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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가족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476건

  1. 2013.07.31 썰렁한 모녀지간과 부자지간은 물렀거라~
  2. 2013.07.30 중3 딸 성적표에 대한 부모 반응
  3. 2013.07.29 결혼, 딸의 심경 변화와 아빠 생각
  4. 2013.07.26 버스 안에서 만난 딸과 주고받은 문자 소통, ‘큭’
  5. 2013.07.25 “청소하기 싫어. 우리가 청소하면 아빠는 뭐해?”
  6. 2013.07.23 ‘아빠, 그 말투 기분 나빠요’ 어찌 해야 할까?
  7. 2013.07.17 너 없이 못 살아 VS 너 때문에 못 살아, 왜?
  8. 2013.07.15 분필과 칠판 닦기의 재밌는 변신
  9. 2013.07.12 19세에 결혼한다는 아들, 그 대응책은?
  10. 2013.07.11 청소년기 자녀 둔 부모가 특히 가져야 할 자세
  11. 2013.07.10 아내의 깜짝 데이트 제안에 응했다가, ‘감동’ (1)
  12. 2013.07.09 아빠가 끓인 미역국, 아이들의 냉정한 맛 품평
  13. 2013.06.28 중학교 3 딸의 투정이 반가운 아빠와 문자
  14. 2013.06.27 아내의 애교, ‘끔찍’과 ‘깜찍’의 차이 3가지
  15. 2013.06.10 각시 없는 틈에 밥솥 태웠더니 하는 말
  16. 2013.06.03 결혼식 주례사가 비슷비슷한 숨은 이유
  17. 2013.05.31 재밌겠다, 아빠 저도 한 번 해 볼래요 ‘무채’ (1)
  18. 2013.05.22 달팽이들의 짝짓기
  19. 2013.05.16 길 가다 화장실이 엄청 급할 때 그 비책은?
  20. 2013.05.13 부모 안 챙기는 아이들 닦달했더니 결과가...
  21. 2013.05.08 어버이날, 전혀 챙기지 않는 아이들 보니
  22. 2013.05.07 앞당겨 치룬 ‘어버이 날’ 뜻밖의 아내 반응
  23. 2013.05.02 ‘잘 생겼다’ 자아도취에 빠진 아들, 문제는?
  24. 2013.04.29 핸드폰 문자 씹는 아이들, 왜? 누구 탓일까?
  25. 2013.04.26 씻기 싫어하던 아들이 변했다…아내 반응
  26. 2013.03.05 부부지간 장난 수위 어디까지 적당할까?
  27. 2013.02.22 결혼 15주년, ‘나랑 살아줘 고맙다’ 했더니…
  28. 2013.02.18 딸 바보, 딸의 애교 필살기에 녹다
  29. 2013.02.15 세배 돈 쓰기, 남자 VS 여자의 차이
  30. 2013.02.09 명절과 이발소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난 안할래.”...“왜에? 엄마도 그냥 즐겨!”

영암 도기박물관에서의 도자기 만들기 체험

 

 

 

도기빚기문화체험중입니다. 

영암도기박물관입니다. 

흙 만지는 느낌 짱입니다. 부드러움...

  

 

세상을 즐긴다는 건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들만의 행복일까?

 

“난 안할래. 그냥 보고 있을게.”
“왜에? 엄마도 그냥 즐겨!”

 

 

중학교 1학년인 딸 이민영 양과 엄마 주미애 씨의 대화입니다. 도자기 만들기 체험에서 뒤로 빼던 엄마는 딸의 권유에 못 이긴 척 만들기에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어느 새 “이 재밌는 걸 왜 안하려고 했지?”하며, 도기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와~, 아빠 잘 만드네~.”
“우리 아들이 더 잘 하는데….”

 

 

아버지와 아들. 왠지 서먹서먹한 사이입니다. 원인은 “게임 그만해라”, “공부 좀 해라”, “일찍 들어와라” 등 건조하고 부정적인 짤막한 문장에 익숙한 탓입니다. 게다가 가슴으로 나누는 말과 소통이 적기에 더욱 서먹합니다. 그런데 도자기를 만들며 격려하는 모습에 괜히 흐뭇합니다. 마치, ‘썰렁한 부자지간은 물렀거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전라남도교육청과 국립나주병원 아동청소년센터가 지난 26, 27일 1박2일 동안 진행한 ‘2013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마음 톡톡(Talk!) 힐링캠프’ 중 도기 빚기 문화체험 모습입니다. 도기 체험은 영암도기박물관의 도기배움마당 '달빛터'에서 있었습니다.

 

 

 엄마 옆에서 몰입하는 아들.

 이런 도자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이렇게 만드는 거예요! 

모녀지간 웃음꽃이 핍니다. 

나 잘하는 거지?

 

 

“엄마랑 같이 앉아서 도자기 만드니 너~무 조~오~타~~.”
“엄마도 우리 딸이랑 같이 도자기 만드니 너무 행복해. 사랑해!”

 

 

그동안 소원했던 모녀지간도 사랑이 돈독해집니다. 도자기를 빚으며 영암이 한국 전통문화 유산의 산실이란 걸 새롭게 인식했습니다. 흔히 도자기 강진이나 여주 등을 떠올리는데 영암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영암 구림마을에 도기박물관까지 들어선 걸 보면 대단한 자부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A.D 5세기 경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한 왕인박사와 통일신라신대 유명한 선승이었던 도선 국사가 태어난 곳이며, 우리나라 최초로 유약 바른 도기를 생산했다니 말 다했지요. 역시, 우리나라는 숨어 있는 유명지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도기 체험 할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늘 직접 체험하기보다 사진 찍기에 익숙한 탓입니다. 이번에는 아들과 같이 만들 용기를 냈습니다. 도자기 선생님의 설명 후, 흙이 주어졌습니다. 손에 느껴지는 촉감이 매우 부드러웠습니다. 어릴 적, 흙장난 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것도 잠시, 나무로 흙을 칼국수처럼 밀어 둥그렇게 완성할 도자기의 바닥을 만들었습니다. 이어 흙 칼로 바닥을 재단하고, 흙을 문질러 그 위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그리고 가마에 넣을 때 터지지 않도록 손으로 틈새를 문지르며 공간을 채웠습니다.

 

 

헤매던 아이들이 도자기 만들기에 빠르게 몰입했습니다. 평소의 산만함은 어느 새 사라지고 진중한 모습이었습니다. 새롭게 다가 온 아이들의 진중함이 엄마들과 아빠들을 미소 짓게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발견인 셈입니다.

 

 

 잘 만들고 있남?

 완전 진중합니다.

 아버지와 딸 몰입 중입니다.

 

“우리 아들, 뭐 만들어?”
“똥 모양 도자기.”

 

“아이디어 쥑이는데~.”
“그치. 아이디어 좋지?”

 

 

아빠의 인색했던 칭찬에 아들 녀석 얼굴에 화색이 확 돕니다. 격려와 칭찬이 아이들에겐 아주 유용한 자양분이란 걸 실감합니다. 하나 둘 형태가 만들어지고 작품이 완성되어 갑니다.

 

 

“뭘 만드신 거예요?”
“신발 화분입니다. 멋있죠?”

 

“잘 만들었네요. 만든 소감 어때요?”
“아주 최곱니다.”

 

 

정문교 씨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기분을 표시했습니다. 도기 만들기 체험은 소원했던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사이의 작은 얽힘까지 풀어주고 있었습니다. 함께하는 재미는 이런 거나 봅니다. 힐링은 이런 거...

 

 

 흙이 주는 느낌은 차분함입니다.

정문교 씨입니다. 

딸이 만든 도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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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성적표 건네는 우리 딸, 정말 대단해.”
진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딸 되길 묵묵히 지켜볼 뿐

 

 

 

 

 

아이들 성적이 뭐라고

부모는 자녀 성적에 일희일비합니다.

 

 

“딸 성적표 왔대.”

 

 

아내에게 말하면서 ‘빨리 왔네. 잘 나왔던가요?’라는 말을 기대했습니다.

근데, 아내의 반응이 시큰둥했습니다.

 

공부보다는 취미생활에 더 관심인 것을 아니까, 그러려니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인 딸 관심은 글 쓰고, 사진 찍고, 미니 영화 제작하기 등입니다.

또 미용, 축구, 그림, 의상 등 다양합니다. 공부는 거의 담쌓았습니다.

 

 

딸의 성적에 시큰둥했던 아내가 뒤늦게 궁금했는지 조심스레 묻더군요.

배 아파 기를 쓰고 낳은 엄마는 엄마인 거죠.

 

 

아내 : “잘 했던가요?”
남편 : “좋지도 않은 성적을 자랑이라고 ‘아빠 성적표 왔어요!’ 하고,

        자신있게 주대. 그 모습에 기대치가 생겼는데 딸 한 마디에 김샜지 뭐.”


아내 : “딸이 뭐라 그랬는데?”
남편 : “중간고사보다 더 떨어졌다고. 그런데도 당당하게 성적표 건네는

        우리 딸, 정말 대단해.”
아내 : “호호호호~. 그게 우리 딸 장점 아닌감? 넘치는 자신감.”

 

 

성적표를 보니, 가관이대요. 성적은 중간. ‘우수’도 있고, ‘가’도 있더군요.

다양한 평가에 웃음이 픽 나오더군요.

 

속으로는 부글부글. 이걸 성적이라고 받아와선 내놓는 꼴이라니…

성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고 관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나 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식 잘되길 바라는 부모는 부모인 거죠.

객관적인 시선에서 아이를 바라보면 좋은데 그건 이상일 뿐.

 

아내에게 딸 성적표를 건넸습니다.

 

 

남편 : “이런 성적 가지고 고등학교는 갈까?”
아내 : “가겠죠. 고등학교가 널리고 널렸는데. 문제는 대학 아니겠어요.”

 

 

백 번 천 번 맞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기본적으로 "학교는 고등학교까지만 보내고, 될 성 부른 녀석만 대학 보낸다." 그것도 "학비는 자기가 벌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근데, 부모 마음 그게 아니나 봅니다.

아이들이 점점 커 가니, 이왕이면 대학까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기대치를 더 낮추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삶은 자기 몫이니까.

 

 

“여보, 딸에게 ‘인(IN) 서울은 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했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내가 기 막혀서. 그럼, 서울에 있는 전문대 가면 되지 뭐. 그러더라고.”

 

 

딸, 배짱 하나는 국가 원수급입니다.

 

전문대 가는데 서울까지 보낼 부모 어디 있겠어요.

보내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설레발이라니.

지방 전문대도 보낼까, 말까인데….

 

 

그래도 딸이 기특한 게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다는 점입니다.

이마저 없었으면 미치고 팔딱 뛰었을 겁니다.

 

그래도 저희 부부 걱정 없습니다. 맑고 건강한 생각을 가졌으니까.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딸이 되길 묵묵히 지켜 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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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행이네. 딸이 왜 결혼 안할 생각이었대?”
“빨리 결혼하면 좋잖아. 돈도 안 들고, 우리는 해방.“

 

 

 

중3 딸입니다.

 

 

 

“더위야, 물렀거라!”

 

 

무더운 여름, 현명한 여름나기는 운동이 제일.

부부, 해 저문 후 혹은 밤에 시간 날 때면 틈틈이 여수시 소호 요트장 해안도로 인근을 1시간 정도 걷습니다.

 

 

해가 진 이후, 구름과 어울린 섬 등의 고즈넉한 고요가 차분한 힐링을 선사합니다.

또 불빛 쏟아지는 야경도 멋있고, 국내 유일의 범선 코리아나 호가 있는 풍경도 멋스럽습니다.

 

 

이곳을 걸을 때에는 부부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벼라 별 이야기가 다 쏟아집니다.

 

말 그대로 “♪별이 쏟아지는 해변~♬”입니다.

 

 

소호요트장입니다. 범선 코리아나호...

 

 

아내 : “시집 안 간다던 딸이 요즘엔 결혼한대.”
남편 : “다행이네. 왜 결혼 안할 생각이었대?”
아내 : “아이들을 보면 짜증난대.”

 

 

헉~, 이 무슨 소리. 아이들을 무척 귀여워했었는데….

암튼,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세상.

 

시집 안 간다던 중3 딸, 이제는 시집 갈 생각이나 봅니다.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기 전에 가슴이 따뜻하길 바랍니다.

 

 

저만치 청춘 남녀가 앉아 있습니다.

요트장을 바라보며 데이트 중입니다.

 

부러운 청춘입니다. 허공으로 웃음소리 가득 퍼집니다.

아무래도 수놈의 작업(?)이 통했을까. 딸 가진 아빠는 아빠나 봅니다.

 

 

남편 : “왜 아이가 싫대?”
아내 : “귀찮고 성가시대. 엄마가 자길 어떻게 키웠는지 놀랍대. 그래서 낳기만 해라. 그러면 엄마가 아이 키워 줄게 했지 뭐.”


남편 : “그랬더니?”
아내 : “‘아이 낳으면 엄마가 아기 봐 줄 준다면 결혼 생각해 봐야겠네.’ 그러더라고.”

 

 

어림없는 소리.

지 자식을 정성 들여 알토란 같이 키울 생각은 안하고 부모에게 맡길 생각부터 하다니. 너무 현실적이라 얌체 같습니다.

 

사실, 아빠 입장에서 과년한 딸이 결혼 안하는 거 보다 빨리 결혼하는 게 낫지 싶습니다.

외로운 인생살이 같이 사는 게 훨씬 좋으니까.

자기편이 있다는 거 삶의 큰 위안입니다.

 

 

남편 : “정말 아이 낳겠대?”
아내 : “응. 그래서 공부 그만하고 빨리 시집이나 가라 했어.”


남편 : “그랬더니 뭐래?”
아내 : “‘열아홉에 결혼할까?’ 그러대. 그냥 그래라 했어.”
남편 : “당신 미쳤어.”

 

 

모녀지간 죽도 잘 받습니다.

열아홉 살에 결혼이라니,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말은 이렇지만 속마음은 따로 있습니다.

아빠 입장에서 딸이 되도록 늦게 결혼하면 좋겠다는….

 

 

여수 소호동, 여수 밤바다입니다.

 

 

밤이 깊어 가는데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어폰을 꽂고 힘차게 걷는 청년도,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살랑살랑 걷는 아가씨도 보입니다.

 

손을 잡고 걷는 연인과 부부도 있습니다. 여름밤, 사랑이 무르익습니다.

 

 

아내 : "아이들이 빨리 결혼하면 좋잖아. 돈도 안 들고, 우리는 책임에서 해방되는 거잖아.“

 

웃음이 터집니다. 이렇게 한 번 웃는 거죠. 마음은 그게 아닌데, 역시 현실은 현실…. 그렇더라도 사랑 듬뿍 받는 딸로 커 가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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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자리 있어?” … “아니.” … “자리 있다.”
아빠와 딸의 이심전심과 “사랑한다, 우리 딸”

 

 

 

버스에서 딸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낯익다. 맞다. 꿈에서 본 듯하다.”

 

 

살다보면 이런 우연 있습니다. 특히 기막힌 우연을 두고 인연 혹은 필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인연이더라도 맞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집니다. 그러니까 우연도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재미있습니다.

 

 

어제 딸과의 기막힌 우연에 얽힌 사연입니다. 버스를 탔습니다. 뒤에 앉아 집으로 오던 중 딸을 닮은 여학생이 언뜻 보였습니다. 승객 사이로 자세히 보니 영락없는 제 딸이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만남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헉, 이러면 딸 바본가?)

 

 

승객이 많아 큰 소리도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서로 눈 마주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눈이 마주쳤습니다. 놀라움에 커진 딸의 동공에 아빠가 비칠 정도였습니다.

 

서로 방가방가~^^ 말 대신 방긋 웃음 지었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이심전심입니다.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문자 메시지였습니다. 발신인은 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기계를 기막히게 이용한다더니 실감했습니다.

 

사람 많은 버스 안에서 앞뒤에 있는 아버지와 딸이 핸드폰을 이용해 소통할 줄 어찌 알았겠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소통 방법은 기성세대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뒤에 자리 있어?”
“아니.”
“그럼 말지 뭐.”

 

 

허허~. 아빠에게 올 줄 알았더니 오진 않더군요. 사람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귀찮다는 겁니다.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었습니다.

 

승객들이 하나 둘 내리고 자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딸을 불러 말아? 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자리 있다.”

 

 

썰렁한 부녀지간입니다. 그렇지만 생각지도 않은 딸과의 만남은 또 다른 행복이었습니다.

 

 

“사랑한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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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내 보며…

“여보. 당신이 아이들에게 청소 좀 시켜요.”

 

 

 

 

사람 마음 누구나 같은데 이걸 잊고 삽니다.

 

 

“여보. 당신이 아이들에게 청소 좀 시켜요.”


“당신이 하지.”


“아이들이 엄마 말은 씹는다니까.”

 

 

아내의 요구입니다.

중3 딸, 중2 아들, 자기방 청소도 안 하는데 공동 주거 공간 청소를 하겠냐는 겁니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고 합니다.

 

여기서 지인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아버지는 집에서 아이들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지켜보는 존재여야 그나마 아이들에게 점수 딸 수 있다.”

 

 

하지만 아내의 요구에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은 아버지 보다 좋은 남편이 우선 아니겠어요.

편안한 노후를 위해 아내에게 들 적금이 더 절실한 겁니다.

 

 

“얘들아. 청소 좀 해라.”
“….”

 

 

아이들에게 공동으로 집 청소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대답이 없습니다. 점자 목소리가 커집니다.

급기야 신경질적으로 꽥 소리 지르고서야 겨우 반응이 보입니다.

 

 

“청소하기 싫어. 우리가 청소하면 아빠는 뭐해?”

 

 

반응은 기대치와 달리 부정적입니다.

꼭 다른 사람을 걸고넘어집니다.

 

이제 머리가 컸다는 거죠.

또한 컸으니 자기 맘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사람 제대로 대접해달라는 숨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에선 조용히 말만 앞서서는 안 됩니다.

화 대신 직접 몸으로 시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겨우 움직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청소는 물 건너갑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청소하기 싫어하는지 근원은 간단합니다.

 

7년 전, 강아지 키우는 조건으로 데려왔던 용변 치우기마저 엄마 아빠 차지가 된지 오랩니다. 이것도 안하는데 자발적으로 움직일 리 없습니다.

 

 

“엄마는 설거지, 아빠는 화분에 물주고, 강아지 오줌과 똥 치울게. 딸은 청소기 돌리고, 아들은 바닥 닦자.”

 

 

청소방식은 그때그때 달라집니다만 문제는 솔설수범입니다. 베란다로 가서 강아지가 싼 오줌과 똥을 치우며 “우리 청소 다 같이 하자.”고 했더니 녀석들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느려 터진 나무늘보 아이들 보니, 속이 터집니다.

여기서 화를 냈다간 아이들과의 원만한 관계는 보장 못합니다. 경험으로 알지요.

 

 

온 식구가 함께 집안일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함께 사는 가족은 ‘서로 힘을 보태야 한다’고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혼자 편하자고 외면하면 어느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더군요.

그건 단지, 게으른 남자라는 이유입니다.

집안일은 여자들만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남자들의 이상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이니까.

 

그럼에도 집안일을 함께 하는 건 아내의 한 마디 말 때문입니다.

 

 

“나도 우렁이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렁이 아내만 생각했지, 우렁이 남편이 있으리라곤 미처 생각못했습니다.

 

사람은 마음 누구나 같은데 그걸 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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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쟁이 사춘기 중2 아들의 놀라운 변화

부자지간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 상의 변화

 

 

 

 

커가는 아이들 키우기 힘듭니다.

날마다 새로우니까...

 

 

“아빠, 저 병원에서 자고 가면 안 돼요?”

 

 

2주전, 인생에서 제일 무섭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절친 두 명이 같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한 명은 운동하다 다리가 부러졌고,

한 명은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병원에서 잔다니 쉽게 허락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지지난 주말에도 같은 요구를 했었습니다.

 

 

“아빠, 제발 병원에서 친구들과 자게 해줘요!”

 

 

아들의 외침에도 냉정하게 결정을 미뤘습니다.

게다가 아이들 엄마에게 결정을 맡기기까지 했습니다.

 

아내는 분명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요즘 아들이 통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건 다반사.

전화도 안 받고, 약속은 쉽게 어깁니다.

 

아내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착한 아들이 달라졌다. 이제 내 아들 아니다. 당신 아들 해.”

 

 

20일, 아들은 전화로 외박 허락을 요구했습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엄마에게 허락 받아” 했더니, 아들은 한 술 더 떴습니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이 어딘지, 냄새 맡는데 도가 텄습니다.

 

 

“아빠, 제발…. 엄마는 안 된다고 할 게 뻔해. 아빠가 허락 해줘요.”
“그러게 엄마에게 점수 좀 따지 그랬어.”

 

“그럴 게요. 아빠가 허락해 주세요.”

“그래라. 엄마에겐 네가 직접 전화해서 다시 허락 받고.”

 

“헉, 엄마는 안 된다니깐. 아빠가 엄마 좀 설득해 주라니까.”

“엄마 아들이었던 녀석이 왜 이리 됐어. 그래도 네가 전화해라.”

 

 

요즘 아들과 아빠, 밀월 관계입니다.

예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대화가 필요해>에서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요. 저희 집 부자관계와 비슷했습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완전 좋아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아버지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인 저의 변화는 아이들이 다니는 여수무선중학교에서 7월 중순 2주 일정으로 진행했던 <행복한 아버지 학교>를 다닌 후부터입니다.

 

이 교육에서 부모는 럭비공 같은 아이들의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더군요.

아이들의 반항은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니 자연스레 받아 들여야 한다더군요.

이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여, 변화를 도모했습니다.

 

 

“~안 돼.”
“~해.”

 

 

이처럼 그동안 제가 아이들에게 사용한 말투는 과거 아버지의 상징(?)처럼 권위적이고 무미건조했습니다.

 

아이들도 “아빠 그 말투 기분 나빠요”할 정도였습니다.

계속 이렇게 했다가는 자식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 혹은 “친구 같은 부모”는 물 건너갈 게 뻔합니다. 때문에 말투를 좀 더 부드럽게 바꿔가는 중입니다.

 

 

“이거 좀 해라.”
“~생각 좀 해보자.”

 

 

명령적인 말투를, 아이들 입장까지 고려하는 청유형으로 바꿨더니, 아이들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귀에 귀마개를 했는지, 말을 씹던 아들이 달라진다는 건 놀라운 변화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바람직한 변화라 기분 좋습니다.

 

 

변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주에 부자지간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아들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태빈아, 9시10분쯤 병원 앞 도로변으로 나오시게….”
“5분쯤 늦겠네.”
“5분 더 기다려야 할 듯….”

 

“버스정류장 쪽에 있어요.”

 

“가방 열렸다. 잠궈.”
“나오시게 아들.”

 

 

그냥 일반적인 부자지간 대화 같은가요?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알겁니다.

 

혹 그동안 썼던 명령조 어투도 섞였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나오시게”, “늦겠네” 등에서 보듯, 예사 높임 어투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어투를 쓰는 까닭은 부모에게 속한 자식에서 벗어나 한 인격체로 대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자기 존재감(자존감)을 높여 스스로 아버지와 대화하려는 등의 열린 마음을 일깨운 겁니다.

 

그 전까지요? 아빠는 멀뚱멀뚱, 주로 엄마와만 대화했습니다.

여하튼, 아들의 외박을 허락했으니 아이들 엄마 설득은 제 몫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문자를 날렸습니다.

 

 

 

 

“태비니 자라했네. 낼 집 청소하는 조건으로….”

 

 

답신이 없어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들에게 전화 왔었다고 하더군요. 자기도 허락했다더군요.

아들이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아들이 대견합니다.

 

 

역시, 자기부터 바뀌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꾸기 힘든 세상임을 실감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친구 같은…’이 붙어가는 중입니다.

 

한 가지 걱정입니다. 부자 간 밀월 관계가 언제 어느 순간 물거품이 될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사 공짜로 생기는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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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만나 결혼했는데, 이혼했어요.”
사랑이 식었다면 반전의 반전이 필요한 상황

 

 

 

 

 

사랑 참, 묘~~~ 합니다

 

“첫사랑을 만나 결혼했는데, 이혼했어요.”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밝혔습니다.

얼굴이 밝아 알지 못했는데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아이를 혼자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사랑, 알다가도 모르겠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위대합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불러왔습니다.

 

 

위대한 사랑도 반전의 묘미가 있습니다.

사랑의 반전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사랑 VS 미움, 혹은 사랑 VS 무관심

 

 

사랑의 경우는 많습니다.

처음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한, 줄리엣과 로미오 같은 운명적이고 급진적인 사랑.

중매로 만나 끌림에 따라 사랑을 키워가는 점진적인 사랑.

하룻밤 풋사랑에 발목 잡힌 어쩔 수 없는 사랑 등.

 

 

“너 없이 죽어도 못 살겠다!”

 

 

대부분은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에 골인하며 부부 인연을 맺습니다.

신혼의 달콤함은 짜릿합니다.

사랑의 결실로 아이까지 낳아 알콩달콩 재미있게 삽니다.

 

 

 

 

열렬했던 부부 생활이 점차 시들해 갑니다.

눈에 끼었던 콩깍지가 벗겨지자 싸움이 잦아지고, 잔소리가 늘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너무 익숙해진 탓입니다. 새로움을 찾지만 허사입니다.

 

 

남편이 한 눈 파는 사이, 아내는 불만을 쌓아 갑니다. 때로는 그 반대입니다.

부부 간 신뢰와 믿음 속 관계가 어긋나자 마음에 미움이 싹 터 갑니다.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되고 무관심으로 변합니다. 결국 이런 마음이 됩니다.

 

 

“너 때문에 못 살아!”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게지요.

 

너 없이 못 살겠다던 사랑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익숙함에만 의존하고 있어 사랑에 금이 갔지 싶습니다.

새로운 사랑의 변화에 적응 못한 것입니다.

 

부부지간에도 신선함을 꾸준히 불어 넣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결혼 전, 사랑에 이끌려 상대방에게 많은 공을 들였듯 부부가 된 이후에도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반전은 노력을 간과한 결과물입니다.

사랑이 식었다면 반전의 반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사랑의 주인공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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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 가루 풀풀 날리던 칠판 닦기, 물 머금다
각자 학창시절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칠판에 얽힌 추억 많지요!!!

 

 

다들 그러대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세월은 무엇이든 변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기억 속에 남겨진 추억은 세월의 변화에도 꿋꿋하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학창시절, 칠판과 분필, 칠판 닦기에 얽힌 추억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예전에는 학급에서 돌아가며 맡은 주번(당번)이 칠판을 닦고, 분필을 정리하고, 칠판 닦기를 털었습니다.

 

 

칠판 닦기를 막대기 등으로 탈탈 털 때면 영락없이 분필가루를 둘러 써야 했습니다.

 

칠판 닦기의 용도는 다양했습니다.

잠자거나 하튼 짓을 하는 학생을 향해 던지는 무기(?)기도 했습니다.

 

 

 

분필도 워터초그로 바뀌었더군요.

요거 요거 많이 분질러 많이 던졌는데...

 

 

물을 묻혀 닦으면 난리 났는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물기가 있어야 닦깁니다.

 

 

분필도 종이로 예쁘게 싸거나 했는데

지금은 요렇게 인위적입니다. 정이... 

 

 

여기에다 물을 부어 물기가 있어야 칠판이 닦깁니다.

세월의 변화를 제일 실감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위생 상태를 고려해 개발했다는 워터 초크.

 

 

그랬는데 세월은 변화를 불렀습니다.

 

중 3인 딸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아버지 학교' 프로그램에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접한 게 새로운 칠판, 새로운 분필, 새로운 칠판 닦기였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분필가루 날리는 위생 환경 개선을 위해 분필은 가루가 날리지 않은 ‘물 분필’이 나온 겁니다.

 

 

또 분필가루 가득 묻던 칠판 닦기는 물을 묻혀야 닦기는 ‘물 칠판 닦기’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덕분에 칠판까지 물로 닦는 칠판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요거에 얽힌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요즘은 이걸 많이 사용하지요.

  

학교에서 본 재미있는 낙서도 추억 속으로 이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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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엉덩이 만지지 말고, 아빠 엉덩이 만져.”

사소한 일상에서 보는 세월의 변화에 ‘헉’

 

 

 

 

 

 

 

이런 말 있죠.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는 끝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삶의 길에서 배움은 언제든 따라 다닙니다.

그래서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나 봅니다.

 

 

저도 요즘 배우고 있습니다.

 

여수 무선중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행복한 아버지 학교>에서 부모로서 사춘기 자녀를 알고, 이에 맞는 가족생활의 자세 등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에서 ‘중2 병’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기 아이들 중 가장 절정이라는 중학교 2학년을 빚댄 말이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는 걸 강사님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북한이 방위가 무서워 못 쳐들어온다고 했는데 요즘은 아니다. 중2가 무서워 못 온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중2가 무섭다. 중2를 보면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미친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

 

아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하지 않던 행동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옷 사주세요.”, “돈 주세요.”는 기본.

컴퓨터, 휴대폰에 빠져 제지하지 않으면 새벽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또 밤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침묵 등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참, 예쁜 변화도 있습니다.

씻기 싫어하던 녀석이 요즘은 거의 매일 샤워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 누나가 “너 냄새난다. 이빨 좀 닦아라.”하며 구박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 닦습니다.

 

한 남자로 커가는 중입니다.

 

 

여하튼 아내는 이런 아들이 귀엽다며 쭉쭉 빱니다.

심지어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우리, 아들~”

 

하고 히히거립니다.

 

거기에 대고 아들이 한 마디합니다.

 

 

“엄마. 내 엉덩이 만지지 말고, 아빠 엉덩이 만져.”

 

 

그러면서 웃으며 "자기 엉덩이 만지는 건 엄마의 성폭력"이라는 겁니다.

 

녀석도 성에 대해 다 안다는 거죠.

많이 큰 거 인정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아버지와 청소년기의 상관관계에 대해 배우는 중입니다.

 

 

중 2 아들에게 기절초풍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너무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폼에 더 깜짝 놀랐습니다.

 

 

“저 열아홉에 결혼할래. 엄마 집에서 살아도 돼?”
“여자는 있고?”

 

 

“아직. 생길 거야. 내가 경제 능력이 없으니 붙어살아도 되지?”
“그럼, 너 방에서 둘이 살아라.”

 

 

“저렇게 작은 방에서 둘이 살라고?”
“빌붙어 사는 주제에 그것도 어디야.”

 

 

“결혼하는 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잘 생각했다, 아들.”

 

 

결혼하지 않고 엄마랑 아빠랑 산다던 아들이 많이 변했습니다.

19세에 결혼한다니 반대할 생각 없습니다.

 

19세면 성인이라 스스로 결혼해도 무방하니까.

게다가 공부 등 뒤치다꺼리가 줄어드니 아주 환영입니다.

 

 

근데 기막힌 건, 어찌 부모에게 빌붙어 살 생각을 하냐는 거죠.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춘기라 하는 거겠죠.

청소년기 아들 붙잡고 결혼이 어쩌고저쩌고, 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 봐야 듣기 싫은 잔소리일 뿐입니다.

 

 

아이들과 살면서 부모가 몸소 보여주는 것이 최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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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중3 자녀를 둔 부모는 가슴이 철렁철렁

중 3년 딸, 대체 새벽같이 어디로 갔을까?

 

 

럭비공 딸입니다~^^

 

 

청소년기를 부르는 말이 많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시기 등...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는 몹시 힘들어 합니다.

 

 

청소년기 절정이라는 중학교 2학년 자녀 부모는 더욱 힘들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소위 ‘중 2 병’이라고 합니다.

제 아들은 중 2, 딸은 중 3. 장난 아닙니다.

 

아이들 깨우는 것도 전쟁입니다.

짜증을 부렸다, 웃었다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딸, 일어나라. 학교 가야지.”

 

 

어제 아침, 딸을 깨웠는데 조용합니다.

보통 때와는 달리 딸 방에 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며 입으로만 깨웠습니다.

 

그러고 말았는데, 특히 아침잠 많은 중2 아들이 깨우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 돌아다녔습니다. 웬일이나 싶더라고요. 딸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놀란 아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나 어디 갔지? 세면장에 있나?”

 

 

딸 방에 갔더니, 흔적이 없습니다.

세면장에도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 어디로 갔을까? 무슨 일 있는 것 아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핸드폰 해 봐.”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전화 안 받네, 전화 꺼졌어.딸이 사라진 시각은 새벽 5시30분 이전이었습니다.

 

5시30분에 일어나 일하던 중이었으니까. 그때에도 딸의 인기척은 없었습니다.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렇더라도 마음 편히 먹고, 침착하자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친구들과 새벽같이 영화 찍는다더니 아무래도 일찍 나갔나 봐.”


“그걸 왜 이제 말해.”


“이제 생각이 나네.”

 

 

휴~~~, 그랬으면 아주 다행입니다.

아들이 퍽 하면 늦게 와 속 타게 하더니, 이제 딸이 새벽같이 사라져 애타게 합니다.

 

어젯밤, 딸에게 물었더니, 답이 재밌더군요.

 

 

“친구들과 올 여름에 출품한 영화 작업하느라 일찍 모이기로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6시. 한 친구가 늦게 오는 바람에 펑크 났다.”

 

 

씩씩거리는 모습이 예쁘게 느껴졌습니다.

핸드폰은 학교에 가면 끈다나요. 암튼 다행이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행복한 아버지 학교> 모습입니다.

 

 

그렇다 치고, 요즘 저도 여수 무선중학교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아버지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강의에서 여수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일하는 강사 강형규 씨가 그러더군요.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가 특히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고. 아주 간단했습니다.

 

 

“아이와 얽힌 이전의 기억은 모두 지워라.”

 

 

간단한 것 같지만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왜 그럴까. 자녀 낳아 기르면서 켜켜히 쌓인 추억을 부모가 어떻게 잊을 수가 있나요. 강형규 씨는 그렇더라도 “잊어라!”고 강조하더군요. 이유요? 간단했습니다.

 

 

“사춘기 이전의 자녀만 기억하고 있으면 아이와 갈등이 깊어진다.”

 

 

말하자면, 품 안의 자식이라고 이제는 놓아 줄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이런 마음가짐이 쉽다면 누구나 성인군자 될 테지요.

그래서 배움이 중요하나 봅니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로써 가지는 바람 한 가지.

 

 

‘오늘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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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는데, 번호표 받고 기다려야 하는 거 아냐?”
예상치 못한 아내의 깜짝 행동에 감동하다!!!

 

 

 얼음이 사르르르~, 열무막국수입니당~^^

 

 

“여보, 같이 점심 먹어요.”

 

 

어제 아내의 깜짝 데이트 제안이었습니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뭘 먹을 건데 물었더니, 냉면을 외치더군요. ‘콜’했습니다.

 

냉면은 면발 좋아하는 아내가 최고로 꼽는 여름 별미 중 하나입니다.

아내와 만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말을 잘 못 알아들어 걱정이에요.”

 

 

점심 먹으러 가는 것과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지 싶었습니다.

그렇잖아도 한 번 찾아뵐 때가 됐는데….

 

 

“어머님께 점심하게, 모시러 간다 했는데 그걸 못 알아들어요.”

 

 

알고 보니, 아내는 어머니께 전화해 점식 예약을 했더군요.

 

그래, 부모님 집에 갔는데 아버지는 운동 나가시고, 어머니는 집에서 드신다고 “너희들끼리 먹어라”하더라는 겁니다.

 

 

이 소릴 들으니 괜히 기분 좋대요.

왜냐하면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저희 부부의 단란한 데이트로만 알았지, 부모님과 함께하리란 제안을 했으리란 건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부모님께 신경 쓰는 아내가 고마워 갑자기 콧노래까지 나오더군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식사 안 가신다 하셔셔 딸딸 긁어 어머니께 용돈 드리고 왔어요.”

 

 

이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가슴에 한 번씩 대못 박는 못난 남편이 뭐가 좋다고, 아내는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지…. 처가에 잘하지도 못하는데, 미안할 따름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예상 못한 아내의 깜짝 행동은 제게 작은 감동이었습니다.

이런 게 행복일까?

 

 

국물이 깔끔해 여름 별미로 즐깁니다용~^^

 

 

“빨리 오긴 왔는데, 번호표 받고 기다려야 하는 거 아냐?”

 

 

국물이 깔끔해 자주 찾는 음식점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이 줄까지 설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내는 열무냉면을, 저는 열무막국수를 시켰습니다.

 

 

남편에게 작은 감동을 선사한 아내가 예쁘게 보이니 대하는 것도 달라지더군요.

 

뭐냐고요?

 

평소 같으면 아내가 알아서 잘라 먹게 놔뒀을 텐데, 이번에는 아내가 먹기 좋게 냉면을 가위로 잘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

 

 

“어머, 당신이 웬일?”

 

 

그러고 보면, 사람 마음 참으로 간사합니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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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elevigirl.tistory.com/ BlogIcon 테레비소녀   수정/삭제   댓글쓰기

    퇴근시간임박..아..군침살살..ㅠ_ㅠ 다이어트고 뭐고 먹으러가야겠슴다!!

    2013.07.10 17:36

“뭣이라? 아빠가 한 요리를 뭐라 했다 이거지.”
감동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정성이 깃들면 와!

 

 

제가 끓인 미역국입니다. 아이들이 품평을 했다네요.

 

 

“당신이 끓인 미역국, 아이들이 뭐라는지 아세요?”

 

 

헐. 어제 아침 아내 생일에 끓인, 아내를 위한 미역국에 대해 아이들이 가타부타 맛 품평을 했다는 겁니다.

 

가만 앉아서 얻어먹은 녀석들이, 아빠의 요리를, 아빠가 없는 틈을 타, 딸 친구까지 있는데서 이러쿵저러쿵 평했다니 한편으로 괘씸(?)했습니다.

 

 

“뭣이라? 아빠가 한 요리를 두고 뭐라 했다 이거지.”

 

 

괘씸하단 투의 표현과는 달리,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요리에 대한 품평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요.

이걸 피하려면 안하는 게 최선 ㅋ~^^.

 

제 요리에 대한 아이들 품평이 궁금했습니다.

 

식탁에선 아빠표 미역국 먹기를 꺼리던 아이들인데, 어느 새 맛은 봤네 했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요즘 아빠 요리에 대해 거부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맛있게 잘 먹었는데, 한순간 바뀐 겁니다.

 

아이들 표현을 빌자면 이렇습니다.

 

 

“아빠가 끓인 라면은 최곤데, 언젠가 아빠가 끓인 짜파게티 이후에는 별로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루는 냄비에 물을 끓인 후 라면을 넣으려고 봤더니, 일반 라면은 없고, 짜파게티만 있더군요.

 

물을 덜고 끓여야 하는데, 귀찮아 물이 흥건한 일반 라면처럼 끓여 대령했습니다.

 

아이들이 맛을 보더니, 그러더군요.

 

 

“이렇게 맛없는 짜파게티는 처음 봤다.”

 

 

그러고 입도 안대더군요.

이후 아빠 요리에 대한 아이들의 평가는 냉정했습니다.

여기서 터득한(?) 비법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요리 거절하는 법입니다.

 

맛없게 만드는 게 최상 그러면 두 번 다시 요구하지 않습지요.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당 ㅋㅋ~^^)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우리 아빠가 끓인 미역국, 간은 싱겁고, 미역은 프라이팬에 너무 볶아 시들거리고, 느글느글해 맛은 별로였어.”

 

 

아이들의 맛 평가가 냉정하대요.

아무리 맛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 리얼하게 평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미역국 딱 두 번 끓여봤습니다.

 

처음에는 둘째 출산 후, 산후조리 해주시던 어머니께서 며칠 비운 틈을 타 끓여 봤지요. 그러니까 산후조리용 미역국이었지요.

 

두 번째는 5~6년 전인가, 아내 생일 때 끓여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 맛이 얼마나 나겠어요?

 

 

미역국에 넣을 새우 찾느라 결국 아내를 깨워야 했습니다.

 

 

어제 새벽, 미역국 끓인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아내는 주방에서 나는 덜그덕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답니다.

그리고 무언가 볶는 소리가 냄새에 더욱 가슴 철렁했답니다. 이유인 즉,

 

 

“우리 신랑이 프라이팬에 미역 엄청 넣고 볶는 갑다. 아까운 미역, 이를 어째?”

 

 

몰래 미역국 끓이려다 결국 아내를 깨워야 했습니다.

미역국에 넣을 샘을 찾지 못해서입니다.

새우가 냉장고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찾는 걸 포기하고 아내에게 새우의 행방을 물어야 했으니까.

 

 

여하튼, 아내는 남편이 끓인 생일 미역국을 먹으면서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다나요.

 

역시, 감동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정성이 깃들면 찾아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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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갖고 마중 나오라 했으면 나왔을까?”

 

 

 

아내가 보내온 문자. 딸 안경 맞추다 속터져...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아빠에게 우산 갖고 정류장으로 마중 나오라 했으면 나왔을까?”

 

 

중학교 3학년인 사랑스런 딸, 집에 들어오면서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졌습니다.

교복은 젖어 있었습니다.

 

사연인 즉, 버스에 내렸는데 어떤 학생은 엄마가 정류장에 우산을 들고 나왔더랍니다. 그게 부러웠는데 참았다나요. 하여, 냉정한(?) 아빠에게 묻고 싶더랍니다.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련하고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지요.

지금도 비오는 날이면 초등학교로 우산 들고 가는 엄마들 종종 보이대요.

 

저희 부부는 그걸 못했습니다.

맞벌이 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참 미안할 뿐입니다.

 

 

“우산 가지고 마중 오라 전화했으면 나왔을까?”

 

 

이 질문에 “물론, 아빠가 있다면 나가지”라고 답했습니다.

이유는 딸의 애교 섞인 투정이 무척 반가워서입니다.

 

딸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동생과 싸울 때에는 “아빠는 항상 누나편이더라.”는 편파 판정으로 아들의 원망을 듣기도 합니다.

 

 

아이들 크는 걸 보면 흐뭇하다가도 걱정스럽습니다.

아들은 그렇지 않은데 딸은 대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남녀 차이이긴 허나, 더 큰 이유는 주위에 딸과 10여 년간 말 한 마디 섞지 못한 아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도 모른 채,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부터 대학 3학년 때까지 투명인간 아빠 취급을 받았다. 그 전에는 딸과 뽀뽀하고 안으며 부러운 부녀지간으로 지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투명 아빠 취급을 받으니 미치고 환장하겠더라. 투명 인간 취급은 딸이 대학 4학년 때 풀렸다.”

 

 

이 말을 들은 후, 딸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아버지와 딸로 가깝게 지내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한 인격체로 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힘듭니다.

 

아내와 딸의 힘겨루기가 시시때때로 이뤄지기에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어제 밤, 아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딸래미 안경 맞춰주다 속 터져서 죽는 줄 알았네.
시력은 더 나빠졌구만.
패션인 줄 알고 짜증나서 한 대 패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네욤.“

 

“이 사진은 아빠 전송용 인증샷.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안경)테 고르다 미치는 줄 알았음. ㅠㅠ~“

 

 

그래도 안경 잘 맞추고 왔으니 다행입니다.

여기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아내와 딸이 힘겨루기 할 때 누구 편을 들었지? 제 경우 이렇습니다.

아들과 딸이 싸울 땐 항상 딸 편입니다.

 

하지만, 아내와 딸 여자들끼리 다툴 땐 중립입니다.

 

이유요? 그래야 뒤탈이 없거든요. ㅋㅋ~^^ 여지는 알쏭달쏭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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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닭살 부부,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내 물건을 숨기면 되겠어?”

 

 

ㅋㅋㅋㅋ~.

 

역시, 닭살 부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이런 말은 보통 화를 내기 쉽습니다.

또 차분하더라도 상대를 비난하는 힐책 성격이 짙습니다.

 

하지만 지인은 싱글 생글 웃어가며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사실 ‘구렁이 담 넘어가는 것’처럼 중년의 여유로움도 묻어났습니다.

 

 

지인 부부 이야기의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수영, 헬스, 골프, 걷기 등을 즐기는 지인은 체력 저하를 대비해 꾸준히 운동합니다.

앞으로 남은 세월 견딜 체력을 쌓는 게지요.

 

그런데 수영장에 가려는데 수영복이 없더랍니다.

아내가 수영복을 숨긴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나요.

 

그래, 수영복을 새로 산 후 보란 듯이 입고 수영을 즐겼답니다.

이야기를 함께 듣던 제 아내, 한소리 하대요.

 

 

“우리 남편 같으면 화를 냈을 텐데, 알아서 사 입고 가셨다니 대단하네요.”

 

 

제 아내요? 사람이 있건 없건 이렇게 비교합니다.

그것도 아닌 척, 웃으면서 능청스레 신랑 욕하는 걸 보면 단수가 보통 아닙니다.

다시 본론으로 가지요.

 

지인 부부입니다.

 

 

중년의 닭살 부부,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수영복 사건 후 또 골프 가려는데 준비물 가방이 또 사라졌다”

 

 

군소리 없이 신발 등은 헌 것을 챙기고 골프장에 가면서 모자만 새로 샀다나요.

물건이 갑자기 사라진 게 두 번인 셈입니다.

아내에게 당한(?) 지인의 솔직 담백한 소감이 놀라웠습니다.

 

 

“우리 각시가 왜 틀어졌을까? 오십이 넘은 각시가 아직도 남편에게 투정 부리는 걸 보면 그 자체로 엄청 깜찍하대. 이렇게 애교 피우는 아내가 난 늘 사랑스럽더라고.“

 

 

이에 대한 형수의 해명은 이러했습니다.

 

 

“이틀 연달아 잡혀 있는 골프 스케줄 중 하나를 문자로 보고하지 않은 거야. 보고를 제대로 해야지~ 잉!”

 

 

남편이 보고를 남편이 깜빡 잊었다나요.

살던 대로, 하던 대로 안한 남편 잘못이죠, 뭐.

 

웃으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는 지인 부부를 보니 부럽더라고요.

50이 넘은 중년의 사랑도 이렇게 아름답구나 했지요.

 

 

 

 

 

아내의 애교, ‘끔찍’과 ‘깜찍’의 차이 3가지

 

 

지인 부부 이야기를 들으며 애교 피우는 아내의 ‘끔찍’‘깜찍’ 차이를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대로 아내의 애교, ‘끔찍’과 ‘깜찍’의 차이 3가지를 꼽아보았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1. 남편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깜찍. 아니면 끔찍.
2. 아내의 애교가 적당하면 깜찍. 과하면 끔찍.
3. 아내가 사랑을 담고 표현하면 깜찍. 마음이 없으면 끔찍.

 

 

‘끔찍’과 ‘깜찍’ 사이에는 남편의 ‘넓은 아량’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지 않으면 모두가 귀찮고 짜증나는 일일 테니까.

또 아내의 애교 섞인 투정이 넘쳐 ‘잔소리’가 될 때 도를 넘는다 보면 맞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적당’이란 말 참 무섭습니다.

세상살이에서 ‘적당히’를 알면 누구나 도인 될 것 같지 않나요?

 

아내들이여, 오늘 밤 남편을 향해 적당한 애교로 신랑의 마음 살살 녹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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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무슨 탄 냄새 나는데…. 밥 탄다.”

 

 

 

아내 없는 틈에 밥을 했더니 또 사고쳤습니다. 이를 어쩌...ㅠㅠ

 

 

“저 출장 갔다 늦어요.”

 

 

출장이 잦은 아내의 부재는 종종 사건을 만듭니다.

각시는 자신이 없는 틈에 식구들이 먹을 밥이며, 반찬을 만들고 갑니다.

하지만 급하게 출장 갈 때 아이들 밥 챙기는 건, 아빠인 제 몫입니다.

 

 

전기밥통을 보니 밥이 애매합니다.

이럴 땐 라면에 밥 말아먹으면 좋은데, 참습니다. 한창 커가는 아이들에게 라면 먹이면 잔소리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나만 없으면 아이들하고 라면 끓여 먹더라. 귀찮다 생각 말고 밥 해먹어요.”

 

 

귀에 익은 아내 말이 생각났습니다.

라면 끓여 먹거나 통닭 시켜 먹으면 편한데 그냥 밥 해 먹기로 했습니다. 저번에 처음으로 압력밥솥에 밥을 했다, 솥을 까맣게 태웠던지라 이번에는 잘 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아이들도 걱정됐는지, 한소리 합니다.

 

 

“아빠, 밥해요. 또 밥 태우려고….”

 

 

아이들은 탄 밥 먹을 게 걱정이나 봅니다.

지난 번, 밥솥을 태운 원인은 버튼을 닫힘 쪽으로 돌려야 하는데 열림 상태로 두어서였습니다.

 

이번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밥한 실력이니 걱정 말라고 호기롭게 대답했습니다. 쌀을 씻고, 물을 맞춘 다음 불에 올렸습니다.

 

 

“아빠, 무슨 탄 냄새 나는데…. 밥 탄다.”

 

 

아 뿔 싸~.

밥이 다 됐다는 소리가 나길 기다렸는데 또 경보 소리가 없었습니다. 후다닥 불을 끄고 가스를 잠궜습니다. 밥솥을 열었더니 가관입니다. 밥이 탄 냄새가 진동합니다. 환풍기를 돌리고, 문을 열어 환기시킵니다.

 

 

압력밥솥을 열었더니, 탄 냄새 진동입니다. 

먹을 만한 곳만 덜어냅니다. 

밥이 탄 원인은 고무패킹이었습니다. 

덜탄 곳을 겉어 낸 후 맡을 봤더니...

요렇게 까맣게 탔습니다.

 

 

밥은 타지 않은 부분만 조심스레 퍼 밥통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도 탄 부분까지 따라옵니다. 밥을 태운 원인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제야 싱크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압력밥솥 고무 패킹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거 뭔 냄새데. 또 밥 태웠대? 당신은 각시만 없으면 사고 치네.”

 

 

출장을 마친 아내가 뒤늦게 집에 돌아와 웃으며 한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서운했습니다. 남편의 가상한 노력을 모르고, 사고 치다니….

말로라도 ‘애 썼네’ 하면 또 도전하며 움직일 텐데, 이러면 아주 곤란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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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게 살아야…”

 

 

 

신랑 신부 싱글벙글입니다.

 

 

지난 토요일(1일) 조카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신랑 임기원 군과 신부 박지빈 양의 결혼식이 군산 은파교회에서 오세창 감독님의 주례로 열렸습니다.

 

보통 결혼식에 가면 주례사가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그 숨은 이유를 헤아려 볼까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게 살아야…”

 

 

부부가 백년해로하는 게 최상의 미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남녀가 사랑해 자녀를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공유하는 정신적 지주이니 친구처럼 알콩달콩 살길 바라는 동반자라는 의미입니다.

 

 

주례사의 숨은 뜻은?

 

 

그리고 부부로 맺어진 인연의 소중함이 이어집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문화가 다른 신랑 신부는 서로 맞춰 최선을 다해 살길 바랍니다.”

 

 

부부는 서로 다른 가정 문화의 충돌 지점을 어떻게 맞춰 사는냐? 하는 게 무엇보다 관건이라는 겁니다.

 

부부로 살다 보면 싸울 일 많습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현명하게 싸우는 지혜를 빨리 터득하라는 의미가 묻어 있습니다.

 

 

성경에 대고 부부의 연을 맹세합니다. 그 이유는...

 

 

이어 남편과 아내의 자세에 대한 조언이 뒤따릅니다.

 

 

“서로 남편은 아내가 가슴에 있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이 가슴에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가슴에 없을 경우, 신뢰와 의지가 무너져 원만한 가정생활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부부간 굳건한 신뢰는 믿음 속에 화목한 가정의 출발점이라는 겁니다.

 

 

신부 아버지가 손을 그냥 넘겨주는 게 아닙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부부로써 남자와 여자가 지켜야 할 두 가지 덕목이 등장합니다.

 

 

1. 아내는 남자의 자존심을 지켜 주어야!
남자는 자존심을 먹고 사는 족속이기에 자존심을 세워주며 사는 게 최선이라는 겁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릴 경우, 예기치 않은 돌발 행동이 예상되니, 이를 피하는 지혜를 일러주는 것입니다.
 
2. 남편은 여자에게 많은 사랑을 주어야!
여자는 사랑을 먹고 자라는 꽃이라는 겁니다. 꽃은 사랑을 듬뿍 받아야 아름답고 환하게 핀다는 이치입니다. 노래를 듣고 자란 화초가 더욱 정열적인 꽃봉오리를 맺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말 같지만 실상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주례사는 부부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부단한 상호 노력이 있을 때 화목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무언의 경고인 셈입니다.

 

모쪼록 조카 부부, 행복한 결혼생활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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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 만들기', 가족을 깜짝 화목으로 이끌다~^^

 

 

 

 

가족이 함께 만든 무채.

 

 

“여보, 당신 무채 먹을래?”

 

 

무채 잘 먹는 남편을 위한 아내의 특별 제안입니다.

 

어젯밤, 오랜만에 부부가 시장에 갔습니다. 평일 저녁 시간을 이렇게 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이 늦게 끝나거나, 약속 때문에 엇갈리는데 어제는 운 좋게 날이 맞은 겁니다.

 

 

시장에서 무를 보니 신랑이 잘 먹는 무채김치가 떠올랐나 봅니다.

아직도 남편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준다니 무척 반갑지요. 즉석에서 “콜~^^”하고 외쳤습니다. 무 한 개를 샀습니다. 후다닥 장을 보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빨리 반찬해서 밥 먹어요. 조금만 기다려~.”

 

 

요리 하는 아내 모습이 사랑스럽데요.

무엇이든 함께해야겠다는 생각 뿐. 옆에서 무얼 할까 고민하다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여보, 무채 내가 만들까?”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칼, 도마, 무를 챙겨 식탁에 앉았습니다.

무 써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엇나가기 일쑤입니다. 신경을 많이 써야 제대로 잘립니다. 손에 익지 않은 칼질에 익숙해 질 무렵, 중2 아들이 호기심을 보입니다.

 

 

“재밌겠다. 아빠, 저도 한 번 해 볼래요.”

 

 

아들에게 칼을 맡겼습니다.

 

 

어설픈 아이들의 칼질~^^

 

 

칼질 폼이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저러다 손 다칠까 염려스럽습니다. “손 조심해라”는 말 한 마디 던지고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녀석 신이 났습니다. 그걸 본 아내까지 덩달아 기분 업 되었습니다.

 

 

“왜 이리 시끄럽대?”

 

 

화목한 웃음소리에 중 3 딸까지 주방으로 나왔습니다.

남동생이 무채 만드는 걸 본 딸, “재밌겠다. 그거 내가 할게.”하고는 칼을 뺐습니다. 마침 지겨울 때가 된 아들이 순순히 자리를 양보합니다.

 

 

“엄마, 이 정도면 됐지? 나 잘하지.”

 

 

아이들의 무채를 만드는 어설픈 칼질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작은 일 하나가 깜짝 행복을 안겨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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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채로 가족애가 듬뿍이군요.

    맛도 더 있었을 듯...ㅎㅎ

    2013.05.31 19:35 신고

달팽이들의 섹스, 그리고 2세까지…

 

 

 

야밤에 섹스를 즐기는 달팽이들.

이들의 짝짓기는 유희가 아닌 생존입니다.

 

 

 

“여보, 달팽이가 짝짓기 하는 거 봤어요?”

 

 

볼 턱이 있나.

제가 없는 사이 아내가 달팽이들의 사랑스런 짝짓기 광경을 보았다며 신기해합니다.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대신 아내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달팽이를 기른 지 2년 여.

식용 달팽이들이 섹스 후 2세까지 낳았습니다. 알 숫자가 제법 많습니다.

달팽이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분양 보내야 합니다. 이미 예약이 끝났다나요.

 

짝짓기 사진은 휴대폰으로 야밤에 찍은 거라 질이 별로임을 감안하시고,

달팽이들의 진한 사랑, 사진으로 감상하세요~^^


달팽이가 번식하려면 크기가 5cm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달팽이들은 턱 옆에 있는 교미공이 나와야 교미가 가능하답니다~~.

 

 

 

 

가운데 교미공 이 나와 서로의 몸 속으로 들어가야 짝짓기가 시작됩니다.

 

 

상추 먹는 달팽이

 

 

가운데 입으로 먹습니다.

 

 

두 마리가 얽혀 있지만 이건 짝짓기가 아닙니다. 스킨쉽인 거죠.

 

 

핸드폰으로 찍은 달팽이 알입니다.

 

 

달팽이 어미가 알을 먹는 수가 있다하여 분리를 준비 중입니다.

 

 

메추리알 같죠? 아닙니다. 아주 깨알같습니다.

 

 

알을 확대한 사진입니다.

 

 

10cm 이상인 귀요미입니다.

 

 

알을 낳아 특별식을 주었습니다.

특별식은 계란 껍질 부순 것입니다.

칼슘 보충제로 딱이랍니다.

 

 

2세 낳은 보너스로 주어진 달걀 껍질을 엄청 잘 먹더군요.

 

 

핸드폰으로 찍은 교미 장면입니다.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맨살을 드러낸 달팽이...

 

 

멀리서 잡은 짝짓기 장면입니다.

 

 

특별식을 즐기는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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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화장실과 이동식 간이 화장실 늘려야
“법 있으면 뭐해, 직접 당해 봐야 그 속 알까?”

 

 

 

 

♪♬ 살다 보면~♩

 

별일 다 있지요.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비오는 날도, 눈 오는 날도 있게 마련.

 

날씨처럼,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기분 좋은 날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우울하고 왠지 슬픈 날도 있는 게 세상 이치.

 이를 두고 어떤 이는 ‘변덕이 죽 끓는다’지만 이 어찌 마음먹은 대로 될까.

 

 

살다 보면 헷갈릴 때가 있지요. 나인 건 분명한데, 내가 아닌 것도 같은 아리송할 때.. 즉,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다는 게지요.

 

 

화장실만 해도 그렇습니다.

길 가다 뒤가 엄청 급한데 마땅히 볼일을 속 시원히 치룰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지요. 악동 뮤지션이 노래했죠? <다리 꼬지마>라고.

 

그러나 화장실이 급할 땐 다리가 자연스레 배배~ 꼬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손을 포함한 온몸이 절로 실타래처럼 배배~ 꼬이지요. 참다 참다 더 이상 못 참을 때 항문 괄약근에 힘을 꽉 주지만 그게 어디 힘준다고 참아 지나요.

 

 

 

 

 

 

잠시 예전의 한 에피소드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언젠가, 사무실에 있는데 한 분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군요.

보니 20여 년 전 은사님. 반가움에 말을 섞으려는데 그 선생님 얼굴이 누리끼리하니 완전 죽을상. 그리고 다짜고짜 하는 말이, 아~ 글쎄 가관.

 

 

“화장실 좀 쓸게요. 화장실이 어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손짓으로만 화장실을 가리키고 말았습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죠. 한참 있다 나오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주 사무적으로 변해 있었지요.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사리지는 선생님을 보고, 어떤 말도 건넬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든 이런 경우 종종 있었을 겁니다.

 

 

 

 

저도 어제 밤, 아내와 함께 외출했다 뒤가 급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오줌이라면 그래도 나은 편이지요. 소변 아닌 큰 게 급할 땐 재고 자시고 할 틈이 없지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변을 그 뉘라서 참으리요.

 

 

아무데서나 엉덩이를 까고 앉아 볼 일을 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요.

하지만 점잖은 체면에 그게 쉽던가요. 하마터면 후미진 곳을 찾아 엉덩일 내릴 뻔 했습지요. 가까이에 영화관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화장실에 가면서 아내에게 건넨 말이 가관이었지요.

 

 

“화장실에 화장지 있을까?”
“영화관에 화장지가 없을라고….”

 

 

그러면서도 아내는 재빨리 차 뒷자리에 있던 화장지를 챙겨 주더군요.

화장실 가던 중, 변이 볼금볼금 나오려고 하는 걸 가까스로 참고, 급하게 변기 앞에 서서 아랫도리를 까 발렸지요.

 

 

‘우 르르르르르~, 쏴~~~’

 

 

천둥 치는 소리가 이 보다 클까.

이때의 행복 다들 아시죠? 이때만큼은 세상에 부러운 게 하나도 업지요. 배설의 기쁨이 어찌나 크던지….

 

볼 일 본 후, 아내에게 배설의 기쁨을 토했더니, 아무 말 없더군요. 아마, 속으로 실 컷 욕했을 겁니다.

 

 

‘저 웬수~, 아주 더운 말을 너무 쉽게 편하게 하네~.’

 

 

여기서 한 마디.

도심에서는 개방형 화장실이 많아야 하고, 한산한 야외에서는 이동식 간이 화장실이 필수라는 거. 속 터지는 건 고속도로 휴게소에 여자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설 때입니다.

 

 

화장실 늘리는 걸 법으로 정했다는데도 아직까지 달라진 게 없는 현실. 법이 있으면 뭐해. 현실이 그게 아닌 걸…. 그래서 하는 쓴 소리.

 

 

“화장실 급한 거, 니들이 직접 당해 봐야 그 속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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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고 뒤늦게라도 챙긴 아이들에게 ‘흐뭇’

 

 

 

어제 집에 갔더니 식탁 위에 아이들이 뒤늦게 챙긴 카네이션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냈던 화는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카네이션 받았어요?”
“아이들이 서울에 있어서 못 달았어. 대신 주말에 온대. 안 와도 되는데….”

 


“저는 아이들이 옆에 있는데도 어버이날 꽃도 못 받았어요. 그래 아침부터 화를 냈어요.”
“잘했다. 한 번씩 화를 내야 아이들이 챙기지. 아이들에게 부모 대접하는 것도 가르쳐야 해.”

 

 

아이들이 버젓이 둘씩이나 있는데도 어버이날 카네이션은커녕 편지도 받지 못한, 부모 대접을 받지 못한 서운한 마음에 지인에게 하소연하며 나눴던 말입니다.

 

 

지난 어버이날 아이들은 수학여행과 수련회 간다는 핑계로 자기들 짐 챙기느라 카네이션 등은 뒷전이었지요. 괜히 부아가 나 아이들에게 심통을 부렸습니다. 그랬더니 “죄송하다”“수학여행 등 다녀와서 챙기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이들이 돌아오는 지난 금요일에는 저의 제주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 엇갈리는 관계로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화를 낸 뒤끝이 길면 서로 좋을 리 없으니까.

 

 

“나는 우리 아들 마중하러 역에 간다~”

 

 

지난 주말, 지인은 휴대폰으로 은근 자랑이었습니다.

어버이날 떨어져 있어 챙겨주지 못한 아들이 내려온다는 거였지요. 그리고 또 문자를 보냈더더군요.

 

 

“나는 아들 만나 둘이 꽃게장 맛있게 먹었다~^^”

 

 

대놓고 자랑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부모가 옆에 있어도 챙기지 않은 아이들이 밉기까지 했는데 자랑이니 부럽고 부끄러웠습니다.

 

 

주말, 제주에서 보낸 후 어제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을 풀다 식탁으로 갔더니 꽃 두 송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어버이날 받지 못해 서운했던 카네이션이었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생각나는 말이 있었습니다.

 

 

“부모 대접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것도 부모 책임이다.”

 

 

아마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겁니다.

뒤늦게나마 식탁 위에 놓인 카네이션을 보니 아주 흐뭇하더군요. 늦게라도 챙기겠다던 아이들이 잊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정은 사실 이거 하나면 끝입니다.

내리 사랑이라고 부모가 자식에게 뭐 큰 거 바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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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카네이션 한 송이의 소중한 의미가 간절히 느껴집니다.

 

어버이날 아침부터 은근히 서운합니다.

 

아니, 어제 밤부터 서운했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 말했거든요.

 

 

“너희들 카네이션 샀어?”

 

 

그런데 오늘 아침, 은근히 바랐던 카네이션도 편지도 없습니다. 부모는 아이들 수학여행 등을 간다고 어린이날 옷과 가방 등을 사줬는데...

 

‘기대하지 않으면서 내심 기대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라더니 그렇습니다.

 

대신, 자기들 수학여행과 수련회 떠날 준비하느라 정신없습니다. 아침부터 말이 곱지 않게 나갑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쓴 어버이날 편지입니다.

 

 

“중학생이나 된 것들이 카네이션 하나 없냐?”
“….”

 

“너 친구들은 카네이션 안 사디?”
“예. 아무도 안사던데요.”

 

“엄마 아빠가가 부모님과 식사하고, 용돈 드리고, 전화하는 거 못 봤어?”
“….”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먹고 있습니다. 아내가 한 마디 거듭니다.

 

 

“그래, 너희들이 챙기지 않는 건 잘못이다. 마음이 있어야 챙기지….”

 

 

예전에도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아이들을 닥달해 저녁에야 편지를 받았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나 봅니다. 이거 부끄러워 할 말 없습니다.

 

아내의 치명적 한 마디에 가슴 아픕니다.

 

 

“우리가 보여준 게 없나 봐요.”

 

 

그러고 보니 가슴 깊게 반성됩니다.

 

예전 학창시절 어머님이 생각납니다. 한 번은 어버이날 그냥 지나쳤더니, 저녁에 단단히 화가 나신 어머니의 맺힌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가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카네이션 하나 못 달아 주냐? 내가 아이들을 잘 못 가르쳤지….”

 

 

꼭 이 마음입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아이들은 "죄송하다""태어나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다음부턴 잘 챙기겠다"는말을 남기고 수학여행과 수련회를 떠났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좀 풀립니다.

 

 

어쨌거나, 부모 자식 간에도 오고 가는 정이 있어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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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어머님과 식사 할 시간이 오늘 밖에 안 되는데, 당신이 연락 좀 해봐요.”

 

 

어제 오후 아내의 요구가 있었습니다.

8일 어버이날 시간을 낼 수 없다니 일정을 조정하는 수밖에. 부모님께 전화했습니다.

 

 

“오늘 저녁 시간 어때요?”
“어버이날 때문에 그러지? 우린 괜찮다. 식사 범위는?”
“이모와 이모부까지요.”

 

 

아이들에게도 일찍 집에 올 것을 문자로 요청했습니다.

저녁에 서둘러 어른들을 모시러 갔습니다. 팔십 중반 연세에도 아직 건강하신 어른들이지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 우리까지 안 챙겨도 되는데 고맙네.”

 

 

이모부는 타지에 나간 상황이라 혼자 나온 이모님께서 “다 죽고 둘밖에 안 남은 자매가 다 늙어 힘이 된다.”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팔십 중반의 어머님과 이모님, 서로 많은 의지가 되나 봅니다.

 

 

“언니,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내복을 아직도 입고 있소.”
“나도 그러네. 자네도 그런가. 몸조심이 제일이야.”
“이제 나도 예전 같지 않아, 언니.”

 

 

전 같지 않다는 말에 미안한 마음입니다.

식사 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린이 날 용돈을 쥐어 줍니다. 아이들 뜻하지 않은 횡재에도 반가운 표정을 애써 감추며 “됐어요, 할머니”합니다. 수학여행 갈 아들은 두둑히 용돈을 챙겼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어버이날 해야 하는데 그리 됐어요.”
“아니다. 괜찮다. 니가 항상 고맙다.”

 

 

아내가 봉투를 건넵니다.

그리고 챙겨 둔 떡까지 나누어 건넵니다. 그걸 보던 이모님 한 마디 합니다.

 

 

“며느리가 별 걸 다 챙기네. 자네는 며느리 잘 얻어 좋겠다.”

 

 

아내는 싱글 생글. 어른들이 내리자 아내가 하는 말이 뜻밖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미리해도 소용없어요. 당일 날 가야 덜 서운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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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 과하지 않기를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올해 중학교 2학년입니다. 사춘기입니다.

 

이때를 가리켜 인생에서 가장 무서울 게 없는 나이라고 합니다.

 

그래선지, 중딩 아들 녀석이 요즘 실없는 소릴 자주 지껄입니다.

 

 

“와~, 정말 잘 생겼다~”

 

 

자신감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거울 앞에서 자아도취에 빠진 아들을 보면 우습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기죽일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빠라고 해도 점점 도가 지나칩니다. 기어코 아들에게 물어 봅니다.

 

 

“네가 정말 잘 생겼다고 생각하니?”
“예, 아빠. 진짜 잘 생겼잖아요.”

 

 

이쯤이면 뭐라 할 말 없습니다.

사실을 직시하면 좋을 텐데 싶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은 그 자체로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합니다. 문제는 지나치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딸이 한 마디 합니다.

 

 

“니가 정말 잘생겼다고 생각해?”
“응. 잘생겼잖아. 누나가 반할 정도로 멋있지 않아?”

 

 

딸도 입을 다물고 맙니다.

아내는 이런 아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이유는 귀엽다는 겁니다. 씻기 싫어하던 아들이 요즘 부쩍 자주 씻습니다. 아내는 이런 모습까지 재밌어 합니다.

 

 

“아들~, 여자 친구 생겼어?”
“….”

 

 

아내의 질문에 아들은 대답이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여자 친구와 연결되면 ‘인기가 있긴 있구나’ 인정할 텐데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아무래도 엄마와 아들, 둘만 귀엽고 잘 생겼다 여기지 싶습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 좋습니다.

나쁠 건 없습니다. 다만, 과하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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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아버지, 가족과 소통 이렇게 하시면…

 

 

 

다화개별꽃입니다.

 

 

아버지들 고생 많습니다.

무한도전 무한상사 편에서 정준하의 해고는 많은 아버지들의 현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자녀 교육으로 인한 기러기 아빠도 우리네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아버지들은 이런 현실에서도 가족과 소통은 쉽지 않습니다. 소통을 위해서 또 노력해야 합니다.

 

 

 

어제 지인과 집 뒷산인 안심산에 올랐습니다.

여수 가막만의 섬들과 해안선이 그림처럼 펼쳐진 다도해 풍경을 보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풍경이 너무 예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묵묵부답.

 

 

“야~, 철쭉이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었네~”

 

 

안심산 정상 밑 8부 능선에 예쁜 철쭉이 피었더군요.

지인은 이 철쭉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문자로 보내더군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소통은 문자가 제일이야~. 그것도 짧은 문자로 여러 번~”

 

 

듣고 보니, 맞는 소리였습니다.

긴 문자를 보냈는데 간단히 여러 번 보내는 게 좋다는 겁니다.

 

또한 아내에게만 풍경 문자를 보낼 게 아니라 딸과 아들에게도 함께 보냈어야 했는데 싶더라고요. 뒤늦게 ‘아차~’ 했습니다. 철쭉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문자를 날렸습니다.

 

 

“안심산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네... 우리 아이들처럼 예쁘네...ㅋ~^^”

 

 

 

 

 

 

저희 아이들의 답신은 없었습니다.

중간고사 시험 준비에 바쁜 탓도 있지만, 아빠의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지인은 딸에게 문자 답신이 왔습니다.

 

 

“아빠 너무 좋아요~”

 

 

지인이 평소에 자녀들에게 투자한 보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부럽더군요. 어쨌거나 지인의 모습은 배움이었습니다. 대신 아내에게 들꽃 사진을 찍어 문자를 보냈습니다.

 

 

“당신을 닮은 꽃이 있어 반갑구먼!”

 

 

 

 

 

아내의 답신을 기다리며 안심산 둘레 길을 걸었습니다. 지인이 평소 궁금했던 걸 물더군요.

 

 

“핸드폰 문자에서 ‘ㅠㅠ’는 무슨 뜻이야?”
“눈물 많이 난다는 슬프다는 의미.”


“그래? 그럼 ‘ㅜㅜ’는?”
“조금 슬프다. 아니 저도 모르던 ‘ㄴㄱㅇㄴ’을 찍어 보낸 사람이 ‘ㅠㅠ’와 ‘ㅜㅜ’를 모르다니 의외네.”

 

 

예전, 지인에게 받은 문자 중 아주 생소한 ‘ㄴㄱㅇㄴ’을 보고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문자 속에서 물어봐도 묵묵부담. 결국 뒤에 만나서 직접 물었더니 그러더군요.

 

 

“‘ㄴㄱㅇㄴ’이 궁금해? ‘놀고 있네’.”

 

 

‘놀고 있네’라니 말 되더군요.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한담을 나누는 사이 아내에게 문자 답신이 왔습니다.

 

 

“그런 인기 발언을… 다화개별꽃”

 

 

이것도 웃음을 주더군요.

하여튼 아이들과 소통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만 내세웠던 탓입니다. 반성 많이 했습니다. 산행에서 배운 건, 자녀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좋은 아빠 되려고 부단히 힘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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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샤워해야겠다.”

 

 

어젯밤,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아들답지 않은 말을 했습니다.

 

중간고사 준비한답시고 공부하고 늦게 들어온 녀석이 잠자겠다는 말 대신 샤워 소릴 꺼낸 겁니다.

 

목욕탕에 가자해도 혼자 씻겠다며 거부하는 등 잘 씻지 않는 아들인데 스스로 샤워하겠다고 나섰으니 우리 부부가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아들이 좋아진 게 있긴 합니다.

이는 잘 닦습니다. 누나가 입 냄새난다고 타박하기 때문이지만 변화 조짐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스스로 샤워한다니 무슨 일 있지 싶었습니다. 아들의 샤워 소리에 아내와 저는 ‘웬일~’이란 표정과 눈짓을 서로 나눴습니다.

 

 

 

 

설거지 아르바이트 중인 중 2 아들입니다.

 

 

 

 

“여보, 우리 아들이 좀 변한 것 같지 않아요?”

 

 

샤워하러 간 사이 내뱉은 아내의 목소리에는 걱정 반, 흐뭇함 반이 섞여 있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에 대한 우려와 커 가는 모습에 대한 대견함이었습니다.

 

어쨌거나 한참 지나자 아들이 팬티 바람에 거실로 나왔습니다. 그걸 본 아내 웃으며 한 마디 건넵니다.

 

 

“우리 아들~, 샤워하니 대빵 멋었다.”
“엄마 내가 좀 멋있잖아."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흐뭇한 눈빛과 천살 멘트가 닭살 수준입니다.

속으로 '멋잇긴 게뿔~^^'이란 소리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아빠라도 엄마와 아들 사이가 좀 지나치지 싶었습니다. 아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 등 뒤에 기어코 한 마디 풀었습니다.

 

 

“우리 아들 여자 친구 생긴 거야?”

 

 

아내는 아들의 변화 원인 중 하나를 여자 친구로 보는 겁니다.

그런 아내를 보며 저는 눈을 찡긋했습니다. 그러지 마라는 거죠. 사춘기 청소년의 과시하고 싶은 욕구 표출을 여자 친구로만 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남자로,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인 거죠.

 

 

“씻기 싫어하던 아들이 자주 씻으려고 하니 그게 대견해서요.”

 

 

아들이 커가는 과정이 아내에겐 그저 좋나 봅니다.

이 속에는 배 아파 낳은 자식에 대한 믿음까지 녹아 있었습니다. 커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이렇게 똑 같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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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가에서 배우는 부부 사이 경계의 선
“내 각시, 손(발)이 왜 이렇게 차갑데?”

 

 

 

 

 

 

 

“여보, 너무 차가워~.”

 

 

밖에서 들어와 손이 무척 차가우면, 간혹 아내 등속에 손을 집어넣을 때 보이는 아내의 반응입니다. 부부 사이, 이런 경우 있을 겁니다. 없다고요? 너무 재미없는 부부네요. 부부지간, 때로는 적당한 수준의 장난도 필요합니다.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합니다. 이 경우를 천생연분이라 합니다.

하지만 맞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악연입니다. 이는 될 수 있는 한 피해야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결혼 적령기 남자와 여자에게 두고두고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남녀 사이는 궁합이 맞아야 한다.”

 

 

이를 핑계로 어머니들이 찾는 게 점집입니다.

청춘 남녀가 어렵사리 결혼에 골인해 신혼을 거쳐 부부로 사는 동안 좋지 않는 경우보다, 좋은 경우의 수가 많기를 바라는 겁니다. 또한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넌다’고 매사에 조심하자는 이유입니다.

 

 

여하튼 결혼한 부부는 집안과 사회가 인정한 공식 섹스 파트너입니다.

그 속에는 부부가 아이를 낳아 길러 사회 구성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공동 의무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여, 부부는 서로가 지켜야할 선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 장난 수위 어디까지 적당할까?’를 살펴보겠습니다.

 

 

 

 

처용가에서 배우는 부부 사이 경계의 선

 

 

 

"동경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런만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만
빼앗긴 걸 어찌하릿고."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가(處容歌, 양주동 역)입니다.
<처용가>는 자신의 아내가 다른 사내와 동침하는 걸 본 처용이 지은 노래로 간통장면을 다리 수를 세는 것으로 묘사한 향가입니다. 이 설화를 간략하게 풀면 이렇습니다.

 

 

“처용이 밤에 외출했다 집에 들어와 보니, 아내의 잠자리에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처용은 ‘두 다리는 내 아내 것인데, 두 다리는 누구의 다리냐?’며 한탄하며 노래를 부르며 물러났다. 처용의 아내를 법한 역신이 감복해 처용의 얼굴을 그린 화상만 있어도 들어가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이처럼 순간에 바뀌는 게 부부입니다. 부부는 흔한 말로 ‘님’이라 합니다. 여기에 <ㆍ>을 찍으면 ‘남’이 됩니다. 대수롭지 않은 점인 것 같으나, 이 점 하나에는 운명을 좌우하는 엄청난 힘이 숨어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매사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장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웃으며 시작한 장난이 큰 싸움으로 번져 결국 헤어지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는 부부간 넘지 말아야 할 경계의 선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내 각시, 손(발)이 왜 이렇게 차갑데?”

 

 

 

“으으으으~, 너무 찹다.”

 

 

아내가 제 다리나 등에 차가운 손과 발을 넣을 때 보이는 남편의 반응입니다.

차가운 손과 발이 따뜻한 몸에 닿을 때의 기분이란 정말 싫습니다. 그렇지만 제 얼굴에는 웃음 가득 합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실실 흘리고 넣기 때문입니다. 장난이라는 선전포고죠. 하지만 제 몸은 움츠러들고 배배 꼬입니다. 이즈음에 한 마디 더 건넵니다.

 

 

“내 각시, 손(발)이 왜 이렇게 차갑데?”

 

 

이 따뜻한 말 한 마디면 만사형통입니다.

그리고 아내의 손과 발을 꼭 잡고 녹여줍니다. 그러면 아내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사랑 가득한 행복한 얼굴로 바뀝니다. 손발이 찬 저도 간혹 아내에게 이런 장난을 칩니다. 부창부수지요.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장난치면 “그만 하세요”란 부드러우면서도 따끔한 일침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멈추지 않으면 “그만하라니깐”란 격한 어투가 새어나왔습니다. 이 때 그만둬야 하는데, 선을 넘어 계속하다가 결국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부부로 살다보니 삶의 지혜가 생기더군요.

장난이 과하면 안 된다는 걸 몸으로 배운 겁니다. 처용가처럼 내 다리가 남의 다리 안 되려면 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밤, 아내를 혹은 남편을 가슴으로 ‘꼬~옥’ 안아 주세요. 여기서 명심할 건 ‘가슴’으로 안아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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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결혼기념일에 대한 아이들 재밌는 반응
“쿨한 우리 아들, 엄가가 너 키우는 맛에 산다!”

 

 

 

 15주년 결혼기념일에 찾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였습니다.

 

 

 

“올해부턴 결혼기념일 너희들이 챙겨라.”
“결혼한 당사자들이 챙겨야지, 그걸 왜 우리가 챙겨.”

 

 

아내가 아이들에게 호기롭게 내맡긴 결혼기념일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연초에 내팽개친 결혼기념일을 누군가는 다시 챙겨야 했습니다.

 

어제는 15년차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그제 아내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당신 뭐 받고 싶은 거 없어?”
“선물 같은 거 결단코 하지 마요.”

 

 

진정 썰렁했던 아내의 반응에 할 말 없었습니다.

그동안 결혼기념일이면 아내의 직장으로 꽃다발을 배달시켰는데, 이제는 그러지 마라는 선전포고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버린 꽃을 버려야 하기보다는 실속을 챙기자는 의미였습니다. 아내가 제안했습니다.

 

 

“당신 받고 싶은 거 있어?”
“응 있어. 카메라 받고 싶은데.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아.”

“그렇잖아도 카메라 알아봤는데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선물할게요.”

 

 

기분 째지더군요.

그동안 결혼기념일이면 남자랍시고 남편 혼자 무엇인가를 선물하려고 고민했는데, 이제는 아내도 챙기는 모습이 기분 좋았습니다. 이런 기념일은 꼭 남자들만 챙겨야 하는 부당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부부가 함께 챙기는 날이 된 것입니다.

 

 

 

고기를 먹지 않은 아내는 이런 야채를 듬뿍 먹었습니다.

 

 

 

퇴근 후 외식을 제안했습니다.

방학을 맞아 집에 죽치고 있던 아이들이 후다닥 챙겼습니다. 어디 가자하면 꽁무니 빼기에 바빴던 아이들이 웬일이나 싶었습니다. 아마도 연초에 엄마가 맡겼던 결혼기념일에 대한 아이들의 배려였나 봅니다. 가족이 간 곳은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아내의 선물꾸러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물하겠다고 공언(?)했던 카메라는 물 건너 간 걸까?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선물이 꼭 올 거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도 지인이 선물한 카메라가 이젠 쓸모없는 지경임을 아니까.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과 차이가 나는 것을 아니까.

 

 

갈비살 스테이크, 안심 스테이크, 깐배로, 왕새우 치즈 안심스테이크에 와인까지 주문했습니다. 요리 시키며 든 생각입니다. 기념일에는 왜 레스토랑만 찾는지 알 수 없습니다. 뚝배기 집도 좋을 거 같은데….

 

여하튼 요리가 나왔습니다. 와인으로 건배를 제안하고, 짧은 건배사를 건넸습니다.

 

 

“여보, 나랑 살아줘 고맙네.”

 

 

닭살 멘트에 아내는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오싹했습니다.

아내에게 더 잘해야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중년 남자의 동물적 직감으로, 그 웃음 속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내 대신 딸이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아빠, 그걸 알면 됐어.”

 

 

헉. 뼈 있는 말이었습니다.

딸의 눈에도 철부지 남편으로 보였던 걸까? 보는 눈은 역시 무서웠습니다. 어른들의 반면교사라는 아이들에게 비친 아빠 모습은 살갑지 못했나 봅니다.

 

 

 

기념일에는 왜 꼭 레스토랑만 찾는지...

 

 

 

어찌됐건 반성은 제 몫이었습니다. 이쯤에서 아내에게 속죄와 감사를 표했습니다.

 

 

“당신, 진짜 뭐 받고 싶은 거 없어? 말해 보게.”

 

 

재촉에, 아내는 “없다”면서도 뜸을 들였습니다.

아무래도 걸치기 싫어하는, 보석이 농담으로 나올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지없었습니다.

 

 

“다이아몬드가 하나 박힌 팔찌 받고 싶어요. 농담이야.”

 

 

아내도 여자였습니다.

아내가 바라는 팔찌는 평생 해줄 수 없습니다. 아내도 그걸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굳이 꺼낸 이유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또한 열심히 살자는 주문이었습니다.

 

해주고 싶어도 해주지 못하는 아빠의 미안함을 눈치 챘는지, 아들이 끼어들었습니다.

 

 

“엄마, 그거 제가 크면 해줄게요.”
“쿨한 우리 아들, 엄가가 너 키우는 맛에 산다.”

 

 

결혼기념일은 당사자들 몫이라던 아이들이 은연중 엄마 아빠를 챙겼습니다. 가족이 주는 행복이란 이런 거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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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아무 말 않니?”…“아무 말 안하겠어?”
“미술학원 다니고 싶어~. 엄마는 허락했는데~.”

 

 

 

 

 

 

 

 

 

“삼겹살 먹을래? 그 식당에서….”

 

 

아이들과 번개팅은 버스 안에서 보내는 늘 이런 문자메시지로 시작됩니다.

중학생인 딸과 아들 녀석과 대화가 줄어들다 보니 이야기를 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과 점점 더 멀어질까봐 가까워지기 위한 아버지의 처절한 몸부림인 셈입니다.

 

 

아이들과 번개팅은 매번 아내가 없을 때 이뤄집니다.

아내의 부재 사유는 출장이나, 회의, 야근 등입니다. 아내가 있을 때에는 이야기가 얘들 엄마에게 집중되다 보니 아내가 없을 때 편법으로 삼겹살 데이트를 즐기는 겁니다. 그래야 아빠와 아이들 간 속 이야기가 술술 풀리니까.

 

 

“아빠, 나는 콜.”

 

 

딸이 즉각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묵묵부답. 마냥 기다릴 수만 없어, 아들이 없더라도 딸과 둘이서 삼겹살 파티를 결행하기로 했습니다. 다행이 아들과 뒤늦게 연락이 돼 셋이 모였습니다. 삼겹살 3인분 주문이 나가고 아이들이 재잘댑니다.

 

 

 

 

 

 

 

“집에서 아무 말 않니?”…“아무 말 안하겠어?”

 

 

“아빠, 나 미술학원 다니면 안 돼?”
“네가 받은 세배 돈으로 다녀라.”

 

 

딸이 애교 작전을 펼칩니다.

세배 돈이 이미 거덜 난 딸이 애교 작전을 펼칩니다. 딸의 애교 필살기에 마음이 풀립니다. 대신, “왜 미술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아빠를 설득해 봐”라고 한 발 물러섰습니다. 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디자인을 하려면 그림을 잘 그려야 해.”

 

 

‘하는 거 봐서’란 대답을 내뱉으려다 다시 주워 삼킵니다. 딸이 무안할까봐. 그렇지만 쉽게 허락하면 교육 효과가 떨어질 거란 걸 알기에 뜸을 들입니다. 그러는 사이, 주문했던 녹차가루를 품은 삼겹살이 나왔습니다. 주인장, 웃으며 대견하다는 듯, 한 마디 건넵니다.

 

 

“또 딸이 삼겹살 구울 거지? 딸을 참 잘 키웠어요.”

 

 

딸이 삼겹살과 마늘, 양파, 버섯 등을 차례로 불판에 올립니다.

그런데 딸 잘 키웠다는 말 처음 듣습니다. 방학과 동시에 염색하는 딸. 자기가 입고 싶은 요상한(?) 옷은 기필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고 마는 딸.

 

그래선지, 딸은 자칭 친구 사이에서 패셔니스트로 불린답니다. 이상 망측한 옷을 입는 딸에게 친구들이 그런다더군요.

 

 

“그런 옷 입어도 집에서 아무 말 않니?”
“아무 말 안하겠어? 그냥 입는 거지.”

 

 

 

 

 

 

 

“미술학원 다니고 싶어~. 엄마는 허락했는데~~~.”

 

 

 

딸은 삽겹살 육즙이 베어 나오자 뒤집습니다.

고기가 익자 가위로 먹기 좋게 자릅니다. 딸이 “아빠, 이제 먹어”라며 삼겹살을 앞 접시에 놓습니다. 이럴 때 행복감에 흠뻑 빠집니다. 딸 키우는 재미가 이런 건지….

 

딸이 구운 삼겹살 맛은 역시 세계 최고입니다. 이 틈을 타 원하는 대답을 아직 못 들은 딸 필살기를 드러냅니다.

 

 

“아빠~, 나 미술학원 다니고 싶어~. 엄마는 허락했는데~~~.”

 

 

삼겹살을 후다닥 해치운 후, 주문한 소갈비를 올리면서 딸은 또 애교입니다.

대답 대신, 허허 웃으며 “엄마 회의 끝났으면 여기로 오라고 해라”라며 딴청을 부렸습니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답니다. 아내에게 장난성 돌직구 문자를 날렸습니다.

 

 

“삽겹살 계산은 자네가 와서 하시게.”
“허걱.”

 

 

‘알았어요’ 혹은 ‘회의가 아직 안 끝나 못가요’란 문자를 내심 기다렸는데, 아내는 “허걱”이란 단어를 끄집어냈습니다. ‘살다 살다 별꼴 다 보겠다’는 줄임말임을 압니다. 또한 이 단어 속에는 ‘알겠어요’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합니다.

 

그러지 못할 상황이라면 ‘안 돼요’라고 단칼에 잘랐을 게 뻔합니다.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기 값은 밥만 먹은 아내가 계산했습니다. 이런 아내가, 고기 굽고 애교 피우던 딸이 고마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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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장에 올인한 딸 VS 저금에 올인한 아들
세배 돈, 받는 입장서 주는 입장 되어 보니
“이게 바로 돈 세탁 과정을 거친 돈이네”

 

 

 

설 전, 딸은 세배 돈을 쓸 구상에 빠졌습니다.

 

 

“우리 아들 세배 돈 모은 게 벌써 백만 원이 넘었다~.”

 

 

어제 저녁, 중학교 1학년 아들의 세배 돈을 통장에 넣고 온 아내는 밥상머리에서 뿌듯해 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인 딸은 겨우 50만 원 뿐이라며 혀를 찼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돈 쓰는 데에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크더군요.

 

 

“세배 돈 저축할 사람은 엄마에게 돈을 맡겨라!”

 

 

아내의 말에 아들은 세배 돈으로 받은 16만원 전부와 가지고 있던 5천원을 더해 165,000원을 흔쾌히 내놓았습니다.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용돈이 생기면 한 푼 두 푼 모으는 성격이라 허튼 곳에 쓰지 않습니다. 용돈을 줄 때면 “아직 돈이 남아 안 줘도 돼요”라며 거절하는 기특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 딸은 정 반대입니다. 용돈이 생기면 먼저 쓰고 보는, 아내 말을 빌리자면 “돈 쓰는 기계”입니다. 이번 설에 세배 돈으로 받은 18만원을 한 푼도 저금하지 않았습니다. 16만원은 벌써 옷, 모자 등을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달랑 2만원 남았습니다.

 

 

더군다나 딸은 설전에 ‘세배 돈 받으면 어떻게 쓸까?’ 고민 끝에 구입할 옷, 모자, 패션 안경테 등의 구입 구상을 이미 마친 상태였습니다. 딸이 구입할 옷 목록 등을 스케치한 그림을 보면 귀여우면서도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고 보니 세배 돈에 대한 추억과 생각이 많습니다.

 

 

세배 돈 쓸 딸의 스케치가 재밌었습니다.

 

 

 

세배 돈, 받는 입장서 주는 입장 되어 보니

 

 

‘올해 세배 돈은 얼마나 들어올까?’

 

 

어릴 적, 설날 관심사항은 오직 이것뿐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얼마 받고, 누구에게 얼마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른들이 허리가 휘건 말건 관심 밖이었죠. ‘세배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것은 크나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나이 들어 세배 돈을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뒤늦게 깨달은 건, 받았으면 줘야하는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였습니다. 내 주머니에서 피 같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해는 명절이 싫었습니다. 어떤 이는 “명절이 일 년에 한 번만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공감했습니다. 살다 보니 자연스레 세배 돈 지출 원칙이 생겼습니다. 1:1 맞교환 방식입니다. 봉투에 든 세배 돈 액수를 어찌 알 수 있을까 마는.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이 총 5만원을 받았으면 상대방에게도 5만원을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에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에게는 재래시장에서 물건 살 때 좀 더 얹어주는, ‘덤’까지 고려하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사람에게 굳이 야박하게 굴 필요 없으니까.

 

 

아들이 세배 돈으로 받은 젖은 돈을 말리는 중입니다.

 

 

 

“이게 바로 돈 세탁 과정을 거친 돈이네”

 

가정을 꾸린 후 명절이면 세배 돈에 목매는 아이들을 위해 친가와 처가 ‘순례의 길’에 나서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배려이자 미덕의 순례 길이었습니다.

 

이걸 뺐다가는 아이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니까. 이번 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 명절 후 아이들은 세배 돈 세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그것도 잠시, 아들의 긴~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엄마, 내 바지 세탁기에 돌렸어?”

 

 

아들은 후다닥 주머니에서 젖은 세배 돈을 꺼내 책상에 쫙 펴 말렸습니다. 그 광경을 본 아내가 웃으며, “이게 바로 돈 세탁 과정을 거친 돈이네”라며 음성적 방법으로 비자금을 챙기는 못된 정치 행태를 꼬집어 비유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절을 해 번 노력의 대가를 더러운 정치자금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습니다.

 

 

“너희 친구들은 세배 돈 얼마나 받았대?”

 

 

친구들은 몇 만원에서 사십여 만 원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두둑하게 챙긴 세배 돈이 주는 즐거움은 가만히 갖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입니다. 그렇지만 오직 돈 쓰는 데에 집중 중인 딸을 보며 아내가 뼈 있는 말을 했습니다.

 

 

“치장하는 것처럼 공부 좀 하지. 내가 저걸 뭘 먹고 낳았을까?”

 

 

잔소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내. 그런 엄마에게 굴하지 않고 저축마저 거절한 딸은 ‘남은 2만원을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에만 오롯이 정신 팔려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 우뚝 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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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면 좋을 걸…
어른과 아이를 차별했던, 면도의 추억

 

 

 

 

 

 

 

민족의 대 명절 설입니다. 올 한해 즐거움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명절에 빠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발입니다.

여기에 얽힌 추억이 많습니다. 부모님은 명절이 다가오면 꼭 이발을 시켰습니다. 조상들과 동네 어르신께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려면 머리가 단정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어릴 적, 명절이면 이발소에 가면서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미장원이 널렸다면 모를까, 그 시절에는 미장원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이발소도 마을에 한 두 개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발소에 “손님이 적었으면…”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하지만 명절 때면 이발소에는 언제나 사람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이발사가 밥 먹을 시간도 아껴야 했으니깐. 소위 말하는 이발소의 ‘대목’이었습니다. 아이부터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순번을 정해 자리에 앉아 순서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끌시끌. 이럴 때 어른들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미리미리 머릴 깎아야지, 뭐하다 이제 깎냐?”

 

 

대답을 바라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번 씩 웃으면 되었습니다. 순서를 지루하게 기다려야 하는 원망(?)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순서를 기다리는 지루함이란…. 지루한 시간을 달래는 방법은 과자를 사먹거나 만화책을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간혹, 놀다가 오는 때에는 순서가 한참 뒤로 밀렸습니다.

불만이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이발소 아저씨는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면 좋을 걸, 뭐 하러 좁은 이발소에 이 많은 사람을 잡아두는지’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순번이 가까워지면 이런 불만도 사라졌습니다.

 

 

이때의 추억은 어른이 된 후에는 한 달 전 쯤 머리를 손질하는 지혜로 돌아왔습니다. 명절이 가까워 머릴 깎는 건 촌스러운, 혹은 준비성 없는 일로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차례가 되면 의자 양쪽에 판자를 대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이 때 빨리 커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이발사 아저씨는 요즘처럼 “어떻게 잘라 줄까?”란 물음도 없었습니다. 수년 간 쌓인 실력이 여지없이 발휘되었습니다.

 

 

 

 

 

머리를 자른 후, 면도의 기억도 아직까지 뚜렷합니다.

 

먼저 솔에 비누를 묻혀 거품을 냅니다. 얼굴과 목 뒤에 비누를 쓱싹쓱싹 문지릅니다. 그게 어릴 대에는 왜 그리 간지럽게 느껴졌는지…. 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하는 사건은 그 뒤에 나타났습니다.

 

 

어른들은 어깨에 종이 등을 얹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필요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면도 찌꺼기와 비누거품을 종이에 닦는데 반해 아이들은 머리에 쓱 문댔습니다. 어릴 때 이게 정말 싫었습니다. 아이들도 손님인데 제대로 된 손님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땐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머리 감을 땐 어땠습니까.

 

손이 큰, 힘이 쌘 아저씨의 투박한 손길로 비누를 칠하고, 머릴 빡빡 문지를 때면 아파 어깨를 움츠려야 했습니다. 어쩌다 아주머니가 머릴 감겨줄 때면, 부드러운 손길에 대해 횡재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잔머리를 손질할 때는 온몸에 상쾌함 가득했습니다.

 

 

“우리 아들 잘생겼다.”

 

 

머리를 자르고, 짠 나타나면 웃음보따리를 얼굴에 듬뿍 짊어진 어머니께서 했던 말입니다. 당시 그 말에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아주 기분 좋은 말이었으니까. 어릴 적, 명절 때 이발소의 모습이 아직까지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정겨움은 다 어딜 갔는지….

 

 

하여튼, 올 해에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복 많이 받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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