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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람, 모든 게 자기 마음에 있다
“그림 한 점과 글씨 한 점을 제게 주십시오!”
“꽃향기는 천리를 가고 덕의 향기는 만리간다”
청학동 화봉 최기영 님의 붓글씨 쓰는 과정과 인연

 

 

 

경남 하동군 청학동에 걸린 곶감

스님께서 흔쾌히 내어 주신 동양화

 

 

 

“그림 한 점과 글씨 한 점을 제게 주십시오.”

 

 

왜 그랬을까. 무작정 졸랐습니다. 남해사 혜신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중, 무의식 속에 필연적으로 나왔지 싶습니다. 입으론 말하고 있었으나, 귀는 놀랐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너무나 즉흥적으로 터진 탓이었습니다. 스님께선 기다렸다는 듯 빛의 속도로 반응했습니다.

 

 

“그러지요. 그림과 글씨를 갖게 되면 부담이 생길 겁니다. 잘 극복하시길.”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스님께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에 걸린 세 그림 중 마음에 든 그림 하나를 골라잡길 종용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이 그림 중 하나는 자네 것이야. 왜 이제 가져가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무안함과 고마움을 변명으로 대신했습니다.

 

 

서예실 앞에 선 화봉 최기영님, 공예가 장형익님, 혜신스님(우로부터)

 

 

 

 

“아버지로써 사춘기 아이들에게 남기고픈 정신적 메시지를 그림과 글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요.”

 

 

고민 끝에 해정 조성순 님의 동양화 한 점을 골랐습니다. 이와 동시에 스님께선 표구 째 즉석 포장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집까지 손수 배달해 주셨습니다. 느닷없이 엉겁결에 그림 한 점을 얻게 되었습니다. 글씨 한 점은 서예가를 직접 만나 작품과 인연이 닿는지 여부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찾은 곳이 경남 하동군 청학동의 화봉 최기영 님의 ‘수미산방’이었습니다.

 

 

붓끝에서 나오는 글씨를 보며 거미줄을 떠올렸습니다. 왜?

 

 

 

 

아버지의 바람, 모든 게 자기 마음에 있다?

 

 

청학동의 화봉 선생을 만났습니다. 선생과 만나는 동안 두 개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을 받게 될지 말지와 상관없이. 인연에 맡기는 길 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로 꽂힌 글귀는 선생의 집 안방에 걸렸던 이것입니다.

 

 

“길상여의(吉祥如意) 길하고 상서로운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란다.”

 

 

꽂힌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들이 그저 “세상사 모든 것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이룰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게 일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걸 깨우치는 순간, 욕심까지 버렸으면 하는 아비의 바람이었지요. 두 번째로 꽂혔던 건 수미산방에 걸렸던 작품입니다.

 

 

 

 

 

“화향천리(花香千里)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덕인만리(德人萬里) 덕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글은 꽃 향과 사람의 덕 향기를 담은 듯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구는 “난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묵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덕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난향백리(蘭香百里) 묵향천리(墨香千里) 덕향만리(德香萬里)’”와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난의 향보다 먹물 향이, 묵향보다 사람에게 나오는 덕의 향기가 더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

 

 

 

화봉 선생 

먹의 농도를 이렇게 써보고 조절한다 합니다.

먹은 이렇게 붙여서 쓰신다더군요...

 

 

 

 

“그림 한 점과 글씨 한 점을 제게 주십시오!”

 

 

“쓰다 남은 먹은 이렇게 붙여서 마지막까지 쓰고 있습니다. 먹 하나라도 그냥 버리는지 않습니다.”

 

 

수미산방 안 묵향이 은은했습니다. 그가 커피를 권했습니다. 고요 속에 먹을 갈았습니다. 수줍은 웃음을 살며시 띤 채 먹을 갈던 그가 설명했습니다. 먹이라도 손에 익은 걸 버리자니 무척이나 아쉬웠던 게지요. 검소한 삶으로 읽혔습니다.

 

 

 

 

글씨를 쓰기 전 잠시간의 침묵 속에는 모든 게 들어 있었습니다.

 

 

 

 

“….”

 

 

붓을 움직이기 전 잠시 잠깐의 침묵. 그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긴장이 휘몰아쳤습니다. 붓이 움직였습니다. 어떤 글자를 쓸까, 하는 궁금증은 뒷전이었습니다. 글을 써 내려가는 붓을 보니 떠오른 상황 하나가 있었습니다. 왜 하필 거미 똥구멍이었을까. 그건 똥구멍에서 나오는 실로 자신의 집을 짓는 거미의 규칙적이고 열정적인 움직임 때문이지 싶습니다.

 

 

 

 

 

 

“吉(길)ㆍ祥(상)ㆍ如(여)ㆍ意(의)”

 

 

그가 글을 완성했습니다. 많은 낙관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낙관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가 봉투에 제 이름을 쓴 후 글을 담아 주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닿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전하려는 삶의 의미가 빛을 발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덕이 향을 발할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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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먹한 어버지와 사춘기 아들이 목욕탕서 나눈 대화는?

사춘기 아들이 아버지와 목욕탕 가길 꺼리는 까닭
성(性),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해야 하는 이유
나체 아들의 ‘쭉쭉 빵빵’ 마른 몸매, 너무 부러워
“은밀한 대화는 슬슬 피하잖아. 눈치껏 하라고.”

 

 

 

목욕 후 아들과 함께 먹은 통닭 바비큐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가깝고도 먼 사이입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하고 가치가 충분한 관계입니다. 그렇지만 부자(夫子) 사이 개선을 위한 노력은 많이 부족합니다. 틀어진 부자라도 노력이 따른다면 정상적인 관계로 회복이 쉽습니다. 가족이니까!

 

 

 

 

 

 

사춘기 아들이 아버지와 목욕탕 가길 꺼리는 까닭

 

 

 

 

“당신, 아들이랑 목욕탕 갔다 왔어?”


“아니. 무슨 목욕탕?”


“아들이 아빠랑 같이 목욕탕 간다던데.”

 

 

별일이다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사춘기 아들은 지난 8월 달까지만 해도 “때가 많아 까마귀가 친구 먹자 하겠다”고 핀잔하며, “목욕탕 가자”해도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그래 아예, “혼자 목욕탕에 가서 때 좀 밀어라”고 권하는 선에 그쳤습니다. 이것저것 말해봤자 입만 아프니까.

 

 

그랬던 아들이 9월 이후 변했습니다. 먼저 목욕탕 가자는 둥 관계 개선을 위해 설레발입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말이 헛 나온 거겠지’ 싶어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 때마다 일이 생겨 부자가 함께 목욕탕 가는 건 불발. 그래 설까, 아들이 아내 편에 아빠와 목욕탕에 갈 의사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나선 겁니다.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성(性),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해야 하는 이유

 

 

보통 청소년기 아들은 2차 성징을 거치면서 아버지와 같이 목욕탕 가는 걸 꺼립니다. 왜냐하면 국부에 털이 나고, 음경이 커지면서 귀두를 덮었던 표피가 벗겨지는 등 어른이 되는 과정을 왠지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춘기 아들들은 자신의 벗은 몸을 아버지께 고스란히 노출하는 걸 피하는 경향입니다.

 

 

저도 청소년기에 그랬습니다.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기가 껄끄러웠습니다. 같이 가느니 차라리 혼자 가는 쪽을 택했습니다. 왜냐면 부모로부터 난 몸이지만, 맨 몸을 보여주는 게 싫었습니다. 또 성적으로 민감한 시기라 탕 속에서 발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마다 민망하고 창피했습니다. 육체의 성숙 과정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부끄럽게 여겼던 겁니다.

 

 

물론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청소년기 육체 변화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오는 만큼 당당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몸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 ‘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성장의 한 측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버지들이 “우리 아들이 다 컸군!”하고 성적으로 어른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살아 보니 알겠더군요. 성(性)은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성’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을 당당하게 받아들여 긍정의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성은 ‘부끄럽고, 은밀하며, 음성적인 성’인 듯합니다. 그래서 상품으로의 성이라는 부정적인 개념이 넘쳐나지 싶습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부자지간 성에 대한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아빠는 왜 나에겐 늘 불평불만이죠?”

 

 

저희 부자지간? 그동안 서먹서먹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이런저런 말썽을 피웠습니다. 그런 아들이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이 아들에게 그대로 표현 되었습니다. 툭하면 목소리부터 높였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며 항변했습니다.

 

 

“아빠는 누나에겐 나긋나긋 대하면서 왜 나에겐 늘 불평불만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딸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고 여겼던 아들이 최근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늘 무시하던 아버지가 자기를 어른으로 ‘인정(認定)’하려 노력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일례로 지난 9월, 지인들과 술자리에 우연찮게 아들이 합석한 적 있습니다. 당시 “우리 아들도 이제 다 컸다”며, 맥주 한 잔 권했는데, 쭈뼛쭈뼛 받아 잘 마시더군요. 그날 이후, 아빠를 챙기며 다가오는 게 팍팍 보이대요. 사람들 있는데서 자기를 ‘어른’으로 인정해 준 아빠에 대한 긍정 기운이 싹튼 겁니다. 하여튼 요즘 기분 좋습니다.

 

 

 

 

 

 

나체 아들의 ‘쭉쭉 빵빵’ 마른 몸매, 너무 부러워

 

 

“아빠 목욕비 가져 왔어?”
“왜? 아들이 내려고?”


“아니. 목욕 끝나고 우리 통닭 먹자.”
“그럴까? 콜!”

 

 

드디어 아들과 목욕탕에 갔습니다. 때수건 하나 달랑 들고. 괜히 든든한 거 있죠. 아들은 팬티만 입고 다니던 집과 달리, 팬티마저 벗었습니다. 나체 아들의 ‘쭉쭉 빵빵’ 마른 몸매가 참말로 부럽대요. 배 나와 배둘레햄(?)이 된 아비와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날씬할 때가 있었는데….

 

 

“아들, 탕 속에서 몸 푹 불리시게.”

 

 

탕 속에서 “다음 주말에 친구 집에서 자도 되냐?”는 등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습니다. 함께 있으니 닫힌 말문이 열렸습니다. 아들이 때 밀 태세입니다. “등 먼저 밀래?” 물었더니, “다른데 밀고 나서 등 밀겠다”대요. 그래라 했지요. 찬물 더운물을 반복해서 왔다 갔다 했더니 피로가 확 풀리데요.

 

 

“아들, 등 밀자. 때수건 이리 주시게.”


“아빠 천천히 안 아프게 미세요.”


“알았어. 안 아프게 살살 밀게.”

 

 

 

 

목욕 후, 아들과 통닭 바비큐에 라면 사리까지 얹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친구들이랑 겨울방학 때 포경 수술해라’, 반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땐 “때수건으로 밀면 아프다”“온 몸을 손으로 밀어주길” 요구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컸다고 때수건을 받아들이데요. 등은 때수건으로 빡빡 밀어야 개운하고 시원하지요. 등을 밀면서 자연스럽게 아들과 긴밀한 남자들만의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아들. 자지 털이 많이 났네.“


“많이 났죠?”

 

 


“응. 근데 너 포경 수술하는 게 좋겠다.“


“아빠도 했어? 수술하면 아파?”

 

 


“아빠는 자연산이야. 넌 친구들이랑 겨울방학 때 수술해라.”


“알았어. 생각해 볼게.”

 

 

수컷끼리 수긍한 게 있었습니다. 아들이 제 등을 밀었습니다. 등밀이 기계에 밀 때와 아들이 밀어 줄 때 느낌이 달랐습니다. 뭔가 통하는, 아들 낳은 보람이랄까. 그렇게 목욕탕을 나왔습니다. 의기투합한 부자, 통닭집으로 향했습니다. 땀 흘리며 통닭 바비큐에, 라면 사리까지 얹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집으로 오던 중, 아들이 요청했습니다.

 

 

“아빠, 나 면도기 사주라.”

 

 

아들의 면도기 타령에는 한 인간으로 성장했다는 과시가 은연 중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춘기 소년의 빨리 어른이 되고픈 바람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로써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자세가 중요했습니다. 하여, “그러겠노라” 수긍했습니다. 녀석, 씩 웃더군요.

 

 

 

 

 

“은밀한 대화는 슬슬 피하잖아. 눈치껏 하라고….”

 

 

지인에게 목욕탕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지인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탕에서 때 밀며 음경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나눌 수 있냐’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은밀한 대화는 슬슬 피하잖아. 알아서 눈치껏 하라고. 근데 너희 부자는 직접적으로 이야기 했단 거지? 홀딱 벗고 앉아 아들한테 ‘포경수술 해라’는 말이 나오던? 참 재밌는 아빠와 아들이다.”

 

 

남자들이 고래 잡는 때가 있습니다. 대개 태어나서 막이거나, 군대 있을 때 많이 합니다. 지인은 최전방서 근무하는 통에 고래 잡을 틈이 없었다대요. 그래, "복학 후 대학 선배가 몇 명을 모아 함께 해줬다"대요. 이는 특별한 경우지요. 제가 군 생활 때 포경수술 많이 했습니다. 발기 때문에 재수술한 동기도 더러 있었지요. 어그적 걷는 폼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굳이 할 필요가 없어 하지 않았습니다.

 

 

고민입니다. 내친김에 아들에게 어떻게 성교육을 시킬지 말입니다. 분명한 건, 먼저 남자와 여자가 생각하는 성이 다르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사랑스런 아들이 아름다운 ‘부부의 성’을 마음껏 즐길 준비가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가정의 행복은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사랑하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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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2015.10.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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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2016.02.05 21:21

[장편소설] 비상도 1-24

 

 

“중학교엘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네가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비상도는 용화를 데리고 마을로 내려갔다. 요 근래 자주 집을 비운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용화는 기분이 좋은지 스승님께 말을 걸어왔다.

 

 

  “스승님, 내년에는 중학교엘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당연히 가야지.”

 

 

 비상도는 아이를 더 큰 도시로 보내 공부를 시킬까를 생각하고 있었고 며칠 전 성 여사와도 그 문제에 대해 의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용화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기로 했다. 용화는 그제야 안심을 하는 모양이었다.
 멀리 산골짜기로부터 서서히 어둠이 묻어오고 있었다.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느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스승님, 얼마 전에 오신 사장님께서 스승님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럴 거라 생각하느냐?” 


  “느낌으로 알았습니다.”
  “네가 그 분을 좋아하는 모양이로구나.”


  “스승님께서 어떻게?”
  “짐작이었느니라.”

 

 

 마음을 들킨 용화가 눈덩이를 걷어찼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던 새들이 화들짝 놀라 날아올랐다.

 용화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 결혼은 하는 것이 좋습니까? 안 하는 것이 좋습니까?”

 

 

 누군가의 말처럼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빨리 오는 모양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스승님을 뵈면 자유로운 것 같아 보이고 또 한편으론 슬퍼 보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넌 자유를 원하느냐?”
  “네.”


  “그러면 결혼을 해야지.”
  “스승님처럼 결혼을 안 해야 자유롭지 않습니까?”


  “어떤 자유를 말하는고?”
  “이를테면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고 또 집을 비워도 되고…….”


  “이놈아, 너는 자유를 집에서 찾으려하느냐? 밖에서 찾으려 하느냐?”

 

 

 두 사람이 들어간 곳은 치킨 집이었다. 옛날 남재 형이 군대 가기 전 스승님께서 사 오신 치킨 맛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맛으로 기억에 남은 까닭이었다.

 

 

  “용화야, 나는 네가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용화가 본 스승님의 모습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스승님은 자꾸만 치킨을 용화 쪽으로 밀어 놓았다.  (계속…)

 

 

 

 

 

 위는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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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쟁이 사춘기 중2 아들의 놀라운 변화

부자지간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 상의 변화

 

 

 

 

커가는 아이들 키우기 힘듭니다.

날마다 새로우니까...

 

 

“아빠, 저 병원에서 자고 가면 안 돼요?”

 

 

2주전, 인생에서 제일 무섭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절친 두 명이 같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한 명은 운동하다 다리가 부러졌고,

한 명은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병원에서 잔다니 쉽게 허락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지지난 주말에도 같은 요구를 했었습니다.

 

 

“아빠, 제발 병원에서 친구들과 자게 해줘요!”

 

 

아들의 외침에도 냉정하게 결정을 미뤘습니다.

게다가 아이들 엄마에게 결정을 맡기기까지 했습니다.

 

아내는 분명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요즘 아들이 통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건 다반사.

전화도 안 받고, 약속은 쉽게 어깁니다.

 

아내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착한 아들이 달라졌다. 이제 내 아들 아니다. 당신 아들 해.”

 

 

20일, 아들은 전화로 외박 허락을 요구했습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엄마에게 허락 받아” 했더니, 아들은 한 술 더 떴습니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이 어딘지, 냄새 맡는데 도가 텄습니다.

 

 

“아빠, 제발…. 엄마는 안 된다고 할 게 뻔해. 아빠가 허락 해줘요.”
“그러게 엄마에게 점수 좀 따지 그랬어.”

 

“그럴 게요. 아빠가 허락해 주세요.”

“그래라. 엄마에겐 네가 직접 전화해서 다시 허락 받고.”

 

“헉, 엄마는 안 된다니깐. 아빠가 엄마 좀 설득해 주라니까.”

“엄마 아들이었던 녀석이 왜 이리 됐어. 그래도 네가 전화해라.”

 

 

요즘 아들과 아빠, 밀월 관계입니다.

예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대화가 필요해>에서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요. 저희 집 부자관계와 비슷했습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완전 좋아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아버지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인 저의 변화는 아이들이 다니는 여수무선중학교에서 7월 중순 2주 일정으로 진행했던 <행복한 아버지 학교>를 다닌 후부터입니다.

 

이 교육에서 부모는 럭비공 같은 아이들의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더군요.

아이들의 반항은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니 자연스레 받아 들여야 한다더군요.

이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여, 변화를 도모했습니다.

 

 

“~안 돼.”
“~해.”

 

 

이처럼 그동안 제가 아이들에게 사용한 말투는 과거 아버지의 상징(?)처럼 권위적이고 무미건조했습니다.

 

아이들도 “아빠 그 말투 기분 나빠요”할 정도였습니다.

계속 이렇게 했다가는 자식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 혹은 “친구 같은 부모”는 물 건너갈 게 뻔합니다. 때문에 말투를 좀 더 부드럽게 바꿔가는 중입니다.

 

 

“이거 좀 해라.”
“~생각 좀 해보자.”

 

 

명령적인 말투를, 아이들 입장까지 고려하는 청유형으로 바꿨더니, 아이들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귀에 귀마개를 했는지, 말을 씹던 아들이 달라진다는 건 놀라운 변화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바람직한 변화라 기분 좋습니다.

 

 

변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주에 부자지간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아들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태빈아, 9시10분쯤 병원 앞 도로변으로 나오시게….”
“5분쯤 늦겠네.”
“5분 더 기다려야 할 듯….”

 

“버스정류장 쪽에 있어요.”

 

“가방 열렸다. 잠궈.”
“나오시게 아들.”

 

 

그냥 일반적인 부자지간 대화 같은가요?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알겁니다.

 

혹 그동안 썼던 명령조 어투도 섞였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나오시게”, “늦겠네” 등에서 보듯, 예사 높임 어투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어투를 쓰는 까닭은 부모에게 속한 자식에서 벗어나 한 인격체로 대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자기 존재감(자존감)을 높여 스스로 아버지와 대화하려는 등의 열린 마음을 일깨운 겁니다.

 

그 전까지요? 아빠는 멀뚱멀뚱, 주로 엄마와만 대화했습니다.

여하튼, 아들의 외박을 허락했으니 아이들 엄마 설득은 제 몫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문자를 날렸습니다.

 

 

 

 

“태비니 자라했네. 낼 집 청소하는 조건으로….”

 

 

답신이 없어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들에게 전화 왔었다고 하더군요. 자기도 허락했다더군요.

아들이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아들이 대견합니다.

 

 

역시, 자기부터 바뀌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꾸기 힘든 세상임을 실감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친구 같은…’이 붙어가는 중입니다.

 

한 가지 걱정입니다. 부자 간 밀월 관계가 언제 어느 순간 물거품이 될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사 공짜로 생기는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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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엉덩이 만지지 말고, 아빠 엉덩이 만져.”

사소한 일상에서 보는 세월의 변화에 ‘헉’

 

 

 

 

 

 

 

이런 말 있죠.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는 끝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삶의 길에서 배움은 언제든 따라 다닙니다.

그래서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나 봅니다.

 

 

저도 요즘 배우고 있습니다.

 

여수 무선중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행복한 아버지 학교>에서 부모로서 사춘기 자녀를 알고, 이에 맞는 가족생활의 자세 등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에서 ‘중2 병’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기 아이들 중 가장 절정이라는 중학교 2학년을 빚댄 말이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는 걸 강사님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북한이 방위가 무서워 못 쳐들어온다고 했는데 요즘은 아니다. 중2가 무서워 못 온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중2가 무섭다. 중2를 보면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미친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

 

아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하지 않던 행동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옷 사주세요.”, “돈 주세요.”는 기본.

컴퓨터, 휴대폰에 빠져 제지하지 않으면 새벽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또 밤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침묵 등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참, 예쁜 변화도 있습니다.

씻기 싫어하던 녀석이 요즘은 거의 매일 샤워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 누나가 “너 냄새난다. 이빨 좀 닦아라.”하며 구박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 닦습니다.

 

한 남자로 커가는 중입니다.

 

 

여하튼 아내는 이런 아들이 귀엽다며 쭉쭉 빱니다.

심지어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우리, 아들~”

 

하고 히히거립니다.

 

거기에 대고 아들이 한 마디합니다.

 

 

“엄마. 내 엉덩이 만지지 말고, 아빠 엉덩이 만져.”

 

 

그러면서 웃으며 "자기 엉덩이 만지는 건 엄마의 성폭력"이라는 겁니다.

 

녀석도 성에 대해 다 안다는 거죠.

많이 큰 거 인정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아버지와 청소년기의 상관관계에 대해 배우는 중입니다.

 

 

중 2 아들에게 기절초풍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너무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폼에 더 깜짝 놀랐습니다.

 

 

“저 열아홉에 결혼할래. 엄마 집에서 살아도 돼?”
“여자는 있고?”

 

 

“아직. 생길 거야. 내가 경제 능력이 없으니 붙어살아도 되지?”
“그럼, 너 방에서 둘이 살아라.”

 

 

“저렇게 작은 방에서 둘이 살라고?”
“빌붙어 사는 주제에 그것도 어디야.”

 

 

“결혼하는 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잘 생각했다, 아들.”

 

 

결혼하지 않고 엄마랑 아빠랑 산다던 아들이 많이 변했습니다.

19세에 결혼한다니 반대할 생각 없습니다.

 

19세면 성인이라 스스로 결혼해도 무방하니까.

게다가 공부 등 뒤치다꺼리가 줄어드니 아주 환영입니다.

 

 

근데 기막힌 건, 어찌 부모에게 빌붙어 살 생각을 하냐는 거죠.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춘기라 하는 거겠죠.

청소년기 아들 붙잡고 결혼이 어쩌고저쩌고, 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 봐야 듣기 싫은 잔소리일 뿐입니다.

 

 

아이들과 살면서 부모가 몸소 보여주는 것이 최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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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중3 자녀를 둔 부모는 가슴이 철렁철렁

중 3년 딸, 대체 새벽같이 어디로 갔을까?

 

 

럭비공 딸입니다~^^

 

 

청소년기를 부르는 말이 많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시기 등...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는 몹시 힘들어 합니다.

 

 

청소년기 절정이라는 중학교 2학년 자녀 부모는 더욱 힘들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소위 ‘중 2 병’이라고 합니다.

제 아들은 중 2, 딸은 중 3. 장난 아닙니다.

 

아이들 깨우는 것도 전쟁입니다.

짜증을 부렸다, 웃었다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딸, 일어나라. 학교 가야지.”

 

 

어제 아침, 딸을 깨웠는데 조용합니다.

보통 때와는 달리 딸 방에 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며 입으로만 깨웠습니다.

 

그러고 말았는데, 특히 아침잠 많은 중2 아들이 깨우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 돌아다녔습니다. 웬일이나 싶더라고요. 딸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놀란 아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나 어디 갔지? 세면장에 있나?”

 

 

딸 방에 갔더니, 흔적이 없습니다.

세면장에도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 어디로 갔을까? 무슨 일 있는 것 아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핸드폰 해 봐.”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전화 안 받네, 전화 꺼졌어.딸이 사라진 시각은 새벽 5시30분 이전이었습니다.

 

5시30분에 일어나 일하던 중이었으니까. 그때에도 딸의 인기척은 없었습니다.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렇더라도 마음 편히 먹고, 침착하자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한 마디 했습니다.

 

 

“친구들과 새벽같이 영화 찍는다더니 아무래도 일찍 나갔나 봐.”


“그걸 왜 이제 말해.”


“이제 생각이 나네.”

 

 

휴~~~, 그랬으면 아주 다행입니다.

아들이 퍽 하면 늦게 와 속 타게 하더니, 이제 딸이 새벽같이 사라져 애타게 합니다.

 

어젯밤, 딸에게 물었더니, 답이 재밌더군요.

 

 

“친구들과 올 여름에 출품한 영화 작업하느라 일찍 모이기로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6시. 한 친구가 늦게 오는 바람에 펑크 났다.”

 

 

씩씩거리는 모습이 예쁘게 느껴졌습니다.

핸드폰은 학교에 가면 끈다나요. 암튼 다행이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행복한 아버지 학교> 모습입니다.

 

 

그렇다 치고, 요즘 저도 여수 무선중학교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아버지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강의에서 여수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일하는 강사 강형규 씨가 그러더군요.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가 특히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고. 아주 간단했습니다.

 

 

“아이와 얽힌 이전의 기억은 모두 지워라.”

 

 

간단한 것 같지만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왜 그럴까. 자녀 낳아 기르면서 켜켜히 쌓인 추억을 부모가 어떻게 잊을 수가 있나요. 강형규 씨는 그렇더라도 “잊어라!”고 강조하더군요. 이유요? 간단했습니다.

 

 

“사춘기 이전의 자녀만 기억하고 있으면 아이와 갈등이 깊어진다.”

 

 

말하자면, 품 안의 자식이라고 이제는 놓아 줄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이런 마음가짐이 쉽다면 누구나 성인군자 될 테지요.

그래서 배움이 중요하나 봅니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로써 가지는 바람 한 가지.

 

 

‘오늘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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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 과하지 않기를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올해 중학교 2학년입니다. 사춘기입니다.

 

이때를 가리켜 인생에서 가장 무서울 게 없는 나이라고 합니다.

 

그래선지, 중딩 아들 녀석이 요즘 실없는 소릴 자주 지껄입니다.

 

 

“와~, 정말 잘 생겼다~”

 

 

자신감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거울 앞에서 자아도취에 빠진 아들을 보면 우습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기죽일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빠라고 해도 점점 도가 지나칩니다. 기어코 아들에게 물어 봅니다.

 

 

“네가 정말 잘 생겼다고 생각하니?”
“예, 아빠. 진짜 잘 생겼잖아요.”

 

 

이쯤이면 뭐라 할 말 없습니다.

사실을 직시하면 좋을 텐데 싶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은 그 자체로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합니다. 문제는 지나치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딸이 한 마디 합니다.

 

 

“니가 정말 잘생겼다고 생각해?”
“응. 잘생겼잖아. 누나가 반할 정도로 멋있지 않아?”

 

 

딸도 입을 다물고 맙니다.

아내는 이런 아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이유는 귀엽다는 겁니다. 씻기 싫어하던 아들이 요즘 부쩍 자주 씻습니다. 아내는 이런 모습까지 재밌어 합니다.

 

 

“아들~, 여자 친구 생겼어?”
“….”

 

 

아내의 질문에 아들은 대답이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여자 친구와 연결되면 ‘인기가 있긴 있구나’ 인정할 텐데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아무래도 엄마와 아들, 둘만 귀엽고 잘 생겼다 여기지 싶습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 좋습니다.

나쁠 건 없습니다. 다만, 과하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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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들은 사춘기 소녀에게서 배운 교훈

 

 

 

 

 

 

어제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이 생각하는 내 부모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청소년기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때문에 고민이니까. 그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죠.

 

 

어제 퇴근 후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뒷좌석에는 중 2쯤? 친구로 보이는 세 명의 여학생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핸드폰을 켜고 뉴스를 검색하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솔깃한 대화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휴대폰을 보면서도 귀를 쫑긋했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 요즘 웃겨 죽겠어.”
“왜 무슨 일 있어?”

 

 

“질풍노도의 시기인 나보다 우리 엄마 아빠가 더 질풍노도야.”
“왜 그러는데?”

 

 

“그제는 아빠가 날 막 큰소리로 야단치더라. 조금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럼 됐네. 어쩌라고?”

 

 

“근데, 엄마까지 또 난리야.”
“엄마는 또 왜?”

 

 

“아빠와 화해하고 난 다음 날, 난 가만 있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성질내고 난리야.”
“사춘기 딸에게 엄마까지?”

 

 

“하루는 아빠가, 하루는 엄마가 사춘기 딸에게 돌아가면서 화를 내니 어찌 할 수가 없어. 누가 사춘긴 줄 모른다니까. 아~ 짱나!”
“너네 부모가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나?”

 

 

“그러게. 지들이 나보다 더한 사춘긴가 봐. 난 어쩌라는 거야? 뻑하면 나한테 악쓰고, 혼내고, 누가 질풍노도인지 모른다니까. 내가 엄마 아빠 눈치를 본다니까.”
“….”

 

 

 

대화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사춘기 여학생들의 대화를 순화해 적었기 망정이지, 그들의 언어는 아주 거칠었습니다.

 

하지만 소득이 있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자녀들은 부모에게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을 어렴풋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관심이 '화'가 아니라 '사랑'으로 표현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청소년기 아아들의 사춘기가 아름다운 인생길이 되길...

 

 

저도 반성했습니다.

딸은 중 2, 아들은 중 1입니다. 딸의 사춘기는 좀 빨랐습니다.

초등 6학년부터 중 1에 걸친 1년 사이였습니다.

 

딸의 사춘기는 질풍노도 보다 더 광풍이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침묵하기 일쑤였습니다.

또 한 마디 말에도 악을 쓰며 거친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타이르고 달래고 화를 내도 소용없었습니다.

달라질 기색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아 걱정스러웠습니다.

부모로써 할 수 있었던 건 기다림 뿐이었습니다.

 

그런 딸을 보며 아내는 “내가 저것을 뭘 먹고 낳았을까? 난 저러지 않았는데…”란 말을 반복적으로 해댔습니다.

 

또한 누나를 지켜보던 아들까지 “누나가 왜 그러지? 이해 안 돼.” 할 정도였습니다.

저도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게 중 2가 되니 잠잠해졌습니다. 휴~, 졸인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착한 아이로 돌아와 준 딸이 얼마나 고마운지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첩첩산중이라고 지금은 아들의 사춘기가 용트림 중입니다.

공부는 팽개치고, 친구들과 싸돌아다니기는 다반사.

 

늦는다는 전화는 없는 건 기본이고, 어디 가는지조차 말하지 않기도 합니다.

사춘기를 지난 딸 말로는 PC방, 혹은 친구 집에 갔을 거라지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올해는 아들에게 닥친 사춘기로 인해 바짝 긴장해야 할 시기임을 직감합니다.

이런 때에 버스에서 들은 사춘기 소녀들의 부모에 대한 평(?)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필연적으로 거치게 될 사춘기 동안에는 부모로써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고통’이 아니라, ‘대견’하게 여길 준비를 시킨 셈이니까.

 

그러고 보면 좋은 부모 되기도, 좋은 자녀 되기도 준비가 필요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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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rchwin.net BlogIcon archmond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해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네요.

    2013.01.06 01:57 신고

“그러는 넌 공부 하는 비결이 있어?”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공부에 집중해.”

그놈의 공부가 뭐라고 집집마다 난리입니다.
공부가 아이들 인생의 다인 것 마냥.
하기야 오죽했으면 “공부 잘하면 신랑 신부의 얼굴이 바뀐다.”고 했을까. 

그렇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자기 삶의 주인이 어느 정도 되느냐에 따라 갈리는 것 같아요.

이걸 뻔히 알면서도 자기 아이들 앞에서 “삶을 즐겨라”는 말 보다 “공부해라”는 말이 앞서더군요. 하기야 학생의 일은 공부이니 당연하긴 합니다.  


공부보다는 노는 일에 더 열심인 것 같은 중학교 1학년 딸.
작년에는 사춘기여서 꽤나 속 썩었습니다. 올해에는 무던합니다.

학교에서도 공부보다는 학내 축제 출연 등에 더 관심입니다.
여기에 꽁트를 직접 짜 친구들과 나가기로 했다나요.
암튼 즐기는 모습이라 응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즐김이 지나칠 땐 속 터집니다.
아무래도 내 아이라 기대치가 높나 봅니다.
부모가 여유 있게 지켜봐야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치장하고 꾸미는 데는 일등이면서 공부는 건성인 딸과 그 딸을 지켜보는 엄마는 앙숙일 때가 많습니다.

“지 몸 꾸미는 것처럼 공부하면 좀 좋아.”

아내의 바람입니다. 뭐 아내 뿐이겠어요.
다행인 건 아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딸이 안 되면 아들에게 기댈 수 있으니 좋더군요.

그래선지 아들은 알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편입니다.
아들은 종종 잘난 척이 심해 주의를 주곤 합니다.

어제는 아이들 문제집 산다고 가족이 나갔습니다.
이동 중 자연스레 공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틈을 초등학교 6학년인 기막히게 끼어들더군요.

“누나, 누나는 공부하는 비결을 아직도 몰라?”

헉. 아들은 천재 아니면 바보였습니다. 그나저나 아들이 공부하는 비결은 뭘까 궁금해지더군요. 딸이 먼저 묻더군요.

 

“그러는 넌 공부 하는 비결이 있어?”
“간단해. 먼저 뛰면 다음에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이치야.”

 

삶의 이치를 논하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동생의 말에 누나도 귀 기울이면 좋으련만….

부모랍시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아이들의 삶.
자기 삶이니 알아서 적성에 맞게 열심히 살기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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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8 17:41

아름다운 사춘기 딸 친구 아빠 만나보니
아이는 부모만이 아닌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

딸에게 신경 많이 쓰이는 요즘이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사춘기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서다.

무슨 말을 하면 대답은 청승스레 잘하는데 행동은 딴판이다. 부모 입장에선 말 안 듣는 딸이다. 그렇지만 딸 입장에서 보면 어른들은 싫은 요구만 하는 거다. 어쨌거나 딸은 지금 자아에 변화가 있는 건 확실하다.

“잘 지내세요?”

딸의 친구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별일 없으면 차 한 잔 마시자는 거였다.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눴으면 생각했었는데 수고를 덜어준 셈이었다. 이런 자릴 종종해야 딸들의 변화 등 근황을 더욱 쉽게 알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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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맞벌이라 아이가 밤늦게까지 다녀도 몰랐어요.”

친구 아빠 : 예전에는 우리 집에 놀러 많이 오던데 요즘은 좀 뜸해진 것 같아요. 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
나 : 자주 간다던데 못 보셨나 봅니다. 어른이 없는 시간에만 가서 노나 보네요.

딸 친구 아빠는 가게를 운영하는 관계로 귀가가 늦었다. 이날따라 일찍 문을 닫았다고 했다. 녹차가 은은한 향을 풍겼다.

나 : 요즘 딸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요?
친구 아빠 : 예. 마냥 돌아다니고 싶나 봐요.

나 : 예전에도 밤늦게까지 돌아다녔어요?
친구 아빠 : 부부가 맞벌이라 밤늦게까지 다녀도 몰랐어요. 지금 딸은 아빠랑 눈도 안 마주쳐요. 그런다고 야단칠 수도 없어 그러네요.

꼭 한 명씩은 아이들을 챙기는 우리와는 사정이 약간 달랐다. 그래선지 딸도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그렇다고 친구 잘못 만난 탓도 할 수 없다. 인연이 되어 친구 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만이 아닌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

나 : 아이들 학원은 잘 다녀요?
친구 아빠 : 학원에 다니다가 학원 선생님이 그만 다녔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만뒀어요. 대신 학습지만 하는데 잘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 : 공부할 때가 있겠지요.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세요.
친구 아빠 : 이야기 자체가 없어요. 말을 붙여도 대답을 안 하니 말 거는 것조차 포기했어요.

나 : 딸을 포기하신 건 아니죠. 딸이 앞길을 잘 헤쳐갈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야죠.
친구 아빠 : 그렇죠. 그런데 도통 말을 들어야죠.

딸아이 친구 아빠와 차를 마시며 나눈 담소는 이런 내용이었다. 그와 헤어진 후 마음이 무거웠다. 내 딸도 언젠가 아빠와 말과 눈빛을 섞지 않은 날들이 올까, 두려워서였다. 딸에게 외면 받는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따를 것이다.

자기 딸이 어긋나지 않길 바란다면 딸 혼자만 잘해도 소용없다. 친구에게도 신경 써야 한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만이 아닌 온 동네와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이라 했나 보다. 사춘기 아이들이 슬기롭게 자아성장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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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참고 있었다니깐.” 이게 아빠의 본성?
사춘기 맞은 딸, “그냥 답답해서 돌아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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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서로를 보듬어 주는 것. 그러나?

“저 사춘기인가 봐요!”

헉,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에게 닥친 정신과 육체의 성숙기라니 반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벌써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마냥 어린 딸이기 만을 바랐나 보다.

최근 딸아이 행동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집에 늦게 들어오기가 다반사. 밤 9시가 넘어도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걱정됐다.

“아들, 누나 좀 찾아봐라. 보이면 꼭 데려 오고.”
“걱정 마요. 제가 누구에요.”

아들이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딸이 가출을 한 이후에 또 늦는다고요?”

이심전심이었을까, 사춘기 딸을 둔 부모의 애타는 상담 전화였다. 아내는 “우리 딸도 요즘 방황해요. 저도 이런 딸이 있는데 상담은 무슨 상담요?” 하더니, 만남을 약속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야단치지 말기를 당부했다. 나머지는 아버지인 내 몫이었다.

“화를 참고 있었다니깐.” 이게 아빠의 본성?

아들은 30여분 만에 누나와 함께 현관에 들어섰다. 들어서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누나, 아빠가 지금 화 안 난 것 같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하니 조심해.”

헉, 이를 어찌 눈치 챘을까? 저녁도 거른 채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는 딸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어서 밥 먹어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딸아이는 딴 짓이었다.

“어서 밥 먹어라니깐.”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랬더니 아들 녀석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누나 들었지. 화를 꾹꾹 참고 있었다니깐. 이게 아빠의 본래 마음이고 본성이야.”

이런 아버지였나 싶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늦은 저녁 먹기를 마친 딸과 대화를 시도했다.

사춘기 맞은 딸, “답답해서 돌아다니는 거예요.”

“날마다 늦는 이유가 뭘까?”
“말했잖아요. 사춘기라고.”

딸아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섭다더니 무서운 기색조차 없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 자체가 반항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저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은데 그게 안돼요. 그냥 답답해서 돌아다니는 거예요.”

진심인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가 석연찮았다. 그렇다고 추궁할 수 없었다. 아버지로서 기다림이 미덕임을 실감해야 했다. 내 사춘기도 이랬을까? 곱게 지났던 것 같다. 남자와 여자의 사춘기가 이렇게 다를까, 싶었다.

이런 사춘기 딸의 변화 일단 환영이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몸살일 게다. 아버지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 질풍노도의 시기인 광란(?)의 사춘기를 슬기롭게 이기길 바랄 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딸을 더욱 더 사랑하며 안아 줄 수밖에…. 이게 가족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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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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