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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서 곡차 한 잔 마시면 좋겠다고? ‘때로는…’
“왜, 막걸리 두 통 사오라 했는지 아시는가?”
“맛난 김치가 있는데 묵은 김치도 좀 주까?”

 

 

 

지금껏 받은 술상 중 최고의 술상.

 

 

최근 봄비가 잦았습니다. 봄 가뭄을 말끔히 해소시킨 단비였지요. 땅과 동식물이 갈증을 풀었다니 기쁩니다. 반대로 흐린 날씨는 술꾼에게 ‘~탓’을 종용했습니다. 날시 덕에 술 갈증이 오히려 심했으니까. 술 잔 기울이길 피하려고 스님과 마주 앉아 차 마시는 중에도 목은 끊임없이 탔습니다. 타는 목마름이었지요. 지인에게 문자로 도움을 청했습니다.

 

 

“막걸리 두 통 사, 절집으로 오세요.”

 

 

지인까지 “녭!”하며,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안 봐도 뻔합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절집에서 내놓고 술을 마시겠냐!’는 거죠. 절집에서 마시는 술은 속세에서 마시는 술과는 격이 다르다지요. 고상한 말로 ‘곡차(穀茶)’라나. 지인이 막걸리를 사 들고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술꾼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조촐하지만 단아한 미학이 스며 있습니다.

 

 

 

아무리 염치없는 중생이라지만, 절집에서 내놓고 곡차 마시겠단 소린 못하겠더군요. “술은 군 생활 1년을 제외하곤 평생 입에 대 본 적이 없다”던 스님 눈치를 살폈습니다. 차를 접을 생각을 아예 하질 않는 겁니다. 그래 티 나게 은근슬쩍 넌지시 말을 던졌습니다.

 

 

“곡차 한 잔 마시면 좋겠는데….”

 

 

그제야 스님, “요것까지만 마시세!”하셨습니다. 마시던 차는 음미는커녕 급하게 홀라당 마셨습니다. 스님, 자리를 분연히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시더군요. 그랬는데 금방 다시 들어오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요게, 이래봬도 대웅전 서까래로 쓰던 목재로 만든 찻상이야. 테두리에 연꽃 문양을 넣었고.”

 

 

찻상만 들고 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 걸. 찻상 위에는 막걸리 두 병과 곶감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몸짓과 말로 표현은 안했지만, 마음속으론 발딱 일어나 ‘아이고 고맙습니다, 스님’을 반복하며 허리까지 몇 번이고 구부렸습니다. 스님께서 술꾼의 격한 환영을 읽으신 듯, 한 수 더 거드셨습니다.

 

 

도자기를 잔으로...  

예쁜 잔으로 마시는 효과는?

 

 

 

“이왕이면 곡차 마시는 잔도 운치 있는 찻사발이 좋겠지?”
“스님께서 뭘 아시네.”

 

 

두 말하면 잔소리. 스님께선 잘 사용하지 않고, 고이고이 모셔 두었던 투박한 사발 두 개를 꺼내셨습니다. 곡차 잔을 받아 들었습니다. 잔은 울퉁불퉁한 표면과 반들반들한 유약이 혼재된 질박한 ‘자환’이었지요. 이 정도면 신선놀음을 시작해도 무방하지, 싶었습니다. 막걸리 사 온 지인과 곡차 앞에 앉았습니다.

 

 

“한 잔 받으십시오.”

 

 

지인의 권유에 잔을 들었습니다. 졸졸졸졸~, 곡차 따르는 소리가 은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소리 같았습니다. 지인 잔에도 적당히 부었습니다. ‘쨍’ 잔을 부딪친 후, 한 모금 마셨습니다. 목구멍 넘어가는 곡차가 묘하게 편안했고, 가슴은 ‘쏴~’했습니다. 지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막걸리 두 통 사오라 했는지 아시는가?”
“글쎄요….”


“한 통은 부족하고, 두 통은 적당하고, 세 통은 과하고. 차는 분별이 있지.”
“그 말이 맞습니다.”

 

 

곡차 안주로 지리산 청학동에서 가져 온 곶감이 등장했습니다.

발효의 미학 묵은 김치 .

안주로 먹는 맛은?

 

 

스님, 뒤에서 들으시고, ‘허~ 요놈 봐라’시듯, 빙그레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맛난 김치가 있는데 묵은 김치도 좀 주까?”
“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이심전심이었습니다. 곡차(막걸리)의 다식(안주)으로 지리산 청학동에서 가져 온 곶감만으론 2% 부족하지 싶었는데, 발효식품의 대명사인 김치가 부족함을 메운 겁니다. 아주 정갈한 한상차림이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흐뭇했습니다. 덤으로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이 곡차 상은 반백년을 넘어 사는 동안 받아 본 술상 중 단연 ‘최고의 술상’이었습니다.

 

 

이쯤해서 이실직고 해야겠습니다. 예전엔 술 마셨다 하면 끝장 보는 아주 미련 곰탱이 술꾼이었지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노력하니 차츰차츰 변하더군요. 이제야 ‘절주의 미학’을 알게 되었지요. 간혹 ‘미학’이고 ‘나발’이고 할 때가 있습니다만, 때와 장소의 분별이 있으니 한 시름 놓았습니다.

 

 

곡차는 점점 비워졌습니다. 배는 차츰 불렀습니다. 결국 빈 그릇만 남았지요. 싹싹 비움의 미학이 가미된 넉넉한 한 끼 발우공양에 행복했습니다. 당분간 타는 목마름은 없을 듯합니다. 대신, 변하지 않는 진리에의 갈구만이 남을 듯합니다.

 

 

인생이란?

 

 

먹고 나니 남은 자리... 

최고의 술상... 

비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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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식, 청ㆍ백ㆍ적ㆍ흑ㆍ황 오방색의 조화
홍고추, 블루베리 등을 이용해 만든 다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와 함게 먹는 다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녹차.


차와 함께 먹는 간단한 음식을 다식이라 하지요.

다식은 밤ㆍ대추ㆍ송화ㆍ쌀ㆍ깨 등 곡식 가루를 꿀과 엿 등을 섞어 만든 우리나라 고유 음식입니다. 다식은 맛이 달고 고소하며 향기로운 것이 특징이며, 아이들 간식으로도 좋습니다.

전통 다식 만드는 방법을 현대적으로 응용한 지인이 있습니다. 정성자 씨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다식을 곡식가루로만 만들 게 아니라 한천(우무가사리)과 야채를 이용해 새로운 다식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에서 홍고추, 파프리카 등을 사용해 오방색을 표현했다.”

고거 참 재밌더군요. 이렇게도 다식을 만들 수 있구나 싶어서요. 역시 역발상이 새로운 창작을 가져온 셈입니다. ‘오방색’이란 단어가 좀 생소하죠?


브로콜리로 만든 다식.
 
홍고추로 만든 다식.

브로콜리로 만든 다식.  

분유로 만든 다식.

파프리카로 만든 다식.

블루베리로 만든 다식.

오방색은 우리나라 음양오행 사상을 표현하는 전통 색이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음식에서 맵고, 달고, 시고, 짜고, 쓴 오미(五味)와 청색, 희색, 적색, 흑색, 황색 등 오색(五色)을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이 오색과 방위를 결합한 게 오방색인 거죠.

황색(黃)은 오행 중 토(土)로, 우주중심에 해당하고 오방색의 중심입니다.
청색(靑)은 목(木)과 동쪽이며, 창조ㆍ생명의 색을 의미합니다.
백색(白)은 금(金)으로, 서쪽에 해당하며 결백ㆍ진실ㆍ순결 등을 뜻합니다.
적색(赤)은 오행에서 화(火)이며, 남쪽으로 태양ㆍ불 등을 상징합니다.
흑색(黑)은 오행 중 수(水)이며, 북쪽으로 인간의 지혜를 나타냅니다.

정성자 씨는 이런 오방색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천(우무가사리)를 브로콜리(녹색), 홍고추(적색), 파프리카(황색), 블루베리(흑색), 분유(백색) 등과 어울려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버무려 다식을 만든 것입니다. 웰빙이 강조되는 요즘, 이런 다식도 많은 사랑을 받을 듯 하네요.


 다식을 만든 한천과 야채 등 재료들.

브로콜리로 만든 다식.

 녹차 마시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채로 만든 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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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0168265.tistory.com BlogIcon 미자라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현철님 저 깜짝 놀랐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 있으신거 지금 처음 알았거든요...
    매번 다음블로그 가다가 첨으로 링크가 걸렸길래 타고 와보니 이곳이네요..
    와우...깜짝!

    2010.07.05 07:27 신고
  2. Favicon of https://islandlim.tistory.com BlogIcon 임현철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랬어요. 테더앤 미디어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2010.07.05 09: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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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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