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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을 전어래! '꿀맛이 따로 없네'

 

 

 

 5월에 먹는 전어. 야외에서 즉석에서 만든 젓가락으로 굽습니다.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전어? 맛에 관한 한 두 말이 필요 없지요.

오죽했으면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가 시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전어 드실랑 겨?”

 

 

지인 아내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먹고는 싶은데, 다소 생소했습니다.

가을 전어 맛에 익숙한 탓입니다. 5월에 먹는 전어라니 주저되더군요. 근데, 옆에 있던 지인들이 반기며 말했습니다.

 

 

“전어? 전어가 있단 말이지. 빨리 가져 와.”

 

 

살이 오른 전어. 

 

 

5월에 보는 전어는 크기가 작을 거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본 전어는 크기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토실토실 살이 오른 것을 보니 구미가 확 당겼습니다.

 

불판이 준비되자 몇 여인이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엉덩이를 깔고 앉아 전어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전어 굽는 자세 나옵니다.

 

 

“이게 무슨 냄새여.”

 

 

흩어졌던 사람들이 전어 굽는 장소로 몰렸습니다. 냄새에 장사 없었습니다.

 

 

 냄새가 모락모락 퍼집니다.

씨알이 크더군요.

 본격적으로 먹을 채비 중입니다.

 

 

 

 

“어찌 알고 왔데? 개 코네 개 코.”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온다잖아.”

 

 

남정네들은 막걸리를 준비하고 자리를 펼쳐 구운 전어가 오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구워진 전어는 엉덩이를 까고 앉아 굽던 여자들 차지였습니다. 남자들이 퉁명스레 말을 날렸습니다.

 

 

“전어를 굽긴 굽는 것 같은데, 왜 여기로 한 마리도 안 올까?”
“굽는 사람이 먼저 먹어 보고 줘야지. 아~ 맛있다!”

 

 

 웃음이 피어납니다.

 어디 한번 먹어 볼까...

 

 

침을 꼴딱꼴딱 넘기던 남자들, 드디어 전어가 오자 젓가락질을 마구 해댔습니다.

 

 

“이 사람들 전어 먹을 줄 모르네.”

 

 

지인이 전어 머리를 잡고 뜯었습니다.

그리고 내장 쪽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습니다. 어떤 이는 꼬리를 잡고 몸통을 떼어 내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전어 맛은?

 

 

 드뎌 전어가 나왔습니다.

 요거까지 다 먹어야 하는데...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어, 맛이 살아 있네~~”

 

 

누가 가을 전어라 했던가. 5월에 먹는 전어도 꿀맛이었습니다. 전어, 없어서 못 먹지요~^^.

 

5월 전어도 끝내 줍니다. 

전어, 함 드시랑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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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빠른 네가 있어 음식 만드는 게 빨리 끝났다?
명절 음식에는 여성의 관계 문화가 담겨 있다!

 

 

 

 

 

 

 

설 명절 잘 보내셨어요?

집에서 자연스레 웃음꽃이 피어나는 촉매제는 아무래도 ‘어린 아이’인 것 같습니다. 이 녀석들 덕분에 썰렁한 부모님 집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희망’이라 하나 봅니다.

 

 

“너도 이제 할아버지네.”

 

 

며느리와 사위를 본 누나는 혼자 할머니가 되지 않겠다는 듯 말을 건넸습니다. 오십도 안 돼, 족보상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째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입니다. 그래도 증조할아버지로 불리는 제 아버지보다는 낫겠죠.

 

 

“화연이 증조할아버지께 세배해라.”
“화연이 세배하는 거 배웠잖아. 어서 해 봐.”

 

 

가족들이 “증조할아버지ㆍ할머니께 절 잘하는지 어디 보자”하며 지켜보고 있으니 쑥스러워 설까, 화연(4)는 세배를 할 듯 말 듯 머뭇거렸습니다. 이럴 땐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학생들, 너희들이 먼저 세배해라.”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려고 서자, 화연이가 화들짝 놀라더니 먼저 덥석 세배를 합니다. 이렇게도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화연이가 먼저 절을 하고 있습니다.

 

 

 

“여보, 난 맏며느리와 작은 며느리의 차이를 몰랐어요.”

 

 

부모님께 세배 드린 후, 처갓집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혼자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습니다. 관심이 쏠렸습니다. 맏며느리와 작은 며느리의 차이는 무얼까? 첫째와 둘째쯤으로 여겨왔는데,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일까. 남편 입장에서 행여나 하고 바짝 긴장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서울 사는 큰 며느리가 오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 어머니의 작은 며느리와 누나의 며느리인 조카며느리가 설 음식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싶었습니다. 음식 만드는 풍경에 대해 통 가타부타 말이 없었는데, 남자들이 모르는 그 은밀한(?) 이야기를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어머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손이 빠른 네가 있어 음식 만드는 게 빨리 끝났다고.”

 

 

둘째 며느리, 시어머니께 칭찬받아 기분 좋았나 봅니다. 그렇더라도 본론이 벌써 나왔을 법한데, 쉬 나오질 않았습니다. 아내가 들이는 뜸이 궁금증을 몰고 왔습니다. 버럭 한소리 했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습니다.

 

 

 

 

 

 

“맏며느리는 음식 할 때 어머니 옆에서 꼭 ‘어머니 이제 뭐 넣을까요? 뭐 할까요?’라고 하나하나 꼬치꼬치 물어가며 요리하는데, 저는 제가 알아서 팍팍 하잖아요.”

 

‘그게 어떻다는 건데’란 뜨악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해석을 붙였습니다. 아내가 전하는 시어머니가 느끼는 맏며느리와 작은 며느리의 차이는 이러했습니다.

 

 

“맏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의견을 구하며 일하는데, 작은 며느리는 시어머니 의견을 묻기보다 창의적으로 일하는 스타일로 느끼시나 봐요.”

 

 

골자는 큰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의향을 물어보며 일하니까 시간이 걸리는데, 작은 며느리는 알아서 하니 음식 만드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거였습니다. 아내의 말에서 느낀 게 있습니다. 부엌에도 남자들이 모르는 질서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아내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여인들에게 미안했습니다. 명절 음식에는 정성과 사랑 이외에도 여성들 간의 <관계 문화>가 담겨 있다는 걸 모르고 그저 의미 없이 요리들을 먹어왔기 때문입니다.

 

명절 음식 만드느라 수고하신 이 땅의 모든 여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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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이라고 각시가 식구들과 저녁 먹자는데?”

 

 

 

 

 

어제 저녁에 회의가 있는 줄 알았더니 착각이었습니다. 오늘인 걸 혼돈한 것입니다.

 

마침 다른 약속을 잡지 않은 터라 아내에게 문자로 데이트를 신청했습니다.

 

 

“영화 볼까?”

 

 

그랬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무척 유쾌한 답장이 왔습니다.

 

 

“어머니랑 삼계탕 사드려야지요. 말복인데”

 

 

부부로 살다보면 부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는데, 아내의 문자를 보니 기분 좋더군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 <넝쿨째 들어온 당신>에서 각광받는 국민 남편처럼 아내는 국민 며느리가 아닐까?’라는 푼수 같은 생각.

 

그래선지 제 답장도 아주 좋게 나갔습니다.

 

“당신은 착한 며느리네. 그러세나.”
“당신이 대신 전화 좀 넣어주세요. 난 얘들 챙길게요.”

 

 

아내에게 핸드폰을 넣었습니다.

저녁 식사 범위를 부모님과 이모님 부부, 누님 부부와 저희 가족으로 잡았습니다.

더불어 장소와 시간을 어느 정도 조율한 후 누나에게 전활 걸었습니다.

 

 

“말복이라고 각시가 식구들과 저녁 먹자는데? 누나.”

 

 

흔쾌히 OK 사인이 나왔습니다.

부모님과 이모님께는 누나가 전화를 걸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아내는 말복하면 떠오르는 삼계탕 대신, 어른들이 즐겨 드시는 서대회와 전어구이를 시켰더군요. 어른들도 좋다더군요.

 

맛있게 저녁식사를 먹은 다음, 부모님을 보낸 뒤, 아내의 말에 더욱 흐뭇했습니다.

 

 

“어머님께 용돈 드렸어요.”

 

 

남편 입장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횡재였습니다.

가만있을 수 있나요. ‘예쁜 짓’으로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예쁘게 보이는 아내에게 보답 차원에서 영화보길 제안했습니다. 아내 반응이 재밌었습니다.

 

 

“당신이 웬일? 좋아요.”

 

 

남편 입장에선 부모님과 시누에게 잘하는 아내를 보면 업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무심코 보낸 남편의 데이트 신청에 현명한(?) 반응을 보인 여우같은 마누라가 예쁘게 보이는 건 당연지사.

 

사위로써 처가에 못하는 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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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멋지다” VS “용돈 주고 말지”
제 생각, 며느리 보다 아내가 우선

 

 

머리 하얀 분이 목사님입니다.

 

지인들과 마주했습니다. 이야기 중, 목사님이 그러시데요.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 생일 때 내가 직접 생일상을 차려 줄 생각이다. 이걸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반응이 두 가지더라고.”

어쭈구리~. 귀가 번쩍이데요.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위해 나서기가 쉽지 않은 현실 아닙니까?
이런 걸 실천하려는 목사님, 진정 환영입니다.

예비 시아버지가 며느리 생일상 차려주는 것에 대한 주위 반응이 궁금하대요.

“어떤 사람은 ‘와 대단하다, 목사님 멋지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며느리 편하게 용돈 주고 말지 하더라고.”

<멋지다>는 분들은 며느리를 위하려는 마음이 예쁘다는 반응이었대요.
<용돈 주고 말지>란 분들은 이러더래요.

“뭐 하러 힘들게 생일상 차리냐?”
“요즘 젊은이들이 편하길 바라지 시아버지가 차려준 생일상을 며느리가 불편하게 받겠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둘 다 일리 있었지요. 
목사님은 일행에게 또 “당신들 생각은 어떠냐?”며 의견을 구했습니다.

아마,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란 말 뿐인 세상 공식을 실천으로 넓히고 싶었나 봐요.

지인들은 용돈 쪽이 우세했습니다.
“젊은 며느리 편하게 해주는 게 최고”라는 거죠.

의견을 듣고 난 뒤 ‘며느리 생일상’ 화두를 꺼낸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용돈 의견이 많은데, 그래도 며느리 생일상 차려주실 거예요?”
“평상시 생각이라 그래도 생일상 차릴 거다.”

 

여기서 혹시나 했던 게 있었습니다.

  

“며느리 생일상 몇 번 차리다 관 둘 건 아니죠?”
“내가 건강한 그날까지 직접 며느리에게 생일상 차려 줄 것이다.”

 

역시 멋진 분이셨습니다.
여러분은 며느리 생일날 시아버지 차리는 생일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요?
저는 며느리를 위한 이벤트로 한두 번은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는 못할 것 같아요.

왜냐면 며느리에게 공들이는 것도 아주 괜찮은 일입니다만, 그 보다 아내에게 공들이는 게 더욱 현실적이지 싶어서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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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면 남자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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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내일 새벽에 저랑 시장에 갈래요?”

며칠 전, “기분 나빠 죽겠어요.”라며 투덜대던 아내였다. 그러면서 “속마음은 안 그러는데, ‘각자 집에서 그냥 설 쇠요’하고, 속과 다른 말을 해버렸지 뭐에요.” 했다.

이유인 즉, “설음식 어떻게 할 거냐?”는 누님 전화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선 누구 편을 드느냐가 중요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아내 편을 들었다.


시장 가자는 아내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

“큰 누나는 왜 그런 전화를 했대. 엄마 안 계실 때 한 번쯤 자기 집에서 음식 만들어 아들과 사위, 며느리와 먹으면 좋을 텐데….”

이게 내 속마음이었다. 지금까지 명절 음식은 연로한 어머니 몫이었다.

누나는 명절이면 아들에 딸, 두 사위까지 어머니 집으로 불렀다. 어머니는 “가족이 많이 모이면 즐겁지 않냐?”고 하셨지만, 이게 불만이었다. 일거리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래, “시장 가자”는 아내 말을 거절했다. 아내의 고생이 보여서다.

제사가 없으니 굳이 음식 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만 집에 모시고 간단하게 떡국만 끓일 참이다. 그리고 입원 중인 어머니께 떡국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명절 때면 남자로 태어난 것이 엄청 행복하다?

그런데 마음에 걸린다. 반응이 벌써 있어야 할 누나의 반응이 없어서다. 나의 속 좁은 소견이 미안하기도 하다. 이게 가족일까?

반대로 설음식 만들겠다는 아내의 말이 엄청 반갑다. 또한 아내가 미스 코리아 저만 가라할 정도로 엄청 예쁘다.

그나저나 오늘 아침에 나는 아내와 함께 새벽시장에서 장을 봤다. 남자의 이율배반은 이런 것?
여하튼, 명절 때면 나는 남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 행복하다. 명절은 여자만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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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되는 지인이 뒤늦게 사위 맞는 심정
결혼으로 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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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항상 사랑스럽지만 때론 마음 졸이며 애가 탑니다. 오죽 했으면 무자식이 상팔자라 그랬을까. 자녀의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할 시기에 결혼하지 않는 자녀를 보는 부모 마음은 대개 세 가지입니다.

첫째, 왜 결혼하지 않지.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입니다.
둘째, 배우자는 잘 골라 만나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까? 하는 거지요.
셋째, 결혼식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지? 하는 걱정입니다.

그러니까 우려가 많다는 거죠. 최근 70대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서른이 넘은 2녀 1남을 두었습니다.
첫째 딸은 결혼했고, 둘째 딸과 아들은 서른을 넘기고도 아직 결혼 전이라 애를 태웠지요.

그러던 중 지인의 둘째 딸 결혼 소식을 접했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축하할 일이었지요. 그에게 사위 맞는 심정 등에 대해 들었습니다.

지인이 인사오는 사윗감에게 호적등본 가져 오라 한 이유

“딸이 남자를 데려왔는데 낫낫하고 똘똘해 마음에 들더라고. 다 제짝이 있긴 있나 봐.”

사위가 마음에 무척 든 모양입니다.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다행입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더군요.

“결혼? 꿈쩍도 않던 딸이 남자 데려 온다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시집간다니까 서운하더라고.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예비 사윗감한테 인사 올 때 호적등본 한 통 떼 가져오라고 했어.”

보통 건강진단서를 요구한다던데 이건 새로운 요청이었습니다.
이유가 뭔지 궁금하더군요. 의외로 간단하대요.

“둘 다 결혼이 늦었잖아. 예비 사윗감은 39세, 딸은 35세.
그래서 남자가 결혼한 사실은 없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했거든.
혹시나 해서지. 이게 다 부모 마음 아니겠어?”

요즘 결혼 정령기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예전엔 나이 30을 넘기면 아이 낳기 힘들다고 서둘러 서른 전에 갔는데, 요즘은 보통 30을 넘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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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으로 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이유

“사윗감이 마음에 드는 거라. 딸이 사람 보는 눈이 있다 싶었어.
그래서 ‘남자 집에 인사는 갔냐?’ 물었더니 아직 안 갔대.
여자 집에 승낙 받고, 남자 집에 가기로 했다나 어쨌다나.”

제 경우 저희 부모님께 먼저 소개했는데 듣고 보니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데요.
결혼을 결심하고 처음 인사 갈 때의 긴장감이 생각나더군요.
이걸 딛고 첫 대면에서 합격점을 받았으니, 지인의 사윗감도 어지간한 셈입니다.

“남자 집에 먼저 가서 인사드리고, 여자 집에 오는 게 순리야.
여자 집에 안 온 척 하고 남자 집에 빨리 가서 인사드리라고 했어.
왜냐면 결혼은 지들끼리 하는 게 아니거든. 결혼은 집안 대 집안으로 만나는 건데 도리는 지켜야지.”

저도 결혼해 자식 낳고 살아보니 집안이 만난 걸 알겠더라고요.
사랑으로 맺은 혼약, 사랑하는 사람끼리 해도 무방할 것 같지만 세상 이치가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하나 봐요.

여하튼 늦은 나이에 결혼 했으니 알콩달콩 잘 살길 바랍니다.
특히 부모에게도 잘하는 사위와 며느리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자랑스런 사위와 며느리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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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최고 반전, 식물인간과 체인지 및 기억상실
“저런 남자 없어요?” VS “뭘 저런 걸 보고 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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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에서 식물인간인 하지원과 몸을 바꾼 현빈이 여인의 마음을 적시고 있지요.(사진 SBS)

배용준, 현빈, 소지섭, 송승헌, 이승기….

아내를 들뜨게 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눈팅으로 즐기는 거라 뭐 할 말은 없습니다만, 은근 남자의 질투심을 자극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판에 요즘 주말이면 ‘현빈’이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다 못해 저미게 하고 있습니다.
하여, 본의 아니게 혹은 자발적으로 여자들의 로맨스라는 비밀의 정원인 <시크릿 가든>을 훔쳐보는 중입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여인의 가슴을 저렇게 녹이는지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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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바꾼 현빈을 보며 눈물 짓는 하지원.(사진 SBS)

‘시든’ 최고의 반전, 식물인간과의 체인지와 기억상실

현빈과 하지원의 몸이 서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로맨틱한 남녀의 사랑을 그린 걸 보니 재밌긴 하더군요.
하지만 재벌가의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사랑 과정을 보니, 요즘 여자들이 ‘백마 타고 온 왕자’만을 바라보게 하더군요. 이게 좀 그렇더라고요.

또 목숨을 구해줬을망정 계층이 달라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는 어머니의 극한 반대 또한 서글프더군요.
이는 극의 전개상 어쩔 수 없는 요소겠지만 한편으로 보면 ‘없는 것들은 있는 놈 쳐다보지도 마라’란 선전포고처럼 여겨지기도 하더군요.

여하튼,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일이 줄어드는 요즘 현실이 그대로 투영된 듯해 좀 찜찜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어디 말린다고 될 일이던가요? 흐름대로 둘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지요. 

지난 주 <시크릿 가든>은 그야말로 눈물 바다였습니다. 더불어 최고의 반전이 선보였지요.
그건 바로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여인과 그녀를 지켜보는 남자의 체인지와 기억상실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눈물 연기를 선보였지요. 이를 함께 지켜보았던 아들과 딸의 반응이 사뭇 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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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바뀐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 장면입니다.(사진SBS)

“저런 남자 없어요?” VS “뭘 저런 걸 보고 운대”

아내와 딸은 “너무 슬프다”며 훌쩍이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자의 시각(?) 자체였습니다.

“저런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랑, 너무 부럽다. 사랑은 저렇게 가슴으로 하는 건데….”
“현빈이 너무 멋있다~. 어디 저런 남자 없어요?”

이에 반해 아들 녀석은 깨는 반응이었습니다.

“뭘 저런 걸 보고 운대? 오늘은 배우들이 계속 울기만 하네. 울지 않으면 드라마가 안 되나? 에이~.”

이 모습을 보니 사랑 드라마를 보는 남녀 시각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여기서 말하는 남녀 시각차이란 이상적인 로맨스를 즐기는 여자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현실적인 남자를 가리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요.

어쨌거나, 사랑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진하게 심금을 울리는 사랑이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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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olacabs.com/car-rentals/mumbai BlogIcon Mumbai Car Rentals   수정/삭제   댓글쓰기

    Really great work,I would like to join your blog anyway.라마를 보는 남녀 시각

    2011.12.10 15:21
  2. Favicon of http://www.olacabs.com/car-rentals/mumbai-pune BlogIcon Mumbai Cabs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란,사행성,상업적광고의 댓글은 삭제와다른 글은 괜찮은데 이

    2012.01.16 20:32

“아빠, 할머니는 왜 호칭으로 사람 차별한대요.”
“네 생각을 할머니에게 직접 말해보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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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입원 중인 어머니.

어머니가 연말에 교통사고를 당해 중입니다. 병원에는 두어 달 입원해야 할 상황입니다.
하여,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어제도 아이들과 병원에 들렀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유빈네야, 바쁜데 이제 자주 안와도 돼.”
“뭘요, 어머니. 저희 걱정 마시고 치료 잘 하세요.”

아이들도 할머니 품에 안겨 응석을 부리대요. 그게 좋은지 어머니는 연신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빠, 할머니는 왜 호칭으로 사람을 차별한대요.”

그리고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놀라운 말을 하더군요.

“아빠, 할머니는 왜 호칭으로 사람을 차별한대요.”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가 사람 차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하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나오더군요.

“할머니는 ‘유빈네야’라고만 하잖아요.”
“그게 어때서?”
“엄마가 누나만 낳았나요. 저도 낳았잖아요. 근데 왜 할머닌 엄마를 부를 때 ‘유빈네야’라고만 하고, ‘태빈네야’라고는 안하죠? 그게 사람 차별이잖아요.”

헉. 가만 생각해 보니, 아이 입장에서 ‘사람 차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사실 시어머니나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부를 때 ‘며느아가’, 혹은 아이들 이름을 따 ‘○○네야’ 등의 호칭보단 며느리 이름 불러주기 등에만 신경을 썼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는 그동안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것이었습니다.

“네 생각을 할머니에게 직접 말해보는 게 어때?”

그래 아들에게 말했죠.

“네 생각을 할머니에게 직접 말해보는 게 어때?”
“할머니께 말씀 드린다고 달라지겠어요? 그렇단 소리에요.”

“할머니가 고의로 그러겠어? 누나가 먼저 태어났으니 누나 이름을 따 부르는 거지.”
“알아요. 그런데 기분 나쁘잖아요. 누나만 좋아 하시는 거 같고.”

그러긴 합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라도 어머니께 ‘유빈네야’ 라고만 부르지 말고 ‘태빈네야’ 라고도 부르는 게 어떠냐?’고 한 번 권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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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은 역시 예민하다니까요..
    아이가 둘이면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고 봐요..
    아이들 눈높이에서...
    ㅎㅎㅎㅎ

    2011.01.04 09:33 신고
  2. Favicon of https://jersuji.tistory.com BlogIcon 저수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네요,
    보통은 장남, 장녀 이름으로 부르죠.
    근데 아이한텐 그렇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태빈네야 하고 불러 주시면
    태빈이의 그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이 사그라질 것 같네요.
    어머님 빨리 쾌차하시기를 빕니다.

    2011.01.04 19:48 신고

“처가 심심해 가기 싫다” VS “처가가 재밌다”
아내가 본가에 가기 싫어 할 경우 대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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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옛말에 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결혼한 네 남자를 만났다. 처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결혼 5년 차부터 20여년까지 다양한 사위들이다.

이들 네 사람 중 세 명은 “처가는 심심해 가기 싫다”란 평이었다. 그리고 한 명은 “처가에 가면 재미있다”고 답했다. 이들을 통해 사위들이 생각하는 처갓집에 대한 평가를 알아보는 것도 재밌을 터.

 

“처가, 아이들 키우는 입장이라 의무적으로 간다.”

- 처가에 가면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A : 아내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이야기 하느라 바쁘다. 낄 자리가 아니어서 나만 외톨이다.
B : TV 보고 잠자기 외엔 특별한 게 없다. 처가는 너무 심심하다. 게임도 안 되고.
C : 처가에 가면 집에 올 생각뿐이다. 처가? 가고 싶지 않지만 아이들 키우는 입장이라 의무적으로 간다.
D : 술 먹고 마음대로 논다. 우리 집은 내가 막내라 따라하는 편이지만 처가에선 장인 장모 외엔 손 위가 없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다.

- 처가에서 일을 만들면 좋지 않은가?
A : 농사짓는 시골이면 농사라도 도울 텐데 도시라 할 일이 없다.
B : 술 한 잔하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도 처가에는 술 마시는 사람이 없다. 혼자 마실 수도 없고 무료하다.
C : 농사 좀 도와라고 하지만 교대근무를 하는지라 몸이 항상 피곤하다.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인데 무슨 일을 만들어라 하는가. 귀찮다.
D : 사업하는 처가라 항상 일을 돕는다. 사는 재미는 이런 거 아닌가.

저마다 처한 입장이 다르지만 처가에 가는 걸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는 본가와 처가의 문화 차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사위된 도리로 처가를 외면할 수 없는 일.

 

“나는 처가가 마냥 좋다. 어~, 나만 다르네.”

- 처가에 가지 싫을 땐 어떻게 하는가?
A : 그래도 간다. 혼자 보냈다간 아내 눈치에 시달려야 하니 가는 편이 속 편하다.
B : 혼자 가라해도 기어코 같이 가자고 우긴다. 이것 땜에 부부 싸움을 자주한다.
C : 근무 핑계를 댈 수 있어 좋다. 처가에 가는 자체가 귀찮다.
D : 나는 내가 먼저 처갓집에 가지고 한다. 처가에 가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 처가에 가기 싫은 이유가 뭔가?
A : 얼굴 보고 나면 우두커니 할 일이 없다. 처남이나 동서도 나이가 어려 마음 열고 이야기 나눌 처지가 아니라서 그렇다. 
B : 자기들은 좋아 난린데 나만 따로 국밥이다. 처가에서 나는 꿔다 논 보리자루다.
C : 술 마시는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고, 그냥 무미건조해서다.
D : 부자 처갓집에 얼굴을 잘 보여야 한 밑천 받을 것 아니가?(ㅋㅋ~) 나는 처가가 마냥 좋다. 어~, 나만 다르네.

처가는 멀수록 좋다고 했다. 이 말을 이들 사위 입장에서 보면 귀찮아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게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내가 시댁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들은 뭐라 할까?

입장 바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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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이나 어린 윗동서 반말에 시작됐던 불편
“둘째 며늘 아가. 너 때문에 집안이 편하구나.”

민족의 대 명절 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비해 올 추석 연휴는 최장 9일일로 길다. 하여, 바쁘다는 핑계로 시댁을 피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며느리로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나이 어린 윗동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얼굴 대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나이도 어리면서 상전처럼 군림(?)한다. 널린 일은 얌체같이 피하면서 하나하나 간섭이다. 또 건네는 말투마다 거슬린다. 이로 인한 마음고생이 여간 아니다. 게다가 까칠하기까지 하다.

이런 동서 피하고 싶은데 연휴가 길어 꼼작 없이 얼굴을 대해야 할 판이다. 여기에서 추석을 맞는 며느리의 고충을 짚을 수 있다. 제사 음식 만들기, 설거지 등 집안 대소사가 기다리는 실정이다.

명절이면 몸 고생하는 며느리들 마음 편하게 하는 방법 없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어느 둘째 며느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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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이나 어린 윗동서 반말에 시작됐던 불편

그녀는 결혼한 지 25년. 슬하에 22살 딸 하나를 두었다.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려 했지만 형님이 결혼 전이라 식을 늦추고 동거생활을 먼저 했다.

형보다 먼저 동생이 결혼 할 수 없다는 시아버지의 완고한 입장 때문이었다. 2세도 형이 낳은 후에 가져야 했다. 뒤늦게 시 아주버님 결혼 소식이 들렸다.

그런데 윗동서가 두 살이나 어렸다. 시아버님은 집안 위계질서를 내세워 윗동서가 아래동서에게 말을 놓게 했다. 결혼식을 3년이나 늦춰야 했던 그녀의 불편은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나이어린 윗동서의 반말이 귀에 거슬렸다. 차츰 집안 대소 모임에 핑계를 대 빠지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불편한 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고민 끝에 찾은 것은 정공법이었다.

“둘째 며늘 아가.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편하구나.”

그녀는 먼저 자존심을 죽이고 폼 잡는 윗동서에게 전화 공세를 펼쳤다.

“형님, 이번 명절에 언제 내려오세요? 제가 먼저 시댁에 가서 음식들을 만들어 놓을 테니 천천히 일 보시고 내려오세요.”

두 번째로 집안 대소사 궂은일을 도맡았다. 그러자 차츰 서로 마음이 열렸다. 반말하던 윗동서의 어투가 점차 존대로 바뀌었다. 그 이후 불편했던 동서지간이 마음 편한 관계로 변했다고 한다. 시아버님은 좋아진 동서 관계를 보며 이런 말을 한다.

“둘째 며늘 아가.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편하구나. 고맙다.”

시아버지 입장에서 ‘집안이 편하려면 며느리를 잘 들여야 한다’란 말은 이 경우에도 아주 유효할 게다. 나이 어린 동서를 두고 마음 열기까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게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딛고 마음열기까지 노력했을 그녀가 대단하다.

많은 며느리들이, 그리고 많은 아내들이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는 추석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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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사돈, 며느리도 건강하게 잘 크죠?”
사돈이 준 삶의 추억에 웃음 빵빵 터진 하루

행사에 다녀온 아내가 호들갑이었습니다.

“여보. ○○ 엄마 기억나요?”
“그럼 나지. 그 집하고 친했잖아. 근데 왜?”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얼마나 반가운지…. 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며느리 잘 있냐는 거예요. 그 소리가 얼마나 재밌던지…”
“맞아. 그랬었지. ○○도 이제 많이 컸겠네. 잘 계신대?”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오륙년 전, 친하게 지내던 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 사돈을 약속 했던 집입니다. 저희가 이사하는 바람에 잊고 지냈는데 아내가 우연히 만났나 봅니다. 딸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 ○○ 기억나?”
“그 사람이 누구예요?”

“○○가 너 유치원 다닐 때 많이 챙겨줬는데. 너도 좋다고 하고 해서 그 녀석 사위 삼기로 했는데 너 정말 생각 안나?”
“안나요. 정말 그랬어요? 한 번 만나야겠네.”

딸아이는 무안하고 놀랍다는 재밌는 표정이었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 엄마가 문자를 보냈네요.”
“자기네 이야기 한 줄 어찌 알았지. 귀신이네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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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문자를 보았습니다.

‘반가워요 사둔
정말 보고 싶었는데…
굉장히 늘씬해지셨네.
우리 며느리도 건강하게 잘 크죠?
시간 날 때 언제 한 번 연락 줘요.’

장난으로 한 아이들 결혼 약속을 이렇게 문자로 받고 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참을 수 있나요. 아내가 전화를 돌렸습니다. 웃음이 빵빵 터지고 “바깥사돈께 안부 전하라”는 말로 끊더군요. 이렇게 사돈이 생긴 것도 삶의 추억이 주는 즐거움이더군요. 훗날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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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 하루, 부모 집에서 함께 자는 보상?
“아파트 판돈 어쩔까요?”…“너희 가져라!”

 

“아들 식구들이 매주 수요일은 우리 집에서 자.”

 따로 사는 자식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부모님 댁에서 자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주말이 아닌 평일의 경우에는 더더욱 쉽지 않죠. 그런데 매주 하루, 시댁에서 자는 며느리가 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육십 넘은 지인에게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얼굴을 봐야 정이 생겨. 얼굴을 안보면 아무리 자식이더라도 멀어질 수밖에 없어. 그래 일주일에 하루는 자게 했지. 싫든 좋든 하루는 자야 돼.”

일반적으로 결혼 전 여자들은 멀리 떨어진 시댁을 선호한다는데 특이한 경우입니다. 시부모와 지척거리에 살면서 집안 대소사까지 챙겨야 하는 며느리 입장에선 버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님 아파트가 이제 팔렸어요. 돈 어쩔까요?”

 “올 초 며느리에게 아파트를 한 채 뺏겼어.”
“아니 왜요?”

 “올 초 50평짜리 아파트로 이사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지. 며느리가 ‘집이 좁아 이사할 참이었는데 아파트 팔릴 때까지 저희가 살면 안되나요 아버님?’ 그러대. 어쩔 거야. ‘그래라’ 해야지.”
“이건 뺐긴 게 아닌데요?”

“이사를 했으면 살던 아파트를 세 주던지, 팔려고 내놓던지 해야 하잖아. 돈을 줘야 우리도 이사 갈 텐데, 아무 조치가 없어. 말은 못하고 속으로 킁킁 앓았지. 그런데 일 년이 다 된 12월 초에 ‘아버님 아파트가 이제 팔렸어요. 돈 어쩔까요?’ 그러는 거라. 욕은 다 해버렸는데 뒤늦게 어쩔 거야. ‘너희 가져라’ 했지. 이게 뺏긴 거지 준거야?”

말하는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합니다. 그는 매주 하루 자는데 대한 보상으로 '자의반 타의반' 아파트를 준 것입니다. 적절한 나눔을 아는 것이겠지요. 그는 나눔(?)에 대해 덧붙였습니다.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다?

“늙은이가 젊은이들에게 대접 받으려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어. 얻어먹으려 말고, 자기 주머니를 열어야 돼. 막말로 ‘내가 당신에게 술 한 잔 얻어먹었소?’하면 뭐라 할 거야. 술도 한 잔씩 사고, 밥도 사고 그래야 만나더라도 반갑게 하거든. 오는 게 없는데 가는 게 있겠어?”

나이 들면 대접 받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의 말대로 베품 없이 대접 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기가 빠듯한 분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 있습니다. 하여, 대접 받는 사람들은 대개 인품이 있거나, 남모르게 베풀었던 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남다른 며느리를 둔 지인에게 불만(?) 하나가 있었습니다.

“아들 식구들이 전날 밤 집에 오는 시간은 오락가락인데 아침에 가는 시간은 한결같이 9시야. 고거 참 이상하데.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데 의무적이란 생각이 든다니까.”

부모 입장에서야 일찍 와서 늦게 가는 게 최고일 것입니다. 손자 재롱도 보고, 아들 내외 얼굴 보는 재미도 녹아 있을 테니까요. 마음에서 우러나와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 금상첨화겠지요. 의무적이더라도 이게 어딥니까. 나 몰라라 사는 자식도 많은데 말입니다.

삶은 적절한 지혜가 필요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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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ㆍ미덕인 게 있고, 고칠 것도 있다!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대접해야

사람 대하는 게 가장 피곤하고 어렵다’더니 정말 그러나 봅니다.

남자들이 나이 적은 위 처남을 만나면 불편하듯, 여자들도 나이 적은 위 동서 만난 스트레스 또한 장난 아니나 봅니다. 남편의 시댁 서열을 따라야 하는 여자들이 설움(?)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래선지 처가에서 남자들의 불편한 점에 대해 썼더니, 여자 분들이 시가에서 느끼는 불편한 심기에 대해 구구절절 읊으시더군요. (관련 기사 “처갓집 족보는 과연 ○족보?”) 

그럼 며느리들이 동서지간에 느끼는 불편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인간관계에서 피해야 할 게 가차레일일 것입니다.


나이 어린 윗동서, 말을 까야 권위설까?

Q : 그동안 위 동서와의 사이는 어땠어요?
A : 결혼 전에는 살살거리며 ‘해요해요’ 하더니, 결혼식 올리지 마자, 나이 어린 동서가 기다렸다는 듯 ‘해라’ 그러대요. 십년 이상 차이나는 위 올케들은 아무리 ‘편히 말씀 놓으세요’ 해도 ‘그랬어요 저랬어요’ 하는데…. 동서가 ‘이러소 저러소’만 해도 좋겠는데 얘 취급이니,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에요.

Q : 서로 말은 어떻게 하세요?
A : 나이 어린 동서가 반말하면 완전 무시당한 기분이죠. 그래 말 섞을 상황을 안 만들거나 덜 섞도록 피하죠. 명절 이외에는 거의 만나지 않으니 다행이죠. 그때만 넘기면 되니까….

Q : 남편 분은 뭐라 하세요?
A : 참아라 하죠. 여자들이 조용해야 집안이 조용하다고. 간혹 ‘이러소 저러소 하면 안되냐고 내가 말 할게’ 그러기도 하는데, 그러지 마라 해요. 그게 말한다고 되겠어요? 이러는가 정도로만 말해도 좋을 텐데, 꼭 말을 까야 자기 권위가 서는지….

"전통과 미덕인 게 있고, 고쳐야 할 게 있다!"

Q : 말에 대해 동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방법일 텐데…
A : 말을 섞질 않는데 무슨 말을 해요. 말해서 될 일 같으면 지금까지 반말 했겠어요? 괜히 말해봤자, 긁어 부스럼이에요. 말 안하는 게 났지….

Q : 해결 방법은 있을까요?
A : 요즘엔 연상녀와 사는 남자들도 많잖아요. 이 연상녀들은 시댁에 나이를 줄여 말한대요. 시대가 변한만큼 관계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변화가 없으니 문제죠. 전통과 미덕인 게 있고, 고쳐야 할 게 있지 않겠어요? 남자들은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여자들은 완전 족쇄에요. 지금으로서는 개인 소양 문제로 밖에 해결할 수 없겠지요. 우스워요.

Q : 하실 말은 없나요?
A : 남편의 경우 형의 아내에겐 형수라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러나 생판 모르던 동서지간에는 서로 위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며느리를 잘 들여야 한다’면서 대하는 건 영 아니잖아요. 며느리들끼리도 쉽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울분이 가득했습니다. 그동안 당한(?) 서러움이 많은 듯합니다. 워낙 뿌리가 깊어 인습을 고치기에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할 것입니다.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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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에서 불편한 호칭 해결법은 뭘까?
남편 서열과 아내 서열이 다른 ‘관습법’

삶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집단 등이 얽혀 있는 많은 관계 속에 살아갑니다. 모든 관계가 좋을 수만은 없지요. 관계는 때로 필요 없는 불편을 낳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가장 어렵고 피곤한 일로 “사람 대하는 일”을 꼽습니다. 그만큼 개개인이 갖는 가치관과 생활습관 등의 차이가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일 것입니다.

가까이 지내야 하는 사람과 불편할 경우, 그 스트레스는 보통이 아닙니다. 피한다고 해결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혼생활에서 시댁 및 처가와의 갈등은 그 예가 될 것입니다.

말은 안해도 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 분이 처가에서의 불편함을 호소해 왔습니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습니다.

불편한 관계가 불빛처럼 환해지길...


며느리는 남편 서열, 사위는 아내를 매개체로?

“나이 어린 처남이 집사람 오빠라고 자꾸 반발을 해 죽을 지경이네.”
“오십이 넘어도 나이로 스트레스 받나요. 처남과 몇 살 차인데요?”

“그런 소리 말게. 아무리 늙어도 남자는 남자 아닌가. 세 살 차이나 나네. 그렇다고 처가에 안갈 수도 없고, 가기는 더더욱 싫어. 간혹 모임이 있어도 잘 안가거든.”
“정말요? 우리는 본가를 따르잖아요. 사위는 그저 손님….”

“내 말이. 관습에서 며느리는 남편 서열을 따르지만 사위는 아내를 따라 형성되는 게 아니라 아내를 ‘매개체’로 형성되거든.”
“그래요?”

결혼 전, 관계에 대해 상의한 적이 있어 귀가 솔깃합니다. 저도 그다지 관계가 좋은 편은 아니어서 더 관심이 갑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며느리는 남편의 형수가 나이가 적어도 남편 서열에 따라 형님으로 모셔야 해. 하지만 사위는 손위 처남이 연하일 경우, 이름을 부르거나 형님이라 부르는 게 아니라 처남이라 부르거든. 그래, 처갓집 족보에 대한 우스개 소리가 있는 거지.”
“근데 문제가 뭐예요?”

“들어봐. 나이 차가 10년 이내면 손위 처남이나 동서는 친구같이 지내게 되어 있어. 그러니 내가 나이가 많아도 친구 대접 아니겠나. 피하고 말지만 볼 때마다 거북해.”
“나이 어린 신부 만났다고 좋아 할 일도 아니네요. 요즘엔 서로 말을 올리던데?”

“어린 신부 좋아하네. 당해 봐야 알지. 그런데 서로 말을 올리고 양존하면 좋은데 어린 처남이 꼭 말을 놓는단 말이야. 밥을 먹어도 몇 그릇을 더 먹었는데…. 잊으려고 해도 안돼. 별 거 아닌데….”
“그러네요.”

‘객지 벗 10년’이라지만 세상에서 몇 살 차이로 속이 뒤틀려 엉겨 붙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집안사니 어쩔 수 없겠지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 말이 괜히 있진 않겠지요? 자신이 존귀한 만큼 타인도 존귀할 것입니다. 모든 게 살아 있음으로 인해 느끼고 고민하는 것이겠지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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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들의 반란, “사위들도 고생 좀 혀”

“인자 나도, 우리 사우들 좀 부려먹어야 쓰겄네.”
추석날, 고추밭에 주렁주렁 달린 고추를 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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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관산면 상발 마을에도 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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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허리 수술 후 옴짝달쌀 하기가 힘듭니다.

“밭에 고추를 따야 헐 것인디…”

추석날 오후, 서둘러 도착한 처갓집. 몸이 불편하신 장모님은 누워서도 고추 딸 걱정입니다. 농사꾼은 농사꾼입니다.

장인 장모는 서울에서 지난 여름 며칠 상관으로 복부와 허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런 양반들이 누워서도 추수 걱정이라니 기가 찹니다. 추수는 손이 없으니, 자연 식구들 몫인 게지요.

장인어른은 지금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 계십니다. 큰 딸인 아내, 깨를 갈아 미음을 만듭니다. 장인어른 그제서야 겨우 몇 숟갈 받아 드십니다.

“아이, 네 아부지가 어제까진 좀 괜찮으시더니 어제 송편 세 개 드시고, 오늘 추석 아침부텀 저리 꼼짝을 못하신다야. 물 한 모금 안하더니 그래도 큰 딸이 준께 잡순다야. 큰 딸이 좋긴 좋은 갑따야.”

누워 계신 장모님은 안심인지 반기며 한 마디 거듭니다. 1970년대부터 담석 등으로 10여 차례 넘게 수술대에 오르신 장모님은 환자인 상태에서도 장인어른 수발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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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 건너 고추밭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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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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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농사일 한 번도 안 해 본 사위들을 얻었을까~ 잉.”

아이들을 데리고 고추밭으로 향합니다. 들판에서는 벼가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저 알곡 추수할 일도 걱정입니다. 지난해부터 장모님과 했던 농이 생각납니다.

“남들은 사우들이 타작도 해주드만, 인자 나도 우리 사우들 좀 부려먹어야 쓰겄네.”
“워매~. 장모가 사위 못 부려먹어 안달이네. 긍께 시집을 잘 보내야지, 왜 농사일 한 번도 안 해 본 사위들을 얻었을까~ 잉. 다른 집, 사위들이 그리 부럽습디요?”

“그래. 부러워 죽겠대. 장인장모 힘들다고 사위들이 주말에 처갓집에 와 모내기도 해주고, 농약도 해주고, 고추도 심어주니 얼마나 부러웠겄어?”
“워매워매. 우리 장모, 사위 맞은 게 아니라 머슴 맹글라 그랬네. 근디 워쩐다요? 이 집 사위들은 일 했다간 ‘아이고 허리야’ 드러누워 약값이 더 들겄구만. 그래도 좋소?”

“그래도 좋은 께, 한 번 혀봐.”
“글다가 이집 딸들만 손핼 것인디….”
“그라긴 햐. 글다가 우리 딸들만 고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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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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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배꼽.

길가에 핀 며느리 꽃들, 사위들에게 선전포고 하다?

간혹 고추도 따 주고 했더니만 그런 건 다 잊었나 봅니다. 올해는 더 이상 뺀질거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가을 추수는 거들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장모님 동네방네 “우리 사우들이 추수해 줬어.”하고 자랑하고 다니실까?

아이들을 앞세우고 저수지를 지나, 도랑 넘습니다. 산길 양쪽으로 며느리배꼽, 며느리 밑씻개, 며느리 밥풀꽃이 피어 있습니다. 철이 지났는데 피었습니다. 추석 명절, 고생하는 며느리 위안용 꽃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길에 핀 며느리 꽃 종류들은 딴 의도(?)가 있는 듯합니다. 행여 이런 의미는 아닌지….

‘이제 며느리들 고생은 그만하고, 사위들도 고생 좀 실컷 해라’

그러고 보니, 며느리들의 반란인 것 같습니다. 마치 ‘사위들도 이제 고생 좀 혀’하고 선전포고 하는 역설적인 꽃 같습니다. 에이, 어쩔 수 없네요.

고추밭에 도착합니다. 지난해에는 옆에 있던 밭에서 고추를 땄는데 올해에는 옮겨 심었네요.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저 놈의 고추가 고생 실컷 시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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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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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밑씻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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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배꼽'이 '사위배꼽'으로 바뀔까?

야생화 보며, 우리 집 며느리를 생각하는 것도…
[초보자의 야생화 따라잡기 12] 며느리배꼽과 며느리밑씻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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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배꼽.

“집안이 편하려면 며느리를 잘 들여야 해!”

간혹 남의 집 며느리를 욕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우리 며느리? 우리 며느리는 달라.”

자기 며느리 자랑하기 위해 다른 며느리 흉을 잠시 본 게지요. 이렇게 며느리 자랑하는  시어머니들을 많이 만납니다. 이는 세태가 바뀌어 며느리 위상(?)이 높아진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잘하는 며느리들이 많지요.

이런 세상에 ‘며느리배꼽’이라니…. 무슨 이런 요상한 이름이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 ‘며느리’자(字)가 붙은 야생화는 더러 있습니다. 며느리배꼽 외에도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 며느리주머니(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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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배꼽’, 옛날에는 며느리가 제일 만만했다?

며느리배꼽은 “턱잎이 둥근 배꼽 모양”이라 하여 지은 이름입니다. 많고 많은 배꼽 중, 왜 하필 ‘며느리’를 갖다 붙였을까?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옛날에는 며느리가 제일 만만했다(?)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또 여권(女權)이 신장된 요즘에는 조만간 “‘며느리배꼽’에서 ‘사위배꼽’으로 바뀔 것이다” 예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의견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겠지요. 다양성의 사회임을 실감합니다.

며느리배꼽은 우리네의 산천에 피어나는 덩굴성 한해살이 야생화입니다. 아마,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며느리배꼽을 보면 이름은 몰라도 ‘아~ 이거, 봤다 봐!’하고 무릎을 칠 것입니다.

잎은 어긋난 삼각형으로 줄기에 가시가 나 있습니다. 열매는 동그란 연두색에서 청색으로, 그리고 보랏빛으로 익어갑니다. 열매를 보면 “아이를 잉태한 산모”를 연상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여, 며느리배꼽으로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해석이 맞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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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배꼽은 잎이 둥그스름한 삼각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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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밑씻개는 잎이 뾰쪽한 삼각형입니다.

얼씨구, 뒤 닦을 거 좀 가져다주십사~

이와 비슷한 종류가 며느리밑씻개입니다. 가지와 잎줄기를 놓고 비교하면 구분이 힘들지요. 꽃으로 피는 건 밑씻개, 열매로 맺히는 건 배꼽으로 생각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며느리밑씻개는 하필 이런 요상한 이름을 갖게 됐을까? 의아해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전설 때문인 듯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다양합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나름, 각색한 전설 한 번 들어 보실래요?

옛날 아주 옛날, 화장지 대신 지푸라기나 나뭇잎, 옥수수 깡과 새끼줄로 뒤처리를 하던 시절, 고부 간 사이가 좋지 않은 어느 집이었습니다요. 하루는 배탈 난 며느리가 급히 가느라 밑 닦을 준비하지 못하고 가지 않았겠습니까!

이 며느리 일을 보다가 이리저리 둘러봐도 밑 닦을 것이 없는 거라. 다른 대는 볏짚, 나뭇잎 등이 많기도 하드만, 개똥도 쓸라면 없다고 이날은 그것마저 없는 거라. 아무리 자기 똥이라지만 그렇다고 손으로 닦을 수도 없고. 난감하던 차에 시어머니가 뒷간 앞을 지나가는 거라!

하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고 얼씨구 시어머니께, “뒤 닦을 거 좀 가져다주십사” 부탁을 드렸겠다. 평소에도 일은 안하고 뒷간만 들락거려 밉상 박힌 며느리가 뒷간에 앉아, 턱하니 시어미한테 밑 닦을 걸 달라? 이에 심통이 발동한 시어머니, 텃밭 가에 자라는 잔가시 박힌 풀을 뜯어 안으로 들이밀었겠다!

며느리가 고마움에 냉큼 받아들고 밑을 닦는데 “아이고, 나 죽겠다. 아이구 엄니~”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아프네. “요것이 뭣이다냐?” 하고 쳐다보니, 가시 박힌 풀인 거라! 하여, 이 풀을 ‘며느리밑씻개’라 불렀다고 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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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밑씻개. 뒤로 희미하게 곤충의 짝짓기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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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곤충의 짝짓기 모습입니다.


며느리의 정갈한 마음이 담긴 듯한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밑씻개를 보면 슬퍼 보일 따름입니다. 아마, 이 며느리는 아들을 못 낳았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미워할 수가 있을까요? 아니면,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질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선지, 며느리밑씻개 꽃은 하얀색과 어우러진 연분홍이 며느리들의 고생을 떠올릴 만치 가녀리고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특히 어려웠던 시집살이를 견뎌낸 며느리의 고고하고 정갈한 마음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시어머니의 질투가 담긴 며느리밑씻개와 태아를 잉태한 산모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며느리배꼽은 지금 우리네 산야에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며느리배꼽과 며느리밑씻개를 보고 우리 집 며느리를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아니면, 주말 아이들과 야생화 나들이에 나서 보는 것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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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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