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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속 바닷가 마을, ‘조금새끼’를 아시나요?
#1. 스물 언저리 그는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2. ‘호로새끼’ 애비 없는 새끼, 보리밥과 불문율
임호상 시인의 서사시 ‘조금새끼로 운다’ 전문
[시인 읽기]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



 

 


이런 시(詩) 처음입니다. 아버지,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 등 부부 섹스를 밝히다니.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섹스 준비 상황까지 그리다니. 부부, 사랑 나눌 테니 조용하라고 직접 경고하다니...


 

 


불합리한 유년의 기억. 남이 낳은 새끼도 남편 핏줄이라고? 자기는 그렇게 태어났다는 누이. 여인이었던 어머니를 이해하는 누이….


 

 


임호상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문학의 전당, 9천원)>를 펼쳤습니다. 가슴 먹먹했습니다. 그동안 섬에 다니는 이유는 ‘징허디, 징헌’ 우리네 삶 속으로 쑥 들어가기 위함이었지요.


 

 


그런데, 다소 긴 산문 형식의 임호상의 시 ‘조금새끼로 운다’에 섬사람들의 가슴 아린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습니다. 임호상의 시는 꾸깃꾸깃 꼬불쳐뒀던 두 가지 유년의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에겐 유년의 기억이 특별합니다.




 

 



# 1. 스물 언저리 그는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방 내줬으니 내일부터 엄마랑 같이 지내야 한다.”


 

 


유년의 기억.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어머니는 하루 전에 통보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미치고 팔딱 뛸 일. 당시엔 ‘그런가 보다’였지요. 집이 부족해 방만 있으면 세 줬던 시절이었으니...


 

 


제 방을 차지했던 사람은 뱃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중선 배’ 선원이었습니다. 스물 언저리 총각이었던 그는 화장, 배 안의 요리사였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은 드물었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이면 수북한 하얀 쌀밥, 갈치, 과자 등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건넨 덕분이었지요. 그건 뱃사람들이 보름 여 동안 바다 위에서 먹을 식량 등을 준비하는 ‘시꼬미’였습니다.


 

 


먹을 것에 넘어 갔을까. 형 하고 따랐습니다. 그는 고주망태 상황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이 산 세월은 4년 남짓. 이후 어머니를 통해 소식을 종종 들었습니다. 그는 ‘쫑포’(여수시 종화동)에 산다 했습니다. 대학시절, 방학 때 집에 내려왔다가 술집서 우연히 그를 만났지요. 고주망태 상황에서 그의 집으로 갔던 기억….


 

 


훗날, 그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 ‘조금’이란 걸 알았지요. 결국, 그가 바다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형은 갈치조림을 잘했습니다.




 

 


# 2. ‘호로새끼’ 애비 없는 새끼, 보리밥과 불문율



 

 


“쌀 좀 갖다 주고 와라.”


 

 


어머니는 어려운 중에도 한사코 심부름 시켰습니다. “이번에는 왜 쌀 빌려 달라 안하지?” 궁금해 하며. 저요? 그냥 싫었습니다. 당시엔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훗날, 알게 된 사실. 이게 어머니가 사람 챙기며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이라 걸 알았습니다. 존경의 어머니였습니다.


 

 


동네에 아버지 없는 집이 네 집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중 한 집을 지목했습니다. 가장 형편이 어려운 집이었습니다. 다른 집은 자식 넷. 이 집은 다섯이었습니다.


 

 


그들 어머니는 발품으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그렇지만 먹고 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 집은 늘 보리밥이었습니다. 이도 없어서 굶을 지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일부러 찾는 구수한 보리밥이건만….

 

 



당연히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왜? 그들 집에는 아버지가 없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말이 있었지요. ‘호로 새끼’. 애비 없는 새끼란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호로 새끼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바른 몸가짐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데도 죽어라 가르쳤습니다. 강한 생활력으로 버텼지요. 그리고 직업 선택에 불문율이 따랐습니다.


 

 


“너희들은 배타지 마라.”


 

 




임호상 시인입니다.




 

 


임호상 시인의 서사시 ‘조금새끼로 운다’ 전문

 

 




             조금새끼로 운다


                                                            임 호상



  중선 배 타고 나간 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조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초여드레, 스무이틀 간만의 차가 없는 조금이면 바다로 나갔던 아버지들 돌아오는 날. 조금이 되면 어머니 마음도 분주하다. 뜸을 들이는 무쇠솥처럼 이미 뜨거워져 있다. 바다에서 몇 바지게씩 고기를 져다 나르는 날이면 앞마당에 호야불 켠다. 당신의 마당에도 불이 켜진다. 보름을 바다에 있다 보면 얼마나 뭍이 그리웠을까, 얼마나 밑이 그리웠을까. 어머니 마음도 만선이다. 뜨거워진 당신은 선착장 계선주에 이미 밧줄을 단단히 동여맸다. 아버지도 그랬지만 선착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머니도 그랬다. 조금이 돼야 뜨거워질 수 있었던 그때, 갯내음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조금새끼



  서방 들어오는 날 속옷을 널어 방해하지 말라는 수줍은 경고가 마당에서 춤을 춘다. 어머니의 빨랫줄에 속옷과 함께 널린 고등어 세 마리, 누구 것인지 알 사람 다 안다. 호루라기 불면 들어오라 했는데 어머니의 호루라기는 한참이 지나도 들리지 않고 오도 가도 못한 조금새끼들은 정박한 배처럼 문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어머니는 보름을 기다려 하루를 살지만 조금새끼는 한 달에 두 번 문밖에서 하루를 산다. 바다에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도 홀로 남는 어머니도 참 많았다. 아버지 한 분에 어머니 둘, 조금새끼 십 남매 그때는 다 그랬다. 한 그물 속에서 그렇게 섞여 살았다고 누이는 막걸리초에 지나온 세월을 버무린다.



  어쩌면 남편을 바다로 보내는 어머니는 모두 다 작은 각시 아닌가. 바다는 아버지를 데려다가 보름이 되어서야 돌려보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청상과부 작은어머니가 아버지를 차지하고 어머니는 살을 대지도 못했다. 한 달에 이틀뿐인데 그 이틀도 어머니는 멍청이 세월로 살았다. 조금이 돼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의 바다에는 소리 내지 못하는 파도가 쳤다.



  남의 뱃속에서 낳은 새끼도 남편 핏줄이라고 내색 못해 큰어머니가 엄마가 되는 먹먹한 유년을 살았다. 두 분 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낡은 풍경처럼 서로를 인정해주며 그렇게 섞여 살았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구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며 조금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육자백이, 먼 바다를 향해 청솔개비 두드리던 그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막걸리초처럼 속으로 삭히며 핏줄이 되었다. 오랜 기다림을 절여 아버지의 입맛을 달래는, 아버지의 하루를 훔치는 어머니의 막걸리초가 되었다.



  어머니의 바다는 속 깊은 먼 바다, 겉으로 파도가 쳐도 깊은 속을 다 알 수가 없다. 날이 새면 어김없이 바다로 가는 아버지를 묶어놓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샌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밤새 하현달로 떠 있는 밤, 이번 조금 아버지 돌아오시면 당신의 아랫목 오래도록 따뜻할 수 있을까. 평생 바다를 보고 살아온 아버지도 어머니도 40년 배를 탔다던 정씨 아저씨도 바다가 무섭다는 말에 술잔에서 파도가 쳤다.



  문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파도 소리 자꾸만 자꾸만 어머니의 가슴을 쳤다.





바다는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뭍에서 욕정의 밤에 나눈 사랑 씨앗 ‘조금새끼’



 

 


‘조금새끼’, 뭔가 했습니다. ‘조금(潮―)’은 조수 간만의 차가 없는, 바닷물이 가장 낮은 때를 말합니다. 매달 음력 초여드레와 스무 사흘이 해당됩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알지요. ‘조금’은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어부들에겐 꿀 같은 휴식기라는 걸. 이 때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못한 것을 뭍에서 푸는 욕정의 밤을 맞이합니다.


 

 


모든 원인은 ‘바다’였습니다. 떠나는 아버지를 부여잡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한 바다. 남편을 잡아먹은 바다. 어머니를 청상과부로 만든 바다. 덕분에 배다른 새끼까지 거둬야 하는 삶의 바다. 어머니에게 바다는 원한 가득한 기다림의 바다였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 생명의 바다이기도 했습니다.


 

 


임호상 시인에게 시 ‘조금새끼로 운다’를 어떻게 썼는지 물었습니다.

 

 



“다들 직접 경험한 걸로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시로 옮긴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렇게 썼습니다.”



시집 <조금새끼로 운다>는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시를 읽는 내내,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습니다. 이밖에도 ‘실직’, ‘징함네’, ‘야근’, ‘그냥’, ‘분만 대기실에서’, ‘오동도’, ‘목욕탕에서’, ‘똥빨’, ‘세월’, ‘모기’, ‘여수의 노래’, ‘섬’, ‘당신’ 등 개념 있고, 지역사랑 이 깃든 주옥같은 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임호상 시인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창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살랐습니다.

 

 


꿈, 모든 이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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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었던 조계산의 보리밥집에 가보니
[맛집] 산 중턱에서 먹는 조계산 보리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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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중 맛볼 수 있는 보리밥.


말로만 듣고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유명 보리밥집이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송광사와 선암사를 품고 있는 순천 조계산 중턱의 보리밥집입니다. 한 번도 가보질 못했던 터라 궁금증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인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부부 동반으로 조계산 등산 할까? 점심은 조계산의 보리밥집에서 먹자고.”


구미 당기는 제안이었지요. 아내도 흔쾌히 OK 사인을 내리더군요. 점심때면 밥을 먹기 위한 줄이 끊이질 않는다던데 과연 그럴까? 싶었습니다. 막상 당도해 보니 과연 소문대로 줄이 늘어 서 있더군요.


이 보리밥을 먹기 위해서는 약 2시간 산행이 필수입니다. 선암사에서 출발해 장군봉-작은 굴목재(큰 굴목재)-보리밥집-송광사 혹은 반대로 송광사에서 보리밥집을 찾는 코스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더군요. 줄서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산 중에서 먹는 밥이 6천원이면 저렴한 편입니다. 내 차례가 언제 올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어떤 밥일까?

 

퀴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어떤 밥일까?



첫 번째로 엄청 배고플 때 먹는 밥입니다.

두 번째는 산을 탄 뒤 먹는 밥입니다.

세 번째는 먹고 난 후 포만감을 느낀 밥이지요.(믿거나 말거나~ㅋㅋ)
 
어쨌거나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 중간의 산 중에 위치한 조계산 보리밥집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춘 그런 곳이더군요. 이마, 이래서 입소문이 많이 난 것 아닐까 싶어요.


보리밥, 야채전, 동동주가 모두 6천원입니다. 지난해까진 5천원이었는데 물가 상승에 따라 천원이 올랐더군요. 산 중에서 이 정도 가격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일단은 행운입니다.


푸짐한 상을 기다렸지요.

 동동주와 전, 도토리묵도 빠질 수야 없지요.

 된장국과 밑반찬입니다.

 요기에 밥을 쓱싹쓱싹 비벼야지요.



10여 가지 밑반찬과 된장국, 숭늉이 압권


한참 줄 서서 순번을 기다리다 반찬과 보리밥 등을 셀프로 쟁반에 받아들었습니다. 무채, 시금치, 콩나물, 상추 버무림, 고추장아찌, 김치, 젓갈, 버섯, 멸치볶음, 부추 등 10가지 밑반찬과 된장국이 나오더군요.


게다가 밥을 비빌 수 있는 그릇에 참기름과 고추장이 추가 됩니다. 등산 중간에 먹는 요깃거리를 밥만 먹을 수 있나요? 동동주 한 사발로 목을 추겨야죠. 여기에 파전과 도토리묵을 추가했습니다. 이걸 언제 다 먹을까? 했는데 먹다 보니 금방 없어지더라고요. 역시 시장이 반찬이었던 게죠.


특히 눈에 띠였던 건, 무소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숭늉이었지요. 산 중에서 이렇게 누룽지를 먹는다는 건 애초에 생각 못했는지라 더욱 반갑더군요.


밥을 먹어보니 일부러 산 중의 보리밥을 먹기 위해 조계산을 탄다던데 그 소리가 맞더라고요. 지금 보리밥을 생각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것 같습니다.

 

비빔밥.

산속이어선지 더 꿀맛이더군요.

숭늉을 먹기 위해 또 줄을 서야 합니다.

구수한 숭늉 맛 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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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육볶음 등 밑반찬 무한리필에 어머니 손맛
[고창 맛집] 보리밥과 우렁 강된장-옛날 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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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했던 6천원 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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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은 그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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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된장 쌈도 그만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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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했던 부추.

어디에서 '보리밥' 한상 거나하게 받아 볼까?

고창에는 선운사, 문수사, 읍성 등 고즈넉한 멋이 있습니다.
왠지 고창은 마음 속 고향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고창은 풍천장어가 유명하지요. 장어 말고 다른 메뉴가 없을까? 생각하다 고창 사람에게 물어물어 찾은 곳이 있습니다. 보리밥집입니다.

식당 <옛날 쌈밥>은 터미널 근처에 있던데 전라도 말로 맛이 죽이더군요. 매년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고창으로 가는 이유가 이 집의 보리밥 때문이라 해도 무방하리만치 땡기는 맛입니다.

 

 매력에 반했던 강된장. 아이들도 '별미'라며 잘 먹더라고요.

제육볶음, 부추 등 어머니 손맛의 밑반찬은 '무한리필'이었습니다.

 물론 밥도 무한리필이었지요. 그러다 배터져 죽는 줄 알았답니다.

보리밥과 강된장의 조화, 제육볶음 등 무한리필

<옛날 쌈밥>집에는 지인 가족과 함께 갔습니다.
그는 영광 불갑사 근처에서 보리밥집을 하다,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다른 사람에게 세를 내 준 상태였습니다.

밑반찬은 깍두기, 무채김치, 멸치볶음, 김, 시금치, 호박나물, 콩나물, 버섯무침, 오이짠지, 고사리, 제육볶음, 깻잎 등이었지요.

보리밥을 시켰는데 너무 푸짐하고 맛깔스러워 골고루 시켰습니다.
참고로 보리밥 6천원, 비빔밥 6천원, 우렁 쌈밥 8천원이었습니다.

소담스런 밑반찬과 제육볶음 등의 ‘무한리필’도 좋았지만 우렁 강된장이 '압권'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강된장에 반하게 되었는데 이 집은 특히 좋더군요.

보리밥도 대나무 소쿠리에 헝겊을 깔아 주걱까지 나왔습니다.
이걸 보니 옛날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그리운 밥 생각이 절로 나대요.
게다가 취향대로 먹게끔 흰밥과 보리밥이 섞어 있더군요.


아주 입맛 땡기는 맛이었습니다.  

 

어지간히 먹어, 살찔라~^^. 소용 없더군요.

비빔으로도 좋았지요.

아이들도 반한 된장국.


지인의 제안 “불갑사에서 보리밥집 할 생각 없냐?”

아이들도 평상시에는 보리밥을 마다하더니, 여기선 찍소리 않고 잘도 먹더군요.
특히 된장국이 구수하다며 환장하고 달려 들대요.
아이들 땜에 된장국 천신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린 것들이 벌써 몸에 좋은 건 알아가지고…. ㅋㅋ~.

강된장을 듬뿍 넣어 쌈을 먹는 아이들.

앗, 누가 언제 다 먹었지?

보리밥 맛을 본 지인이 몇 번이나 입맛을 다지며, 주인장에게 뜻하지 않은 제안을 하더군요.

“음식이 옛날 맛 그대로고, 우리 어머니 손맛과 비슷하다. 불갑사 앞에서 보리밥집 할 생각 없냐? 불갑사에서 장사하면 더 대박 날 것 같은데….”

이처럼 기막힌 맛이었습니다. 배 터지게 먹었습니다. 먹고 난 뒤, 여자들이

“이를 어째. 살 빼야 하는데 걱정이네. 먹자고 사는 것, 열심히 운동하면 되겠지!”

라던 말의 속뜻을 알겠더라고요.

맛집에 다니는 이유는 이런 재미지요. 어쨌거나 보리밥에는 ‘비움의 미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보리밥에는 '비움의 미함'이 숨어 있나 봅니다.

거나했던 보리밥 집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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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사진 보는데 입에 침이 고이네요...
    시간이 새벽 두신데 배가 고파옵니다 ㅋㅋ

    2011.01.06 02:23

방앗간에 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추석 풍경’
[아버지의 자화상 32] 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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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런 방앗간이 있더군요.

얘들아!

아빠, 오랫만에 편지 쓰지?
이번에는 아빠의 '추석에 대한 추억'이란다.
아빠가 자랄 때, 추석만큼은 늘 풍성했단다.
사과ㆍ배ㆍ감 등 과일이 익어 사람 손길을 기다리고,
들판에선 곡식 추수하느라 정신없고,
귀뚜라미 노래 소리도 가득했지.

옛 추석 때, 아이들은 운동화며, 옷을 새로 얻어 입고 꽃단장을 했지. 동요 가사처럼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했었단다.

그 맛에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지. 지금이야 넉넉해져 아무 때나 살 수 있지만, 그때는 먹을 것이 없으니 옷과 신발 사기가 힘들었지. (니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난 줄이나 알아? ㅎㅎ) 또, 추석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송편’이지. 너희도 할아버지 댁에 가서 고모랑, 언니랑 빚어봤으니 빚는 방법은 알겠지?

그럼 지금부터 아빠가 찾은 방앗간 이야기와 이에 얽힌 옛 이야기 해 줄게? (으으~, 우리 아빠 재미없는 이야기 하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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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쌀을 방앗간에서 찧으면서 만들기가 시작돼. 지금이야, 시장에서 송편을 사, 제사상에 올리지만, 예전에는 조상에게 바칠 제사 음식을 사서 올린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단다. 그래 올망졸망 앉아 손으로 직접 빚었단다. 물론 여자들 차지였지. ㅋㅋ.

어제(10일) 오후, 방아 찧는 추석 풍경 잡으려고 여수시 소라면 덕양에 위치한 오래된 정미소를 찾았단다. 양철판을 덕지덕지 덧댄 모습까지. 어쩜 그리 아빠 기억 속의 방앗간이 여태껏 남았는지 신기하고 반가웠지. 이곳은 올해 초, 발견했던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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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지붕. 양철판을 덕지덕지 덧댔습니다.

양철판을 덧댄 방앗간에 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덩그러니….

그런데, 방아 찧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구나.(‘정미소’인데, 그냥 '방앗간'이라 할게) ‘참새와 방앗간’이라고, 옛날에는 방앗간 주위에 낱알 한 톨이라도 먹어볼까, 틈새를 엿보던 참새가 많았단다. 그래 '참새와 방앗간'이라 하지.

지금, 방앗간은 있는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더구나. 조금 실망했지. 사진 찍을 앵글을 미리 생각했었거든. 대신 고양이가 참새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지 뭐야?

주위에 묻고서 40여년 된 방앗간 주인장 심정섭(75)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단다. 1968년에 인수해 3년 만에 새 건물을 올렸던 게 지금의 방앗간이라 더구나.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어.

“왠 고양이가 저렇게 많아요?”
“참새가 사라지니 쥐가 들끓어. 쌀 좀 먹어보겠다고 정미소 주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데 가만 놔둘 수가 있어야지. 천적인 고양이를 이용할 밖에….”

고양이가 족히 20여 마리는 넘겠더구나. 너희들이 고양이들을 봤으면 좋아했을 텐데. 그렇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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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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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는 없고 고양이만 늘어져 있습니다.

쌀밥은 어른들 차지…아버지가 남기신 하얀 쌀밥

“옛날이야 방앗간에 줄을 나래비로 섰지. 서로 먼저 쌀을 찧으려는 마음 굴뚝같은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겠어? 행여 세치기라도 할까, 눈을 부라리고 지켰지. 그때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 지금은 파리만 날려. 세월의 흐름이 그렇게 무서운 거여!”

그냥 쉽게 떡집에서 사면 그만인 것을, 줄까지 길게 서서 쌀을 빻는 것 상상이 가니? 너희들도 세치기 하는 사람 보면 괜히 뿔나잖아. 세치기하는 사람 정말 밉지? 아빠도 방앗간에 몇 차례 줄 섰던 기억이 나.

먹을 게 귀하던 시절, 내내 보리밥만 먹었단다. 밥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를 쫓아 가마솥 뚜껑을 열면, 보리밥 한쪽에 허연 쌀밥이 얹어져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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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보리밥. 이젠 건강식이 되었지요.

그래, 가마솥에 들어 있는 뜨거운 쌀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 몰래 손으로 집어 입에서 호호 불고 먹기도 했어. 한쪽에 있던 쌀밥은 언제나 아버지와 할머니 몫이었지. 어머니가 어른들 쌀밥을 먼저 뜨고, 나머지는 쌀과 보리를 섞어 우리들에게 줬지. 이것도 감지덕지하고 먹었어.(그런데 니들은…. 케케먹은 아빠?)

다른 때 같으면 후다닥 해치울 건데, 밥상에서는 아주 천천히 먹었지. 혹시 아버지와 할머니가 쌀밥 남기면 먹으려고. 이걸 눈치 채신 아버지는 밥을 드시다가 수저를 슬며시 놓으셨지. 이게 아버지의 진한 마음 아닐까? 그러면 쌀밥을 서로 먹으려고 울고불고 난리 났지.(뭐라고? 언제 적 이야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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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머리에 내린 서리는 쌀밥 먹는 신호탄!

어쨌든 추석 때는 추수한 쌀을 찧어 새 쌀을 조상님께 받쳤지. 방앗간에서 쌀 찧을 때, 처음에는 그 집 가장이 쌀 들어가는 걸 지켜봤지. 그러면 아버지 얼굴이며, 머리에 하얗게 서리 내린 것처럼 쌀 가루가 내려앉았지.

그게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신호탄이었어. 그런 후, 허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이게 아빠가 느끼는 ‘가을의 풍요로움’이야.

쌀 찧는 비용은 얼마였냐고? 심정섭 할아버지 말을 그대로 옮길게.

“정미소가 한참 잘나가던 7ㆍ80년대에는 추수 후 나락을 84㎏ 쌀로 찧어준 대가로 작은되 고붕으로 3되를 받았어. 1되는 지금 돈으로 40㎏ 쌀 한 가마니 정도 가치야. 그게 6~7가마나 됐지. 그걸 팔아 7남매 입히고 가르치고도 남았지. 지금은 고작해야 쌀 5대를 받는데 찧겠다고 오는 사람이 없어. 사먹으니 쌀 찧을 필요가 없어진 거지.”

옛날에는 40㎏가 한 가마니였는데, 요즘은 무겁다고 양을 줄여 보통 20㎏를 한가마니로 친단다. 쌀 한가마니에 대충 4~5만원 하니까, 쌀 다섯 되면 얼만지 계산해봐.

그만큼 쌀값이 똥값 된 거지. 고생은 죽어라고 하는데 쌀값이 떨어지니 농민들이 농사를 안 짓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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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 시작 부분.

권력층은 돈 되는 것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6ㆍ70년대 호황기 때에는 외국에서 구호 쌀이 들어오면 밤새도록 서너 달 동안 쌀을 찧어야 했어. 그때 방앗간은 주로 동네 유지들이 하는 업이었지. 빽 있는 권력층도 많이 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층은 돈 되는 것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그래도 밤새도록 방앗간 기계 돌아가는 소리 날 때가 좋았는데…”

“왜, 어떻게 권력층이 그럴 수 있냐고?” 욕심 때문이겠지! 자세한 건 10월 10일 이후, 가을 추수 완전히 끝나면 도정한다니까, 그때 같이 방앗간에 가서 할아버지께 직접 들어보자.

얘들아!

좀 딱딱하지. 그래도 신기한 구석이 있지? 그런 세상도 있었다니 하고 말이야. 알게 많은 세상이라 열심히 살 필요가 있단다.

우리 이번 추석에 달구경하며 토끼랑 놀자? 아빠 이야기는 여기서 끄~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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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껍질과 쌀로 나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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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blog.daum.net/solocook (비바리의 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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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은 맛이 없다?…그건 ‘옛말’
[보리 이야기 2] 맛과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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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혼합한 찰보리 밥(좌)과 쌀보리 밥.

“요즘 보리밥은 찰보리라 쌀을 씹는 것처럼 맛을 음미할 수 있다. 특히 퍼짐성과 수분흡수율이 좋아 미리 불리거나 삶을 필요가 없다. 밥이 된 후에도 윤기가 나 잘 굳지 않고, 찰지며, 촉촉한 감이 살아 있어 밥맛이 좋다. 그러나 옛날 보리밥은 일반 보리라 까실까실한 탓에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영광군 군남 농협 임창섭 씨의 찰보리 맛 예찬입니다. ‘어, 보리가 거기서 거기 아니야!’ 여겼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그의 말대로 보리 고개 시절 가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옛날 쌀보리는 두 번 불려 먹는 탓에 씹히는 느낌이 까칠까칠해 맛이 별로였습니다.

그렇다면 차로는 알아주는 보리인데 밥은 왜 맛이 없었을까?

“따뜻하게 먹으면 먹을 만한 보리밥은 식으면 수분이 빠져 나가면서 알파 녹말 상태에서 베타 상태의 녹말로 변해 쌀밥보다 더 딱딱해 먹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리밥에 있는 수분이 달아나지 않도록 밀폐 용기 속에 따뜻하게 보관하면 어느 정도 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무튼 식으면 맛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무로 군불 떼던 시절, 뜨끈뜨근한 아랫목에 밥그릇을 넣어두고 이불을 덮어 어른들이 돌아오면 밥상을 차렸던 지혜가 여기에서 나온 셈입니다. 맛있는 밥을 주고자 하는 어머니들의 삶의 지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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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보리 예찬론자인 임창섭 씨.

찰보리, 암ㆍ당료 등 성인병에 그만

맛은 그렇다 치고, 검은 콩ㆍ검은 깨ㆍ오징어 먹물 등 검은 식단이 건강식으로 각광 받는 요즘 보리가 건강식으로 각광 받는 이유는 무얼까?

임창섭 씨는 보리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알려진 것처럼 단백질과 ‘베타-글루칸(β-glucan)’ 함량이 높아 변비와 대장암의 억제, 심장질환과 비만을 예방 등에 효과가 크다. 또 식이섬유질이 많아 다이어트에도 그만이며, 스테미너 증진과 스트레스 저항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혈당과 뇨당의 증가를 막아 당뇨병 등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준다.”

그는 보리의 또 다른 장점에 대해 “보리는 겨울철 재배라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살포할 필요가 없는 무공해 식품이며, 쌀은 산성인데 반해 보리는 알칼리성 식품”이라 강조합니다. 아하~, 그렇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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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찰보리.

보리밥 맛은 언제부터 달라졌지?…2005년 이후

이 같이 몸에 좋은 효능도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사람들이 꺼리면 효과가 없지요. 그러면 언제부터 보리밥 맛이 달라졌을까?

영광군 군남 농협에 따르면 “밥을 지을 때 불리거나 삶아야 하는 불편함과 먹을 때의 까실까실함, 거무스름한 색 등 일반 보리의 단점을 개선한 것이 ‘너른들’ 찰보리”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먹었던 쌀보리가 찰보리로 대체된 셈입니다. 멥쌀과 찹쌀의 차이로 보면 쉽게 구분이 가능할 것입니다.

“군남 찰보리는 1994년부터 교배해 부터 전국 최초로 생산하여 1996년에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의 품질인증을 획득한 후, 2005년에 전라남도로부터 우수농산물로 인증 받아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 찰보리는 영광 이외에도 전불 김제, 충남 논산 등이 손꼽히는 생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찰보리는 보리차와 같이 고소하고 보리향이 은은해 식빵ㆍ초코 케잌ㆍ인절미 등 빵류 제품과 식혜ㆍ발효 음료ㆍ식이섬유 음료ㆍ미숫가루 등 건강음료 및 생보리 담요, 생보리 베개, 찰보리 고추장의 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렇듯 맛도 개선되고 몸에도 좋다는 우리 농산물 보리 한 번 드셔 봄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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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혼합한 찰보리(좌 상)과 쌀보리(좌 하), 찰보리 재배 지역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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