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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살다보니 저절로 시인이'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11.27 아까 그 아저씨가 째려본다. 그만 끊자.

[장편소설] 비상도 1-44

 

 

산에 살다보니 저절로 시인이 되던 걸요.

아가씨, 중요한 이야기 아니면 끊으면 안 될까?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주제는 권선징악이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눈 오는 밤은 누군가가 그립다.
        불끈불끈 솟는 사모의 정이
        헤라클레스의 힘줄처럼 튀어 올라
        괜스레 인적 끊긴 역에 들러
        자판기 커피 뽑아 들고
        사형수 같은 발걸음 질질 끌며
        비탈진 길 내려올 적

        하얀 눈 위 찍힌 발자국
        시렵고 아파와
        불 꺼진 상가
        꺾어진 골목 돌아들 즈음
 
        부서지고 부서진 그리움
        잰걸음으로 눈물 삼키며
        어쩌다 남은 한 조각 붙들고
        나도 모르게 두 팔 벌려 서면
        키만 한 어둠이 가슴을 걷어찬다.
 
        노랫가락 사이로 비틀거리는
        어느 술 취한 사람의 비애(悲哀)

        딱히 줄 곳 없이
        군밤 한 봉지 사서 주머니에 넣으면
        길 잃은 강아지 뒤를 따르고, 나는
        목구멍까지 찬 외로움 뱉어가며
        눈 오는 밤을 붙들고 있다.
        사랑도 업보인 양…….”

 

 

 

  “너무 아름다운 시예요. 그런데 누구의 작품인지 처음 들어보는데요?”
  “비상도라는 시인입니다.”

 

 

 그녀가 허리를 굽히며 큰 소리로 웃었고 그도 따라 웃었다.

 

 

  “시는 언제부터 하셨어요?”
  “특별히 배운 것은 아니고 산에 살다보니 저절로 시인이 되던 걸요.”

 

 

 어느새 그녀는 비상도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눈이 외투 위로 가득히 쌓이도록 한참이나 그렇게 걸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는 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젯밤 술을 마신 탓이지 한꺼번에 피곤이 몰려 왔다. 차가 서울을 벗어날 쯤 그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

 

 

 그가 한참 잠에 취해 있을 때였다. 누군가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마도 이십대 초반의 아가씨 목소리로 들렸다.

 

 

 그 내용이야 들어볼 가치도 없는 자질구레한 일상사였다. 그런데 아가씨의 통화가 거의 한 시간을 지나는데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더 희한한 것은 그것을 나무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불쑥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우선 점잖게 타이르는 게 순서일 것 같았다.

 

 

  “아가씨,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끊으면 안 될까?”

 

 

 그 아가씨 말끝이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야, 어떤 아저씨가 뭐라 한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모두들 진동으로 바꿨는지 조용한데 또 그 아가씨 폰이 울렸고 십 여분이 넘는 장황한 사설로 이어졌다.


 비상도가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 아저씨가 째려본다. 그만 끊자.”

 

 

 아, 내가 별종인가? 아니면 귀 막고 못 들은 체 하는 어른들이 독종인가?


 학교에서 못 가르치고 부모가 안 가르친 버릇을 누군가는 가르쳐야 하는데 모두들 눈 감고 귀 막고 있었다. 남의 일에 무신경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소리는 막힌 사회인 것이다. 어디 소통이 별다른 것이던가.

 

 

 기초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차바퀴보다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길바닥에 깔려 죽어가고 있었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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