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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
스님, 깨우침과 깨달음의 차이는 뭡니까?
[해탈로 가기] 여수 돌산 용월사 법회와 방생






용월사 원일스님 법문 중입니다.


해탈이. 의자에 앉은 자세가 득도한 견공입니다.







“해탈아, 잘 있었냐?”
“….”


 

 


녀석 말이 없습니다. 대단합니다. 어찌 이름을 해탈이라 지었을까. 해탈을 꿈꾸는 인간의 염원을 담았을 거라 짐작 할 뿐.

 



“저 썩을 놈이 대답이 없네, 그려!”
“….”


 

 


저것이 어떻게 알아들을 거라고 말을 섞을까?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깔볼 일 아니지요. 절집에 있는 개는 세월 속에 불성(佛性)이 절로 생긴다잖아요. 혹시나 싶어 말을 섞은 겁니다.

 

 


의자에 앉은 해탈이 무아지경입니다. 폼으로만 따지면 이미 득도한 견공(犬公)입니다. 저놈 팔자가 부럽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거늘….




관세음보살이 바다를 지키고 있습니다.

무릇 중생이란...

나무 석가모니불!



 

 



방생,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


 

 


“차 마시러 오세요.”


 

 


전남 여수 돌산 용월사 원일 스님 요청입니다. 무슨 일일까. 은은한 목탁소리, 바람에 실려 옵니다. 대웅전인 무량광전 옆문에 신발이 즐비합니다. 음력 6월 초하루 법회 중입니다. 그동안 스님과 차 마시며 한담만 나눴습니다. 법회라니, 대중과 함께 스님 법문 들어볼 좋은 기회입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현실과 선계인 듯...

나무 관세음보살!


 


 



“사람 얼굴 보면 압니다. 복 받을 얼굴인지 아닌지. 그래 복 받으려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을 바치고, 심혈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삼보에 귀의하는 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는 걸 배우기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배웠으면 실천해야 하고,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과 행동이 안 바뀌고 그대론데 어찌 복 받겠습니까. 생각과 행동이 바뀌고 변해야 복 받습니다.


좋은 심보를 써야 복 받을 심보가 되는 것입니다.”


 

 


용왕전으로 이동합니다. 예불을 올립니다. 용왕전 옆에 마련된 방생 장소로 이동합니다. 바다 밑까지 오르내리는 수고를 덜기 위해 통으로 연결한 방생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절집들이 따로 방생 법회를 여는데 반해, 용월사는 매월 초하루 법회와 방생을 함께 진행한다네요. 방생 대상은 장어입니다. 신도들 장어 한 마리씩 바다로 방생합니다.

 

 



방생하는 곳입니다.

용왕전에서...

방생 공덕이...고




“장어는 오늘 아침 여수 남산수산시장 수족관에 있는 걸 사왔습니다. 이 장어들은 오늘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기만 기다리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생되어 바다로 살아 돌아가게 될 걸 알았을까?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입니다. 이게 다 인연법입니다.


우리네 삶도 보시와 방생 등으로 덕을 쌓으면 좋은 변화가 생깁니다. 세상은 인연법에 따라 흐르고 흐릅니다.”



방생을 위해 장어를 건집니다.

방생된 장어는 바다로...

나무 석가모니불!



 

 


스님, 깨우침과 깨달음의 차이는 뭡니까?


 

 


공양시간입니다. 청각, 고사리, 무생채, 고구마대나물 등을 넣은 비빔밥과 홍합국, 김치 등 조촐합니다. 스님과 앉았습니다. “오늘따라 특별이 홍합국이 준비됐는데 먹을 복이 있다”는 원일 스님의 덕담입니다. 따끈따끈한 홍합국이 속을 시원하게 풀어 줍니다. 공양 후, 스님께서 차를 냅니다.

 

 



홍합국입니다.

 

 



- 참 스님은 어떤 스님입니까?


“머리를 굴리지 않게 하는 스님이 참 스님입니다. 죽비로 어깨 등을 내리치는 건 머리 굴리지 말고 깨우치라는 의미입니다.”




- 깨우침과 깨달음의 차이는 뭡니까?


“깨우침은 지식을 갖고 추론하는 것이며, 개량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사색이고 사유입니다. 깨달으면 모든 게 하납니다. 우주와 내가 한 몸이요, 물과 내가 하납니다. 땅과 내가, 세상과 내가 하나입니다.”


 

 


불교에서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깨달음, 즉 해탈의 경지에 오른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인가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풍경이 그림입니다. 관세음보살님, 바다 위에 고고히 떠 있는 배들을 굽어보며 자비를 베풀고 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장어, 새 삶을 얻고...

이리 빠져야 바다로 가는데, 한치 앞을 모릅니다.

바다로 가기 직전입니다.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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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려 마음에 든다는, ‘여수갯가길’
“해안 공터에서 야외 음악회를 열면 금상첨화지요!”
여수갯가길, 이렇게 손대지 말고, 그대로 가꾸길…

 

 

여수갯가길 2코스 해안 풍경

 

 

 

나는 참 욕심쟁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천천히’, ‘느리게’에 적응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일부러 애를 쓰고 천천히 하는데도 어느 틈엔가, 빠르게 바뀌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어찌된 일일까. 나를 잠시 내려놓은 것 같은데, 어느 새 다시 곽 잡고 있는 자신을 보고 맙니다.

 

아닌 척 해도 나는 참 욕심쟁이입니다.

 

 

 

열정의 동백곷...

 

하늘과 바다와 등대 색의 조화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려 마음에 든다는, ‘여수갯가길’

 

 

여수갯가길 2코스에 섰습니다. 2코스는 돌산의 무술목~월암~두른계~계동~두문포~방죽포 해수욕장 등 약 17km 거리를 5개 구간으로 나눴습니다. 완주하는 데 5시간 정도 걸립니다. 전체를 걷기에는 무리가 있는 분들은 자신의 체력에 맞게 시간과 구간을 선택해 걷는 게 좋습니다. 운동하러 왔다가 몸이 쑤시고 아프면 안하느니만 못하니까.

 

 

참고로, 여수갯가길(www.getga.org)은 여수의 해안선 420㎞에 이르는 바다, 갯벌, 벼랑, 산길, 숲길 등 갖가지 다양한 길이 오밀조밀 연결된 ‘생태체험 길’입니다. 특히 마을과 마을 간 ‘소통 길’과 낚시꾼들의 ‘낚시 길’, 야생 동물들의 ‘이동 길’ 등을 개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린 ‘자연 길’입니다. 하여, 이런 평을 자주 듣습니다.

 

 

“여기는 길에 그 흔한 데크가 깔리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려 아주 마음에 든다.”

 

 

여수갯가길은 차근차근 단계별 개장을 준비 중입니다. 총 25개 코스 중 1코스 돌산공원~무술목(동백골) 구간과 2코스 무술목~방죽포해수욕장 구간 및 특별 코스인 ‘여수밤바다’ 등 3개 코스가 개장되어 갯가꾼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조만간 3코스(방죽포 해수욕장~향일암)가 개장될 예정입니다.

 

 

 

여수갯가길 안내판입니다.

 

 

여수갯가길 2코스는 5구간으로 나뉩니다.

 

야외 음악회를 해도 좋을 곳입니다.

 

 

“저 해안 공터에서 야외 음악회를 열면 금상첨화지요!”

 

 

여수갯가길 2코스 중, 계동~두문포 3·4구간을 걸었습니다. 이곳은 풍광이 뛰어나고, 힘들지 않으면서도, 땅심까지 온화해 마음의 여유를 찾기에 제격입니다. 전망대 앞 공터에서 좌측 숲길로 접어들면 작고 하얀 무인 등대가 나옵니다. 바다 건너 경남 남해와 거제 두미도와 욕지도까지 아우른 풍경은 감탄입니다. 너럭바위를 지나면 몽돌해변이 자리합니다. 이 해안 공터에서 하고픈 게 있습니다.

 

 

“저 해안 공터에서 야외 음악회를 열면 금상첨화지요!”

 

 

걸으면서 지인에게 아는 척 했더니, 계동이 태 자리인 지인, “운치 있고 좋겠다”면서 한 바위를 가리키며 “저기는 용꼬리 바위”라며 스토리텔링에 살을 붙이더군요.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격입니다. 암튼, ‘~척’ 해도 중생이거니 하면, 용서 혹은 이해가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중생이라서 참 다행입니다.

 

 

등대를 뒤로하고, 갯가길 안내판이 서 있는 숲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하얀 등대와 푸른 바다, 바다 위에 정박한 배 등이 어울린 풍경이 압권입니다. 눈과 발이 호사다마를 누리는 사이, 대형 비렁(벼랑) 바위와 비렁길을 마주합니다. 비렁 해안선이 소나무 등 녹색 숲 경계선과 대비를 이룬 광경은 색다른 맛입니다.

 

 

“그렇지. 저기가 포인트야.”

 

 

바위틈에 서 있는 낚시꾼을 보며 건네는 훈수도 재미납니다. 가파른 바위를 슬기롭게 헤쳐 내려가면 바닷물에 손을 담글 수 있습니다. 이곳 바다는 안강망 등의 그물이 촘촘하게 영역 표시를 할 만큼 어족 자원이 풍부한 곳입니다. 그래 설까, 낚시꾼들이 잡은 물고기 제법 씨알이 큽니다. 이들 낚시 객은 가족 행복을 낚은 셈이지요.

 

 

 

 

산길에 놓인 여수갯가길 안내표지

 

 

용꼬리 바위

 

 

비렁길입니다.

 

태평양의 시발점으로 풍경이 아기자기합니다.

 

 

 

여수갯가길, 이렇게 손대지 말고, 그대로 가꾸길…

 

 

수평선의 바다. 여수의 바다는 태평양의 시작점입니다. 두문포 앞에 자리한 ‘불무섬’이 운치를 더합니다. 태풍 등을 차단하는 방파제 역할과 넓디 넓은 태평양의 밋밋함을 가려주며 호기롭게 서 있습니다. 물이 빠지면 건널 수도 있지요. 주민들은 이 때를 이용해 미역, 톳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갯것을 합니다.

 

 

“여수갯가길, 애 참 많이 썼네요. 이렇게 손대지 말고, 그대로 가꾸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이런 길 조성해 줘 고맙다고 인사해야겠습니다.”

 

 

전국의 도보 여행객의 일원으로 경기도에서 오신 갯가꾼 소감입니다. 이런 칭찬과 격려 말씀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쓰레기가 많아 좀 걱정입니다. 하여튼 여수 갯가길은 민간 자원봉사단체가 만드는 중입니다. 여수갯가길을 조성하고 애쓰고 가꾸는 (사)여수갯가 김경호 이사장과 이회형 이사 등의 노력에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쯤에서 4월 개장을 준비 중인 여수갯가길 3코스를 잠시 소개하지요. 약 8km 길이의 3코스는 돌산 방죽포 해수욕장에서 출발해 백포, 기포, 대율, 소율을 거쳐 그 유명한 해를 향한 암자인 향일암이 있는 임포에서 끝이 납니다. 완주까지 약 3시간 정도 걸립니다. 3코스 풍광 또한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습니다.

 

 

푸른 바다 위로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비렁 길. 파도에 닳고 닳아 머지않아 모래가 될 작은 몽돌 해변. 적송이 우거진 숲 속 오솔길. 열 맞춰 물 위로 떠 있는 홍합양식장 등은 시골 텃밭을 연상케 하는 한 폭의 그림입니다. 게다가 갯가 사람들의 삶을 관찰할 수 있는 마을과 포구, 바다 물이 들면 모습을 감추었다가 물이 빠지면 몸을 드러내는 여(바위) 등이 여행길의 든든한 벗이 될 겁니다.

 

 

 

겨울을 홀로 이겨낸 동백도 이제 끝물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용월사 관세음보살과 바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겸손을 잃지 않은 중생이 되게 하소서!!!

 

 

 

중생과 부처가 하나 되는 길 그게 바로 ‘여수갯가길’?

 

 

차를 타고 ‘힐링’의 마무리 코스로 이동합니다. 여수갯가길 중간 중간에 있는 절집에 들러 스님과 차 마시며 나누는 한담이야말로 힐링의 끝판 대왕입니다. 무작정 여수갯가길 1코스 중간인 돌산 상·하동에 자리한 용월사로 향했습니다. 대웅전 앞을 지나시는 스님을 붙잡았습니다. 원일스님의 웃음에서 동자승의 해맑음이 엿보였습니다.

 

 

“스님, 참 맑습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레 부처가 되어가는 게지요.”

 

 

스님께서 내신 차는 돼지감자 차. 이 차는 누룽지처럼 고소함이 일품입니다. 지인이 스님께 빌려간 『티벳 사자의 서』를 건넵니다. “한 번 읽은 후, 그 의미를 알 듯 모를 듯해 두 번이나 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원일스님의 법문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첫째, 죽은 자는 못 살립니다. 둘째, 시절 인연이 닿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셋째, 깨달음은 스스로 구해야 합니다.”

 

 

암요.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의 허물만 찾는다!”고 합니다. 삶.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부단히 수행하고 노력해야지요. 주위에서 재밌는 말로 그러더군요.

 

 

“‘남’이란 글자에서 점(·) 하나 빼면 ‘님’이 되고, ‘남’이란 글자에서 ‘ㅁ’을 떼면 ‘나’가 됩니다.”

 

 

이는 ‘남’이란 글자는 ‘님’도 되고 ‘나’도 되는, 우리는 하나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생과 부처가 하나 되는 길 그게 바로 여수갯가길이지 싶네요.

 

 

 

용월사 밑 해안선입니다. 가운데 바위가 헤엄치는 듯 하지요?

 

 

일행을 반기는 용월사 원일스님...

 

 

이 바위는 용 새끼가 어미를 찾아 헤험치는 바위입니다!

 

 

중생과 한 컷.

 

 

 

용월사 앞 마당의 소나무가 운치를 대변합니다.

 

차 한 잔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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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우도 금강사 제초작업에서 든 생각 한 자락
제초작업의 양면성과 웃음의 의미 및 우리의 보물은

 

 

 

부지런한 처사님이 아침 일찍부터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 관세음보살과 동자승 뒤로 성산 일출봉이 보입니다.

덕해 스님께서 벤 풀을 빗자루로 쓸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풀이 무성합니다.

무심했었습니다. 바삐 지낸 탓입니다.

 

식전(食前)부터 “애~~~ 앵”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가 진동합니다.

밖을 살피니, 한 처사가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 절집의 어지러운 마당이 많이 거슬렸나 봅니다.

 

 

새벽 예불 후, 서예 연습에 몰두하였을 덕해스님(제주도 우도 금강사)도 머리를 문 밖으로 쏙 내미시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이심전심의 염화미소였습니다.

 

벌써 이럴 것임을 알았던 게지요. 그 모습이 어찌나 자애롭던지, 반할 지경이었습니다.

 

 

 

“일찍 오셨습니다.”
“아침에 풀 베어 놓고 일 가려고요.”

 

 

부지런한 손놀림입니다.

읽던 책을 접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스님은 이미 나와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예상 못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생각하는 순간 몸이 움직인 게지요.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불상을 배치하는 원리를 떠올렸습니다. 

 

 

불상은 대개 부처님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합니다.

 

사자를 새긴 관을 쓰신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상징합니다.

또 코끼리 문양의 관을 하신 보현보살은 행(行)을 나타냅니다.

이는 “정신과 육체가 함께 움직여야 이상적인 걸 일깨우기 위함이다”고 합니다.

 

 

“절집 주위가 점점 깔끔합니다.”

 

 

그가 뜻하지 않은 칭찬에 미소 지었습니다.

제주도 우도봉과 성산 일출봉을 뒤 배경 삼아 움직이던 그가 관음보살상 및 동자승과 나란히 선 모습에서 부처를 생각했습니다.

 

부처가 어디 따로 있던가요. 행하면 그게 부처님이신 거죠.

그가 지나간 자리에 널브러진 풀의 흔적들은 스님께서 정리하셨습니다.

 

 

 

새벽 예불 후의 은은한 우도 금강사 풍경입니다.

관세음보살과 동자승 그리고 보시하는 처사...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조사뿐다는 표현이 재밌었습니다.

 

 

 

“저건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사투리로 풀을 완전 ‘조사뿌네요’. 그렇지요?”

 

 

스님께선 안절부절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아쉬움에 내뱉은 말씀이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사뿐다>는 단어가 왠지 처절하면서도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야생에만 존재했던 단어처럼 묘한 맛과 여운이 살아났습니다.

 

 

“저 처사님 얼굴이 마치 ‘살생부’를 손에 든 ‘한명회’ 같지 않습니까?”
“스님 어찌 저런 덕행에서 한명회를 떠올린단 말입니까! 너무 의욉니다.”

 

 

반발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는 땀과 제초작업 중 튄 풀이 뒤엉켜 얼굴이 엉망이었습니다.

스님께선 잘려나가 튄 풀의 파편과 땀을 피의 아우성으로 읽은 겁니다.

 

그 모습이 자연스레 조선 세조 때 처절했던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리게 한 거죠.

우리네 역사에 이 뿐이겠어요?

 

 

그렇더라도 스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제초작업의 양면성을 같이 봤다는 겁니다.

 

칼날에 쓰러진 풀들의 아우성과 절집을 깨끗이 치우는 처사의 기쁨.

즉, 잡초들의 죽음에 가까운 고뇌(苦惱)와 부처님이 기거하는 절집에 행한 덕행(德行)이었습니다.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둘째,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린 내공입니다.

 

근본은 아마 <세월호 참사>지 싶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눈 뻔히 뜨고서도 살리지 못한 중생들의 죄책감.

스님은 이를 ‘이 시대의 무능’으로 표현했습니다.

어쨌거나 무능한 정부는 살생부를 움켜쥔 허황된 한명회가 된 꼴이지요.

 

 

혼자 계신 스님은 항상 '행'이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 절집 같지 않아 좋았습니다.  

대학살에도 살아남은 덕해스님의 씀바귀 밭입니다.

 

 

암튼, 알고 보니 스님께서 안절부절 하신 이유는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아~ 글쎄, 본인이 아끼는 야채 쌈 밭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까, 노심초사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야채 쌈은 부드럽고 독특한 향으로 인해 토끼가 좋아하며 잘 먹는 <씀바귀>였습니다. 요즘 말로 ‘헐’이었지요.

 

 

씀바귀(Ixeris dentata)는 국화과의 다년생 풀입니다.

뿌리와 어린 순은 나물로 먹습니다. 잎의 상처에서 분비되는 흰 수액은 쓴맛이지만 기름 혹은 초간장에 무쳐 먹으면 오히려 입맛을 돋운다고 합니다.

 

저는 이를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걸 스님께선 쌈으로 드신다니 자연식에 놀라울 뿐입니다.

 

 

“다행이 스님의 쌈 밭은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네요.”
“그러게요. 이게 다 부처님의 가피지요.”

 

 

한담을 나누며 자신을 바라보는 걸 느꼈을까.

그가 잠시 손을 멈추고 땀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우릴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습니다.

하얀 이가 더욱 하얗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그가 잡초들에겐 한명회였을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씀바귀 밭은 왜 치지 않고 두셨어요?”
“스님이 즐기는 야채 쌈 밭인 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쳐요. 스님 맛있게 드시라고 그냥 뒀어요.”

 

 

씀바귀 밭을 남긴 건 그가 스님을 위해 베푼 최대한의 <자비>였습니다.

누가 스님이고, 누가 처사인지 경계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실소유주로 구원파 목사였던 유병언.

그는 목사와 신도의 경계를 넘어 신계에 존재했다지요?

유씨도 죽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쯤에서 시 한편 읊지요.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시 ‘쓴’ <웃음>입니다.

 

 

국화를 다듬는 덕해스님.

 

 

 

      웃 음
                고 변재환

 

  스님이 칼 갈고
  목사가 약을 판다

 

  목 좋은 자리에서
  매일 굿판 펴

 

  두 분 성인(聖人)
  긴급 회동하시니

 

  부처님 장발하고
  예수님 삭발하셨더라

 

 

웃음을 잃은 현시대에 입장 바꿔 생각하며 서로를 잘 보살피라는 발상이 도드라집니다.

또한 일어날 수 없는 두 분 성인의 긴급 회동(여와 야)에도 민생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구도자답게 활동해야 성인의 뜻처럼 현실 속에서 천당과 극락이 될 수 있다는 간절한 바람이지 싶네요.

 

 

하여간, 스님께서 씀바귀 밭을 지켜 준 그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제가 금강사에 오기 전까지 절에 한 번도 온 적 없답니다. 우연히 옛 것을 좋아한 제가 밖에서 돼지 여물통을 차에 실어왔다가 절에 내려놓지 않고 그냥 갔다가, 뒤에 돼지 여물통을 갔다 주러왔던 인연으로 절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우도 금강사에서 얻은 최고의 보물 중 하나지요.”

 

 

그렇다면 속세에 있는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들의 2세, 아이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아이들을 위해 정부가 철석같이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아직까지 미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야겠습니다.

 

 

스님께서 내온 저녁 공양에 고추와 함께 씀바귀 쌈이 올랐습니다.

속가에서 쌈밥을 즐겼던지라 쾌재를 불렀습니다. 쌈부터 맛보았습니다.

 

씀바귀를 손에 펼쳐 밥을 얹고, 그 위에 된장을 올린 다음 도르르 말아 입에 넣었습니다.

신선한 야채의 향은 쌉스름 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엄청 자비로운 맛이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이 저녁 공양에 올린 씀바귀 쌈입니다. 맛요?

부처님 왼편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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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돌고도는 역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절 같네요
    쪽바리 제주도도 일본땅이라 할만하네요~
    그래서 땐놈들한테 시민권주면서 파는것인가요
    과거의 어느때로 다시 간 느낌?

    2014.08.0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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