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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차로 승화한 매화는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수컷 개미 살아 봤자 밥만 축낸다, 그게 ‘운명’
[선문답 여행 5] 죽음, 부처님 진신사리와 개미 ‘남해사’

 

 

 

 

차 향 가득합니다.

 

 

 

 

‘삶’과 ‘죽음’.

 

둘이면서 하나라지요? 누구나 태어나 죽는 줄 압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진지한 성찰은 드뭅니다. 사는 데 정신 팔려 죽음 느낄 시간이 부족하기에. 때론, ‘개미’처럼 일해도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소박한 절집, 여수 남해사입니다.

 

 

임시로 가정집에 불상을 놓았습니다.

 

 

상식을 깬 이런 절집, 정겹습니다.]

 

 

 

금방 쓱 지나가는 봄(春).

 

차 한 잔 떠올렸습니다. 매화차. 겨울과 봄의 향기를 흠뻑 머금은 싱그러운 차(茶)지요. 여수시 상암동 자내리 ‘남해사’로 향했습니다.

 

 

절집, 다녀보면 휘황찬란합니다. 남해사는 예외지요.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 흙집을 조금 수리해 불상을 모신 절집으로, 풋풋한 사람 냄새 가득합니다. 입구에는 사립문 대신 할미꽃이 반깁니다. 그래, 정이 더 가는 절집이지요. 훗날 예정된 불사(佛舍) 전, 머무는 중이랍니다. 여기 눌러 앉길 바랄 뿐!

 

 

“스님. 오늘 어째 차향이 더 좋습니다!”
“저번에 차 탓을 해서 차 우려내는데 더욱 신경 썼습니다. 온도까지 맞추고.”

 

 

아차, 싶었습니다. 혜신스님, 초장부터 까칠합니다. 하기야 구매하는 다른 차와 달리, 직접 매화 꽃망울을 따, 말려 정성껏 우려 낸, 매화차 맛을 타박했으니, 심기 편할 리 없지요. 스님의 뒤끝이 귀엽습니다. 장난기 발동, 농(弄)을 걸었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 2과입니다.

 

 흰색은 피부가 사리가 된 '백사리' 붉은색은 혈관이 사리가 된 '적사리'입니다.

 

 

 

“매화차로 승화한 매화는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스님, 말없이 일어나 머리 뒤에 있던 죽비를 드셨습니다. 그리고 앉아 죽비를 만지시며 설법처럼 한 마디 하시대요.

 

 

“죽비는 중간에 이렇게 뭣을 끼워 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므라드는 대나무 성질로 인해 ‘탁’나는 경쾌한 소리가 별로지요. 죽비도 관리가 필요합니다.”

 

 

뜨끔했습니다. 바로 항복했습니다. 지인, 알쏭달쏭한 표정입니다. 그가 화두를 꺼내들었습니다.

 

 

“스님들께서는 ‘다 내려놓으라고, 죽음은 옷만 갈아입는 건데, 뭐 그리 걱정 하냐?’십니다. 그러나 중생 입장에서 죽음이 두렵습니다.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

 

 

스님께선 대답 없이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들고 오셨습니다. 뚜껑을 열어 만지시며 하시는 말씀.

 

 

“이게 부처님 진신사리입니다. 빨간색은 혈관이 사리가 된 ‘피사리’고, 하얀색은 피부가 사리가 된 ‘백사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고진멸도’를 가르치신 후 89세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스님께서 대뜸 부처님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죽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아직 죽어보지 못해 모르겠다는 건지…. 스님께서 부처님 사리를 모시게 된 경위를 밝혔습니다.

 

 

 

남해사 혜신스님. 차 맛이 일품입니다!

 

 

 

“도광스님께서 태국 아유타 사원에서 8년을 수행하시다, 귀국 길에 32과를 받아 오셨습니다. 그 중 제가 2과를 시주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나 툭툭 건네질 부처님 진신사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금오문중의 고승, 도광스님께 사리 2과를 받았다니, 놀라웠습니다. 이는 인연 등이 맞아야 합니다. 자리 매무새를 고쳐 앉았습니다. 당돌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 가짜 사리가 많다고 합니다. 진짜와 가짜 구분은 어떻게 합니까?


“사리를 화장지에 얹어 물 위에 놓고 가라앉으면 진짜. 그대로 있으면 가짜입니다. 또 망치로 두드려 깨지면 가짜. 안 깨지면 진짜입니다.”

 

 

- 지금 실험해 볼 수 있습니까?


“허허~. 어찌 부처님 사리를 망치로 두드리겠습니까. <대승밀엄경>에 ‘믿음을 내고 의심을 품지 말라. 믿음이 곧 부처님이므로 꼭 해탈을 얻게 하리라!’ 했습니다. 믿음이지요. 부처님 사리는 몸보다 두 배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게 각 나라에 분배된 겁니다.”

 

 

어리석은 중생이었습니다. “스스로 어리석은 줄 아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다!(아함경)”고 하니, 그걸로 위안 받을 밖에.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천지를 돌다 여수 남해사에 앉으신 혜신스님과 선문답에 돌입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스님은 어떻게 죽고 싶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죽기 3일 전에 감(感)으로 안다고 합니다. 스님들이 바라는 죽음은 ‘승도천화(僧道遷化)’입니다. 승도천화란? 죽음을 느낌으로 알아, 행장(수의)을 걸쳐 입고, 인적이 없는 산으로 들어가, 나무 잎 등으로 잠자리를 만들어, 거기에 누워 세상을 조용히 떠나는 겁니다. 이렇게 승도천화하신 분이 ‘서산대사’입니다.”

 

 

- 죽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잘 살아야 잘 죽는 법입니다. 안개, 바람, 비가 잠시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마찬가집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때가 되면 사라지는(죽음) 거 아니겠습니까.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 잘 살아야 잘 죽는다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보다, 아름답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아침에 태양이 떠서 저녁에 노을이 지는 것과 같습니다. 화창한 날, 해는 아름답게 떠서 아름답게 노을 집니다. 그렇지 않은 날은 뜬 것도 지는 것도 모르게 집니다. 아름답게 살면 멋있는 노을처럼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지요.”

 

 

- 오래 살면 좋겠다는 사람은 빨리 죽고, 빨리 죽었으면 하는 사람은 늦게 죽는 경향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쁜 사람은 대개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저승에 빨리 데리고 가 봐야 쓸데없다는 거 아닐까. 살면서 지은 업(業)을 씻을 기회를 주는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공덕 쌓지 못하고 업을 짓고 마는 어리석음이 안타깝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겁니까?


“삶은 윤회(輪回)고진멸도의 연속입니다. 지금은 ‘혼돈의 시대’. 이 시기에는 ‘나’를 찾아 최선을 다해 사는 게 지혜로운 길입니다.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야, 타인을 지극히 사랑하고, 타인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연잎차를 덖고 있습니다.

 

 

수개미, 날깨 한쪽이 떨어졌습니다. 운명이란?

 

 개미 천지입니다.

 

 

 

차(茶).

 

어느 새 ‘작설’에서 ‘매화’꽃을 넘어 ‘연잎’ 위에 앉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개미가 방바닥을 헤집고 다닙니다. 그러고 보니 절집 남해사 입구 벽에도 개미 천지였습니다. 헉, 개미 등에 날개가 달렸습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날개 달린 개미입니다. 호기심을 보이자 의외라는 반응입니다.

 

 

“개미 등에 날개 달린 거 처음 봐? 날개 달린 건 다 ‘수컷’이야. 수개미는 이맘 때 여왕개미와 교미한 후 다 죽어. 교미하는 수컷은 단 한 마리. 번식을 위한 여왕개미 쟁탈전이 치열하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튼튼한 날개 짓은 필수. 나머지 수컷은 교미 한 번 못하고 죽어. 삶의 임무를 마친 수컷은 살아 있어봤자 밥만 축낸다는 거지. 그게 운명이야.”

 

 

수개미의 삶이 더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습니다. 다행입니다. 인간은 이런 운명 아니라서.

 

 

삶.

 

참 어렵습니다.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따라 희비가 갈립니다. 삶의 가치를 물질(돈)에 둘 때와 정신(사상)에 둘 때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을 타고 났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재능’을 타고 났습니다. 그러니 서로 다를 수밖에. 이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죽음.

 

더 어렵습니다. ‘어떻게 죽었는지?’에 따라 차이가 분명합니다. ‘극락’과 ‘지옥’. 욕심만 부린 사람과 덕을 베푼 사람의 차이는 확실합니다. 하지만 잘 죽는다는 건 자신이 바라던 삶을 산 사람에게도 부담입니다. 오직 ‘덕(德)’ 있는 자만이 죽음 앞에 담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디….

 

 

 

차 향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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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이제야 고민이라는...

30년 전 고 3 담임선생님과 나눈 삶 이야기 '감동'


우연히 30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이셨던 선생님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담임선생님과 이어진 인연 무척 반가웠지요.

그러면서도 선생님이 살아오신 30여 년 동안 인생철학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 선생님과 이메일을 통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질문은 삶, 부부, 부모, 불륜, 다시 인생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은사님은 제자가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질문을 진심으로 받으셨습니다.

웃자고 던진 농담이 진담으로 다가올 때의 뻘쭘함은 미안함을 넘어 가슴 가득한 사랑으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글이 감동이었으니….

또한 깊은 사랑이 담긴 알토란같은 당신 삶의 열매였으니….


샘, 사랑합니다!!!

다음은 은사님이 전하는 인생 이야기입니다.

 

고3 담임이셨던 손덕삼 선생님과 풀어보는 인생 문답풀이, 삶이란?

<문답풀이에 앞서>


  30년 전, 교실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찾아와 인생이란,

삶이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집니다. 

 세상도 변하고 강산도 여러 번 바뀌었듯이,

우리 또한 세파에 닳고 닦여 성숙해 가고 있습니다.

 

나는 33년 교단생활을 내려놓고,

의지대로 살아가는 자유인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로 긴 세월 치열하게 사는 동안,

제도에 묶이고 인간교육이 사라져가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대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라는 깊은 회의를 느낄 무렵, 진정으로 내 인생에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봐야겠다는 뜻을 세웠습니다.


 길을 나서며

 

 ‘심전경작(心田耕作), 불문부답(不問不答)

 

의 자세로 마음을 다져 보았습니다.

 

자신을 닦아 만물의 이치를 알아야 지혜가 생겨 뜻을 펼치고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하, 인생 문답 풀이라!


 먼저 이야기의 관점을 좀 넓고 크게 세워 세상사와 인간만사를 우주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기로 합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순환하는 대우주, 970억 인구가 다녀간 이 지구상에 우뚝 선 고귀한 존재인 ‘나’를 중심에 세워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겁니다.

사람은 우주를 마음에 품고 상상할 수 있으니 우주보다도 큰 존재가 아닌가요?

보편적으로 동의할 만한 광대한 기준이니 누구든지 공감도 하고 이치에 맞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구상에 와서 사유한 이래 탐구하고 있는 물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란 무엇인가?”
 

 둘째는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셋째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입니다.

이 물음을 연결 고리삼아 삶이란 대체 무엇인지, 한 번 사는 인생길의 이정표가 어떠한지 함께 풀어보기로 합니다.

  얼마 전 TV에서 골목시장 옷 장사 중년남자의 다큐를 보다가 문득 육신이라는 옷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아, 나는 태어난 적도 없고 살면서 어찌 잘못 될 일도 없으며, 죽을 일도 없는 존재다.

 

나는 우주의 뜻으로 지구별 여행을 왔는데 옷 한 벌 받아 입은 것이 내 몸뚱이 아닌가!

 

이 푸른 행성 여행 마치고 돌아갈 땐 육신의 옷은 훌훌 벗어놓고 돌아가면 그만이구나.

 

옷뿐만 아니라 옷에 함께 배어있는 인간세상의 덕업조차 모두 부려놓고 나면 청정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라는 앎입니다.

그럼 문답을 시작합니다.

 


[인생이란?] 샘, 요즘 어떻게 살고 계시죠? 나이 들어가는 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꼭 알아야 할 인생 법칙? 지혜를 얻는 법은?

 

  인생이란 우주 운행에 동참하는 영혼의 유희!

  온 생명과 어우러지는 신바람 나는 놀이입니다.

 

  역사적 사명을 완수한다거나,

노예의 삶을 살러 여기 온 게 아니라 그냥 신성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굳이 일을 해야 한다면 우주와 인간의 진화과정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참나로 해야 합니다.   그게 신명(神命)이니까요.


 요즘에 나는 그동안 세상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어떻게 다시 돌려줄까,

우주가 준 삶의 정석은 어떤 걸까 궁리하고 시도하면서 잘 노닐고 있지요.

 

이렇게 하려면 모든 일에 자립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심신건강을 자기 힘과 지혜로 지키는 법방을 찾아 실천하고 이웃들과 공유하는 작업도 하고 있지요.


 아침에 108배 절수련과 타이치로 맘을 풀고,

오전업무 하고, 독서와 사색 산책, 오후일과 정리하고,

경전읽기와 글쓰기 매력에 빠져봅니다.

 

틈틈이 도반들과 탁상도담으로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나랑 놀아주는 일로 오늘을 살지요.

손익을 먼저 따져야 하는 세상의 방식과는 좀 다른 관점일 겁니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해서는 일찍이 자유로운 편이지요.

나이에 집착 안 한지 꽤나 오래됐는데,

일부러는 아니고 그냥 세월이 오고감엔 무심해서 계산에 매이지 않는 게 편하다고 할까.

 

누군가 나이 얘기를 할 땐 내 나이가 낯설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시간차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의식하기에 달린 것 아닌가요?

우주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는데 가끔 그런 걸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나이 들면서 더 너그러워지고 지혜가 차츰 깊어지는 건 자연의 이치라 생각합니다.

 잘 사는 인생이란,

주인공인 진짜 나가 이끄는 대로 ‘지금 여기’에서 충실하게 사는 것,

돌아보아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했으며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라야 할 겁니다.

인생 7단 쯤 되어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행하여 우주법에 합당하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입니다.

우주의 질서에 따르는 것이 인생 법칙인데, 이미 성인들이 밝혀놓았지요.

인간만사 판단의 기준은 내 안의 양심입니다.


 부처는 육바라밀을 하라 했고, 공자는 오덕(인의예지신)을 실천하라 했으며,

예수는 이웃사랑, 노자는 무위로 경영하라 했습니다.

결국 표현만 다를 뿐,

‘양심, 사랑, 정의’를 실천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게 인생 법칙이 아니겠는가?

 

쉬운 말로, 

내가 당해 싫은 일은 남에게 하지 말고, 나에게 바라는 일을 남에게도 행한다! 이겁니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 모두가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특히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아서 능력자가 되어야 우주 질서를 따르며 인생법칙에 맞게 살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먼저 지혜가 들어올 빈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무심의 방을 준비하고,

안테나를 세워 우주와 접속하면 내 달란트에 맞는 지혜가 절로 들어올 것입니다.

나의 새로운 삶이 또한 앞서 오신 선각자들의 자취를 따라 순례 길을 걷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인류가 수 천 년 동안 읽어온 경전을 읽고 쓰면서 인류의 지성들을 만나고 있지요.

 

간접적으로 들었거나 읽어 알게 된 광명한 지혜라도 자신이 실제로 살아봐야 참된 지혜인 줄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살아있는 현장에서 경험할 때 지혜는 삶의 열쇠가 됩니다.

 

 

 


[부부란?] 아내의 잔소리가 심해져요.

                예전 같지 않게 밤이 무서워요.

                힘이 부칠 때 노하우와 해결책은?

                권하는 정력제는? 잠자리 피하는 비법?

  부부란 어떻게 만났든, 그건 운명인거지요.

알다시피 낯선 남녀가 독립된 인격으로 만난 관계이고,

온전히 하나 됨을 이루라고 신이 인가한 성스러운 계약입니다.


 우주자연의 운행질서인 음과 양이 가장 잘 실현된 모습이 남녀의 결합입니다.

그러니 서로를 신성으로 존중하고 더 깊이 알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분대로 생각 없이 살다보면 혼인의 본뜻은 사라지고 남녀상열지사도 제대로 누릴 수 없지요.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이제는 제 그물에 걸렸다고 방치하면 부패해서 해를 끼쳐요.

 배우자의 잔소리가 파도라면 마음 깊은 곳은 바다 속이겠지요,

파도를 알고 잠재우려면 심연으로 들어가 고요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배우자의 깊은 내면으로 맑게 깨인 상태로 들어가세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배우자의 속삭임과 절규를 들어봐야 합니다.

외로움과 사랑을 다양한 방편을 써서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정직하게 둘이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깊은 내면에서부터 사랑의 불꽃이 일어난다면 무서운 밤이 뜨거운 신혼 시절로 바뀔 것입니다.

 

단순한 섹스를 넘어 영혼의 자리까지 합일하는 경지로 밀어붙이세요.

 

잠자리는 왜 피합니까?

힘이 왜 딸립니까?

불구입니까? ㅎㅎㅎ.

 최고의 정력제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물론 기본체력을 만드는 건 당연히 당신의 몫이구요.

 

자신을 귀하게 보살피고 배우자를 아낀다면,

거시기가 꺾이도록 함부로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동양과학에서 보면,

성(性)에너지가 바로 생명력의 원천이니 그 사람의 건강척도나 수명을 짐작할 수도 있는 겁니다.

반백년 살았으면 이젠 고질병 나기 전에 건강자립을 생각하고 지혜롭게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겁니다.

 

건강자립을 생각하고 자기 몸 스스로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부모란?] 부모 이해하는 법?

                살아 계실 때 잘해라 하는데, 쉽지 않아요…. 

                효, 어떻게 실천할까?

               아직 늦지 않았어, 좋은 부모 되는 법?

   부모=>부부(부모)=>자녀.

이건 자연의 이치로 공식처럼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관계입니다.

무조건 모시고 섬기는 것만이 참된 효가 아닙니다.

신체와 정신적인 면도 세월 따라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지 살펴야 합니다.


 나도 못 다한 일이지만,

부모도 자신과 다를 바 없이 한 생애를 특별하게 살아가시는 한 인간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아이들을 낳아 기른 한 쌍의 부부이며,

또한 한 남자와 한 여인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느라 오만 생각과 감정과 오감이 있고 자신의 꿈과 희망을 품고 완성으로 나아가는 인격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또한, 인간관계에는 사람을 거두는 거리가 있습니다.

 

편중하는 거리가 아니라 본성에 따른 거리인데,

 

나를 중심에 놓고,

나=>배우자=>자식=>부모=>형제 친척=>이웃=>세상사람 순서입니다.

 세상의 바른 도(道)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물길로 연결된 그릇에 물이 채워지듯이 이와 같은 순서로 보시하게 됩니다.

사람 차별하는 건 아니고 순서만 있을 뿐,

예수님이 가르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덕목을 행하는 것과도 일치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인 바,

내가 잘 사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이고 자식에겐 멋진 부모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참된 본성을 깨우쳐 알고 쉼 없이 닦는 것이 살아있는 동안 할 일입니다. 

 

 

 일상에서는 정성을 다해 그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누리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나의 시간입니다.

 

 

 


[자식이란?] 머리는 되는데, 노력이 부족한 아이 어찌할꼬?

                   농사 잘 짓는 노하우는?

                  무자식이 상팔자? 효도 받는 법?

  자식 농사?

 

농사는 누가 짓는가, 농부가 짓는다고 생각하면 좀 짧은 식견이지요.

마찬가지로 자식을 부모가 키운다고 우기면 말이 안 됩니다.

 

아이를 주인공 자리에 세워서 가슴 설레는 길을 찾도록 모든 지혜와 정성을 다해서 조건 없는 후원자가 되어주는 게 부모 도리입니다.


 아이의 재능과 건강, 둘러싼 주위 환경도 살펴보고요.

아직도 자식을 소유물이라 생각하는 부모는 없을 겁니다.

 ‘씨 뿌리고 엄마 뱃속에서 키우고(?)

태어나서 먹이고(?)

돈 주고 옷 입히고 공부시키고(?)

성장시켜 학교 보내고 취업시켜서 혼인 시켜서….’

 냉정하게 따져 봐요,

생명의 씨앗을 누가 만들어 누가 뿌렸을까?


 우주 자연, 곧 신이 하는 일이죠.

사람이 하는 게 벌 거 없어요.

곡식도 환경만 되면 저절로 농사가 되는 것처럼 자식 농사도 저절로 되거나 아이 스스로 이루어갑니다.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식은 부부의 몸을 빌려 신이 부린 마술이라고나 할까.

 

부부가 운우지정을 나누어 그들 몸을 빌려 세상에 오신 또 다른 소우주가 자식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잘 자라도록 좋은 환경으로서의 배후 역할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아이가 잘 크려면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 정도입니다.

 결혼 안 하고, 무자식으로 살려면 자기 안에서 신의 생명을 잉태해서 기를 만큼, 성인의 길을 빡세게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빛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하늘의 복지금만 축내면서 어물쩡거리다 무덤 속에 자빠져 눕지 말고.

전통적인 효도는 고리타분하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낡은 시절 헛된 욕심은 그냥 내려놓으세요,

아이가 잉태 후 태어나서 해맑게 미소 지으면서 품속에 안기던 시절,

부모들은 효도를 이미 다 받았습니다.

 

자식이 성년이 되어 독립했다 싶으면 수평적 인격으로,

인생 선후배로 서로 교감하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결혼이란?] 결혼하는 자식에게 부모로써 한 마디 전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은 자식 결혼시켜야 하나요?

                   사위 혹은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들어요?

                   손주 돌보는 법?

   이 시대 청춘들이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걸 보면,

나 역시 별다를 건 없지만, 마치 무면허로 운전하는 아이들처럼 불안한 느낌입니다.

부부 혹은 부모로 살아보는 학습이나 훈련을 받은 적이 없거든요.

 친족, 마을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일어난 현상이지요.

 

일부일처 혼인 습속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인간의 도리인 인의예지신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면 합니다.

 

부부로서 자신과 배우자와 자녀의 인생을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자녀의 배우자 선택권은 본인들에게 있는 거니까 두 사람 모두가 동의할 만한 사유가 아니라면, 부모는 인생 선배로서 경험과 지혜로 견해를 말해주는 정도가 좋을 듯합니다.

 

막무가내로 내 물건 다루듯이 강짜부리지 말고, 자식 인생 대신 살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므로 누가 맘대로 바꿀 수 있는가요?

내 맘에 들고 안 들고 간섭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 제 멋대로 못 바꾸는 거 모르는 사람 있나요?
 오직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을 뿐!


 손자를 보게 된다면 하늘이 주는 축복이지요.

 

노인과 어린아이는 밝은 지혜와 넘치는 생기의 조화로운 만남이라고 합니다.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아이의 맑은 눈 마주 보며 잘 놀아주면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독립할 때까진 부모 품에서 자라야 합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유아기까지는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고 자라야 정서적,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성장이 반듯해 집니다.

새싹 시절부터 엄마아빠랑 부대끼며 살아야 아이와 가족의 행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친구란?] 자격지심? 보고 싶을 때 망설여져, 다가가는 방법은?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방법은?

                이런 친구 되게 하소서, 비결이라도…

  영혼의 친구는 그렇게 많을 수 없어요.

논어에서도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라 했습니다.

 

귀한 존재는 아무데나 널려 있지 않습니다.

특별할 것 없이도 즐겁게 길을 함께 가는 벗.

진정한 친구는 자신의 거울이며 분신과 같아요.


 친구를 보면 자신의 레벨을 알 수 있습니다.

친구는 느낌대로 만나면 됩니다.

망설임, 자격지심이 생긴다면 아직 교감할 때가 아닐 겁니다. 
 


 사랑 받으려 하지 말고 자신이 사랑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깊은 내면의 샘에서 솟는 우정의 샘물을 길어 올리면 됩니다.

꾸며서 어찌 잘 해 보려고 꼼수 부리지 말고. 친교란 조건 없는 나눔입니다.


 깨어서 내면을 보면 세상 사람들과 나눌 선물이 무한정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누군가 찾아와서 얻어갈 만한 것, 가치 있는 것이 내게 있어야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과욕부리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정성을 다할 뿐,

잠시 달콤하게 꾸민 것은 금방 들통 납니다.

현실에서 친구가 없다면 앞서 다녀간 분들과 우정을 나누어 보는 겁니다.

경전 읽기를 권합니다.

 


[애인이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사랑이라 하던데 맞나요?

                   바람피우다 걸렸을 때, 어찌해야 하나요?

  우리 시대의 성인들인 부처님은 10악의 하나라고,

예수님은 10계명에 담아 부부 된 자가 외도하는 것을 엄금하고 있는데,

좁은 내 식견으론 풀어내기가 다소 난감한 문제입니다.

 인간에게 갈애(渴愛)라는 건 가장 센 생명에너지인데,

양심 거울에 비춰봐서 그게 나와 남을 해치는 탐욕에서 생기는 일이라면 가차 없이 내쳐버려야 합니다.

그런 일 말고 생명에너지를 더 가치 있는 일에 써야 합니다.

인생살이 그리 길지도 않고, 힘 쓸 시간이 넘쳐나는 것도 아닙니다.

 바람, 걸렸다면 어찌할 거냐?

 

판 깨고 막장으로 가려면 니 기운 꼴리는 대로 하시고, 깨진 그릇 복원하고 싶다면,

음~ 변명 딱 끄고, 면벽수행! 매일 300배 절을 100일 간 해보면 어떨까?

그래도 되돌리지 못하면 300일, 안 되면 될 때까지 하세요.

뭐가 터져도 한 소식할 거니까^-^

 아하, 부부로 살다가 진짜로 이건 아니다, 잘못된 만남이었다,

또 다른 삶을 찾아야겠다 싶으면 진지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가지고

부부가 함께 맑은 정신으로 깊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서로를 축복하면서 떠날 때까지!


 

 

[다시, 삶이란?]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들어 가는 법은?

                         다시 태어난다면…

  사는 게 뭔지 알고 싶거든,

적어도 하루에 한 번 30분쯤 온전히 혼자서 머물면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여기서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자기 안에 늘 있는 스승,

멘토를 만나 그가 이끄는 대로 살아갈 것을 권합니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 사는 거라 여겨집니다.

 

일상에서 날마다 좋은날,

고요한 축제처럼 어떤 것에도 끄달리지 않는 자유자재한 경지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나간 신문쪼가리 같은 세상사를 붙잡고 허우적거리는 신세가 되면 안 되는 겁니다.

이기심 채우려고 조작질 하지 말고 애쓰지도 않으며 가슴의 소리를 따라 물처럼 바람처럼 세상 만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구여행 끝나는 날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그런 삶!

 인연도 누가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새로 짓고 갈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세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냥 온 게 아니라 내가 씨앗을 뿌리고 불러들인 것들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성서 글귀는 빈 말이 아닙니다.

 참된 내가 하느님의 뜻, 양심과 사단에 맞게 살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혹시 지구별에 다시 온다면, 인생 허비하는 쓰잘 데 없는 공부는 안 할 거고, 쓸모없는 일 하느라 피땀 흘려 노역하지도 말고, 타인들의 평가에 주눅 들지 않고 한 평생 신성으로 살게 되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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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블로그를 운영 중인 김용택 선생님.

 

 

 

“나는 흑판에 다음과 같이 크게 썼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긴장해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왁자해지면서 온갖 얘기를 내놓는다.

 

“돈입니다.”
“사랑입니다.”
“건강입니다.”
“가족입니다.”
“권력입니다.”

 

“다 필요하지요. 그런데 정작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았군요.”

 

이렇게 말한 후 나는 또 다음과 같이 흑판에 썼다.

 

‘나’

 

아이들은 뜻밖이라는 듯 “우~” 하는 소리와 함께 “맞아요!”하고 답하기도 한다.“(124~125쪽)

 

 

 

블로그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를 운영 중인 김용택 선생님이 펴낸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출판사 생각 비행)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정년퇴임 교사였던 김용택 선생님이 현직에 있을 때 학년이 바뀐 첫 수업 때 학생들에게 들려준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네 초ㆍ중ㆍ고등학교 교육 현실은 어떻습니까?

 

학생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습득하기보다, 좋은 학교,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거치는 한 곳쯤으로 치부되어 서열화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나’라는 말이 쉽게 튀어 나오겠습니까.

 

 

하여튼, 김용택 선생님은 ‘나’가 소중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소중하다는 건 조건이 붙어서는 안 되지요. 그냥 ‘나’이기 때문에 소중한 겁니다. 내가 공부를 잘하니까 소중한 게 아니고, 내가 잘생겼기 때문에 소중한 게 아니고, 내가 키가 크니까, 내가 아들이기 때문에, 딸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이기에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라는 겁니다.”(<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 125쪽)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내 나라도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모릅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비록 아버지가 못 배우고 못났어도, 내 나라가 비록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분단되어 있다 할지라도 내 나라 내 역사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겁니다.”(<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 128쪽)

 

 

김용택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은 오늘을 현명하게 살기 위한 몸부림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책은 살면서 가끔은 뒤돌아보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막연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혀 사는 사람들에게 하는 쓴 소리인 셈입니다.

 

자녀를 현명하게 키우고 싶은 학부모,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교육 정책을 세우는 교육가 등에게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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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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