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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건, 돈이 아닌 ‘철학’

사람을 철들게 한 ‘흥국사’ 여행, 그리고 깨우침
자연에서 얻은 지혜 ‘고집멸도(苦集滅道)’
‘부처님 오신 날’ 연등 설화와 삶의 성숙
생로병사 뿐 아니라, 삶의 애착 또한 생명의 신비

 

 

 

그늘을 만들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겨내야 했을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살아보니 이제야 ‘아픔’ ‘성숙’의 상관관계를 알 것 같습니다. 삶은 찰떡궁합처럼 따라다니는 두 단어를 연상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성공과 실패 혹은 불행과 행복처럼. 아픔은 성숙을 밑바탕에 깔고 오는 거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괴로움 자체입니다. 이로 보면 삶은 깨우침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나무에 상처가 남았습니다, 왜?

 

 

여수 흥국사 뒷모습입니다. 뒷모습이란...

 

 

 

“인생이 이렇게 꼬이다니….”

 

 

요즘, 한 숨 쉬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만큼 살기 팍팍하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한탄은 대부분 경제 및 정치적 상황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돈’도 결국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하여,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학(哲學)’이 동원됩니다. 자연에서 지혜를 얻자는 게지요.

 

 

불교에서는 삶의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찾습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며(苦), 번뇌의 집합체(集)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통과 번뇌를 딛고 일어설 해탈이 필요하며(滅), 깨닫기 위한 실천 수행이 요구된다(道)는 거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냐고요?

 

 

 

깨달음은...

 

 

흥국사 가람 배치가 한 눈에...

 

 

꽃과 어울린 흥국사 

 

연등에도 설화가 스며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내와 ‘나’를 찾기 위한 선문답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곳은 여수 ‘흥국사(興國寺)’였습니다. 흥국사는 1196년(고려 명종 26년)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 창건하셨습니다. 흥국사는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흥국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른 ‘의승수군’의 본거지입니다. 오래된 절집인 만큼 흥국사에는 문화재가 수두룩합니다. 보물만 해도 대웅전(보물 제396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578호), 홍교(보물 제563호),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보물 제1862호) 등 10여점에 달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탱화 또한 인상적입니다.

 

 

 

흥국사에는 많은 보물이 있습니다. 득도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흥국사 대웅전 안에도 보물이 수두룩. 깨달음...

 

 

 

 

 

이 자체가 보물입니다..

 

 

 

흥국사 입구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기 위한 연등(燃燈)이 걸렸습니다. 명선스님께선 연등에 대해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으로, 어둠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불을 밝히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다음은 연등에 관한 설화를 각색한 것입니다.

 

 

연등에 깃든 설화는 공덕...

 

 

“부처님 생전에 가난한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여인은 부처님께 등불공양을 올리고 싶었으나 가진 게 없었다. 여인은 하루 종일 구걸하여 얻은 동전 두 냥으로 등과 기름을 사, 부처님께서 지나가실 길목에 작은 등불을 밝히고 간절히 기원했다.

 

 

‘부처님, 저에게는 공양할 것이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등불 하나를 밝혀 부처님의 크신 덕을 기리옵니다. 이 등을 켠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음 세상에 태어나 성불하게 해주십시오!’

 

 

세찬 바람에 왕과 귀족 등 다른 사람들이 밝힌 등은 하나 둘씩 꺼졌다. 그러나 여인의 등불은 꺼질 줄 몰랐다. 아난은 깊은 밤 이 등불을 끄려했다. 하지만 등은 꺼지지 않았다. 이를 보고 계시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 등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한 여인이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이 공덕으로 인해 앞으로 30겁 뒤에 성불하여 수미등광여래가 되리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가난한 한 여인의 마음을 훤히 보시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 지극 정성이면 못할 게 없습니다. 살기 힘든 세상, 어려움과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삶을 성숙으로 이끌 것입니다.

 

 

 

 

상처, 스스로 이겼습니다.

 

 

아픔이 이렇게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아픔 중에도 꽃 피웠습니다.

 

 

 

“저, 나무 좀 봐요!”

 

 

나름, 나무 박사인 아내. 흥국사 입구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콕 집어 가리킵니다. 무엇 때문일까?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렇지만 중생의 눈에는 보통 나무와 별 차이 없습니다. 다름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 나무를 지목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아내, 나무를 보며 말합니다.

 

 

“저기 나무줄기에 볼록 튀어 나온 부분 있잖아? 저건 나무가 아픈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 거야. 상처는 저렇게 흔적으로 남아요.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자란 게 대단하지요. 그러나 생명은 무엇이든 무심코 라도 건들이지 않는 게 좋아요. 사람도 나무와 마찬가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게 최선이지요.”

 

 

 

가지가 꺾이자 직각으로 다시 자랐습니다. 생명의 신비...

 

 

 

아내는 자연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보았습니다. 굳이 스님에게 설법 청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배움이자 깨우침이었습니다. 이게 선문답 여행의 묘미지요. 어쨌거나, 상처가 아픈 흔적으로 남았다니, 충격입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상처가 작길 바랄 뿐입니다.

 

 

“저기 봐요. 가지가 꺾이자 직각으로 다시 자랐잖아. 아픈 만큼 성숙한 거죠. 싹이 나고 자라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뿐 아니라, 저렇게 끈질긴 삶의 애착 또한 생명의 신비지요.”

 

 

아내, 자연의 진리를 깨우친 걸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내는 여전히 사랑스런 여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아내와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욕심이라면, 받은 상처 모두 다 용서하시길.

 

여행은 사람을 철들게 합니다.

 

 

 

생명이 함께 상생해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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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둔 가정의 굴레를 알고 있나요?
[장애인 가족과 풀어가는 장애인 이야기 1] 장애 가정

“어떻게 장애인 자녀를 두고 혼자 좋은 세상 가겠다고 자살을 택했는지, 아주 몹쓸 아버지다. 가족과 장애 자식은 어떻게 살아라고…”

지난 해,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을 둔 한 아버지가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주위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그 말투가 곱지 않았다. 그들은 장애인을 둔 가정의 굴레를 알고 있을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사랑이 가득한 집 아이들이 경험했던 행사들.

장애 일에 헌신은 “장애 가진 자녀가 있어서 하는 것뿐”

주위에서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럼에도 시시콜콜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래, 그들을 ‘시답잖은 사람’이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장애인 가족들을 만나 그들은 어떤 애로점과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직접 찾아 나섰다. 23일 오전 10시, 여수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만난 사공춘 전남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의 표정을 밝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난데없이 날아온 말,

“장애 관련 일을 하는 건 장애정신이 투철하거나 박애정신 있어서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장애 가진 자녀가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것뿐이다.”

쓸데없는 건 묻지 말라는 빈볼성 견제구였다. 자신은 스트라이크성 질문만 받겠다는 것이었다. 바라던 바였다.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이 주어진 것인가?”

“이 땅에서 장애인 가족으로 산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나도 몇 차례 아이와 함께 죽을까도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되지만, 완전 포기한 상태에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2녀를 둔 사공춘 대표의 경우, 맏딸이 정신지체 1급. “서울에서 여수로 시집와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 내가 세상에서 태교를 제일 잘한 줄 알았다. 우리 아이가 장애아로 태어난다는 건 0.001%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신지체로 태어난 것이다. 삶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더불어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이 주어진 것인가?”하는 원망이었다. 사실, 그는 장애아를 피할 수도 있었다.

“23년 전, 첫 아이 낳을 때가 추석이었다.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갔는데 아이가 거꾸로 앉아 있었다. 명절이라 마취의사가 없어 제왕절개를 못하고 3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 ‘살 가망이 없다. 살아 있더라도 장애아인 줄 알아라’는 소릴 들었다.”

사공춘 대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의료사고 제기는 애초에 생각지도 않았다. 돈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업보로 받아들였다. 재활치료로 완전히 나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심장ㆍ건강ㆍ재활치료를 위해 최고 권위자만을 고집하며 10여년을 쫓아다녔다.

부모라고 해도 견디기 힘든 한계가 왔다. 너무 힘들어 쉬고 싶어도 어디 맡길 데가 없었다. 때론 죽고도 싶었다. 죽지 못해 사는 경우가 있다는 걸 이때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그러나 자식을 떠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수없이 되물었다.

“하루는 장성한 장애인 아들 둘을 둔 할머니 집에 갔었어요. 할머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인데도 병원에 못가는 거예요. 자식들 밥해 줄 사람이 없다고.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을 두고 어디를 가겠어요? 이게 장애인 가족이에요.”

그도 마찬가지였다. 친척 장례와 결혼 등 행사 때, 마음 편히 갈 수가 없었다. 때로 쉬고 싶을 때 돌봐줄 곳이 필요했다. 부모가 죽고 없을 때, 다른 가족에게 떠맡기건 모두에게 짐이었다. 자식을 마음 편히 돌봐 줄 곳이 있어야 했다. 결국 장애 문제는 한 가정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회와 국가가 맡아야 할 과제였다.

장애 문제, ‘어느 부분을 도울까?’ 생각하면 해결돼

“누구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나? 아니다. 생명에 있어 장애ㆍ비장에 구분은 없다. 비장애인이라 해서 장애인을 손가락질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비장애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 그러면서 ‘어느 부분을 도울까?’ 생각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면, 국가에 복지를 요구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지난 해 목숨을 끊었던 장애인을 둔 아버지가 떠오른다. 참 정겹고 살가운 사람이었다. 그에게 장애인 자식이 있었다는 걸, 그가 죽은 후에야 알았다. 그가 죽으면서 장애 자식에게 남긴 유서가 있었다고 한다.

“○○야, 아빠가 너를 두고 떠나서는 안되지만,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더디게 가더라도 차근차근 가다보면 집에 당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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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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