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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무량수전에 앉아 비 소리 가슴으로 듣다!

나무 서만 있어도 ‘덕’이 좔좔, 우리네 인간은…
[섬에서 함께 놀자] 거제도 노자산 혜양사




경남 거제 혜양사입니다.

친절한 안내에 놀랐습니다.

용왕각 가는 길 수국이 탑스럽게 피었습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나 사용하다 버리고 갈뿐이다!”


                                 -구인사 대조사 설법 중에서-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마치 모든 게 제 것인 마냥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뉴스 보면 ‘안하무인’ 금수저 많더군요. 이런 삶은 처절한 고행이 필요합니다. 철드는 것도 인연 닿아야 가능하지만 그래야 비로소 철들어 ‘겸손한’ 금수저가 되니까. 여보시게, 상식을 벗어난 금수저들. 아래 시조 읽고 ‘종’의 참뜻 새기시게.



           종


                         도열스님(거제 혜양사 주지)


  언제나 내 곁에는 몽둥이가 누워있고
  나 보고 어쩌라고 이렇게 치는 건지
  도움이 되신다면은 백 번 맞아 죽으리다


  오늘도 매 맞으며 울고 서 있지 않소
  이 몸이 떨고 떨어 갈기갈기 찢어져도
  임들이 성불한다면 그 뿐인가 하리다


  여명이 빗장 끌러 해돋이가 뜰 때면
  새들은 좋다고 서 하늘 높이 날건만
  목매여 달려있느라 풀어야 할 실마리



종의 의미는...

도로와 처마가 절묘하게 어울렸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느 절집이 이렇게 친절히 안내할까? ‘혜양사’



거제도 노자산 혜양사. 어쩌다 발걸음이 머물렀을까. 단지 인연에 따랐을 뿐입니다. 다른 절집에선 느끼지 못한 신선함이 있습니다. 절집 입구에서부터 뭔지 모를 묘한 설레임. 근본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꼭 첫사랑과 대면하는 느낌. 왜 그랬을까?



“옥을 가는 그 마음으로 시 한수를 읽으면 얻는 것은 여의주로 저 하늘의 별 따리”



노자산 혜양사와 만다라화 시(詩) 공원을 알리는 안내판 글귀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면 누구든 생불(生佛) 되겠지요. 노자산(老子山, 565m)은 “불로초 산삼이 있는 절경지에 살기 때문에 늙지 아니하고 신선이 된다 해 생긴 이름”입니다. 또한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원목이 모두 이곳 후박나무와 자작나무다”고 하네요. 와우, 절집 입구에서 괜히 설레였던 게 아니었습니다.



“소망스런 여의주를 구하시렵니까/ 저마다의 뜻을 이뤄보시게/ 산신각 독성각 용왕각으로 가는 길/ 그대가 오시기를 기다리실 겁니다.”



절집으로 가는 곳곳에 안내판이 있더군요. 어느 절집에서 이렇게 친절히 대하며 안내할까? 주지스님이 시인이라더니 달랐습니다. 안내대로 대웅전 가기 전에 산신각, 독성각, 용왕각부터 들렀습니다. 가는 길, 수국이 피었습니다. 거제의 7월은 수국 천지입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건물 세 채가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이 무슨 역설일까. 바다 속 용궁 아닌 산 속 용궁 같다는.



산신각, 독성각, 용왕각입니다. 육지에 세워진 용궁 같습니다. 

번뇌는 별빛이라...

나를 내려 놓습니다.




나무 서만 있어도 ‘덕’이 좔좔, 우리네 인간은…



대웅전 가는 길, 안내판처럼 보이는 게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 뭘꼬?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만다라화 시(詩) 공원이 있다더니 그것 같습니다. 읊조리는 투를 보니 시조 운율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 작품 중, 그의 수행 정도를 가늠할 시조를 읽습니다.



      수   도


                    도열스님(거제 혜양사 주지)


  속 때를 씻으며 마음을 갈고 닦아
  술고담 안 드시는 청정한 몸과 마음
  탐진치 다 비우시니 티 없는 백옥일세


  벌 속의 진탕에도 물 안 드는 연꽃처럼
  금욕을 낙을 삼아 하늘을 바라보며
  인고로 수행하심은 별 중에 달일까


  지혜등불 켜들고 무명 속에 헤어나
  고통 받는 저 산 아래 빛의 손길 내리시어
  어둡고 메마른 중생 고해바다 배가 되리


           <주 : 술고담 - 술, 고기, 담배의 준말. 시조 운율 상 글자 수 줄임>



‘시가 번뜩입니다. “번뇌는 별빛이라~”던 만해 한용운 스님을 떠올립니다. 이쯤이면 작가 스님 뵙는 게 예의. 이에 앞서 관음전에 듭니다. 중생이 숨 쉬는 법당 공간에서 삼배 예를 차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량수전으로 향합니다. 많은 적송 덕분에 눈이 호강합니다. 나무는 아무렇지 않게 서 있어도 ‘덕’이 좔좔 흐릅니다. 우리네 인간은….



관음전입니다.

스님 시들이 여기에 이렇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음전...





절집, 무량수전에 앉아 비 소리 가슴으로 듣다!



무량수전을 기웃거립니다. 정면 기둥에, 먼저 읽었던 시조가 쓰였습니다. 무량수전 오르는 계단에는 신발 두 켤레가 위아래로 가지런히 놓였습니다. 무량수전을 좌측으로 돌아들어 벽면을 봅니다. 단청, 탱화에 입이 쩍 벌어집니다. 드나드는 문까지 단청과 탱화와 잘 어울립니다. 참 단아합니다. 정결하고 곱디고운 아낙이 쓰는 정갈한 반짇고리 같은 느낌이랄까. 입구와 시조에 이어 또 벅차오릅니다.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립니다.



“처음 오셨어요? 제가 안내 하지요.”



인연이었을까. 그가 나섰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안내지만 받기로 했습니다. 굳이 베풀겠다는 호의를 마다할 필요 없으니까. 스님, 뭐라 열심히 말씀하십니다. 허나, 전혀 기억 없습니다. 아마도 부처님이 귀를 막으셨나 봅니다. 스님과 마주앉았습니다. 고요한 절집, 무량수전에 앉아, 비 내리는 소리를 가슴으로 듣습니다. 그가 시집을 선물합니다. 눈에 들어오는 시조 하나. 제목만 봐도 얼굴이 화끈합니다. 내용은 그게 아니지 말입니다.



단청 등이 단아하고 정갈합니다.

도열 스님.

무릇 중생이란?





      나   체


                       최도열 스님


  섬 바위에 저 물새는 그 무엇을 생각할까
  창파에 고기들은 왜 저리도 뛰 솟을까
  바람에 물결이인 양 너울거린 실안개


  그 뭣을 보이려고 나체로 홀딱 벗고
  곱상스레 짝 뻗고서 저렇게도 누웠는지
  해초도 가리지 않고 맨송해진 해안선


  가공을 하연 듯이 천조로운 수평선은
  천상에 은하수로 칸막이를 하였거늘
  가뭇히 뚫어 본다고 내 가슴이 트이랴




해안선을 나체로 본 스님의 시적 감각에 감탄합니다. 빗줄기를 바라보며 정신을 가다듬습니다. 욕심으로 가득했던 욕망의 나를 내려놓습니다. ‘님하, 이 불쌍한 중생을 굽어 살피소서!’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을꼬? 무릇, 중생이란? 못난 금수저들에게 바랍니다. 아래 시를 읽고 의미를 되새겨 볼 일입니다. 절대자가 ‘왜?’ 인간에게 한계를 줬는지….



     유한 속에 살다


                           최도열 스님


  놀고먹으려 할까 봐 충만치 않게
  과욕을 부릴까 봐 유한 속에 살게
  영생도 추구하지만 생사가 있게


  출몰하는 해 달 속에 오가는 뜬 구름산
  자연의 섭리온데 막을 자가 있을까
  바람은 요동치느라 뒤흔드는 바닷물




무량수전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숨은 보배같은 혜양사.

깨달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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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월사 원일스님, “평등은 존엄과 같습니다!”
남해사 혜신스님, “수행 증진이 곧 부처님 탄신”
은적사 종효스님, “성 안 내는 얼굴이 참 공양”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찾은 절집 삼사순례



 


 


 

해수관음성지 용월사입니다.

 


 


 



          번뇌


                        김용호


    비워야 하는데
    비워지지 않습니다
    잔뇨로 남은
    방광의 오줌처럼
    거품이 일며
    애욕과 번민이
    부글부글 차 오릅니다
    님이시여
    어찌 모두를 버릴 수
    있으리오
    오히려
    번뇌의 강물에
    뛰어들고저 합니다.


 

 


중생이 해탈하면 그게 어디 중생입니까. 그래, 언제까지 마냥 중생이길 바라며 번뇌 속에 사는 게지요.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해탈을 염원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깨달음을 빨리 얻겠다고 욕심내지 않는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섭니다. 석가모니께서 수 백 억겁을 거쳐 현생의 부처로 오셨듯 모든 중생은 결국 금오돈수의 경지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습니다. 이를 기리며 여수의 삼사 순례에 나섰습니다. 여수 돌산 군내리에 있는 천년고찰 은적사, 여수 호명동 자내리에 위치한 토굴 남해사, 여수 돌산 하동의 용월사를 찾았습니다. 이들 절집은 각각 특색이 있는 만큼 스님들 또한 개성이 넘쳤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중생들이 용월사를 찾았습니다.

 

차를 마시며 용월사 원일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무량수전 앞 소나무가 아름답습니다.



 

 


용월사 원일스님, “평등은 존엄과 같습니다”


 

 


용월사를 찾았습니다. 용월사는 손꼽히는 해돋이 명소입니다. 십 오년 전, 아이들이 갓난쟁이일 때 온 가족이 해돋이를 본 이후 지금껏 일출을 접하지 못했습니다. 용월사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절집서 하룻밤을 청했음에도 비가 오거나 흐린 까닭입니다. 이것도 인연이 있나 보대요. 집 침대에서 눈 뜰 때마다 보는 해돋이로 위안 삼지요.


 

 


용월사는 20여m가 넘는 해안 절벽 위에 관세음보살과 함께 자리하는 해수관음성지입니다. 서방 극락정토 주재자인 아미타불(혹은 무량수불)을 모시는 곳의 대웅전은 ‘무량수전’ 혹은 ‘극락전’으로 부릅니다. 용월사는 무량수전입니다. 참고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면 대웅전,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대적광전이라 부르지요. 원일스님께 법문을 청했습니다.

 


 


용월사 원일스님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흉악 범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흉악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불평불만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가정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실이 불평과 불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불만은 평등하지 않음에서 나옵니다. 아이들도 평등하게 안하면 불만입니다. 왜냐하면 본질은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평등합니다. 평등은 존엄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명에 가린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해섭니다. 중생은 누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임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자기가 존중받고 싶으면 남을 존중해야 합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 평등을 외치신 겁니다. 삶은 유상하나, 해탈과 열반은 무상합니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합의 리더십은 바로 공평에서 나옵니다.”

 

 



용월사 범종도 여느 절집과 마찬가지로 새벽 예불(28번)과 저녁 예불(33번) 때 울립니다. 범종을 28번과 33번 치는 건 "‘진리의 소리’로 전 우주 28천과 33천의 모든 중생을 깨우고 깨달음을 얻게 하여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라"는 의미랍니다. 진리의 소리, 소 울음소리를 언제라도 들으면 좋으련만….


 

 


 

토굴이어서 더 정감가는 소박한 남해사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남해사 혜신스님, “수행 증진이 곧 부처님 탄신”

 

 



남해사를 찾았습니다. 남해사는 삐까번쩍하지 않아 좋습니다. 껍데기를 벗은 나 자신을 보는 느낌이랄까. 다 쓰러져 가는 토굴이 중생들의 민낯 같아 애착이 큽니다.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췄습니다. 토굴 입구에는 오죽이 늘어집니다. 좁은 마당에는 고무 통이 자리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연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여유롭게 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해사에는 특별한 게 있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 2과가 있습니다. 석가세존의 피부가 사리가 된 백사리(백색)와 피가 사리로 바뀐 피사리(적색)가 각각 1과씩 모셔져 있습니다. 이는 태국 아유타 사원에서 천일 수행정진하고 회향할 때 주지스님으로부터 시주받은 거랍니다. 부처님 사리를 손으로 직접 만져볼 영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스님, 매화차 있어요?”
“우전으로 입맛을 돋운 후 매화로 마무리해요.”



얻어 마시는 입장에도 큰소리 ‘뻥뻥’입니다. 중생이 마셔 본 바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차 맛은 남해사 혜신 스님께서 내는 차입니다. 차를 만든 사람의 기운, 차를 우려내는 물, 차를 담아내는 용기 등 삼박자가 절묘하게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마시고 싶은 차를 주문합니다. 스님도 주문이 싫지 않은 걸로. 차를 마시며 문답에 돌입합니다.

 

 



 

부처님 진신사리 2과입니다.

 

남해사 혜신스님

 


 

진신사리함입니다.


 

 



- 스님들도 생일을 챙기나요?
“속세에서나 챙기지, 출가한 승려가 생일은 무슨.”


 

 


- 근데, 왜 부처님 생일은 탄신일이라고 크게 챙기나요?
“본인 생일도 지나치는데 석가탄신일이라고 성대하게 지내는 건 좀 그렇지요? 묵묵히 조용히 부처님 뜻을 기리면 좋은데. 부처님 오신 날을 성대하게 지내는 마음속에 행여나 여래와 거래를 하려는 (불순한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 부처님 오신 날은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
“악업 보태지 말고 공덕 쌓는 일을 해야지요. 또 수행 증진하심이 곧 부처님 탄신의 기쁨과 같습니다.”

 

 



 

은적사 일주문입니다.

 

대웅전 대신 극락전을 씁니다. 왜? 아시죠!

여유롭습니다.

 

 



은적사 종효스님, “성 안 내는 얼굴이 참 공양”


 

 


은적사. 관성스님께서 절집 입구 텃밭에서 열무를 캐시다 말고 일행을 맞았습니다. 주지이신 종효스님께선 외출”중이라더군요. 약속보다 좀 일찍 왔다 했더니 조금 기다리랍니다. 막간을 이용해 은적사 대웅전인 ‘극락전’의 부처님 전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인간적인 욕망도 함께 올렸습니다. 부디 중생에게….


 

 


“오랜만입니다. 혼자 놀지 말고, 우리 같이 놀자고~.”

 

 



종효스님, 중생을 보자마자 ‘삐딱선’입니다. 삐딱선도 ‘선’의 일종이거니 위로하며 받아들입니다. 이 정도도 감지덕지지요. 일 년 넘게 멀리했으니. 이심전심. 스님 마음을 알지요. 스님 죄송해요!



 

관성스님과 한담 중인 지인.

 

종효스님 차를 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번뇌는...

 




“스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미리 한 말씀 하시지요?”
“허허, 한 말씀은 무슨. 저기 있는 말로 대신하지. 차나 마시자고.”



무슨 말이 쓰여 있을까? 스님께서 가리킨 벽에는 작은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액자 속 글귀가 마치 중생의 조급증을 아는 듯, 큰 스님이 중생에게 여유를 찾으라고 호통 치는 것처럼, 글귀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한 번에 읽히기를 거부합니다. 차분히 읽기까지 인내가 필요했지요.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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