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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가득한 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9.23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이 주어진 것인가?”

장애인을 둔 가정의 굴레를 알고 있나요?
[장애인 가족과 풀어가는 장애인 이야기 1] 장애 가정

“어떻게 장애인 자녀를 두고 혼자 좋은 세상 가겠다고 자살을 택했는지, 아주 몹쓸 아버지다. 가족과 장애 자식은 어떻게 살아라고…”

지난 해,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을 둔 한 아버지가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주위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그 말투가 곱지 않았다. 그들은 장애인을 둔 가정의 굴레를 알고 있을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사랑이 가득한 집 아이들이 경험했던 행사들.

장애 일에 헌신은 “장애 가진 자녀가 있어서 하는 것뿐”

주위에서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럼에도 시시콜콜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래, 그들을 ‘시답잖은 사람’이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장애인 가족들을 만나 그들은 어떤 애로점과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직접 찾아 나섰다. 23일 오전 10시, 여수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만난 사공춘 전남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의 표정을 밝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난데없이 날아온 말,

“장애 관련 일을 하는 건 장애정신이 투철하거나 박애정신 있어서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장애 가진 자녀가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것뿐이다.”

쓸데없는 건 묻지 말라는 빈볼성 견제구였다. 자신은 스트라이크성 질문만 받겠다는 것이었다. 바라던 바였다.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이 주어진 것인가?”

“이 땅에서 장애인 가족으로 산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나도 몇 차례 아이와 함께 죽을까도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되지만, 완전 포기한 상태에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2녀를 둔 사공춘 대표의 경우, 맏딸이 정신지체 1급. “서울에서 여수로 시집와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 내가 세상에서 태교를 제일 잘한 줄 알았다. 우리 아이가 장애아로 태어난다는 건 0.001%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신지체로 태어난 것이다. 삶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더불어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이 주어진 것인가?”하는 원망이었다. 사실, 그는 장애아를 피할 수도 있었다.

“23년 전, 첫 아이 낳을 때가 추석이었다.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갔는데 아이가 거꾸로 앉아 있었다. 명절이라 마취의사가 없어 제왕절개를 못하고 3일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 ‘살 가망이 없다. 살아 있더라도 장애아인 줄 알아라’는 소릴 들었다.”

사공춘 대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의료사고 제기는 애초에 생각지도 않았다. 돈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업보로 받아들였다. 재활치료로 완전히 나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심장ㆍ건강ㆍ재활치료를 위해 최고 권위자만을 고집하며 10여년을 쫓아다녔다.

부모라고 해도 견디기 힘든 한계가 왔다. 너무 힘들어 쉬고 싶어도 어디 맡길 데가 없었다. 때론 죽고도 싶었다. 죽지 못해 사는 경우가 있다는 걸 이때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그러나 자식을 떠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수없이 되물었다.

“하루는 장성한 장애인 아들 둘을 둔 할머니 집에 갔었어요. 할머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인데도 병원에 못가는 거예요. 자식들 밥해 줄 사람이 없다고.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을 두고 어디를 가겠어요? 이게 장애인 가족이에요.”

그도 마찬가지였다. 친척 장례와 결혼 등 행사 때, 마음 편히 갈 수가 없었다. 때로 쉬고 싶을 때 돌봐줄 곳이 필요했다. 부모가 죽고 없을 때, 다른 가족에게 떠맡기건 모두에게 짐이었다. 자식을 마음 편히 돌봐 줄 곳이 있어야 했다. 결국 장애 문제는 한 가정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회와 국가가 맡아야 할 과제였다.

장애 문제, ‘어느 부분을 도울까?’ 생각하면 해결돼

“누구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나? 아니다. 생명에 있어 장애ㆍ비장에 구분은 없다. 비장애인이라 해서 장애인을 손가락질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비장애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 그러면서 ‘어느 부분을 도울까?’ 생각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면, 국가에 복지를 요구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지난 해 목숨을 끊었던 장애인을 둔 아버지가 떠오른다. 참 정겹고 살가운 사람이었다. 그에게 장애인 자식이 있었다는 걸, 그가 죽은 후에야 알았다. 그가 죽으면서 장애 자식에게 남긴 유서가 있었다고 한다.

“○○야, 아빠가 너를 두고 떠나서는 안되지만, 어쩔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더디게 가더라도 차근차근 가다보면 집에 당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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