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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귀농은 금물, 귀농은 단계를 거쳐야
할 일 없으면 농사짓는다? 이런 사람 안돼
[인터뷰] 창원, ‘좋은 예감’ 강창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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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단감을 들어보이는 강창국 대표.

“귀농, 참 힘들다.”

주위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살던 터전을 버리고 새롭게 둥지를 튼다는 게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귀농을 꿈꾸는 늘고 있다. 하지만 수입원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귀농은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성공적인 귀농이 가능할까?

지난 6일, 귀농 후 경남 창원시 대산면에서 다감농장을 운영하며 영농조합법인 ‘좋은 예감’ 대표를 맡고 있는 강창국(50) 씨를 만났다.

강 대표는 연소득 3백만 원이 전부인 귀농 길에 올라 연소득 2억여 원에 달하는 부농이 됐다. 다음은 강창국 대표와 인터뷰다.


감에 대해 설명하는 강창국 대표.

귀농, 할 일 없으면 농사짓는다? 이런 사람은 안 돼

- 자신에게 땅이란 어떤 의미인가?
“땅은 내가 살아 있을 때 빌려 쓰고 가는 공간이다. 내가 땅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건 농사짓기 편하기 위함이지만 빌려 쓰는 것이다. 지금은 2만여 평을 빌려 쓰고 있다.”

- 귀농 할 때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디에 거주할 것인가? 작목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등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자신이 선택한 품목이 그 지역 기후와 기온에 맞는지, 지역 특산물이나 연계 농산물, 각종 단체 등에 대한 정보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귀농한 사람을 만나 교육 받고, 실제 체험과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중요하다. 또 귀농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고, 정부가 귀농자에게 주는 보조금 5백만 원까지 지원받으면 좋다. 귀농은 연령, 조건, 능력 등에 따라 그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귀농 후 1~2년은 벌이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 귀농한다면 찬성인가, 반대인가?
“형편이나 입장에 따라 다르다. 직접 만나보고 ‘가능하다’, ‘아니다’로 판단해야 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농촌에 대한 애착심이 있는 사람은 찬성이다. 왜냐면 농사는 혼자서 일하기에 외롭다. 할 일 없으면 농사짓는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안 된다. 농사는 엔터테인먼트가 돼야 견딜 수 있다.”

- 귀농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건 무엇인가?
“먹고 살기 위한 귀농과 노후를 위한 귀농은 차이가 있다. 연금 등으로 생활비 50% 이상을 대처하고, 나머지는 농사에서 댈 생각이면 행복한 귀농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입을 농사에 의지한다면 쉽지 않다. 젊은 층의 귀농은 교육을, 노인층은 의료와 문화 등도 신경 써야 한다.”


다감농원 작업장.

4천5백만 원 들고 귀농, 연 소득 2억여 원 달해

 - 본인이 귀농한 이유는 무엇인가?
“15년 전 1995년에 귀농했다. 당시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집에 할머니, 어머니, 앞 못 보는 누나만 남아 어른을 모시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이 아내 반대도 없었다.”

-  귀농 전 농사에 대해 알고 있었는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서울로 공부유학을 했기에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귀농 전, 청주에 있는 부동산 토지평가사무소에서 일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지만 아무 것도 몰랐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다.” 

 - 얼마를 가지고 귀농했고, 현재 연 소득은 어느 정도인가?
“4천5백만 원을 들고 귀농했다. 귀농 후 처음에는 연 소득이 300여만 원에 불과했다. 2003년에 백화점에 감을 납품하면서 수입이 늘었다. 지금은 단감, 수박, 메론 까지 백화점에 납품하면서 단감 와인, 차 등을 만들고 인터넷 거래, 체험장도 운영한다. 매출은 총 5억여 원에 소득은 1억8천만 원이다. 빚은 3천만 원 있다.”

- 대개 백화점 납품 후 반품으로 골치인데 이런 적은 없었는가?
“단감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메론은 몇 번 반품 당했다. 반품을 없애기 위해 납품 과정을 분업화, 전문화했다. 이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했다.”

- 귀농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모두가 힘들었던 기억이다. 아버지께서 남긴 땅 1,080평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힘들어 두 손 들고 서울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 뒤 마음을 다잡고 기술을 배워야 했는데 배울 곳조차 없었다. 그 때 단감연구소가 생겼다. 여기서 배우고, 연구하고 기술개발 등을 했다. 또 자연재해로 농작물 손실을 입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 지금은 농업 기술 배우는 여건이 어떤가?
“농사는 1~2년 지나면 웬만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3년 정도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여기저기 대학과 농업기술센터 등에서도 배울 기회도 있고,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


다감농원은 현대백화점에 5~6개에 1만원하는 명품감을 납품하고 있었다.

막연한 귀농은 금물, 귀농은 단계를 거쳐야

- 농사짓는 어른들 보면 골병으로 고생이다.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는가?
“나도 골병 들었다. 내 경우 운동을 했는데도 한쪽 다리를 거의 못 쓴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고, 편안하게 쉰 날은 생각하건대 하루도 없다. 매일 일에 매달린다.”

- 도시생활과 시골 생활의 차이는?
“도시는 남에게 관여 안하고 산다. 농촌은 옆 집 수저가 몇 개인지 까지 안다. 이게 불편하다. 이는 계나 품앗이 등이 좋지 않게 발전한 측면이다. 이걸 좋게 성공적으로 적용한 게 영농조합이다. 왜냐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일하기 때문이다.”

- 일상생활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나는 고향이라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힘들었다. 시골에서 귀농자를 모임에 끼워주지 않기도 한다. 이로 인해 귀농자 70~80% 정도가 도시로 돌아간다고 한다. 돈 못 버는 것보다 이런 게 견디기 힘들다. 달리 생각하면 농촌은 보수적이라 그런 것 같다. 농촌은 따뜻하다지만 외롭고, 도시는 삭막하다지만 외롭지 않은 아이러니가 있다.”

- 텃세로 이해되는데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시골이 폐쇄적이라 그런 것 같다. 외부에서 온 사람은 비교적 똑똑해 마을에서 주도권을 행사할까봐 경계하는 경향이다. 귀농자들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 귀농자에게 힘이 되는 조언을 한다면?
“지속적인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일에 임해야 한다. ‘어떻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된다’란 믿음이 중요하다. 또한 가장 이상적인 귀농은 여자가 농사짓고, 남자는 나가서 버는 게 좋다. 귀농에서 성공하려면 여자가 적극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막연한 귀농은 금물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천’과 농사를 짓기 위한 ‘귀농’은 구분된다. 귀농은 단계를 거쳐야 하고, 최소 자기 살 집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야 한다. 또 농촌을 즐길 수 있고, 도시와 접목하는 능력이 있으면 더욱 좋다.”

- 아내에게 한마디?
“항상 고생하고 힘들어도, 남편을 믿고 따라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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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hipbest.tistory.com BlogIcon @파란연필@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농도 정말 철저한 계획속에 뿌리를 내려야만 성공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보구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0.11.11 09:00 신고
  2. Favicon of https://bada92.tistory.com BlogIcon 무릉도원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농을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군요...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정착하기 정말 힙들다고 하더군요...
    잘 보고 갑니다...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10.11.11 09:21 신고

바다 일을 찾아온 텃새화 된 ‘철새’

절망에서 희망과 행복 찾은 김태수 씨
[꽃섬, 하화도 5] 텃새와 철새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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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뱃일로 적은 돈벌이로 사람이 떠나가는 섬. 그런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섬이라고 빗겨갈 순 없다. 오랫동안 섬에서 둥지를 틀었던 텃새들도 떠나는 판이다. 이런 마당에 ‘철새’가 날아들어 둥지를 틀다니….

그 현장은 전남 여수시 화정면 ‘아래 꽃섬’ 하화도(下花島). 한 때 40여 가구 100여명의 텃새가 살았다. 지금은 24가구 30여명의 텃새만 남았다. 남은 텃새들의 정착 기간은 60년 이상. 노쇠한 텃새들만 둥지를 떠나지 못하고 남은 걸까?

철새화한 텃새 2세들은 어미 텃새의 둥지를 간혹 살핀다. 텃새 3세의 울음소리가 끊긴지는 20년이 넘었다. 이로 인해 둥지는 적막과 고요 속에 묻혀 있다. 간혹 외로운 어미 텃새의 흐느낌만이 정적을 깨트릴 뿐.

이런 하화도에 철새가 날아든 것이다. 막무가내로 들어온 철새는 아니다. 텃새가 물어온 철새다. 이 철새들은 왜 섬으로 날아들었을까? 그 이유를 짚어보자. 첫 번째로 <바다 일을 찾아 날아든 텃새화 된 ‘철새’>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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껓섬을 찾아 들어온 김태수 씨.

# 1. 바다 일을 찾아온 텃새화 된 ‘철새’

김태수(72) 씨. 그가 둥지를 튼 건 2005년. 내리막길을 걷던 사업을 정리하고 빚 1억7천만 원을 청산한 게 계기였다. 마땅한 일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하화도의 텃새가 바다 일을 권했다.

마침 자녀 결혼 비용 마련에 애태우던 어부에게 빌려줬던 15,00만원을 현물인 배로 대신 받았다. 통발 허가가 난 배여서 바다 일을 할 수 있었다. 바다 일을 권했던 텃새의 알선으로 둥지까지 마련했다.

텃새의 권유가 없었다면 바닷가 ‘텃세’로 인해 어장 일을 못할 수도 있었다. 가족을 육지에 남겨둔 채 혼자 일거리를 찾아 들어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을 만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배는 혼자 움직일 수 없었다. 2인 1조로 일할 사람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비용을 주고 사람을 고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때마침 일손을 찾는 텃새가 있었다. 행운이었다. 그와 동업에 나섰다. <힘든 고기잡이 보다 더 힘든 건 ‘기름 값’ 기사 참조 http://blog.daum.net/limhyunc/1112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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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런히 손을 놀리는 김태수 씨.

절망에서 희망과 행복 찾은 김태수 씨

이렇게 철새는 “나이 들어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 살 수 있는” 안정적인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육지에서 노인당을 나가더라도 가욋돈이 필요한데 섬에서는 공기 좋지, 환경 좋지, 움직여 건강 좋지, 돈 쓸 곳 없지 일석사조(一夕四鳥)의 효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철새 김태수 씨의 섬 예찬론이다. 육지생활에서 찌들고 지쳐 절망했던 그는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섬에서 찾게 되었다. 덤으로 “살아 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여유까지 누리고 있다. 그리고 삶의 철학도 생겼다.

“과거에 잘사는 것은 다 필요 없다. 현재에 잘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김태수 씨는 이것을 알기 위해 그토록 먼 길을 돌아, 결국 ‘아래 꽃섬’에 날아들어 둥지를 튼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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