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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려놓으면 걸림이 없고, 자유로우며, 분별이 없다!

백중, 목련존자가 아귀도의 어머니를 구하는데서 유래
8월10일, 창원 성불사 백중 49재기도 회향법회 참관기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 백중 49재 화향법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조상님의 극락왕생을 비는 신도들이 모였습니다.

 

 

모든 삶에는 노력과 정성이 스며있습니다. 인연에 따른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더군요.

 

살아갈수록 불가에서 말하는 “삶=고행(苦行)”임을 느끼는 중입니다. 이 고행은 자신이 지은 업(業)으로 인한 것이기에 스스로가 이겨내는 길이 최선임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살이 만만찮습니다. 만만하고 편한 세상살이가 되려면 결국 <나>를 다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가 짓는 것이니, 결코 남을 탓할 일이 아니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덕을 쌓고, 남을 위하는 일로 복을 지을 수밖에.

 

 

삶, 쉽지 않습니다. 모든 죄악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 늘 참고, 적은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허나, 끝없는 욕심 속에서 좌절하고 분노하는 일상의 반복입니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몸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영혼과 육신의 자유를 구하기 위해 경남 창원 성불사에 갔습니다. 지난 8월10일(음력 7월15일) 백중을 맞아 백중 49재기도 회향법회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불사 백중기도는 지난 6월29일 1제를 시작으로 8월10일 회양까지 7회 동안 열렸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일은 모든 일의 출발점입니다.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입니다. 

 

 

 

백중, 목련존자가 아귀도의 어머니를 구하는데서 유래

 

 

“금강경 암송해 줄까?”

 

 

성불사로 가던 중 최명락 교수(전남대 생명공학과)가 차 안에서 의향을 물었습니다. 종종 있었던 일이라 “고맙습니다!”고 했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가 <금강경>에 독송에 몰입했습니다. 금강경이 무한 위로를 주었을까? 금강경을 온전히 담아 암송하는 그의 마음이 평안을 주었을까? 여유로운 기분이었습니다. 다음은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입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時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상이 상이 아님을 바로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 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 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응당 색(물질)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니,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 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해야 한다.”

 

이보현 보살의 극락왕생 춤 공양입니다.

잔을 올리고...

 

 

 

 

오전 9시40분. 성불사에 도착하니 회향 법회는 이미 시작되었더군요. 10여분 늦은 겁니다. 이 늦음은 차 안에서 금강경 독송을 들어야 했던 이유 같기도 합니다.

 

회향 법회는 천수경 독경, 일반 예불, 영가축원카드 낭독, 이보현 불교무용학원장의 영가 극락왕생 춤 공양, 주지 청강 스님 법문, 영가전 공양, 관계 영가님들의 옷 수령과 소각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란분경 등에 따르면, 백중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목련존자가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중제는 살아생전 자기가 지은 업으로 인해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영혼들이 부처님의 법력에 의해 해방되는 날입니다. 하여, 백중에는 절에서 부모 등 조상님 이름으로 음식이나 옷을 지어 올렸다더군요.

 

 

신도들은 저마다 신심으로, 윤회하며 각자 인연을 맺었던 조상과 부모 형제 및 수자영가 등 자신과 직접 인연이 있고 없음을 떠나 구천을 떠도는 모든 영가들이 극락으로 왕생하는 제를 올렸습니다. 두 손 모아 비는 그들의 모습이 열반을 향한 구도자의 아름다움처럼 보였습니다.

 

 

부처님 전에 올립니다! 

 나무아미타불...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의식을 진행 중입니다. 

영가들의 옷을 태우기 위한 의식입니다. 

 

 

 

나를 내려놓으면 걸림이 없고, 자유로우며, 분별이 없다!

 

 

성불사 주지 청강 스님은 이날 법문에서 화두로 “불가(佛家)에서 우주 공간 속에 살아가는 모든 우주만물 삶의 본질을 규정한 세 가지 기본 명제인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삼법인(三法印)”을 꺼내들었습니다.

 

 

“부처님은 ‘제행무상’이라 하여 모든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 역시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제법무아’입니다.

이로 인해 인간 삶은 고통, 즉 ‘일체개고’라고 설파했습니다.”

 

 

인간은 영원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존재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우주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고통마저도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청강 스님이 법문에서 특히 강조한 <제법무아>는 이러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것은 전부가 실체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인연 따라 잠시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때문에 나를 내려놓는 삶은 걸림이 없고, 자유로우며, 분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집과 분노, 소유욕, 어리석음 등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누가 이걸 모르나요. 실천궁행(實踐躬行)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네 삶을 고(苦)라고 했나 봅니다. ‘나’와 ‘너’의 구별이 불평등과 폭력, 행복과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는 인간관계 사이에서 오는 상호 비교가 가져 온 ‘분별’로 인한 고(苦)인 셈입니다.

 

 

 

 청강 스님 법문.

제행무상,제법무아, 일체개고가 뭐냐하면... 

부처님께 비옵니다!!! 

인연이 있든 없던 간에 극락왕생을 빌고... 

 

 

 

세월호 사건과 군 폭력 사망사건은 인간 욕심의 결과

 

 

“원래 인간에게 불행과 병, 고통 등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별이 생기면서 각자의 업에 따라 불행과 병, 고통 등이 뒤따랐습니다.

 

업은 마음에서 오는 것.

착한 마음이 일면 선업이 되고, 욕심이 생기면 악업이 됩니다.

욕심이 생기면 살인, 욕,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고, 화도 냅니다.

그 결과가 세월호 사건과 군 폭력 및 사망 사건 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법회에 참석한 성불사 신도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아는지, 빙그레 웃습니다. 스님께서 세월호 사건과 군 폭력 사망사건을 들먹일 때에는 “그래, 맞아!”라며 인간의 욕심을 타박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악업이 없어지길 바란다면 진심으로 참회해야 합니다.

진심어린 참회가 아니면 일시적으로 악업이 없어졌다가도 다시 나타납니다.

그 업은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자신의 행복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먼저 비는 것이 우선입니다. 항상 ‘나는 행복합니다!’ 라는 자세로 살아야 행복합니다.”

 

 

언제부턴가, 웃는 얼굴과 진실 된 말로 남을 대하기보다 거짓 표정과 삿된 말로 사람을 현혹하는 게 일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지은 선악의 결과는 반드시 스스로가 받게 되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또 업(業)을 짓고 있습니다.

 

 

나를 내려놓는 일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삶은 부단한 정진과 수양이 필요하나 봅니다. 저와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의 행복과 건강을 빕니다.

 

백중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참 가벼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영가들을 위해 지은 옷은 의식 후 불에 태워집니다.

제를 올리고... 

조상님의 은덕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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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승낙 조건 중 하나였던 ‘새벽 예불 구경’ 이유가

잠이 부족한 학승들에게 곤혹이었을 ‘목탁소리’
스님이 전한 ‘도량석’에 얽힌 사연에 빙그레 웃고…
새벽 예불에 들어 있는 ‘남들을 깨운다’는 의미는?

 

 

 

 

세상을 일깨우는 도량석 중인 스님...

새벽 예불을 마친 제주도 우도 금강사.

 

 

 

 

18년 전, 아내는 나그네의 청혼을 받아주는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로 ‘새벽 예불 구경’을 내걸었습니다.

 

전혀 예상 못한 기상천외한 제안이었습니다. 호기롭게 ‘까지 꺼 그거 못하겠냐?’ 싶어 “좋다”고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경북 청도 운문사로 향했었습니다. 운문사의 새벽, 앳된 비구니들의 예불소리는 웅장함을 넘어 자비였습니다. 이후, 새벽 예불은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구도는 자신을 낮추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똑 똑 똑 똑 ~~~~~~ 또르르르~~~~~~’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께서 대웅전 앞에 섰습니다. 목탁소리가 새벽을 갈랐습니다. 청아했습니다. 목탁소리엔 일정한 음률(音律)과 시어(詩語)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선지, 나그네를 깨우는 신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나그네는 공(空)이 되어갔습니다.

 

 

덕해 스님께서 목탁을 두드리며 걷습니다.

동시에 염불이 나옵니다. 목탁과 어울린 염불소리는 절묘한 조화로 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 스님의 부드러우며 절제된 발걸음은 춤사위처럼 사뿐했습니다. 이에 반했는지, 한 처자가 문을 열고나왔습니다. 그녀는 합장한 채 스님을 뒤따랐습니다.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의 행복이었지요. 아내는 이런 행복을 어찌 알았을까?

 

 

“마하반야~ 바라~ 밀다심경~~~”

 

 

절집의 새벽 예불은 보통 새벽 3시30분 혹은 새벽 4시에 시작됩니다. 순서는 도량석, 종성, 종치며 염불, 법고, 운판, 목어, 범종, 작은 종(운집새), 법당 예불 순입니다. 절집 규모와 도량 크기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이 과정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삶의 재미지요.

 

 

 

목탁소리는 신심이었습니다.

 

 

 

 

잠이 부족한 학승들에게 곤혹이었을 ‘목탁소리’

 

 

세상이 좋은 것뿐이라면 이 무슨 재미.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좌절도 있는 법. 목탁소리는 잠이 부족한 젊은 학승들에게는 아주 ‘곤혹’입니다.

 

 

수학능력시험을 코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자신을 깨우러 온 엄마를 보며 “1분만 더, 1분만 더”를 간절히 외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떠올려도 무방합니다. 꿀잠의 맛이지요.

 

 

“도량석을 담당한 학승은 따로 잔다.

그래야 잠이 부족한 다른 학승들이 부산함에 깨지 않고

조금이나마 더 잘 수 있으니까. 이는 배려의 미학이다.

보통 도량석 담당은 1주 단위로 돌아간다.”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의 설명입니다.

 

 

 

연꽃처럼...

 

 

 

 

<도량석(道場釋)>은 새벽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의식으로, 목탁과 염불로 잠든 스님들과 삼라만상을 깨우는 새벽 예불의 서막입니다. 도량석을 담당한 학승은 3시에 일어나 절집 곳곳을 돌며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욉니다. 이 소리에 스님들이 깨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벽 예불을 준비합니다.

 

 

도량석은 스님들의 알람 자명종인 셈입니다.

 

 

도량석과 새벽 예불 사이는 30 내지 40분의 시간 여유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도량석 담당을 둘러싼 치열한 줄다리기가 전개됩니다. 마치 군대에서 한참 잘 시간에 불침번 서는 걸 꺼리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매 한 가지. 하긴 이게 세상살이 묘미지요.

 

 

“절집 마당만 돌다가 올해부턴 우도를 안았습니다.”

 

 

지난 밤,

덕해 스님과 차를 마시며 새벽예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말입니다. 모든 중생의 고통을 짊어지셨던 부처님을 따르기 위해 더 안아야 함을 아신 게지요. 어찌 우도뿐이겠습니까!

 

 

 

도량석을 위해 대웅전 앞에선 스님.

 

 

 

 

스님이 전한 ‘도량석’에 얽힌 사연에 빙그레 웃고…

 

 

새벽, 어둠이 가득합니다.

어둠 속에 가로등 불빛이 빛나고 있습니다. 덩달아 하늘에선 달과 별이 마지막 빛을 발하는 중입니다. 조금 있으면 밝음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릅니다. 스님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 뒤를 합장한 채 묵묵히 걸었습니다. 새벽의 상큼함이 스리슬쩍 마중 나왔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찾은 우도 금강사에선 도량석과 새벽 예불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하기보다 과정을 넌지시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만했습니다. 올해는 달랐습니다. 다시 찾은 금강사에선 도량석과 새벽 예불에 참여했습니다. 보는 것(智)과 하는 것(行)의 차이를 이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자연스레 선사한 ‘내공’ 덕분이었습니다.

 

 

“똑똑똑똑~, 마하반야~”

 

 

목탁소리에도 원칙이 있었습니다.

새벽 목탁소리는 잠든 나무와 풀벌레 등 만물에게 놀라지 말고 일어날 준비를 하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해 점점 커집니다.

 

반대로 저녁 목탁소리는 크게 시작해서 잦아듭니다. 조용히 휴식 취할 준비를 하란 거죠. 그러니까, 목탁소리는 삼라만상에 대한 부처님의 배려의 자비가 숨어 있습니다.

 

 

“시계가 귀하던 과거에는 어떤 스님이

도량석을 하느냐에 따라 예불 시간이 달랐다.

 

잠 없는 스님께서 도량석을 맡으시면

새벽 예불이 일찍 시작되는 관계로 예불 후

한참이 지나서야 아침 공양을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예불 후 바로 아침 공양을 했다.”

 

 

덕해 스님이 전한 도량석에 얽힌 사연입니다. 빙그레 웃었습니다. 머리 깎고 출가한 구도자의 세계는 우리네 세상과는 한참 다를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구도자였으나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에 매여야 하고, 공양을 해야 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극락’인 것을…. 가르침이었습니다.

 

결혼이 곧 구도자의 길이었으니….

 

 

 

구도의 길은 간절함이었습니다.

 

 

 

 

새벽 예불에 들어 있는 ‘남들을 깨운다’는 의미는?

 

 

세속적인 나그네가 생각하는 새벽예불의 맛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깨달음의 경계를 넘나들고자 하는 수행.

둘째, 만물이 잠든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고 정진하는 수양.

셋째, 남들보다 일찍 얼어난 만큼 하루를 더 길고 알차며 값진 시간을 만드는 토양이지 싶습니다.

 

 

“남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과 곤히 자는 남들을 깨운다는 것이다.” 

 

 

새벽예불에 대한 덕해 스님의 답입니다. 새벽 예불을 보는 눈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깊이에 차이가 납니다. 그건 “남들을 깨운다!”는 사실입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 함께’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아름드리나무가 인간에게 사랑받는 건 우리에게 주는 그늘이 푸짐하기 때문이듯….

 

 

언제부터인가,

목탁소리에 스민 울림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목탁을 치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달랐습니다. 어떤 이의 소리는 그저 소리일 뿐이었으나, 어떤 이의 소리는 편안함과 위안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목탁소리에 구도의 깊이와 마음의 넓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새벽 예불을 올립니다.

독송마저 감미롭습니다. 땀이 방울방울 떨어집니다. 혼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혼자 기거하는 절, 게으름을 피울 만하나 늘 한결같습니다. 삶 자체가 곧 구도였으니 당연한 게지요. 여기에서 아내가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새벽 예불 함께 보기를 내세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 언제나 늘 한결 같기를….’

 

 

 

나를 낮추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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