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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여행 시, 장애인의 이동 불편 줄여야
장애인인 정하균 국회의원과 섬에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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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가기 위해 움직이는 정하균 의원 일행.

육지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섬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은 아직까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 일요일(4일) 오전, 정책토론회 참석 차 여수에 온 정의화 국회부의장(한나라당, 부산 중구ㆍ동구), 정하균 의원(미래희망연대 비례대표), 김성곤 의원(민주당, 여수 갑) 일행과 함께 사도 등 섬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배를 타려면 계류시설을 지나 배에 올라야 했다. 비장애인은 문제가 없었지만 교통사고로 경추가 손상되어 사지마비 장애인인 정하균 의원이 문제였다.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그가 혼자 배에 오르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비애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해야 했다.

정하균 의원의 경우로 확인함이 더욱 더 피부에 와 닿을 것 같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계류시설을 지나기도 쉽지 않았다.

배에 오르기 위해 난관에 부딪친 정하균 의원이
인상쓰는 대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이런 불편 앞에 "웃으면서 하나씩 고쳐나가는 습성이 생겼다"고 한다.

전동휠체어의 무게도 만만치 않아 여러 사람이 달라붙었다. 

휠체어를 올린 후 등에 업혀 배에 오르는 정하균 의원.
후천성 척수장애는 그를 이렇게 변하게 했다.

편의증진법은 있으나마나한 사문화 된 법 규정?

사실 우리나라에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을 위한 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이하 편의증진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의증진법’제4조는 “장애인 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동등하게 이용하고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 조항은 사문화 된 규정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장애인이 배에 타기 위해서는 주위의 도움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육지 여행에서 섬 여행으로 관광 패턴이 변하고 있는 요즘, 섬으로 가는 장애인들의 불편함도 줄이려는 노력도 이제는 필요한 시점이다.

배가 도착하자 내리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

 섬에 가려했으나 도저히 갈 수 없어 그가 포기했다.

 내리기도 장난 아니다. 이런 불편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배에서 내리는 정하균 의원을 바라보는 정의화 국회부의장.
그가 바라보고 있자 한 공무원이서 조용히 정답을 내놓았다.

"장애인이 배에 쉽게 탈 수 있도록 시설을 보완해라"

배에서 힘겹게 내린 정하균 의원과 정의화 국회부의장(우), 김성곤 의원(좌).
정하균 의원도 비장애인으로 살다 교통사고 후 장애를 갖게 됐다.

그가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여기저기를 다니는 것은
"직접 몸으로 보여줘야 고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yiybfafa.tistory.com BlogIcon 해피아름드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네요
    함께 부딪히고 경험하지 않으면..아픔을 이야기하기 어려워요..ㅠㅠ
    좋은 하루 되세요~

    2010.07.06 08:10 신고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의원께서 비자애인이었다가 장애인이 돼셔서 더 크게 느끼실겁니다. 장애인을위해서 처음 부터 시설을 편리 하게 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2010.07.06 13:07

장애인을 둔 가정의 굴레를 알고 있나요?
[장애인 가족과 풀어가는 장애인 이야기 1] 장애 가정

“어떻게 장애인 자녀를 두고 혼자 좋은 세상 가겠다고 자살을 택했는지, 아주 몹쓸 아버지다. 가족과 장애 자식은 어떻게 살아라고…”

지난 해,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을 둔 한 아버지가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주위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그 말투가 곱지 않았다. 그들은 장애인을 둔 가정의 굴레를 알고 있을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사랑이 가득한 집 아이들이 경험했던 행사들.

장애 일에 헌신은 “장애 가진 자녀가 있어서 하는 것뿐”

주위에서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럼에도 시시콜콜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래, 그들을 ‘시답잖은 사람’이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장애인 가족들을 만나 그들은 어떤 애로점과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직접 찾아 나섰다. 23일 오전 10시, 여수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만난 사공춘 전남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의 표정을 밝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난데없이 날아온 말,

“장애 관련 일을 하는 건 장애정신이 투철하거나 박애정신 있어서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장애 가진 자녀가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것뿐이다.”

쓸데없는 건 묻지 말라는 빈볼성 견제구였다. 자신은 스트라이크성 질문만 받겠다는 것이었다. 바라던 바였다.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이 주어진 것인가?”

“이 땅에서 장애인 가족으로 산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나도 몇 차례 아이와 함께 죽을까도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되지만, 완전 포기한 상태에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2녀를 둔 사공춘 대표의 경우, 맏딸이 정신지체 1급. “서울에서 여수로 시집와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 내가 세상에서 태교를 제일 잘한 줄 알았다. 우리 아이가 장애아로 태어난다는 건 0.001%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신지체로 태어난 것이다. 삶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더불어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이 주어진 것인가?”하는 원망이었다. 사실, 그는 장애아를 피할 수도 있었다.

“23년 전, 첫 아이 낳을 때가 추석이었다.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갔는데 아이가 거꾸로 앉아 있었다. 명절이라 마취의사가 없어 제왕절개를 못하고 3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 ‘살 가망이 없다. 살아 있더라도 장애아인 줄 알아라’는 소릴 들었다.”

사공춘 대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의료사고 제기는 애초에 생각지도 않았다. 돈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업보로 받아들였다. 재활치료로 완전히 나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심장ㆍ건강ㆍ재활치료를 위해 최고 권위자만을 고집하며 10여년을 쫓아다녔다.

부모라고 해도 견디기 힘든 한계가 왔다. 너무 힘들어 쉬고 싶어도 어디 맡길 데가 없었다. 때론 죽고도 싶었다. 죽지 못해 사는 경우가 있다는 걸 이때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그러나 자식을 떠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수없이 되물었다.

“하루는 장성한 장애인 아들 둘을 둔 할머니 집에 갔었어요. 할머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인데도 병원에 못가는 거예요. 자식들 밥해 줄 사람이 없다고.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을 두고 어디를 가겠어요? 이게 장애인 가족이에요.”

그도 마찬가지였다. 친척 장례와 결혼 등 행사 때, 마음 편히 갈 수가 없었다. 때로 쉬고 싶을 때 돌봐줄 곳이 필요했다. 부모가 죽고 없을 때, 다른 가족에게 떠맡기건 모두에게 짐이었다. 자식을 마음 편히 돌봐 줄 곳이 있어야 했다. 결국 장애 문제는 한 가정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회와 국가가 맡아야 할 과제였다.

장애 문제, ‘어느 부분을 도울까?’ 생각하면 해결돼

“누구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나? 아니다. 생명에 있어 장애ㆍ비장에 구분은 없다. 비장애인이라 해서 장애인을 손가락질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비장애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 그러면서 ‘어느 부분을 도울까?’ 생각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면, 국가에 복지를 요구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지난 해 목숨을 끊었던 장애인을 둔 아버지가 떠오른다. 참 정겹고 살가운 사람이었다. 그에게 장애인 자식이 있었다는 걸, 그가 죽은 후에야 알았다. 그가 죽으면서 장애 자식에게 남긴 유서가 있었다고 한다.

“○○야, 아빠가 너를 두고 떠나서는 안되지만,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더디게 가더라도 차근차근 가다보면 집에 당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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