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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문제는 자식을 이끌려고만 하는 것”
유학 중 잠시 귀국한 지인 아들과 나눈 ‘아버지’

부모 자식 간은 하늘이 내린 관계라고 합니다. 이러한 천륜도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간은 어머니와 딸과는 달리 서먹서먹한 사이가 의외로 많더군요. 하여, 그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하더군요. 마침, 한 부자지간을 만났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지인과 호주 유학 중 3년 만에 잠시 귀국한 스물여덟 살 지인 아들이었습니다. 이들 부자지간이 썩 매끄러운 관계가 아닌 터여서 떨어져 있던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싶었지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에게 부자상봉 소감을 물었더니 “도둑이 들어와도 아버지(아들)이 있어 든든하다.”란 말을 하더군요. 역시 부전자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인 아들과 자식이 생각하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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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부자.

“내가 원하는 아버지는 친구처럼 마음 여는 아버지”

- 외국 생활은 할만 했는가?
“호주에 갔던 초기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군대 마치고, 대학도 갓 졸업했으니 얼마나 혈기왕성했겠는가. 그런데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자랄 때 아버지와 사이는 어땠는가?
“뭔지 모를 벽이 있었다. 아버지가 선생님이라 보수적이어서 많이 다퉜다. 이야기를 하면 ‘그래그래’하며 들어주는 척, 하는 척하며 나를 이끌려고만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이야기를 하면 NO라는 말은 안하시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NO란 소리였다. 그게 하나의 벽이었다.”

- 어떤 아버지를 원했는가?
“대학 때 존경하는 교수님이 ‘세 살이든 육십이든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며 어떤 사람과도 친구가 되어라’고 강조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와 친구 되기란 쉽지 않았다. 아버지도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걸 어떻게 바꾸겠나. 내가 원하는 아버지는 자식을 생각대로 이끄는 것보다 친구처럼 마음 먼저 여는 아버지였다.

- 아버지가 선생님이라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이 힘들었는가?
“사랑은 컸지만 너무 보수적이셨다. 우리 집은 술과 담배는 물론 만화책, 오락 등까지 죄악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가 갖다 주는 딱딱한 책만 읽어야 했다. 또 아버지는 100점 아니면 칭찬을 안 하셨다. 한 문제를 틀려도 꾸중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칭찬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나? 싶다.”

- 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도 꽤 있을 법한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는가?
“아버지에게 혼난 후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폭력적이고 반사회적 행동이 나왔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풀었다.” 

“부모의 문제는 사랑과 관심의 차이를 모른다는 것”

- 3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소감은 어떤가?
“뒤에 버팀목이 있는 것 같아 든든하고 반갑다. 그동안 아버지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60이 다 된 아버지가 더 늙은 것 같아 안쓰럽다.”

- 아버지가 변한 건 무엇인가?
“아버지 기대치가 높았다. 나는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는 아들이 아니었다. 3년 만에 보니 아버지가 자식의 징징대는 생각을 바랐던 게 아니었던 것 같다. 한 사람으로 당당히 크길 바랐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원하는 아버지 상에 갖혀 있어 그렇지 않았나 싶다.”

- 우리나라 부모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문제는 사랑과 관심의 차이를 모른다는 것이다. 자식 과외 시키고 진로에 대해 간섭하는 것을 사랑으로 여기는 경향이다. 하지만 그건 어긋난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관심이어야 한다. 자기가 낳은 자식, 즉 내 새끼가 아니라 한 생명과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 지금은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소린가?
“아버지를 이해한다기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후회한다는 말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뭘 자꾸 해달라고 요구하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 란 생각이다. 나도 아버지처럼 아버지를 변화시키려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천성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 아버지와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입장이란 의미다.”

- 아버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것 같은데 그런가?
“호주로 떠나기 전에는 아버지도 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지금은 변했다. 아버지도 그동안 안 하시던 일을 열심히 하시는 게 존경스럽다. 새로운 인생을 찾은 것 같다. 나도 호주에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방향을 찾았다. 이게 서로를 대하는 변화의 물꼬이지 싶다.”

부러웠다. 지인은 “아들이 많이 컸다”“무엇보다 삶의 방향이 뚜렷한 게 흐뭇하다”고 했다. 자식 키우는 아버지인 내가 원하는 바도 바로 이점이다. 기다림의 과정이 필요함을 절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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