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에 얽힌 서리와 추억의 맛에 몸서리
각시가 석류 하날 혼자 해치웠대요.

“자네, 특히 좋아하는 과일 있는가?”
며칠 전, 지인은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두 말하면 잔소리. 바로 즉석에서, 가다렸다는 듯 “석류요”하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게 그리 좋아?”라며 싱긋 웃어보였습니다.
지인의 웃음은 안 봐도 알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일전에 지인에게 석류 하나를 선물 받은 적 있습니다.
누가 싸줬다며 저에게 준 것입니다.
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40여년 만에 손에 넣은 석류를 쪼개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자는 아이들 빼고, 아내에게 권했습니다.
아내는 됐다며 혼자 맛있게 먹으라며 사양했습니다.
“당신, 이 맛있는 석류를 정말 안 먹는단 말이지.”
거듭, 함께 먹을 것을 권했지만 아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습니다.
주먹만 한 석류를 혼자 독차지해 먹는 즐거움은 그 자체로 엄청난 포만감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아내가 다짜고짜 뒤통수를 쳤습니다.
“각시는 안주고 혼자 다 먹었단 말이지.”
“먹으라고 해도 안 먹는다더니, 왜 그래?"
“당신이 하도 맛있게 먹길래. 그런데 각시한테 먹으란 말도 안 하냐.”
기막힐 일이었습니다. 분명 같이 먹자고 했는데, 그 말조차 안했다니….
이럴 때 CC TV라도 있었으면 확인시켜 줄 텐데.
어쨌거나 석류를 향한 식탐이 엄청났나 봅니다.
이런 사연을 지인에게 말했더니, 너털웃음 한 번 흘리더군요.
석류에 얽힌 서리와 추억의 맛에 몸서리

먹을거리와 얽힌 추억이 많습니다. 그 중 석류에 대한 추억이 아련합니다.
어릴 적, 저희 뒷집 대문 옆에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5월이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쑥쑥 자란 석류는 8~9월이 되면 토실토실했습니다.
껍질을 뚫고 터져 나온 석류 알갱이는 빨갛다 못해 핏빛을 띠고 어린 저를 유혹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 앞에, 주먹만큼이나 큰 석류를 따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많았습니다.
터질 듯이 익은 석류를 딸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곤 했습니다. 대문 담장 너머로 손만 넣으면 석류를 잡을 수 있는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해, 아무도 몰래 석류를 따 혼자 숨어서 먹을 때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기찬 맛에 완전 범죄(?)를 꿈꾸던 온 몸의 긴장은 사르르 녹아 사라졌습니다.
다행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혼자만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맛은 서리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만이 기억하는 추억일 겁니다.
석류에 얽혀 있는 추억의 맛은 석류를 볼 때마다 자동 반사적으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고, 몸은 작은 몸서리를 치게 합니다. 그리고 웃음이 절로 피어납니다.
각시가 석류 하날 혼자 해치웠대요.
부부 간 있었던 석류에 얽힌 오해와 추억을 아는 지인이 선물로 석류 세 개와 홍시 다섯 개를 주었습니다.
석류는 제게, 홍시는 가족들에게 줄 요량이었나 봅니다.
받자마자 집에서 석류 하나를 쪼갰습니다.
혼자 먹었다가는 또 혼쭐날 게 염려되었습니다.
“여보, 얘들아, 석류 먹어라.”
먹지 않을 것 같았던 식구들이 석류 앞에 모였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맛있게 잘 먹더군요. 이렇게 잘 먹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내 피 같은 석류가, 그 맛있는 석류가 없어지는 게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아직 두 개가 남은 터라 뒤에 또 먹으면 된다, 싶었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생겼습니다.
지난 월요일, 절에 갔다 왔더니, 석류 하나가 사라졌지 뭡니까.
아내가 석류 하나를 해치웠더군요. 아~, 그 애통함(?)이란….
이 마음을 담아 석류를 선물했던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성님, 성불사 있는 동안 각시가 석류 하날 혼자 해치웠대요.
하나라도 남아 다행~^^”
“마니 사줄게. 싸우지 마라. ㅎㅎㅎ”
지인의 재밌는 답변에 혼자 빵 터졌습니다. 나 원 참. 석류가 뭐라고 싸움까지.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교수님, 그냥 저희가 사 먹을게요~. ㅠㅠ 어찌 각시님이랑 싸우겠어요?”
이랬는데 글쎄,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식탁 위에 하나 남은 석류마저도 흔적 없이 사라졌지 뭡니까.
알고 보니, 딸애가 먹었더군요.
그런데 석류 껍질과 알갱이들이 지저분하게 싱크대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 광경에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아까운 내 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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