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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8

 

 스님의 글 앞에 무릎 꿇고 큰절을 올렸다, 왜?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비상도니라!』

 

 

<비상도 줄거리>

 

 독립투사였던 할아버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는 상해임시정부의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으로 그는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제 너도 장부가 되었으니 내가 너에게 해 줄 말이 있느니라.”
  “……”

 

  “비상권법은 우리 고려국의 무예였느니라.”
  “예?”

 

  “조선이 개국하고 새 왕조가 득세할 때 비상권법의 대가들은 모두 죽음을 당했어. 왜냐하면 비상권의 고수들은 모두 고려 왕가의 후예들이었고 고려부흥을 꾀할 위험인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던 것이야.”
  “그런데 어떻게……”

 

  “고려 왕족으로 세상을 떠돌던 왕백산이란 도인이 계셨어. 다행히 그분은 화를 피했으나 더 이상 조선에서 몸을 숨기는 것이 어렵게 되자 중국으로 도피를 하셨고, 뒷날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 추장이었던 누르하치의 눈에 띄어 그곳 왕실에서 비상권법의 비법을 전수하였느니라.”
  “그렇다면 그들이 고려국의 무예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숨긴 것입니까?”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 권법의 맥이 끊어졌으니 우리 것이라고 내세울 수가 없게 된 것이야.”
  “스승님 제가 그 맥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음 말을 이어갔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느냐?”
  “예, 형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너에게 비상권법을 전수해 주었으니 누군가에게 받은 은혜는 물려준 셈이다만 왜 마음 한구석이 이리도 편치 않은지……. 이제는 내가 한 사람을 찾아가 사과를 받아 낼 일이 남았구나.”
  “어딜 다녀오시겠습니까?”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구나.”

 

 

 스님께서는 동해의 물음에 대답을 피하시고 형 방에서 한참을 그렇게 머물렀다.

 다음날 동해는 어느 때처럼 새벽운동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 폭포수 아래로 갔으나 어쩐지 예감이 이상했다.

 

 

 얼른 뛰어와 스님이 계신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안은 텅 비어 있었고 방 한가운데 하얀 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는 얼른 봉투를 열었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비상도니라!』

 

 

 짧은 스승님의 글씨였다. 비상도(非常道)라는 말은 도덕경(道德經) 제1장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로서 도라고 하는 것은 참 도가 아니다.」라는 글귀에서 따온 말로 비상권법 또한 동일한 것이었으며 그 권법이 도가(道家)에서 비롯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스님…….”

 

 

 그분은 스님이기 이전에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준 큰 스승이었다.

 

 

 동해는 스님의 글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자신을 수제자로 인정해 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자 그동안 자신을 가르쳐준데 데 대한 감사의 인사였다.

 

 

 그것이 스님과의 이별이었고 이후로는 다시 그분을 뵙지 못했다. 그리고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음날 비상도는 용화가 보았다던 곳으로 형을 찾아 읍내로 나섰다. 형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때의 일도 잊었거니 하였다.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산으로 들어와 형제보다도 더 진한 우정으로 살갗을 맞대며 의지한 긴 시간이었다.

 

 

 어린 나이에 집을 잃은 동해를 형은 늘 가슴 아파하며 훗날 그의 부모를 꼭 찾아 주리라 마음먹었고, 동해는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잃은 형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 적이 있었다.(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판 의뢰 및 드라마,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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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7

 

“스승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그놈을 찾지 못하면 잃는 것이 너무 많으니라.”

 

 

 

 동해는 무서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고 그것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무예에 타고난 천부적인 소질이 크게 한몫했다.

 

 

 비상권법은 결코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물론 사람을 단숨에 절명시킬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공격은 인체에 두루 흩어져 있는 급소를 노려 상대를 일시에 무력화 시키는데 있었다.

 

 

 흔히 혈(穴) 또는 경혈(經穴)이라고 하는 곳으로 인체에는 700여 곳이 넘는 급소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론 공격 대상이 되는 곳은 70여 곳이었다.

 

 1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어느 날 스님은 동해를 데리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이 나무들이 무슨 나무인지 아느냐?”
  “자작나무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오늘부터 이 나무 네 그루를 네가 죽이 거라.”

 

  “네?”
  “너의 열 손가락과 두 발로 이 나무들이 낙엽을 떨구기 전까지 모두 죽여야 하느니라.”

 

 

 아름드리나무이기도 했지만 한창 물이 오를 데로 오른 질기기로 소문난 나무였다.

 

 

  “스승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나는 진백목(秦白木)으로 하였느니라.”

 

 

 진백목은 흔히 물푸레나무라고도 하는 것으로 나무가 질기고 단단하여 옛날에는 도리깨를 만들어 썼으며 지금도 야구방망이와 스키를 만들어 쓰는 주재료였다.

 

 동해가 나무 네 그루를 죽였을 쯤에는 그의 몸놀림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눈을 뜨고 가만히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찰나에 급소 두서너 군데를 찍어 눌렀고 그 힘은 손가락 끝으로 생나무를 찔러 구멍을 내는 무서운 내공을 가지게 되었다.

 

 

  “문(文) 없는 무(武)는 생각 없는 승냥이와 같으니라.”

 

 

 스님의 이 말씀은 동해를 꾸준히 책상머리에 앉게 만들었다. 이제는 남재 형에 관한 일도 그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스님께서 외출 하시는 날이 부쩍 잦아지던 어느 날 수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형 방문 앞에 스님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방안에서 피리소리가 들렸다. 형의 피리를 스님께서 불고 계셨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스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오너라.”

 

 

 요즘 들어 스님 방에서 술병이 보이는 날이 잦았다. 오늘도 스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남재를 찾아야 한다. 그놈을 찾지 못하면 잃는 것이 너무 많으니라.”

 

 

 순간 동해는 방망이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껏 그를 잊고 있었던 송구함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직까지도 형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형의 고모님께서 당부하신 말씀을 지키지 못한 자책이기도 했지만 독립투사의 손자를 그렇게 놓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섭섭함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판 의뢰 및 드라마,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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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6

 

 

“내일부터 비상권법을 배워라.”
최고는 한 사람으로 족해, 두 사람이면 다퉈

 

 


 스님의 부친은 독립 운동가로 상해임시정부의 요원이었으며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이후 한껏 기세가 올라 있던 임정의 노력으로 중국 왕가는 비상권법을 특별히 조선인인 그에게 전수 받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다. 다만 그의 본명 대신 ‘호야’라는 중국식 이름을 갖게 한 것은 그들만의 자존심이었다.

 

 

 뒷날 공산당이 들어서고 비상권의 대가들은 위험인물로 낙인 찍혀 뿔뿔이 흩어지고 대부분 정부의 인권유린에 항거하다 처형을 당했거나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해 그 무예는 세상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스님 또한 정치범으로 또 한 때는 단순한 난동주모자로 잡혀 여러 차례 고문을 당한 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하는 수 없이 밀항선을 탔다. 하지만 스님께서 모국인 대한민국을 택한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터를 잡은 곳이 이곳 가야산이었다. 비교적 남의 이목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었고 심신을 가꾸기에도 더 할 나위 없는 적당한 장소였다. 그러던 중 남재를 만났고 동해까지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는 남재 형이 손자병법을 읽고 있을 때였다. 스님께서 지나가시며 슬쩍 말을 흘렸다.

 

 

  “그것은 동해에게 주고 너는 시경(詩經)을 읽어라.”

 

 

 지금 생각 해 보면 각자의 자질과 취미에 맞춘 교육방식으로 학문보다는 뜀박질에 더 관심이 많았던 동해에게는 무예를 염두에 두고 계셨던 것이 분명했다.

 

 

  “최고는 한 사람으로 족하니 두 사람이 되면 다투게 되느니라.”

 

 

 스님의 그 말씀으로도 그것을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처음 형의 병실을 다녀오던 날 밤 스님은 동해를 불렀다.

 

 

  “내일부터 비상권법을 배워라.”
  “예.”

 

 

 오래 전부터 바라던 일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혹독 하느니라.”
  “견뎌내겠습니다.”

 

  “외롭느니라.”
  “하겠습니다.”

 

  “이십년이 걸릴 수도 있음이야.”
  “삼십년이 걸려도 좋습니다.”

 

 

 수련은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주로 폭포수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하루에도 몇 차례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꼭대기를 오르내렸고 어깨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통나무를 매고 절벽을 기어올랐다.

 

 

  “새가 날개 짓을 하지 못하면 날 수가 없느니라.”

 

 

 사시사철 눈과 비를 개의치 않았으며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땡볕에 껍질이 벗겨지고 혹한에 살갗이 터졌다. 발에 굳은살이 박이기를 수백수천을 거듭하였다. 

 

 

 점차 그의 눈은 매의 날카로움을 닮아갔다. 날렵하기로는 표범의 순발력을 갖추었고 부드러움은 물고기의 움직임을 닮아 있었다. 서 있는 나무 위를 단숨에 예닐곱 걸음 뛰어 올랐으며 웬만한 높이의 나뭇가지 위로 소리 없이 도약해 앉았다.

 

 

 서너 해가 지났을 땐 뛰고 나는 행동 하나에도 발자국 소리는커녕 옷깃 스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올빼미가 소리 없이 날아와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스님은 폭포수 아래의 작은 연못으로 동해를 데리고 갔다. 맑은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녔다.

 

 

 연못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선 채로 한동안 물속을 응시하던 스님은 갑자기 물속에 손을 찔러 넣었다. 잠시 뒤 손을 빼내었을 땐 두 손가락 사이에 낀 물고기가 파닥거리고 있었다.

 

 

  “네 자신이 물고기가 되지 않으면 어려우니라.”

 

 

 상대방의 마음속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잊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수련방법이었다. 몇 개월이 걸려 그것을 완성했을 때 스님은 흙탕물 속에서 물고기를 잡아채도록 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기관을 이용해야 하는 최고난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마치 눈이 퇴화된 동굴 박쥐가 주파수를 이용해 장애물을 피하며 먹이를 채 가는 방법과 흡사했다.(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판 의뢰 및 드라마,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 환영합니다.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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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4

 

“스님께서 혹 땡중이 아니신지?”

황소와 스님과 관련한 놀라운 일화

 

 


 다시 형이 나섰다.

 

 

 “스님께서는 중국 분이신데 어떻게 한국말을 그렇게 잘 하실 수 있습니까?”

 

 

 스님은 한참 생각에 잠기시고는 북쪽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내 선인께서는 한국인이셨으니…….”
  “예? 그런데 왜 그곳에서…….”
  “그분은, 그분은 독립투사였느니라.”

 

 

 동해가 거들었다.

 

 

  “그렇다면 남재 형의 조부님과 같은…….”
  “조선과 만주에서 싸웠다는 것만 다를 뿐 그 정신은 같았을 것이야.”

 

 

 긴 겨울이 가고 산과 들이 초록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스님은 종종 마을의 일이 바쁠 때면 두 아이를 데리고 그곳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거들었다.

 

 

 마을사람들은 그런 스님을 좋아했으며 그가 비록 절간에 살기는 하였으나 승복 대신 일상복을 입고 있을 때가 더 많았던 탓에 그들은 가끔 산으로 찾아와 스스럼없이 일을 부탁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스님을 부르는 호칭도 스님부터 시작해 선사님, 처사님, 도사님까지 실로 다양했다.

 

 

 “스님께서 불경 읽는 소리를 통 듣지 못했으니 혹 땡중이 아니신지?”

 

 

 마을사람들이 장난으로 농을 할 때면 스님도 웃으시며 곧잘 응수했다.

 

 

  “산새가 나를 대신해 아침저녁으로 불경을 읽는데 혹 그 소릴 못 들으셨소?”

 

 

 그제야 그들도 허리를 펴며 큰소리로 웃었다.

 

 

  “저 도사님, 오늘 우리 집에 고구마 순을 심어야 하는데…….”
  “곧 가리다. 대신에 뒷날 수확 철에는 부처님께 고구마 공양이나 올리시오.”

 

 

 나이는 동네 사람들이 스님보다 대부분 연배였으나 왠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던 탓에 그들은 말 놓기가 꺼림칙하여 공대를 하거나 말끝을 흐리기 일쑤였다.

 특히 스님께서 상대방을 부를 때 쓰는 ‘사형’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주눅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말의 뜻이 한 스승 아래서 가르침을 받은 무림의 제자들이 상대방을 높여 부를 때 쓰는 호칭임을 알고는 더욱 그랬고 그들이 결정적으로 스님을 예사로 볼 수 없었던 일은 마을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겪고 난 이후였다.

 

 

 종자파종으로 한창 분주하던 어느 봄날 오후였다.
 마을에서 키우던 큰 황소 한 마리가 마구간을 부수고 뛰쳐나온 일이 있었다. 눈을 뒤집고 입에 흰 거품을 문 황소는 거의 미친 것처럼 날뛰었다. 논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렸다.

 

 

 모두가 공포에 떨며 논밭의 언덕배기에 숨거나 나무가 있으면 그곳으로 기어올랐다. 심지어 리어카를 뒤집어 급한 데로 아이들은 그곳에 숨겼다. 비명소리를 들은 영감들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밭고랑에 바짝 엎드려 무사히 이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들판 한가운데 서 있던 황소가 공격대상을 찾아 씩씩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마침 밭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여든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사람들 눈에 띄었다.

 

 

 숨어서 그것을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밭고랑에라도 엎드리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할머니는 귀가 들리지 않았다. 황소가 할머니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스님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황소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스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틀림없이 소의 뿔에 받혀 내장이 튀어나왔거나 발굽에 짓밟혀 갈비뼈가 살점을 뚫었을 거라 믿었다.

 

 

 그때 눈을 감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들은 것은 아주 날카로운 기합소리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눈을 떴을 때 스님이 아닌 황소가 벌러덩 나자빠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털며 잠시 후에 소가 깨어날 것이라 했고 그 말은 적중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어떤 사람들은 스님이 소의 불알을 찼다고도 했고 소의 눈을 찔렀다고도 했지만 추측만 무성할 뿐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출판 의뢰 및 드라마,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 환영합니다.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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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3

 

 

“독립투사를 둔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내가 아느니”

“모두는 남재의 가족에게 빚을 지고 있음이야!”

 

 

 


  “형……”

 

 

 막혔던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그 때 담당의사가 보호자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고 두 사람은 그곳으로 향했다.

 

 

  “한쪽 팔과 다리는 보신대로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한쪽 눈마저 실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 눈도 장담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말이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님은 병원 문을 나서며 짧은 한마디 말을 남겼다.

 

 

  “살려만 주시오!”

 

 

 동해가 처음 남재 형을 만난 것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던 자신을 그가 이곳으로 데리고 오고부터였다.

 

 그 후로 동해는 자신보다 세 살 위인 남재를 친형처럼 의지하며 따랐고 남재는 그런 동생이 생긴 것이 신기했던지 어디를 가든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흔치는 않았지만 먹을 것이라도 생기면 형은 먼저 동생부터 챙겼다.

 

 뒤에 들어 알았지만 남재 형은 고모님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맡겨졌다고 했다.

 

 형의 조부님은 독립운동가로 그의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이 된지 오래였다. 아버지는 배움의 기회를 잃은 탓에 해방 후 노동판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아오다 오래전에 폐병으로 고인이 되셨고 작은 아버지가 있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백구하라는 이름자만 기억 할 뿐 행방을 감춘 지 오래되어 생사조차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유일한 혈육인 그의 고모님이 어린 조카를 절에 맡기며 스님께 당부의 말씀을 놓았다.

 

 

  “집안 재산은 독립자금으로 다 없어졌으니 남은 것이라곤 저 애 하나뿐이오. 독립투사의 손자이니 부디 큰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아흔이 가까운 그의 고모님께서 더 이상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스님께서는 할머니를 마을 아래까지 부축을 하시며 배웅을 해 드렸다.
 한사코 뿌리치시는 그분을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달래셨다.

 

 

  “제 어머님 생각에…….”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신 스님께 형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으나 스님은 형을 꼭 안으셨다.

 

 

  “독립투사를 둔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내가 아느니…, 왜놈의 밀정들이 빨래터에까지 따라 붙었느니라.”

 

 

 그 일은 오래토록 형의 가슴에 남았고 동해에게도 그 말이 전해졌던 것이다.
 스님께서는 특별히 형을 편애하지는 않았으나 가끔 지나가는 말을 동해에게 던지곤 했다.

 

 

  “모두는 남재의 가족에게 빚을 지고 있음이야!”

 

 

 동해가 산으로 들어온 이듬해였다. 스님은 두 아이를 불렀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른 스님의 모습에 잔뜩 긴장한 채 무릎을 꿇었다.

 

 

  “오늘부터 공부를 배우거라!”

 

 

 스님의 짧은 말씀이었다. 왜 공부를 하라는 것인지 무슨 공부를 하라는 것인지에 대해 일체 말씀이 없었고 다만 한문 한 구절을 붓글씨로 적어 주시며 깊이 파고들라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논어」의 학이편 이었음을 알았지만 그때 동해의 나이 겨우 여섯 살이었다. 

 

 

  “사람이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어야 하듯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새가 예에서 비롯되고 예로 끝나느니, 그것을 알려면 부지런히 배워야 하느니라.”

 

 

 지금도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때 스님께서 지그시 눈을 감으시며 한동안 옛 생각에 잠기시던 모습이었다.

 

 

  “나는 네 살에 그것을 배웠느니라. 나의 선인께서는 참 부드러운 분이셨어.”

 

 

 한창 공부에 재미를 붙여가던 어느 날 저녁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형이 불쑥 물었다.

 

 

  “스님 방에는 왜 책이 한 권도 없습니까?”

  “어느 해였던가, 겨울밤이 하도 추워 아궁이에 불을 지폈어”
  “아무리 그래도 그 아까운 것을…….”

 

 

 스님께서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시며 수저를 놓았다.

 

 

  “내가 앵무새가 되길 원하느냐?”
  “무슨 말씀이신지…….”

 

  “학자는 책을 가지려 노력하고 현인은 책을 감추려 애쓰며 성인은 책을 버리느니라.”
  “그렇다면 스님은 성인의 반열이십니까?”

 

  “아니다. 나는 진인(眞人)의 경계라도 갔으면 하느니라.”

 

 

 남재 형의 물음은 집요했다.

 

 

  “스님, 진인이 무엇입니까?”
  “내게 물을 가져다주겠느냐?”
  “예.” 

 

 

 형이 물을 그릇에 담아 내어왔다. 

 

 

  “이 그릇의 쓰임새가 무엇이냐?”
  “…….”
  “그릇의 용도는 비어 있음으로 쓰일 수가 있는 것이야. 그것처럼 비우고 있는 사람을 진인이라 하느니라.”

 

 

 스님의 사고가 노장사상이 바탕이었음을 뒷날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통 알지 못했다. 

 다시 형이 나섰다.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유고 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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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의 저자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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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

 


비 상 도 1-1

                                                                       

 

 어느 듯 산중턱에도 간디의 초상을 닮은 마른 나뭇잎이 등허리가 굽은 채 떨어져 내렸다.

 

 평소 같으면 떨어지는 나뭇잎을 그대로 두었을 것을 비상도는 괜스레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었다.

 

 

  “손님이라도 오시려나?”

 

 

 아침부터 까치가 요란하게 울어댄 까닭이었다.

 마침 그때 학교에서 돌아오던 용화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스승님, 돌아오는 길에 어떤 소경이 피리를 불고 있었습니다.”
  “어디서였느냐?”

 

  “읍내 시장 한 모퉁이였습니다.”
  “어떤 모습이었느냐?”

 

  “팔과 다리가 하나씩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쪽 눈마저 감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한 손으로 피리를 부는데도 소리가 절묘했습니다.”

  “그 소리가 아름다웠느냐? 아니면 한 손으로 부는 것이 신기하였느냐?”

 

  “소리도 좋았지만 한 손으로 부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비상도는 멀리 하늘에 시선을 모은 채 바람에 떠내려가는 구름 한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건 자전거를 한 발로 타는 것과 같다. 아마 그분이 두 팔을 가졌더라면 한 손으로 피리를 불지는 않았을 것이야.”
  “그건 왜입니까?”

 

  “두 발을 가진 사람이 한쪽 다리로 자전거를 젓는 것을 너는 본 적이 있느냐?”
  “….”

 

  “그 소리가 틀림없이 슬펐을 것이니라. 그 마음의 소리를 들여다보아야 하느니.”

 

 

 비상도는 그 말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어릴 적에 남재 형이 즐겨 불렀던 피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피리를 불고 있을 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래 전의 일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제트기가 지나간 하늘에 하얀 구름길이 열린 어느 청명한 가을날 오후였다.

 

 동해는 한 시간 가까이 바위에 걸터앉아 비행기가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디선가 불어온 한 자락 바람이 툭 하고 굴밤나무를 건드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청설모 한 마리가 떨어진 굴밤을 입에 물고는 그것을 나무 덤불 속에 숨기고 때로는 돌 틈 사이에 밀어 넣었다. 바로 그때 아래에서 스님의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무얼 보고 있었느냐?”
  “청설모가 굴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너는 그놈이 자신이 숨긴 것을 다 찾아낼 거라 생각하느냐?”
  “그건….”

 

  “열 개를 숨기면 겨우 절반을 찾아 낼 뿐이니라. 그것이 자연의 모습이니라. 때로는 망각이 만물을 키우느니….”

 

 

 동해는 여지껏 스님께서 먼저 자신에게 말씀을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스님, 잡념이 저를 괴롭힙니다.”

 

 

 동해가 먼저 물으면,

 

 

  “마음이 있기 때문이란다. 너는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손가락 끝에 있단다. 가시로 손가락 끝을 찔러 보아라. 그날은 잡념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야.”

 

 

 늘 이런 식이었다.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남재 형이 물었을 때에도,

 

 

  “사람 마음속에 고약한 혹 주머니가 두 개 있으니 하나가 탐욕이고 다른 하나는 시샘이니라.”

 

 

 어느 날 산 아래 마을을 지나다가 밭에서 일을 하시는 농부들을 본 형이 스님께 말을 걸었다.

 

 

  “대체 사람은 얼마만큼 가져야 적당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도 스님께서는 멀리 들판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답을 놓았다.

 

 

  “남을 위해 쓸려고 하는 사람은 담는 그릇이 커야 하고 자신을 위해 쓸려고 하는 자는 그 그릇이 작야야 하는 게지.”

 

 

 형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제 그릇은 얼마만한 것입니까?”
  “이놈아, 네가 언제 보여주기라도 했더냐?”

 

 

 가르침과 배움은 주로 이런 문답식이었다.

 

 그런데 어제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오신 스님께서는 묻지를 아니했는데도 동해에게 먼저 말씀을 걸어오셨고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신 후 흐느끼시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다음에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변재환 씨의 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락 없이 불법으로 인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허하며 고발 조치될 수 있습니다.

 

 

 

비상도의 저자 고 변재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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