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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의 세상을 엎고자 매국노 응징에 나선 '비상도'

잘못된 부의 창출, 신매국노 응징에 나선 기인 '비상도'

 

 

 

 

 

 

 

언제부터인가,

독서의 계절이라던 '가을'이

더 책을 읽지 않는 계절이 되었다더군요.

 

 

책을 멀리하는 요즘 세파에도 불구

책은 꾸준히 발간되어 독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을에 읽을만한 책,

가을에 볼만한 책 한 권 소개합니다.

 

 

<비상도(책보세)>란 의협소설입니다.

책 소개할게요.

 

 

 

이 소설은 작가 변재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유작이다. 독립투사의 자손인 그는 생전에 물구나무 선 현실에 분개하여 그 비분강개를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그가 보고 겪은 현실은 참담했다. 독립투사나 그 후손들의 해방 후 삶은 비루하고 구차하고 참담한 반면, 친일의 대가로 성가한 매국노들은 오히려 애국자로 둔갑하여 대를 이어 부와 권력을 누렸다.

 

 

게다가 독립투사와 그 후손들을 ‘빨갱이’로 무함하여 역사와 사회에서 배척시키고, 그로써 자신들의 죄악을 덮고자 했다. 그리하여 반성 없는 역사가 한국현대사를 망쳤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자 줄줄이 어그러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작품에 대책 없는 울분을 마냥 쏟아놓는 대신 ‘비상도’의 후예인 주인공을 내세워 잘못된 현실을 통쾌하게 바로잡아 나간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 비상도(조동해)에게 전통무예 ‘비상도’를 전수하는 큰스님, 비상도의 사형 백남재, 비상도의 제자 용화, 무예를 배우고자 자청하여 제자가 된 송철과 백원익, 비상도를 후원하고 사랑하는 성 여사, 천 경장과 정 기자 등이 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들은 하나같이 혈연이나 지연, 학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해관계도 없다. 생판 남인데도 따듯한  가상한 마음과 뜻 하나로 인연을 지어 가족이 되고 동지가 되고 사제가 되고 친구가 된 이들이다.   
 

이 작품에 스님과 절집이 주로 나오는 것은, 작가가 스님(성불사 주지 청강)의 속가 아우인 연유로 그 살아온 배경이 그러해서다. 또 한반도에서는 맥이 끊긴 ‘비상도’라는 고려왕실 무예를 600여 년 만에 마침내 전수시킨 이가 스님인 연유이기도 하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현실인식은 과거청산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사람들이 영화 <명량>을 통해 ‘해묵은 영웅’ 이순신에 새삼 열광하게 된 것도 ‘난세’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사회에 걸친 우리의 현실이 총체적으로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난세로 보고, 그 난세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영웅’을 지어냈다.

 

 

그 영웅의 활약과 좌절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진단해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다. 주인공의 통쾌 무비한 활약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은 덤이다.

 

 

뭐든 ‘끝’이나 ‘마지막’은 애잔하고 숙연하다. 작년 연초, 손때 묻은 유고를 남기고 떠난 작가는 책이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그는 육신을 대지에 뿌리고 대신 그의 영혼을 담아낸 이 작품으로 그의 존재를 세상에 남겼다.

 

 

그는 현란하고 세련된 문장이나 수사를 구사하는 프로페셔널이 아니라서 그의 작품은 소박하고 종종 어눌하기까지 하지만 그 의기(意氣)만큼은 여느 작품에도 뒤지지 않는다.            


 

 

     

 

 

 


≻저자 소개


변재환(1957~2013)

 

1957년 11월 22일(음력) 경남 창원시 진전면에서 태어났다. 재야 문인으로 살다가 의협소설 《비상도》를 유고로 남기고 2013년 1월 19일 별세했다.


할아버지 변상태는 3.1운동 당시 경남지역 책임자로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일왕을 암살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아버지 변지섭은 《경남독립운동소사》(1966), 《축성장군 최윤덕》(1994)을 저술했는데, 《경남독립운동소사》는 한국독립운동사의 중요한 텍스트다.


≻판형_신국판(152×224) ≻면수_446면 ≻정가_14,000원 ≻발행일_2014년 9월 15일 ≻ISBN_978-89-93854-83-1(03810) ≻분야_문학(소설)

 

마음을 살찌우는 '독서'

정신 건강의 으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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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한 세상을 뒤엎는 길 비상도(非常道)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왜 그런지는 아실 겁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비상식한 세상을 뒤집고 상식의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한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올바르게 잡아가야겠습니다.

그 시작은 마음을 하나로 합치는 일부터일 것입니다.

 

독립운동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한민국을 고치는 길...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새롭게 힘을 모으는 일에 기꺼이 함께 해 주시길...

 

 

인연이란......

 

올 초부터 블로그에 연재했던 장편소설 <비상도>(책보세)가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많은 블로거들의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음은 <비상도> 책에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작가 고 변재환님의 작가 서문을 대신해

제가 올린 '작가를 대신해서'입니다.

 

 

 

 

 

 

 

 

- 작가를 대신해서 -

쇼셜 디자이너 대표 임현철

 

 

“이거 함 읽어 봐!”

 

 

저자 고(故) 변재환 씨와 첫 만남은 3년 전 작품을 통해서였다. 그러니까, 경남 창원에 있는 성불사 주지 청강 스님이 툭 던진 세 편의 단편소설이 그 시작이었다. 저자는 청강 스님의 속가 아우였다. 그는 시를 쓰다 소설까지 넘보는 재야 작가였다.

 

 

“읽어보고 평 한 마디 해줘. 내가 뭘 알아야지….”

 

 

저자가 형에게 소설을 주면서 평을 기대했을까. 스님이 평을 요구했다. 무명작가의 처녀 소설치곤 꽤 괜찮았다. 재치 있는 묘사가 눈을 사로잡았다. 스님이 던져주는 먹이는 점점 늘어났다. 이쯤에서 사양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무렵, 스님이 더 당차게 나왔다.

 

 

“이거 장편인데 시간 날 때 재미 삼아 읽어 보라고.”

 

 

막상 원고를 받아 왔으나, 집 책꽂이 한쪽 구석에 박혔다. 인연이었을까. 어느 날 장거리 여행 때 《비상도》원고 1권을 챙겼다. 그 원고는 고속버스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엔 꽤나 괜찮았던 동행자였다.

 

 

처음에는 별반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빠져들고 말았다. 원고는 독립운동가 후손이 우리나라 정치, 경제, 교육 속에 뿌리박힌 친일과 부정부패에 맞서는 활약을 그린 영웅소설이었다.

 

 

실제로 저자의 부친 또한 창원에서 유명한 독립 운동가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에게 쌓인 울분도 많았으리라.

 

 

‘어떻게 이런 표현을 했을까?’

 

 

책을 읽는 도중 감탄이 쏟아졌다.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뻥 뚫림으로 다가왔다. 재미를 넘어 감동까지 일었다. 아울러 결말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쳤다. 이거 대박이지 싶었다.

 

 

결국 스님에게 《비상도》2권 원고를 보여주십사 자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저자와 전화, 이메일 등을 통해 수정해야 할 대목과 느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문장과 문단 배열, 배경 등을 조언했다. 그는 무척이나 반갑게 조언을 수용했고, 고마워했다.

 

 

지난해 1월, 창원 성불사 행사에서 저자와 세 번째 만남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문구와 문장 수정 방법, 문예지 응모, 출판 등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나 역시 《비상도》의 구상, 인물과 배경, 작품 집필 기간, 추후 계획 등에 대해 독자 입장에서 물었다. 헤어지기 전, 그는 정중히 요청했다.

 

 

“식사 대접 한 번 꼭 하고 싶습니다.”

 

 

사촌 매제 최명락 교수(전남대)의 “공양한 후라 배부르다. 안 해도 된다.”는 거절에도 불구, 나는 그의 요구를 수용했다. 왜냐하면 미리 예견했던 탓일까. ‘꼭’에 찍힌 방점이 아니더라도 염원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드시고 싶은 거 마음대로 시키세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준 건 한우 등심 3인분이었다. 그는 소고기 국밥을 시켰다. 그는 국밥은 뒤로하고 우리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갑작스레 병원 입원 소식이 들렸다. 이어 사흘 만에 부고를 접했다. 아마, 작가는 자신의 사후에도 이어질 나와의 각별한 인연을 이미 알고 있었던 성 싶다. 저자의 한 끼 식사 대접은 나를 그에게로 이끈 강렬한 매개체로 작용했으니.

 

 

그의 죽음은 《비상도》를 영영 묻히게 하느냐, 빛을 보게 하느냐, 기로였다. 주위와 상의한 결과 《비상도》가 출판, 영화, 드라마 등으로 빛을 보도록 나서기로 했다. 먼저 SNS 등을 통해 작품을 연재하며 출판사 찾기에 나섰다.

 

 

결국 출판은 (주)책으로 보는 세상의 김이수 주간을 만나 약간의 수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고 변재환 작가 영전에 책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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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의 ‘서민영’, 고흥 죽산재로 거듭나다?

죽산재, “근대 건축문화가 보존된 가치 높은 민속자료”

 

 

 

사회에 기부된 고흥 죽산재입니다.

 

 

 

‘눈을 감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험은 다양합니다.

그 밑바탕은 물욕(物慾)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워야 다시 채워지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뜻하는 바를 이루고자 자신의 몸을 불살라 불상이 된 등신불(等身佛). 비움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위대함입니다.

 

 

지난 2일 오후, 전남 고흥 동강면 유둔리의 서씨 종중 제각 기증 안내판 제막식과 건물에 대한 짧은 연구 발표가 있었습니다.

 

제각을 지은 월파 서민호 선생은 독립 운동가이며,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가였습니다.

 

특히 서민호 선생은 조정래의 대하장편소설 <태백산맥>에서 독자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서민영'으로 재탄생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서민호 선생이 지은 서씨 제각은 그의 증손자가 지난 2010년 8월 자연환경국민신탁(대표이사 전재경)에 기증했습니다.

 

그동안 2억여 원을 들여 수리와 보수를 거친 다음, 드디어 제막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죽산재에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간단하게 안내판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첫째, 자연에 대한 생각입니다.

 

소중한 자연과 문화유산을 아름답게 지키고 가꿔 미래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주자는 겁니다.

 

 

“We do not inherit the earth form our ancestors. We borrow it from our childen.” 이 대지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손에게 빌린 것이다. - Indian Song(인디언의 노래 중) -

 

 

지금 세계 곳곳은 개발론자들에 의해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현재세대의 이익을 앞세워 미래세대의 몫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토목과 건축만이 성장의 유일한 원동력이 아니라 자연과 환경, 그리고 문화유산이 새로운 국부의 원천임을 알자는 믿음입니다.

 

 

자연환경국민신탁 관계자들이 제막식 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죽산재를 둘러보고 있습니다. 

기념사진 뺄 수 없지요.

 

둘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서민호 선생의 증손자 서 아무개 씨는 재벌도, 정치인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런 그가 제각과 땅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름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대로 된 나눔의 미학이 녹아난 듯해 흐뭇합니다.

 

 

왜냐하면 권력을 이용해 부정하게 긁어모은 재산. 비자금 조성, 주가 조작, 편법적인 재산 증여, 일감 몰아주기 등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축재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에 동원된 재단 등에 기부하는 생색내기에 익숙한 터라 더욱 그러합니다.

 

 

서씨 제각은 서민호 선생이 “1930년대 4만 원을 들여 지었다”고 합니다. “당시 쌀 1가마니 값이 5원이었다"고 하니, "지금 돈으로 환산해 보면 200여억 원이 투자된 건물"입니다.

 

서 아무개씨는 기증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구휼과 기부에 힘썼던 증조할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기려 지역에 돌려준 것이다. 앞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어 지역 문화 관광 발전에 기여하면 좋겠다.“

 

 

 자연과 문화유산을 미래세대에게 전하려는 아름다운 전도사들입니다.

 죽산재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셋째, 잊고 지냈던 문화 재건운동입니다.

 

하마터면 죽산재에 있던 소중한 그림들이 사라질 뻔했습니다.

다행이도 스토리텔링 전문가이자 문학박사인 전주대학교 학술연구교수 김미경 씨의 눈에 띠어 연구 자료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김미경 교수는 “귀면 등 근대 건축문화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가치 높은 민속자료”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죽산재의 숨어 있는 많고 다양한 그림들에 주목합니다.

 

 

“죽산재 전체가 그림을 통해 스토리텔링이 실현된 수준 높은 공간이다. 특히 ‘죽림칠현’과 다로에 불을 지펴 차를 끊이는 그림, 세상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고고한 선비 정신을 나타내는 ‘매화도’, 아낙네가 아이와 함께 걸어오는 모습의 ‘풍경화’ 등이 주목되며, 스토리텔링 연구 가치로 충분하다.”

 

 

 죽림칠현입니다.

 서민호 선생에 대해 설명하는 고흥타임스 관계자.

죽산재에 매화 그림 등 다양한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세대가 미래세대를 해야 할 일은 소중한 유산을 아름답게 지키고 가꾸어 온전히 물려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은 쉽습니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실천은 어렵고 미래세대의 행복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립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인류사회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다음 세대의 생존과 행복을 배려해야 할 윤리적 책무가 있습니다.
 

 

죽산재의 가치와 스토리텔링 등에 대해 강의하는 김미경 교수.

 죽산재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더해 미래세대에게 좋은 가치를 물려줄 것입니다.

 

 


‘귀를 기울이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모인다!’

 

고흥 죽산재를 둘러보니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알겠더군요.

기의 흐름이 차단된 것 같았습니다.

 

자연의 모든 생물은 본디 기(氣)의 집합체입니다.

그런데 죽산재에선 기의 움직임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사방 어디에서 기의 흐름을 차단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선지, 죽산재는 삶에서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벗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극락정토 같았습니다.

 

편안한 마음이니 어려운 이웃에게, 미래세대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묻어난 게지요.

 

등신불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죽산재를 벽돌 틈으로 엿보았습니다. 

 뒤에서 본 죽산재.

자연환경국민신탁과 고흥 타임스 관계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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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23

 

 “도리어 큰소리치며 자본주의 운운하더구나.”

그곳에는 경제만 있고 정신은 없었느니라!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법당이야 스승님 계실 때부터 있어 온 것이니 손 댈 것도 없었고 가끔 마을 사람들이나 지나는 행객들이 찾는 곳이니 그대로 보존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음날 비상도는 그 일을 구체화시킬 구상을 하며 산 정상에 올랐다. 밤새 내린 눈 위로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누군가는 눈을 반기지만 또 누군가에겐 혹독한 시련인 게야.”

 

 

 그가 집으로 내려왔을 때 용화가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스승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비상도 보아라. 그동안 무탈하였느냐? 남재 소식은 듣지 못하였느냐? 나는 내가 찾고자 하는 사람을 어렵사리 찾기는 하였으나 그자는 이미 죽고 그의 아들을 만나 그의 아버지가 내 가족에게 끼친 해악과 조국에 저지른 죄상에 대해 사과의 말이라도 듣고자 하였으나 그는 도리어 큰소리치며 자본주의 운운하더구나.

 

 

 나를 푼돈이나 얻으러 온 인사쯤으로 여기니 내내 불쾌하여 몇 날을 생각하다 처음으로 찾은 내 조국이 싫어져 다시 중국으로 들어오고 말았느니라. 재벌의 입에서 나옴직한 말이긴 하다만 그래도 한 때 나라의 차관을 지냈다는 자가 그 모양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 그곳에는 경제만 있고 정신은 없었느니라.


              ―중략―

 

 너는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마라. 언젠가 쓰일 곳이 있을 것이니라. 언제든 남재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하면 한 걸음에 달려가마.』

 

 

 오랜만에 스승님의 글을 대하니 반갑기는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마음 깊숙이 체증이 실린 것 같아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몇 차례 시내에 나가 더러는 힘으로 또는 술로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삭이려 했지만 또 다른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 서서히 끓어올랐다.

 

 

 그것은 나라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야만 했던 독립투사의 후예가 이 나라를 향해 내뱉는 한 맺힌 절규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스승님은 편지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하기야 동토의 땅에 파묻혀 떨고 있을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여태 못 거두어들인 마당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비상도는 이 대목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과연 이 같은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을 사람이 이 땅에 몇이나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이라면…….”

 

 

 그는 조금 전 집 짓는 일을 구상했던 자신을 질책하며 힘차게 손을 뻗어 소나무를 내리쳤다.

 

 

  “뚜두둑!”

 

 

 나무둥치가 부러지며 쌓인 눈이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습성이 그러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밥상 차려놓으니 파리 떼가 달라 들었다. 해방이 되자 일제에 빌붙어 그들의 주구노릇을 해대던 인간들이 염치없이 애국자로 둔갑하였고 권력의 편에 기생하며 이득을 챙기고 요직을 두루 장악하였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대우했다가는 자신들의 친일행적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여 입에 거품을 물고 반민특위를 반대했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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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10

 

 

 친일형사가 독립투사 가족에게 가한 모진 고문
 반성하는 자가 없는 비양심에 대한 분노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김홍신의 <인간시장>을 이은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맨발을 드러내 놓고 시장바닥에서 피리를 불고 있던 날씨가 흐린 어느 봄날이었을 거야. 그때 지렁이 한 마리가 내 발을 타고 기어올랐고 그때 난 감촉을 느끼며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 뒤로 내가 맡은 바람결에 스승님과 동생 냄새가 희미하게 실려 왔었지. 그래서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형을 만날 수 있게 돼서 정말 고마워. 사부님께서 떠나실 때 형을 찾으라는 말을 남기셨어.”

 

  “내가 죽지 못하고 살 수 있었던 건 어느 마음씨 고운 아가씨의 한 마디 말 때문이었지. ‘힘들지만 용기를 내세요!’ 제과점 빵을 사서 내 손에 쥐어주고 간 그 아가씨의 말이 지금도 난 잊히지 않아.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의 가르침보다도 내 마음을 울린 건 ‘힘내세요!’라는 그 짧은 말 한 마디였어.”

 

 

 이상하게 대화가 겉돌고 있었다.


 말을 마친 형은 피곤한 모습으로 자신의 낡은 가방 속을 뒤져 종이뭉치 하나를 꺼냈다.

 

 

  “동생, 이 속에는 스님께서 찾아가신 그 사람의 이름자가 적혀 있을 거야.”

 

 

 비상도는 가방 속에서 얼른 종이를 꺼냈다. 「조운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형은 언젠가 스님 방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그것을 보게 되었고 그의 죄상에 대해 기록해 둔 것을 혹시 모를 뒷날을 위해 스님 몰래 필사를 해두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조부가 스님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독립 운동가였던 점과 무관하지 않았다.

 

 

 조운태는 일제 강점기 고등계 친일형사로 독립투사였던 스님의 부친을 검거하기 위해 당신의 자당이셨던 이 씨를 잡아가 욕 뵈었으며 온가족을 핍박하여 행방을 알아냈다.

 

 

 그 일로 인해 스님의 어머님께서는 자결을 하셨고 그 소식을 들은 당신의 선친께서 제 발로 주재소를 찾아들었다. 조운태는 그에게 모진 고문을 가했다. 손발톱을 다 뽑고 성기에 심지를 말아 넣는 등의 지독한 고문을 자행한 끝에 결국 그를 옥사시켰다.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었다. 희비가 분명하게 갈렸다. 이제는 친일파들을 단죄하리라 모두들 잔뜩 기대를 하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흐지부지 되기 시작했다.

 

 

 권력을 꿰어 찬 사람이 다름 아닌 친일인사였던 것이다. 그들은 눈치 빠르게 애국자의 탈을 갈아 썼다. 반민특위가 순조롭게 진행 될 리가 없었다.

 

 

 조운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국자로 둔갑한 그는 경찰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재산을 불렸다. 그의 외아들인 조천수는 아비의 후광으로 차관까지 지냈고 독립 유공자의 후손들이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 때에도 그는 부를 대물림 받으며 권력과 부를 누렸다.

 

 

 스님은 조운태가 죽고 없는 지금 어떻게든 그의 아들인 조천수를 만나 부친의 일을 사과 받고 싶었다.
 
 그것은 이름 석 자 남기지 못하고 이름 모를 산하에서 숨져간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한이기도 했지만 멀리 이역만리 만주벌판에서 오로지 조국의 광복을 위해 가족까지 내팽개치며 혼을 불태운 그들의 후손들이 해방 된지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도 자신들을 홀대하고 있는 조국에 대한 반항이요 외침이었으며 누구 한 사람 자신의 지난 허물에 대해 반성하는 자가 없는 비양심에 대한 분노였다.(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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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6

 

 

“내일부터 비상권법을 배워라.”
최고는 한 사람으로 족해, 두 사람이면 다퉈

 

 


 스님의 부친은 독립 운동가로 상해임시정부의 요원이었으며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이후 한껏 기세가 올라 있던 임정의 노력으로 중국 왕가는 비상권법을 특별히 조선인인 그에게 전수 받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다. 다만 그의 본명 대신 ‘호야’라는 중국식 이름을 갖게 한 것은 그들만의 자존심이었다.

 

 

 뒷날 공산당이 들어서고 비상권의 대가들은 위험인물로 낙인 찍혀 뿔뿔이 흩어지고 대부분 정부의 인권유린에 항거하다 처형을 당했거나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해 그 무예는 세상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스님 또한 정치범으로 또 한 때는 단순한 난동주모자로 잡혀 여러 차례 고문을 당한 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하는 수 없이 밀항선을 탔다. 하지만 스님께서 모국인 대한민국을 택한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터를 잡은 곳이 이곳 가야산이었다. 비교적 남의 이목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었고 심신을 가꾸기에도 더 할 나위 없는 적당한 장소였다. 그러던 중 남재를 만났고 동해까지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는 남재 형이 손자병법을 읽고 있을 때였다. 스님께서 지나가시며 슬쩍 말을 흘렸다.

 

 

  “그것은 동해에게 주고 너는 시경(詩經)을 읽어라.”

 

 

 지금 생각 해 보면 각자의 자질과 취미에 맞춘 교육방식으로 학문보다는 뜀박질에 더 관심이 많았던 동해에게는 무예를 염두에 두고 계셨던 것이 분명했다.

 

 

  “최고는 한 사람으로 족하니 두 사람이 되면 다투게 되느니라.”

 

 

 스님의 그 말씀으로도 그것을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처음 형의 병실을 다녀오던 날 밤 스님은 동해를 불렀다.

 

 

  “내일부터 비상권법을 배워라.”
  “예.”

 

 

 오래 전부터 바라던 일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혹독 하느니라.”
  “견뎌내겠습니다.”

 

  “외롭느니라.”
  “하겠습니다.”

 

  “이십년이 걸릴 수도 있음이야.”
  “삼십년이 걸려도 좋습니다.”

 

 

 수련은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주로 폭포수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하루에도 몇 차례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꼭대기를 오르내렸고 어깨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통나무를 매고 절벽을 기어올랐다.

 

 

  “새가 날개 짓을 하지 못하면 날 수가 없느니라.”

 

 

 사시사철 눈과 비를 개의치 않았으며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땡볕에 껍질이 벗겨지고 혹한에 살갗이 터졌다. 발에 굳은살이 박이기를 수백수천을 거듭하였다. 

 

 

 점차 그의 눈은 매의 날카로움을 닮아갔다. 날렵하기로는 표범의 순발력을 갖추었고 부드러움은 물고기의 움직임을 닮아 있었다. 서 있는 나무 위를 단숨에 예닐곱 걸음 뛰어 올랐으며 웬만한 높이의 나뭇가지 위로 소리 없이 도약해 앉았다.

 

 

 서너 해가 지났을 땐 뛰고 나는 행동 하나에도 발자국 소리는커녕 옷깃 스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올빼미가 소리 없이 날아와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스님은 폭포수 아래의 작은 연못으로 동해를 데리고 갔다. 맑은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녔다.

 

 

 연못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선 채로 한동안 물속을 응시하던 스님은 갑자기 물속에 손을 찔러 넣었다. 잠시 뒤 손을 빼내었을 땐 두 손가락 사이에 낀 물고기가 파닥거리고 있었다.

 

 

  “네 자신이 물고기가 되지 않으면 어려우니라.”

 

 

 상대방의 마음속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잊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수련방법이었다. 몇 개월이 걸려 그것을 완성했을 때 스님은 흙탕물 속에서 물고기를 잡아채도록 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기관을 이용해야 하는 최고난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마치 눈이 퇴화된 동굴 박쥐가 주파수를 이용해 장애물을 피하며 먹이를 채 가는 방법과 흡사했다.(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판 의뢰 및 드라마,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 환영합니다.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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