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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열 개인전 - 빛의 속살을 그리다
작가 강종열을 구해낸 한국 미술판 ‘쉰들러 리스트’
대작 ‘동백’ 구상과 스케치 및 완성까지 2년 걸려
“동백 숲은 생명이 산란하는 느낌이어서 참 좋다!”

강종열 개인전 <빛의 속살을 그리다>에 감탄하다

 

 

 

 

 

 

강종열 그에게 동백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강종열 화백.

 

동백은?

 

 

 

 

 

 

 

 

잊고 있었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잊었던 기억을 희미하게나마 되살린 건, 아내였습니다.

 

 

 

 

- 당신 오늘 뭐해?
“내가 말 안했나? 오늘 딸하고 전시회 데이트 있는데.”

 

 

- 무슨 전시회인데?
“우연히 본 동백 그림이 참 좋더라고. 딸이랑 그림 전시회 가기로 했어.”

 

 

- 혹시 강종열 화백 전시회야?
“어. 오늘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라 꼭 가야 돼.”

 

 

- 지인이 가족과 같이 강 화백 전시회 꼭 보라더니 기막힌 우연인데?
“잘됐네. 우리 같이 가게.”

 

 

 

이렇게 마치 뭐에 홀린 듯 여수시 웅천 예울마루로 향했습니다. GS칼텍스 예울마루 앞 풍경은 한산하고 여유로웠습니다. 장도 등 섬들이 보이고, 섬과 육지를 오가는 통로인 장도 방파제가 사라졌습니다. 물이 들어 방파제를 삼켰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 자체였습니다.

 

 

 

 

 

예울마루 앞 풍경이 그림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전시회입니다.

 

 

예울마루

 

 

 

 

 

“진짜 열정을 바친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전시회에 가면서 여수막걸리 임용택 대표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전시회에 다녀온 임 대표가 감탄에 감탄을 쏟아내며 볼 것을 권했기 때문입니다.

 

 

 

“강종열 그림 전시회에 한번 가 봐. 종열이가 그림에 진짜 열정을 바쳤더라. 가족이 같이 못 보면 너 혼자서라도 꼭 봐라.”

 

 

 

임용택 대표가 무언가를 권하는 건, 술을 제외하고 단연코 처음이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임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진짜 열정을 바친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궁금증이 밀물처럼 확 밀려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깨알같이 자랑 했습니다.

 

 

 

“예전에 강종열 화백이 살기 힘들 때, 예술가 후원 내지는 지원을 위해 그림을 샀는데, 그 그림도 이번에 함께 전시한다고 주라 하데. 우리 소장품 이외에 과거에 팔린 다른 몇몇 작품들도 함께 전시하더라고.”

 

 

 

그가 달리 보였지요. 역시 그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가슴이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림을 사고 전시회나 공연을 보는 건 힘든 예술가를 위한 배려 속 나눔의 한 방법입니다. 가난한 예술가를 위해 기꺼이 투자하는 배려가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래, 전시회 가겠다고 마음먹은 거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내에게 스케줄을 묻기 전까지 지인의 권유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 뭡니까. 그럼, 강종열 화백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동백

 

뒷골목

 

 

동백

 

 

 

 

 

강종열 화백의 전시회 <빛의 속살을 그리다>

 

 

 

 

강종열 화백의 전시회는 <빛의 속살을 그리다>란 주제 아래 ‘21세기 인상주의를 열다’란 부제로 마련된 그의 회화 40년 기념전입니다.

 

 

알고 보니, 전시 기간은 1월 15일부터 2월 14일까지였는데, 오는 21일까지로 1주일을 늘렸더군요. 지방에선 드문 입장료(1,500원에서 3,000원)가 붙은 전시회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강종열 화백의 기획 초대전은 네 가지 소주제로 나뉘었대요.

 

 

첫째, 어촌 여수의 풍경과 노인과 어부라는 서민의 삶을 표현한 초기 작품.

둘째, 그가 자신을 대하듯 꾸준하게 그려왔던 동백꽃.

셋째, 신생 독립국 동티모르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동티모르 그림.

넷째, 예전 전시회에서 팔았던 그림 전으로 구분되었더군요.

 

 

 

 

조씨영감

 

바닷가 이야기(슬픈 하루)

 

등대 가는 길

 

남산동과 봉산동 사이

 

 

 

 

 

재미있게 다가왔던 건 여수 토박이의 시선으로 우리의 암울한 시대를 가감 없이 표현했던 초기 작품 <등대로 가는 길(97*130.0cm, 1988)>, <뒷골목(145*112cm, 1984)>, <남산동과 봉산동 사이(53.0*90.5cm, 1989)>, <바닷가 이야기(슬픈 하루, 97.0*130.3cm, 1991)>, <(45.0*53.0cm, 1986)>, <향일암 가는 길(임포마을, 97.0*130.3cm, 1993)>, <조씨 영감(어부시리즈)> 등이었습니다.

 

 

 

 

왜냐면 여기에 등장하는 풍경은 여수에 사는 우리들이 늘상 접했던 친숙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굴곡진 삶의 한 가운데에 내팽개쳐진, 친근한 ‘서민’이라는 이름의 인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말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첫 국선 입상작품인 <정오(145.5*97.0cm, 1977)>는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지요.

 

 

 

 

기상천외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30m가 넘는 대작 ‘동백’이었지요. ‘저걸 어떻게 그렸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작가에 따르면 대작 ‘동백’은 “여수의 상징인 동백 숲을 매개로 생명의 잉태와 삶의 질곡을 빛으로 묘사한 거”라 합니다. 그래선지 힐링을 불러오는 묘한 매력 가득했습니다. 정말이지 강종열 화백이 일냈지 싶었습니다.

 

 

 

 

 

향일암 가는 길

 

 

강종열 화백의 첫 국전 입선작품인 <정오>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대작 <동백>입니다.

 

 

 

 

 

작가 강종열을 구해낸 한국 미술판 ‘쉰들러’들

 

 

 

이국적 그림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강점기에서 벗어나 2002년 독립을 이룬 동티모르의 암담한 현실이 화폭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해방을 얻기까지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의 삶과 풍경들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 평화를 되새기게 했다. 암튼, 우주 속 존재에 대한 성찰의 기회였습니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개인전 66회, 단체전 500회를 거치면서 팔렸던 작품들을 다시 모아 전시 중이대요. 그 작품들 옆에는 소장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이들은 40년 전, 스물일곱 나이에 지역에서 험난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배고픈 그에게 작은 힘을 보탰던 아름다운 사람들 명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작가 강종열을 구해낸 한국 미술판 ‘쉰들러’들이었습니다.

 

 

 

하여, 이를 보고 옛날 선비들이 사랑방을 두고 자기 집을 찾는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던 공존공생의 현장을 떠올렸습니다. 이런 거룩한 상생의 문화를, 돈만 쫒는 졸부들이 감히 어찌 알겠습니까. 그림 한 점이, 있는 사람에겐 별 거 아니지만 없는 사람에겐 꿈과 목숨을 좌우하는 ‘생명의 발아 점’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암튼, 아내와 딸과 함께 전시장을 두 번이나 꼼꼼히 둘러보았습니다. 지금껏 전시회에서 한 번 본 걸 다시 둘러보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말입니다. 디자이너가 꿈인 딸은, 그래서 미술학원에서 고강도 수업 중인 딸에게 대작 ‘동백’이 달랐나 봅니다. 글쎄, 대작 ‘동백’ 앞에서, 치마를 입은 채로, 전시실 바닥에 앉더니, 그대로 드러눕지 뭡니까. 이심전심일까. 이를 본 강종열 화백, 그도 놀라며 그러더군요.

 

 

 

“그게 바로 동백 숲속에 누워서 힐링하는 거다.”

 

 

 

 

 

강종열 화백의 대작 <동백> 앞에서 누워 힐링하는 딸입니다.

 

 

 

 

 

 

대작 ‘동백’ 구상과 스케치 및 완성까지 2년 걸려

 

 

 

다음은 ‘강종열’ 화백과 인터뷰입니다.

 

 

 

 

강종열 화백과 제 딸~^^

 

 

 

- 동백꽃의 작가로 불린다. 동백이 주는 의미는?


“동백은 여수의 상징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뿌리 같은 거다. 왜냐하면 동백은 겨울을 참고 견디는 엄청난 힘이 있다. 이는 강인한 정신력이지 싶다. 반면에 동백은 고우면서도 수줍은 구석도 있다. 한편으로 동백꽃은 한 잎 한 잎 떨어지지 않고, 깨끗하게 통으로 떨어진다. 이런 게 나와 닮은 것 같다. 그래 ‘동백=나’로 본다. 동백을 그리는 건 내 자신을 그리는 것이다.”

 

 

 

 

- 입이 쩍 벌어질 규모다. 대작 ‘동백’의 크기는?


“200호짜리 10개를 붙였으나, 실제 크기는 3,700호다.”

 

 

 

 

- 대작 ‘동백’을 그리는데 걸린 기간은?


“그림 그리기 위해 여수에서부터 전국 유명 동백 숲을 전부 찾았다. 심지어 대마도에 있는 동백 숲에도 다녀왔다. 그러니까 동백 숲을 보고 구상하며 스케치 한 후 그림 그리기까지 합하면 2년이 걸렸다. 순수하게 붓을 댄 기간은 1년 2개월이다.”

 

 

 

 

- 대작 ‘동백’을 보면 물감이 엄청 들었단 걸 알 수 있다. 사용한 물감 양은?


 

“사람들이 재미삼아 물어보곤 한다. 사실 물감이 엄청 들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물감이 두껍게 사용돼 깊이가 있다. 물감이 얼마나 들었냐고 물어오면 여수 시세로, 아파트 한 채 값은 들었다고 대답한다.”

 

 

 

 

 

 

 

그림을 설명하는 강종열 화백입니다.

 

 

 

 

 

“동백 숲은 생명이 산란하는 느낌이어서 참 좋다!”

 

 

 

 

- 대작 ‘동백’은 왜 그리게 되었나?


“유럽 등 각종 전시회에서 화가 ‘모네’의 대작 <수련>을 봤는데,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더라. 그래 빛을 다른 각도에서 한 번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정신적 뿌리 같은 강인한 동백 숲의 빛을 그리면서 인상주의 그림과 다른 빛의 모형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걸 ‘21세기 신인상주의’로 이름 붙였다. 더불어 한국 미술사에 영원히 남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화가의 욕망이랄까.”

 

 

 

 

- 대작 ‘동백’ 그림 완성 후에 느낌은?


“하루에 10시간씩 꾸준히 육체적 정신적 노동 끝에 얻은 그림이다. 그림 그리는 동안 팔다리가 성한 곳이 없다. 그만큼 온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선지 완성 후 신비스러웠고, 자부심과 희열도 느꼈다. 후회 없고 만족한다.”

 

 

 

 

- 내가 보기엔 동백 숲이 대체로 어둡다. 이유는?


“실제로 동백 숲에 들어가면 어둡다. 동백 숲은 더 어두워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다른 숲도 그러겠지만 특히 동백 숲은 검고 촘촘해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다. 어두운 동백 숲은 생명(빛)이 산란하는 듯한 느낌이어서 참 좋다. 뿐만 아니라 동백 숲 속의 동백 잎은 어둠 속에서 빛의 파장에 따라 수 만 가지 색깔로 변한다. 이 느낌이 좋아서 어둡게 표현했다.”

 

 

 

 

- 대작 ‘동백’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은?


“입소문이 나서 지역 사람뿐 아니라 전국에서 사람이 온다. 한 번 전시회를 보고 간 사람들이 두 세 번씩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시 기간을 1주일 연장했다. 아마, 이런 크기의 그림은 안보다가 보니 생소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어떤 관람객은 작품 ‘동백’에서 진한 녹색과 푸른 바다의 느낌이 함께 난다고 한다. 맞다. 잎의 녹색과 바다색의 깊이를 조화롭게 표현하려 했다. 다들, 관심 있게 봐 줘서 감사하다.”

 

 

 

 

 

 

 

강종열 화백은 국내 최초의 동백꽃을 전문 작가이며, 여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특히, 2011년에는 국제박람회기구 BIE 사무총장에게 여수를 상징하는 동백꽃 그림을 선물하여 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개최를 기원했습니다. 또한 2014년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에게 작품을 직접 선물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강종열 화백은 미국과 프랑스, 중국,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을 돌며 전시회를 열었으며 개인전 66회, 단체전 500회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워싱턴 시립은행, 필리핀 대통령궁, 만델리용시 미술관, 동티모르 대통령궁,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바티칸 성당, 원자력병원, 해양수산부, 광주시립미술관, 여수시티파크 등 세계 곳곳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전시회 풍경...

 

 

동백 그림은 강종열 화백을 상징합니다.

 

동백은 우리 민족처럼 강인함이 있습니다.

 

 

 

 

강종열 화백 전시회는 내일까지(2월 22일)이니 서두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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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임 씨가 느끼는 부부 사랑의 변화 과정
하얀나무 화우회 그림전시회에서 느낀 단상
화우회 단체전, 여수 예울마루 7층 전시실서 12일까지

 

 

 

 

 

 

 

지난 6일, 여수시 웅천동 예울마루 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아마추어 작가들인 ‘하얀나무 화우회’의 단체 전시회에 갔습니다. 이 전시회는 오는 12일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단체전을 감상하다 색다른 점을 발견했습니다.

 

 

일반적인 전시회에서는 그림 옆에는 그림 제목과 규격 등을 작가 이름과 함께 적는데, 이번에는 작가 이름만 붙어 있었습니다. 하여, 작품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몇 작품의 제목 등을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림보다 더 흥미로운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해로동혈(偕老同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체전에 나선 이윤임 씨의 말입니다.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더군요. 알고 보니 “해로동혈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부부는 살아서는 함께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의 ‘부부의 맹세’”더라고요. 부부 인연을 쉽게 생각하는 요즘 세태와 달리 구시대적 부부 상을 떠올리는 케케묵은 부부상이 의미롭게 느껴졌습니다.

 

 

해로동혈은 이윤임 씨의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해 주신 말씀이라 합니다. 그녀도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고 살기에 힘이 부친답니다.

 

왜냐? 남편은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걸 못한답니다. 심지어 “시어머니께서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밉다”며 “네가 고생하고 산다“고 격려하신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의 연을 맺는 이유는 단 하나.

 

 

“궁핍했던 결혼 생활을 이제야 접었지만 그래도 의지할 언덕은 부부, 서로 밖에 없다는 것 때문이다. 부부는 ‘그래도’가 중요하다.”

 

 

이윤임 씨는 부부를 그대로 그림 ‘해로동혈’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부부의 의미에 대해 끌적거렸다던 종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가 지금껏 느꼈던 부부 사랑의 과정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시작할 때 하늘의 양털구름은 솜사탕이었고
수평선 언덕배기 별을 품은 밤바다는 빛나는 보석이었다.

 

뿌리기만 하면 곱절로 살찌워 주는 옥토는
내가 가는 길도 신작로로 해 줄줄 알았다.

 

아름드리 나무 아래 눈을 감은 귓가에 간질이는 바람도
영원한 사랑의 속삭임인 줄 알았다.

 

그땐 그랬다…,

 

양털구름에 비가 숨어 있었고,
뜰채에 가득 담긴 별빛 밤바다에 풍랑이 숨어 있었고,

기름진 흙 아래엔 마의 트라이앵글 늪이
도사리고 있었다.

 

분명!!

 

Sweet Whisper 였는데
알 수 없는 언젠가부터 태풍이 일고 있었다.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이 고난을 함께 했기에 애잔하고 아픈 거
그게 부부이던가!

 

나는 偕老同穴(해로동혈) 할 수 있을까
숙연한 글귀에 고개가 조아려 진다.

 

사바세계를 지나 淨土(정토)로 가고 싶다
태양이 머물렀던 도시!
잉카제국의 마추픽츄라도 오늘 밤 가리라

 

영원한 Utopia를 꿈꾸며….

 

 

누군들 안 그럴까.

이 글 속에는 사랑의 달콤한 꿈을 갖고 결혼했으나, 행복도 잠시. 서로 뻔히 들어나는 ‘존재의 얕음’에 실망하고 마는 부부 관계.

 

그러나 이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자 하는 인내와 희생…. 편함과 위안을 찾으려는 삶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의 그림 속에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글을 본 후 다시 해로동혈 그림을 보니 의미가 확 달라지더군요. 또한 더욱 친근해졌고요. 이는 뭐랄까, 지휘자 금난새 씨가 어려운 클래식 연주에 설명을 덧붙여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으로 재탄생시킨 것과 같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림은 부유층만 즐기는 취미생활인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해보니 가난과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었다. 그림을 그릴 때 가슴 속에 맺힌 것들을 물감으로 풀어낼 수 있어 행복하다.”

 

 

그림을 대하는 이윤임 씨 마음의 변화입니다. 그래선지, “자신이 하고픈 건 과감히 도전하라!”고 합니다.

 

 

‘멍석을 깔아줘도 못하는 마당’에 그게 어디 쉽던가요. 그렇지만 도전만이 방황을 끝낼 지방의 무기라더군요. 이게 어디 그림뿐이겠습니까. 자신에게 맞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윤임 씨는 6년 전부터 그림에 도전하면서 없었던 꿈이 생겼답니다. 60이 되면 그림과 시를 하나로 묶은 시화전을 하고 싶답니다.

 

 

시화전을 통해 어릴 적 꿈이었으나 멀어져만 가는 ‘작가의 길’과 살면서 새롭게 생긴 ‘그림의 꿈’을 한꺼번에 실현하고픈 간절한 열망이 그것입니다. 이 속에는 또 다른 꿈이 녹아 있습니다.

 

 

“‘바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 그것도 ‘도솔천을 다녀 온 바람’을…. 이 말을 듣고 주위에선 ‘꿈 깨라’ 하지만 난 욕심이라도 꼭 하고 싶다.”

 

 

헐~. 도솔천을 다녀온 바람은 어떤 바람일까?

전생, 어느 시점에 잠시 머물렀을지도 모를 도솔천이지만, 현생에선 기억할 수 없는 도솔천이기에,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꿈이 있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미래는 이렇듯 꿈꾸는 자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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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5회 정기연주회를 본 소감

 

 

 

 

 

 

 

“당신, 음악회 갈래?”

 

 

아내에게 제안했더니,

 

“당신이 웬일?”

 

이라면서도 엄청 반겼습니다.

 

 

저희 부부가 지난 금요일에 간 음악회는 여수 예울마루에서 펼쳐진 ‘유려한 선율과 깊이 있는 음색 몰도바국립방송교향악단과 함께하는 스위트 콘서트’ 및 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5회 정기연주회였습니다.

 

 

지방에서 이런 공연은 별로 없는 터라 정신 휴식을 위한 문화 유희가 필요해 기필코 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당일 오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뒤통수치는 문자를 보내왔더군요.

 

 

“안 가면 안돼요? 바빠 죽을 지경인데.

오늘은 다른 분하고 데이트 하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연말이면 업무에 파묻혀 지내는 걸 뻔히 알면서도 예약을 했던 마당이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내에게 영혼의 정화가 필요했기에 남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바쁨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공연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아내 의견을 무시하고 답신을 보냈습니다.

 

 

“일은 다음에 해도 되지만 여유는 이때 아니면…”

 

 

 

 

우여곡절 끝에 음악회에 갔습니다.

남녀노소 많은 사람이 왔더군요.

 

반가운 지인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연주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표와 예술 감독을 겸하고 있는 임송 씨의 연주 설명과 함께 연주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동부 유럽의 작은 공화국인 몰도바의 몰도바국립방송교향악단의 연주는 유려하면서도 화려했습니다.

 

연주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박쥐’ 서곡, 안혜림 교수와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협연, 색소폰 연주자 최정섭 교수와의 라라 그라나다 협연,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비발디 사계 중 겨울 전곡 등이었습니다.

 

 

또 모리꼬네 가브리엘 오보에,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폴카 등의 연주가 있었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깔리다가도 경쾌한 리듬이 빠르게 진행되는 선율에 빠져드니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더군요. 몸이 음악을 찾고 있었던 증거였습니다.

 

 

사실, 커가면서 클래식 음악은 별로였습니다.

이에 반해 아내는 클래식을 끼고 살았더군요.

이 자체가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인 건 결혼 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눈이 번쩍였던 건, 지휘자였습니다.

 

손효모 지휘자는 2005년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 카잔의 타타르스탄국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위촉돼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0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을 수상했던 (사)중앙오페라단과 여수 필하모닉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손효모 지휘자가 불가리아 슈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에서 지휘 경력을 갖고 있는 것보다 그가 여수 출신이라는 점에 혹했습니다.

 

문화 여건이 부족한 지역에서 잊지 않고 문화 봉사를 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왜냐하면 국제적 명성을 갖는 이들이 자칫 소홀하기 쉬운 지역 문화 봉사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활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연주회를 통해 오랜만에 내 영혼에게 휴식을 준 것 같다.”

 

 

아내의 연주회 소감입니다.

더불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주가 마음을 울렸다”더군요.

그러면서 “이제부턴 매일 음악을 들어야겠다”더라고요.

 

하여튼, 이 소릴 들으니 기쁨 두 배.

클래식에 문외한 남편과 사는 아내의 비애(?)를 어느 정도 해소해 준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 흡족했습니다.

 

 

연주회를 본 제 느낌은 이랬습니다.

옛날 외할머니 댁에 가서 화롯불 앞에 앉아 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주신 홍시를 따뜻하게 넙죽 받아먹은 기분이었지요.

 

특히 아~, 음악이란 게 모르는 사람에게도 묘한 감동을 주는군, 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기말시험 준비 등으로 짬을 낼 상황이 아니었지만, 녀석들이 거부하는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기고 가족이 함께 갔어야 했는데’ 후회가 들었습니다.

 

 

앞으로 음악회, 공연, 전시회, 연극, 영화 등을 통한 문화 유희를 늘려야겠다는 다짐도 살짝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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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속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기 전 멈춤의 의미
“인간이 만든 물건으로 인해 힘든 자연 표현”
김태완 화가 네 번째 개인전, ‘새! 하늘을 날다…’
 

 

 

 

 

혹부리 오리(41×31, 파브리아노지 수채, 2013)

 

 

전시 관람객을 맞아 이야기하는 김태완 화가.

 

개똥지빠귀(34×24, 아르쉬지 수채, 2013)

 

 

 

‘새! 하늘을 날다…’

 

 

김태완 화가가 <새>전(展)을 열고 있습니다.

김 화가의 4번째 개인전인 이번 새 전시회는 오는 20일까지 여수시 화장동에 자리한 전라남도학생교육문화회관의 ‘린 갤러리’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연을 주제로 한 김 화가의 옴니버스 전시는 ‘새’전에 이어,

‘물고기’전, ‘들꽃’전 등까지 계획되어 있어 관심이 쏠리는 중입니다.

 

 

 

 

전시관 입구의 김태완 화가.

 

물총새(32×24, 아르쉬지 수채, 2013)

 

 

 

그는 <자연 시리즈>전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인간이 만든 물건으로 인해 자연이 힘들어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자연들이 이제는 멸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자연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는 거추장스런 옷들을 몸에 걸치지 않고도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 온 태초의 인간으로의 회귀 본능이지 싶습니다.

 

문명은 인간의 욕심과 탐욕을 숨긴 채 편리성과 풍요를 주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자연 훼손으로 인해 다른 생명들을 멸종 위기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니까 김태완 화가의 <자연 전>은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문명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새, 물고기, 들꽃 등 모든 자연을 품고자 하는 한 인간의 애타는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마우지(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방울새(34×24, 아르쉬지 수채, 2013)

 

 

 

김태완 화가의 전시실을 찾았습니다.

그는 전시실 벽면에서 날고 있는 새를 하염없이 보고 있었습니다.

 

김 화가가 빠져 있던 그림은 눈을 크게 부라리며, 날개를 활짝 펴고, 발톱까지 확 세운 ‘독수리’였습니다. 그는 기꺼이 그림 속 독수리 밥이 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 설까, 그의 갈기(머리카락)는 문명으로 인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자연마냥 검은 갈기 사이사이에 흰 갈기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김 화가의 갈기는 고통스런 다른 생명을 바라보는 사랑스런 고뇌의 눈, 그 자체였던 셈입니다.

 

 

 

독수리(41×31, 파브리아노지 수채, 2013)

 

 

 

 

“새의 골격이나, 물고기 잡을 때의 자세, 새의 특징 등 객관적 시각을 보여주는 것에 충실했다.”

 

 

김태완 화가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입니다.

 

그는 남해안의 철새와 붙박이 새를 그리면서 새의 특징에 주목했습니다.

황조롱이 특색은 날다가 공중에 멈추고 먹잇감을 살피는 몸짓이고, 솔개는 꼬리가 'M'자 형태라는 것입니다. 세밀한 관찰이 동반된 특징들입니다.

 

 

 

 

공중에 멈춘 채 먹이감을 살피는 황조롱이(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꼬리가 'M'자 모양인 솔개(29.8×42, 아르쉬지 수채, 2013)


 

전시실에서의 김태완 화가

 

 

 

 

“그림은 손 뿐 아니라 발로도 그리고 온 몸으로 그리는 과정이다.”

 

 

김태완 화가가 새들을 관찰하며 다시 한 번 절절히 느낀 소감입니다.

그냥 획득되는 게 없는 삶에 대한 깨달음일 것입니다.

 

 

<새! 하늘을 날다>전을 보러 온 신재은 씨는 감상평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사라져 가는 위기의 새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같고, 우리 2세들을 향한 교육적 측면이 강하게 느껴져 좋다. 아이들이 그림을 보고 상상력을 키워가길 바란다.”

 

 

이런 바람을 알았을까.

김태완 화가는 자연 그림들은 조류도감이나 식물도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의미 있는 작업인 셈입니다.

 

 

 

 

고방오리(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매(29.8×42, 아르쉬지 수채, 2013)


 

말똥가리(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멸종 위기의 ‘남해 삼광조’ 그림은 둥지 속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기 전 멈춤의 시간에서 자식을 향한 어미의 지극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또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물까치’ 발아래에 핀 꽃에서 상생을 보았습니다. 이게 자연의 이치인 것을….

 

 

 

 

긴 꼬리가 특색인 남해삼광조(31×41, 파브리아노지 수채, 2013)


 

 

물까치(32×24, 아르쉬지 수채, 2005)

 

참새(32×24, 아르쉬지 수채, 2013)

 

 

 

 

“제 남편요? 치열하고 열정적이지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제게 행운이지요.”

 

 

김태완 화백의 부인인 박진희 씨의 남편에 대한 평입니다.

화가 부부인 이들은 서로가 조언하고 격려하는 중에 용기를 얻는다고 합니다.

부부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도 서로 보살피며 살아야 힘을 얻는 공생 관계임을 알아야겠습니다.

 

 

“나의 작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 있으며 들풀처럼 우리 주변에서 항상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대상에 있다.”

 

 

김태완, 그의 아름다운 도전이 세상을 밝히는 작은 초석되길….

 

 

 

 

청둥오리(42×29.8, 아르쉬지 수채, 2013)


 

 

왜가리(31x41, 파브리아노지 수채, 2013)

 

흰뺨검둥오리(42x29.8, 아르쉬지 수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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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비바리가 좋아하는 새를 주제로한 그림이로군요.
    멋집니다.....

    잘 지내시지요?
    저는 두번째 요리책 작업을 마쳤습니다..
    가을에 출간예정이에요

    2013.08.16 10:24 신고

앉아서 코풀다, 지인 덕에 금난새 음악회 보기
“당신이 그렇게 클래식을 좋아할 줄 몰랐네!”

  

 

 

금난새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왜? 금난새, 금난새 그러는지 알겠다.”


“오랜만에 영혼이 맑아지네요. 고마워요.”

 

 

지난 25일 밤 7시30분, 여수 MBC가 기획하고 GS칼텍스 예울마루 공연장에서 열린

<금난새의 신년 음악회>를 본 저와 아내의 평입니다. 이 공연요? 깜짝 놀랄 만큼 ‘힐링’이 되더군요. 공연을 보며, 감히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젊었을 때 이런 공연을 봤다면 아마 내 인생도 달라졌을 거다.’

 

 

감히 이렇게 말하는 건, 금난새 씨도 “공연에서 지휘하는 걸 보며 지휘자를 꿈꿨다”던 것과 같습니다. 다들 아실 테지만 지휘자 ‘금난새’ 이름이 허명이 아니더군요.

 

음악이 주는 알싸한 감동도 꽤 크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음악회를 가려는 거구나, 이해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봤으면 더 좋았을 걸, 아쉬움이 컸습니다.

 

 

KBS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온 지휘자 금난새 편을 보고, ‘참 멋있다’고 느껴 몇 차례 더 돌려봤습니다.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계속되는 도전 정신에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던 뒤끝이라, 음악회를 본 후 금난새와 음악에 대한 호감이 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래서 동ㆍ식물에게 음악을 통한 성장 촉진과 아픈 사람을 음악으로 치료하는 거구나 이해했습니다.

 

 

공연 팜플렛에서 찍은 금난새 지휘자입니다.

 

 

 

앉아서 코풀다, 지인 덕에 금난새 음악회 보기로

 

 

사실, 2주 전 지인이 금난새 공연 보자고 할 때만 해도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공연 시간이 직장인에게 가장 황금 술시인 금요일 저녁인 것도 그랬습니다.

 

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음악 공연인지라 쉬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인의 “아내와 같이 가자”는 제안에 흔쾌히 ‘OK'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지나가다 클래식이 나오면 저거 누구 작품에 몇 번까지 줄줄이 꿰며, “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나오네”하고 즐거워하던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내 말을 빌리자면 “클래식과는 담싼, 그래서 더 멋대가리 없는 남편 만나, 음악회 구경조차 못한” 아내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남편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에게 ‘음악회에 갈 의향 있는가?’라고 직접 묻지 못하고, 지인에게 아내 일정을 모르니 음악회 관람 제안을 대신 해 주십사 미뤘습니다. 그랬더니 한 소리 하대요.

 

 

”너희 부부는 서로 스케줄 공유도 안 하냐?“
“코앞에 닥친 일정도 잊기 일쑨데 2주 후를 어찌 기억해요.”
“잘 한다, 잘해. 남편이 아내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냐. 내가 알아볼게.”

 

 

타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지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출장이 겹치지만 그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허락했다“고 하대요.

 

그럼, 그렇지. 아내가 이런 공연 못 봐 안달인데, 이걸 놓칠 리 없지,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지인 덕에 앉아서 코 푼 격입니다.

 

 

공연 팜플렛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클래식을 좋아할 줄 몰랐네!”

 

 

세계적 지휘자 금난새가 선보인 음악은 주페의 <경기병> 서곡,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소프라노 서활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인형의 노래>(소프라노 서활란), 로저스의 ‘사운드 오브 뮤직’ 메들리 등이었습니다.

 

또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 <미션> 주제곡 가브리엘 오보에(색소폰 송동건),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니아 루스티카나> 중 간주곡,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4번 f단조 Op.36 등이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앵콜과 브라보가 터져 몇 곡을 더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연주를 들으면서 제가 놀랐던 건, 몸이 절로 리듬을 탔다는 겁니다. 사물놀이나 마당극 등을 보면 절로 몸이 따라 움직이던 것과 같은 흥겨움이었습니다.

 

특히 지휘는 가만 서서 손으로만 하는 줄 알았더니, 온 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며 연주자들을 이끄는 몸짓에서 묘한 감동이 느껴지더라는 점입니다.

 

 

천석의 관람석은 매진이었습니다.

 

 

“가만 앉아서 박수만 치기보다 때론 ‘브라보’를 외치면 공연자들이 더 큰 힘을 받는답니다.”

 

 

그의 음악을 설명하고, 박수와 ‘브라보’를 외치는 방법을 안내하며 말끝에 나오는 ‘답니다~’ 어투는 묘한 여운이었습니다.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의 몸짓에서, (이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천상 <광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람객을 한 손에 넣고 쥐락펴락했으니까. 분명 금난새 그는 큰 광대임이 분명했습니다.

 

저에게 그는 악기를 하나로 엮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주방장’이자 ‘요리사’였습니다.

 

하여, 저는 그가 차린 음악 요리를 그저 수저만 들고 맛있게 퍼 먹기만 하면 되는 게으름뱅이 미식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행복한 미식가였습니다. 이런 미식이라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즐길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클래식을 좋아할 줄 몰랐네. 교수님, 저희 부부에게 공연 보여준 거 감사해요.”

 

 

아내도 놀라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아내는 좋은 요리사가 만들어 낸 음악이란 맛있는 요리를, 마음이 고운 사람과 함께 먹을 수 있었던 게 퍽이나 좋았나 봅니다. 아~, 금난새가 선물한 음악은 지금까지 감동입니다.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여수 예울마루와 소호동 야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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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문살 민속극, 정치 자금 현주소 풍자 ‘웃음’
돈거래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다 눈 뜬 봉사?

 

 

 

 

 

 

 

“돈을 준 사람은 있는데 돈을 받은 사람은 없고. 이걸 우리더러 믿어라고…”

 

민중의 바람과 달리 자신의 이익을 쫓는 몹쓸 정치 행태에 대한 풍자다.

 

민중들은 투명한 정치자금을 바라는데 정치 세계는 변할 조짐 없이 구속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상문살 민속극이 이 같은 정치자금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관람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변하지 않는 정치 관행에 대한 시원한 속 풀이인 셈이다.

 

상문살 민속극은 다른 무굿과 달리 무녀와 잽이들이 굿거리에 따라 귀신으로 치장, 재담과 노래 및 춤 등이 어우러진 극적 요소를 갖추었다.

 

지난 19일 전남 여수시 진남문예회관에서 김향순 명인의 상문살 민속극이 펼쳐졌다.

 

지난 12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여수시 일원에서 열리는 제36회 여수예술제(회장 신병은) 프로그램 중 하나로 무대에 오른 상문살 굿은 민속극으로 재탄생해 관객에게 해학을 선사했다.

 

 

 

 

 

 

 

 

 

상문살 굿, 살귀의 침해를 받은 환자를 치유하는 무굿

 

(사)향토민속문화보존회 정홍수 이사장은 “여수 무형문화재인 ‘상문살 굿’은 1996년 제3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민속극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며 “상가(喪家)에서 살귀(殺鬼)의 침해를 받은 환자를 치유하는 무굿으로, 남도 굿으로는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있는 민속이다”고 소개했다.

 

이번에 상문살 민속극 공연은 주연 김향순 명인을 비롯해 무녀, 소무, 강신무, 저승사자, 지왕망제, 봉사, 부녀자 등의 출연진이 피리와 아쟁, 장구 등 음악에 맞춰 주장마당, 허장마당, 헌식마당, 살풀이마당 등 4개의 마당으로 나눠 공연으로 풀었다.

 

주장마당은 공수를 받아 환자를 사다리 위에 눕히고 무녀의 주장소리에 맞춰 마을 사람들이 환자 주위를 돌면서 절구방아를 찧는 마당이다.

 

허장마당은 환자의 옷을 입힌 제옹을 환자 대신으로 삼아 헛장사를 지내고 명도에서 온 사자를 전물로 후히 대접하여 환자를 죽음에서 구출하는 마당이다.

 

헌식마당은 굿판에 모여 든 여러 잡신들을 음식으로 대접하여 배송하고 환자의 쾌유를 비는 마당이다.

 

살풀이마당은 시루를 앞에 놓고 이곳에 환자를 앉히고 무녀가 징을 치면서 상산 군웅을 청배하며 그로 하여금 주문을 외우고 신 칼로 환자의 체내에 침입한 살귀를 물리치는 마당이다.

 

 

 

 

 

 

 

 

 

 

돈거래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다 눈 뜬 봉사?

 

상문살 민속극의 백미는 허장마당에서 나타난 풍자였다.

 

무녀가 저승에서 온 저승사자에게 환자의 목숨과 맞바꾸는 뒷돈을 찔러주는 장면은 긴장감을 높였다. 뒷돈 받기를 망설이는 저승사자를 꾀는 장면은 오늘날 정치자금 거래 현실과 비슷했다.

 

“누구 보는 사람 없소.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눈 뜬 봉사들이오.”
“훠이~ 훠이~. 아무것도 안보이지?”

 

거래 현장을 들키기 싫은 저승사자는 솔깃한 부수입 제의에도 불구,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하지만 돈을 탐하던 저승사자는 결국 슬그머니 뒷돈을 챙겼다.

 

그러면서 자기 몫 뿐 만 아니라 다른 사자들의 몫까지 챙겨 상납의 굴레까지 표현했다.

 

이에 관람자들은 “나 다 봤소”라며 부정거래 현장을 폭로했다. 성사된 뒷거래는 옥황상제에게까지 들켰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

 

이어 정치 자금 뒷거래에 대한 탄식이 이어졌다.

 

“돈을 받은 사람은 있는데 돈을 준 사람은 없다. 이걸 우리한데 믿어라고….”

 

걸인의 정치자금 뒷거래 풍자는 시원함을 제공했다. 상문살 민속극은 우리네 시대상을 풀어내 관람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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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시작한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진 ‘그’
“순백의 비대칭 미학, 이것이 달항아리의 묘미”
[인터뷰] 찻그릇과 달항아리 도예전 연 ‘김원주’

 

 

찻그릇과 달항아리.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 흙으로 만든 게 도자기입니다.”

언젠가 어느 도예가에게 도자기 굽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었다.
간단명료한, 게다가 철학적인 느낌까지 있어 이 말을 아직도 가슴에 담고 산다.

그러니까, 내가 도자기에 관심 가진 건 2000천년 전후.
지리산에서 야생녹차를 만들던 이를 알고부터였다.
당시, 차를 마시다가 다구 잡는 법, 보는 법 등에 대해 염탐한 게 시초였던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문화예술품이다. 도자기 또한 그러하다. 경험이 보는 눈을 만드는 법.

지난 토요일, 가족 여행길에 올랐다.
마침 지인인 김원주 씨가 <찻그릇과 달항아리>란 주제로 도예전(오는 15일까지)을 갖는 터라 남원 선원사 ‘선원문화관’이 첫 도착지였다.

김원주, 그를 알게 된 건 지난 해 말 전주에서였다.
그는 만남 자리에 밤늦게 나타났었다.

수염과 머리를 기른 모습은 퍽이나 세련되고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환쟁이 겸 도자기 꾼이었다. 퍽이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또 그는 진솔한 자신만의 영역을 갖고 있는 틀림없는 예술가란 생각을 했다.

 


남원 선원사 선원문화관에서 진행 중인 김원주의 <찻그릇과 달항아리> 도예전. 

 

백자의 하얀 색감과 냄새가 좋아 내가 수수해진 느낌

 

김원주, 그는 1997년부터 꾸준히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고 있다.
지난해에도 ‘술잔전(전주술박물관)’‘막걸리 막사발전(The K Gallery)’을 열었다.

가족 휴가 중 <김원주 도예전>을 둘러 본 딸은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시된 도자기가 작가를 닮았다. 처음에는 도자기들이 다 똑같이 보였는데 볼수록 밑이 길쭉하거나 휘어진 부분이 위, 중간, 밑 등 다양했다. 그리고 백자의 하얀색 색감과 냄새가 너무 좋았다. 내 자신이 수수해진 느낌이다.”

 

딸의 소감 앞에 지인인 작가 인터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김원주 도예전>은 딸과 아버지를 연결해주는 또 하나의 ‘소통 통로’였던 셈이다.

다음은 도예가 김원주 씨와의 인터뷰다. 

 


도예가 김원주 씨. 

 

도예전은 “자연을 닮고자하는 인간의 갈구와 지향”

 

- 회화 전공자가 도자기를 하는 이유는?
“격동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 미술운동을 하다가 작업과 삶의 일치를 위해 농촌으로 자리 잡은 곳이 여주였어요. 한 2년 농사도 짖고 그림도 그리며 살았는데, 아내와 나 둘 다 그림만 그리고 살다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지인의 소개로 도자기 공장에 그림 그리는 화공으로 취직해서 작업과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그러니까 돈 벌려고 도자기를 시작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어요.
흙으로 빚는 모습이 신기해서 혼자 물레연습도 하고 그러다가 1995년도에 집 앞 마당에 가마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흙과 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번 전시를 위한 작품 제작과정과 전시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자연스럽다’는 ‘자연’과 ‘스럽다’가 만나서 생긴 말입니다. 자연을 닮고자하는 인간의 갈구와 지향이 담긴 아름다운 말입니다. 정형화 되지 않고 작위적이지 않으며, 편안함과 희열로 안내하는 ‘자연스러움’이 제 작업과 삶 속에 늘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불 때기는 사투,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이며, 자연”

 

- 도자기를 제작 할 때의 매력은?
“흙이라는 1차적인 물성이 가마 속 불을 통해 도자기라는 전혀 새로운 물성의 변화를 이루어 냅니다. 그것도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말이죠. 좋은 도자기를 만들려면 어떤 흙을 찾는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좋은 유약이나 빚는 기술은 연마를 통해 시간이 가면 이룰 수 있지만 좋은 흙은 발품을 팔아 전국을 돌아다녀도 인연이 있으면 만날 수도 있고, 인연이 없으면 만나지 못합니다. 어렵게 찾은 흙을 불 때기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 결과가 나오면 잘 생겼건 못 생겼건 기물은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는 것입니다.

불 때기는 사투,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이며, 순간순간 어려운 결정을 요구합니다. 불은 두렵고도 정말 어렵습니다. 가마 안에서 일렁이는 불길은 내가 넣은 장작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렁이는 것, 정말 스스로 ‘자(自)’ 그럴 ‘연(然)’ 숭엄한 ‘자연(自然)’입니다.

내가 만들고 내가 땠지만 새 생명을 얻어 탄생된 도자기는 내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흙을 캐고, 빚고, 가마에 넣어 불을 때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흐트러짐 없는 자연과 합일 과정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매력적입니다.

 


백자에 대해 설명하는 김원주 씨. 

 

“순백의 비대칭 미학, 이것이 달항아리의 묘미”

 

- 장작 가마와 가스 가마 또는 전기 가마의 차이는?
“무엇이 좋다 나쁘다 평가 할 수는 없습니다. 가스 가마나 전기 가마는 다루기가 장작 가마에 비해 조금 더 편하고, 노동 강도를 줄이면서 효율적인 생산을 할 수 있는 과학문명이 만든 좋은 결과물입니다.

이에 반해 장작 가마는 날씨와 바람의 세기, 장작 굵기의 차이 등 자연과 자연물을 이용하며, 노동 강도가 높고 비효율적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좋은 작품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어떤 가마든 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죠. 불은 죽는 날 까지 공부해야 하는 그릇쟁이에게는 ‘화두’입니다.

 


백자 달항아리 <합일>

 

- 작품전 주제를 찻그릇과 달항아리로 정한 이유는?
“처음엔 달항아리전을 하려 했는데 전시회를 선원사라는 사찰 안의 갤러리에서 하다 보니 찻그릇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차를 올리는 ‘차례’는 제사나 추석, 또는 궁중에서만 행하여 진 의식이 아니라, 불가에서도 부처님께 차를 올리는 ‘다례’가 있고 그 의식에 사용된 차를 담는 용기가 찻사발입니다. 불가와 차는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죠.

전통 달항아리는 보통 40에서 50센티미터가 되는 17,8세기에 만들어집니다. 백자 항아리로는 그 당시 세계 최대의 항아리였습니다. 달항아리는 대접 모양의 큰 그릇 두 개를 위아래 붙여서 만드는데, 그 이유는 지금처럼 전기의 힘을 이용한 전동물레가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 사람의 발로 차서 기물을 만드는 나무물레였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물레 위에서 만들어진 두 개의 그릇은 보통 한쪽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두 개 중 하나의 그릇을 위로 올려 서로 맞붙여서 둥그런 구의 형태를 만듭니다. 이때 위에 올려진 그릇은 뒤집어서 붙여지기 때문에 아래 그릇과 반대의 회전결을 이루게 되는데 이 때문에 불속에서 일그러져 비대칭의 곡면을 만듭니다. 순백의 비대칭 미학, 이것이 달항아리의 묘미입니다.

 


찻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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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출현 ‘소녀시대’와 배려의 달인 ‘김제동’
김제동, 그가 왜 재야 MC의 황제인가? 증명
2010 Daum Life On Awards 현장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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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출현한 소녀시대.

김제동이 왜 재야 MC의 황제임을 보여준 한판이었다.

배려와 겸손의 달인 ‘김제동’ 그가 꺼낸 화두는 시상식 내내 ‘결혼’이었다.
그는 “지난해 인기 검색어 1위에 올랐다.”“그건 송윤아 설경구씨의 결혼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 결혼도 아닌 송윤아-설경구의 결혼을 제치고 자신이 1위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너스레였다.

행사는 구수한 아저씨 김제동의 사회로 진행됐다.

어워드 행사장 입구. 경빈마마님도 보인다.

인기 포털 다음(Daum)이 지난 13일 양재동 엘타워에서 거행한 ‘2010 다음 라이프 온 어워즈(Daum Life On Awards)’ 시상식 사회는 방송인이자 가슴이 따듯한 ‘총각’ 김제동씨가 맡은 가운데 진행됐다.

행사장 모습.

어워즈 책자.

다음 최세훈 대표의 인사말.


‘꺄아~악’ 소녀시대 무대에 등장하다, 꿈이야? 생시야?

시상식에 앞서 Daum 최세훈 CEO는 인사말을 통해 “2010 Daum Life On Awards를 통해 2010년 한 해 동안 Daum을 통해 많은 분들의 생활을 즐겁고 유익하게 변화시켜주신 최고의 주인공들을 만나 영광이다.”면서 “카페, 블로그, tv팟, 지식 등에서 열심히 활동해주신 여러분의 열정과 정성으로 세상의 즐거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기업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었다.”며 찬사를 돌렸다.

시상식은 2010년을 빛낸 뮤직 시상식부터 시작됐다.
최고의 음악에는 Gee의 열풍을 이었던 소녀시대의 ‘Oh!’가 뽑혔다.

9명의 생기발랄한 우리들의 요정, 소녀시대가 시상식에 왔을까?
김제동도 소녀시대의 깜짝 출연을 몰랐을까?

‘꺄아~악’, 소녀시대가 무대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싶었다.
소녀시대를 직접 대하는 참석자들의 놀라움만큼 김제동의 얼굴도 환해졌다.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이 다음(Daum) 최세훈 대표로부터 상품 등을 받았다.

소녀시대 리더 태연이 상을 수상하고 있다.

  우리들의 요정.

밝고 깜찍했다.

무슨 말을 시키려나 보는 요정들.

공연이 시작됐다.

소녀시대의 공연은 활기를 불어넣었다.

아저씨를 녹인 공연.

귀여운 요정~^^

재치와 유머 넘친 김제동.

소녀시대 서현 “이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김제동 울려

김제동이 소녀시대의 멤버 태연, 윤아, 티파니, 유리, 서현, 제시카, 써니, 효연, 수영 등과 나눈 멘트 중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김제동의 ‘결혼’ 여부였다.

김제동 : “올해 내가 결혼 하겠는가?”
소녀시대 서현 : “올해 시작부터 이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전 동문서답. 그런데 웬걸, 너무 귀여웠다.

소녀시대는 ‘Oh!’와 ‘훗’을 즉석 라이브로 선보였다.
소녀시대가 참석자들을 향해 날린 사랑의 화살은 함성으로 되살아났다.
일본 본토를 점령 중인 소녀시대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동문서답으로 김제동을 울린(?) 서현.

행사장 즉석 공연.

소녀시대는 상큼했다.

소녀시대의 공연은 일본을 녹이는 이유를 보여줬다.

눈높이에 맞춘 김제동의 진행이 놀라웠다.

김제동, 그가 왜 재야 MC의 황제인가? 증명

이어 영화 리뷰, 텔존, 미즈쿡, 지식, 미즈넷 등의 부분별 시상식이 진행됐다.
이때 김제동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앉아있는 시상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헉, 놀라웠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게 다가선 것이다.

김제동 그는 “앉아서 진행하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게 편하다”며 수상자 인터뷰를 계속했다.

그 모습은 ‘김제동, 그가 왜 재야 MC의 황제인가?’를 증명하고 있었다.
요즘, 카페, 블로그, 티스토리 부분에는 내 블로그 이웃 맛객, 박씨 아저씨, 비바리, 멀티라이프 등도 수상자로 당당히 무대에 올랐다.

어워드 수상자들.

다음이 제공한 선물.

블로그 대상 수상자들.

수상자 축하하며, 모든 블로거들의 건강과 행복 기원

마지막으로 view 블로거 대상 시상식이 있었다. 대상은 ‘효리사랑’에게 돌아갔다.
이밖에도 라이프 ‘옥이’, 문화연예 ‘페니웨이’, IT 과학 ‘DDing’, 스포츠 ‘윤석구’, 경제 ‘모터블로그’, 시사 ‘모과’, 특별상 ‘동상면 사람들’ 등이 각 부분 우수상을 차지하며 4시간  여의 행사가 마무리됐다.
단 하나 아쉬웠던 건, 많은 이웃 블로거들과 다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이날 참석한 10여명의 블로거와 뒤풀이가 있었다.

미즈넷과 라이프 부문에서 2관왕을 차지한 ‘옥이’ 김진옥 씨가 뒤풀이에서 팍팍 쐈다. 그녀는 “음식 블로거로 날마다 음식 만드느라 살이 많이 쪘다.”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살다 살다 이렇게 많은 안주를 시켜 놓고 생맥주를 마시기는 처음이었다. 역시 옥이님은 요리를, 혹은 맛을 아는 블로거임에 틀림없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수상자 모두 진심으로 축하하며, 올 한해 모든 블로거들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 본다.

 소녀시대의 공연은 생기 발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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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 광주 비엔날레, 30여 만 명 관람
총 31개국 134명의 작가와 컬렉션이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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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란 주제로 지난 9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장장 66일간 열렸던 광주 비엔날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만인보’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발자취를 조명하기 위함이라더군요.

이 광주 비엔날레에는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 가족들과 함께 찾았습니다. 행사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총 30여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더군요. 8회째를 맞는 이번 광주 비엔날레는 총 31개국 134명의 작가와 컬렉션이 참여하였습니다.

전시 구성은 현대사회 및 삶의 초상과 관련한 시각 이미지의 생산, 확대, 집착에 관한 여러 매체와 형식의 작품들을 통해 각 시대성 속에서 드러나는 동시대적 현대성을 조명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합니다.

그럼, 제8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현장을 살펴볼까요?

 

 

 

 

 

 

 

 

 

 

최병수 작.  

 

 

 

30여만 명이 찾은 광주 비엔날레가 지난 일요일 폐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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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지른 괴성, 역발상에 ‘호감’
묘미가 충분한 고창 판소리 풍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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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소품.


흥부가 지붕으로 올라가서 박을 톡톡 퉁겨 본즉, 팔구월 찬이슬에 박이 꽉꽉 여물었구나. 박을 따다 놓고, 흥부 내외가 자식들을 데리고 박을 타는데,

“시르릉 실근 당겨 주소. 에이 여루 당기어라 톱질이야, 이 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 한 통만 나오너라. 평생에 밥이 포한이로구나. 에이 여루 당기어 주소.”

판소리인 박타령 흥부가 일부다. ‘펑’ 소리와 함께 금은보화가 우르르 쏟아지는 절정으로 치닫는 길목임에도 절로 흥이 난다.

아니, 웬 판소리 타령이냐고?

“어이, 친구. 글쎄 나가 지난 11월 초, 전북 고창 판소리 박물관을 다녀왔지 안것는가. 이걸 써 무거야제, 그냥 놀려서 쓰것는가. 그람, 아니 될 말이제~.”


고창 판소리 박물관.

“소리만 잘 하려고 허지 마. 우선 사람이, 인간이 돼야지”

“어이, 친구. 긍께 말이시. 나가 판소리 박물관엘 갔더니만 요런 글귀가 나붙어 있드만. 함 들어 볼란가?”
“대체 그게 뭐 간디, 요로코롬 뜸을 들인당가. 얼른 싸개싸개 말해 보소.”

“아 글씨, ‘소리만 잘 하려고 허지 마. 우선 사람이, 인간이 돼야지 올바른 국악인이여.’ 란 글이 나붙어 있는 거여. 어째 고로코롬 나 맘과 똑 같은가 몰러, 잉! 역시 세상살이는 ‘사람이, 인간이’ 우선인가벼.”

가상의 친구와 벌인 대화 어째 맘에 드요? 어허~, 어째 썰렁 허구먼. 다시 본래 어투로 돌아가야 할까 보다.

아내와 함께 한 고창 여행에서 판소리를 접하게 되었다. 판소리도 알고, 부부애도 쌓은 꿩 먹고 알 먹은 격이었다. 사실 고창 신재효는 알았지만 판소리 박물관은 생각도 못했었다. 판소리 박물관 안팎을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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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 고택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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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설명.

 
신재효 고택.

상하좌우 아우른 창조적 전통 문화예술, ‘판소리’

판소리 박물관 앞, 신재효 선생 고택. 이곳은 동리 신재효 선생(1812~1884)이 살면서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신재효 선생은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토끼타령, 박타령, 변강쇠타령 등 판소리 여섯마당 체계를 세우고, 판소리를 정립한 넉넉한 공이 있다.

고택은 원래는 주변의 물을 끌어들여 마루 밑을 통해 서재 밖 연못으로 흐르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모두 파묻히고 연못만 복원됐다고 한다. 아쉬웠다. 이마저 복원되었다면 그의 운치를 좀 더 느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판소리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잔잔한 판소리 음악이 흐른다. 이곳에는 세계무형문화유산 ‘판소리’의 세계적 가치 등에 대한 소개가 되어 있었다.

알다시피, 판소리는 부채를 든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가 창(소리)ㆍ아니리(말)ㆍ너름새(몸짓)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는 종합예술이다. 판소리는 18세기(조선 후기) 우리네 정서를 독창적으로 형상화하여 성장, 발전해 온 민족 공연예술이다.

또한 판소리에는 설화, 무가, 광대놀음, 민요 등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다. 게다가 상하좌우를 아우른 해학과 풍자가 들어 있는 대중 전통 문화이다.


판소리 박물관에는 명창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다.

소리 배우기.

소리 배움 재현.

박물관에서 괴성을 지르다니, 역발상에 ‘호감’

심청이 환생하기 직전, 연꽃을 발견한 도사공 등이 읊조리는 심청전 한 대목 들어보자.

한 곳을 바라보니 난데없는 꽃 한 송이가 물 우에 둥실 떠 있거늘,

“저 꽃이 웬 꽃이냐?”

… 도사공 허는 말이,

“그 말이 장히 좋다. 충신화 군자화 은일화 한사화. 사람의 행습 보아 꽃이 이름을 지었나니, 저 꽃은 정녕코 심낭자 넋이니 효녀화가 분명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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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와 판소리 여섯마당.

판소리 박물관에는 신재효 유품과 명창, 판소리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실은 소리마당과 아니리마당 등 5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구전심수 교실, 판소리 여섯마당 청취기, 판소리 독공 장소, 소리 굴 등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중 화면을 보며 연습할 수 있는 소리굴 체험이 재밌었다. 소리를 지르면 소리 크기가 바로 나오는데 우리 부부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 악” 괴성을 마구 질러댔다. 박물관에서 괴성을 지르다니, 판소리 박물관다운 역발상이 퍽이나 인상 깊었다.

이렇듯 고창 판소리 풍류기행은 판소리 박물관 뿐 아니라 인근의 고창읍성, 문수사, 선운사 등과 연계가 가능해 묘미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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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풍류기행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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