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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 강천사 단풍놀이에 빠져 보니...

마누라가 못 먹게 해서 감기 걸렸다. 병원 간다!

 

 

 

 

 

 

 

 

단풍이 한창이더니 이제 막바지입니다.

변화의 연속입니다.

그 변화 속에 함께한다는 건 행운이지요.

 

 

저희 부부요, 지난해까지 5~6년간 부부만의 단풍구경을 다니고 있습니다.

장소는 대부분 고창 선운사를 끼고, 주변을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그러니 이 일대 단풍 물듦에 대한 식견이 쪼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눈썰미를 한 방에 쪽팔리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전북 순창 강천산이나 전남 순천 조계산에 가자는디, 니도 갈래?”

 

 

지인의 물음에 어디든 좋다했습니다.

부부 동반이라니 더 좋았지요.

남자들끼리 작당한 곳은 조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뒤집혔더군요.

이유인 즉, 아내들이

 

“조계산은 가보고, 강천산은 못 가봤다고 강천산을 강추했다.”

 

는 거였습니다.

저희는 강천산에만 갔지, 강천산은 못 오른지라, 어디든 상관없었습니다.

 

 

이렇게 강천산 단풍 여행에 나섰습니다.

워매~, 워매~, 차가 얼마나 밀리는지….

마음 급한 사람이 박차고 나선다고, 차를 두고 2km를 걸어 강천사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걷기에 나서고 얼마 있지 않아 차가 뻥 뚫리지 뭡니까.

아~, 그 황당함이란…. 단풍 구경과 더불어 걷기 위한 여행이라 위안 삼았습니다.

 

 

단풍이 구경꾼 정말 많더군요.

저희 부부 사람 몰리는 곳은 대개 피하는데 이날은 직접 그 속에 함께 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일부러라도 꾸역꾸역 찾아드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그건, 절정 때 봐야 그 참 맛을 즐기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지인들과  만나니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립니다.

 

 

 

 

 

 

 

 

“25년 만에 지인을 만나러 부산에서 군산으로 갔는데, 어쩐지 알아?”

 

 

그동안 늘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사람이었답니다.

같은 직장에 다녔는데, 5~6년간 부부가 서로 엄청 친했다더군요.

그동안 가끔 전화만 하다가 이번 참에 용기를 내 지난 금요일 날 만나기로 했다네요.

 

그런데 지인을 만나러 가기 전 이런 마음이 들더래요.

 

 

“내가 한 번 갈까? 하면 상대방이 예의상 함 와라, 그럴 때가 있잖아.

서로 어떤 상황이고, 어찌 변했는지 몰라 부담 가질까봐 호텔을 예약하고 만나러 갔다.

근데 걱정이 되더라. 그 친구가 날 반기지 않으면 어쩔까? 하고.

나만 보고 싶어 하는가? 하고.”

 

 

보고 싶으면 만나면 되는데, 서로 배려하느라 별의 별 걱정을 다했더군요.

세월이 한 때 아주 친했던 벗들을 조심스럽게 만든 셈이지요.

 

근데, 이 소릴 듣고 보니,

‘아~ 참 멋있다!’란 생각이 들대요.

가슴에 새겨 둔 이런 벗이 있었다는 자체가 부러움이었지요.

지인이 내린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대만족이었다.

날 엄청 반겨주는데 고맙더라고.

사람들 얼굴 보면 표정에 쓰여 있잖아.

잘 만났다 싶었어.”

 

 

우리 나이로 60인 지인.

살아보니 그리운 사람은 간혹 보며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나 봅니다.

그리운 사람은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까지 25년이 걸린 셈입니다.

서로 실망하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나눴을 지인을 생각하니, 괜히 옆에서 더 흐뭇하더군요. 

 

 

 

 

 

 

 

 

 

 

“아~, 예. 스님, 월요일 아침 일찍 가겠십니더~”

 

 

이건 또 무슨 소리?

전화 내용의 궁금증을 참고 있는데 그럽디다.

 

 

“내 나이 오십 여덟에 다시 취직되었다. 그것도 통도사에.”

 

 

그 소리에 지인들 환호를 부르며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통도사 인근에 들어설 요양병원의 실장으로 일하기로 했다나.

 

그러니까 토요일에 올 줄 알았는데,

지인이 오질 않아 통도사 스님께서 찾는 전화였습니다.

 

 

순창 강천산 단풍구경은 눈 호강 못지않게 삶의 즐거움까지 더했습니다.

더 재밌는 건 단풍놀이 뒤끝이었습니다.

 

 

 

 

 

 

 

 

 

지인들에게 단풍놀이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해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이에 고맙다는 답신이 왔더군요,

거기에 쓰인 60 언저리 친구들끼리의 재밌는 사생활에 눈이 번쩍였습니다.

 

 

"니 짧은 생각으로 월욜 아침부터 ‘○○ 줄라꼬 만든 생강차를 우리 마누라가 못 먹게 해서 감기 걸렸다. 그래서 병원 간다’고 내한테 문자 보내모 내가 우짜노? 연세를 드시면 조금 너그러워져라. 아이고. ㅋㅋㅋ”

 

 

알고 보니,  지인 아내가 남편 친구 준다고 생강차를 만들어 남편은 안 주고, 남편 친구에게만 줬나 보대요.

 

거기에 질투(?)가 났나 보더라고요.

암요. 각시가 남편은 안 챙기고 다른 친구만 챙기면 화나지요.

그런데 그 친구는 속도 모르고 이렇게 자랑이대요.

 

 

“선물준답시고 만들어 온 걸 니가 먼저 개봉해 묵어버리모 니 부인이 양심에 허락안하니 그랬겠지?”

 

 

친구 지간에 격의 없이 지내는 거 보니 엄청 부럽더군요.

이런 벗 있으면 좋으련만….(부러우면 지는 거. 그러고 보니 많이 있네요!)

메일 내용이 여기까지였다면 중년 남자들의 그렇고 그런 우정 정도로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마무리가 죽이더군요.

 

 

“아직 학기가 5주나 남았으니 감기 걸리모 우짤까 싶어 살짝 긴장했는디….

0 사장님 부부에게 고맙다 칼라 캤더만, 니 빼고 00씨 한테만 고맙다 칼란다. ㅋㅋㅋ.

그러나 저러나 감기 걸리서 우짜꼬? 내가 위문방문 가까? 푹 쉬고 잘 이겨내라.

친구들아 사랑한데이.”

 

 

메일을 읽고 나서 한동안 눈만 꿈뻑꿈뻑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왜냐면 38년 지기 벗들 사이의 투박한 메일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여기에는 대학 입학 동기들이 38년간이나 만남을 쭉 이어 온 이유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배려, 그리고 또 배려….

<무릇 친구란?>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런 친구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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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30

 

 

“저희들이 몰라 뵈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또 다른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조폭의 보스가 싸움을 중지시킨 것은 바닥에 쓰러진 자들의 숫자가 사십 명을 넘어설 때였다.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저희들이 몰라 뵈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릎을 꿇고 길을 내어드려라.”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셈이었다.

 

 

  “다친 자는 어떻게 할 셈이오?”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의 존함을 듣고 싶습니다.”
  “비상도라 하오.”

 

 

 그가 옷매무새를 고치고 막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보스가 크게 외쳤다.

 

 

  “빨리 문 잠가!”

 

 

 밖에 수십 명의 경찰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밖에서 이 광경을 본 누군가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경찰은 밖에서 잠긴 문을 계속해서 두드려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식당 종업인인 것처럼 행동하셨다가 기회를 봐서 빠져나가십시오.”

 

 

 비록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적이 되어 싸움을 했지만 뛰어난 무예실력을 보여준 상대에 대한 그들만의 의리요 배려인 셈이었다.

 

 

  “고맙소.”

 

 

 출입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한꺼번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모두 엎드려!”

 

 

 경찰은 조직폭력배들끼리의 이권 다툼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고 그들은 난입하자마자 모두를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우선은 다리뼈가 부러지거나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자들을 급히 병원으로 후송한 다음 세 명씩을 한 조로 하여 경찰차에 태웠다.

 

 

 경찰 몇몇은 주방에 있던 비상도를 슬쩍 보긴 했으나 설마 나이께나 들어 보이는 저 사람이 조폭일까 생각했던지 곧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음날 아침 비상도는 신문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혹시 숙소에 검문이라도 닥칠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그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찜질방으로 몸을 숨겼던 것이다. 신문을 펼쳤다. 머리기사가 눈에 뛰었다.

 

 

  『비상도, 혼자서 조폭 50여명을 상대, 무려 40여명 혼절시켜! 비상도는 보스가 탈출 도와!』

 

 

 읽기에 따라서는 비상도를 영웅화시키는 문구였다. 그 아래에 적힌 기사 또한 그런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영웅은 난세에서나 있음직한 일이였다. 하지만 오랜 치세에 색다른 맛을 찾고 있던 사람들은 또 다른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조폭을 때려눕힌 자신을 무림의 고수로 묘사하고 조폭의 보스에게 조차도 그의 탈출을 도운 의리에 대해 미화 하는듯한 글을 적었을까 싶었다.

 

 

 별의별 추측성 보도가 난무했다. 조폭의 말을 빌려 민족무예일 것이라는 설과 쿵푸라는 설 심지어는 소림권법의 대가일 것이라는 등 추측성 보도가 줄을 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조간신문을 본 천 경장은 깜짝 놀랐다. 그 역시 무려 50여명의 조폭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 그들 모두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더 흥미를 가졌다.

 

 

 지난번 나이트클럽 앞에서 여섯 명을 제압한 사건에 대해서는 보지 않았으니 뭐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상대는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조직화된 조직폭력배들이였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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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12

 

 알았다는 것인가? 모르겠다는 것인가?

 “너 같은 놈을 보니 선생님들의 고충을 알겠어.”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비상도가 다가서서 차문을 두드렸다.

 

 

  “왜요?”

 

 

 창문을 내린 젊은이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는 듯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내가 손으로 불빛을 가리는 게 보였을 텐데…….”

 

 

 그냥 지나치고도 남을 일을 그의 마음속에 든 분노가 그를 멈추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불빛으로 남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 달리는 차도 아니고 정차를 했으면 전조등은 껐어야지. 더구나 앞에서 사람이 강한 불빛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어.”


  “참 재수 없으려니…….”

 

 

 젊은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창문을 올렸다. 다시 비상도가 문을 두드렸다.

 

 

  “아니, 왜요?”


  “알았다는 것인가? 모르겠다는 것인가?”

 

  “내 차 가지고 내 맘대로 하겠다는 데 참 기가 막혀서…….”


  “자신의 몸도 자기 뜻대로 하기 어렵거늘 네 것이라고 마음대로 한다? 그럼 내 손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로 들리는데?”


  “왜요, 한 대 치시게요?”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던 어른들이 혀를 찼다.

 

 

  “참, 어른에게 하는 말버릇하고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뭐라고 했다가는 몰매 맞는 세상이 아닌가?”


  “맞아. 젊은 놈이 상전이지. 눈 귀 막고 입 꿰매고 있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해.”

 

 

 차에서 내린 젊은이는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체 건들거리며 슬슬 웃기까지 했다.

 

 

  “너 같은 놈을 보니 선생님들의 고충을 알겠어. 체벌은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야. 방금 네 놈이 나더러 치겠느냐고 물었지. 물론 그럴 생각이야. 네놈은 두 대를 맞아야겠어. 한 대는 네놈에게 내리는 벌이고 또 한 대는 자식을 잘못 가르친 너의 부모가 맞아야 할 매인 것이야.”

 

 

 말을 마친 비상도가 손을 뻗어 그의 열결과 수삼리를 가볍게 눌렀다. 열결은 손목 바로 위의 급소였고 수삼리는 팔꿈치와 손목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었다. 당장 숨이 넘어갈만한 치명적인 곳은 아니었으나 무거운 통증이 오래 지속되는 자리였다.

 

 

  “헉!”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그가 두 팔을 길게 늘어뜨렸다.

 

 

  “병원에 가도 맞았다는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할 게야. 한 사나흘 운전대를 놓고 생각해 봐. 내가 네 놈에게 어른 앞에서 고개를 숙이라는 교훈을 준 것이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시내버스 정류소를 네 정거장 가량 걸었을 때 한쪽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나이트클럽 앞이었다. 술에 취한 쉰 줄의 남자 세 사람이 출입을 막는 그곳의 종업원들과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왜 못 들어간다는 거야?”


  “글쎄, 아저씨들은 안 된다니까요.”

 

  “이유가 뭐야?”


  “주제를 아셔야지, 물 흐린단 말이에요.”


  “그놈의 물 얼마나 맑은지 나도 구경이나 좀 하자.”

 

 

 실랑이가 거친 몸싸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때 주먹으로 보이는 여섯 명의 청년들이 큰 체구를 흔들어대며 모습을 드러냈다.

 

 

  “뭔 일이야!?”


  “형님, 어서 오십시오. 글쎄 이 아저씨들이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로 들어가려고 하는지라…….”


  “그래?”

 

 

 그들은 종업원더러 비켜나라는 손짓을 하고는 아저씨들 앞으로 튀어나온 배를 들이댔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그냥 가시죠.”


  “왜들 이러는 거야. 누군 들어가고 누군 안 되는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아저씨들도 술이 되긴 한 모양이었다.

 

 

  “법으로 미성년자 출입금지가 있는가 하면 여기는 아저씨들 출입금지란 말입니다. 왜 말귀를 못 알아들으실까?”

 

 

 막무가내로 들어가겠다는 그들을 주먹들이 힘으로 밀어붙였다. 한참 밀려난 그들은 그제 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던지 슬슬 꽁무니를 뺐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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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3

 

 

“독립투사를 둔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내가 아느니”

“모두는 남재의 가족에게 빚을 지고 있음이야!”

 

 

 


  “형……”

 

 

 막혔던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그 때 담당의사가 보호자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고 두 사람은 그곳으로 향했다.

 

 

  “한쪽 팔과 다리는 보신대로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한쪽 눈마저 실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 눈도 장담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말이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님은 병원 문을 나서며 짧은 한마디 말을 남겼다.

 

 

  “살려만 주시오!”

 

 

 동해가 처음 남재 형을 만난 것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던 자신을 그가 이곳으로 데리고 오고부터였다.

 

 그 후로 동해는 자신보다 세 살 위인 남재를 친형처럼 의지하며 따랐고 남재는 그런 동생이 생긴 것이 신기했던지 어디를 가든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흔치는 않았지만 먹을 것이라도 생기면 형은 먼저 동생부터 챙겼다.

 

 뒤에 들어 알았지만 남재 형은 고모님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맡겨졌다고 했다.

 

 형의 조부님은 독립운동가로 그의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이 된지 오래였다. 아버지는 배움의 기회를 잃은 탓에 해방 후 노동판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아오다 오래전에 폐병으로 고인이 되셨고 작은 아버지가 있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백구하라는 이름자만 기억 할 뿐 행방을 감춘 지 오래되어 생사조차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유일한 혈육인 그의 고모님이 어린 조카를 절에 맡기며 스님께 당부의 말씀을 놓았다.

 

 

  “집안 재산은 독립자금으로 다 없어졌으니 남은 것이라곤 저 애 하나뿐이오. 독립투사의 손자이니 부디 큰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아흔이 가까운 그의 고모님께서 더 이상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스님께서는 할머니를 마을 아래까지 부축을 하시며 배웅을 해 드렸다.
 한사코 뿌리치시는 그분을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달래셨다.

 

 

  “제 어머님 생각에…….”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신 스님께 형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으나 스님은 형을 꼭 안으셨다.

 

 

  “독립투사를 둔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내가 아느니…, 왜놈의 밀정들이 빨래터에까지 따라 붙었느니라.”

 

 

 그 일은 오래토록 형의 가슴에 남았고 동해에게도 그 말이 전해졌던 것이다.
 스님께서는 특별히 형을 편애하지는 않았으나 가끔 지나가는 말을 동해에게 던지곤 했다.

 

 

  “모두는 남재의 가족에게 빚을 지고 있음이야!”

 

 

 동해가 산으로 들어온 이듬해였다. 스님은 두 아이를 불렀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른 스님의 모습에 잔뜩 긴장한 채 무릎을 꿇었다.

 

 

  “오늘부터 공부를 배우거라!”

 

 

 스님의 짧은 말씀이었다. 왜 공부를 하라는 것인지 무슨 공부를 하라는 것인지에 대해 일체 말씀이 없었고 다만 한문 한 구절을 붓글씨로 적어 주시며 깊이 파고들라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논어」의 학이편 이었음을 알았지만 그때 동해의 나이 겨우 여섯 살이었다. 

 

 

  “사람이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어야 하듯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새가 예에서 비롯되고 예로 끝나느니, 그것을 알려면 부지런히 배워야 하느니라.”

 

 

 지금도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때 스님께서 지그시 눈을 감으시며 한동안 옛 생각에 잠기시던 모습이었다.

 

 

  “나는 네 살에 그것을 배웠느니라. 나의 선인께서는 참 부드러운 분이셨어.”

 

 

 한창 공부에 재미를 붙여가던 어느 날 저녁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형이 불쑥 물었다.

 

 

  “스님 방에는 왜 책이 한 권도 없습니까?”

  “어느 해였던가, 겨울밤이 하도 추워 아궁이에 불을 지폈어”
  “아무리 그래도 그 아까운 것을…….”

 

 

 스님께서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시며 수저를 놓았다.

 

 

  “내가 앵무새가 되길 원하느냐?”
  “무슨 말씀이신지…….”

 

  “학자는 책을 가지려 노력하고 현인은 책을 감추려 애쓰며 성인은 책을 버리느니라.”
  “그렇다면 스님은 성인의 반열이십니까?”

 

  “아니다. 나는 진인(眞人)의 경계라도 갔으면 하느니라.”

 

 

 남재 형의 물음은 집요했다.

 

 

  “스님, 진인이 무엇입니까?”
  “내게 물을 가져다주겠느냐?”
  “예.” 

 

 

 형이 물을 그릇에 담아 내어왔다. 

 

 

  “이 그릇의 쓰임새가 무엇이냐?”
  “…….”
  “그릇의 용도는 비어 있음으로 쓰일 수가 있는 것이야. 그것처럼 비우고 있는 사람을 진인이라 하느니라.”

 

 

 스님의 사고가 노장사상이 바탕이었음을 뒷날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통 알지 못했다. 

 다시 형이 나섰다.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유고 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판 의뢰 및 드라마,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 기다립니다.

 

 

장편소설 비상도의 저자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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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쟁이 사춘기 중2 아들의 놀라운 변화

부자지간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 상의 변화

 

 

 

 

커가는 아이들 키우기 힘듭니다.

날마다 새로우니까...

 

 

“아빠, 저 병원에서 자고 가면 안 돼요?”

 

 

2주전, 인생에서 제일 무섭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절친 두 명이 같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한 명은 운동하다 다리가 부러졌고,

한 명은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병원에서 잔다니 쉽게 허락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지지난 주말에도 같은 요구를 했었습니다.

 

 

“아빠, 제발 병원에서 친구들과 자게 해줘요!”

 

 

아들의 외침에도 냉정하게 결정을 미뤘습니다.

게다가 아이들 엄마에게 결정을 맡기기까지 했습니다.

 

아내는 분명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요즘 아들이 통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건 다반사.

전화도 안 받고, 약속은 쉽게 어깁니다.

 

아내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착한 아들이 달라졌다. 이제 내 아들 아니다. 당신 아들 해.”

 

 

20일, 아들은 전화로 외박 허락을 요구했습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엄마에게 허락 받아” 했더니, 아들은 한 술 더 떴습니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이 어딘지, 냄새 맡는데 도가 텄습니다.

 

 

“아빠, 제발…. 엄마는 안 된다고 할 게 뻔해. 아빠가 허락 해줘요.”
“그러게 엄마에게 점수 좀 따지 그랬어.”

 

“그럴 게요. 아빠가 허락해 주세요.”

“그래라. 엄마에겐 네가 직접 전화해서 다시 허락 받고.”

 

“헉, 엄마는 안 된다니깐. 아빠가 엄마 좀 설득해 주라니까.”

“엄마 아들이었던 녀석이 왜 이리 됐어. 그래도 네가 전화해라.”

 

 

요즘 아들과 아빠, 밀월 관계입니다.

예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대화가 필요해>에서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요. 저희 집 부자관계와 비슷했습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완전 좋아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아버지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인 저의 변화는 아이들이 다니는 여수무선중학교에서 7월 중순 2주 일정으로 진행했던 <행복한 아버지 학교>를 다닌 후부터입니다.

 

이 교육에서 부모는 럭비공 같은 아이들의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더군요.

아이들의 반항은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니 자연스레 받아 들여야 한다더군요.

이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여, 변화를 도모했습니다.

 

 

“~안 돼.”
“~해.”

 

 

이처럼 그동안 제가 아이들에게 사용한 말투는 과거 아버지의 상징(?)처럼 권위적이고 무미건조했습니다.

 

아이들도 “아빠 그 말투 기분 나빠요”할 정도였습니다.

계속 이렇게 했다가는 자식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 혹은 “친구 같은 부모”는 물 건너갈 게 뻔합니다. 때문에 말투를 좀 더 부드럽게 바꿔가는 중입니다.

 

 

“이거 좀 해라.”
“~생각 좀 해보자.”

 

 

명령적인 말투를, 아이들 입장까지 고려하는 청유형으로 바꿨더니, 아이들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귀에 귀마개를 했는지, 말을 씹던 아들이 달라진다는 건 놀라운 변화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바람직한 변화라 기분 좋습니다.

 

 

변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주에 부자지간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아들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태빈아, 9시10분쯤 병원 앞 도로변으로 나오시게….”
“5분쯤 늦겠네.”
“5분 더 기다려야 할 듯….”

 

“버스정류장 쪽에 있어요.”

 

“가방 열렸다. 잠궈.”
“나오시게 아들.”

 

 

그냥 일반적인 부자지간 대화 같은가요?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알겁니다.

 

혹 그동안 썼던 명령조 어투도 섞였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나오시게”, “늦겠네” 등에서 보듯, 예사 높임 어투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어투를 쓰는 까닭은 부모에게 속한 자식에서 벗어나 한 인격체로 대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자기 존재감(자존감)을 높여 스스로 아버지와 대화하려는 등의 열린 마음을 일깨운 겁니다.

 

그 전까지요? 아빠는 멀뚱멀뚱, 주로 엄마와만 대화했습니다.

여하튼, 아들의 외박을 허락했으니 아이들 엄마 설득은 제 몫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문자를 날렸습니다.

 

 

 

 

“태비니 자라했네. 낼 집 청소하는 조건으로….”

 

 

답신이 없어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들에게 전화 왔었다고 하더군요. 자기도 허락했다더군요.

아들이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아들이 대견합니다.

 

 

역시, 자기부터 바뀌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꾸기 힘든 세상임을 실감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친구 같은…’이 붙어가는 중입니다.

 

한 가지 걱정입니다. 부자 간 밀월 관계가 언제 어느 순간 물거품이 될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사 공짜로 생기는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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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래, 바다 통해 생명 존엄성 모색”

[인터뷰] 고석만 여수 엑스포 총감독

 

 

여수세계박람회 고석만 총감독, 그는 여전히 바빴다.

 

 

2012여수세계박람회장을 연출한 고석만 총감독과 인터뷰를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비어 있었다. 회의와 출타 등으로 인터뷰를 미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듣던 대로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다.

 

10여 분 늦게 도착한 그의 얼굴에는 미안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입에서 “오래 기다렸지요?”라는 인사말이 흘러 나왔다. 동시에 소년 같은 수줍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미소 속에는 인간적 삶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박람회 개막식 후 거의 탈진 상태였는데 바빠서 병원에 가지 못했다. 그러다 어제서야 시간을 내 병원에서 수액을 맞았다.”

 

이 말에서 고석만 총감독이 개막식에 쏟은 열정이 어느 정돈지 알 수 있었다. 그는 “2년 여 동안 인터뷰를 사양하다 용기를 내 인터뷰에 응했다”며 “박람회 홍보보다 박람회에 녹아난 철학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박람회 전시와 문화공연을 종합 설계한 그는 수사반장과 현대사를 정치드라마 프로듀서를 거쳐 EBS 사장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을 지냈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그의 사무실과 주제관을 오가며 진행됐다. 다음은 고석만 총감독 인터뷰.

 

여수 엑스포장에 담긴 철학 등에 대해 설명하는 고석만 총감독.

 

“앞으로 문화는 밥 먹여주는 먹거리 산업”

 

- 박람회장을 찾는 관람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마음 여유를 갖고 풍경과 문화를 보면 좋겠다. 여수 엑스포는 다른 나라에서 열린 박람회처럼 줄 서서 보는 ‘패널 전시’가 아니라 관람객과 전시물이 함께 움직이며 본다는 점에서 ‘풀샷 전시’라 할 수 있다. 즐기는 박람회, 새롭게 경험하는 박람회가 되었으면 싶다.”

 

- 박람회장을 만들기까지 어려웠던 점은?
“조금 늦게 조직위원회에 합류하고 보니 온통 건설 패러다임에 빠져 있었다. 박람회는 건설보다 문화와 예술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문화는 밥 먹여주는 먹거리 산업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접근 방식을 바꾸기 위해 조직 내 사람들과 수없이 싸워야 했다.

 

또한 전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과정에서 기존의 전시 관념에 빠져 있던 관계자 설득 작업이 힘들었다. 예를 들면 지금껏 전시의 롤 모델은 루블 박물관 등이다. 이곳들은 전체를 통으로 연출 후 부분 부분을 던져놓고 관람객들에게 알아서 주제를 찾아라는 식이다.

 

그러나 여수 박람회장은 던져진 주제를 통해 어떤 감동을 안겨줄 것인가? 하는 게 목표였다. 이로 인해 전시 관계자에게 새로운 전시 개념을 이해시키고 그것을 밖으로 표출해 내기까지 인내가 필요했다.”

 

듀공을 배경으로 선 고석만 총감독.

 

“우리의 미래 바다 통해 생명의 존엄성 모색”

 

- ‘살아 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란 주제로 열리는 여수 박람회 전시장과 공연장에 투영된 철학은?
“여수 엑스포는 바다와 인간의 상생이 주제다. 그런 만큼 여수의 아름다운 경관에 어떤 철학 및 세계관과 우주관을 넣느냐? 하는 게 관심사였다. 바다와 인간의 교감을 통해 우리의 미래가 바다란 생각으로 바뀌길 바랐다.”

 

-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전시관은?
“어느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답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꼽으라면 아무래도 주제관이 큰 아들 격이지 않을까?”

 

- 주제관 구성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1관에서는 바다의 의미, 2관은 듀공과 대화를 통해 바다 생물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메인관에서는 멸종 위기에 놓인 고래 ‘듀공’과 소년의 우정 영상이 나온다. 영상은 듀공과 소년이 바다 오염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한다는 스토리다. 영상 후에는 듀공과 소년이 실제 무대에 나타나 서로 교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과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전하고 싶었다.”

 

- 주제관 영상 내용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찾았나?
“<영원한 제국>을 펴낸 소설가 이인화 씨가 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관계자들과 함께 열다섯 번 넘게 수정하고 추가하며 변화를 찾은 것이다.”

 

여수엑스포 주제관 2관에서 만나는 듀공.

 

“듀공 이미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 종”

 

- 관람객들은 ‘듀공’이 관람객을 알아보고 나누는 대화를 신기해한다. 이는 어떻게 연출했나?
“스크린 뒤에 두 사람이 있다. 한 분은 성우고, 한 분은 듀공을 움직이는 조작가다. 성우는 관람객을 보고 상황에 맞게 말하고 교감을 이끌어 낸다. 조작가는 미리 준비된 버튼을 눌러 듀공을 움직여서 신기함을 주는 방법이다.”

 

- ‘듀공’ 캐릭터는 성공적이다. ‘듀공’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었나?
“인간 지능과 비슷한 고래 중, 세상에서 100여 마리 밖에 없는 멸종 위기의 고래 종인 ‘듀공’을 찾아 캐릭터로 삼았다. 이는 자연과 인간 간 상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 주제관을 보고 나온 사람들 표정은 대체로 밝다. 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게 중에는 무표정한 관람객 얼굴도 있다. 이는 오래 기다려 피곤한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관람객은 표정이 밝다. 무엇인가를 느낀 것이다. 관람객 표정이 밝으면 나도 참 기분 좋다.”

 

- 전시관과 문화 공연이 30분 단위로 이뤄지는 것 같다. 이유는?
“시간이 너무 길 경우 지루해 하고, 짧으면 아쉬워한다. 적당한 게 30분이다. 그 보다 먼저였던 게 관람객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여수엑스포 야외 공연장에서의 고석만 총감독.

 

“새로운 콘텐츠로 관광객을 맞아야 경쟁력 있다.”

 

- 박람회 이후, 여수가 활용할 박람회장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
“기존에 선보였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재탄생시켜야 한다. 지금은 컨버전스, 콘텐츠, 문화 창궐의 시대요, 급변하는 시대다. 이에 맞게 새로운 콘텐츠를 장착해 관광객을 맞아야 경쟁력이 있다.”

 

- 박람회 이후 여수 관광 방향에 대해 조언하면?
“여수는 아름다운 경관과 맛있는 음식을 갖췄다. 게다가 박람회를 통해 일정부분 외적 인프라까지 갖췄다. 그렇지만 인프라를 활용할 인재가 부족하다. 인재 양성이 급선무다. 그 후 여수의 철학을 만들어 낼 크고 작은 프로덕션 등 기획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여수는 한류에 열광하는 중국, 일본 한국 사람이 여수에 목적을 갖고 찾아오게 만드는 UEC(Urban Entertainment Center)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 일례로 미국 라스베가스의 영화의 거리에서는 존웨인 등 영화인들의 부츠, 모자 등 모든 걸 전시해 사람을 모으고, 기념품 판매 등을 통해 경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처럼 여수도 한류 체험 관광과 판매, 그리고 미래의 한류 진로까지를 모색하는 장이 되면 좋겠다. 여기에는 K-팝 공연까지 곁들여야 특화가 가능하다. 주제관은 레스토랑으로, 스카이타워는 회전용 카페로, 국제관은 UEC 집합체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2012여수세계박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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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펄펄 끓네!” VS “너 꾀병 아냐?”

 

 


한가위 연휴 잘 보내셨어요?


초등학교 6학년 아들.
지난 주 내내 학교에 결석했습니다.
감기라는데 열이 펄펄 끓어서요. 

예전 부모님들이 그랬지요.

“자식 키울 때 제일 무서운 건, ‘열’이다. 열나면 꼭 병원에 가라.”

어찌 될지 모른다는 거죠.
그런데도 아버지 입장에서 아픈 건 뒷전이더라고요.
왜냐? ‘학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가야한다’고 철석같이 배웠던 세대거든요.

그래, 학교 결석하는 아들이 기 막혔습니다.
낮에는 괜찮다가도 밤만 되면 열이 펄펄 났지요. 40℃ 전후.
아픈 아들을 대하는 엄마와 아빠의 차이가 분명히 갈리데요. 

엄마 “우리 아들, 열이 펄펄 끓네. 이를 어째~.”

아빠 “너 꾀병 아냐? 내일은 꼭 학교 가라.”

엄마는 안절부절. 아빠는 나 몰라라 쿨쿨.
배 아파 자식 낳은 엄마와 옆을 지킨 아빠의 간극 차이는 엄청났습니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라더니 딱 그 짝이었지요.
아들의 입원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여보, 의사가 입원하래. 입원 했으니 그리 알아.”
“뭐, 그거 과잉 진료 아냐? 당장 와.” 

“열이 심하면 장염이나 폐렴으로 번질 가능이 있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주사 한방이면 되지, 입원은 무슨 입원. 낼 모래가 추석인데.”

“내 말이. 그러니까 추석되기 전에 빨리 나아야지.”
“….”

 

며칠 간 아내는 열나는 아들 때문에 고생 직살 나게 했습니다.
병원에서 보니 글쎄 열 때문에 입원한 환자들이 꽤 되더군요.
바로 깨개~ 깽 했지요.

표면적으로 아픈 자식을 대하는 엄마 아빠가 차이납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하나일 것입니다.
여하튼 아픈 아들은 지난 토요일 퇴원했습니다.

역시 건강이 최고입니다.
추석 연휴 이동으로 수고하신 분들 모두 건강챙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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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뺀 후 이름을 ‘왕목점뺀이’로 바꿨다?

 

 

언제부터였던가?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인 딸의 볼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나기 시작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게다.
그리고 얼굴이며 목에 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점점 깨순이가 되어 간다. 그러게 썬크림 발라라니까….”

ㅋㅋ~, 웃음이 나왔다.(아이 고~, 점 빼려면 또 돈 들겠구나~ 잉.)


며칠 전, 아내와 딸의 대화.

 

  “엄마, 왜 날 점순이 여드름쟁이로 낳았어?”
아내  “아니거든. 엄마가 널 낳았을 땐 점도 여드름도 하나도 없었거든. 날 때부터 그랬다면 엄마가 리모델링 해줄 텐데, 그게 아니니 너 스스로 알아서 해라.”

 

ㅋㅋ~, ‘리모델링’에 웃음이 팍팍 났음.
(여자들은 이런 데 관심이 많나 보다~.) 


어쨌든 딸은 거울을 끼고 산다. 이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삼일 전, 모녀는 점 뺀다고 같이 병원에 갔다.


다음은 점 뺀 딸의 소감이다.
(글쓰기로 미리 논술 준비하는 셈이다.)

 

음 안녕하세요ㅋㅋ

제가 점을 뺐습니다!!
평소에 점이 많아서 콤플렉스임ㅜㅜ

엄마가 점 빼기 하루 전에
동생에게 들은 재밌는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음ㅜㅜ

“목에 큰 점이 있어서 왕목점 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는데,
점을 빼고 나서 이름을 ‘왕목점뺀이’로 바꾸었다.”

란 내용이었다..

엄마가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계속 그렇게 놀리는 것이 아니겠음!!?!
(제 목엔 큰 점이 있습니다.. 흑흑.)

하지만! 지금은 얼굴과 목에 있던 점까지 싹 빼서
이제는 주근깨와 여드름자국과의 싸움을 해야겠음ㅋㅋㅋ 하아

점을 빼게 된 것은 엄마가 순순히 빼주신다고 해서임
별로 빼고 싶지는 않았지만<과연 그럴까

빼준다니 감사할 따름이지요ㅋ

어찌됐건 점을 빼러 엄마와 점을 빼기로 한 날에 엄마를 만나
엄마가 전에 점을 뺐다던 병원을 가보았음.
근데!! 그 병원이 이사를 갔는지 없었음 아이 고..

그래서 엄마가 지인 분들에게 전화를 해서
시내 한 바퀴를 돌고 병원을 찾게 됨ㅋㅋㅋ

점이 7개가 있는데 간호사 이모가 점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면서

“와 크다..”

하신 거ㅋㅋㅋㅋㅋ

그래서 7만원 나왔음..(사실 난 제일 큰 점만 빼려고 했음!!)
근데 엄마가 너무 비싸다고 다시 봐달라고 했는데 8만원으로 오름ㅋㅋㅋㅋ

그리고 내 차례가 됐음..
누웠을 때 두근두근으로 오케스트라를 연주했음..
은근 압박과 두려움이 들었음..

특히나 큰 점을 뺄 때 너무 아팠뜸.
얼마나 아픈지 엄지손가락으로 다른 쪽 손바닥을 꾹 누르고 있었는데도
너무 아파서 그 고통이 안 느껴질 정도였음..

다른 뺀 곳에서 오징어 구운 냄새나고 아프고 소리도 요란했음..
하지만 난 이거 빼면 아이들의 반응과 예뻐지기 위해 참았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대견함ㅋㅋㅋ
빼고 나니까 너무 홀가분하고 행복한 거임ㅋㅋㅋㅋ

동시에 배가 고파지는 거임..
아침, 점심밥을 안 먹었기 때문일지 몰라도 긴장을 놓아서 인 것 같음ㅋㅋ
그리고 엄마는 나를 이제 왕 목 점 막 뺀 이라고 불렀다는 소문이..


난 그 피부과의 전도사 역할을 했음
점을 뺀다던 친구를 전도했음.
그 때 처음 알았음.

점도 보호자의 허락이 있어야지 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해서 그 친구 엄마한테 허락받고
그 친구는 만 오천 원짜리 점을 뺐음.

근데 씁쓸한 게 뭐냐면
간호사 이모가 원장님께 내 친구를 소개할 때,

“어제 목에 큰 점 있던 여자애 친구예요”

라고 한 거임ㅋㅋㅋㅋㅋ
간호사 이모의 배신이랄까..

그렇게 해서 친구와 나는 깔끔한 얼굴로 개학할 예정임!!

아,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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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끈 놓지 않으려는 가슴저린 절규
아내 향한 남편의 마지막 사랑 메시지

 

 

한 평생 부부로 살다가,
배우자가 떠나고 없을 때 오는 허전함을 그 어디에 비할까?

“각시가 배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어.”

지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금방 퇴원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지인의 아내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지난 주 서울로 옮겨야 했다.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절친했던 터라 더 바짝 긴장했다.

사실, 지인 아내는 몇 해 전 이미 한 차례 삶의 고비를 넘긴 상태였다.
지인은 마지막으로 여행하고 싶다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여행에 나서기도 했었다.

게다가 KAIST 대학원 졸업 후 유학 가겠다는 딸에게,

“어렵게 공부하기보다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이다”

며 유학을 만류했을 정도였다. 행복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지인 아내는 전문의 진찰 후 입원과 MRI를 찍은 후 CT를 예약한 상태였다.
이때 잠시 집에 내려 온 지인은 건강이 좋은 편이라 아무 일 없기를 기대했다.
그러면서 막걸리 한 잔 마시길 청했다.


CT 검사 결과는 그제 나왔다. 연락이 없었다. 결과가 어떠한지 문자를 넣었다. 묵묵부답.
그러다 어제 아침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삼성병원 결과 바람직하지 않아 서울대병원 진료 5월23일 오전 예약했음.”

 

최악의 상황을 뺀, 조심스런 문자 메시지였다. 지인과 통화했다.

“형수님은 좀 어떠세요?”
“지금 주사 맞고 있어. 여기선 수술이 어렵다네. 그래서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진찰 다시 한 번 받으려고. 우리 각시 꼭 살려야지. 아내에게 빚진 거 다 갚아야 하는데….”

전화 속, 지인 목소리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통화 후 지인에게서 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완주의 ○○한의원 자세히 조사해 주게. 항암치료와 병행했음 하네.”

 

기대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남편의 애절한 절규였다.
부부로 살며 아내에게 못 한 부분을 기어이 하고 말겠다는,
결의에 찬 한 남자의 마지막 사랑의 메시지로 읽혔다.

아이들에게 이런 사정 말했더니,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할게요.”라며 “아빠가 힘이 되어 주세요!”라고 한다.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게 제일. 평소 부부 간 잘하고 사는 게 최선일 터~.

삶이 힘들지라도 희망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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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8 18:14


아내 몸 씻기며 사랑으로 눈물 흘렸을 터
“고생 죽어라 했는데 이제 아프면 안되지”

 

“말 안했는데 각시가 병원에 있어.”

가벼운 병인가 했지요. 그런데 지인 표정이 굳었더군요.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췌장암 같다고 정밀조사 하자네.”

지인 아내는 수년 전 죽을 고비를 넘겼지요. 이후로 지인은 아내를 위한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는데 또 암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지인 부부와 만나면 웃음(?)이 떠날 줄 몰랐습니다. 말이 웃음이지, 실상은 아내들이 대놓고 남편 흉보는 날이었지요. 각시들은 맞장구치며 신나게 웃는데, 서방들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의 엉뚱한 행동들을 죄다 고해 받쳤지요. 그러면 남편은 옆에서 얼굴이 벌개 져 소주잔을 홀짝홀짝 들이켰지요. 어쨌든 아프다니 걱정입니다.

 

  

 “병 의심 징후는 없었어요?”
“3월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 그러대. 그 땐 병원에 가 하고 말았지.”

“저도 ‘병원에 가’ 하는데,
그러면 안 되겠네요. 병원에선 뭐래요?”

“췌장암 가능 수치가 높데. 정밀검사 하자는데 서울 큰 병원으로 옮기려고.”

“결과가 잘 나와야 할 텐데, 별 일 없을 거예요.”
“못난 남편 만나 고생만 죽어라 했는데, 살만하니 아프면 안 되지. 최고 명의 붙여 각시 살려야지.”

독백처럼 말하는 지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더군요. 지난 10일, 이 이야기를 듣고 병문안을 아직 가지 못했습니다.

어제 저녁에 부부가 병문안 갈 참이었지요.
그런데 어제 아침 8시경에 메일이 왔더군요.

“오늘 아침 병원 퇴원해 서울 가네.
내일 서울 ○○병원 전문의 진찰예정이야.”

헉, 아침에 서둘러 병원으로 갔습니다. 갔더니 퇴원수속 끝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대요. 지인 아내 얼굴이 좀 상했대요. 지인은 아내와 집에 들렀다 서울로 간다더군요.

 

부부는 이런 사이지요.

 

 “빨리 서울 가서 안정을 취해야지 집은 뭐 하러 가요?”
“혹시 모르니, 집에 가서 각시 목욕도 좀 시키고, 물건도 좀 챙기려고.”

지인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데요. 결혼 후 고생한 아내를 깨끗하게 목욕시켜 데려가고 싶었나 봐요. 아내를 향한 남편의 애절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오대요.

아마, 지인은 아내 몸을 씻기면서 절절한 사랑으로 눈물 흘렸을 게 분명합니다.

어제 오후, 지인은 그의 아내와 함께 서울로 떠났습니다. 이동하는 내내 아무 일 없기를 빌고 또 빌었을 겁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지만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쾌유를 위해 아래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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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면 남자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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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내일 새벽에 저랑 시장에 갈래요?”

며칠 전, “기분 나빠 죽겠어요.”라며 투덜대던 아내였다. 그러면서 “속마음은 안 그러는데, ‘각자 집에서 그냥 설 쇠요’하고, 속과 다른 말을 해버렸지 뭐에요.” 했다.

이유인 즉, “설음식 어떻게 할 거냐?”는 누님 전화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선 누구 편을 드느냐가 중요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아내 편을 들었다.


시장 가자는 아내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

“큰 누나는 왜 그런 전화를 했대. 엄마 안 계실 때 한 번쯤 자기 집에서 음식 만들어 아들과 사위, 며느리와 먹으면 좋을 텐데….”

이게 내 속마음이었다. 지금까지 명절 음식은 연로한 어머니 몫이었다.

누나는 명절이면 아들에 딸, 두 사위까지 어머니 집으로 불렀다. 어머니는 “가족이 많이 모이면 즐겁지 않냐?”고 하셨지만, 이게 불만이었다. 일거리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래, “시장 가자”는 아내 말을 거절했다. 아내의 고생이 보여서다.

제사가 없으니 굳이 음식 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만 집에 모시고 간단하게 떡국만 끓일 참이다. 그리고 입원 중인 어머니께 떡국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명절 때면 남자로 태어난 것이 엄청 행복하다?

그런데 마음에 걸린다. 반응이 벌써 있어야 할 누나의 반응이 없어서다. 나의 속 좁은 소견이 미안하기도 하다. 이게 가족일까?

반대로 설음식 만들겠다는 아내의 말이 엄청 반갑다. 또한 아내가 미스 코리아 저만 가라할 정도로 엄청 예쁘다.

그나저나 오늘 아침에 나는 아내와 함께 새벽시장에서 장을 봤다. 남자의 이율배반은 이런 것?
여하튼, 명절 때면 나는 남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 행복하다. 명절은 여자만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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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할머니는 왜 호칭으로 사람 차별한대요.”
“네 생각을 할머니에게 직접 말해보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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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입원 중인 어머니.

어머니가 연말에 교통사고를 당해 중입니다. 병원에는 두어 달 입원해야 할 상황입니다.
하여,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어제도 아이들과 병원에 들렀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유빈네야, 바쁜데 이제 자주 안와도 돼.”
“뭘요, 어머니. 저희 걱정 마시고 치료 잘 하세요.”

아이들도 할머니 품에 안겨 응석을 부리대요. 그게 좋은지 어머니는 연신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빠, 할머니는 왜 호칭으로 사람을 차별한대요.”

그리고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놀라운 말을 하더군요.

“아빠, 할머니는 왜 호칭으로 사람을 차별한대요.”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가 사람 차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하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나오더군요.

“할머니는 ‘유빈네야’라고만 하잖아요.”
“그게 어때서?”
“엄마가 누나만 낳았나요. 저도 낳았잖아요. 근데 왜 할머닌 엄마를 부를 때 ‘유빈네야’라고만 하고, ‘태빈네야’라고는 안하죠? 그게 사람 차별이잖아요.”

헉. 가만 생각해 보니, 아이 입장에서 ‘사람 차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사실 시어머니나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부를 때 ‘며느아가’, 혹은 아이들 이름을 따 ‘○○네야’ 등의 호칭보단 며느리 이름 불러주기 등에만 신경을 썼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는 그동안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것이었습니다.

“네 생각을 할머니에게 직접 말해보는 게 어때?”

그래 아들에게 말했죠.

“네 생각을 할머니에게 직접 말해보는 게 어때?”
“할머니께 말씀 드린다고 달라지겠어요? 그렇단 소리에요.”

“할머니가 고의로 그러겠어? 누나가 먼저 태어났으니 누나 이름을 따 부르는 거지.”
“알아요. 그런데 기분 나쁘잖아요. 누나만 좋아 하시는 거 같고.”

그러긴 합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라도 어머니께 ‘유빈네야’ 라고만 부르지 말고 ‘태빈네야’ 라고도 부르는 게 어떠냐?’고 한 번 권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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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은 역시 예민하다니까요..
    아이가 둘이면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고 봐요..
    아이들 눈높이에서...
    ㅎㅎㅎㅎ

    2011.01.04 09:33 신고
  2. Favicon of https://jersuji.tistory.com BlogIcon 저수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네요,
    보통은 장남, 장녀 이름으로 부르죠.
    근데 아이한텐 그렇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태빈네야 하고 불러 주시면
    태빈이의 그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이 사그라질 것 같네요.
    어머님 빨리 쾌차하시기를 빕니다.

    2011.01.04 19:48 신고

딸의 일기, “혼자네. 부모님이 오시겠지?”
그래서 자녀와 소통이 중요하나 봅니다!

지난 화요일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교 수업 중일 텐데 무슨 일일까?’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빠, 콧물이 나오고 감기인가 봐요.”
“병원 가야겠네? 조퇴해.”

“흐흐흑~. 근데 오늘 시험이 있어 안 돼요.”
“끝나고 조퇴해.”

딸을 만나 뒤늦게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6학년이면 홀로서기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병원에 함께 다녔는데 이제부턴 혼자 다니도록 해야 할 것 같았지요.

“너 혼자 병원 갈 수 있지? 혼자 걸어서 갔다 와.”

그랬더니, 혼자 가더군요. 그랬던 딸년이 어제 저녁 뒤통수를 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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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일기장.

딸의 일기, “얘 혼자네. 곧 부모님이 오시겠지?”

“엄마~, 엄마. 제가 아팠던 날 쓴 일기 읽어 줄 테니 한 번 들어봐요.”

신나게 읽더군요.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혀서…. 다음은 딸년이 쓴 그날의 일기입니다. 어떻게 아빠를 비방(?)했는지, 그 실상을 원본으로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

3/9(화) 날씨 : 조금 비 옴. 제목 : 나 홀로 병원에

진단평가 + 코감기가 겹쳐 힘든 날이었다. 시험은 봐야 되지, 콧물은 나오지, 약도 먹었는데 낫지를 않지. 정말… 힘들었다. 결국 시험 끝나자마자 바로 조퇴를 했는데 아빠가 같이 병원 가기로 해 놓고는 이 추운 날! 아픈 애한테 ‘혼자 병원을 갔다 오라’며 ‘돈을 건네주는 그런 아빠가 어디 있나….’했더니 그게 울 아빠였다.

아빠 성화에 얼떨결에 병원 행을 떠난 나는 걷고, 도 걷고, 걸어서 결국 병원에 갔다. 회 타운 앞 ‘○○○ 소아과’에 간호사 언니는 ‘얘 혼자네. 곧 부모님이 오시겠지?’라는 생각을 하였을 거다.

그러나 부모님은커녕 친구도 없었던 마당에…. 진찰을 받고 약을 받고(바리바리) 집으로 걷고, 또 걸어 집에 도착하여 잤다. 6학년 때 혼자 병원 갔다 온 애는 우리나라에서 나 밖에 없을 거다.(그리고 우리 아빠 같은 아빠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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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쓴 그날의 일기.

그래서 자녀와의 소통이 중요하나 봅니다!

딸의 일기장 속에서, 마음속에서, 전 이렇게 비정한 아빠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요? 당연 한 마디 했죠.

“당신, 아픈 딸 좀 데려가지 그랬어요!”

이럴 수가…. 아이들 병원은 제 담당이라 그동안 함께 다녔는데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혼자 다녀도 되지 않겠어요? 냉정한 아빠의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했습니다.

“딸, 아빠가 언제 병원에 같이 간다고 했어? 아빠는 그런 말 한적 없다.”
“안했어요? 제가 몸이 안 좋아 잘못 들었나 봐요.”

“딸, 그렇게 서운했어?”
“예. 많이 서운했어요.”

왜 병원에 함께 가지 않았는지를 차분히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씩 웃더군요. 그게 당시 자기 기분이었다나. 그래서 자녀와의 소통이 중요하나 봅니다.

아무튼 딸 덕분에 아들과 저까지 감기로 고생 중이랍니다. 꽃샘추위가 사람 여럿 잡는군요~. 몸 관리 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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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eedam.tistory.com BlogIcon leedam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자녀들과 대화는 자주 해야합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꼭 필요 하더군요

    2010.03.12 21:29 신고
  2. Favicon of http://guichanist.com BlogIcon 아린   수정/삭제   댓글쓰기

    -_-;;; 에...저희 세대가 강하게 큰건가요;;;
    부모님이 병원에 찾아오는 때는 부러졌을때 밖에 없었는데...전...버려진 자식이었던가요...ㅠㅠ

    2010.03.12 22:07
  3.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아이의 일기가 아주 적나라하군요.
    아이들도 스스로 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도 소중한데요.

    2010.03.14 11:33 신고

자식 앞세워 돈 벌려는 세상 앞에 긴장한 아빠
기막힌 합의 금액과 아이들 화해로 이끈 지혜

연말이라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기회에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의 선배들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 간 다툼으로 인해 불려가야 했던 한 아버지의 에피소드입니다.

“바다낚시 갔는데 아들이 싸워 저쪽에서 다쳤다고 빨리 오라는 거라. 외딴 섬이라 배가 끊겼으니 꼭 가야 할 사정이면 다시 전화하라고, 그러면 사선을 타고 나간다 했지.” 

결국 밤늦게 배를 빌려 현장에 도착했다더군요. 선생님이 “친구가 눈 주위를 바늘로 꿰맸다”며 “때린 죄인(?) 부모니까 무조건 빌어라”고 하더랍니다. 먼저, 고 1 아들에게 물었답니다.

“너보다 약한 친구 때린 거야, 아니면 너보다 덩치 큰 아이 때린 거야?”

힘없는 친구 못살게 굴었으면 반쯤 죽여 놓을 심산이었다나. 다행이 “덩치가 큰 있는 친구였다”더군요. “차라리 맞을 일이지…”하며, 아들 때문에 체면이고 뭐고, 기 팍 죽어 상대 부모를 만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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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말죽거리잔혹사

자식 앞세워 돈 벌려는 세상에 긴장한 아빠

“○○에빕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이는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크다가 그럴 수도 있지요.”

여기까지는 좋았답니다. 그런데 뒤가 캥기더랍니다. 아이들이 치고 박고 싸우다 다치면 학교 폭력으로 크게 걸리는 걸 아는지라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했다나요.

“치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간단히 16바늘 꿰매고 퇴원했습니다.”

“치료를 더 하시지 벌써 퇴원해요?”
“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제부터 협상(?) 해야 하나 싶었답니다. 긴장되더랍니다. 자식 앞세워 돈 벌려는(?) 부모가 더러 있다는 걸 들었다나요. “앞에서 합의해도 뒤돌아서면 ‘더 받을 수 있다’고 훈수(?)하는 통에 왔다 갔다 하는 게 합의 금액”이라나요. 한 번 더 꾹 참았답니다.

기막힌 합의 금액과 아이들 화해로 이끈 지혜, 난 그럴 수 있을까?

“그런데 안면이 있습니다.”
“예. 저도 안면이 좀 있습니다.”

그제야 분위기가 누그러지더랍니다.

“제가 바다낚시하다 급히 와서 왜 그랬는지 듣질 못했습니다. 왜 그랬답니까.”
“제 아들놈이 ○○가 그만해라 하고 세 번이나 경고를 했는데도 뺨을 때렸답니다. 그래도 ○○는 참고 그만해라 그랬는데 계속 놀렸대요. 그래서 ○○가 제 아들놈을 한 대 쳤는데 눈썹 주위가 째진 거라더군요. 제 아들 놈 잘못이지요.”

지인은 상대방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며 자신도 깜짝 놀랐답니다. 그리고 합의한 금액이 기막힌 액수였습니다. 치료비 등 53만원. 지인은 7만원을 보태 60만원을 송금했답니다. 그런데 연락이 와 아이들과 함께 다시 만났다나요. 마음이 덜컹하더랍니다.

“돈은 53만원이면 족합니다. 7만원 받으십시오.”
“너희들 서로 친하게 지내지?”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친군데요.”

잔뜩 긴장했는데 아이들 화해까지 이끈 훈훈한 결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상대방 진심을 몰라보고 긴장했던 내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더군요. 지인은 평소 덕을 많이 베푸는 사람이라 좋은 사람 만난 거겠죠. 아직 훈훈한 세상이나 봅니다.

그처럼 멋진 부모 되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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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onghun.kr BlogIcon 멀티라이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온뒤에 땅이 굳어진 경우일까요 ㅎㅎ
    계속해서 친하게 지내겠죠? ㅎㅎ

    2009.12.18 09:56 신고
  2.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 앞세워 돈 벌려는 사람들 허다합니다. ㅎㅎㅎ
    다행이네요. 그래도 둘이 친하게 지내게 도ㅣ었다니...

    잘 보고 가요.

    2009.12.18 10:02 신고
  3. Favicon of https://raonyss.tistory.com BlogIcon 라오니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대방 부모도 대인이시네요....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들은.. 멋지게 자랄 것 같습니다..

    2009.12.18 11:13 신고
  4. Favicon of https://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훌륭한 부모신 듯...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시는 분이군요..!

    2009.12.18 12:04 신고
  5. Favicon of https://junke1008.tistory.com BlogIcon mami5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이 일을 저지르고나면
    부모는 늘 간이 통알 만해진는건 당연합니다.

    큰돈 치르고 합의가 된거네요..
    그쪽 부모가 다행히 좋은 사람이였나봅니다..^^

    2009.12.18 19:26 신고

“건강 잃으면 다 잃어”, 민간요법 들어보니
만병 근원은 음식, 암 원인은 식습관 변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하지만 건강할 땐 그 중요성을 잊고 산다. 건강을 자신(?)하다 병들면 자기 고생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정과 주위까지 걱정이다.

몸에 이상이 생기기전, 몸은 먼저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시기를 놓쳐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은 병이 들고서야 병원을 찾는다. 치료하다 마지막으로 찾는 게 민간요법이다.

그만큼 암에서부터 아토피까지 민간요법이 미치는 영향은 크는 반증이다. 이는 먹을거리와 자연 속에서 심신 휴식을 강조하는 민간요법이 먹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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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익녕 씨. 그의 얼굴은 민간요법 치료후 50% 이상 좋아졌다고 한다.

만병의 근원은 음식, 암 원인 식습관 변화 때문

실제로 허익녕(29) 씨도 아토피 일종인 건선으로 10여년을 고생했다. 그도 “몸은 물론 얼굴까지 각질이 덮여 좋은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봤지만 차도가 없어, 결국 우연히 들은 민간요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허씨는 “병이 심해 직장에도 못 다닐 정도였는데, 민간요법으로 치료한다고 자연 속에서 지내다 보니, 4개월 만에 50%이상 좋아졌다”며 이는 “목초 액으로 만든 한약 훈제로 치료하고 열심히 산책한 결과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요법 전도사는 “친환경 농산물을 먹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으면 치료 안 될 게 없다.”고 전한다. 그는 궤변(?)도 늘어놨다.

“부자는 아프지만 가난한 사람은 아프지 않는다. 부자가 부럽겠지만, 부자로 살면 병신 되니, 부자 될 필요 없다.”

이유는 “만병의 근원은 음식”이란 믿음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못 살던 70년대는 결핵이 많았고, 죽어라고 일하던 80년대에는 뇌성마비와 관절염이 많았다. 좀 살게 된 90년대 이후 암과 치질이 기승이다. 이는 식습관 변화 때문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민간요법 3가지를 전했다. 참고할 만하다.

민간요법 전도사가 전하는 민간요법 3가지

- 육식을 멀리하고 잡식을 해라!
건강은 먹는 게 중요하다. 사람 이 32개 중 육식을 위한 이빨은 4개다. 먹는 것 중 1/8만 고기를 먹어라는 구조다. 8일에 한번 고기를 먹어라는 소리다. 나머지는 채식이나 잡식이다. 음식도 육ㆍ해ㆍ공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밥도 흰쌀밥 보다 잡곡밥이 좋다. 예로부터 부자가 병에 많이 걸리는 이유는 흰쌀밥을 많이 먹어서다. 서민들은 보리밥과 나물에 먹으니 병이 별로 없었다. 또 건강 챙긴다고 종합비타민제 먹는데 그러지 마라. 몸에 부족한 것만 먹어야지 이것저것 다 먹으니 과해 탈이 난다. 병원서 정확한 진단 후, 자기 몸에 부족한 영양분만 섭취해라.

- 12간지에 맞게 생활해라!
12간지는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다. 서양은 하루를 24시간으로 구분했지만, 우리는 12시간으로 구분했다. 여기에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다. 일례로 잠은 자시에 자야하고, 술은 술시에만 먹어야 덜 취하고, 술이 술을 먹지 않는다. 과하면 탈이다.

- 눈 보호 위해 ‘간’을 먹어라!
요즘 안경을 많이 쓴다. 눈 나빠지기 전에 치료하는 게 최선인데 이를 모른다. 눈에는 ‘간’이 최고다. 안경 쓴 후에라도 더 나빠지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거든 간을 먹어라. 돼지 간도 좋다. 단 꾸준히 분기마다 한 번 씩 먹어야 한다. 그러면 노안 때 돋보기 안 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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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찍은 아이, “색깔 예쁘게 물들었네!”
아픈 딸보고 웃는 아빠, 아빠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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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양말을 벗었습니다.

“아야~, 잉잉잉잉~. 아빠 아파서 안 되겠어요. 저 좀 데리러 오실래요.”

어제 아침, 밥 먹다 식탁 의자에서 넘어져 발톱을 찍었던 초등 딸아이, 절룩거리며 학교에 가더니 오후에 연락이 왔더군요.

“많이 아파. 어딘데?”
“학교 앞이에요.”

“아빠가 간다고 뾰족한 수 있겠어?”
“그래도 아빠가 와서 부축이라도 해주면 좋겠어요.”

애비 된 죄(?)로 결국 불려 나갔습니다. 집으로 가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딸이 아프다는데 웃기만 하고, 아빠도 아니야.”

“엄마한테 전화하지 그랬어?”
“점심시간에 전화했더니 참으래요. ‘우리 딸 많이 아파?’ 한 마디 하면 어디 덧나?”

“병원 갈까?”
“아뇨. 그냥 집에서 쉬면 났겠죠.”

딸애는 아파 울고 있는데 왜 그리 웃음이 나는지…. 2년 전에도 발톱 빠진 경험이 있는지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본인이 더 잘 알기 때문이지요.

“정말 병원 안가도 되겠어?”
“안가도 돼요. 아빠는 딸이 아프다는데 웃기만 하고, 아빠도 아니야.”

“근데 너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게 우스워서 그래.”
“아침에 울고 학교에 갔더니 친구하고 동생들이 왜 우냐는 거예요. 개그맨 캐릭터로 재밌게 다녔는데 우니까 이해가 안된다나요. 난 울면 안 되나?”

사실, 발톱 찍힌 건 약이 따로 없습니다. 된장 발라 아픔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여차하면 발톱이 빠진 후 새로 나길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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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발톱이 멍이들었습니다. 매니큐어 칠한 것처럼 말이죠. 얼마나 아플까.

다친 데 또 다친 딸, 어찌 제 엄마를 닮았는지

“이걸 보고 친구들이 뭐라는 줄 아세요. 여자들은 ‘괜찮아’ 그러는데, 남자들은 ‘너 발톱에 매니큐어 칠했냐?’, ‘색깔 예쁘게 물들었다’ 하고 놀리는 거 있죠. 기가 막혀서….” 

‘어찌 제 엄마를 그리도 닮았는지….’ 아내도 과일 따러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져 다치거나, 계단에서 구르거나, 발톱을 다쳐 빠지곤 했다는데 꼭 닮았습니다. 좋은 걸 닮으면 어디 덧나는지 원. 아니나 다를까, 아내도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

“근데 예전에 빠진 발톱이 또 다친 거 있죠.”
“본래 그러는 법이야. 아픈 데는 아무리 조심해도 옆에서 건드리게 되어 있어.”

때린데 또 때린 사람이 제일 밉다고 하는데, 빠진 발톱이 또 빠지게 생겼습니다. 그나저나 ‘바른 자세로 밥 먹어라’ 해도 안 듣더니 쌤통(?)입니다. 그걸 꼭 몸으로 겪어봐야 한다니깐. 이젠 알아서 자세교정 잘 하겠지요. 어른 말 들어 손해날 리 없지요.

아이는 진통제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나으려면 꽤 시간 걸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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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님이 한동안 고생하겠네요~
    잘 안심시켜 주세요~

    2009.12.09 09:33 신고
  2. Favicon of https://decemberrose71.tistory.com BlogIcon 커피믹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으으.. 손톱,발톱 빠지면 진짜 아픈데
    아빠가 잘해주셔야겠어요.

    2009.12.09 11: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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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by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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