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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매나 맛나다고. 이 맛이 젤(최고)이여!”
3년 전, 여수시 나발도의 멸치막 풍경

배 한 척 들어왔습니다.

멸치를 퍼냅니다.(아니, 남편은 평에서 뭐하는겨 시방)

바다 일에 나선 어선 한 척이 부두에 닿았습니다.

아낙, 배가 닿자마자 멸치 막으로 종종걸음입니다. 멸치 막 가마에 물이 채워지고, 가스불이 켜집니다. 소금이 첨가됩니다.

아낙 다시 배로 향합니다. 어부와 어부의 아내 배에서 멸치를 퍼냅니다. 가마의 물이 데워지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어부와 어부의 아내 멸치를 가마로 옮깁니다. 행여 신선도 떨어질까, 잰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폴짝폴짝 뛰던 멸치가 가마에 마구 떨어집니다. ‘워~매. 여기가 저승인가?’ 할 새도 없이 멸치 익어갑니다. 멸치가 들어가자 가마에서 나던 연기가 잠시 사그라 듭니다. 그러다 다시 기세를 올립니다. 멸치들이 통째로 익어갑니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멸치가 통째 익어 구수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하나 먹어 볼라요?”

말을 건네며, 아낙이 먼저 입에 넣고 오물거립니다. 이렇게 먹으면 된다고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기할 따름입니다.

“바로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람. 얼매나 맛나다고. 이 맛이 젤(최고)이여!”

언제 이렇게 먹어봤어야죠. 먹어? 말어? 미적거리는데 초장까지 내어 놓습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손해는 없겠죠. 멸치 하나, 양강스레 집어 들어 조심히 입에 넣었습니다.

어? 장난이 아닙니다. 야! 입에 쩍쩍 달라붙습니다. 볼이 미어지도록 구겨 넣습니다. 금새 초장이 바닥나고 맙니다. “이렇게 맛난 걸 드셔서 어머니 피부가 곱나 보네요.” 능글스런 칭찬으로 멸치 회 값을 지불합니다.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익은 멸치를 건져냅니다.

계속해서 멸치를 건져냅니다.

잠시 식기를 기다립니다.

아낙, 팔팔 익은 멸치를 건져냅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전어도 있습니다. 피해갈 수야 없죠. 통째로 오독오독 씹어 삼킵니다. 야~!

익은 멸치는 해안가 바닥에 뿌려집니다. 멸치는 이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햇볕 아래 꼬들꼬들 말라갈 것입니다. 기계로 건조시키지 않은 순수 자연산 멸치지요.

3년 전, 여수시 나발도의 멸치막 풍경입니다. 너무 생생해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멸치 공판장에 다녀와 사진 파일을 뒤적였더니 나오더군요. 참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 재생시켰습니다. ㅠㅠ

해안가에 건조시킵니다.

바닷 바람과 햇볕에 말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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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팔려고 내 놨어! 연락은 올까?

소작 어부를 ‘선주’로 만들어줬던 배(船)
[꽃섬, 하화도 3] 아쉬운 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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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화정면 '아래 꽃섬' 화화도 선창 풍경.

“배를 팔려고 내 놔써.”

‘아래 꽃섬’, 김중재(69) 어촌계장의 설명입니다. 정작 배 주인인 임중선(79) 할아버지는 그저 조용히 문어 통발 그물 손질에만 열중입니다.

객선이 닿는 부두에서 몇 사람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선창에선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정자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몇 사람이 그물을 수선하는 중입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게 오히려 한가로운 꽃섬 풍경을 더욱 여유롭게 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여유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쉴새없이, 끊임없이 입을 놀려야 했던 육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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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이십 년 넘게 움직이던 밴데. 허리도 꼬부라지고, 움직이기도 힘드러 배를 움직일 수가 이써야지. 고기 잡아 아그들 갤치고 먹고 살고 그랬는디….”

어쩔 수 없이 시장에 내놓아야 했던 사정을 주인 대신 말하는 김중재 어촌계장의 설명이 허공에 날리다 제풀에 꺾여 혼자 사르르르 흩어집니다. 활짝 피어난 꽃이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것처럼.
 
“할아버지, 배는 왜 내놓으셨어요?”
“…”

여든을 코앞에 둔 임중선 할아버지 입술을 앙다물고 있습니다. 손을 더욱 바삐 움직여 그물을 수선할 뿐입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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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선 할아버지 답변을 피합니다.

소작 어부를 자작 어부인 선주로 만들어 준 ‘배’

남의 배를 타면서 놉을 받고 살아야 했던 설움(?)을 한방에 날려 버린 배였습니다. 비록 작은 배일지언정 자신을 선주(船主)로 만들어준 배였습니다. 어장 수입을 혼자 마음대로 아이들 키우는데 쓸 수 있게끔 만들어 준 배였습니다.
 
‘소작 어부’의 간절한 소망인 ‘자작 어부’의 꿈을 이뤄준 너무나도 고마운 배였을 것입니다. 주위에서 돈을 구해 잔금을 치루고 배를 차지하던 날의 기분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아마, 서울에서 사글세ㆍ전세로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잔금을 치른 본인 명의의 아파트를 장만한 기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 소유의 아파트에서 첫날 처음으로 잠을 자는데도 잠은 오지 않고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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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리믄 뭐해, 필요헌 사람이 써야제!”

마침 배를 사겠다는 사람이 배 상태를 보러 왔습니다. 임중선 할아버지 막상 배를 보러오자 더욱 서운함이 밀려듭니다. 배를 보여줘야 하는데도 아직까지 뭉그적거립니다. 그물수선 때 부지런히 손을 놀리던 바지런한 모습은 오간데 없고, 굼뜬 중늙은이 모습만 남았습니다.

“얼마에 내놓았대요?”
“이십만 원.”

“엥. 얼마요?”
“이십만 원이면 완전 꽁짜백이여! 고물 갑또 이것 이상인디. 기계도 아직 멀쩡허고. 놀리믄 뭐해, 필요헌 사람이 써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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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사러 온 사람이 먼저 배를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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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배에 오른 임중선 할아버지 기계를 돌립니다.

할아버지 나 아직 팔팔하지?

할아버지 한시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에 여전히 느그적 거립니다. 배의 벗겨진 페인트에서 그동안 일손을 놓았던 흔적을 엿봅니다. 할아버지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배보러 온 사람이 먼저 배에 오릅니다.

그는 당당하게 저승사자처럼 눈을 치뜨고 닻과 기계실 등을 둘러봅니다. 뒤늦게 배에 오른 임중선 할아버지 기관실을 열어 시동을 겁니다. “텍텍텍텍~, 테르르르~” 기계소리가 그만 맥없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놈이 왜 근다냐? 야, 힘내!’

할아버지의 속마음을 알았는지 배는 힘찬 엔진 음을 내고 있습니다. 꼭 ‘할아버지 나 아직 팔팔하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배를 둘러보고 총총히 배를 몰아 사라집니다.

“어찌 됐대요?”
“연락헌다고 기다리라 했다능구먼. 연락이나 올란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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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사러 온 사람은 연락을 기다리라는 소릴 남기고 건너 윗 꽃섬으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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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왜 쓰고, 그리게 하셨을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거울?
[아버지의 자화상 1] 벼루, 먹, 우리나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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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거리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과거는 현재를, 현재는 미래를 나타내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삼십여 년 전.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여름철이면 정어리를, 겨울에는 돔을 주로 잡았던 듯합니다.

지금은 물고기 씨(?)가 말라, 어민들이 삶의 터전인 황폐화된 어장을 떠나는 실정이지만, 이때만 해도 고기가 넘쳐 났지요. 특히 기억되는 건 잡아온 정어리를 털 때, 그물 뒤에 서서 땅에 떨어지는 정어리를 줍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광경입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에게 뭐라 한 마디 하실 법도한데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제가 재미삼아 주어온 정어리로 만든 찌개는 아버지께서 가져오신 것 보다 ‘더 맛있었다’는 순전히 혼자만의 별난 기억도 있습니다. 굳이 정어리를 주어올 필요가 없었는데도 사람들 속에서 주웠던 것은 눈망울을 크게 뜨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입니다.

초등시절, 붓글씨와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게 하셨던 ‘아버지’

제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하게 각인(刻印)되었던 무렵은 초등학교 사학년 때였습니다. 이때 당신은 붓으로'一'자(字)와'l'자(字)를 쓰게 하시고, 우리나라 지도를 사실대로 그리게 하셨던 기억입니다.

당시, 벼루와 먹을 가져오라시며 화선지 대신 신문을 펼쳐놓고, 벼루에 물을 부어 먹 가는 법을 일러주셨죠. 그리고 ‘이렇게 해 봐라’ 했던 아버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대한 저는 당시 팔 아픈 줄도 모르고 내내 먹만 갈았었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는 붓에 먹을 묻혀 신문 위에 ‘ㅡ’자만 쓰게 하셨지요. 그 후에는 ‘l’자만 썼었지요. 그 때, 왜 아버지는 똑 같은 글자만 쓰시게 하실까? 의아했지요. 덕분에 그렇잖아도 튀어 나온 입이 더욱 튀어나왔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붓글씨를 배운 후 아버지는 위도와 경도를 그리는 방법을 일러 주시며, 도화지에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게 하셨습니다. 위도와 경도 그리는 데는 자와 콤파스, 지우개 등이 필요했지요. 자로 간격을 재고, 그 간격에 맞게 도화지에 그리는 작업은 많은 신경을 써야 했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지우고 다시 그려야 했었지요.

위도와 경도가 그려지면 우리나라 지도의 외곽선을 옮겨야 했구요. 우리나라 지도 그리기는 꼭 압록강에서 시작해 압록강에서 끝이 났지요. 제일 쉬웠던 부분은 두만강과 남해안이었던 거 같습니다. 제일 어려웠던 곳은 영일만 부근의 호랑이 꼬리와 서해안이었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고기 잡으러 가실 때는 의례히 '一','l'쓰기와 지도 그리기는 숙제로 남았고, 오시면 검사를 맡아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칭찬과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유년(幼年)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입니다. 이 과제는 5학년까지 계속되었고, 이후로 아버지의 숙제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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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런 것이겠죠?

세상을 넓게 보고 큰 뜻을 품어라 시던 ‘아버지’

당시에 저는, 아버지가 내려주신 과업(課業)을 나름대로 즐겼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 아마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은 나만의 숙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 먹을 갈던 때의 부드러운 감촉, 우리나라 지도를 그린다는 사실에 대한 흥분 등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 졸업 후 3년여 동안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때로 다른 과목을 대신 채우곤 했는데,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면 ‘선생님 지도 참 잘 그리네요!’ 하는 소리를 듣곤 했지요. 그만큼 지도 그리는 데에는 뿌듯한 자신감이 묻어 있지요. 이것이 제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흔적입니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一'자와'l'자만 왜 쓰게 하셨을까? ‘人’(사람인)과 ‘ㆍ’(점, 마침표) 와 서예가들이 즐겨 쓰는 도(道)ㆍ불(弗) 등 폼 나는 다른 글자들도 많은데…….

또한 아버지는 우리나라 지도를 왜 그리게 하셨을까? 민족의 비극이었던 6ㆍ25를 겪었던 아버지는 왜 남쪽만 그리게 하지 않고, 남과 북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도(全圖)를 그리게 하였을까? 등이 많이 궁금했지요.

지금은, 아마 ‘말을 아끼면서 한 길로, 자신을 세워가라’, ‘우주의 중심인 우리나라만 제대로 알아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넓게 보고 큰 뜻을 품어라’ 는 뜻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느낌입니다.

아버지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여쭤보질 않았습니다. 아니, 굳이 여쭤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론 꼭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뭐라 말씀 하실까? 궁금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저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둘을 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까?’ 걱정입니다. 지인들은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아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지녀라”는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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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정박한 배, 그리고 그 위를 다니는 새?

지금 제가 주제넘게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까?’ 감히 생각하는 건, 대책 없이 결행했던 결혼과 부모로서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들을 낳고 기를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고민을 아는지 아내는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삶 속에서 부모가 몸소 보여주는 것 이상의 교육은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부여한 과제(課題)는 혹여 ‘당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은 아니었을까?’ 막연히 추측하며, 오늘도 내일의 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적에도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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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잠?’ 혹은 ‘인생=바다?’
[범선타고 일본여행 17] 잠자리와 시조(詩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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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에서의 사색.

여행은 먹거리도 먹거리지만 잠자리가 편해야 합니다. 쌓인 피로 푸는 데는 깊은 잠이 최고니까요. 잠자리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유형을 살펴볼까요?

# 1. 누우면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다.

범선타고 시작한 7박 8일의 일본 여행길. 피로 덕에, 누우면 ‘푹 자야지’ 할 새도 없이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습니다. 도둑이 훔쳐가도 모를 만치. 아마, 이렇게 잠들지 않았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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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에서의 잠.

                     다 부르지 못한 노래

                 내가 나를 지우고 싶다
                 무력(無力)만을 즐겨온 나

                 이성(理性)을 갉아먹고도
                 부화 못한 너로 하여

                 그 숲속
                 헤매온 낮과 밤
                 허울도 벗기고 싶다

                 부질없이 쌓은 탑
                 그 오만도 다 지우고

                 죽어서도 피어나는
                 가슴 속에 물린 씨앗

                 지니고
                 떠난 어머니의
                 푸른 향낭이고 싶다

                                 - 시조시인 ‘송길자’ 님의 <다 부르지 못한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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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서 본 바다.

# 2. 파도에 흔들리는 게 요람 같다.

자느라, 출렁이는 배에서의 잠자리가 어떤지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기발하게 표현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조병기 신부. 정말 신부다운 말씀을 하십디다.

“배라서 잠자리가 불편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파도에 출렁이는 것이 꼭 엄마가 아기 안아 흔들흔들 얼러 재우는 것처럼 포근하대. 배가 요람이야, 요람!”

‘어쩜 이리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감탄에 감탄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배에서의 잠자리가 요람이었던 것 같더군요. 조 신부님의 표현에 대한 답가(答歌) 하나 읊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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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의 밤.

                       배(船)

                 노 저어
                 건너가는
                 하루해는 바다인 거

                 뒤웅박 같은 내 배
                 휘말리는 높은 파도

                 뱃머리
                 돌리는 하늘가
                 떠오르는 저녁별

                                         - 시조시인 ‘송길자’ 님의 <배(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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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기 신부.


# 3. ‘불면의 밤’ - 멀미에 혼자 울다.

바뀐 잠자리로 힘든 사람은 죽을 맛이었을 겁니다. 여행 동안 힘들어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순애 문인화가(文人畵家). 그의 심정 들어 보실래요?

“출항하자마자 멀미에 시달렸어요. 첫날부터 막막한 여행길이 될까봐, 혼자 누워 울었어요. 눈물이 나오데요. 배가 정박한 후,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좋더라고요. 배려해 주는 사람도 생기고. 배려를 배운 것 같아요.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 같구요!”

혹, 첫날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이순애 화가께 ‘송길자’ 시조시인의 <불면의 밤>을 뒤늦은 선물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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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애 화가.

                           불면의 밤

                 욕망을
                 불지르고
                 버텨온 자존도 헐고

                 한 가닥 양심 가책
                 촛불처럼 꺼진 날들

                 차라리
                 바다 깊숙이
                 수장되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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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바다는 두렵다. 왜? … 잔잔하지 않으면,

이제,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야합니다. 함께했던 소설가 양원옥 님은 바다 여행에 대해 이렇게 평합니다.

“바다는 잔잔할 때는 괜찮은데 그렇지 않을 때는 두렵다. 사람이 물에서 태어났는데도. 상황이 언제 어떻게 될 줄 모른다. 육지 여행은 즐거운데 바다 여행은 그래서 두려운 것.”

잠이 내일을 지탱하는 힘이듯, 두려움의 경험도 새로운 용기가 되겠지요. 그래서 ‘여행=잠?’ 혹은 ‘인생=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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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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