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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님’ 찾아 떠난 여행 그리움만 남고…

 

 

 

 

전북 고창 선운사입니다.

대웅보전의 설법

수수한 멋스러움이 좋습니다.

이 신발은 뉘 것일까?

스님이 설법중입니다.

 

 

저에게도 ‘그리운 님’이 있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가슴 훵할 때면 어느 때나 찾아 볼 수 있는 ‘그리운 님’은 큰 힘이랍니다. 옆 지기 내 님과 함께 ‘그리운 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내 님과 함께 ‘그리운 님’을 만나 보니 더욱 즐겁더군요. 하지만 ‘그리운 님’은 내 님에게 미안했던지 그리움만 남겼습니다.

가을의 길목입니다. 가을하면 단풍이지요.

 

그동안 오는 단풍 마중하고 즐기면 그만이었습니다. 지난 2일, 올 가을의 길목에서 단풍이 어디까지 왔을까? 하고 미리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운 님’은 당당 멀었더군요. 성급한 단풍 맞이었던 셈입니다. 자연에는 때에 따른 생명의 이치가 숨어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이왕 나선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의 ‘그리운 님’ 찾기에서 그냥 돌아설 수 없었습니다. 지난 해 맞이했던 ‘그리운 님’을 가슴 속으로 간절히 불렀습니다.

 

 

"님, 너 어디 있는 거야?"

 

 

‘그리운 님’은 상상 속에서 살며시 나타났습니다. 우린 이렇게 하나 되었습니다.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물들 땐 밤낮의 일교차가 클 때라더군요.

 

사랑도 미움과 간절함이 교차할 때 가장 크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 가을 단풍처럼 기품 있고 아름다운 절제된 사랑이길 바라나이다.

 

 

녹음이 진한 후에 단풍이 찾아듭니다. 기다림의 맛은 이런 거지요.

지난 해 단풍은 지금 저에겐 ' 그리운 님'입니다.

절집은 이런 맛이지요.

단풍은 의자에도 앉았습니다.

님은 언제 오려나~

작년의 님은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기다림은 설레임입니다.

설레는 가슴 부여 잡은 만큼 부끄러움도 진합니다.

기다림은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측은함을 알았는지 사람들이 다독여 주었습니다.

자연의 완성은?

완성은 이런 것?

우리 사랑합시다!!!

사랑의 그림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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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참고 있었다니깐.” 이게 아빠의 본성?
사춘기 맞은 딸, “그냥 답답해서 돌아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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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서로를 보듬어 주는 것. 그러나?

“저 사춘기인가 봐요!”

헉,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에게 닥친 정신과 육체의 성숙기라니 반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벌써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마냥 어린 딸이기 만을 바랐나 보다.

최근 딸아이 행동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집에 늦게 들어오기가 다반사. 밤 9시가 넘어도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걱정됐다.

“아들, 누나 좀 찾아봐라. 보이면 꼭 데려 오고.”
“걱정 마요. 제가 누구에요.”

아들이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딸이 가출을 한 이후에 또 늦는다고요?”

이심전심이었을까, 사춘기 딸을 둔 부모의 애타는 상담 전화였다. 아내는 “우리 딸도 요즘 방황해요. 저도 이런 딸이 있는데 상담은 무슨 상담요?” 하더니, 만남을 약속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야단치지 말기를 당부했다. 나머지는 아버지인 내 몫이었다.

“화를 참고 있었다니깐.” 이게 아빠의 본성?

아들은 30여분 만에 누나와 함께 현관에 들어섰다. 들어서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누나, 아빠가 지금 화 안 난 것 같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하니 조심해.”

헉, 이를 어찌 눈치 챘을까? 저녁도 거른 채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는 딸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어서 밥 먹어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딸아이는 딴 짓이었다.

“어서 밥 먹어라니깐.”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랬더니 아들 녀석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누나 들었지. 화를 꾹꾹 참고 있었다니깐. 이게 아빠의 본래 마음이고 본성이야.”

이런 아버지였나 싶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늦은 저녁 먹기를 마친 딸과 대화를 시도했다.

사춘기 맞은 딸, “답답해서 돌아다니는 거예요.”

“날마다 늦는 이유가 뭘까?”
“말했잖아요. 사춘기라고.”

딸아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섭다더니 무서운 기색조차 없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 자체가 반항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저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은데 그게 안돼요. 그냥 답답해서 돌아다니는 거예요.”

진심인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가 석연찮았다. 그렇다고 추궁할 수 없었다. 아버지로서 기다림이 미덕임을 실감해야 했다. 내 사춘기도 이랬을까? 곱게 지났던 것 같다. 남자와 여자의 사춘기가 이렇게 다를까, 싶었다.

이런 사춘기 딸의 변화 일단 환영이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몸살일 게다. 아버지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 질풍노도의 시기인 광란(?)의 사춘기를 슬기롭게 이기길 바랄 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딸을 더욱 더 사랑하며 안아 줄 수밖에…. 이게 가족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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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친구가 문 밖에서 기다린단 말에요.”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아빠, 밥 그만 먹고 학교 갈게요.”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공부가 잘돼. 다 먹고 가라.”

밥 먹다 말고 학교 간다는 딸아이를 돌려세웠습니다. 그렇잖아도 키가 작아 걱정인데, 아침을 대충 먹고 간다니 말이 될 법한 소립니까.

“아빠, 친구가 문 밖에서 기다린단 말에요.”
“뭐, 밖에 친구가 기다린다고?”

“예.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요.”
“그럼, 그만 먹고 학교 가라.”

인기척도 없었는데 며칠 간 기다렸나 봅니다. 요즘 세상에도 문밖에서 친구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이 가는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재잘거리며 신나게 가더군요. 저희 학교 다닐 때가 떠오르더군요.

그때에는 담 너머로 “○○야, 빨리 나와. 학교 늦겠다.”고 소릴 지르곤 했었지요.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함께 모여 줄 맞춰 학교에 갔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다보니 이런 개념이 사라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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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그렇게 좋은지 만나자마자 재잘거리며 학교에 갑니다.

“언제 나올 줄 모르는 친구 기다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저녁,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밖에서 마냥 기다리는 친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네 친구는 학교에서 만날 텐데 집에까지 와서 왜 기다린다니?”
“제가 인기가 많잖아요. 제가 좋은가 봐요.”

인기가 많다니 싫진 않더군요. 하지만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했습니다.

“내일부터 친구가 기다리면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해라. 너도 친구 집에 가서 기다린 적 있어?”
“예. 딱 한 번. 언제 나올 줄 모르는 친구 기다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딸 친구의 부모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간 자녀가 학교는 안가고 다른 집에 가서 친구 기다리는 줄 꿈에도 생각 못할 것입니다. 역지사지 아니겠어요. 딸아이에게 뭔가 교훈을 줘야 했습니다.

“친구가 집에 와서 기다리면 미안한 생각 안 들어?”
“들죠. 학교에서 만나자고 해도 자기가 좋아서 그러는 걸 전들 어떡해요.”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 학교 같이 가기로 약속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빨리 일어날 마음은 없어?”
“있어요. 그런데 빨리 일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일찍 일어나려면 밤에 빨리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오는 걸 어떡해요. 내일부턴 빨리 일어날게요.”

다짐을 순순히 받았습니다. 약속대로 빨리 일어나는지 지켜 볼 일입니다. 그래도 아이에게 “학교 가자” 기다리던 친구의 추억이 생기는 것 같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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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hinkdenny.tistory.com BlogIcon 신비한 데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기많은 따님...
    부럽습니다 ㅎㅎ

    2010.07.09 04:07 신고

10여년 말 안하던 딸 기다리던 아빠의 간절함
아이의 대화 회피, 아빠에게 쌓인 불만 표출?

연말이라 이래저리 불려 다닙니다. 어제 저녁, 지인과 조촐한 송년 파티(?)를 즐겼습니다. 분위기가 익자 한 지인, “상담할 게 있다”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더군요.

“이번에 수능시험 본 딸이 시험 후 이야기를 안 해요. 아빠가 말을 걸면 입 딱 닫고 모른 척해요. 그렇다고 때릴 수도 없고, 이거 어떡해야 하죠?”
“내 아이도 그러는데 상담은 무슨 상담.”

“형님은 선생님이잖아요. 그러지 말고 상담 좀 해줘요. 나 심각해요.”
“나도 작은 아들과 말 안한지 오래 됐어. 군대 간 큰 놈은 미주알고주알 말하는데 작은 놈은 집에 오면 통 말을 안 해. 그거 방법이 없더라고.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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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산행.

 
10여 년 말 안하던 딸, 기다리던 아빠의 간절함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말 안하는 딸 아이 때문에 속상하던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말을 안 하더니 23살 돼서야 말을 텄다. 그 전에는 뽀뽀를 하고 안고 난리더니 무섭게 변하더라. 뭐라 말도 못하고 오랜 세월 끙끙 앓았다.”

10여 년 간이나 말 안하던 딸이 말 트기를 기다렸던 지루한(?) 아빠의 간절한 기다림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했던 말이 가슴에 오더군요.

“내 딸인데도 직접 말도 못하고 엄마를 통해 말하는 아픔은 고통 자체였다. 이걸 겪지 않으려면 바쁘다는 핑계대지 말고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해.”


아이의 대화 회피, 아빠에게 쌓인 불만 표출?

각설하고, 지인의 걱정은 코앞에 닥친 딸 아이 대학 진학이었습니다. 사립대학에 갈 건지, 국립에 갈 것인지. 전공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등 할 말은 넘치는데 엄마를 사이에 두고 대화 하자니 속 터진다는 겁니다.

“왜 아빠랑 대화를 안 하려고 할까요?”
“아빠에게 실망해서 그럴 수 있겠지. 혹은 야동을 보고 우리 부모도 이럴까? 회의일 수 있고. 아님 아빠에게 쌓였던 불만이 터진 것일 수 있고. 그동안 딸과 대화 많이 했어?”

“아니요. 바빠 등한히 했어요. 집에서도 아이들 얼굴만 멀뚱멀뚱 보고. 이게 잘못이었을까?”
“그럴 수 있지. 계속 대화를 시도하는 수밖에 없어. 단, 대화할 때 억압적으로 하지 말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하는 ‘I(나) 화법’으로 해봐.”

원인은 항상 있게 마련. 결론은 자기 행동을 살펴보는 자기반성과 고치는 것으로 내려졌습니다. 어찌됐건, 아빠로써 아이가 하루아침에 말문을 닫는다면 복장 터질 일입니다.

아빠의 역할이 돈 버는 것뿐 아니라 아이들과 대화하고 배려하는 것도 포함됨을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아이에 대한 투자는 아낌없이 해라’란 말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살펴라’는 의미 같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부모로서 아이가 말문 닫기 전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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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세상에 돌아오는 순간 또 ‘도로아미타불’


선암사 담쟁이 '영금'

해우소의 남녀 구분. '차별'

은행 낙엽. '비움'


산야를 물들이던 단풍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겨울을 맞이할 준비인 게죠. 자연스레 발밑에는 낙엽이 쌓입니다. 선암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선암사 단풍은 흔히 말하는 진한 핏빛 단풍보다 연한 파스텔 톤 단풍에 가깝습니다. 이는 소박한 서민적 절집 풍광을 닮은 듯합니다. 이런 선암사에서 꼭 봐야 할 게 있습니다.

선암사 가는 길. '삶은 길...'

나? 담쟁이넝쿨. '이게 삶…'

'선암사에 가면...'

있다가도 없고... '공즉시색'

붉은 색만 예쁘나요? 노란색도 예쁘죠? 저도 알아주세요. '마지막 절규'


먼저 정호승 님의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선 암 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解憂所)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등 굽은 소나무. "왜, 나 보고 등 굽었다 그러는 거야?" '생긴 대로 삶을…'

나? 낙엽 아닌 단풍. 물(자연)과 어울리니 더 예쁘지요? '어울림의 미학'

선암사 해우소. "이거 화장실 맞아?" '삶을 바라보는 눈…'

승선교에 걸터앉아 쉬는 단풍. '사색'

산새와 어울린 집. '조화로운 삶…'

은행 열매 냄새는 죽이지요? '썪음의 미학'


근심을 풀어내는 절집 화장실 ‘해우소’

선암사에서 꼭 빼지 않고 봐야할 게 바로 해우소(解憂所)입니다. 해우소는 ‘근심을 풀어내는’ 절집의 화장실을 말합니다. 엉뚱한 생각 같지만 저는 선암사의 단풍이 ‘해우소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변은 살기 위해 먹은 음식을 영양소로 분해ㆍ저장한 후 밖으로 배출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존을 위해 필요 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지요.

단풍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무가 겨울나기를 위해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필요 없는 부분은 떨쳐내는 생존 노력은 아닐까?

사람의 건강 척도는 변 색깔로 구별이 가능하다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황금색 변을 눈다 합니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색을 부른다’는 순리일 것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여,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 자란 나무가 겨우살이 준비를 위해 배출하는 단풍 색깔이 곱고 예쁠 수밖에 없다는….

선암사를 떠나며... '귀가'

근심을 풀어내는 뒤깐이 절집의 주인보다 더 유명하다. '하기 나름…'

'배설'

뒤깐 풍경. '시원함'

나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 '겸손의 미학'

사람, 사람들은... '허무'

한걸음 한걸음 가다보면 보이겠지요. '인내의 달콤함'

선암사, 월동 준비 이걸로 끝~. '고운 자태-새색시의 볼'


소탈하게 먹어야 예쁜 변을 본다!

욕심 부리지 않고 소탈하게 먹어야 예쁜 변을 보겠지요. 하는 만큼 돌아오는 이치지요. 나무도 같을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욕심 없이 살았으니 곱디고운 자태를 뽐낼 수밖에 없겠지요. 비우며 살았으니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 거겠지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떨어진 단풍 한 잎은 낙엽으로 변해 또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돌고 도는…. 선암사 단풍과 해우소는 이렇게 ‘비움의 미학’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돌아오는 순간 또 ‘도로아미타불’이란 걸!

그래서 자연을 계속 찾는 게지요.

“아니, 그러나 ‘단풍’?”

살다 지치면 선암사를 또 찾겠지요. '회귀'

그러다 또 배설하고... '쾌변의 즐거움'

마지막 잎새. '보시'

절집의 주인을 안고 있는 단풍. '뉘가 주인인고…'

사람이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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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시켰어요?”, “별거 없어!”

세상을 만든 발명가 아버지, 그 대가를 치르다!
[아버지의 자화상 24]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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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딱딱한 부자연스런 사람도 자녀 이야기를 건네면 몰라보게 살아납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이런 존재, ‘희망’인 셈이지요. 주변에 소위 내놓을 만한 대학(이하 '내논대')이라는 곳에 진학한 자녀를 둔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간혹 그분들에게 묻죠.

“대체 어떻게 공부시켰어요?”

그러면 굳었던 표정이 밝아집니다. 덤으로 자세가 확 바뀌죠. 다리를 꼬고, 담배를 꼬나물며 한다는 말,

“별거 없어!”

이럴 땐, 정말 힘 빠지죠. 괜히 물었나? 허나,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들어두는 게 좋지 않겠어요? 살살 구슬리는 수밖에….

공부할 놈은 타고 나나 봐, 그래도 노력이 필요하지

“그러지 말고, 잘난 자식 키우는 비결이나 좀 들어봅시다!”

그때서야 움직이죠. 그도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잠시 우쭐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죠. 아버지의 특권이랄까 그런 거죠.

“가만 둬도 그리 돼대! 내가 아무리 봐도 공부할 놈은 타고 나나 봐. 요즘 얘들이 시킨다고 하나. 다 제가 하려고 해야 되는 거지. 그러나 아무리 머리가 좋더라도 노력 없으면 안되는 것 같아. 밤에도 자는가 하고 보면 불이 켜졌어.”

터지기까지가 문제지 한 번 터지면 일사천리입니다. 뒤에는 어떻게 벗어날까, 궁리까지 하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자식이 하려고 해야 되는 거겠죠. 알면서도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건 부모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요? 이율배반이죠.

“처음에는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를 했지. 그 놈은 시험 본다 해도 대충 대충이야. 그런데 시험 점수 받아오는 것 보면 많아봐야 한두 개 틀릴까 나머진 백점이야. 이런 놈한테 공부해라 가 뭐 필요해. 뒤에서 뒷바라지만 조용히 하면 돼.

가만 보면 공부는 집중력인 것 같아. 집중력이 무서워. 공부할 때는 아무리 큰 소릴 쳐도 그 소릴 듣지 못해. 가서 콕 찔러야 그때 반응을 보여. 지 말로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잠깐씩 예습 복습하는 게 도움이 된다대. 그게 자기 방법인가 봐. 학원에서도 저놈은 서로 데려 가려고 난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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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은 타고 났을까요?

아이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찾는 게 ‘최고’

공부에 비결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최고죠. 그 방법을 언제 찾느냐에 따라 어려서 튀는 아이, 늦게 튀는 아이로 나뉘는 거죠. 그래서 부모가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하는 것이고요. 또 다른 아이를 둔 부모의 경우입니다.  

“그 놈은 아예 컴퓨터 게임을 갖고 살아요. 지금도 눈이 시뻘개질 만큼 밤을 꼴딱 새요. 지가 다 알아서 하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옆에서 ‘게임도 잠은 자면서 해라’ 그래요. 공부를 안 하는데도 잘하는 것 보면 신통방통해요. 초등학교 때 수학에 재능이 있어 선생님이 영재 반에 들자고 해 들어간 게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걸 ‘자식 복이 많다’ 해야 되나요? 아님 타고났다 해야 되나요? 저도 부러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며칠 전까지 아이에게 신경을 썼었죠. 왜냐고요? 방학 전, 아이들의 학기말 시험이 있었거든요.

큰 아이가 4학년이 되니 이제 몸풀 준비를 슬슬 해야겠더라고요. 그렇다고 학원에 보내는 것도 아니니 부모로서 역할이 있지 않겠어요? “책 가져와라” 했지요. 그런데 “책이 없다”더군요. 헐~. 학교에 두고 다니는 거죠.

원리를 알려면 책이 최곤데. 문제집을 들었죠. 함께 하다 보니 “아, 이건 정확히 모르는구나”, “이건 깨우쳤구나” 등등의 구분이 되더라고요. 칭찬으로 아이의 잠자는 의욕을 깨웠죠. 주말동안 이렇게 아이와 문제를 풀었답니다.

아이 시험이 곧 부모 시험? 포기할 수 없는 게 자식?

하다 보니, 일요일 밤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성질이 나더라고요. 잊고 있었던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죠. 공부 스트레스, 역시 보통이 아니더군요. 그래도 ‘부모 된 행복’으로 참을 수밖에. 그렇다고 ‘내논대’를 다니길 바라는 것도 아닌데….

제겐 위안이 하나 있습니다. 꼭,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부모는 떨어져 지내는 관계로 그렇게들 “보고 싶다!” 하더라고요. 바로 이것이지요. 옆에서 항상 볼 수 있는 것, 이상 뭘 바라겠어요. 시험 준비 끝나고 나니 딸이 그러더군요.

“다음에도 아빠랑 같이 공부할거야!”

그래? 하고 말았지만, 속으로 ‘싫거덩’ 했지요. ‘자식 가르칠 부모 없다’던 말이 만고의 진리(?)쯤 되는 것 같아서. 이쯤 되니 결혼 초년병과 총각시절 때가 생각나더군요. “아이가 시험 보는데 왜 부모가 시험 보는 것 같죠? 그러지 마세요, 제발!” 그랬었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 못한 거죠. 그래서 지금 아버지들은 학원에서 밤늦게 귀가하는 자식을 안스러운 표정으로 묵묵히 기다리거나, 혹은 만사 제치고 차를 몰아 데리러 가나 봅니다. 포기할 수 없는 게 자식인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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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어야 하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자식의 자식에겐 이런 세상 전해주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건강이 최고인 줄 알면서도 공부에 매달리게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 발명가 중 하나인 죄로 우리 아버지들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고생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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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식 키우면 잘 키우겠는데….”
[아버지의 자화상 4] 행복

“장담 못할 세 가지는 자식 키우는 부모, 배(船) 사업가, 소(牛) 키우는 농장주다. 왜냐하면 자식은 어찌 될지 몰라 말 못하고, 배 사업가는 파도에 언제 뒤집어 질지, 어디로 떠밀려 갈 줄 모른다. 농장주는 풀어놓은 소가 언제 뉘 집 작물을 먹어 치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양기원 씨의 말입니다. 배와 소에 대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에 대한 소회는 대체로 공감하고 끄덕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자식에 대해 장담하면 뒤에 후회가 따른다.”며 “자식 자랑을 삼가라!”고 충고하기도 하대요. 근데 정말 그런 것 같더군요.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는 특별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또 그 특별함을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학업 성적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세상이다 보니 ‘내 아이 어디 갔네’하고 자랑할 수 있다면 오죽이야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이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자식들이 다 공부 잘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그러다 기대치가 낮아지고 “이놈은 이것 잘하고, 저놈은 저것 잘해야 사회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는 체념 아닌 체념으로 위안 삼기도 합니다. 또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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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재능을 지켜보는 게 최선?

주변에 초등학교 1학년인 ‘송정우’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녀석은 세 살부터 숫자와 영어를 가지고 놀더군요. 주위 사람들의 자동차 번호, 전화번호, 아파트 호수, 생일까지 줄줄 외웠지요. 그리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숫자 문제 내줘요.”하고 귀찮게 하던 아이였죠.

이를 보고 ‘학문을 하기 위해 타고난 아이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타고 난 아이가 아닌 이상 노력이 필요한 데 그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쉽지 않더군요. 자라는 아이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타고난 아이더라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저도 지금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장점이 있을까? 어떤 재능이 있을까? 이럴 땐 이곳에, 저럴 땐 저곳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출중한 재능을 꼽기가 쉽지 않더군요. 좀 더 지켜보자는 쪽입니다. 그러다 세월이 훌쩍 지나갈 수도 있겠죠.

간혹 부모들의 이런 때늦은 후회, 아쉬운 넋두리를 듣곤 합니다.

“너무 바빠, 자신만 알다보니 세월이 가버렸다. 다시 자식 키우면 잘 키우겠는데….”

시행착오를 겪고 삶의 이치를 알다 보니 깨닫지 못한 것을 보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으론 이게 세상이지 싶기도 합니다. 다시 자식을 키운다면 또 다르겠지요. 그러나 세월은, 세상은, 삶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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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마음먹지 말고, 마음먹은 대로 살아라!

언젠가 책을 통해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내용은 대충 이러했습니다.

“결혼해서 살기 위해 마음먹지 말고, 마음먹은 대로 살아라!”

이 말 속에는 구구절절한 아버지의 마음이 스며 있다는 걸 알 것입니다. “키울 때 정 많이 주고 많이 사랑할 걸….”하는 때늦은 후회가 스며 있다는 것도 눈치 챘을 것입니다. 딸 키우면서 대화도 제대로 못하고, 지켜만 봤는데 어느 새 자라 시집을 간다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결혼한 딸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또 말없이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야겠지요. ‘저것이 잘 살까?’, 혹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안고 말입니다. 때늦은 후회 전에 아이에게 먼저 다정스레 다가서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기 좋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기 나름”이란 광고 카피가 있었겠습니까? 행복은 완전함에서보다 뭔가 부족한 것에서 더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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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할까요? 아버지의 마음은 같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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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대가는 주어진다. 정말?
[범선타고 일본여행 2] 기다림 & 김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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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인근 후꾸다의 Sunset Marina 입항.

어제 저녁부터 줄곧 내리는 비가 그치길 기다립니다. 비 그치면 화창한 날이 올 것입니다. 인간사도 기다림의 연속이겠지요. 자연과는 달리 인생에선 궂은 후 희망찬 내일이 바로 오지 않습니다. 삶의 화창함은 노력의 대가로 얻어지는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여수를 출발한 범선 ‘코리아나 호’는 하멜 항로를 따라 꼬박 24시간의 항해 끝에 4월 23일 나가사키 인근 후꾸다에 도착하였습니다. 나가사키항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이곳으로 온 것은 범선 축제 퍼레이드에 나서기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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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인근에서 돛을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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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꾸다의 Sunset Marina 풍경.

다시 시간의 기다림 앞에 서 있습니다. 범선에서 입국수속을 받습니다. 12일 만에 도착한 하멜 일행보다 무려 11일이나 빠릅니다. 하멜 일행이 긴 항해 끝에 그토록 희망했던 고국으로의 귀환을 선물 받았듯이 여행단에게도 작은 선물이 주어지겠지요.

비가 오는데 좋은 날이라 하면 ‘뱃사람’

나가사키 범선축제가 9회를 거치는 동안 6차례나 참여한 조원옥 씨가 범선을 타면서의 느낌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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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옥 씨.

“범선 항해는 항상 좋지만 오늘 같이 날이 좋으면(바람과 비 내리는 좋지 않은 날에도) 괜찮지만 (태풍 등) 날이 안 좋으면 힘들어 다신 안타야지 하면서 또 배를 타는 나를 발견한다. 2002년부터 뭔지 모를 의무감 때문에 범선축제에 계속 오게 된다.”

비가 오는데도 좋은 날이라 하는 그를 뱃사람이라 해야 할까요? 그래야 옳겠지요. 그렇지만 그는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입니다. 조원옥 씨를 다시금 배에 오르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마냥 허비할 수 없는 일. 대부분 50대인 일행 중 막내인 김창준(25) 씨와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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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내민 김창준 씨. 그의 몸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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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걸 보고 느끼고 싶다”

- 여행에 나서면서 각오는?
“새로운 삶의 도전. 정말로 새로운 걸 느끼고 또 보고 싶다. 그간 일상이 너무 단조로워 변화를 주고 싶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데도 상당히 다른 나라다. 이곳에서 새로운 걸 좀 얻자. 이런 것이었다.”

- 새로운 거라면 어떤 것?
“사는 모습, 환경, 도시 분위기, 사람들 뭐 이런 거다. 아무래도 언어가 다르면 같은 일상이라도 새로울 것 같은 느낌.”

- 오게 된 동기?
“아버지께서 전에도 범선축제 참여하지 않겠냐 권했다. 그러나 ‘No’였다. 이번에는 여행을 너무 하고 싶어 ‘Yes’했다. 일상에의 탈출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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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전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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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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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류친선협회 만찬에서.

연극은 주변인의 박탈감을 채워줘

- 하루 지나보니까?
“(웃음) 되게 편하다. 경치도 좋고, 바다가 너무 넓다. 시시각각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 바다가 신기하다. 보기 좋게 살고 싶다. 단순히 수익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하며 즐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무슨 일을 하는가?
“7년째 연극을 한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전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집에서는 평범한 삶은 원한다.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다. 그렇지만 실은 막막하다. 관객 입장에선 쓰레기 같은 공연도 많다. 제대로 된 공연을 하는 것과 그 기회가 생길 때, 그런 공연을 하고 있을 때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 흔히 인생을 연극에 비유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연극이란?
“‘연극이란?’ 질문에 대한 답이 계속 바뀌었다. 연극도 돈을 버는 수단의 하나지만 무대에서 연기 할 때 관객이 리액션을 느끼면 존재감을 느낀다. 내가 사회의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이란 박탈감ㆍ허탈감 등을 채워 주는 직업이랄까? 일상에선 소통 문제로 오해나 갈등이 많지만 무대는 진실하다. 거짓을 말하고 있다 하더라도. 정말 매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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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나는 게으르다”

- 인간 ‘김창준’은 어떤 사람?
“연약하고 나태한 것 같다. 그리고 약하다. 그런 점들이 좋지 않지만 이걸로 해서 고민이나 인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한 마디로 나를 표현하면 게으르다.”

- 게으름을 이기면 성공?
“(웃음) 성공하겠죠? 나태한 건 고쳐야 되지만, 연약한 건 고칠 필요 없다. 연약함은 민감한 거라 감정을 이끌어 내는 연기 생활에 도움 되지 않을까?”

그의 기다림도 때를 기약할 수 없습니다. 하멜이 14년간의 억류 생활을 마치고 네덜란드로 돌아간 것처럼 김창준 씨의 기다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성공을 이룰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결국 스스로의 땀이 만들어 내는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누구에게나 길던 짧던 간에 기다림의 시간만큼 그 대가는 주어질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먼저 대가가 주어지기 전에 돌아서는 거겠지요. 삶은 기다릴 때와 기다리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가는 과정 같기도 합니다. 기다림은 축복을 준비하는 기간임을 명심해야겠지요.

기다리다 삶이 끝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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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두려운 걸까?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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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나침판 없이 가는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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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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