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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심상찮았던 구리로 만든 남해사 ‘청동 반가사유상’
서현스님이 현몽
 후 안동서 발견했다는 ‘청동 반가사유상’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본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어”





웃는 듯 마는 듯, 염화미소...






“반가사유상 전시 소식 들었어요?”


혜신스님 물음입니다. 목 넘김이 부드러운 녹차 맛만큼이나 맛난 소식입니다. 그렇잖아도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특별전이 지난 달 24일부터 오는 6월1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이란 소식을 들었지요.


무척 반가웠습니다. 반가사유상 전시 소식이 반가운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아직까지 국보로 지정된 적 없는 ‘청동’ 반가사유상의 진품 여부를 따질 절호의 기회지 싶어 섭니다.






첫눈에 심상찮았던 구리로 만든 남해사 ‘청동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재 전시 중인 우리나라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금으로 만든 ‘금동’입니다. 금동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비로운 미소를 띤 채, 깊은 사색에 잠긴 표정에, 무한한 평정심과 숭고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 일본 반가사유상은 ‘나무’입니다. 이 목조 반가사유상은 “7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며, 녹나무로 만든 11개의 조각을 끼워 맞춰 완성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불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을 직접 감상하는 즐거움은 아주 클 것입니다. 반가사유상의 문화재 등록 현황은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11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보물 제331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보물 제64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등 대부분 ‘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서 전시중인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 만남전


 

 


각설하고, 청동 반가사유상을 처음 본 건 지난 해 6월 즈음입니다. 여수 남해사 법당의 부처님을 뵙던 자리에서였습니다. 첫 눈에 심상찮았습니다. 다리 한쪽을 올리고 턱을 괸 이상한 형상이었습니다. 특히 녹이 잔뜩 낀 모습이 괴기스러웠습니다.


스님께 여쭸더니, “구리로 만든 청동 반가사유상”이라더군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이후 수시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남해사 법당 오른쪽에 녹이 낀 불상이 있었습니다.


 

 



삼매경에 빠진 미륵보살, ‘청동 반가사유상’ 진품일까?




- 못 보던 이색 불상이 있던데 무슨 불상입니까?


“법당 좌측에 있는 게 아미타 부처님. 중간에 석가세존 본존 사리. 우측에 있는 게 구리로 만든 청동 반가사유상입니다. 반가사유상 처음 보시죠? 아주 귀한 겁니다.”




- 반가사유상이란 무엇 무슨 뜻입니까?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리고, 약간 앞으로 숙인 얼굴 왼쪽 뺨에 오른손을 살짝 괸 상태의 불상입니다.


한쪽 발을 올려놓았다 하여, 반가부좌의 줄임말인 ‘반가(半跏)’와 깊이 생각한다는 ‘사유(思惟)’에서 온 말입니다. 한 마디로 삼매경에 빠진 미륵보살입니다.”




- 이건 고증 받았습니까?


“반가사유상은 흙, 돌, 나무, 금, 구리(청동)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5개가 국보 혹은 보물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입니다. 반면, 우리 남해사 반가사유상은 ‘구리’로 만들었습니다.


문헌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반가사유상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 진품으로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문화재청 등이 고증하길 기대합니다.”




- 그동안 고증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예전엔 반가사유상 크기가 15~30㎝ 내외, 다시 말해 40cm 이하만 진품이란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우리 남해사에서 보관 중인 반가사유상은 높이가 74cm로, 너무 크다며 진품이 아닐 거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고증 받을 엄두를 못 냈습니다.


요즘엔 크기가 15㎝에서 2m까지 다양해 고증 받을 만합니다. 실제로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높이가 각각 83.2㎝와 93.5cm입니다. 이번 기회에 청동 반가사유상도 고증 받을 생각입니다.”



청동 반가사유상입니다.


 

 



서현스님이 현몽 후 안동서 발견했다는 ‘청동 반가사유상’




- 어떻게 남해사에서 청동 반가사유상을 모시게 됐습니까?


“청동 반가사유상을 발굴하신 서현스님께서 강원도 양양 불탑사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이걸 불탑사 의륜스님께서 우리 남해사에 ‘원만불사 성취를 기원하며 본조불 1위’를 창건 시주하시어 받아 모시고 있습니다.”




- 청동 반가사유상은 언제 발견된 것입니까?


“반가사유상은 경북 경주, 봉화, 안동, 영주 일대에서 주로 발견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집니다.


입적하신 서현스님께서 경북 안동시 서후면 애련암에서 수행하실 때 꿈에 계시를 받는다는 선몽 덕분에 안동 학가산 절터에서 2003년 2월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걸 사람들이 그저 땅속에 있던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했답니다.”




이렇게 시주 받았답니다.




- 청동 반가사유상을 발견하게 된 서현스님의 꿈,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서현스님께서 꿈에 안동 학가산 절터에 갔더랍니다. 가보니 부처님께서 땅 위에 서 계시더랍니다. 꿈에서 깬 후 실제로 학가산 절터 직접 가봤답니다.


둘러보니 땅위로 뭔가 솟아나와 있더랍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부처님 머리만 땅밖으로 나와 있더랍니다. 그걸 서현스님께서 발굴했다고 합니다.”




- 이 청동 반가사유상을 진품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검증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불교문화의 자부심인 반가사유상은 은은한 미소를 최고로 칩니다.


남해사에 보관 중인 청동 반가사유상도 미소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잔잔하게 웃는 듯 마는 듯한 고요한 미소가 일품입니다. 탄소 연대 측정 등을 통해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혹, 진품으로 생각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인 6∼7세기에 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남해사 반가사유상과 비슷한 것들이 시중에 더러 있습니다.


저는 주물 두께에 주목합니다. 다른 건 두께가 두꺼운데, 이건 훨씬 얇습니다. 주물 두께가 이렇게 얇은 건 오직 하나입니다. 이게 주물 기술이 매우 발달한 삼국시대 것이라 생각하는 근거입니다. 문화재청 등에서 검증하면 밝혀질 것입니다.”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사진 문화재청)



남해사에서 보관 중인 청동 반가사유상.

녹이 낀 상태라 문화재일 경우 시급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본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어”



스님과 이야기 나눈 후 진지해졌습니다. 만일 이 청동 반가사유상이 진품이라면? 없던 긴장감마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불상이거니,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문화재, 그것도 국보급일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겁니다.


어찌됐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감격이었습니다. 스님께 혹시 이 청동 반가사유상이 국보일 경우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여쭸습니다.



“20여 년 전 소더비경매장에서 1,000억 원에 경매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피식 웃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치에 눈이 먼 어리석고 아둔한 중생이라 놀리실까봐! 그러니 중생이지요. 사실, “국보 83호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특별전에 출품할 때 보험가를 약 500억 원으로 평가했다”고 하니,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곡선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참고로,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 지정은 “시·도 지정신청, 1·2·3·4차 검증, 문화재지정 고시, 문화재지정서 교부, 문화재지정대장 작성 등의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 가치 정도인 진품 여부가 밝혀진다”고 합니다.


문화재 지정을 신중히 하는 이유는 “황자총통처럼 모조 제작된 것을 교묘히 기만하여 국보로 지정 의결하게 했던 예”가 있어섭니다. 그렇다고 마땅히 지정돼야 할 것을 기피해서 안 될 일입니다.



혜신스님을 졸랐습니다. 어떻게 감상해야 해야 아주 잘 볼 수 있는지 등을 알고 싶었습니다. 스님께서 허허 하시더니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챙긴 이불을 마룻바닥에 깔았습니다. 법당에 들어가 넙죽 절을 하셨습니다. 녹이 잔뜩 낀, 투박한 청동 반가사유상을 들어 올렸습니다. 반가사유상이 마루의 이불 위에 놓였습니다. 반가사유상 감상법을 설명했습니다.



“이 청동반가사유상의 관상은 과거 현재 미래에서 가장 완벽한 상입니다. 미소는 참으로 아름다운 염화미소입니다. 특히 소량의 청동을 사용한 까닭에 곡선의 어울림이 완벽합니다.


다만, 불탑사에서 보관할 때 비가 새는 곳에 삼년간 방치하여 녹이 많이 생긴 점이 아쉽습니다.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다시 본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대로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 줘야 합니다.”



문화재 또한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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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안녕하셨습니까? 모두가 부처인 까닭
절집 비빔밥, 고추장 없이 먹어야 더 맛있는 이유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의 ‘부처님 오신 날’ 풍경

 

 

 

 

우리가 바라는 용화세상은...

 

 

나라의 평안을 빌고...

 

 

부처님이 어디 절집에만 있답디까?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대법회

 

 

연등을 접수하고...

 

나무 석가모니불!

 

 

 

어디 갈 데가 있다는 건 행복입니다.
반갑게 맞아 줄 이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어디로 갈까?

고민했습니다.

 

 

전남 여수 돌산 용월사 원일스님 등이 “석가탄신일, 오세요!”라고 요청하더군요. 하지만 올해 불사를 준비 중인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 청강스님에게 이미 마음을 허락한 뒤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몸은 따로 있되, 마음만은 하나였습니다.

 

 

 

관욕

 

 

관욕

 

관욕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법정스님 글귀 하나 읽고 가지요.

 

 

 

     산에 오르면


                               법정스님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있다네
  내 주위 가난한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부처라네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살아있는 지금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 마음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자네 마음이 부처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네

 

  여보시게 친구
  죽어서 천당가려하지 말고
  사는 동안 천당에서 같이 살지 않으려나?

 

  자네가 부처라는 걸 잊지 마시게
  그리고 부처답게 살길바라네
  부처답게…

 

 

그러게요. 법정스님 말씀이 백 번 천 번 맞습니다. 부처가 어디 산 속 절집에만 있답디까? 다들 세상에 널린 부처는 왜 보지 못한답니까? 천당과 지옥이 어디 저승에만 있답디까? 언제부터인가, 절에 스님만 있고 부처는 사라졌다더니 안타깝습니다. 그래 설까, 세상은 이미 아수라장입니다. 이걸 깨닫는 순간, 세상은 다시 용화세상이 되겠지요.

 

 

 

나무 석가모니불!

 

 

여항산 성불사 오세홍 종무원장

 

 

김영규 신도회 부회장 촛불 점등

 

 

정상식 신도회장 인사말

 

최명락 신도회 부회장 발원문 낭독

 

 

 

지난 25일 석가탄신일 새벽, 목욕재계했습니다. 아침, 속세에서 만남이란 시절인연을 타고 난 지인 두 분과 함께 창원 성불사로 향했습니다. 절집으로 가는 길, 지인이 암송하던 금강경을 직접 독송해 주신 덕에 귀와 마음 행복했습니다. 게다가 지인 자녀들이 절집에 함께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김밥으로 대신 싸준 덕분에 입까지 즐거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성불사 입구에 배치된 주차요원 신도님들과 인사 나눴습니다. 그들은 절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한 마음을 헤아린다는 듯 미소 지었습니다. 절집으로 가는 길에는 연등이 빙그레 길 밝히고 있었습니다. 공양 간에는 전과 고사리나물, 콩나물, 버섯나물 등 비빔밥 재료들이 푸짐하게 마련되었습니다. 한쪽에는 신도들과 나눌 떡을 싸고 있었습니다. 옆에서는 식혜로 목을 축이며 인사 건네고 있었습니다.

 

 

 

 

주차 봉사 등...

 

 

류지영 경기민요학원 부산지부 원장의 회심곡 음성 공양

 

배배갑종 이장님의 차량 봉사

 

 

10시, 여항산 성불사 오세홍 종무원장 사회로 ‘제2559년(2015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대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법회는 개회, 촛불 점등(김영규 신도회 부회장), 석문스님의 타종, 삼귀의 가창, 반야심경 독송, 봉축 점등(김갑남 신도회 부회장), 정상식 신도회장 인사말 등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이어 헌화 및 관욕, 예불 및 신중단 퇴공, 발원문 낭송(최명락 신도회 부회장), 청법가 가창, 청강스님 법문, 영단시식, 음성공양(회심곡-류지영 경기민요학원 부산지부 원장), 사홍서원 가창, 산회가 가창, 불자님들 상호 인사, 폐회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경남 창원 여항산 성불사 주지 청강스님이 신도들께 인사 올립니다.

 

 

법당 밖에도 신도들이 앉았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부처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법문에 나선 청강스님의 엉뚱한 일갈(一喝)에 신도들 의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내 밝은 표정이 되었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이치를 아는 게지요. 그들은 법정스님께서 속세에 천지라던 그 부처님들이었습니다. 속세의 부처님들이 절집에 찾아든 겁니다. 그래서 청강스님은 절집을 찾은 속세 부처님들께 문안 인사를 올린 것입니다. 

 

 

“다들 눈을 감아 보세요. 자 이제 눈을 뜨십시오. 이게 바로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입니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눈을 뜨면 환하고 밝은 세상이 보입니다. 이렇듯 밝은 세상을 만들려고 부처님이 오신 겁니다.”

 

 

 

 

 

석문스님

 

 

후삼국시대, 궁예는 현세에서 용화세상과 미래불을 꿈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용화세상과 미래불을 맞이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어갔습니다. 왜일까? 항간에선 궁예가 욕심에 빠져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체를 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까 욕심으로 인해 백성을 등졌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이는 현실을 직시하는 ‘정견(正見)’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꿈을 이루고 싶다면 자기가 갈 길을 제대로 바르게 나아가야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초발심을 일으켜 행하면 그게 행복입니다.”

 

 

청강스님은 그러면서 불교 수행의 8가지 올바른 길인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정(正定) 등 ‘팔정도(八正道)’를 강조하셨습니다. 이게 어디 쉽습니까? 그래서 수행이 필요하겠지요. 법당 앞 공중에는 연등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습니다.

 

 

여항산 성불사 비빔밥

 

 

 

 

“절집에서 먹는 비빔밥은 고추장 없이 먹어야 더 맛있어.”

 

 

부처님 오신 날 나누는 공양, 맛있게 먹는 법입니다. 고추장 없이 먹어야 신선한 각 재료의 맛이 그대로 우러난다는 겁니다. 그래도 속세의 입맛에 맞춰 드시고 싶다면 입맛껏 드시는 것도 한 방편입니다. 다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라는 말만 기억하면 됩니다. 하여튼, 공양에는 많은 공양주 보살들의 보리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공양 준비

 

 

과일 공양 준비

 

 

떡 공양 준비 

 

설거지 공양

 

 

부처님께서 살아생전 제자들과 함께 탁발한 음식을 한 톨 남김없이 맛있게 드셨다고 합니다. 왜냐? 때문이 아니라 덕분에…. 이로 보면 음식 나누는 즐거움은 곧 부처되는 지름길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인 자녀들이 싸준 도시락도 열반으로 가는 공덕이지 싶습니다. 모두 성불하시길!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김갑남 신도회 부회장의 절

 

 

나무 석가모니불!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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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숨 쉬게 한, 절집 용월사에서의 긴 하룻밤 

 

“때론 넘치게 두는 것도 비우는 한 방법이지요!”

 

 

 

 

 

여수 용월사입니다.

 

 

여수 갯가길 1코스 중, 돌산 월전포와 삼섬 풍경입니다.

 

 

용월사 가는 길입니다.

 


‘올 한 해 잘 살았을까?’

 

 

언제나처럼 또 연말입니다. 이 시점에 서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그저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지나 온 시간을 돌이켜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중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이럴 때 훌쩍 절집으로 떠나곤 하지요.

 

 

“스님, 하룻밤 쉬고 싶은데…. 일행이 있습니다.”
“언제나 오십시오.”

 

 

거절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또한 쉴 곳이 있다는 게 천만다행입니다. 이럴 때 삶이 고맙지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여수 갯가길을 걸었습니다. 돌산 월전포 앞 삼섬이 눈에 포근히 들어오더군요. 자연은 인간을 스스럼없이 꼭 안아주었습니다.

 

 

- 여수 갯가길 걸어 보셨어요?
“아니. 말로는 들었는데 걷는 건 이번이 처음일세.”

 

 

- 허허? 고향 길에 난 여수 갯가길을 안 걸었다니 의왼데요?
“그러게. 초등학교 다닐 때 수업 마치고 소 꼴 먹이곤 했던 곳인데…. 예나 지금이나 풍경은 끝내주는군.”

 

 

 

 

 

이곳에 서니 절로 시인이 됩니다.

 

 

지인이 감탄 중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 갑니다.

 

 

나보다 먼저 승진한 이는 나를 밟고 일어선 사람?

 

 

 

겨울 속 여수 갯가길은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갯가길을 걷는 갯가꾼들과 종종 마주쳤습니다. 많은 사람 중, 유독 한 지인과 자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자체가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은은한 향을 지녔던 지라 더욱 즐거웠지요. 지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 나이 60 이후 달라지는 게 있던가요?
“많지. 앞만 보며 직장 다니고 있을 땐 몰랐어. 예전엔 용서되지 않은 것들이 나이 먹으니 자연스레 다 용서가 되데. 그래 마음이 편해. 욕망으로 가득했던 마음을 하나 둘 내려놓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

 

 

- 어느 것이 용서 되지 않던가요?
“나를 더럽게 밟고 딛고 일어선 사람들은 얼굴조차 보기 싫었어. 그래도 봐야하니 불편했지. 그 사람들이 건네는 악수도 꺼려했지, 심지어 일부러 피했으니까. 그런데 60이 넘으니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까지 만나면 먼저 가서 인사하게 되더라고. 세월이 내게 너그러움을 선물한 것 같아.”

 

 

지인이 애써 피한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웠습니다. 그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이처럼 속세는 말 그대로 속세였습니다.

 

 

 

 

무량광전입니다. 

 

 

수행 중인 원일스님.

 

 

여수 용월사 무량광전에서 본 풍경

 

 

 

- 어떤 사람을 피한 거죠?
“직장 생활에서 나보다 먼저 승진한 사람은 나를 발판 삼아 일어선 사람이라 봐도 무방하지. 그 중 나를 음해하고 올라선 사람들이 있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을…. 그들을 미워했지. 지금 생각하면 시기만 다를 뿐 다들 승진하는 거였는데, 그땐 먼저 승진해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 왜 그랬을까?”

 

 

- 피했던 사람들은 자기를 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모르지. 혼자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상대방이 알게 하면 되나. 모르니까 만나면 반갑다고 악수하려 손을 내밀었던 거지. 지금은 용서까지도 내려놨어. 아무래도 용서에도 때가 있나 봐. 세월은 사람을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거 같아. 이게 자연이지.”

 

 

자신의 마음을 갈무리 하는 내공이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혼자만 간직했던 비밀을 아낌없이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온몸을 바쳐왔던 삶에서 얻은 결과를 전해주는 자체가 고마움이었습니다. 이심전심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나무 석가모니불!

 

 

낮은대로 임하소서!

 

 

 

“때론 넘치게 두는 것도 비우는 한 방법이지요!”

 

 

걷다 보니, 어느 새 용월사 앞이었습니다. 스님에게 하룻밤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기꺼이 마음 한 칸을 내어 주셨습니다. 겨울, 절집에서의 하룻밤은 무척이지 길었습니다. 그 긴 밤을 가득채운 건, 파도 소리와 녹차 및 해수 관음보살의 미소였습니다. 이런 자리에 선문답이 빠질 수 없었지요.

 

 

- 스님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안 되면 방법을 달리 하세요.”

 

 

- 어떻게요?
“애써 내려놓으려 하지 말고, 자연스레 그냥 흘러넘치게 두세요. 비우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때론 넘치게 두는 것도 비우는 한 방법이지요.”

 

 

헉. ‘비우면 채워진다!’는 세상 이치에 얽매여, 늘 마음을 비우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비우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욕심과 욕망 등 나를 둘러싼 것들을 내려놓은 것 같으나, 실상은 욕망의 틀 속에 갇힌 여전한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자만심이 가득했던 게지요. 스님이 잡보장경의 한 구절을 던졌습니다.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동백이 만발합니다.

 

 

새벽 예불 전 도량석 중입니다.

 

 

법당 불 밝히는 원일스님.

 

 

새벽 3시 30분. 새벽 예불에 나섰습니다. 혼탁한 가슴에 맑음이 내려앉았습니다. 예불을 마치신 스님 한 마디 하시더군요.

 

 

“매일 같이 부처님을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떤 날은 방긋 웃었습니다. 어떤 날은 말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인상 쓰고 계신 날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10년. 드디어 알았습니다. 매일 달랐던 부처님의 형상이 실은 내 마음 속에서 왔다는 걸.”

 

 

스님께서 언제나 하시는 염불, “나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나무 원만보신 노사나불! 나무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속에는 우주 진리를 밝힐 그 뜨거움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인과 스님은 선각자였습니다. 다만, 가여운 중생만이 그걸 모르고 지나쳤을 뿐….

 

 

이렇게 한 해 마무리 중입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온 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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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7 23:00

[장편소설] 비상도 1-23

 

 “도리어 큰소리치며 자본주의 운운하더구나.”

그곳에는 경제만 있고 정신은 없었느니라!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법당이야 스승님 계실 때부터 있어 온 것이니 손 댈 것도 없었고 가끔 마을 사람들이나 지나는 행객들이 찾는 곳이니 그대로 보존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음날 비상도는 그 일을 구체화시킬 구상을 하며 산 정상에 올랐다. 밤새 내린 눈 위로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누군가는 눈을 반기지만 또 누군가에겐 혹독한 시련인 게야.”

 

 

 그가 집으로 내려왔을 때 용화가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스승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비상도 보아라. 그동안 무탈하였느냐? 남재 소식은 듣지 못하였느냐? 나는 내가 찾고자 하는 사람을 어렵사리 찾기는 하였으나 그자는 이미 죽고 그의 아들을 만나 그의 아버지가 내 가족에게 끼친 해악과 조국에 저지른 죄상에 대해 사과의 말이라도 듣고자 하였으나 그는 도리어 큰소리치며 자본주의 운운하더구나.

 

 

 나를 푼돈이나 얻으러 온 인사쯤으로 여기니 내내 불쾌하여 몇 날을 생각하다 처음으로 찾은 내 조국이 싫어져 다시 중국으로 들어오고 말았느니라. 재벌의 입에서 나옴직한 말이긴 하다만 그래도 한 때 나라의 차관을 지냈다는 자가 그 모양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 그곳에는 경제만 있고 정신은 없었느니라.


              ―중략―

 

 너는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마라. 언젠가 쓰일 곳이 있을 것이니라. 언제든 남재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하면 한 걸음에 달려가마.』

 

 

 오랜만에 스승님의 글을 대하니 반갑기는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마음 깊숙이 체증이 실린 것 같아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몇 차례 시내에 나가 더러는 힘으로 또는 술로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삭이려 했지만 또 다른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 서서히 끓어올랐다.

 

 

 그것은 나라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야만 했던 독립투사의 후예가 이 나라를 향해 내뱉는 한 맺힌 절규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스승님은 편지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하기야 동토의 땅에 파묻혀 떨고 있을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여태 못 거두어들인 마당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비상도는 이 대목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과연 이 같은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을 사람이 이 땅에 몇이나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이라면…….”

 

 

 그는 조금 전 집 짓는 일을 구상했던 자신을 질책하며 힘차게 손을 뻗어 소나무를 내리쳤다.

 

 

  “뚜두둑!”

 

 

 나무둥치가 부러지며 쌓인 눈이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습성이 그러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밥상 차려놓으니 파리 떼가 달라 들었다. 해방이 되자 일제에 빌붙어 그들의 주구노릇을 해대던 인간들이 염치없이 애국자로 둔갑하였고 권력의 편에 기생하며 이득을 챙기고 요직을 두루 장악하였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대우했다가는 자신들의 친일행적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여 입에 거품을 물고 반민특위를 반대했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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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22

 

"향기가 목 안으로 감기면서 바람소리를 내거든요.”
소요유, 구속 없는 절대자유 경지에서 노니는 것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식사를 마친 후 성 여사는 별채에 있는 법당으로 올라갔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부처님 앞에 앉아 있었다. 용화가 궁금했던지 몇 차례 살피고 왔어도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성 여사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비상도의 방에 마주 앉았다.

 

 

  “스님, 사는 것이 왜 이리도 허무한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한참을 뜸을 들인 그녀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스님께서 다녀가신 그 다음 해 겨울에 남편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어쩌다가? 정정하신 줄 알고 있었는데.”

 

 

 비상도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고였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연쇄충돌사고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가고 오는 것이 창졸간이긴 하지만…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용화가 차를 끓여 내어왔다. 초순에 잎을 따서 가루로 만들어 두었던 솔잎차였다.

 

 

  “향기가 너무 좋은데요?”
  “저도 마음이 울적할 땐 이 차를 마시곤 합니다. 향기가 목 안으로 감기면서 바람소리를 내거든요.”

 

 

 비상도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남재 형의 일과 스승의 일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 말이 위로가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날 오후에도 법당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서울로 돌아갔다. 그녀는 가면서도 용화 손을 잡고 한참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상도가 그녀를 마을 아래까지 배웅하고 돌아올 때는 서서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아침상을 물린 남재 형이 스승님께 말을 걸었다.

 

 

  “스승님, 성탄절 날 눈이 오네요.”
  “창을 열고 구경을 하고 싶으냐? 눈을 밟으며 걷고 싶은 것이냐?”
  “눈을 밟으며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싶습니다.”

 

 

 형의 대답에 스승님은 잠시 추억에 잠기시는 모양이었다.

 

 

  “창을 열고 데운 술로 긴 밤을 새우고 싶구나.”

 

 

 비상도는 자신의 마음이 꼭 그날의 스승님 마음을 닮은 것 같아 산을 오르면서도 눈이 옷에 수북이 쌓이는 것도 잊었다.

 

 

 비상도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을 새롭게 꾸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꿈꾸어 온 것이었고 이미 ⌜소요정(逍遙亭)⌟이란 당호도 지어놓은 상태였다.

 

 

 소요정이란 말은 장자(莊子)의 내편(內篇) 제 1장에 나오는 소요유(逍遙遊)에서 따온 말이었다.

 

 구속이 없는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에 얽매인 현실을 초월하여 세속적인 이해나 득실, 시비나 생사 등의 고정관념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스승님께서 소망하신 바람이기도 했다.

 

 

 날으는 새가 걸림 없이 창공을 누비듯 그렇게 살고 싶었다. 조작하지도 그 어떤 목적도 갖지 않는 자연 속에서 자신 또한 누구에게 간섭 받지 않으며 산 중의 꽃처럼 그렇게 살아보리라 했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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