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좋으련만….”

연령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자화상 3] 인식


“바람직한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일까요?”
“첫째, 아버지. 둘째, 남편!”

지인과 차에 앉아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선문답 같지만 바람직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충실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야기 도중, 그는 잠시 기다리라며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아이고, 뜨거라!” 하며 금새 환환 웃음을 짓고 옵니다. 손에는 고구마가 들려 있습니다. 그것도 뜨거운 고구마가.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군고구마를 만들었는데 하나 가져왔다”며 건넵니다. 굽고 있었는지 뜨겁습니다. ‘이게 아버지다’는 건지…. 아버지로써 자식에게 보내는 뜨거운 정(?)도 느껴집니다.

지인의 거처는 지리산 자락에 있습니다. 가끔 가족들이 있는 집에 다니러 옵니다. 그 틈을 비집고 잠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집에 다니러 오면 아이가 아빠랑 잔다며 울고불고 난립니다. 아빠랑 자면 꿈도 안 꾸고 편히 푹 잔단다나? 그래서 막내랑 잡니다. 아이가 기어코 아빠랑 자려는 건 뭔가 있어서 그러지 아닐까요?”

그래, 뭔가 있어서 그러겠지요. 근데 그 뭔가가 도대체 뭘까요? 혹, 아버지의 정이 그립다? 아버지가 옆에 계시면 좋겠다? 뭐, 이런 걸까요? 그러기도 하겠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인이 가져 온 군고구마.

제각각 아버지에 대한 느낌이 다릅니다!

‘아버지’, 어떨 땐 그지없이 높고 깊으며 그윽합니다. 어떨 땐 불같이 끓어오르는 활화산 같다가도, 그저 작고 왜소한 인간(人間)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인식에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 간 감정의 부침(浮沈)이 자리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각각 아버지에 대한 느낌이 다릅니다. 느낌만큼이나 아버지에 대한 인식 변화 또한 다양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아버지냐?, 함께 사느냐? 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또 유아ㆍ아동ㆍ청소년ㆍ성년 등 성장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요.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의 일반적 인식을 짐작해 보면, 유아기에는 모르는 것이 없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수퍼맨으로서의 아빠일 것입니다. 이때는 아빠뿐 아니라 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르면서 버거워 하기도 하지만 가장 좋을 때입니다. 그래서 생각만 해도 행복한 시기죠.

자녀가 아동기가 되면 초등학교에 들어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학교에 다니다 문제가 발견되면 선생님의 문제 해결방법을 따르게 되지요. 그러면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는 아빠에서 모르는 것도 있는 아빠로 인식의 초기 변화를 겪게 됩니다.

가족은 이래서 함께 살아야 하나 봅니다!

청소년기에는 아이들이 교류하는 친구 폭이 넓어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보다 나은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면서 자연스레 “다른 아빠는 이런데, 우리 아빠는…” 하고 비교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않은 세대차이 나는, 능력 없는, 꽉 막힌 아빠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는 거죠.

이 때, 저도 외람된 말이지만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으면……’ 했습니다. 아버지는 직장 관계로 집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사정이었습니다. 그래, 간혹 며칠씩 집에 계시면 오히려 아버지가 몹시 불편했습니다. 왜냐? 아버지가 계시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죠. 아버지의 희생(?)인 줄도 모르고…. 가족은 이래서 함께 살아야 하나 봅니다.
 
성년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어느 정도 생겨 또 다른 연령 구분이 필요합니다. 20대에는 어느 정도 커서 자아가 형성되었지만 아직 주체적인 자기정체성 확립이 미진(?)할 때입니다. 하여, 아버지는 구닥다리 캐캐 먹은 기성세대 중의 한 명일뿐이지요.

이때 아버지께서 제게 “취직해야지” 하시면 “무슨 취직요?” 했었습니다. 다른 꿈이 있는데 취직하라는 말슴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유로 아버지는 제게 ‘뭘 모르는, 그저 먼저 세상을 살아온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잘난 맛에 사는 돈키호테요, 철딱서니 없는 자식이었던 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갯뻘에 정박한 배처럼 삶도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30대에는 “우리 아버지는 왜 이렇게 사셨을까?”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로 남습니다. 변변히 가진 것도 없고, 물려줄 것도 없는 아버지. 물질적으로 물려받을 게 없는 가난한 자식이란 한스러움.

바로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시기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몸으로 배워가는 시기.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이해하는 시기. 그러나 세상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삶에의 멍에를 알아가는 시기입니다.

인생의 깊이가 생긴다는 4ㆍ50대에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인 아버지로 바라보게 됩니다. 40대에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차츰 죽음을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결정을 앞두고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버지는 어떻게 판단했을까?”라는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죠.

50대에는 아이들을 키운 아버지로서 “아버지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혹은 “아버지 같이 살 수만 있다면…”으로 변한다 합니다. 그리고 “저승에서 만나면 무슨 말을 누눌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된다 합니다. 이때의 아버지는 성공적인 삶을 살다 가신 ‘추억(追憶) 속의 아버지’로 남는다는 거죠.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는 60대 이후에는 아이를 키우는 자식을 보면서 “아! 이래서 아버지가 그랬구나!”를 느끼며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좋으련만….” 하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인 ‘회한(悔恨)의 아버지’로 여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충실해야…”

이렇듯 나이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인식 변화의 폭이 큰 것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삶의 필연적 부산물인 인식 변화의 폭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자랄 때 아버지께서 자주하신 말씀입니다.

“책 많이 읽어라. 자기 몸으로 경험하여 이치를 알았을 때는 늦다. 간접 경험을 통해 직접 경험을 느끼는 것이 세상을 앞서가며 슬기롭게 사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저도 아이들에게 전해야 할까요? ‘간접 경험을 통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느껴라’라고. 그러나 그대로 전할 수 없음을 압니다. 스스로 느껴야 하기 때문이죠.

지인이 차에서 말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충실해야…”를 조용히 묵묵히 실천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생은 손수레를 그는 것?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by 임현철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587)
알콩달콩 섬 이야기 (141)
아름다운 여수 즐기기 (112)
알콩달콩 여행 이야기 (162)
알콩달콩 세상 이야기 (422)
알콩달콩 가족 이야기 (476)
알콩달콩 문화 이야기 (205)
장편소설 연재 (68)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21,987
  • 8 58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임현철 '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임현철. All rights reserved.

Textcube TNM Media
임현철'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