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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여행 이야기/전라도

조정래의 <태백산맥> 배경, 벌교를 가다

태백산맥 ‘김범우 집’은 조정래가 놀던 곳
벌교가 대한민국 문학기행 1번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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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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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군 벌교읍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기행에 나섰습니다. 근처는 자주 왔어도 문학기행을 하지 않았던 곳입니다. 그래 작정을 하고 갔었습니다.

“벌교는 대한민국 문학기행 1번지다.”

지난 18일 만났던 벌교읍 번영회 박은기 사무국장 말입니다. 그냥 수긍했습니다. 왜냐면 먼저 선점하는 게 장땡 아니겠습니까. 이런 발 빠른 이슈 선점은 그만큼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작가 이외수나 박경리의 고장 등은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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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읍내.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집필과정을 엿보다

각설하고, 문학기행에서 가장 먼저 들렀던 곳은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에 개관해 지금까지 15만여 명이 다녀갔다 합니다. 28쇄 인쇄를 자랑하는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니 그럴 만합니다.

문학관 내부는 3층 구조로 1, 2 전시실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자료조사, 집필 원고, 취재 메모, 취재 수첩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띠는 건 원고지 16,500매에 달하는 방대한 육필 원고였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원고지에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한때 문학을 동경했던 이들에겐 궁금증이 가득한 어마어마한 분량입니다. 대단한 열정 아니면 감히 엄두를 못 냈을 것입니다. 그 정력(?) 앞에 입을 떡 벌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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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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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육필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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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문학관 전시품. 문구가 마음에 쏙 든다.

태풍에 쓰러지고 흔적 찾아 복원한 ‘소화의 집’

다음으로 본 게 ‘소화의 집’이었지요. 태백산맥이 소화의 집 신당에서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한 사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터라 관심이 쏠리더군요.

무당 소화네 집은 집 둘레로 낮은 토담이 둘러져 있었고, 뒤로는 대나무 숲이 있었습니다. 뒤란의 장독대 옆에는 감나무도 한 그루 서 있는, 정갈하고 아담한 집이었지요. 그러나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기대했던 옛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이에 대한 설명이 있더군요. “소화의 집은 태풍에 집이 쓰러지고, 토담 일부와 장독대 흔적만 남았는데 이후 주차장으로 사용되면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 것을 지난해 복원했다”고 합니다.

없어진 걸 어쩌겠어요. 그나마 복원해서 다행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옛스런 풍취를 갖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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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측면에서 본 소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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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의 집.

흥미로웠던 ‘김범우 집’, 방문 시 조심 필요

태백산맥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김범우. 있는 놈들이 더 쩨쩨하다는데 김범우는 기꺼이 자금을 내놓았던 멋스러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대목을 보면 그 멋스러운 배포가 느껴질 것입니다.

“과분한 땅이라고? 이 사람아, 요 정도가 내가 지닌 땅 중에서 젤로 나쁜 것이네. 눈 볽은 우리 선대의 유산이 어련허겄는가. 맘 쓰지 말고 밭 일구도록 허게. 허허허허…(태백산맥 1권 141쪽)”

그의 집은 육중한 담벼락을 돌아드니 대문 안에 또 문이 3개나 있더군요. 낯선 이들의 방문을 경계하는 개 짖는 소리가 사납게 났습니다. 먼저 구경 왔던 사람들은 집에 들길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대문을 열자 과거 대지주의 거처가 드러났습니다.

이곳은 원래 대지주였던 김씨 집안 소유입니다. 안채의 대문 옆에 딸린 아래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조정래가 친구인 이집 막내아들과 자주 놀았던 공간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바로 태백산맥에서 품격 있고 양심을 갖춘 김사용의 집이었습니다.

사랑채, 겹안채, 창고 자리, 장독대, 돌담 등 형태와 규모들이 과거 대지주 생활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데 방문객이 많아 귀찮아 한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개인 집이라 조심스레 다니는 게 필요할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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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의 집 입구. 대문 안에 3개의 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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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김범우의 집.

홍교를 지나 남도여관으로 향했습니다. 남도여관은 옛 모습 그대로 검은 판자벽에 함석지붕, 전형적인 일본식 2층 건물입니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었던 시절에도 여관이었고, 당시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 본정통이라고 불렸던 이 길에 남도여관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대로 두는 것 자체가 역사요, 교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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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관.

염상구가 주먹패와 담력을 겨루던 ‘철다리’

흥미를 끌었던 건 철다리였습니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주었던 곳입니다. 염상구는 철교 아래 선창에서 물건을 훔쳐내다 들켜 일본 선원을 죽이고 도망쳤다 해방과 함께 벌교로 돌아와 용감하게 일본놈을 처치한 독립투사로 변신했었지요. 이런 일 현실에서도 많았지요. 이로 인해 민족정기가 흐려졌다는 비난이 많습니다.

어찌됐건, 염상구가 장터거리 주먹패와 주도권 쟁탈전에서 철교의 중앙에 서서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오래 버티다가 바다로 뛰어내리는 담력을 겨루는 사건이 묘사된 곳이 바로 철다리입니다.

“철교의 교각은 모두 아홉 개였는데, 그들은 중앙 교각 위에 서 있었다. 기차가 뙈엑~ 기적을 울리며 검은 괴물처럼 철교로 진입했다. 그 순간 기차와 그들과의 거리는 교각 네 개의 간격으로 좁혀졌다….”(태백산맥 1권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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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다리.


이렇게 태백산맥 배경이 되었던 벌교 읍내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게 있더군요. 김범우의 집처럼 장소 안내가 되어 있었다면 해매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 않아 물어물어 다녀야 했습니다.

벌교는 태백산맥을 위해 한창 정비 중이었습니다. 기왕 정비할 거라면 관광객을 위한 세세한 배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작은 안내판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야 벌교가 원하는 ‘대한민국 문학기행 1번지’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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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홍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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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홍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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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안내판이 다 붙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