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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32

 

 “내가 부를 때까지는 아무도 들이지 말게.”

 “어제도 찾아와 빚진 일이 있다 하였습니다.”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두 사람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그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 시간 비상도는 마스크를 하고 조천수 회장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인터폰으로 어제 왔던 사람이라고 했으나 안에서는 만날 일이 없다는 말을 들은 후였다.

 

 

 이렇게 된 이상 이곳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리는 그를 만나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대궐 같은 집들만 있는 거리라 사람들의 통행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고급 차들이 간간이 지날 뿐이었지만 어둠이 깔리자 그마저도 뜸해졌다.

 

 

 그는 조금 떨어진 곳의 돌출된 대문 옆 사각지대에 몸을 숨기고 그가 나타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강추위가 사정없이 뼈마디로 파고들었다. 이 같은 날씨에 몇 시간을 이렇게 서서 버틴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가 한참 고민에 빠져있을 때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길을 비추며 올라왔고 그는 순간적으로 기둥에 몸을 바짝 붙였다. 고급외제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조천수의 집 앞에서 멈추었다. 순간 비상도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운전기사가 급히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칠순이 훨씬 넘어 보이는 노신사였다. 비상도가 몸을 빼내어 소리를 죽이며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조천수 회장님이시죠?”

 

 

 그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고 그 앞을 기사가 막아섰다.

 

 

  “무슨 일입니까?”
  “회장님을 만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신지 모르지만 내일 회사로 나오시죠.”

 

 

 기사의 말을 비상도가 손을 들어 막았다.

 

 

  “어제도 찾아와 빚진 일이 있다 하였습니다.”

 

 

 회장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례라고 생각지 않는가?”
  “회장님 선친에 관한 일입니다. 시간을 좀 내어주시죠.”

 

  “나는 빚진 일이 없네.”
  “잠깐이면 됩니다.”

 

  “안된다면?”
  “그럼 무례를 할 수밖에 없지요.”

 

  “가능하다고 보는가?”
  “신문에서 보았을 텐데요. 조폭과의 싸움을 주도한 비상도란 사람입니다.”

 

 

 회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얼굴을 고치고는 기사에게 말했다.

 

 

  “문을 열게.”

 

 

 비상도가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넓은 잔디밭이 깔린 정원을 지나 연못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별채였다. 아마 따로 손님을 맞을 때 쓰는 공간인 듯 보였다.

 그가 기사에게 따로 말을 놓았다.

 

 

  “내가 부를 때까지는 아무도 들이지 말게.”

 

 

 넓은 홀이었다. 여러 사람이 앉아서 회의를 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옅은 커튼 뒤로는 간단하게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보였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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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에 얽힌 서리와 추억의 맛에 몸서리
각시가 석류 하날 혼자 해치웠대요.

 

 

 

 

 

 

“자네, 특히 좋아하는 과일 있는가?”

 

며칠 전, 지인은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두 말하면 잔소리. 바로 즉석에서, 가다렸다는 듯 “석류요”하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게 그리 좋아?”라며 싱긋 웃어보였습니다.

지인의 웃음은 안 봐도 알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일전에 지인에게 석류 하나를 선물 받은 적 있습니다.

누가 싸줬다며 저에게 준 것입니다.

 

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40여년 만에 손에 넣은 석류를 쪼개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자는 아이들 빼고, 아내에게 권했습니다.

아내는 됐다며 혼자 맛있게 먹으라며 사양했습니다.

 

 

“당신, 이 맛있는 석류를 정말 안 먹는단 말이지.”

 

 

거듭, 함께 먹을 것을 권했지만 아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습니다.

주먹만 한 석류를 혼자 독차지해 먹는 즐거움은 그 자체로 엄청난 포만감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아내가 다짜고짜 뒤통수를 쳤습니다.

 

 

“각시는 안주고 혼자 다 먹었단 말이지.”
“먹으라고 해도 안 먹는다더니, 왜 그래?"
“당신이 하도 맛있게 먹길래. 그런데 각시한테 먹으란 말도 안 하냐.”

 

 

기막힐 일이었습니다. 분명 같이 먹자고 했는데, 그 말조차 안했다니….

이럴 때 CC TV라도 있었으면 확인시켜 줄 텐데.

어쨌거나 석류를 향한 식탐이 엄청났나 봅니다.

 

이런 사연을 지인에게 말했더니, 너털웃음 한 번 흘리더군요.

 

 

석류에 얽힌 서리와 추억의 맛에 몸서리

 

 

 

먹을거리와 얽힌 추억이 많습니다. 그 중 석류에 대한 추억이 아련합니다.

 

어릴 적, 저희 뒷집 대문 옆에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5월이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쑥쑥 자란 석류는 8~9월이 되면 토실토실했습니다.

 

껍질을 뚫고 터져 나온 석류 알갱이는 빨갛다 못해 핏빛을 띠고 어린 저를 유혹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 앞에, 주먹만큼이나 큰 석류를 따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많았습니다.

 

터질 듯이 익은 석류를 딸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곤 했습니다. 대문 담장 너머로 손만 넣으면 석류를 잡을 수 있는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해, 아무도 몰래 석류를 따 혼자 숨어서 먹을 때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기찬 맛에 완전 범죄(?)를 꿈꾸던 온 몸의 긴장은 사르르 녹아 사라졌습니다.

 

다행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혼자만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맛은 서리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만이 기억하는 추억일 겁니다.

석류에 얽혀 있는 추억의 맛은 석류를 볼 때마다 자동 반사적으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고, 몸은 작은 몸서리를 치게 합니다. 그리고 웃음이 절로 피어납니다.

 

 

 

 

각시가 석류 하날 혼자 해치웠대요. 

 

 

부부 간 있었던 석류에 얽힌 오해와 추억을 아는 지인이 선물로 석류 세 개와 홍시 다섯 개를 주었습니다.

 

석류는 제게, 홍시는 가족들에게 줄 요량이었나 봅니다.

받자마자 집에서 석류 하나를 쪼갰습니다.

 

혼자 먹었다가는 또 혼쭐날 게 염려되었습니다.

 

 

“여보, 얘들아, 석류 먹어라.”

 

 

먹지 않을 것 같았던 식구들이 석류 앞에 모였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맛있게 잘 먹더군요. 이렇게 잘 먹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내 피 같은 석류가, 그 맛있는 석류가 없어지는 게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아직 두 개가 남은 터라 뒤에 또 먹으면 된다, 싶었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생겼습니다.

 

지난 월요일, 절에 갔다 왔더니, 석류 하나가 사라졌지 뭡니까.

아내가 석류 하나를 해치웠더군요. 아~, 그 애통함(?)이란….

 

이 마음을 담아 석류를 선물했던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성님, 성불사 있는 동안 각시가 석류 하날 혼자 해치웠대요.

하나라도 남아 다행~^^”
“마니 사줄게. 싸우지 마라. ㅎㅎㅎ”

 

 

지인의 재밌는 답변에 혼자 빵 터졌습니다. 나 원 참. 석류가 뭐라고 싸움까지.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교수님, 그냥 저희가 사 먹을게요~. ㅠㅠ 어찌 각시님이랑 싸우겠어요?”
   


이랬는데 글쎄,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식탁 위에 하나 남은 석류마저도 흔적 없이 사라졌지 뭡니까.

 

알고 보니, 딸애가 먹었더군요.

그런데 석류 껍질과 알갱이들이 지저분하게 싱크대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 광경에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아까운 내 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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