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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에 여행 온 아내 친구가 내게 준 교훈
아내들도 때론 바람처럼 훌쩍 떠나고 싶다!

 

구속이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自由). 자유에 대한 꿈은 어느 곳, 어떤 위치에서나 갖나 봅니다. 특히 결혼한 여자들도 남자 못지않게 자유에 대한 갈망이 크나 봅니다.

“여보, 제 친구가 집에 온대요. 벌써 와서 구경 다니고 있대요.”

지난 3일, 아내 친구가 갑작스레 왔더군요. 그녀의 여행은 결혼 15년 만의 자유였다 합니다. 마음으로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주말에 남편과 같이 오지 않고 평일에 혼자 온 이유에 대해 물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무엇인가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바닥까지 찼어요. 이걸 어떤 방법으로든 풀어야 지 안 풀면 돌겠대요. 그래서 왔어요.”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그녀에게도 가슴 속의 답답한 무엇인가를 풀어야 할 계기가 필요했나 봅니다. 그동안 그녀는 화려한(?) 외출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매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내 마음을 잘 모르고, 이해 못해요”

그녀는 그간 놀러 오겠다고 하고선 통 오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밟힌 탓이었습니다. 그랬는데 15년 만에 과감히 여행을 감행한 것입니다.

“뭐가 그리 답답했어요?”
“있잖아요. 가정을 꾸리고 살아도 한순간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녀의 말투에서 결혼 전에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으나, 결혼 후에는 쉽게 떠날 수 없는 여자의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남편과 아이들에게 치여(?)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 답답함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하소연이 이어졌습니다.

“남편은 아내 마음을 잘 몰라요.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못해요. 그러니 혼자서 답답함을 풀어야지 어쩌겠어요. 여기서 돌아다니니 좀 풀리네요.”


순간 머리가 띵했습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내 아내도 이런 생각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은 참 묘합니다.

답답함에 여행 온 아내 친구가 내게 준 교훈

그녀 말을 들으면서 과거 아내가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결혼 전, 아내는 내게 요구했던 게 있었습니다.

“매년 한 번은 나 혼자만의 휴가를 줄 것. 휴가동안 내가 어딜 갈 건지, 뭘 할 것인지 묻지 말고 그냥 자유롭게 해 줄 것.”


그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가족 여행, 혹은 부부 여행으로 대신하긴 했지만. 한 집안의 짐을 아내에게 떠맡긴 채 달콤한 휴식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 친구 덕분에, 아내가 왜 “혼자만의 휴가”를 요구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인 아내에게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찌됐건, 그녀는 결혼 15년 만에 단행했던 화려한 외출을 하루 만에 끝내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떠나갔습니다. 그 뒷모습에서 당당함을 엿보았습니다. 그녀에겐 단지 가슴을 풀어낼 자유가 필요했던겁니다.

그녀의 화려한 외출은 일탈(?)이 아닌, 그저 음식에 필요한 간 맞춤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삶이란 그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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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자연을 함께 그리는 나바호 인디언
인류 공동 번영은 자연의 소중함에서 시작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그려라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얼굴만 크게 그린다.”

주위에서 쉽게 대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지만, 여기에서부터 어긋난(?) ‘개인화’가 출발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면, 조셉 B. 코넬에 의하면 나바호 인디언들은 자신을 아주 다르게 그리기 때문입니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자기들 몸은 훨씬 작게 그리고, 그 옆에 산, 계곡, 물이 말라 버린 황량한 개울 등을 그려 넣습니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마치 팔다리가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신이 주변 환경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이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의 한 부분이라는 깨달음”으로 해석됩니다. 조금 엉뚱한 이야기로 <오스트레일리아> 영화평을 시작하는 건 이 영화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줄거리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영국 귀족 ‘새라’는 연락이 끊긴 남편을 찾아 호주로 건너온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남편의 죽음과 그가 남긴 농장 및 1천 5백여 마리의 소떼 뿐. 난생 처음 마주한 소떼에 어찌할 줄 모르던 그녀는 거칠고 투박한 소몰이꾼 ‘드로버’에게 도움을 구한다.

호주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새라는 뜻밖의 사건을 통해 부모 잃은 원주민 소년 ‘눌라’와 교감을 나누며 우정을 쌓게 된다. 새라는 아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새라는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농장을 뺏으려는 사람들의 음모로부터 농장을 지키기 위해 소떼를 이끌고 북부 호주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새라는 이 여정 속에 호주의 아름다움과 힘에 매료되던 중 드로버를 사랑하게 되고, 원주민 아이 눌라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의 폭격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러던 중 새라와 드로버, 눌라는 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은 ‘구속’이 아닌 ‘자유’

<오스트레일리아>는 광활한 호주 대륙을 가로지르는 모험. 전쟁의 포화 속 운명을 건 사랑 등이 스며있는, 소몰이 장면이 압권인 ‘로맨틱 서사시’입니다. 거기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이 드러난 역사 인식의 통쾌(?)함도 들어 있습니다.

어찌됐건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연 속의 ‘아이’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백인들이 원주민 동화와 사회복지 명목으로 실시한 ‘원주민 자녀 강제 분리정책’의 피해자였던 눌라를 대하는 새라의 모성애를 통해서였습니다.

대자연에서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니더라도 생명에 대한 사랑까지 가능케 하는 힘이 있음을 전한 게지요. 이 과정에서 새라는 왜소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은 ‘구속’이 아닌 ‘자유’임을 알게 되었던 거죠.

여기에서 나바호 인디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자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는 원주민을 떠올린 것입니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스트레일리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일 것입니다.

‘인류 공동의 번영은 자연의 소중함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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