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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흐뭇한 ‘떡갈비’
아이들을 위해 아까울 게 없는 ‘담양 떡갈비’
자식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실감
[담양 맛집] 담양 떡갈비 ‘덕인관’

 

 

 

 

 

 

 

 

살다보면 먹고 싶은 게 많지요.

뭐가 그리 먹고 싶은지, 아이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놈의 입은...

 

 

“담양 떡갈비 먹고 싶다.”

 

 

한창 클 나이인 중학교 2학년 아들, 담양 떡갈비 타령이 며칠 째 계속되었습니다.

 

저희 부부, “저 놈이, 입은 또 고급이네.”하며 “먹어 본 놈이 그 맛을 안다더니, 어설프게 먹었나.”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부부, 아들 하나 살린 셈 치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우리 아들 소원 하나 들어주자.”

 

 

이렇게 가족이 함께 담양으로 내달렸습니다.

담양으로 가던 중, 차 안에서 또 물었습니다.

 

 

 

 

 

“담양 떡갈비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예.”

 

 

잘했다 싶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역할을 제대로 못한 부모 탓입니다.

네 식구가 차안에서 ‘룰루랄라~’ 흥얼거렸습니다.

 

어느 새 아이들은 퍼져 자더군요.

한 시간 여를 달려 고속도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담양 ‘덕인관’에 도착했습니다.

담양에서 떡갈비 수차례 먹어봤으나 이 집은 처음이었습니다.

 

죽녹원과 메타쉐콰이어 길 근처에서만 머물렀던 탓입니다.

주차장과 건물 외형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50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이곳은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100대 한식당으로 남도음식대축제 대상 청결상을 받았다더군요.

 

메뉴는 떡갈비, 갈비살 불고기, 죽순회, 대통밥, 죽순 추어탕, 옛날 곰탕 등이었습니다. 메뉴는 정해진 터.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떡갈비를 시켰습니다.

 

 

푸짐한 밑반찬이 열다섯 가지나 나왔습니다.

정갈하고 깔끔했습니다. 추가 반찬은 셀프.

 

대나무 통은 1회용, 필요하신 분은 야생화, 난, 화분, 목부작 등으로 재활용하라고 합니다. 재활용을 권하는 대목에서 점수 팍팍 줬습니다.

 

시장이 반찬. 반찬을 몇 차례 가져다 먹은 뒤에야 떡갈비가 나왔습니다.

 

 

떡갈비가 불판에 놓이자 신속히 불을 켰습니다.

익기도 전에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아들 보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지글지글 익어가자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저녁시간이 살짝 지난 상태의 뱃속 허기가 달달한 음식 유혹을 이기기가 힘들었습니다. 운치 있다는 댓잎술과 대통술 중 댓잎술을 맛보았습니다.

 

 

 

 

 

 

“누구부터 먹을까?”

 

 

아들 말로는 “아빠부터 드세요.”하는데 그랬다간 원망(?)어린 표정을 볼까 두려워 아들부터 나눴습니다.

 

아들도 딸도 떡갈비를 허겁지겁 삼켰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잘 먹는데 뭔 말이 필요하겠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잘 먹는 것보다 더 흐뭇한 게 무엇 있겠습니까.

무엇 하나 아까운 게 없었습니다. 그걸로 대만족이었으니.

 

 

“떡갈비가 그렇게 맛있어?”
“예, 더 먹으라면 혼자서 3인분도 먹겠어요.”

 

 

나 원 참. 이건 더 시켜 달라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맛있다는 건지 헷갈렸습니다.

이번 참에 소원 풀어주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추가 주문에 나섰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속도는 여전했습니다.

‘자식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시던 어른들 말이 실감되었습니다.

부모 마음은 이런 거나 봅니다.

 

 

 

 

 

 

 

“엄마 아빠, 감사해요.”

 

 

게걸스럽게 먹던 아이들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는지 고맙다고 표현했습니다.

맛있게만 먹은 걸로도 흡족한데 감사 표시를 하니 더 흐뭇했습니다.

 

이렇게 정성 들여 자식 키운 부모 마음 알까요?

모른들 어쩌겠습니다. 내리 사랑이라던데…. 그래도 알아주면 좋습니다.

 

 

담양에선 대통밥이 제격인데, 배가 불러 기회를 뒤로 미뤘습니다.

입안에 진하게 벤 갈비 냄새 대문에 대통밥의 맛을 음미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밥과 된장국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에 대통밥 먹으로 담양에 다시 와야겠습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사랑한다 아들, 딸. 건강하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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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22

 

"향기가 목 안으로 감기면서 바람소리를 내거든요.”
소요유, 구속 없는 절대자유 경지에서 노니는 것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식사를 마친 후 성 여사는 별채에 있는 법당으로 올라갔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부처님 앞에 앉아 있었다. 용화가 궁금했던지 몇 차례 살피고 왔어도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성 여사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비상도의 방에 마주 앉았다.

 

 

  “스님, 사는 것이 왜 이리도 허무한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한참을 뜸을 들인 그녀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스님께서 다녀가신 그 다음 해 겨울에 남편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어쩌다가? 정정하신 줄 알고 있었는데.”

 

 

 비상도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고였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연쇄충돌사고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가고 오는 것이 창졸간이긴 하지만…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용화가 차를 끓여 내어왔다. 초순에 잎을 따서 가루로 만들어 두었던 솔잎차였다.

 

 

  “향기가 너무 좋은데요?”
  “저도 마음이 울적할 땐 이 차를 마시곤 합니다. 향기가 목 안으로 감기면서 바람소리를 내거든요.”

 

 

 비상도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남재 형의 일과 스승의 일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 말이 위로가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날 오후에도 법당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서울로 돌아갔다. 그녀는 가면서도 용화 손을 잡고 한참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상도가 그녀를 마을 아래까지 배웅하고 돌아올 때는 서서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아침상을 물린 남재 형이 스승님께 말을 걸었다.

 

 

  “스승님, 성탄절 날 눈이 오네요.”
  “창을 열고 구경을 하고 싶으냐? 눈을 밟으며 걷고 싶은 것이냐?”
  “눈을 밟으며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싶습니다.”

 

 

 형의 대답에 스승님은 잠시 추억에 잠기시는 모양이었다.

 

 

  “창을 열고 데운 술로 긴 밤을 새우고 싶구나.”

 

 

 비상도는 자신의 마음이 꼭 그날의 스승님 마음을 닮은 것 같아 산을 오르면서도 눈이 옷에 수북이 쌓이는 것도 잊었다.

 

 

 비상도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을 새롭게 꾸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꿈꾸어 온 것이었고 이미 ⌜소요정(逍遙亭)⌟이란 당호도 지어놓은 상태였다.

 

 

 소요정이란 말은 장자(莊子)의 내편(內篇) 제 1장에 나오는 소요유(逍遙遊)에서 따온 말이었다.

 

 구속이 없는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에 얽매인 현실을 초월하여 세속적인 이해나 득실, 시비나 생사 등의 고정관념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스승님께서 소망하신 바람이기도 했다.

 

 

 날으는 새가 걸림 없이 창공을 누비듯 그렇게 살고 싶었다. 조작하지도 그 어떤 목적도 갖지 않는 자연 속에서 자신 또한 누구에게 간섭 받지 않으며 산 중의 꽃처럼 그렇게 살아보리라 했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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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머리ㆍ바리깡에 얽힌 이발의 추억

‘장발’은 군부독재에 대한 젊음의 항거
[아버지의 자화상 29] 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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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경범죄 처벌법’의 개정에 따른 장발 단속 결과 그 해에만 1만2천여 명이 경찰 단속에 걸려 강제로 머리를 깎였다.”

1970년대, 머리카락이 귀를 덮으면 경찰관이 가위로 싹뚝싹뚝 자르던 시절이 있었지요. 장발장은 단속을 피해 달아나고, 경찰관은 기어이 쫓아가 머리를 깎는 웃지 못 할 길거리 진풍경이 벌어졌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싶습니다. “머리를 마음대로 길러 미풍양속을 헤친다”는 말도 안된 이유의 장발단속은 “경제성장과 독재에 따른 청년들의 ‘저항정신’”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창년 뿐 아니라 빡빡머리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학교 두발단속은 학생주임과 교련 선생님 몫이었죠. 재수 없이 걸리는 날에는 서슬 퍼란 바리깡에 여지없이 머리를 밀렸지요. 머리 가운데만 미는 일명 ‘고속도로’는 대망신(?) 자체였지요. 그러면 빡빡 밀 수 밖에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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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단속은 일제에 의해 배후 조종된 ‘단발령’의 아류

<효경(孝經)>에 이르길,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니라.

신체와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
이런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이로 인해 우리네 선조들은 머리털을 자르는 걸 대단한 치욕으로 여겼지요. 조선시대에는 머리털을 함부로 자르는 일 자체가 없었고, 빠진 머리털도 모아 그해의 마지막 날에 태웠다 합니다.

하여, 1895년 을미사변 후 일본의 배후조종으로 단발령이 선포되자, 선비들은 “머리는 잘라도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며 항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부대신 유길준은 백성들에게 강제적으로 상투를 자르게 했지요. 나중에 대마도로 끌려가 단식하다 순국한 면암 최익현 선생은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기도 합니다.

결국 장발단속은 단발령의 아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제의 민족정신 죽이기 일환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까까중 빡빡머리의 학창시절, 자유의 상징이었던 긴 머리에 대한 동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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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싫다는 머리카락 자르게 해야 할까?

어찌됐건, 어릴 적 머리카락 자르는 일은 연례행사였습니다. 명절 때와 용모검사 때면 어김없이 단정히 잘라야했지요. 특히 명절 때 마을 이발소는 항상 붐볐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순번을 기다려야했으니까요.

머리카락을 자를 때면 키가 작아 꼭 널빤지를 깔아 그 위에 앉아야 했지요. 지금이야 다리 올리는 의자들이 나와 편안하게 자를 수 있지만 말입니다. 널빤지에 앉을 때면 “언제 커서 제대로 않을까” 싶었지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머리카락 자르길 싫어합니다. “멋스럽다. 자기 머리 자신의 뜻대로 기르고 싶다”란 이유입니다. 저도 뒷머리 기르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답답해 기르질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 굳이 싫다는 머리카락 자르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대신 하나, 이런 시절도 있었다는 건 알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장발 문화는 어려웠던 시절 군부독재에 항거했던 젊음의 표현이었다”고.

이렇게 알려줘도 무방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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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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