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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 사는 이는 거인일까? 난장이일까?
솔거의 벽화 노송도와 동피랑 벽화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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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동피랑에는 어린왕자의 꿈이 스며 있었다.

“통영 동피랑에서 벽화를 그릴 거예요. 림이 낡아 새로 그린대요. 별 일 없으면 구경 한번 오세요.”

지난 봄, 지인은 식사 자리에서 지나가듯 말했다.

“와, 벽화도 그리세요. 부러워요. 꿈과 희망을 주렁주렁 달아주세요. 가긴 쉽지 않을 거예요.”

하고 말았었다. 그렇지만 떠오르는 화가가 있었다. 솔거였다. 

벽화에 이끌렸을까? 환쟁이에게 끌렸을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어느 덧 홀로 경남 통영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저절로 그쪽을 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른들의 모습마저 그림이었다.

골목골목에는 꿈이 그려져 있었다.

풍경 자체가 그림이었다.

동피랑 명물인 구판장.


재래식 화장실이 인상적이었다.

동피랑에 사는 이는 거인일까? 난장이일까?

“동피랑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묻고 있었다. 꼭 가고야 말겠다는, 지인이 그린 벽화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에 찬 목소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앞장서 나를 이끌었다. 알고 보니 바로 턱 밑이었다. 이런 걸 보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걸까?

동피랑은 언덕빼기였다. 호기심에 가득 찬 관광객이 이 언덕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희희낙락거렸다. 물론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대체 어떤 벽화를 그려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일까? 의아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볼품없는 골목길. 주름살을 가득 안은 주민. 그렇지만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소박한 모습에서 웬일인지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장은 공>을 떠올렸다. 이들은 난장이일까? 거인일까?

동피랑은 통영의 새로운 볼거리였다.

 강구항에서 본 동피랑은 언덕배기 자체였다.

동피랑에는 꿈이 있었다.


솔거의 벽화 노송도와 동피랑 벽화의 공통점

동피랑 골목에는 지인 일행이 그린 그림 수놓아져 있었다. 꽃게, 오징어와 복어 등 물고기와 갈매기 등 새, 어린왕자와 그의 상징인 뱀과 야자수, 코끼리 등도 있었다. 또 어릴 적 추억이 물씬 생각나는 연과 숨바꼭질 장면까지 재현되어 있었다.

솔거가 통일신라시대 황룡사에 그렸다는 벽화 ‘노송도(老松圖)’. 여기에는 새들이 진짜 소나무인 줄 알고 날아들어 벽에 부딪쳐 죽었다는 전설이 녹아 있다. 그만큼 실제적이었다는 이야기다.

때 아니게 솔거 벽화를 들먹이는 이유가 있다. 동피랑은 사람이 떠나던 산동네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언덕배기로 탈바꿈한 사실 때문이다.

어쩜, 솔거가 벽에 그린 소나무는 새들에게 또 다른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랬다. 동피랑의 벽화는 우울하고 쓸쓸한 산동네가 아니라 꿈과 희망이 무럭무럭 자라는 세상이었다.

 우리 각자도 꿈이 있지요.



언제부터인가 동피랑은 자체가 꿈이었다.



동피랑은 사람들이 떠나가던 곳에서 찾아오는 곳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통영의 과거와 현재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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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건너 절벽 오솔길 걷기도 짜릿해
4대강사업으로 하회마을 모래도 사라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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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이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KBS 1박 2일 팀이 다녀가기 전부터 유명했던 곳이라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긴 하죠.

“절벽 밑에 오솔길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회마을을 몇 번 갔었지만 아하, 글쎄 요걸 몰랐지 뭡니까. 강 건너편 절벽을 보고 운치 있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말입니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의 물줄기가 마을을 한 바퀴 휘감고 돌아가는데서 유래했습니다. 또 류성룡을 길러낸 곳입니다. 이곳은 서민 놀이였던 하회 별신굿 탈놀이와 선비 풍류놀이였던 선유 줄불놀이 등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옥연정사는 류성룡이 승려 단홍의 도움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하회마을 주변 낙동강 모래도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전부 다 준설되어 없어진다고 하니 미리 봐두는 것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하회마을 외곽 풍경 보시죠.


겸암정사 쪽에서 본 하회마을.
이곳 모래도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라고 합니다.

겸암정사.
 
절벽 쪽길.

이런 길이 있을 줄이야!

 
옥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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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삼강주막과 문경새재 주막 풍경
막걸리 마셔 볼까, “주모 한상 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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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공사 중인 삼강주막 풍경.


문경과 예천 여행에서 운 좋게 만난 주막이 있었다. 문경새재 주막과 예천의 삼강주막이 그것. 문경새재에서 만난 주막은 이용객 없이 길 풍경으로 자리했고, 삼강주막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이 시대의 마지막 주막으로 자리했다.

이 두 곳의 주막 풍경을 비교해 보는 것도 운치 있을 듯하다.

삼강주막은 강 세 개가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 개의 강은 태백에서 흘러 온 낙동강, 영주에서 내려온 내성천, 문경에서 내려온 금천을 말한다. 이곳은 과거 삼강나루를 이용하는 보부상과 사공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으로 1900년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강주막을 운영하던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지난 2006년 세성을 떠난 뒤 방치되던 걸을 예천군에서 복원했다. 1900년경에 지어진 이 주막은 100여 년 세월 동안 삼강나루를 지키며 오가는 사람들의 애환 어린 휴식처가 됐던 곳이다.

<예천 삼강주막 풍경>


뒷간이 재밌었다.


 한상 주이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떡이나 한 번 치자!

가격이 저렴했다.

 평소 접하지 못했던 배추파전이 특이했다.

<문경새재 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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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예쁜 발은 이런 발, 발의 휴식
문경 새재와 예천 회룡포의 참맛은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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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발에게 휴식을...

발에는 온 몸의 중요 장기 및 혈관이 모여 있다 합니다. 발 관리만 잘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더군요.

하지만 문명은 맨발로 다니던 인간에게 신발을 덧신게 만들었습니다. 문명이 인간의 발을 신발 속으로 한정시킨 것이지요. 그래선지 발도 숨쉬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하여,발 마사지 숍까지 등장한 것이겠지요.

요즘 각 지자체 어디서나 맨발공원을 쉽사리 만날 수 있습니다. 발의 중요성을 인식한 때문일 겁니다.

지난 주말 경북 문경 새재와 예천 회룡포 여행 중 특색 있는 광경과 만났습니다. 발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아니 발이 자유를 만끽하는 숨 쉬는 현장이었지요. 그럼, 그 현장을 둘러볼까요.

경북 문경 새재 2관문.

맨발공원을 걷고 난 후 휴식. 

황토길은 맨발로 걷기에 딱입니다. 이런 발의 휴식도 좋지요.

계곡물도 발 담그기에 제격입니다.

물소리를 감상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발, 편함을 느낄겁니다. 

"맨발 걷기에 내가 빠질 쏘냐"

연인들도 발에게 자유를 허락하며 추억을 쌓고 있습니다. 

예천 회룡포. 

회룡포를 가로지른 다리.

발에게 자유를 주는 일은 회룡포에서도 즐길 수 있습니다. 

"어 시원하다!"

모래사장 걷기도 휴식으로 그만입니다. 

"피로가 확 풀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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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전통문화 속으로 시간 여행 고고
찻사발축제는 오는 9일까지 열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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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찻사발축제.

지난 토, 일요일 1박 2일 간 문경, 상주, 예천, 안동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여수에 사는 관계로 경북 내륙지방을 가는 건 서울을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 큰맘 먹어야 했습니다.

어려움을 마다하고 문경을 택한 이유는 문경새재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문경 새재 도립공원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지정 우수축제인 2010 문경 전통 찻사발 축제는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옛길 박물관과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부지 70,000㎡의 부지에 기와집 108동 초가집 22동) 등을 부수적으로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문경의 전통 문화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도 재밌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문경 찻사발 축제와 주변 풍경 보실까요.


옛길 박물관도 특색 있었습니다.


옛날 영남 지방 선비들의 과거 길로 이용됐던 문경의 축제는 차분하더군요.

 떡 하나 먹어볼까.

찻사발 축제 행사장 주변.

축제에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외국인에게 미소로 한국을 선물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물론 외국인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도자기 체험.

 1관문과 행사장 뒤편.

 축제 메인 무대.

 반가웠던 건 축제에 참여한 찾아가는 국립중앙박물관 버스였습니다.

 문경새재 가는 길에는 꽃들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문경새재 2관문입니다.

 과거 길도 남아 있고...

황토길이 너무 좋아 맨발로 다니시는 분이 많더군요.

문경새재 세트장. 축제기간에는 무료 관람이더군요.

 세트장에는 작은 규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주막도 열리더군요. 실은 이게 제일 반가웠답니다.

오미자 막걸리와 파전.

 세트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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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mamanim.tistory.com BlogIcon 경빈마마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경새재 한 번 가 보았었어요.
    걷는 길이 참 좋더라구요.


    티스토리 운영 넘 힘들어요~ㅠㅠ

    2010.05.04 10:40 신고

노 전 대통령은 언론에 상처받은 피해자
“서거 1주기 물 흐르는 대로 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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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하마을에 조성중인 노무현 전대통령 묘역조성공사.

김해 봉하 마을 주민 인터뷰를 위해 노점에 들렀다.

“요즘 이곳을 찾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어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말투와 표정이 심상찮았다. 여차하면 말 섞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직감적으로 대답 잘못하면 인터뷰 자체를 안 하겠다는 몸짓으로 느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ㆍ중ㆍ동 등 언론에 당한 수모를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을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인터뷰에 앞서 김숙영(가명)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후 노 대통령에 대한 편파보도로 인해 언론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며 “지금도 여전히 좋지 않은 관계다”고 했다. 다음은 김숙영 씨와의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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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입구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바칠 국화 등을 팔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에 상처받은 피해자

- 봉하 마을을 찾는 사람은 어느 정도인가?
“평일에는 2천에서 3천 명 정도고, 공휴일에는 5천에서 1만 명 정도다.”

- 어느 지역에서 많이 오는가?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잊어가는 느낌이다. 전국에서 찾아오지만 대체로 초기에는 호남과 충청도에서 많이 왔고, 지금은 대구 경북에서 많이 온다.”

- 방문하는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아까운 지도자를 잃은 실망감이 크다. 대부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또 여기에 와선 언론에 보도된 것과는 많이 다르구나 하기도 한다. 경제가 어려워 살기가 힘들어지니 노 대통령의 큰 뜻을 이제야 이해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나가던 사람이 아는 체를 했다. 그가 지나가자 김씨는 "저 사람은 연합인데 지가 필요할 땐 아는 척을 하고 필요 없을 땐 고개를 돌리고 다닌다. 아직까지 연합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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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마을 뒷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서거 1주기 물 흐르는 대로 가지 않겠나!”

- 노 전대통령 서거 당시 언론과 많이 싸웠는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전후 노 대통령에 대한 편파보도로 인해 언론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나도 연합, KBS 등과 자주 싸웠다. 지금도 여전히 좋지 않은 관계다.”

- 언론과 싸운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조ㆍ중ㆍ동 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흠집 내기 위해 애쓰지 않았나. 그래서 언론과 싸운 거다. 또 서거 당시 KBS와 MBC는 (방송) 컨테이너를 가져왔다. MBC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해했는데, 연합과 KBS는 막무가내였다. 언론이 신경을 좀 더 써주었다면 노 대통령이 상처를 덜 받았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의 피해자다.”

- 권양숙 여사는 마을 주민들과 왕래를 하는가?
“49재를 마치고 마을 사람들과 식사한 이후 나오시질 않는다. 우리나라 정서가 그렇지 않은가. 조만간 사저 뒤쪽으로 마을과 통하는 문을 하나 낼 것이라고 한다. 1주기가 지나야 마을과 왕래가 있을 것 같다.”

- 마을에서 서거 1주기 준비를 따로 하는 게 있는가?
“아직까지 돌아가셨단 생각이 안 든다. 마을에서 1주기 준비는 아직 윤곽이 없다. 물 흐르는 대로 가지 않겠나. 1주기 때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다. 모내기철이라 주민들이 바빠 노사모 등 자원봉사 단체에서 도와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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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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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그와 이야기하며 오솔길 걷다
노무현, DJ와 정토원에서 다정한 친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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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을 만나러 사저가 있는 김해 봉하 마을에 갔었습니다. 봉하에 도착한 다음, 마음 속 문을 열어 가슴에 간직했던 그를 내려놓았습니다. 그제야 배시시 웃더군요. 생전에 보여줬던 그 웃음이었습니다.

그 바보 노무현과 함께 그가 거닐었던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그가 묻더군요.

‘요즘 살기 어때요?’

바보 노무현다운 물음에 당황되더군요.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의 서거 1주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진솔한 대답이 그의 넋을 위로할 것 같더군요.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혼돈의 시대다. 당신 영정이 광화문에 뒹굴었던 건 봐서 알 테고. DJ는 만났을 테고. 군함이 침몰해 당신의 소중한 백성이 죽었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고. 겁 없이 당신에게 대들었던 검사들은 한 기업가의 이실직고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이고…. 서민들은 당신의 백성으로 있을 때보다 빡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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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


‘움켜쥐지 않고 버리면 홀가분해 진다’

그의 기습 질문(?) 덕분에 저도 그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을 수 있었습니다. 하여, 그와 함께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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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원 입구.

‘이승의 짐을 벗고 난 기분은 어떤가?’
‘기분은 그 사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향한다. 움켜쥐지 않고 하나하나 버리면 오히려 홀가분하다.’

‘저 세상에서도 대한민국 대통령 예우를 해주던가?’
‘부자가 천당 가기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여기는 내가 그토록 바랐던 평등세상이라 예우 같은 건 없다. 예우는 짐일 뿐이다.’

‘저 세상과 이 세상 중 어디가 더 좋던가?’
‘처한 환경과 여건이 달라 어디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삶은 ‘공수레 공수거’. 다만, 척지지 말고 남에게 해코지하지 말라. 자기가 뿌린 만큼 거두는 게 천지간의 이치. 욕심 부리지 말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 내 몫까지 살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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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바보 노무현이 친구되어 법당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살아있는 것만으로 넉넉하다’

‘불교 경전에 환생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다시 환생할 생각은 있는가?’
‘살아생전 그토록 노력했건만 덕이 많이 부족하다. 어떻게 욕심 부리겠는가. 그래도 언감생심이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살아있는 것만으로 넉넉하다. 그 자체가 환생 아닐까?’

‘당신은 이 산책로가 마음에 들었는가?’
‘당시 나는 가슴을 까 보일 수도 없었고, 나를 안아줄 도량도 없었다. 그래선지 이 산책로는 내 가슴의 답답함을 벗어던질 유일한 친구였고 탈출구였다. 역시 자연은 모든 걸 보듬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어느 덧 부엉이 바위에 당도했습니다. 그날따라, 부엉이가 구슬피 울었다지요? 정토원 법당에는 바보 노무현과 DJ가 나란히 자리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현세에서 대통령의 길을 걸었던 그들은 정토원에서 다정한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신과 DJ 영정이 같이 있는 걸 보니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내가 좀 더 잘생기지 않았나? DJ와 함께 있는 자체가 내겐 영광이다. 사실 정치를 그에게 배웠다. 야합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컸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 그게 최선의 삶인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귀가 얇아 행동이 경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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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이 걸었던 그 길에는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아마 지난해 그도 봤을 것입니다.


‘진시황 만나면 아방궁 비유 기분 물어볼 생각’

‘몇몇 언론이 당신 사저를 아방궁이라 하던데 혹 여기에 대해 할 말 없는가?’
‘그건 그들 자유다. 그들 배움이 짧아 그렇게 표현한 걸 내가 뭐라 하겠는가. 아직 못 만나 못 물어봤는데 진시황 만나면 ‘내 집을 당신의 아방궁에 비유했던데 기분이 어떤가?’ 물어볼 생각이다. 고거 재밌을 것 같지 않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색만큼 좋은 게 없다. 또 내가 산책하던 길들은 대리석으로 깔 생각 말고, 자연 그대로 두라. 그게 나를 위하는 길이요, 자연과 함께하는 길이다. 모두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내려오는 길에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게 부엉이 울음인지 사자 울음인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들리는 소리가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혹, ‘바보 노무현’이 웃는 소리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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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즐겨 걸었을 사색의 숲에는 고요와 정적만이 맴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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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을이두 얼마 전 다녀왔습니다.
    갈수록 생각나는 분입니다.

    2010.04.28 09:42 신고
  2. 그린레이크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한번 다녀 오고싶은곳이 이곳이랍니다...
    이분영정에 꽃한송이 받치는게 제 또 하나의 바램인데 쉽지않네요..

    2010.04.28 10:14
  3. Favicon of https://flypo.tistory.com BlogIcon 날아라뽀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써 1주기 군요.. 저도 꼭 한번 다녀오고 싶네요.

    2010.04.28 12:11 신고

바보와의 뒤늦은 해후에 미안함이 앞서고…
봉하 마을 초입에서 만난 그에 대한 인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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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서 본 현수막.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명언 중 하나입니다. 사후 일주기가 가까운 마당에 사뭇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여수시민협 회원들과 함께 바보 노무현과의 조우를 지난 토요일에야 결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보 노무현과의 만남은 세 번 있었습니다. 대통령에 오르기 전 두 번, 대통령이 되고 난 후 한 번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어쨌든 그에 대한 인상은 ‘참 남다른 정이 많은 인간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솔직한 정치인도 있었구나 싶을 만치 인간적이었지요. 그랬는데 이제야 그를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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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은 이렇게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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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명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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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정권이, 권력이 바뀌었는데 그걸 좋아하겠어요?”

봉하 마을 가는 길은 좁았습니다. 이곳은 시간을 잘못 맞춰오면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던 어느 기사님의 말이 이해되더군요. 그에게 “그럼, 길을 넓혀야 되겠네요?”라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정권이, 권력이 바뀌었는데 그걸 좋아하겠어요?”

민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슬펐습니다. 죽은 제갈량이 살아있는 자들을 물리치던 삼국지의 한 장면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덩달아 서거한 대통령이 한쪽 귀퉁이에 내몰려 있지만 그가 품은 가슴과 그가 남긴 가슴은 제갈량 못지않게 우리네 가슴을 마구 후벼들고 있었습니다.

마을입구에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건물이 이곳을 찾는 사람을 반기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진들과 함께 내걸린 현수막에는 “내 마음 속 대통령 노무현-당신의 국민이어서 행복했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마음을 담은 문구였습니다. 또 마을 길가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신을 사랑하고 기억하고 실천할 것입니다!”란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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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기억하고 실천할 것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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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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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겠다던 약속.

생(生)과 사(死)가 하나인 이유는 공허함 때문?

봉하 마을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그의 백성이었던 사람들이 그가 남긴 따스한 봄볕을 찾아 들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왜 이곳의 봄볕까지 찾아들었을까?’ 란 물음을 던지기도 전에 한 때 그의 국민이었던 사람들은 해답을 현수막에 적어 걸어 놓았더군요.

“님의 뜻을 따라 늘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겠습니다.”

올 4월, 바보 노무현과의 만남은 시작부터 애처로웠습니다. 애처로운 이유요? 우리들의 다짐이 공허한 때문이었지요. 생(生)과 사(死)가 하나라는 말은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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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가 다가오자 새롭게 관심이 쏠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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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립습니다. 곧 1주기네요.

    2010.04.27 09: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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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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