이 있대요. 그걸 모르고 해금강만 고집했던 겁니다. 외도는 안 간다던 지인, 실망한 저를 보며 “2코스로 가자”며 달래더군요. 알고 보니 “기본 2코스 해금강 주변~ 외도 상륙 포함 2시간 10여분”이 걸리더군요. 감지덕지, 승선권을 끊었습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섬에서 섬으로의 여행은 설렘, 해금강과 외도



섬에서 또 다른 섬으로의 여행은 ‘설렘’이란 색다름이 있습니다. 거제 ‘해금강’과 ‘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람선이 출렁입니다.



“갈곶리 갈개마을 남쪽 약 500m 해상에 위치한 바위섬을 해금강이라 부른다. 두 개 섬이 맞닿은 해금강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1971년 명승 제2호로 지정되었다. 칡뿌리가 뻗어 내린 형상이라 붙여진 ‘갈도(갈곶도)’보다 바다의 금강산을 뜻하는 해금강으로 더 불린다. 십자동굴을 비롯해, 사자바위, 부처바위, 촛대바위 등 기이한 암석이 많다.”



어째 이런 일이. 유람선이 섬을 한 바퀴 핑 돌고 맙니다. 해금강의 백미인 십자동물 속을 구경조차 못하다니. 절로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왜냐하면 명승 제1호인 백도를 지난달에 돌아 본 터라 비교감에 실망이 더 큽니다. 어쩌겠어요. 또 “그런가 보다” 했지요. 유람선은 그길로 외도로 내뺐습니다.



‘외도’. 아시다시피 일 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섬, 희귀 아열대 식물이 어우러진 이국적 풍광을 자랑하는 섬, 부부가 열정을 받쳐 나무를 가꾼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노사연이 부른 ‘바램’이란 노래 가사 중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다”란 부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외도, 18년 전과 다른 점은 자연이 풋풋한 게 아니라 좀 더 깊어졌다는 느낌입니다. 익어가는 사람으로서 깊어진 섬에서 차 한 잔의 여유,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해금강을 앞마당으로 둔 ‘서자암’, 대단한 안목




“해금강과 외도를 돌았는데 뭔가 2% 부족해요. 왜 그러죠, 교수님?”
“용호 형이 해금강과 외도 본 후 꼭 우제봉 갔다 와라 캤다. 우제봉 가자.”



유람선에서 내려 우제봉으로 향했습니다. 100m쯤 갔을까. 내려오는 일행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상이 여기서 먼가요?”
“저희는 가다가 되돌아오는 중입니다.”


“왜, 무슨 일 있으세요?”
“올라가는 사람도 없고, 딸 신발이 시원찮아 돌아오는 겁니다.”



숲길 포근합니다. 땅 참 기름집니다. 땅기운 따뜻합니다. 아늑합니다. 인적 없어 더 상쾌합니다. 암자까지 있습니다. 암자 입구에 의자 두 개 놓였습니다. 해금강이 코앞입니다. 해금강을 앞마당으로 둔 암자 ‘서자암’. 대단한 안목입니다. 법당 부처님께 삼배 올리면 뭐든 다 들어 줄 것 같은 풍광이랄까. 법당 가는 길목에 만난 인기척. 저녁 공양 중입니다. 넉살좋게 스님께 탁발 혹은 차 한 잔하고 싶으나 갈 길 멀어 참습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여행, 올려다보는 것과 내려다보는 것의 차이와 2%



좋은 땅 기운에 힘 받았을까. 계단을 두 개씩 오릅니다. 그래도 힘이 팍팍 솟습니다. 우제봉엔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아 천하를 헤맨 서불 전설까지 스며있습니다. 어느 덧 정상. 왼쪽으로 해금강과 외도. 오른쪽으로 대·소병대도 등을 낀 풍경이 그윽합니다. 뭔가 부족했던 2%를 찾았습니다. 이래서 우제봉에 꼭 오르길 권했구나, 싶습니다. 올려다보는 것과 내려다보는 것의 차이지요.



그랬지요. 아내도 거제 여행길 동행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업무 과다로 포기했습니다. 하여, 아내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 우제봉의 감흥을 사진으로 보냈습니다. 헉, 아내 “목 좋은 자리에서 장범준 콘서트를 봤다고 짱”이라며,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개 무시’입니다. 그래, 해금강과 외도 사진 한 장씩 더 보냈더니, 그제야 “헐~”이라는 반응입니다. 이쯤이면 속마음 내비춰야 합니다.



“우리 다음에 거제 추억 여행 꼭 같이 하세나!”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내의 고해성사, 친구 앞서 전한 ‘엽기 순정만화’
아래꽃섬에서 놓치지 않고 꼭 먹어야 할 ‘부추’
[섬에서 놀다] 여수시 화정면 아래꽃섬, ‘하화도’





꽃섬에는...

섬...

개망초 속에는...





꽃섬에 갔습니다. 아래꽃섬, 여수시 화정면 하화도입니다. 지난 5월엔 웃꽃섬. 상화도에 갔었습니다. 당시, 웃꽃섬을 걷는 내게, 아래꽃섬이 손짓하며 계속 물었었습니다. 눈치 없이 아내가 곁에 있는데도 애교 가득한 코맹맹이 목소리로.



‘건너편에서 보니 저 참 예쁘죠? 저에게 올 거죠?’



아래꽃섬의 유혹에 아내에게 오해받을까 안절부절 했지요. 그러면서도 혼자 설레었나 봅니다. 아래꽃섬이 눈에 밟히데요. 알고 보니 남자만 유혹한 게 아니었더군요. 부부, 아래꽃섬의 유혹에 못 이겨 길을 나섰습니다. 아내의 여고 동창 등과 함께. 아래꽃섬, 하화도.



그 섬에 가는 이유인 것 같은,

임호상 시인의 신작시집 <조금새끼로 운다>에 수록된 ‘그냥’ 한 수 읊지요.



아래꽃섬 하화도에 도착...

노란 괭이밥...

해학적 벽화에 웃고...




        그  냥


                             임호상


    아내가 물었다 왜?
    그냥


    딸이 물었다 아빠 왜?
    그냥


    건성으로 대답한 것 같지만
    가장 깊고 정다운 말
    그냥


    그냥 좋다 그 말이

    당신처럼


    이유 없이 그냥 좋다



산책 가는 길...

꽃섬의 유혹...

물고기 색이 상상을 발휘합니다...

꽃섬의 추억...




결혼 19년 만에 처음 아내 여고 동창생을 만나다!



아래꽃섬, 하화도는 드나듦이 여유롭습니다. 웃꽃섬 상화도와 달리 배편이 더 있어서지요. 지난 6일, 아래꽃섬에 내렸습니다. 일행을 반기는 벽화가 반갑습니다. 돌담에 그려진 뒷일과 물고기 그림이 재밌어 피식 웃음 짓습니다. 물고기 색, 참 예쁘게 칠했습니다. 아마, 화가 머릿속에 자신만이 상상하는 물고기가 있나 봅니다.



“오늘은 등산이 아니라 산책입니다.”



뭐에 쫓긴 듯 앞만 보고 죽어라 걷는 ‘등산’은 사양입니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자연과 소통하는 ‘산책’이 좋습니다. 아래꽃섬 탐방로로 올라드니 발전소가 있습니다. 하화도 태양광 발전시스템이라네요. “공해 없고 고갈되지 않는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도서 주민의 쾌적하고 안정된 전기 공급을 위해 1988년 국내 최초로 설치된 발전시스템”이랍니다.



“얘, 여고 다닐 때 어쩐지 알아요?”


“오늘, 결혼 19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의 여고 동창생을 만났어요.

그러니 평이 어쩐지 알 턱이 없죠.”



“대학 때까지 자주 만났답니다. 졸업 후 연락이 끊겼지요.

다른 친구는 다 찾았는데, 얘만 못 찾았어요.

얘가 작년에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 연락했나 봐요. 덕분에 만났지요.”


“아내의 여고시절 이야기나 함 들어봅시다.”




제가 아는 아내의 추억담 속에는 과일 서리, 미꾸라지 잡기, 나무에서 떨어지기, 소꼴 먹이기 등 생각지도 못한, 건강한 장난 꾸리기 ‘쟁 맞은 여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 더 들어보나 마나지요. 아내가 말 틈을 비집고 훅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하도 떠들어 실장이었던 얘가 선생님께 대표로 많이 맞았어.

그래도 우리한테 화풀이 않고 혼자 울던 착한 친구였지.”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아래꽃섬에 들어선 태양광 발전시스템입니다.

아내 벗...

꽃섬은 동화입니다...




아내의 고해성사, 친구 앞서 전한 ‘엽기 순정만화’



아내의 여고 친구와 함께 섬 산책 속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한편의 ‘엽기 순정만화’였습니다. 만화에 반전 하나 없으면 심심하니 인기 없지요.



“우리 담임선생님은 대학 졸업 후 막 부임한 국어 샘이었어요. 여고에 온 아주 잘생긴 남자 샘, 인기 ‘짱’이었지요. 그때부터 다들 국어 공불 열심히 했어요. 그 샘이 하루는 친구들과 가정방문을 한다지 뭐예요. 난 친구와 자취하고 있었죠. 근데 집에 오는 선생님께 뭘 드릴까? 엄청 고민되데요. 당시엔 몰랐던 샐러드를 드리기로 하고 정성껏 만들었어요. 귀한 마요네즈까지 얹어서.



근데, 요리하다가 그걸 땅에 엎었지 뭐예요. 시간은 없지. 자취생이 새로 재료 살 돈도 없지. 땅에 엎은 걸 주워 씻어서 다시 해 드시라고 내놨어요. 근데, 그것도 모르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엄청 맛있게 먹데요. ㅋㅋ~. 자취했던 친구랑 이 이야길 무덤까지 갖고 가자했어요. 저번에 친구들 만났을 때 이 이야길 했더니 난리대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더런 년, 나쁜 년이라고. ㅎㅎ~^^”



아내의 고해성사는 귀여운 엽기 이야기였습니다. 어쨌거나, 여고 친구 만난 여인들은 웃음꽃 만발입니다. 이미 과거 청초했던 여고 시절로 돌아간 거죠.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 다짐했습니다. 그건 부부가 함께 가꿔야 할 부부의 미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후, 과거를 생각하며 행복한 웃음 지을 추억거리를 성심성의껏 만들어야겠다는.



추억 만들기...

며느리밑씻개. 이름 바꿔야겠어용~^^

어쭈구리...




아래꽃섬에서 놓치지 않고 꼭 먹어야 할 ‘부추’



느릿느릿 느림보 산책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넘었습니다. 아래꽃섬에 올 때 아무것도 사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노린 게 있었지요. 아래꽃섬 특산물로 전국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남자들의 보양식이자 피를 맑게 한다는 ‘부추’였습니다. 아래꽃섬에서 부추 요리와 막걸리 마실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출발 전, 백야도 손 두부를 샀을 겁니다.



“우선 막걸리 두통 주시고요. 부추 전 두개, 부추 오징어무침 하나. 그리고 밥 주세요.”



하화도 명물 부추전과 막걸리...

부추전에 또 부추를 얹어 한 입...

푸짐한 시골 밥상입니다...

 

부추 오징어무침입니다...




마을 입구, 내시는 음식점에 들었습니다. 경로당 할머니들의 수고와 맛을 아는 지라 팍팍 시켰지요. 눈 깜짝할 사이, 막걸리와 부추전이 사라졌습니다. 부추무침, 돌산 갓김치, 미역무침, 총각김치, 열무김치에 된장국이 나왔습니다. 이어 부추 오징어무침, 다시 부추전 하나가 나왔습니다. 푸짐하대요. 진수성찬 앞에서 추억이 빠질 리 없지요.



“우리 학교 다닐 때 잔디 씨 갖고 와라 많이 했잖아. 그걸 열심히 훑어 모아 학교로 가져가다, 어쩐지 알아? 하필 풀밭에 넘어져 잔디 씨가 다 흩어졌지 뭐야. 그걸 어떻게 주워. 그래, 다른 놈들도 넘어지라고 풀을 꽉꽉 묶었지, 크크.”



요, 잔디씨에 얽힌 아내의 추억이 재밌습니다...




음식에 이야기 양념이 추가 되니 막걸리 맛이 더욱 납디다. 암튼, 아내 친구를 만난 후 없었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지인 왈, 이렇게 겁을 줍니다.



“여자들이 나이 들어 친구 만나다 보면 남편에게 잔소리가 많아진다. 열심히 이것저것 봉사하는 남편이 깔끔히 옷을 입어도 왜 이 옷 입었냐? 저 옷 입어라 하고 참견에 까칠해진다. 좀 기다려 봐라.”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을까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제 아내는 안 그러길 바랄 뿐! 꽃섬이 방긋 웃었습니다.




아래꽃섬 하화도 선창서 본 웃꽃섬 상화도.

아래꽃섬 마을...

태양광 발전시스템...

붉은 괭이밥...

정자에서 본 웃꽃섬...

엉겅퀴...

꽃섬이 맞네용~^^

시원한 전망대...

꽃섬에서 꽃처럼...

바닷가의 해학...

은은한 인동초꽃 향이 아직도...

바닷가에서 웃꽃섬을 보며...

그래 괜히 꽃섬이 아니랑께~~~

여인을 유혹하고...

아래꽃섬의 명물 부추입니다.

요게 뭔 꽃이더라?

그림입니다...

추억의 다알리아...

산책 후 정리정돈?

벽화가 예술입니다...

맛있는 요리를 해주신 경로당 할머니들입니다.

금낭화...

부추는 정력제이면서 피를 맑게 한답니다...

돌산갓김치가 삭큼...

누굴 잊지 못하는 걸까?

막걸리 한 사발의 추억...

별꽃 속으로의 섬 여행...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lmovxad2m.tistory.com BlogIcon 졍여샤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만 보고 너무 로맨틱해서 들어왔어요ㅎㅎㅎ 즐거운 여행분위기가 사진에서도 물씬 풍기는 것 같아요. 저도 빨리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 떠나고 싶네요ㅎㅎ!

    2016.06.13 12:19 신고

“밥만 먹고 어찌 사냐? 짜장 번개 어때요?”
자장면 앞에서 드러난 두 얼굴의 사나이, 왜?
자장면 면발, 꼬들꼬들 야들야들 술술 넘어가고
시뻘건 짬뽕 국물에 빠진 홍합이 일광욕하고…
[여수맛집] 전남대 여수캠퍼스 앞 자장면 집 - 거상





고놈, 맛 한 번 볼까?



와~따, 길다~~~



한 번 먹어 보더라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늘 따라 다니는 숙제입니다. 알쏭달쏭, 헷갈립니다. 쉬우면서 어렵습니다. 이럴 때 찾는 이들이 있습지요. 반복되는 일상서 일탈을 꿈꾸는 자들의 모임이랄까.


구성원은 딸랑 4명. “먹어야 산다!”는 명제 아래, 생일 등 특별한 날 번개로 만납니다.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소주제에 따라 먹을거리의 다양성을 추구하지요.



언제 봐도 반갑고 즐거운, 스트레스 날리는 모임이 언제부턴가 뒤로 우선순위가 밀리데요. 먹고 살기 빡빡한 탓에 챙길 일들이 늘어난 때문이지요.


허나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지요. 모임 자체가 번개 위주라 보니 대부분 선약에 밀리더군요. 그래 꾀를 낸 게 저녁식사 자리에서 점심으로 바꿨습니다. 이게 그나마 수월하대요. 그렇게 찾은 곳이 자장면 집입니다.



“짜장면 번개 어떠삼? 의견 남기삼!”



와우~, 대박. 단체 톡에 불났습니다. 즉각 “밥만 먹고 어찌 사냐? 신선하다”며 콜. 면발 좋아하는 지인들 완전 쾌재였습니다. 이렇게 찾은 곳이 최명락 교수(전남대 생명공학과)의 단골집. 그는 "자장면이 땡기는 날에는 과사무실서 일부러 걸어서 간다"고 합니다.


그곳는 전남대 여수캠퍼스 정문 앞에 있는 ‘거상’입니다. 평가가 좋아 세 번 연속 모였습니다. 우선 자장면 가격이 싸고 푸짐합니다. 찾는 손님이 꾸준하고, 맛이 좋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낮 모임이라 부담 없다는 게 매력입지요.




섞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단골인 교수님은 먹기도 전에 살짝 웃음부터...



거상 내부입니다...





자장면 밑반찬, 단무지와 양파 식초 칠까, 말까?



“뭐 시킬까?”



요거, 어딜 가나 고민입죠. 자장 번개인데도 막상 닥치니 망설여집니다. 먼저 자장과 짬뽕 사이에서 갈등입니다. 자장면도 “짜장면, 간짜장, 볶음짜장, 고추쟁반짜장, 삼선짜장”이 있습니다.


짬뽕도 “짬봉밥, 삼선짬뽕, 고추짬뽕”으로 나뉩니다. 메뉴 고르기부터 즐거운 비명입니다. 사람이 많다는 게 장점입니다. 따로따로 시켜 조금씩 맛볼 수 있으니까.



특이한 게 식당서 먹으면 500원 빼준다는 거. 자장면 배달하면 3,500원인데 식당서 먹으면 3,000원입지요. 보통 자장면 한 그릇이 5,000원이니까 이보다 저렴하지요.


“자장면 배달 아르바이트 일당 100,000원”이라 붙었더라고요. 저는 일단 오토바이를 못 타 알바는 물 건너갔고~. 이러니 식당에서 먹을 때 배달 비용 빼주는 게 맞습니다요. 주문은 갈 때마다 다릅니다만, 대개 이렇습니다.



“짜장 하나, 삼선 짜장 하나, 간 짜장 하나, 짬뽕 하나 주세요.”



밑반찬은 단무지, 양파, 배추김치 등. 단무지와 양파에 식초를 칠까, 말까? 어릴 때 자장면 많이 먹었지요. 특히 초등학교 졸업식 날 먹었던 자장면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삼삼합니다.


그러니까 옛 추억 살리려면 식초 쳐 먹는 게 향수를 자극하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은 나이 먹어선지 되도록 덜 자극적인 걸 찾게 되더군요. 때론 자극적인 걸 찾긴 하지만.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식초 치는 여부는 “각자 취향에 따라 식성 껏 드시라”네요.




단무지와 양파에 식초를 쳐, 말어?



다 먹어 가는데 뒤늦게 나왔습니다. 그래야 이것도 맛보고...






자장면 면발, 꼬들꼬들 야들야들 술술 넘어가고



메뉴가 다르면 따로 따로 나옵니다. 요럴 때 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콩과 깨가 송송. 기다리는 사이, 옆에서 자장면 비비는 구경에 나섭니다.


양손에 젓가락 하나씩 들고 면발 사이를 벌립니다. 허연 면발이 드러납니다. 면을 휘휘 휘어 젓습니다. 면발이 점차 검게 변해갑니다. 아시죠? 그 흐뭇함을. 침이 꼴까닥 넘어갑니다.



“성님, 말 좀 하고 드쇼!”



소리까지 내가며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샘이 납니다. 지인 얼굴이 모든 걸 말해 줍니다. 무슨 일 있으면 금방 표시 나는, 그래서 얼굴만 봐도 금방 태가나는 지인은 그 자체가 ‘거짓말 탐지기’입니다.



정말이지 표정이 ‘짱’. 두 얼굴의 사나이입니다. 자장면 먹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다릅니다. 어쩜, 인상 찌푸릴 때와 웃을 때 차이가 저렇게 다를까? 이렇게 밝고 예쁜 얼굴, 웃으면 좋으련만!





무표정한 얼굴이...



맛을 보더니...



음미까지 하더니...



활짝 폈습니다...



음, 그래 이 맛이야!






간자장이 나왔습니다. 삶은 달걀 반쪽에 깨 송송. 자장 양념이 따로 나왔습니다. 한 번에 탁 털어 붓고 섞습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젓가락을 푹 누른 후 면발을 들어 올립니다.


입에 쏙 자장면을 집어넣었습니다. 면발이 꼬들꼬들, 야들야들, 쫄깃쫄깃, 설설 녹습니다. 뭐 씹을 게 있어야 씹지요. 술보다 더 술술 넘어가는 듯합니다. 어, 조금 먹었는데 벌써 배가 부르다니….




간짜장입니다...



따로 먹는 자장도 괜찮지요...



언제 나온다냐? 한담이 이어집니다...



요거 비비는 맛이...





시뻘건 짬뽕 국물에 빠진 홍합이 일광욕하고…



드디어 짬뽕 대령입니다. 짬뽕은 먹으면서 땀 빼는데 제격이지요. 시뻘건 짬뽕 국물에 빠진 홍합. 푸짐한 홍합이 요염한 포즈로 일광욕하는 분위기입니다.


속으로 ‘홍합아, 소원이라면 너부터 맛있게 먹어줄게’ 하며 손으로 들고 속살을 뺍니다.



“짬뽕 국물 드셩!”



뻘건 국물에 눈독들이던 지인에게 그릇째 밉니다. 지난 밤, 술 꽤나 퍼 마신 거죠. 남자들, 끝 모르게 부어라 마셔라 하는 거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짬뽕 국물이 끝내 줍니다.



지난 2월 번개 때 지인이 웃음지었지요. 그래 계속 번개


어, 시원타~. 뜨거운데 시원하다고 하는 건 세월이 주는 미학이지요~^^




뻔히 다음 날, “내가 술 또 마시면 네 새끼다!”란 호언장담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마셔대는 걸 보면 말입지요. 술, 인류 최대 발명품 맞습니다요. 지인, 후루룩 마시더니 한 마디 말과 함께 그릇을 내밉니다.



“어~, 시원타!”



낮에 이어지는 2차가 어색합니다. 밤에는 술집 순례에 나설 텐데, 낮이라 찻집으로 직행합니다. 이런 모습 적응하기 힘듭니다. ‘거상’ 건너편 ‘별 다방’을 찾았습니다.


대학가 앞, 다방이 안겨주는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앗, 내부는 현대식입니다. 지인들과 오랜만의 추억 번개로 삶의 재충전입니다.




추억의 별다방...



씨뻘건 요 짬뽕, 해장에 딱이지요.


별다방 내부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수능 대박 기원, 단감 드시고 ‘감’ 잡으세요!

[창원 단감] 이항복의 기개는 ‘감’에서 나왔다?

 

 

 

 

창원은 단감의 주요 생산지입니다.

창원 여항산에서 본 가을 단풍.

 

 

 

 

가을은 언제나 풍요와 함께 옵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 정신이 살찌우는 계절,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불립니다.

 

또한 ‘가을 탄다’는 말처럼 타는 계절입니다.

'탄다'는 마음 속 ‘~휑함’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답게 주렁주렁 달려 인간을 유혹하는 제철 과일이 있습니다.

바로 ‘감’입니다.

 

 

길을 걷다 담장 너머로 비집고 나온 감을 보면 행복입니다.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감을 따기 위해 담을 넘어 앞집 옥상에 올라서 감을 따야 했으니까.

그래, 담장 너머의 발견하는 순간, 그 자체가 고문입니다.

 

 

“저 감 따 먹어, 말아?”

 

 

요즘은 거의 따지 않더군요.

뻔히 보이는데도 그냥 지나칩니다.

풍요로움이 가져온 변화겠지만 정이 없는 것 같이 왠지 서운함이 일더군요.

 

‘감’과 어울린 재밌는 해학이 묻어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다음은 조선시대 정승을 지내셨던 오성 이항복 선생과 얽힌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못생긴 감이 추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담장 밖으로 나온 감은 누구의 감일까?

물 머금은 감은 수능에서 물오른 감을 안겨줄...

 

 

 

오성의 집에 감나무가 있었다.

 

 

감나무는 이웃집이었던 권율 장군의 집 담장으로 넘어들어 갔다.

권율 장군 댁 하인들은 먹음직스러운 감을 따먹었다.

두 집 하인들은 이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담을 넘어 온 감은 우리 감이다.”
“감이 담장을 넘어 갔어도 감나무의 주인인 우리 감이다.”

 

 

 

하인들의 다툼을 본 오성은 권율 장군을 찾아 가 방문 창호지 속으로 팔을 쑥 넣었다. 그리고 권율 장군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성 : “대감님, 이 팔이 누구의 팔입니까?”
권율 : “그것은 너의 팔이지 누구 팔이냐?”

 

오성 : “이 팔이 대감 방 안으로 들어가 있는데 어찌해서 제 팔입니까?
권율 : “내 방에 들어와 있더라도 네 몸에 붙어 있으니 너의 팔이지 않느냐?”

 

오성 : “저의 집 담을 넘어 대감댁으로 뻗어온 감나무 가지는 누구네 것이옵니까?”
권율 : “가지는 비록 우리 집으로 넘어왔지만 뿌리와 줄기는 너희 집에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너의 집 감나무 가지가 틀림 없다.”

 

 

이는 감나무 가지는 권율 대감 집으로 뻗어있었지만 감나무 뿌리와 줄기는 이항복의 것이니 오성의 것이란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나라 대감과 맞서 항복(?)을 받아낸 오성 이항복의 담력과 기개는 감을 많이 먹고 자랐기 때문 아닐까.

 

 

창원 단감입니다. 

씨는 급하게 먹을 때의 체하는 걸 방지하는 자연의 지혜입니다.

고놈 참 색 곱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항복 선생처럼 되고자 한다면 창원 단감 드시고, 수능 <감> 잡으시기 바랍니다.

 

어쨌거나, 감에 얽힌 일화가 많습니다.

그 만큼 가을에 익은 감은 유혹입니다.

아삭거리고 달콤한 감의 유혹을 어느 뉘가 이기리오!

 

 

지난 1일 창원 동읍에 갔습니다.

감의 유명 집산지 중 하나로 창원이 꼽히기 때문입니다.

 

창원 동읍 농협 김순재 조합장에 따르면 창원 단감이 유명한 이유는 간단하더군요.

 

 

“창원 북면과 동읍에서 생산되는 ‘창원 단감’은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당도가 높아서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엿’, ‘찹쌀 떡’ 등을 선물합니다.

수능에서 대박 나라는 거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수능 선물로 우리 농산물 하나 더 추가합니다. 단감입니다.

지금까지 수고하신 수능생 여러분! ‘감’ 드시고, 시험 <감> 잡으시기 바랍니다.

 

 

수험생 여러분, 단감 드시고 감 잡으세용~^^

 숫감입니다. 속이 검은 색입니다.

창원 여항산의 단풍

이 자체가 단풍이지요.

 

 

 

각설하고, 창원 단감 농가를 돌면서 가장 눈에 띠었던 건, 물론 감이었습니다.

그 중, 창원이니만큼 창원의 자연 단풍과 비교할 만한 창원 감 단풍 찾기에 몰두했습니다.

 

자연 단풍 뿐만 아니라 감 단풍도 무척 곱더군요.

 

 

하지만 올해 단풍처럼 감 단풍도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예전에 비해 일교차가 크지 않아서입니다.

그렇더라도 또 다름이 있지 않겠어요.

 

 

창원 여항산 오르는 길에 만난 단풍.

아련한 추억 속으로... 

 단풍과 운해가 어우러지니, 천상계로구나!!!

감 잡았어~^^ 

산에서 만난 감과 감나무는 대박입니다.

 

 

 

단풍, 자연 VS 단감 어느 게 멋있을까?

물론 사람 마음에 따라 다르겠지요.

제 눈으로는 둘 다 독특함이 있었습니다.

 

 

마침, 지난 3일 성불사 신도들과 함께 창원시 여항산에서 본 단풍은 이제 막 남자를 알아가는 새색시 볼에 살짝 핀 홍조처럼 수줍고 겸연쩍은 뭔가 숨기고 싶은 ‘내숭’ 단풍이었습니다.

 

감 농가에서 본 감 단풍은 농익은 완성미를 자랑하는 중년 여인네 단풍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이 어찌 따라가겠습니까!!!

 

 

 

 사랑과 행복. 그래서 다정다감

창원 여항산 성불사 신도들입니다. 

자연 단풍의 완숙미는 이것?

창원 단감 드삼!!!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장편소설] 비상도 1-22

 

"향기가 목 안으로 감기면서 바람소리를 내거든요.”
소요유, 구속 없는 절대자유 경지에서 노니는 것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식사를 마친 후 성 여사는 별채에 있는 법당으로 올라갔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부처님 앞에 앉아 있었다. 용화가 궁금했던지 몇 차례 살피고 왔어도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성 여사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비상도의 방에 마주 앉았다.

 

 

  “스님, 사는 것이 왜 이리도 허무한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한참을 뜸을 들인 그녀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스님께서 다녀가신 그 다음 해 겨울에 남편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어쩌다가? 정정하신 줄 알고 있었는데.”

 

 

 비상도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고였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연쇄충돌사고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가고 오는 것이 창졸간이긴 하지만…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용화가 차를 끓여 내어왔다. 초순에 잎을 따서 가루로 만들어 두었던 솔잎차였다.

 

 

  “향기가 너무 좋은데요?”
  “저도 마음이 울적할 땐 이 차를 마시곤 합니다. 향기가 목 안으로 감기면서 바람소리를 내거든요.”

 

 

 비상도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남재 형의 일과 스승의 일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 말이 위로가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날 오후에도 법당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서울로 돌아갔다. 그녀는 가면서도 용화 손을 잡고 한참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상도가 그녀를 마을 아래까지 배웅하고 돌아올 때는 서서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아침상을 물린 남재 형이 스승님께 말을 걸었다.

 

 

  “스승님, 성탄절 날 눈이 오네요.”
  “창을 열고 구경을 하고 싶으냐? 눈을 밟으며 걷고 싶은 것이냐?”
  “눈을 밟으며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싶습니다.”

 

 

 형의 대답에 스승님은 잠시 추억에 잠기시는 모양이었다.

 

 

  “창을 열고 데운 술로 긴 밤을 새우고 싶구나.”

 

 

 비상도는 자신의 마음이 꼭 그날의 스승님 마음을 닮은 것 같아 산을 오르면서도 눈이 옷에 수북이 쌓이는 것도 잊었다.

 

 

 비상도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을 새롭게 꾸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꿈꾸어 온 것이었고 이미 ⌜소요정(逍遙亭)⌟이란 당호도 지어놓은 상태였다.

 

 

 소요정이란 말은 장자(莊子)의 내편(內篇) 제 1장에 나오는 소요유(逍遙遊)에서 따온 말이었다.

 

 구속이 없는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에 얽매인 현실을 초월하여 세속적인 이해나 득실, 시비나 생사 등의 고정관념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스승님께서 소망하신 바람이기도 했다.

 

 

 날으는 새가 걸림 없이 창공을 누비듯 그렇게 살고 싶었다. 조작하지도 그 어떤 목적도 갖지 않는 자연 속에서 자신 또한 누구에게 간섭 받지 않으며 산 중의 꽃처럼 그렇게 살아보리라 했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들. 누나가 언제 마법사라 그런 거야?”
“그 때 왜 누나 말을 믿었는지 이해 안 돼.”

 

 

 

 

ㅋㅋ~^^

 

  아이들 키우다보면 별일 다 있지요.

 

 

  “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누나가 진짜 마법사인 줄 알았다 ~.”

 

 

 헐~. 어젯 밤 물 마시는데,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의 황당한 고백.

 

 그러니까 한 살 위인 누나가 고작 한 살 아래인 남동생을 재밌게 가지고 논 겁니다.

 

그래도 이런 추억 있으면 재밌지요.

 

 

 

 

 

아빠 : “너희들 둘 만의 좋은 추억이네.”


딸 : “너 진짜 그랬어? 하하하하~”

 

아들 : “나도 그 때 왜 누나 말을 믿었는지 이해 안 돼.”

 

 

 

딸은 배꼽잡고 웃었습니다.

뜻밖의 반응에 아들은 당혹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마법사를 꿈꿨던 딸은 이제 평범한 중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아빠 : “아들. 누나가 언제 마법사라 그런 거야?”


아들 : “내가 다섯 살 때던가, 누나랑 박스에서 자는데 그랬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래. 말하면 마법사가 안 된대.”

 

딸 : 그건 지금도 유효하다, 너~."

 

 

 

아빠 : “아들. 그걸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믿었다는 거야?”


아들 : "응. 진짜 믿었어."

 

딸 : “내가 상상력이 좀 풍부하잖아.”

 

 

 

아빠 : “누나가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말랬다고 지금껏 말 안한 거야?”


아들 : “우리만의 비밀이었거든. 내가 왜 그랬을까?”

 

딸 : "순진하니까 그랬지."

 

 

 

그랬던 아들이 지금은 누나를 막 씹습니다.

덩치가 커가니 예전처럼 보이지 않는 거죠.

 

그래도 누나뿐이라는 걸 압니다.

장난이 보통 아니거든요.

이럴 때 드는 생각. 역시, 둘 낳길 잘했어!

 

이는 아이들이 주는 행복입니다.

이때가 지나면 가슴에만 남는 아름다운 추억이니까.

 

건강하게만 자라면 됐지, 더 무엇을 바라리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디까지 왔니?"

"당당 멀었다!"

 

어릴 적, 친구 등 뒤에서 눈감고 길을 가면서 했던 추억의 한 페이지입니다.

어릴 적 마냥 좋았던 추억이지요.

 

추억이 좋은 것만 있으면 재미 없지요.

씁쓸한 추억이 있어서 좋은 추억이 빛날 것입니다.

이것이야, 개인사라 왈가왈부할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을 넘어 나라, 국가와 얽힌 추억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잘잘못을 따집니다.

역사에서는 내가 나로되, 내가 아닌 모두의 기록이 됩니다.

 

 

영조대왕... 사도세자... 그리고 뒤주... 해경궁 홍씨...

이는 개인을 넘어 고스란히 우리의 아픈 역사로 남았습니다.

 

이 틈바구니에서 정조대왕 개인적 가슴앓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효심,

백성에 대한 극진한 사랑 등은 온전한 우리들의 역사로 승화되었습니다.

 

 

수원.

 

참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수원 화성과 행궁은 세계문화유산이며,

조선의 부흥기를 이끈 정조대왕의 넋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참, 수원 화성의 매력은 낮에만 있는 게 아닌 밤에도 있더군요.

 

야경은 색다름을 선사했습니다.

더불어 '넉넉한 달빛''촘촘한 별빛'까지 감상할 수 있어 더욱 이채로웠습니다.

 

 

과학, 예술, 위민정신 등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수원 화성.

더 말해 뭐하겠습니다.

수원 화성과 행궁의 낮과 밤 풍경 감상하시지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원화성....
    가을여행으로 남겨 두었는데
    시간이 어찌 될런지 모르겠심더.
    잘 지내시지요?

    2013.08.25 17:30 신고

분필 가루 풀풀 날리던 칠판 닦기, 물 머금다
각자 학창시절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칠판에 얽힌 추억 많지요!!!

 

 

다들 그러대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세월은 무엇이든 변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기억 속에 남겨진 추억은 세월의 변화에도 꿋꿋하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학창시절, 칠판과 분필, 칠판 닦기에 얽힌 추억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예전에는 학급에서 돌아가며 맡은 주번(당번)이 칠판을 닦고, 분필을 정리하고, 칠판 닦기를 털었습니다.

 

 

칠판 닦기를 막대기 등으로 탈탈 털 때면 영락없이 분필가루를 둘러 써야 했습니다.

 

칠판 닦기의 용도는 다양했습니다.

잠자거나 하튼 짓을 하는 학생을 향해 던지는 무기(?)기도 했습니다.

 

 

 

분필도 워터초그로 바뀌었더군요.

요거 요거 많이 분질러 많이 던졌는데...

 

 

물을 묻혀 닦으면 난리 났는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물기가 있어야 닦깁니다.

 

 

분필도 종이로 예쁘게 싸거나 했는데

지금은 요렇게 인위적입니다. 정이... 

 

 

여기에다 물을 부어 물기가 있어야 칠판이 닦깁니다.

세월의 변화를 제일 실감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위생 상태를 고려해 개발했다는 워터 초크.

 

 

그랬는데 세월은 변화를 불렀습니다.

 

중 3인 딸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아버지 학교' 프로그램에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접한 게 새로운 칠판, 새로운 분필, 새로운 칠판 닦기였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분필가루 날리는 위생 환경 개선을 위해 분필은 가루가 날리지 않은 ‘물 분필’이 나온 겁니다.

 

 

또 분필가루 가득 묻던 칠판 닦기는 물을 묻혀야 닦기는 ‘물 칠판 닦기’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덕분에 칠판까지 물로 닦는 칠판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요거에 얽힌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요즘은 이걸 많이 사용하지요.

  

학교에서 본 재미있는 낙서도 추억 속으로 이끌더군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석류에 얽힌 서리와 추억의 맛에 몸서리
각시가 석류 하날 혼자 해치웠대요.

 

 

 

 

 

 

“자네, 특히 좋아하는 과일 있는가?”

 

며칠 전, 지인은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두 말하면 잔소리. 바로 즉석에서, 가다렸다는 듯 “석류요”하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게 그리 좋아?”라며 싱긋 웃어보였습니다.

지인의 웃음은 안 봐도 알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일전에 지인에게 석류 하나를 선물 받은 적 있습니다.

누가 싸줬다며 저에게 준 것입니다.

 

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40여년 만에 손에 넣은 석류를 쪼개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자는 아이들 빼고, 아내에게 권했습니다.

아내는 됐다며 혼자 맛있게 먹으라며 사양했습니다.

 

 

“당신, 이 맛있는 석류를 정말 안 먹는단 말이지.”

 

 

거듭, 함께 먹을 것을 권했지만 아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습니다.

주먹만 한 석류를 혼자 독차지해 먹는 즐거움은 그 자체로 엄청난 포만감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아내가 다짜고짜 뒤통수를 쳤습니다.

 

 

“각시는 안주고 혼자 다 먹었단 말이지.”
“먹으라고 해도 안 먹는다더니, 왜 그래?"
“당신이 하도 맛있게 먹길래. 그런데 각시한테 먹으란 말도 안 하냐.”

 

 

기막힐 일이었습니다. 분명 같이 먹자고 했는데, 그 말조차 안했다니….

이럴 때 CC TV라도 있었으면 확인시켜 줄 텐데.

어쨌거나 석류를 향한 식탐이 엄청났나 봅니다.

 

이런 사연을 지인에게 말했더니, 너털웃음 한 번 흘리더군요.

 

 

석류에 얽힌 서리와 추억의 맛에 몸서리

 

 

 

먹을거리와 얽힌 추억이 많습니다. 그 중 석류에 대한 추억이 아련합니다.

 

어릴 적, 저희 뒷집 대문 옆에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5월이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쑥쑥 자란 석류는 8~9월이 되면 토실토실했습니다.

 

껍질을 뚫고 터져 나온 석류 알갱이는 빨갛다 못해 핏빛을 띠고 어린 저를 유혹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 앞에, 주먹만큼이나 큰 석류를 따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많았습니다.

 

터질 듯이 익은 석류를 딸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곤 했습니다. 대문 담장 너머로 손만 넣으면 석류를 잡을 수 있는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해, 아무도 몰래 석류를 따 혼자 숨어서 먹을 때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기찬 맛에 완전 범죄(?)를 꿈꾸던 온 몸의 긴장은 사르르 녹아 사라졌습니다.

 

다행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혼자만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맛은 서리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만이 기억하는 추억일 겁니다.

석류에 얽혀 있는 추억의 맛은 석류를 볼 때마다 자동 반사적으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고, 몸은 작은 몸서리를 치게 합니다. 그리고 웃음이 절로 피어납니다.

 

 

 

 

각시가 석류 하날 혼자 해치웠대요. 

 

 

부부 간 있었던 석류에 얽힌 오해와 추억을 아는 지인이 선물로 석류 세 개와 홍시 다섯 개를 주었습니다.

 

석류는 제게, 홍시는 가족들에게 줄 요량이었나 봅니다.

받자마자 집에서 석류 하나를 쪼갰습니다.

 

혼자 먹었다가는 또 혼쭐날 게 염려되었습니다.

 

 

“여보, 얘들아, 석류 먹어라.”

 

 

먹지 않을 것 같았던 식구들이 석류 앞에 모였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맛있게 잘 먹더군요. 이렇게 잘 먹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내 피 같은 석류가, 그 맛있는 석류가 없어지는 게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아직 두 개가 남은 터라 뒤에 또 먹으면 된다, 싶었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생겼습니다.

 

지난 월요일, 절에 갔다 왔더니, 석류 하나가 사라졌지 뭡니까.

아내가 석류 하나를 해치웠더군요. 아~, 그 애통함(?)이란….

 

이 마음을 담아 석류를 선물했던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성님, 성불사 있는 동안 각시가 석류 하날 혼자 해치웠대요.

하나라도 남아 다행~^^”
“마니 사줄게. 싸우지 마라. ㅎㅎㅎ”

 

 

지인의 재밌는 답변에 혼자 빵 터졌습니다. 나 원 참. 석류가 뭐라고 싸움까지.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교수님, 그냥 저희가 사 먹을게요~. ㅠㅠ 어찌 각시님이랑 싸우겠어요?”
   


이랬는데 글쎄,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식탁 위에 하나 남은 석류마저도 흔적 없이 사라졌지 뭡니까.

 

알고 보니, 딸애가 먹었더군요.

그런데 석류 껍질과 알갱이들이 지저분하게 싱크대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 광경에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아까운 내 석류.’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주와 소통을 방해하는 건물 허가는 말았어야”
봄바람을 상징하는 제주 유채꽃에 흠뻑 취하다!

 

 

 

 

제주 관광지에서 ‘섭지코지’가 떴다죠?

TV에서 ‘올인’ 등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이어진 후부터라던데, 그걸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들 아는데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른다’는 말이 딱 들어맞더군요.

제주 성산 일출봉 가던 길에 섭지코지에 들렀습니다. 관광객이 꽤 많더군요.

섭지코지는 드나드는 길목이 100m 내외로 비좁다는 협지에서 유래된 ‘섭지’와 곶을 의미하는 제주어 ‘코지’가 합쳐진 이름이라 합니다.

해안에 위치한 덕에 유난히 강한 바람으로 ‘바람의 전당’이라도 불립니다.

섭지코지는 성산 일출봉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노란 물감을 뿌린 듯한 봄의 전령 유채꽃 및 붉은 오름에 설치된 등대와 어우러진 해안풍경이 일품입니다.

아울러 해안 절벽과 전설이 서린 선돌 등은 전형적인 제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 또한 압권입니다.

"추억으로 남는 건 사진 뿐이라니깐"

섭지코지에 들어선 인공 건물 때문에 조망권이 방해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섭지코지의 풍경은 성산포 해양관광단지 개발사업 때문에 예전만 못하다고 합니다.

김경호 교수(제주대 언론학과)는 “섭지코지의 80% 이상이 사유화 된 후 대형수족관, 대형호텔, 리조트, 레스토랑, 유리 피라미드 등이 들어서 관광객 출입이 제한되었다”면서 “이 제한은 자연을 즐길 권한을 빼앗아갔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자연 경관을 훼손하는, 제주와 소통을 방해하는 건물 허가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아쉬움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섭지코지는 제주도를 찾는 청춘 남녀들이 꼭 둘러보는 관광지입니다.

유채꽃과 등대, 바다 위에 우둑 솟은 선돌 등을 배경으로 한 인증 샷으로 올인 등 드라마 따라잡기를 해야 한다나요.

 

"인증샷이 최고라면서요. 나이 들면 오롯이 삶의 발자취가 되겠죠?"

봄바람 여인의 미소에 유채꽃 마저 색이 바랩니다.

"넘 썰렁 하나요?" 사진 찍을 때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포즈랍니다. 

 

우리 일행도 사진 남기기에 동참했습니다. 선글라스를 낀 여인이 노란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자 남자들이 몰려들어 한 마디씩 합니다.

“봄바람을 상징하는 여인이다.”
“노란 유채꽃마저 봄 여인의 웃음과 향기에 숨죽인다.”

이렇듯 자연 속 유채꽃은 사람과 하나가 됩니다. 하나 아쉽다면 유채꽃밭 안에서의 사진 찍기가 유료라는 겁니다.

무료인 곳도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그렇더라도 자연을 즐기려는 마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자연은 삶을 지탱하는 근원임에 분명합니다.

 

유료라 사람들이 뜸합니다. 무료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일행들이 함께 어울렸습니다.

섭지코지의 멋은 자연 그대로의 존재 가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kimminsoo.org BlogIcon moreworld™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말에 제주도를 갑니다. 포스팅 보고 기대로 가득찼습니다. ^^

    2012.04.03 14:22 신고

아름다운 해안선이 세계 제일인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에서 본 아름다운 전경입니다.

함께 오른 일행입니다.

25년 전에도 올랐는데, 글쎄 기억이 하나도 없네요.


“가위 바위 보 복불복으로 대표 주자를 보내자.”

복불복으로 결정하자고 할 정도로 성산 일출봉에 오르기를 꺼렸습니다. ‘쿵 하면 담 너머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는 속담처럼, 성산 일출봉은 척 보니 가파르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질 체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는 터라 뒤 날이 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복불복은 말 뿐, 일행은 모두 정상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정상을 오른 이유는 단지 하나였습니다. 25년 만에 다시 찾은 겁니다. 추억 되짚기였습니다. 성산 일출봉은 대학 시절에 와 보긴 했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이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여기는 오르고 나면 다리가 뻐근해. 오르기 전에 다리부터 풀어 둬.”

벗의 선전포고였습니다. 벗의 권유에 단단히 각오했습니다. 이럴 때 아니면 운동할 시간을 있어야죠. 헉헉~, 숨이 가팠습니다. 가픈 숨은 사진을 찍으며 달랬습니다. 오를 때마다 풍경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야, 세계자연유산이며 세계지질공원인데 이련 하겠습니까.

 


추억을 남겨야 할 때는 분명히 남겨야 기억에 남는 겁니다.

성산 일출봉 분화구입니다.

성산 일출봉 정상입니다.

"저 예뻐용?"

아 아름다운 풍경을 왜 예전엔 몰랐을까?

 

“야, 여기서 사진 찍지 마. 정상에 가면 엄청 나.”

제주에 터를 잡은 벗은 풍경을 훤히 꿰차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1년 6개월 된 딸을 데리고 오를 정도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묵묵히 산을 올랐습니다.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오른다는 말만 생각하고. 그렇지만 오르는 동안의 그간의 삶을 반성하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래서 산이 좋은 게지요.

“와~, 대단하다.”

정상에서 감탄이 절로 터졌습니다. 5년 전, 찾았던 세계 3대 미항인 브라질 리우(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에 올라 바라 본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였습니다. 역시 제주는 세계 제일의 관광지였습니다. 오르기를 망설였던 게 죄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아무리 25년 만에 다시 찾았다고 한들, 어찌 이런 아름다움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까, 의아스러웠습니다.

당시에는 세상 보는 눈이, 자연을 감상하는 마음이 메말랐던 게 분명했습니다. 새로워진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자체가 감사함이었습니다. 가슴에 풍경을 실컷 담았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삶에서도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화창할 때는 화창한 대로 흐린 날은 흐린대로 운치가 다르겠지요.

뒤에서 장난 치는 거 알겠는가?

삶은 이렇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 거, 어찌 그리 싸우시는가?

저녁녘 해가 바다에 앉았습니다. 

 

“나 그만 오를래. 갔다 와.”

내려오는 길에 고지가 바로 앞인데 오르길 포기하는 아주머니와 마주쳤습니다. 성산 일출봉을 먼저 오른 사람으로서 듣고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참견을 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포기하지 마세요. 이 풍경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겁니다. 힘내고 오르세요.”

아주머니가 힘을 냈습니다. 뿌듯하데요. 제주도는 일 년이면 몇 차례 올 정도였습니다. 그때마다 일행이 가자고 하면 왜 한 번 봤다고 손사래를 쳤을까? 과거의 여정이 털끝만큼도 기억나지 않는 곳을 가 봤다고 말할 건 아니나 봅니다.

성산 일출봉을 보고 나니 삶의 힘이 절로 솟습니다.

 


금빛으로 물든 바다는 꼭 물욕의 바다 같이 느껴지더군요.

우도입니다.

일출봉 아래 해변 풍경입니다.

여행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성산 일출봉 풍경을 가슴에 앉고 돌아왔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릴 적 선생님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
살구 따먹은 이에게 필요했던 건 ‘스승’

 

 

 

2012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에도 삶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길 바라며, 풍성한 수확 있길 기원합니다.

2011년을 보내고, 2012년을 맞아 지인들을 만나 많은 덕담 나누었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덕담 중 특히 기억나는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웃음이 한 아름 피어나는 어릴 적 추억이었습니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과실나무 열매와 관련한 추억 있지? 나는 학교도 며칠 못나갔잖아.”

“왜, 학교를 못나갔는데?”

지인은 옆 사람들의 궁금증을 뒤로하고 다른 이야기부터 풀었습니다.

“하루는 초등학교 살구나무에 달린 살구가 ‘나 따 먹으세요’하고 유혹하더라고. 침을 삼켰지. 그래 ‘나무 끝에 달려 있는 살구를 어떻게 따먹을까?’ 궁리했지.”

지인이 초등학교 다닐 때, 이런 추억 한 두 번쯤 있습니다. 그러니 기껏 해 봐야 긴 작대기를 가져다 따 먹던지, 아니면 돌을 던져 떨어뜨리던지, 나무에 올라가 따 먹는 등 단순ㅌ한 방법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중 한 방법이 나오더군요.

“내가 나무에 올라가면 나무가 부러져 떨어져 다칠 것 같아. 그래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갔지.”

초등학생 생각이 ‘뻔’한 거라, 살구 따먹기를 포기 했나 여겼습니다. 그런데 웬 걸. 친구는 아주 엉뚱한 방법을 들고 나왔습니다.

“저걸 기어이 따 먹어야 직성이 풀리겠는 거라. 집에서 톱을 들고 나왔어. 그리고 톱으로 살구나무를 베었지. 살구 엄청 맛있대~.”

푸, 하하하~ 웃음이 터졌습니다. 초등학생이 살구나무를 베어 살구를 따 먹을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기상천외한 살구 따 먹는 방법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 학교가 발칵 뒤집혔어. 교장선생님이 가만있을 리 없었지. 교장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말썽쟁이들을 부르는 거라. 결국 학교 살구나무를 베어 낸 범인으로 잡혀 직살나게 맞았지. 얼마나 맞았는지 학교에도 못 갔어.”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웃음 한편에는 교장 선생님에게 들킨 사실에 대한 대리만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웃음을 멈추고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사람은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저거 꽤 쓸만한 물건이구먼…. 그런데 지금 보면 자네는 스승을 잘못 만났어.”
“왜, 스승을 잘못 만났다는 거야? 다 그런 거 아니었어.”

“아니지. 그때 교장 선생님이 자네의 그릇 크기를 알고 꾸지람과 함께 칭찬과 격려를 같이했다면 아마 자네 인생은 달라졌을 거야. 자네는 인생의 전환점 하나를 잃은 거야. 그래서 자기를 이끌어 줄 선생님이 중요한 거지. 너무 아쉽네.”

어릴 적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 거지요. 이게 어디 어릴 때 뿐이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 혹은 모두에게 칭찬이 소중한 이유일걸 겁니다.

여하튼 어릴 적 추억은 미래를 살아가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올 한해 아이들이 아름다운 삶의 추억 많이 쌓기를 바랍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해변가에 앉은 여인이 추울까봐 누가 목도리를 둘러주었더군요.

 

 

2012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2011년을 보내고 2012년을 맞은 어제와 오늘 지인들과 문자 메시지를 교환하고 전화 덕담을 많이 나누었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지요.

아내가 말하는 대박 문자메시지입니다.

“훨훨~, 훌훌~, 활활~”

다른 문자는 다 씹었는데, 요걸 보고 대박이라며 딱 하나만 답신 보냈다나요. 아내의 해석은 이러했습니다.

“훨훨 새가 날듯 지난 세월, 이제 훌훌 털고, 새해를 맞아 활활 타오르자.”

제게도 많은 문자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올해 치러질 4ㆍ11 총선과 민주통합당 당대표 선출 등과 관련한 선거 문자도 있었습니다. 일반 문자 내용은 대개 이러했습니다. 

 


파르르님이 보낸 문자. 

 

“임진년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만복하시길 기원합니다!”(백서방)
“한 해 동안 보살펴 주신 것…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다가오는 새해 더욱 건강하세요!!”(파르르)
“흑룡의 해를 맞아 도약과 비상을. 올해 행운만이 가득하시길”(이상율)
“지난 일년 함께 한 시간 좋은 추억으로 남기겠습니다.”(바람흔적)

그런데 눈에 확 띠는 문자가 있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추억을 회상하며 보낸 독특한 문자에 한참 생글거렸습니다.

 


지인이 보낸 톡톡 튀는 사진과 문자.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시길….
올해 인사로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옛 추억을 더듬더듬거리며 다방에서 수족관, 양철 재떨이, 화랑표 성냥, 투박한 커피 잔 너무 좋습니다. 시간 여행….

‘김양 자네는 쌍화차 한 잔 하소. 나는 입이 텁텁해서 커피 할라네.’

폼은 이빠이 잡고 돈은 없고 나는 이렇게 삽니다. 하하하~”(서선택) 

 

  

 

대부분 4,5,60대 지인이 보낸 문자였습니다. 헌데 삼십대 초반 후배님이 보낸 문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중년에서 벗어난 젊은 냄새나는 문자였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Happy new year!?”(이민우) 

 


여수 소호 요트장 인근에 2012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사람이 몰렸습니다.

기다리던 해는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지요.

 

새해 첫날 아침에 해돋이를 보러 나선 분들 해가 뜨지 않아 안타까웠을 겁니다. 저희 부부도 기대하진 않았지만 해돋이 구경에 동참했습니다. 아니 아침 운동으로 걷기에 주력했습니다. 그렇더라도 해가 뜨지 않으니 아쉽더라고요.

그래서였을까? 한 지인이 아쉬움을 표현한 문자를 보내셨더군요.

“언제나 격려해 주시고 맘 쓰시는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새해 늘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지 못해 다소 아쉽네요^^”(변경혜)

 

 

암튼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코달콩 사는 이야기... 친근감이 가는 글 참 좋습니다.
    새해도 더 좋은 글 기대합니다. 복많이 받으시고 가정에 행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2012.01.01 12:51 신고

“고마워요. 이제 좋은 추억만 기억할게요!”

 

한화리조트 설악 숙소에서 바로 골프장이 보이더군요.

 

 

고놈의 인생살이 참 다양합니다.

때로 고달프고 힘에 부치다가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등산에 비유하나 봅니다.

삶이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듯 부부의 삶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억은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더군요.
꼭 결정적일 때 좋지 않은 한방이 있어 코너로 몰리기 일쑤입니다.

  


한화리조트 설악 쏘라노에서 본 울산바위.


부부여행과 가족 여행 일 년에 한번 이상은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여행을 떠올리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 수시로 꺼내 먹을 수 있는 고운 추억이 있다면서.
여기에 좋지 않은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잠자리와 관련된 쓰라린 추억입니다.
‘여행은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게 여행이다’란 생각 때문에 여행갈 때마다 숙소 잡느라 고생했거든요.

그걸 아내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끄집어내 속을 뒤집는데 미칠 지경입니다.

 


리조트 내부입니다. 나쁜 추억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당신 정말 나빴어. 부부 여행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가도 바퀴벌레 나오는 그 여인숙만 생각하면 꿈에 다시 나올까봐 가슴이 섬뜩해.”

3년 전 부부 단풍 여행에서 아내가 가졌던 숙소에 대한 나쁜 추억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때 드라마 촬영과 전국 규모의 체육대회가 있어 대여섯 시간 동안 숙소를 찾아 헤매다 겨우 잡은 게 여인숙 같은 여관이었습니다.

나쁜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바꿀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만회해야 두고두고 씹히지 않을 것 같아서요.
또한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꿔주는 것도 부부가 해야 할 노력 중 하나.

 


권금성과 울산바위, 워터피아 등 전망 끝내주더군요. 아이들도 탄복할 정도였지요. 

 

지난 금요일부터 2박3일 설악산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내의 나쁜 추억을 좋은 추억으로 바꿀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떠나기 전,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 숙소 예약과 코스 선정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지요.

8시간을 달려 자정이 넘어 도착한 곳이 ‘한화 리조트 설악 쏘라노’였습니다.
이를 보고 아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한 마디 하더군요.

"와~, 아빠 최고!”

아이들은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워 만족을 표시했습니다.
모른 척 아내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당신 이번에 완전 신경 썼네. 고마워요. 이제 좋은 추억만 기억할게요.”

나오는 말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아내와의 쓰라린 몹쓸 여관의 추억을 한방에 만회한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살피니 권금성과 울산바위가 눈에 들어오는 전망도 아주 끝내주더군요. 오랜만에 가장 위신 제대로 세웠습니다.

단풍은 아직이더군요. 10월이 되어야 아름다운 단풍을 선보일 것 같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단풍은 아직이지만
    여행이란 그 자체만으로 좋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2011.09.27 11:51 신고
  2. 캠프렌즈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는 새로운 계획으로 여행의 모습을 바꾸어 보세요^^
    다음 카페 "캠프렌즈" 검색하시면 해결됩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휴일 되십니요^^

    2011.10.02 14:32 신고

“오줌발 누가 높이 올라가는지 시합할까?”

 

 

남자라면 요런 추억 한 자락씩 있을 겁니다.

어릴 적, 바지춤을 내리고 소변 볼 때면 친구들이 간혹 이런 제안 했지요. 

“야, 오줌발 누가 높이 올라가는지 시합할까?”

이 제안은 오줌 세기 즉, 정력과 관련 있지요.
행여 높이 올라갈까 싶어, 물건을 위로 한껏 치켜들어 벽에 오줌발 증거를 남겼지요.

그러는 동안 이기고 싶은 마음에 발뒤꿈치를 드는 등 안간힘을 썼지요.
애를 쓰지만 결론은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 재기’~^^.

무엇 때문에 이런 시합을 했을까?

곰곰 생각해 보면, 심심풀이 놀이 혹은 남에게 지지 않겠다는 경쟁적 자기표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랬는데 호기롭던 소년은 어디가고, 어느 덧 소중한 추억으로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왜냐? 물론 세월 탓이지요. 세월은 항우장사도 못 이긴다잖아요.

그 옛날 장마철 뒤 끝에 시원하게 꽐꽐 내리는 폭포수 같던 오줌발도 세월의 벽 앞에선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이름 하여, 잴잴잴잴 ㅠㅠ~.

더 기막힌 건 요거지요.
소변 후 남은 오줌을 한 방울이라도 꼭 탈탈 털어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을 경우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왜? 오줌이 팬티에 묻는 건 다반사니까.

그래선지, 변기 앞에서 없는 오줌을 한 방울이라도 더 쥐어짜기도 합니다.

더욱 황당한 건 간혹 오줌 한 방울이 사각 팬티 옆으로 새, 허벅지를 타고 줄줄 흐르는 순간입니다.

이 땐 완전 찝찝한 진저리지요.
그나마 집에 있다면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밖일 경우 갈아입을 옷 때문에 낭패지요.
하여, 주위 눈치 보며 슬쩍 바지로 문질러 위기(?)를 넘기지만 기분 더럽습니다.

요건 저만 느끼는 기분 아니겠죠?
아마, 나이 먹은 사람들은 이런 일 종종 있을 거예요.
물론 젊은 사람도 예외는 아니지요. 제가 젊었을 때도 간간이 있었던 일이니까.

참, 오줌에 관한 건 여자들도 예외가 아니더라고요.
엄마들이 아이 낳고 난 후, 많이 생긴다는 요실금이 바로 남자들과 비슷한 경우더군요.

어쨌거나 맥 못 추는 오줌발은 세월 탓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꾸준한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는 증거입니다.
건강관리로 즐거운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markjuhn.com BlogIcon mark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 중학생때 화장실에서 변기 위에 있는 창문넘어까지 오줌을 쏴 오릴 수 있는지 시합하는 녀석이 이제 그런 힘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저 바지 젖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다는..

    2011.09.18 09:50 신고

아들이 배꼽에 돼지 그림 그린 사연
“수염이야. 아빠가 되고 싶어서….”

 

 

아들의 돼지 그림.

 

열이 많은 초등학교 6학년 아들, 옷을 다 벗고 팬티만 입고 있습니다. 자주 보는 차림이라 무심히 넘겼습니다.

 

어제는 그게 아니더군요. 다리를 봤더니 빨간 점들이 다닥다닥 있대요. 뭘 잘못 먹어 두드러기 난 줄 알았습니다.

 

“아들, 몸에 뭐 난 거야. 왜 이래?”

 

아들은 실실 웃으며 입 꾹 다물고 있고, 대신 아내가 답하데요.

 

“그건 아무것도 아냐. 배꼽 좀 봐봐. 기절초풍,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니까.”

 

대체 배꼽을 어떻길래? 심심하던 참에 신기한 구경거리가 생긴 거지요.

 

“아들, 배꼽 좀 보자.”

 

순순히 보여줄 줄 알았는데 빼더라고요. 사인펜으로 돼지를 그린다고 그렸다는데… ㅋㅋ~. 

 

“아들, 어찌된 일이야?”
“여보, 재밌잖아 놔 둬. 사람에겐 문신 욕구가 있대. 멋있게 보이려는 본능.”

 

아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대요.

 

 “아들이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보건소에 건강검진 겸 파상풍 주사 맞으러 갔대. 보건소에서 부모 동의서가 없다고 동의서 받아서 다음에 오라고 했다나.

 

근데 아들이 왜 친구들과 같이 보건소에 파상풍 맞으러 간 줄 알아? 글쎄, 공짜라서 돈 삼만 원 아낀다고 갔대. 옆에서 아들과 전화 통화 듣던 직원이 ‘아들 너무 귀엽다’고 빵빵 웃더라고.

 

보건소 헛걸음하고 집에 와서 다리랑 배꼽에 싸인 펜으로 그림 그렸대. 나도 엄청 놀랐어. 그걸 보니 옛날 아들이 얼굴에 그림 그렸던 게 생각나대. 당신 그거 기억 안나?”

 

아내가 컴퓨터에서 어릴 적 아들의 얼굴 낙서 사진을 한참 찾데요.

 

“여보, 여깄다. 이 사진 좀 봐봐.”

 

사진은 아들이 6살이던 2004년에 찍은 거더군요. 아내가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하더군요.

 

7년 전, 아들이 6살 때 얼굴에 그린 그림.

 

 

“태빈아! 너 입이 왜 그래,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음~ 수염이야. 아빠가 되고 싶어서….”

 

어린 마음에 아빠 수염이 부러웠나 봐요. 전 수염 귀찮은데…. ㅋㅋ~^^
아내는 아들 어릴 때 사진을 보며 과거 속으로 빠지대요.

 

“그때 배꼽 빠지는 줄 알았어. 이리 귀엽던 아들이 지금 많이 변했지?”

 

제가 봐도 넘 재밌더군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낙서를 하는지, 원~. 팬티만 입고 있어 좀 ‘야~’ 하지만 넘 재밌어서 아들 사진 올렸습니다용~^^.

사진은 이런 재미가 있나봅니다.

훗날, 아들이 나이 들어 이 사진 보면 사진 속 즐거운 추억이 되겠지요.

추억은 이렇듯 아름다운 것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육볶음 등 밑반찬 무한리필에 어머니 손맛
[고창 맛집] 보리밥과 우렁 강된장-옛날 쌈밥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푸짐했던 6천원 보리밥.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리밥은 그리움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된장 쌈도 그만이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큼했던 부추.

어디에서 '보리밥' 한상 거나하게 받아 볼까?

고창에는 선운사, 문수사, 읍성 등 고즈넉한 멋이 있습니다.
왠지 고창은 마음 속 고향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고창은 풍천장어가 유명하지요. 장어 말고 다른 메뉴가 없을까? 생각하다 고창 사람에게 물어물어 찾은 곳이 있습니다. 보리밥집입니다.

식당 <옛날 쌈밥>은 터미널 근처에 있던데 전라도 말로 맛이 죽이더군요. 매년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고창으로 가는 이유가 이 집의 보리밥 때문이라 해도 무방하리만치 땡기는 맛입니다.

 

 매력에 반했던 강된장. 아이들도 '별미'라며 잘 먹더라고요.

제육볶음, 부추 등 어머니 손맛의 밑반찬은 '무한리필'이었습니다.

 물론 밥도 무한리필이었지요. 그러다 배터져 죽는 줄 알았답니다.

보리밥과 강된장의 조화, 제육볶음 등 무한리필

<옛날 쌈밥>집에는 지인 가족과 함께 갔습니다.
그는 영광 불갑사 근처에서 보리밥집을 하다,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다른 사람에게 세를 내 준 상태였습니다.

밑반찬은 깍두기, 무채김치, 멸치볶음, 김, 시금치, 호박나물, 콩나물, 버섯무침, 오이짠지, 고사리, 제육볶음, 깻잎 등이었지요.

보리밥을 시켰는데 너무 푸짐하고 맛깔스러워 골고루 시켰습니다.
참고로 보리밥 6천원, 비빔밥 6천원, 우렁 쌈밥 8천원이었습니다.

소담스런 밑반찬과 제육볶음 등의 ‘무한리필’도 좋았지만 우렁 강된장이 '압권'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강된장에 반하게 되었는데 이 집은 특히 좋더군요.

보리밥도 대나무 소쿠리에 헝겊을 깔아 주걱까지 나왔습니다.
이걸 보니 옛날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그리운 밥 생각이 절로 나대요.
게다가 취향대로 먹게끔 흰밥과 보리밥이 섞어 있더군요.


아주 입맛 땡기는 맛이었습니다.  

 

어지간히 먹어, 살찔라~^^. 소용 없더군요.

비빔으로도 좋았지요.

아이들도 반한 된장국.


지인의 제안 “불갑사에서 보리밥집 할 생각 없냐?”

아이들도 평상시에는 보리밥을 마다하더니, 여기선 찍소리 않고 잘도 먹더군요.
특히 된장국이 구수하다며 환장하고 달려 들대요.
아이들 땜에 된장국 천신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린 것들이 벌써 몸에 좋은 건 알아가지고…. ㅋㅋ~.

강된장을 듬뿍 넣어 쌈을 먹는 아이들.

앗, 누가 언제 다 먹었지?

보리밥 맛을 본 지인이 몇 번이나 입맛을 다지며, 주인장에게 뜻하지 않은 제안을 하더군요.

“음식이 옛날 맛 그대로고, 우리 어머니 손맛과 비슷하다. 불갑사 앞에서 보리밥집 할 생각 없냐? 불갑사에서 장사하면 더 대박 날 것 같은데….”

이처럼 기막힌 맛이었습니다. 배 터지게 먹었습니다. 먹고 난 뒤, 여자들이

“이를 어째. 살 빼야 하는데 걱정이네. 먹자고 사는 것, 열심히 운동하면 되겠지!”

라던 말의 속뜻을 알겠더라고요.

맛집에 다니는 이유는 이런 재미지요. 어쨌거나 보리밥에는 ‘비움의 미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보리밥에는 '비움의 미함'이 숨어 있나 봅니다.

거나했던 보리밥 집의 추억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 사진 보는데 입에 침이 고이네요...
    시간이 새벽 두신데 배가 고파옵니다 ㅋㅋ

    2011.01.06 02:23 신고

매일 손으로 직접 만드는 메밀묵의 즐거움
[여수 맛집] 메밀 전문점-풍성 손 메밀묵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억의 메밀묵.

추억으로 먹는 음식도 맛깔스럽지요.

‘메밀~묵~~, 찹쌀~떠~억’

요기엔 아련한 추억이 있지요. 과거, 잠자리에 들기 전 골목에서 흔히 듣던 소리입니다. 이 소릴 들으면 자다가도 출출한 배를 부여잡고 입맛을 다졌지요. 아직도 이 추억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메밀에 대한 또 다른 추억이 있지요.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입니다. <메밀꽃 필 무렵>은 떠돌이 장돌뱅이 허생원의 삶과 사랑에 얽힌 이야기로 몰랐던 아들 동이를 만나게 됩니다.

 메밀묵 조밥.

 메밀 부추전.


 메밀 손칼국수.

매일 손으로 직접 만드는 ‘풍성 손 메밀묵집’

이번에는 추억 속의 먹거리입니다. ‘풍성 손 메밀묵집’은 육교에 가려 간판이 잘 보이지 않은 그런 곳인데요,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풍성 손 메밀묵집’은 여수시 소호동 소호초등학교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수에서 찾기 힘든 메밀묵집이란 간판에 끌려서 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매일 손으로 직접 메밀묵을 만든다는 점이 마음에 들더군요.

잠시 메밀의 효능을 살펴볼까요? 메밀은 뇌졸증, 동맥경화, 고혈압 등 혈관 질환 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이는 비타민 P라 ‘루틴’이 풍부하기 때문이랍니다. 메밀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관노화를 막는다더군요.

상호만 보고 들어갔는데 작은 실내 밖으로 또 다른 공간이 있더군요. 메밀을 운치 있게 즐기려면 밖이 훨씬 좋더군요.

 메밀묵집 뒷편 공간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메밀전문점.

 메뉴.


 메밀묵 조밥.

깔끔하고 담백한 맛, 메밀~묵~~

메뉴판을 봤습니다. 메밀 전문집답게 메밀로 꽉 찼더군요. 메밀묵 조밥, 냉묵채, 메밀 해장국, 메밀묵골패, 메밀 손칼국수, 메밀묵 비빔밥, 메밀 부추전, 메밀묵 무침. 이렇게 메밀요리가 많은 줄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메밀묵 조밥과 메밀 부추전, 메밀 손칼국수를 시켰습니다. 다른 메뉴를 하나 더 시키려고 했더니 둘이라 배부르다며 그만 시키라 하대요.

메밀묵 조밥은 이색 먹거리라 입맛 당겼습니다. 메밀 부추전은 메밀에 부추, 새송이 버섯, 양파, 고추 등이 들어가더군요. 메밀 손칼국수 육수는 5가지 곡물로 맛을 낸 웰빙 건강식이라더군요.

열무김치, 돌산갓김치, 무김치 등이 나오는 밑반찬도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색다른 맛집을 찾는 것도 잃은 입맛을 찾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메밀 부추전.

 메밀 손칼국수.

 메밀묵 조밥.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막걸리 아닌 '맥걸리'와 만난 추억의 요리
<군산 맛집> 농민이 운영하는 옹고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밥도둑 꽃게장.

여행의 한 맛은 당근 먹거리죠. 입안을 어지럽히면서 배부름을 선사하는 먹거리는 여행의 포만감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지난 화요일, 군산 여행에서 꽃게장과 추억의 도시락을 만났습니다. 군산은 먹거리의 고장답게 침샘을 자극하더군요.

<옹고집>은 농민들이 함께 어울려 만든 음식점 및 우리 음식 만들기 체험장입니다. 학교를 위탁받은 이곳은 된장, 고추장 등 각종 양념들과 함께 추억의 요리들을 선보이더군요.

이곳은 주말이면 6~700여명이 찾는다더군요. 주인장은 “간혹 서비스가 못 따라 욕하시는 분도 있지만 이해해 달라”며 선처를 부탁하더라고요. 어쨌거나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운동장 한편으로 진열된 항아리도 옛 정취를 자극하더군요. 밥도둑 꽃게장과 어울린 추억의 도시락을 살펴볼까요?


 농민들이 학교를 빌려 옹고집을 차렸더군요.

추억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꽃게장과 쌈밥.  

 게딱지가 침샘을 자극하더군요.

쌈에는 요 호박잎이 빠질 수 없지요.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추억의 도시락입니다.

 쌈에 먹는 강된장이 특히 기억납니다.

 이것이 아직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군산에서 보리맥걸리를 만들었더군요. 막걸리가 아닌 맥걸리를 뺄 순 없겠죠?

호박잎 쌈 맛 다들 아시죠?

게 딱지에 비벼 먹는 요 맛, 캬~^^


항아리마저 추억을 자극하더군요.

 요 꽃게장 언제 또 먹을 수 있으려나~^^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여보, 알포 가져왔네. 알포 먹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쥐포와 알포(좌)

심심할 때 먹는 쥐치의 추억이 많지요.

어릴 적, 쥐치 가공공장이 즐비했던 곳을 지나면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지천으로 널렸던 쥐치를 포를 떠 상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냄새가 묻어서였습니다.
내수보다 일본 수출용이 대부분이었지요.


쥐치로 만든 알포(좌)와 쥐포.

이렇게 구입해야 싸게 먹힙니다.

 쥐치는 심심풀이에 딱이지요.

그랬던 쥐치가 이젠 보기 어렵습니다.

연근해에서 쥐치 씨가 말라 구경하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요즘에는 베트남 등 외국에서 원료를 수입해 쥐포와 알포로 만드는 실정입니다.
쥐포는 얇게 포를 뜬 것이고, 알포는 두껍게 포를 붙인 것입니다.


아, 맛있겠다! 쥐포.

맥주랑도 어울리지요.

손으로 찢어 먹어야 제맛입니다.

쥐포와 알포는 맥주 집 등에서 안주거리로 겨우 봅니다.
이 때, 안주가 남으면 알포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와 아내에게 내밉니다.

“여보, 알포 가져왔네. 알포 먹소.”

아내는 알포 이야기가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지요.

이렇듯 다들 쥐치와 얽힌 추억 많이 있을 겁니다.
야구장, 영화관 등 야외에서 많이 사 드셨을 연애의 추억도 정겨울 것입니다.
이런 추억을 곱씹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알포는 깊은 맛이 있습니다.

양념을 해 상품으로 내니 맛이 좋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뭐라 고라, 진짜로 ‘식은 죽 먹기’라고라~
삶은 지난 세월 회상하며 힘을 얻나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생이 식은 죽 먹기라면 어떨까?

“반찬도 없는데 뭘 먹지?”

여자들은 고민이 많나 보다. 아내라고 예외는 아니다. 고민하던 아내는 하루 전날 팥을 꺼내 물에 불리면서 선전포고를 했었다.

“내일 메뉴는 죽이다.”

식구들은 꼼짝없이 죽을 먹어야 했다. 사실 아이들과 난 죽이 별로다. 그런데도 아내는 죽 쑤기를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수제비나 국수, 칼국수, 콩국수, 냉면 등 면발도 곧잘 먹는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줄그장창 면발을 먹었다. 자정이 넘어서도 국수집에 갔었다. 참 많이도 찾았다. 그러고 보니, ‘아~ 이런 때가 있었나?’ 싶게 신혼 시절이 지났다.


“내가 저것들을 뭘 먹고 낳았을까, 그럴까?”

“여보, 뱃속 아이가 면발이 땡긴다는데 어떡할까?”

임신한 여인이 당긴다는데 어떤 남자가 마다할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알았어!” 했었다. 아내는 면발을 먹으면서 그랬었다.

“아이들이 크면 내가 저것들을 뭘 먹고 낳았을까, 그럴까?”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예감은 적중했다. 뭘 먹고 낳았을까? 물음 뒤엔 가차 없이 “참~, 면을 먹어 그렇지.”라는 대답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서로 보며 웃었다.

임신 당시, 아이들이 어서 태어나길 바랐는데 지금은 초등학교 5, 6학년이다. 징그러운 세월이다.


아내 임신 때 요 국수도 줄기차게 먹었었다!

삶은 지나 간 세월을 회상하며 또 힘을 얻나보다!

“당신, 식은 죽 먹을 거죠?”

두 말하면 잔소리. 사실 난, 따끈따끈한 죽보다 식은 죽을 좋아한다.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팥죽을 만들어 먹던 추억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먹었던 식은 죽은 아직도 달달한 추억이다. 아내의 독백이 내 추억을 깬다.

“세상사가 다 누워서 식은 죽 먹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 이런 바람, 순간순간 든다. 아내는 또 뭐가 고달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고생시키지 않겠다”던 결혼 전 사랑의 맹세는 다 어디로 갔을꼬? 세상사가 다 그런 게지, 뭐~.

삶은 이렇듯 지나 간 세월을 회상하며 또 힘을 얻나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다보면 뜨거운 죽도 식은 죽도 먹게 되지요~
    좋은 아침입니다.

    2010.08.02 06:36 신고

연애편지 어떻게 처리할까, 의견교환 필요
생각하면 ‘연애편지 왜 버렸을까?’ 아쉬워

결혼 전, 사귀었던 과거 연인과 나눴던 ‘연애편지를 버려야 할까?’ ‘간직해야 할까?’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저도 연애편지를 결혼 전에 버렸습니다. 하지만 결혼 14년이 된 지금에는 꼭 버릴 필요까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버려야 했을까? 이유를 들자면 막연히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배우자에 대한 예의라고 여겼으니까. 이게 맞는 것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애편지 어떻게 처리할까, 의견교환 필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연애편지 언제 버렸는가?”
“결혼 후 임신하고. 살다보니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버렸죠.”

결혼 전에 연애편지를 버리지 못한 건 “이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해도 좋을까?”란 생각에 집중하다 보니, 연애편지에 대한 생각을 잊은 탓도 있습니다. 또 굳이 버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그럴 수 있습니다. 

만일 아내가 제게 연애편지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물었다면 의견 교환이 충분히 한 후 거기에 맞는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해답은 ‘왜 버려’였겠지만.

이 경우 연애편지가 간혹 부부싸움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양해된 상태라면 상대방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겠지 싶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연애편지 왜 버렸을까?’ 아쉬움 남아

“당신은 연애편지를 왜 버린 거야?”
“그냥 버려야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

이렇듯 대개 뚜렷한 생각 없이 예의상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의 사람은 정리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결혼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과거 연애편지도 정리되는 게지요.

“자기 삶을, 당신의 앳된 청춘을 몽땅 버렸네. 그걸 왜 버렸어?”
“그러게 말이야. 당신 편지만 남기고 죄다 버렸잖아. 지금 생각하면 아까워 죽겠어. 내가 왜 버렸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연애편지를 버렸을까?’아쉬움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머릿속 기억이 추억으로 남은 이상 버리고 버리지 않고는 별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역시 인생은 긴 호흡으로 살아야 제 맛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니까 말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isblog.joins.com/jk7111 BlogIcon 둔필승총   수정/삭제   댓글쓰기

    버렸으니까 그런 아쉬움이 남는 거 아닐까요?
    언제 그 불씨가 대형화재가 될지....ㅎㄷㄷ
    그냥 버리고 아쉬움으로 간직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 소심장이...^^;;;

    2010.07.09 09:39 신고
  2. Favicon of http://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추억을 먹고 사는 건 분명해요.

    2010.07.09 10:55 신고
  3. Favicon of http://yiybfafa.tistory.com BlogIcon 해피아름드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흠~~전 첫사랑이랑 결혼했다고 마구마구 우기고 있습니다..ㅋㅋ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2010.07.09 18:16 신고

“아빠, 친구가 문 밖에서 기다린단 말에요.”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아빠, 밥 그만 먹고 학교 갈게요.”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공부가 잘돼. 다 먹고 가라.”

밥 먹다 말고 학교 간다는 딸아이를 돌려세웠습니다. 그렇잖아도 키가 작아 걱정인데, 아침을 대충 먹고 간다니 말이 될 법한 소립니까.

“아빠, 친구가 문 밖에서 기다린단 말에요.”
“뭐, 밖에 친구가 기다린다고?”

“예.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요.”
“그럼, 그만 먹고 학교 가라.”

인기척도 없었는데 며칠 간 기다렸나 봅니다. 요즘 세상에도 문밖에서 친구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이 가는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재잘거리며 신나게 가더군요. 저희 학교 다닐 때가 떠오르더군요.

그때에는 담 너머로 “○○야, 빨리 나와. 학교 늦겠다.”고 소릴 지르곤 했었지요.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함께 모여 줄 맞춰 학교에 갔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다보니 이런 개념이 사라졌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친구가 그렇게 좋은지 만나자마자 재잘거리며 학교에 갑니다.

“언제 나올 줄 모르는 친구 기다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저녁,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밖에서 마냥 기다리는 친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네 친구는 학교에서 만날 텐데 집에까지 와서 왜 기다린다니?”
“제가 인기가 많잖아요. 제가 좋은가 봐요.”

인기가 많다니 싫진 않더군요. 하지만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했습니다.

“내일부터 친구가 기다리면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해라. 너도 친구 집에 가서 기다린 적 있어?”
“예. 딱 한 번. 언제 나올 줄 모르는 친구 기다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딸 친구의 부모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간 자녀가 학교는 안가고 다른 집에 가서 친구 기다리는 줄 꿈에도 생각 못할 것입니다. 역지사지 아니겠어요. 딸아이에게 뭔가 교훈을 줘야 했습니다.

“친구가 집에 와서 기다리면 미안한 생각 안 들어?”
“들죠. 학교에서 만나자고 해도 자기가 좋아서 그러는 걸 전들 어떡해요.”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 학교 같이 가기로 약속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빨리 일어날 마음은 없어?”
“있어요. 그런데 빨리 일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일찍 일어나려면 밤에 빨리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오는 걸 어떡해요. 내일부턴 빨리 일어날게요.”

다짐을 순순히 받았습니다. 약속대로 빨리 일어나는지 지켜 볼 일입니다. 그래도 아이에게 “학교 가자” 기다리던 친구의 추억이 생기는 것 같아 좋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thinkdenny.tistory.com BlogIcon 신비한 데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기많은 따님...
    부럽습니다 ㅎㅎ

    2010.07.09 04:07 신고

“신랑과 동백꽃을 입에 물며 장난쳤는데…”
여심화 동백의 변신에서 아내를 생각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3년 만에 찾은 오동도에 동백꽃이 활짝 피어 반갑다. 마치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아 더욱 즐겁다.”

26년 전 여수에서 3년 동안 살다 남편 직장 관계로 이사했던 조성덕(50) 씨가 23년 만에 다시 찾은 오동도에서 동백꽃을 본 소감입니다. 그는 당시 3식구이던 가족이 4 식구로 늘어나면서 여수를 떠났다고 합니다.

조 씨는 “여수에 머무르던 당시에는 동백나무가 작게 보였는데, 지금은 아름드리 동백이 됐다.”며 “오동도에 핀 동백꽃을 다시 보니 선홍빛 너무 예쁘다.”고 감탄입니다. 오동도 동백이 여심을 자극하나 봅니다.

또 <맛짱의 즐거운 요리시간>으로 유명한 블로거 맛짱은 “18년 전 남편과 오동도를 방문한 후 임신 사실을 알았다.”며 “지금도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은 나이를 먹었다.”고 추억을 회상합니다. 윤 씨는 그러면서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오동도 동백꽃을 보니 신랑과 동백꽃을 입에 물며 장난을 쳤는데, 동백을 입술에 대면 꼭 립스틱을 바른 것 같아 서로를 보고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처럼 여수 오동도 동백은 여심을 사로잡는 ‘여심화(女心花)의 지존’입니다. 지난 26일 찾은 여수 오동도에는 동백이 한창 아름다움을 품어내고 있었습니다.

여심화 동백의 변신에서 아내를 생각하다!

오동도 등대 앞에는 통째 땅에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 장식을 했더군요. 삶의 깊이가 있어야 꽃을 보는 눈이 생기는 걸까? 분당에서 오동도 동백꽃을 보러 왔다는 박경숙(49) 씨 “아~!” 하고 외마디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그 옆에서 동백꽃으로 만든 차와 사탕 등을 팔고 있었군요. 주인장 신미주 씨에게 동백 차 만드는 법을 물었습니다.

“동백 차는 꽃잎을 모아 6개월간 설탕에 재어 두면 된다. 그러면 꽃의 향을 맡을 때문 없던 향기가 우러나 맛이 향이 좋다.”

동백차를 한 모금 마셨더니 어느 차 못지않게 목에 착 달라붙더군요. 여심을 품은 동백의 변신이 싫지 않고 반갑더군요. 동백 차와 동백꽃 봉우리가 피어나, 지는 걸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청초롬한 향을 지닌 여인이 아이 키우랴, 남편 수발하느라 나이 들면서 변하는 아내. 중년 여인의 변신이 동백의 아름다운 모습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부터 아름다운 동백으로 피어날 모습을 그리며 아내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더군요. 이제야 철이드는 걸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minjine.kr/story BlogIcon 뽀글   수정/삭제   댓글쓰기

    붉은 동백꽃이 너무 이쁘네요^^ 동백꽃이 길을 만들어주네요^^

    2010.03.29 13:09 신고
  2. Favicon of http://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너무 멋집니다.ㅎㅎ

    2010.03.29 14:22 신고
  3. Favicon of http://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수정/삭제   댓글쓰기

    익을 다음 뷰로 발행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동백꽃 낙화로 만든 소품이 보기 좋습니다.

    2010.03.29 14:36 신고
  4. Favicon of http://egrim.tistory.com BlogIcon 이그림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확에 붉은동백이 넘 이뻐요
    부인께는 늘 한결같이 사랑으로.. ^^

    2010.03.29 17:12 신고
  5. Favicon of http://leedam.tistory.com BlogIcon leedam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낙화유수로군요 ^^

    2010.03.29 23:39 신고

“젊은 날 군대 생활, 잊기에는 아까운 추억”
[인터뷰] 악랄가츠 - 책 출판과 독자 반응


‘내 글을 책으로 엮을 수 있을까?’
‘내 글이 책으로 나온다면 어떤 반응일까?’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희망’일 것입니다. 막연히 시작한 블로그를 통한 새로운 희망도 남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는 꿈이라 여깁니다.

이런 꿈을 이룬 이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블로그에 연재했던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에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를 펴낸 저자 황현 씨에게 블로그 연재와 책 출판 뒷이야기, 독자 반응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블로거들이 희망을 갖기를 바라면서 황현 씨와 인터뷰 올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 저자 황현 씨.

“젊은 날 군대 생활, 잊기에는 아까운 추억”

- 군대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한 이유가 있나요?
“가장 큰 이유는 잊혀져가는 군 시절 추억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젊은 날 2년여 시간을 전우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보냈습니다. 때로는 죽을 만큼 힘들었고, 외로웠지만 그냥 기억 저편으로 잊기에는 너무 아까운 추억이잖아요. 그렇게 한 편 두 편 작성해나가다 보니, 많은 분들에게 관심과 공감을 받았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 같이 생활했던 부대원 중 가장 생각나는 이는 누구죠?
“본문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윤 이병이랍니다. 저랑은 3개월 차, 후임이었는데 함께 생활하면서 고참이란 이유로 맨날 시키고, 괴롭힌 거 같습니다. 그래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잘 따라주어 무척 고마웠습니다. 가끔은 텐트 속에서 그와 먹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나가서 꼭 먹자고 했던 지난 겨울 밤이 생각나곤 하네요.”

- 책으로 펴내기까지 에피소드가 많을 텐데 소개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블로그에 올린 글을 정식으로 출판하려고 하니, 여러 제약이 많더라고요. 특히 사진 같은 경우에는 저작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껏 이용할 수 없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지금 제 블로그를 대표하는 프로필 사진입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발견하게 되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용해왔습니다. 그때만 하여도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았고, 출처를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사용했데, 어느 날 비밀댓글이 달려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제 글을 보시는 구독자셨는데, 프로필 사진 원제작자이셨습니다. 과제물로 그린 그림인데, 인터넷에 유포되었고, 우연찮게 제가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다행히 흔쾌히 사용하라고 허락해주셔서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프로필 사진 원작자도 흔쾌히 사용을 허락하고...

독자 평, “아쉽지만 블로그와 또 다른 느낌”

- 책으로 내면서 원하는 바가 있었나요?
“처음 출판 제의 받았을 때만 하여도, 자신이 없었고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책으로 나오게 된다면, 인터넷을 쉽게 접할 수 없는 군인들이 보다 쉽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얼마 전, 동생이 근무하는 부대에 책을 보냈는데, 동생 후임이 제 블로그에 방문하여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며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참 뿌듯했습니다.”

- 쓰지 못한 이야기도 있을 텐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블로그나 책에서는 유쾌하고 발랄한 에피소드 위주로 작성하였습니다. 평소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제가 구태여 안 좋은 추억까지 작성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안 좋은 추억보다는 좋은 추억이 훨씬 많았기에, 기왕이면 읽으시는 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 책을 읽은 독자들 반응은 어땠어요?
“다양했습니다. 기존 블로그 연재 글을 보신 독자 분들은, ‘블로그에서의 기발한 사진과 말투를 많이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책만의 또 다른 느낌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책을 구입하신 주변인들도 호기심 삼아 읽어보신다고 하는데, 한번 잡으면 쉽사리 놓지 않으신다고 하시네요. 다행히 재미있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군부대 반응이 궁금하군요?
“제가 민간인이라 군부대의 반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끔 댓글을 보면, 현역 간부들이 많이 보시더라고요.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

휴학생으로 값진 경험,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할 터

- 가족과 지인들 반응은 어땠나요?
“항상 말썽만 부리던 아들이 책을 낸다고 하니 무척 기뻐해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만화책과 무협지만 끼고 살아서 많이 혼내시기도 하였는데,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신기해하셨습니다. 특히, 동생은 현재 육군에서 군복무 중이라서 그런지 더욱 좋아하였습니다. 저를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믿기 어렵다며 웃으셨습니다. 하긴 저 또한, 지금도 많이 어색하고 부끄럽습니다.”

- 앞으로 계획을 들려줄 수 있나요?
“올 한 해 블로그를 운영하며 참 많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사회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제가 책을 발간하였고, TV, 라디오에 출연, 다양한 행사에 초청받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은 휴학생 신분이라 다시 학업에 매진하여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사진의 매력에도 푹 빠져있답니다. 앞으로 어디서 무슨 일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욕심을 내보자면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물론 블로그도 꾸준히 운영해나갈 거예요”

- 하고 싶은 말은?
“<악랄가츠의 군대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항상 저를 응원해주신 구독자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하였습니다. 뛰어난 글재주도 없는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던 저를 과분한 사랑과 관심으로 대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likewind.net BlogIcon 바람처럼~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가츠님 인터뷰를 여기서 보게될 줄이야 ^^;
    완전 인기인이네요~ ㅎㅎㅎ

    2009.12.13 03:19 신고

오랜만에 만난 정겹고 훈훈한 드라마
“아버지? 나에게 당신은….”

[아버지의 자화상 42] 추억 속의 아버지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요즘, 된장 같은 추억 속의 드라마를 본 듯하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가 그러했다.

부모 노릇, 자식 노릇 하기 쉽지 않다.

“아버지? 나에게 당신은….”

내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가에 따라 주제의 경중이 달라지겠지만, 무겁고도 가벼운 주제기도 하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웃고 또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정감과 훈훈한 추억이 샘솟는 드라마였다.

“아부지는 바람처럼 물처럼 떠도는 사람인기라!”

21일,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첫 방송에서 경숙이가 집 식구 건사를 외면하고, 기생집에서 노는 아버지에게 느끼는 아버지는 이랬다.

“아부지는 바람처럼 물처럼 떠도는 사람인기라.”
“내는 지밖에 모르는 아부지 필요 없어예.”

유년의 초상이었다. 여기에는 6ㆍ25와 1950년대만큼 모질고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우리네 아버지ㆍ어머니,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유년에 대한 추억은 찐빵과 씨름, 나물 캐기에 녹아나 있었다.

모질게도 가난했던 시절, 나물 캐며 모은 돈으로 우람한 체격의 친구에게 찐빵을 먹여가며, 씨름시합에서 쌀 한가마니를 타려는 배부름에 대한 갈망. 찐빵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꼴딱꼴딱 침을 넘기는 풍경.

배터지게 혼자 찐빵을 독차지한 후 나선 씨름판에서 결국 똥을 싼 친구. 이로 인해 씨름을 망친 아이들의 분통과 놀림. 부유한 친구의 과자 유혹과 거드름에 맛서는 주먹질과 매타작. 부잣집에서 허기진 배 채우기를 희망했지만 어그러진 꿈.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소중한 물품들을 팔아야 했던 어머니. 과거에 대한 향수였다.

해학적 드라마에서 그릴 아버지를 기대하다

드라마 제작진이 밝혔듯 “흥겨우면서도 눈물 나고, 눈물 나면서도 웃음 짓게 하는 뽕짝 같은 드라마”였다. 그래서 “모든 아픔을 아우르는 혈육의 정과 사랑을 모두가 되새길 수 있는”것처럼 여겨졌다.

아이들에게 “너흰 저런 시절을 모르지?”하며 애타게(?) 그 시절을 설명하기도 했다. 녀석들도 삐식삐식 웃음을 질질 흘렸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아버지는 끝까지 무능한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고 말았다. 요즘 아버지들이 겪는 무능(?)처럼. 그것은 터진 6ㆍ25 전쟁이 나자 가족을 버리고 혼자 피난 가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전쟁에서 남자는 죽지만 여자들은 안 죽는다. 피난은 다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나 혼자만 가는기라.”

이런 해학적 아버지를 대하며 6ㆍ25에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세대의 고통을 그리기 됐다. 4부작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그릴 우리들의 아버지와 삶이 기대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하는 시간
[아버지의 자화상 38] 자장면과 짬뽕

“목욕탕 가자.”

아버지의 제의에 대한 아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반길 경우 아직 어리다는 반증이고, 보통이면 조금 큰 상황이며, 거부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라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아들이 성장 정도와 상관없이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아버지의 눈높이가 자식에게 맞춰져 이상적인 부모 교육을 실현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허나 그렇지 않다면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도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라 아직 판단할 처지는 아니지만 스스럼없는 부자지간이 되려고 노력 중인 아버지일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게 있습니다.

“아빠, 우리 목욕 가요.”
“그러자.”

이런 상황이라 아직까진 긍정적 요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긍정 요소가 계속 이어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아이들을 키운 아버지들께서는 “다 키워봐야 안다. 더 키워봐라.”하지만 가만히 앉아 크기만을 기다릴 순 없겠지요.

목욕 전 후 부자지간 교감 이루는 법

아버지들의 노력 중 하나는 목욕 전 후에 이뤄지는 교감을 들 수 있습니다. 그 교감은 서로의 때를 밀어주는 육체적 교감과 음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이 방법을 간혹 이용하고 합니다.

“아들. 목욕하고 뭘 먹을까? 먹고 목욕탕 갈까?”
“아빠, 배고프니 먹고 가요.”

“어디로 갈까?”
“중국집으로 가요.”

목욕탕 가는 길에 중화요리 집에 먼저 들렀습니다. 여기에도 부자지간 대화거리는 있습니다.

“우리 뭘 먹지?”
“자장면. 짬뽕. 아빠, 우리 하나씩 시켜요. 나눠 먹게요.”


자장면이 주는 보너스 “아빠, 짱!”

자장면을 오른쪽으로 쓱쓱 비비고, 왼쪽으로 쓱쓱 비비던 녀석이 드디어 한 젓가락 들어 올려 입에 넣습니다. 짬뽕도 나눠주며 맛있게 먹는 자식 보는 아버지 입장에선 흐뭇하면서도 다소 걱정되기도 하지요.

“야, 안 뺐어 먹을 테니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얹힐라.”

다 먹은 후 입에 묻은 춘장을 보며 “입 좀 봐라, 잔뜩 묻었네?” 한 마디에도 녀석 즐거운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닦아내지요. 여기에서 추가할 말이 있습니다. 덤으로 보너스가 떨어지는 말입니다.

“자장면이 그렇게 맛있어?”
“예. 아빠 짱!”

이렇듯 자장면에도 부자지간 교감 순간이 속속 들어 있지요. 저도 어릴 적 목욕 후 아버지와 먹었던 자장면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자장면에 스민 부자지간의 추억 아니겠어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자신에게 썼던 소망엽서, X-마스에 받다
과거와의 만남, 추억과 반성이 교차하다!



연초에 스스로에게 썼던 엽서, 연말에 받아보셨나요?

생각지도 않았는데 막상 받아들고 보니 정말 쑥스럽더군요. 한 해 반성도 되고요. 그때는 별 생각 없이 엽서를 썼었는데…. 아이들은 자신이 자신에게 썼던 우편물을 받아들고 감격스러워 하더군요.

“어, 이게 왔네. 그냥 날아갈 것 같다.”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받으니 새삼스럽네요. 벌써 한해가 가다니….”

지난 2월 23일, 장흥 정남진 천문과학관에 진행하는 ‘저 하늘, 별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매월 한 차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전국에서 10가정이 참여 하였습니다. 당시 썼던 내용들입니다.

한 해, 삶에 대한 반성과 만족이 교차하고…

#1. 아들 글

안녕, 태빈아!

나는 너야.
나는 2008년에 시험 올백을 맞으면 좋겠거든.
그리고 우리 가족은 건강하고 튼튼하면 좋겠어.

<한 해 반성>
생각했던 것 만큼 공부를 못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글씨를 바르게 쓰자.

# 2. 딸 글

유빈아, 안녕?

난 너의 또 하나의 유빈이란다.
넌 2007년 동안 엉망으로 지냈어.
난 실망스러워. 2008년은 새롭게 지내자.

1. 공부를 열심히 하자.
2. 바른 말을 쓰자.

OK? 꼭 지키고 실천하자!
임유빈! 아자! 아자! 파이팅!

<한 해 반성>
올 한 해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주 너무너무 잘했어요. OK!


올 한 해를 점수 매기자면 60점 정도?

# 3. 내 글

항상 사랑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모든 이들에게 베풀 수 있는 배려의 마음 갖도록 하여 주소서.
부모님의 건강을 옆에서 보살피며,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사랑을 충분히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더불어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한 해 반성>
배려의 마음과 부모님을 살피는 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과 사랑을 나눌 기회는 그런대로 만족하고,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지는 장담 못함. 점수로 매기자면 60점 정도랄까, 그러네요.

내년에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마음은 벌써 2009년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12월 31일 밤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를 가족과 함께 써볼까 합니다.

“내년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또 뭘 하고 먹고 살까? 걱정이 ‘태산’
연탄불의 추억 “워매~, 살살 녹네!”

“아~이고, 추워.”

추운 겨울, 밖에서 달달 떨고 들어와 이불 밑에 손을 쑤~욱 넣으면 “워매~, 살살 녹네 녹아!”란 소리가 절로 터졌죠. 그러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바닥에 몸을 눕히면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겸연쩍게 일어나며 내뱉던 말,

“얼마나 뜨거운지 살이 데겠네, 데. 허리 잘 지졌다!”

설설 끓던 연탄방의 추억입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난생 처음 연탄 공장을 찾았습니다. 한창일 때, 여수에는 5개 공장이 성업 중이었습니다. 이젠 달랑 하나 남았습니다. 폐업한 다른 연탄공장의 녹슨 간판이 지난 세월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연탄불의 추억.

물 좋았던 연탄공장, 간판에도 녹이 슬어 있습니다.


“천불이 나 죽겠소. 다음 주에 공장 문 닫소!”

쌓인 무연탄. 쉴 새 없이 무연탄 가루를 옮기는 중장비 소리가 납니다. 사무실 앞 한쪽에 연탄들이 무리지어 마중 나왔습니다. 연탄집게도 꽂아져 있습니다. 옛날 연탄 한 장 집어 올리던 집게 생각이 납니다.

잠시 추억을 더듬는 사이, 인기척이 납니다. 굳은 표정으로 “사진은 쩌리 가보쇼. 저그가 공장잉께” 한 마디 남기고 사라집니다. 다른 이가 옵니다. “거 사진 찍지 마쇼.” 사나운(?) 인심입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 있으나 마나, 낼 모래 공장 문 닫게 생겼는데 기분이 좋겠소?”

가만 있자~, 짱구를 돌립니다. 경제가 어려워 겨울 난방용 기름 대신 연탄으로 많이 바뀌었다는데 무슨 일일까?

“천불이 나 죽겠소. 다음 주에 공장 문 닫소. 그러니 뭐가 반갑겠소. 다들 심기가 불편해요.”

작업 중인 중장비

연탄과 집게 오랜만에 대합니다.



“억지로 폐업해라 하니, 폐업할 수밖에”

‘폐업…’. 사나운 인심 뒤에는 머리를 곧추세운 독사 대가리처럼 폐업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서민들의 얼었던 가슴을 따뜻이 녹여주던 연탄공장이 싸늘히 식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경영이 어려워 다른 공장이 쓰러져 가도 겨우겨우 살아남았습니다. 50년이 넘도록 연탄공장을 지켜왔습니다. 이제는 삶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봅니다.

"폐업하면 일하는 사람들은요?"
“일하는 사람들? 이제 직장 잃은 실업자 신세지 뭐. 또 뭘 하고 먹고 살까, 걱정이 태산인데 무슨 신이 나겠소. 다들 한숨에 인상만 쓰고 있지.”

"무슨 일로 폐업하죠?"
“억지로 폐업해라 하니 폐업할 수밖에. 억지로 폐업시켜 놓고, 이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여기가 박람회 예정지라니 어쩌겠소?”

아뿔사! 오동도가 바로 눈앞에 있는, 연탄공장이 자리한 여수시 덕충동 일대는 2012여수세계박람회 예정지입니다. 국가가 진행하는 국책사업입니다. 국책사업에서 개인은 하찮은 무연탄 가루일 뿐입니다.

오동도 앞에서 열릴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위해 연탄공장 자리에는 '바다의 공간'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토지 감정과 협의가 끝나지 않아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답답한 마음이 더 쌓인 것이겠죠. 이렇게 문명 개발의 뒤안길과 마주칩니다.

자기 몸을 불태워 따스함을 전해주던 연탄. 다 탄 후, 쓸쓸히 한 덩이 연탄재 되어 사람 발길에 채이고 놀이감이 되듯, 연탄공장 노동자들은 또 어떤 일거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질지 걱정이 앞섭니다. ‘연탄재=노동자?’

애꿎게 연탄재가 자꾸 밟힙니다.

연탄공장 내부

버려진 연탄재 신세로 전락할 연탄공장 노동자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을까?
장어 맛을 모르는 사람들의 비애

연탄불 장어구이.


“먹거리는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 눈으로도 먹고, 코로도 먹고, 귀로도 먹는다. 연탄불에 구워 먹을 때는 추억으로 먹는 거다.”

지인의 말입니다.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같지만 맞는 말입니다. 7, 80년대 성장한 사람들에게 연탄의 추억이 없을 리 만무하죠. 그래, 연탄의 경우 “추억으로 먹는다.”는 소리가 ‘딱’인 것 같습니다.

추억은 표정을 즐겁게 하나 봅니다.

연탄불에 장어와 추억이 꼼지락꼼지락 익어가고…

연탄불에 장어가 지글지글, 노릇노릇 익어갑니다. 아니죠. 꼼지락꼼지락 익어갑니다. 보고만 있어도 군침이 돕니다. 그러나 저는 안타깝게 장어를 먹지 못합니다. 알레르기 때문입니다. 하여, 장어 맛에 대한 이야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추억으로 먹는 연탄불에 만족해야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연탄불에 익어가는 장어를 두고 지인은 어제 밤 아이들과 이야기 했다던 연탄의 추억을 쏟아냅니다.

“진경아! 상겸아! 너희들 연탄불 알어? 물었더니 어려선지 모른다는 거야. 하기사 기름이나 가스보일러 때고 자란 놈들이니 어찌 연탄불을 알겠어? 우리들에게는 추억이 많지만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과거지. 하마터면 너 아빠 못 만날 뻔 했다 그랬지….”

추억은 얼굴에도 피어납니다.

“아빠가 어렸을 때에는 요즘 같이 기름이나 가스보일러가 아니라 연탄불을 때고 살았지. 어느 겨울, 하루는 따뜻한 방에서 자다가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어. 오줌이 마려워서. 옛날에는 화장실이 멀어 오줌 누는 요강을 마루에다 뒀거든. 그런데 오줌 누고 방으로 들어가다 그만 그 자리에 ‘픽’ 쓰러지고 만 거야.

왜 그랬겠어? 물으니 눈만 멀뚱멀뚱. 연탄가스 마신 줄도 모르고 자다가 일어나 오줌을 눈 거지. 오줌 누러 안 일어났으면 아빠는 그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야. 그럼, 너희들도 만나지 못했을 거고. 어떻게 살았냐 하면 김칫국물 마시고 살았지. 김칫국물이 연탄가스를 해독한데?”

장어구이.

연탄불의 추억은 아이들에게는 생소하다 합니다.

‘꿔다 논 보리자루’지만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집니다!

7, 80년대에 자란 이들은 연탄가스와 김칫국 이야기를 안 들어본 이가 없을 것입니다. 또 혹자는 직접 당했던 아찔한 추억도 있을 겁니다. 이게 벌써 과거의 추억으로 변해 있다니…. 세월과 문명의 변화가 정말이지 유수(流水) 같습니다.

워매~, 땀 흘리며 맛있게도 먹습니다. 장어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죠. 하지만 표정에 스며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맙니다. 가스 불에 꾸어 먹었으면 추억마저도 먹지 못하고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어야 했을 텐데….

연탄을 때며 살던 시절을 한 번 쯤 돌이키면 좋을 듯합니다. 연탄에는 따뜻한 배려가 많았었지요.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집니다.

그렇게 맛있을까?

연탄불에 익어 가는 장어 김치찌개도 뺄 수 없지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by 임현철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588)
알콩달콩 섬 이야기 (141)
아름다운 여수 즐기기 (112)
알콩달콩 세상 이야기 (423)
알콩달콩 여행 이야기 (162)
알콩달콩 가족 이야기 (476)
알콩달콩 문화 이야기 (205)
장편소설 연재 (68)

달력

«   2018/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838,525
  • 1,029 2,429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임현철 '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임현철. All rights reserved.

Textcube TNM Media
임현철'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