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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할머니래? 우리는 이래 뵈도 ‘흰머리 소녀’

스님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흰머리 소녀․소년이라 부르는 이유

 

 

 

 

차 속에는 자연의 이치가 스며 있습니다.

 

차를 즐기시는 스님은...

 

 

 

머리가 복잡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찾을 곳이 있으면 좋습니다. 혼자만의  비밀스런 아지트(공간)가 있다면 금상첨화. 찾는 사람이 적고, 조용하며, 공기와 물이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다행이 제게도 힐링 처가 몇 군데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제주도 우도 금강사입니다.

 

 

금강사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절집에 기거하는 즐거움은 대략 세 가지. 첫째, 스님과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것. 둘째, 새벽 예불을 드리며 몸과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다는 점. 셋째, 자신도 모르게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덕해 스님과 차 앞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 말문을 여시기만 하면 어느 새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맙니다. 대화의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이유는 진정성과 해박함 및 부드러움이지 싶습니다. 게다가 ‘백제의 미소’라 일컫는 <마애삼존불>처럼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시면 깜빡 죽습니다.

 

 

“흰머리 소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참 재밌어요.”

 

 

이야기 도중, ‘흰머리 소녀’란 단어에 튀어 나왔습니다. 귀를 의심하면서도 쫑긋했습니다.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흰머리 소녀’란 단어에 호기심이 잔뜩 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찾았지? 참 멋스럽다, 싶었지요. 대충 ‘할머니’로 해석하는 게 맞을 듯했습니다.

 

 

“스님, 흰머리 소녀란 말이 흥미롭네요. 흰머리 소녀는 누굴 말하나요?”
“….”

 

덕해 스님의 웃음은 자애입니다.

 

 

 

스님은 웃으실 뿐 침묵하셨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안 가르쳐 줘. 궁금해 죽겠지? 알아 맞춰 봐.”

 

라시며 약도 올릴 만합니다. 이마저 없는 걸 보면 선문답을 하자는 건지…. 생각할 시간을 주시려는 건지…. 이미, 본인이 생각하는 흰머리 소녀의 근원으로 들어가신 건지…. 침묵을 깨고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흰머리 소녀는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할머니를 말합니다. ‘흰머리’와 ‘소녀’를 합친 합성어지요. 제가 만들었는데 말을 쓰면 쓸수록 맛깔스러워 계속 쓰게 돼요. 중독성이 있지요. 흰머리 소녀란 말 괜찮죠?”

 

 

듣고 보니 ‘할머니’란 단어보다 ‘흰머리 소녀’가 더 운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사람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고,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결국 사라지는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하긴 자연의 이치를 뉘라서 피할 소냐!

 

 

“흰머리 소녀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몇 년 전, 서울서 지하철을 탔어.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할머니들이 단체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대. 생김새와 옷차림을 보니 부잣집 사모님부터 소시민까지 다양한 계층임에도 거리낌 없이 어울려 수다를 떨더라고.

 

각자 성향과 경제력을 떠나 체면조차 벗어던지고 마냥 즐겁게 떠드는 걸 보니 꼭 초등학교 동창 같더라고. 중ㆍ고등학교 동창들은 체면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떠들지 못하거든. 할머니들이 격의 없이 수다 떠는 게 마치 천진난만한 소녀들의 재잘거림처럼 보이더라고. 그래서 나이를 상징하는 흰머리에 해맑은 소녀를 갖다 붙인 거야.”

 

 

딱, 손뼉 쳤습니다. 세심한 관찰력도 관찰력이지만 할머니들의 수다에서 싱그러운 소녀들의 재잘거림을 발견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스님의 풍부한 상상력과 대단한 내공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니까 덕해 스님이 '흰머리 소녀'란 단어를 찾아낸 건 구도자로써 인간에게 갖는 사랑이었던 셈입니다. 천상 스님인, 스님의 맑고 고운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비의 마음은 배움이었습니다.

 

 

덕해 스님이 또 다른 수행 삼아 하시는 서예...

 

 

 

뜨겁던 차가 식어갑니다. 달빛은 점점 깊어갑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는 스님께서 쓰신 붓글씨가 걸려 있습니다. 솜씨가 있는지, 필체에 힘이 서려 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다만,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반가울 뿐이었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자비의 배.”

 

 

이 글귀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르침이었습니다. 만법은 본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경계를 초월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고통을 넘어 열반으로 가는 자비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었지요. 인간 삶은 고통의 연속. 이를 이겨내고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수행이 있는 것…. 생각을 접고,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 흰머리 소녀에 대한 반응은 어때요?”


“반응? 다 늙어빠진 할머니들에게 소녀라고 하는데 누가 싫어하겠어? 좋아 하지. 할아버지들이 은근 시샘하는 거 있지. 그래 할아버지들은 덤으로 ‘흰머리 소년’이라고 불러.”

 

 

흰머리 소녀와 흰머리 소년. 참 듣기 좋습니다. 이렇게 부른지 3년여가 됐다나요. 하여튼 단어에 의미가 붙으니 더욱 빛납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걱정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줄여 말하는 게 대세입니다. 예를 들어, 야간 자율학습을 ‘야자’로 부르는 것처럼 축약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하여, 흰머리 소녀를 ‘흰소’로 부르면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걱정도 팔자라고요? 하긴, 깨달음의 상징인 ‘소’도 괜찮을 듯싶네요. 단지 말 속에 스며있는 의미를 알면 그만.

 

달이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달님이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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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우도 금강사 제초작업에서 든 생각 한 자락
제초작업의 양면성과 웃음의 의미 및 우리의 보물은

 

 

 

부지런한 처사님이 아침 일찍부터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 관세음보살과 동자승 뒤로 성산 일출봉이 보입니다.

덕해 스님께서 벤 풀을 빗자루로 쓸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풀이 무성합니다.

무심했었습니다. 바삐 지낸 탓입니다.

 

식전(食前)부터 “애~~~ 앵”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가 진동합니다.

밖을 살피니, 한 처사가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 절집의 어지러운 마당이 많이 거슬렸나 봅니다.

 

 

새벽 예불 후, 서예 연습에 몰두하였을 덕해스님(제주도 우도 금강사)도 머리를 문 밖으로 쏙 내미시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이심전심의 염화미소였습니다.

 

벌써 이럴 것임을 알았던 게지요. 그 모습이 어찌나 자애롭던지, 반할 지경이었습니다.

 

 

 

“일찍 오셨습니다.”
“아침에 풀 베어 놓고 일 가려고요.”

 

 

부지런한 손놀림입니다.

읽던 책을 접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스님은 이미 나와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예상 못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생각하는 순간 몸이 움직인 게지요.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불상을 배치하는 원리를 떠올렸습니다. 

 

 

불상은 대개 부처님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합니다.

 

사자를 새긴 관을 쓰신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상징합니다.

또 코끼리 문양의 관을 하신 보현보살은 행(行)을 나타냅니다.

이는 “정신과 육체가 함께 움직여야 이상적인 걸 일깨우기 위함이다”고 합니다.

 

 

“절집 주위가 점점 깔끔합니다.”

 

 

그가 뜻하지 않은 칭찬에 미소 지었습니다.

제주도 우도봉과 성산 일출봉을 뒤 배경 삼아 움직이던 그가 관음보살상 및 동자승과 나란히 선 모습에서 부처를 생각했습니다.

 

부처가 어디 따로 있던가요. 행하면 그게 부처님이신 거죠.

그가 지나간 자리에 널브러진 풀의 흔적들은 스님께서 정리하셨습니다.

 

 

 

새벽 예불 후의 은은한 우도 금강사 풍경입니다.

관세음보살과 동자승 그리고 보시하는 처사...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조사뿐다는 표현이 재밌었습니다.

 

 

 

“저건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사투리로 풀을 완전 ‘조사뿌네요’. 그렇지요?”

 

 

스님께선 안절부절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아쉬움에 내뱉은 말씀이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사뿐다>는 단어가 왠지 처절하면서도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야생에만 존재했던 단어처럼 묘한 맛과 여운이 살아났습니다.

 

 

“저 처사님 얼굴이 마치 ‘살생부’를 손에 든 ‘한명회’ 같지 않습니까?”
“스님 어찌 저런 덕행에서 한명회를 떠올린단 말입니까! 너무 의욉니다.”

 

 

반발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는 땀과 제초작업 중 튄 풀이 뒤엉켜 얼굴이 엉망이었습니다.

스님께선 잘려나가 튄 풀의 파편과 땀을 피의 아우성으로 읽은 겁니다.

 

그 모습이 자연스레 조선 세조 때 처절했던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리게 한 거죠.

우리네 역사에 이 뿐이겠어요?

 

 

그렇더라도 스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제초작업의 양면성을 같이 봤다는 겁니다.

 

칼날에 쓰러진 풀들의 아우성과 절집을 깨끗이 치우는 처사의 기쁨.

즉, 잡초들의 죽음에 가까운 고뇌(苦惱)와 부처님이 기거하는 절집에 행한 덕행(德行)이었습니다.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둘째,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린 내공입니다.

 

근본은 아마 <세월호 참사>지 싶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눈 뻔히 뜨고서도 살리지 못한 중생들의 죄책감.

스님은 이를 ‘이 시대의 무능’으로 표현했습니다.

어쨌거나 무능한 정부는 살생부를 움켜쥔 허황된 한명회가 된 꼴이지요.

 

 

혼자 계신 스님은 항상 '행'이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 절집 같지 않아 좋았습니다.  

대학살에도 살아남은 덕해스님의 씀바귀 밭입니다.

 

 

암튼, 알고 보니 스님께서 안절부절 하신 이유는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아~ 글쎄, 본인이 아끼는 야채 쌈 밭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까, 노심초사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야채 쌈은 부드럽고 독특한 향으로 인해 토끼가 좋아하며 잘 먹는 <씀바귀>였습니다. 요즘 말로 ‘헐’이었지요.

 

 

씀바귀(Ixeris dentata)는 국화과의 다년생 풀입니다.

뿌리와 어린 순은 나물로 먹습니다. 잎의 상처에서 분비되는 흰 수액은 쓴맛이지만 기름 혹은 초간장에 무쳐 먹으면 오히려 입맛을 돋운다고 합니다.

 

저는 이를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걸 스님께선 쌈으로 드신다니 자연식에 놀라울 뿐입니다.

 

 

“다행이 스님의 쌈 밭은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네요.”
“그러게요. 이게 다 부처님의 가피지요.”

 

 

한담을 나누며 자신을 바라보는 걸 느꼈을까.

그가 잠시 손을 멈추고 땀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우릴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습니다.

하얀 이가 더욱 하얗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그가 잡초들에겐 한명회였을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씀바귀 밭은 왜 치지 않고 두셨어요?”
“스님이 즐기는 야채 쌈 밭인 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쳐요. 스님 맛있게 드시라고 그냥 뒀어요.”

 

 

씀바귀 밭을 남긴 건 그가 스님을 위해 베푼 최대한의 <자비>였습니다.

누가 스님이고, 누가 처사인지 경계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실소유주로 구원파 목사였던 유병언.

그는 목사와 신도의 경계를 넘어 신계에 존재했다지요?

유씨도 죽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쯤에서 시 한편 읊지요.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시 ‘쓴’ <웃음>입니다.

 

 

국화를 다듬는 덕해스님.

 

 

 

      웃 음
                고 변재환

 

  스님이 칼 갈고
  목사가 약을 판다

 

  목 좋은 자리에서
  매일 굿판 펴

 

  두 분 성인(聖人)
  긴급 회동하시니

 

  부처님 장발하고
  예수님 삭발하셨더라

 

 

웃음을 잃은 현시대에 입장 바꿔 생각하며 서로를 잘 보살피라는 발상이 도드라집니다.

또한 일어날 수 없는 두 분 성인의 긴급 회동(여와 야)에도 민생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구도자답게 활동해야 성인의 뜻처럼 현실 속에서 천당과 극락이 될 수 있다는 간절한 바람이지 싶네요.

 

 

하여간, 스님께서 씀바귀 밭을 지켜 준 그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제가 금강사에 오기 전까지 절에 한 번도 온 적 없답니다. 우연히 옛 것을 좋아한 제가 밖에서 돼지 여물통을 차에 실어왔다가 절에 내려놓지 않고 그냥 갔다가, 뒤에 돼지 여물통을 갔다 주러왔던 인연으로 절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우도 금강사에서 얻은 최고의 보물 중 하나지요.”

 

 

그렇다면 속세에 있는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들의 2세, 아이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아이들을 위해 정부가 철석같이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아직까지 미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야겠습니다.

 

 

스님께서 내온 저녁 공양에 고추와 함께 씀바귀 쌈이 올랐습니다.

속가에서 쌈밥을 즐겼던지라 쾌재를 불렀습니다. 쌈부터 맛보았습니다.

 

씀바귀를 손에 펼쳐 밥을 얹고, 그 위에 된장을 올린 다음 도르르 말아 입에 넣었습니다.

신선한 야채의 향은 쌉스름 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엄청 자비로운 맛이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이 저녁 공양에 올린 씀바귀 쌈입니다. 맛요?

부처님 왼편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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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돌고도는 역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절 같네요
    쪽바리 제주도도 일본땅이라 할만하네요~
    그래서 땐놈들한테 시민권주면서 파는것인가요
    과거의 어느때로 다시 간 느낌?

    2014.08.03 20:31

‘스님 되겠다’던 행자님에게 옷 보시한 사연

“이런 귀한 보시 기회를 준 자네가 더 고맙네!”

  

 

 

전남 여수 돌산의 은적사입니다. 천년고찰이지요.

 

 

“스님.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하세요.”

 

절집에 가기 전, 스님과 전화 통화에서 빠지지 않은 대화입니다. 정신 휴식이 필요할 때 절집에 갑니다.

 

절집에 가는 이유는 자연 속에서 차 마시며 나누는 대화가 차분함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집 기운이 좋아 마음이 따뜻해져 쌓인 화를 지그시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기운을 받는 게 최고이니까요.

 

지난 7월, 여수 은적사에 갔습니다. 못 보던 스님이 밭에 줄 거름을 퍼 나르고 있었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자급자족이 원칙인 불가에서 키우는 고추, 상추 등 먹거리가 실해야 하니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지스님과 차를 앞에 두고 앉았습니다.

 

 

“스님. 스님 한 분이 늘었네요?”
“스님은? 승복 입는다고 다 스님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중이 되겠다고 2주 전에 찾아왔어.”

 

 

스님 지망생이 절집으로 찾아든 것이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스님,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세요? 고민 중

 

스님들이 입는 승복입니다.

 

 

결혼 전, 구도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결혼 후, 아내에게 “절에 들어가겠다”며 보내주길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참 염치없는, 무책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중은 희망사항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의 무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육십이 넘으면 벗과 함께 절집 마당을 쓸기로 다짐만 하고 있습니다. 하여, 늦은 나이에 중이 되겠다고 들어온 그가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스님, 그분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세요?”
“어떡하면 좋겠어?”

 

“관상을 보아하니 거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세상살이에 진이 다 빠져 여길 찾아왔어, 지금 고민 중이야.”

 

 

삶이 힘들어 절집을 찾았다던 그.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구도자가 되겠다고 절집으로 들어 온 그. 그에게 삶의 마지막 보루인 절집. 답은 하나였습니다. 지친 영혼을 내치지 않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게 절집의 임무(?) 아니겠습니까.

 

 

“결혼은 했대요?
“아니 혼자래. 그에게 입힐 ‘행자복’이 없어, 스님 옷을 입혔어.”

 

“스님, 그 옷 제가 보시할게요.”

“그래 주면 고맙지.”

 

 

 

이런 귀한 보시 기회를 준 자네가 고맙네!

 

절집에서 차를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지더군요.

 

 

절집에서 하루 밤 청했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터라 새벽 예불은 패스. 대신 아침 공양도 건너뛰었습니다. 불교 설화 책을 읽고 있는데, 스님의 “점심 공양 하세”란 소리가 들렸습니다. 공양 하러 갔습니다. 스님이 밥상머리에서 쪽지 하나를 건넸습니다.

 

“이거 행자복 맞춘 집 연락처와 계좌번호네.”

 

 

옷 보시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아마, 스님 마음이 움직였나 봅니다. 마음 변하기 전, 서두른 듯합니다. 공양 후,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육십이 넘으면 함께 절 마당 쓸기로 약속했던 벗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 옷 보시 한 벌 하시게나.”
“옷 보시? 그래 함세.”

 

“어이 친구, 고마우이.”
“고맙긴. 이런 귀한 보시 기회를 준 자네가 더 고맙네.”

 

 

스님에게 친구 마음을 전했더니, 고맙다고 하시대요. 아무래도 저는, 절집을 찾아든 행자가 스님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옷 보시를 해야 할까 봅니다. 아무튼 득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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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녀에게 장래희망을 묻는 이유


자식 키우는 부모들 이런 생각 많지요. 

“저것들이 커서 대체 뭐가 되려고 저럴까?”

부모가 자식을 보는 눈은 걱정 반 기대 반입니다. 저희 부부는 1남 1녀를 낳았을 때 신부님이나 스님이 되길 원했습니다. 구도자의 삶을 사는 것도 좋으리라 여겼거든요.

하지만 그게 부모 마음대로 되나요. 선택이야 자기가 하는 것. 하여,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묻곤 합니다.

“너흰 뭐가 되고 싶어?”
“전, 신부님 안 될래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에게 전혀 엉뚱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냥 웃고 말던 녀석이 싫은 이유를 물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재밌는 대답이 나오데요.



“신부님은 돈을 못 벌잖아요. 저는 돈 많이 버는 사장 될래요. 그래서 엄마 용돈도 많이 줄래요.”

헉. 신부되기 싫은 이유가 돈 못 버는 것이었다니 너무 우스웠습니다.

“누가 신부님은 돈 안 번대? 신부님은 성당에서 월급을 주거든.”
“신부님도 월급을 받는다고요. 정말요? 그래도 신부님은 돈 많이 못 벌잖아요. 얼마나 받는대요?”
“글쎄, 거기까진 모르겠다.”

이러고 말았습니다. 구도자가 아무나 되는 건 아니나 봅니다.

어쨌거나 자기가 가야할  삶의 방향을 빨리 찾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계속 묻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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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moneyamoneya.tistory.com BlogIcon 머니야 머니야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은 어른들을 창 삼는다 했는데.. ㅋㅋ 아마도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큰게 아닐까 싶어요^^

    2010.07.20 08: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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