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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친구가 문 밖에서 기다린단 말에요.”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아빠, 밥 그만 먹고 학교 갈게요.”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공부가 잘돼. 다 먹고 가라.”

밥 먹다 말고 학교 간다는 딸아이를 돌려세웠습니다. 그렇잖아도 키가 작아 걱정인데, 아침을 대충 먹고 간다니 말이 될 법한 소립니까.

“아빠, 친구가 문 밖에서 기다린단 말에요.”
“뭐, 밖에 친구가 기다린다고?”

“예.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요.”
“그럼, 그만 먹고 학교 가라.”

인기척도 없었는데 며칠 간 기다렸나 봅니다. 요즘 세상에도 문밖에서 친구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이 가는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재잘거리며 신나게 가더군요. 저희 학교 다닐 때가 떠오르더군요.

그때에는 담 너머로 “○○야, 빨리 나와. 학교 늦겠다.”고 소릴 지르곤 했었지요.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함께 모여 줄 맞춰 학교에 갔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다보니 이런 개념이 사라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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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그렇게 좋은지 만나자마자 재잘거리며 학교에 갑니다.

“언제 나올 줄 모르는 친구 기다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저녁,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밖에서 마냥 기다리는 친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네 친구는 학교에서 만날 텐데 집에까지 와서 왜 기다린다니?”
“제가 인기가 많잖아요. 제가 좋은가 봐요.”

인기가 많다니 싫진 않더군요. 하지만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했습니다.

“내일부터 친구가 기다리면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해라. 너도 친구 집에 가서 기다린 적 있어?”
“예. 딱 한 번. 언제 나올 줄 모르는 친구 기다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딸 친구의 부모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간 자녀가 학교는 안가고 다른 집에 가서 친구 기다리는 줄 꿈에도 생각 못할 것입니다. 역지사지 아니겠어요. 딸아이에게 뭔가 교훈을 줘야 했습니다.

“친구가 집에 와서 기다리면 미안한 생각 안 들어?”
“들죠. 학교에서 만나자고 해도 자기가 좋아서 그러는 걸 전들 어떡해요.”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 학교 같이 가기로 약속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빨리 일어날 마음은 없어?”
“있어요. 그런데 빨리 일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일찍 일어나려면 밤에 빨리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오는 걸 어떡해요. 내일부턴 빨리 일어날게요.”

다짐을 순순히 받았습니다. 약속대로 빨리 일어나는지 지켜 볼 일입니다. 그래도 아이에게 “학교 가자” 기다리던 친구의 추억이 생기는 것 같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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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hinkdenny.tistory.com BlogIcon 신비한 데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기많은 따님...
    부럽습니다 ㅎㅎ

    2010.07.09 04:07 신고

“불효자는 웁니다!”, 울기 전에…
[아버지의 자화상 2] 부모님 모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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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묵묵히 자식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말에도 직장에 나가야 하는 내게 아이들은 ‘아빠는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고, 또 일 나가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다고 철없는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단다’ 하고 설명할 수도 없고…. 이럴 때 아버지가 내 자리를 대신했다.”

양기원 씨는 일로 바쁜 자신의 빈자리를 그의 아버지가 대신했다 합니다. 묵묵히 자기를 지켜주셨던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또 묵묵히 손자를 지켜주셨다 합니다.

양 씨는 줄곧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아빠가 뭐라 나무라기 전에 할아버지께서 먼저 아이들에게 ‘예의’를 가르치시니 좋았다.”며 “덕분에 자신도 ‘욱’하는 성질이 고쳐졌다” 합니다.

이렇듯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교육일 것입니다. 지혜보다 더 나은 교육은 없을 것입니다. 삶의 지혜는 쉽게 얻지 못하니까요. ‘지식보다 지혜’가 우선이란 걸 알면서도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는 핑계로 배울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우매한 일이겠지요.

“다시 키운다면 정말 잘 키우겠는데….”

언젠가 들었던 아버지의 넋두리입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너희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도 모르게 세월이 훌쩍 가버렸구나. 그 시절이 돌아오지 않겠지만 다시 너희들을 키운다면 정말 잘 키우겠는데…. 너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제가 당신의 뜻대로 자라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아님, 알콩달콩 사는 정을 느끼지 못해 아쉽다는 뜻일까요? “너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신의 넋두리가 못내 가슴에 걸립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모시기란, 아니 부모님과 함께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어려움에 대해 부모님과 함께 살아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맞습니다. 막내이기 이전에 자식인 저도 아직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는데 그 속을 어찌 알겠습니까? 부자지간이 같이 앉아 있어도 구박(?)이 심한데 그 속을 어찌 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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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 간은 구도자의 길일까요?

“짐이 되고 싶지 않구나”…짐이라니요.

핑계 하나 대야겠습니다. 부모님과 저의 따로따로 동거의 명분은 이렇습니다.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벌써 짐이 되고 싶지 않구나. 우리 두 부부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살다가 혼자되면 그때 같이 살란다.”

짐이라니요…. 어찌 보면 부모 자식 간의 현명 합의요, 결정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명하지 못한 처사요, 결정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상생인 것 같으나, 상생이 아니라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제일 먼저 느낄 때는 ‘돌아가신 후’라 하더군요. 과연 그럴까요? 이도 살아봐야 알겠지요. 이 대목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자기가 경험해서 느낄 때는 이미 늦다. 경험하기 전에 한 발짝 앞서 느껴야 한다.”

“불효자는 웁니다!”, 울기 전에…

이제야 아버지의 가르침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설까, 아버지가 참으로 그립습니다. 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다하지 못한 효도를 후회하는 마음과 비슷할 것입니다. 이런 노래가 있었죠?

“불효자는 웁니다!”

자식 된 도리? 세월 지나면 알겠지요.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의해 큰 아이들은 뭔가 다른 것이. 때론 불편했더라도, 그것은 훗날 때론 의지가 되고, 때론 큰 힘이 될 것임을….

잠시라도 부모를 모시지 않은 자식은 늦은 후회로 가슴에 응어리진다 하니 응어리를 만들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음만 가지고는 안되겠지요? 차근차근, 하나하나 준비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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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그랬듯 자식도 어깨에 짊어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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