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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 보기 위해 15년 만에 찾은 용월사, 과연?

잠의 훼방꾼과 새벽예불, 그리고 모두 내려놓기
‘나를 잊는 10분 새벽 명상’과 옷을 훌훌 벗고
“아침 공양은 살짝 익힌 토마토와 사과 한 조각”
[절집 순례] 여수 돌산 용월사, ‘새벽예불’과 ‘해돋이’












“절에서 자고 싶어요.”



아내, 절집에서의 하룻밤을 요구합니다. 여수 돌산 용월사를 떠올렸습니다. 그동안 날씨 때문에 해돋이를 번번이 놓친 아쉬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새벽예불과 해돋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였습니다. 미리 원일스님께 허락을 구했습니다. 언제든 환영이라네요. 지난 5일 밤, 용월사로 향했습니다.









‘해돋이’ 보기 위해 15년 만에 찾은 용월사, 과연?




“해가 안 뜰 것 같은데.”



스님 말씀대로 날씨는 해돋이를 허용하지 않을 기세였습니다. 또 해돋이를 놓칠 판이었습니다. 용월사 해돋이가 이렇게 보기 힘들 줄이야. 집 안방에 누워 지겨울 정도로 보는 아침 해이건만. 그런데 유독 용월사 해돋이와 궁합이 영 시원찮습니다.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을까, 싶습니다.



일출 명소 여수 용월사의 해돋이를 본 게 15년 전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0년 1월1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신년 초, 당시 대다수가 그랬던 것처럼 소원을 빌어 보겠다고, 어린 아이들을 안고 수많은 사람 틈에 합류해 해돋이 구경에 나섰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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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훼방꾼과 새벽예불, 그리고 모두 내려놓기



“쏴~아! 쏴~~아! 쏴~~~아!”



절벽 위에 세워진 용월사. 새벽예불에 참여하려면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머리를 눕혔습니다. 끊임없이 파도소리가 들려옵니다. 바닷물 수위가 높은 8물 사리라 지척이어선지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절집에 누워 듣는 파도소리. 평소 같으면 ‘운치’였을 겁니다. 지금은 깊은 번뇌를 불러오는 ‘잠의 훼방꾼’일 뿐.



잠결에 세면장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납니다. 부지런한 나그네가 벌써 일어난 걸까. 목탁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합니다. 새벽 3시 50분. 서둘러 일어납니다. 총총 걸음으로 새벽어둠을 뚫고 무량광전으로 향합니다. 발에 밟힌 돌 소리가 염주 굴리는 소리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 불공에 한창입니다. 수많은 날, 홀로 석가모니 세존을 찾았을 스님 뒤에 자리 잡았습니다. 욕심과 번뇌 대신 무욕과 해탈을 구하려는 심산입니다. 절을 합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춥니다.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습니다. 욕망 덩어리인 ‘나’가 사라집니다. 바라는 마음이 크고 깊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위안입니다. 삼매경!








‘나를 잊는 10분 새벽 명상’과 옷을 훌훌 벗고



“풍경소리와 함께 명상하세요.

바람이 일으키는 풍경소리를 인식하고, 고요를 인식하며, 명상하세요!”



불공을 마친 스님께서 ‘나를 잊는 10분 새벽 명상’을 권합니다. 고요 속에 들어간 스님을 보며, 명상에 돌입합니다. 눈을 감습니다. 풍경소리가 바람에 일렁입니다. 눈을 뜹니다. 풍경소리가 잦아듭니다. 다시 눈을 감습니다. 순식간에 고요 속으로 들어갑니다. 깨어있음에 마냥 행복합니다. ‘나를 찾는 10분 새벽 명상’,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여명과 어둠 사이에서 남해 바다를 굽어보고 계십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이 불빛을 발사하며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해돋이는 접었습니다. 흐릿한 날씨에 해돋이는 욕심입니다. 대신 밤새 철썩였던 파도를 확인합니다. 무수히 몸을 던져 기꺼이 부셔졌던 파도 덕분에 잠을 푹 잤습니다. 생각의 고리들을 끊을 수 있었기에.



“목욕 갈까요?”



스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목욕탕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나그네에게서 살짝 술기운이 돕니다. 맑음을 얻으려는 애틋한 몸짓으로 읽힙니다. 훌훌 옷을 벗습니다. ‘나’를 벗으니 ‘진정한 나’가 됩니다. 탕 속에 들어갑니다.



“아, 시원타!”








“아침 공양은 살짝 익힌 토마토와 사과 한 조각”



“우리 용월사 해돋이는 겨울이 더 멋있어요.

여름에는 해가 남해도에서 뜨지요. 겨울에는 해가 바다에서 뜨고요.

차 한 잔 하시게 찻방으로 오세요.”



스님, 차를 권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아침 공양은 살짝 익힌 토마토와 사과 한 조각”이라며 냉장고에서 토마토와 사과를 꺼냅니다. 아리송합니다. 아침 공양을 같이 하자는 건지, 이렇게 드신다는 소개인지. 염치 불구, 아내와 함께 찻방으로 갑니다. 스님, 사과를 깎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햇차 드셔 보셨어요?”
“아직입니다.”


“선암사에서 만든 우전 마셔 보세요.”
“감사합니다, 스님!”



녹차 향이 은은합니다. 목 넘김이 부드럽습니다. 살짝 익힌 토마토 한 조각을 입에 넣습니다. 씹다 삼킵니다. 사과를 들어 베어 뭅니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아주 경쾌합니다. 스님께서 나눠주신 아침 공양은 꿀맛이었습니다.



“깨달음은 한 순간에 옵니다.

깨달으면 팔만대장경 해석이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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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월사 원일스님, “평등은 존엄과 같습니다!”
남해사 혜신스님, “수행 증진이 곧 부처님 탄신”
은적사 종효스님, “성 안 내는 얼굴이 참 공양”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찾은 절집 삼사순례



 


 


 

해수관음성지 용월사입니다.

 


 


 



          번뇌


                        김용호


    비워야 하는데
    비워지지 않습니다
    잔뇨로 남은
    방광의 오줌처럼
    거품이 일며
    애욕과 번민이
    부글부글 차 오릅니다
    님이시여
    어찌 모두를 버릴 수
    있으리오
    오히려
    번뇌의 강물에
    뛰어들고저 합니다.


 

 


중생이 해탈하면 그게 어디 중생입니까. 그래, 언제까지 마냥 중생이길 바라며 번뇌 속에 사는 게지요.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해탈을 염원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깨달음을 빨리 얻겠다고 욕심내지 않는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섭니다. 석가모니께서 수 백 억겁을 거쳐 현생의 부처로 오셨듯 모든 중생은 결국 금오돈수의 경지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습니다. 이를 기리며 여수의 삼사 순례에 나섰습니다. 여수 돌산 군내리에 있는 천년고찰 은적사, 여수 호명동 자내리에 위치한 토굴 남해사, 여수 돌산 하동의 용월사를 찾았습니다. 이들 절집은 각각 특색이 있는 만큼 스님들 또한 개성이 넘쳤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중생들이 용월사를 찾았습니다.

 

차를 마시며 용월사 원일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무량수전 앞 소나무가 아름답습니다.



 

 


용월사 원일스님, “평등은 존엄과 같습니다”


 

 


용월사를 찾았습니다. 용월사는 손꼽히는 해돋이 명소입니다. 십 오년 전, 아이들이 갓난쟁이일 때 온 가족이 해돋이를 본 이후 지금껏 일출을 접하지 못했습니다. 용월사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절집서 하룻밤을 청했음에도 비가 오거나 흐린 까닭입니다. 이것도 인연이 있나 보대요. 집 침대에서 눈 뜰 때마다 보는 해돋이로 위안 삼지요.


 

 


용월사는 20여m가 넘는 해안 절벽 위에 관세음보살과 함께 자리하는 해수관음성지입니다. 서방 극락정토 주재자인 아미타불(혹은 무량수불)을 모시는 곳의 대웅전은 ‘무량수전’ 혹은 ‘극락전’으로 부릅니다. 용월사는 무량수전입니다. 참고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면 대웅전,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대적광전이라 부르지요. 원일스님께 법문을 청했습니다.

 


 


용월사 원일스님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흉악 범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흉악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불평불만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가정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실이 불평과 불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불만은 평등하지 않음에서 나옵니다. 아이들도 평등하게 안하면 불만입니다. 왜냐하면 본질은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평등합니다. 평등은 존엄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명에 가린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해섭니다. 중생은 누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임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자기가 존중받고 싶으면 남을 존중해야 합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 평등을 외치신 겁니다. 삶은 유상하나, 해탈과 열반은 무상합니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합의 리더십은 바로 공평에서 나옵니다.”

 

 



용월사 범종도 여느 절집과 마찬가지로 새벽 예불(28번)과 저녁 예불(33번) 때 울립니다. 범종을 28번과 33번 치는 건 "‘진리의 소리’로 전 우주 28천과 33천의 모든 중생을 깨우고 깨달음을 얻게 하여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라"는 의미랍니다. 진리의 소리, 소 울음소리를 언제라도 들으면 좋으련만….


 

 


 

토굴이어서 더 정감가는 소박한 남해사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남해사 혜신스님, “수행 증진이 곧 부처님 탄신”

 

 



남해사를 찾았습니다. 남해사는 삐까번쩍하지 않아 좋습니다. 껍데기를 벗은 나 자신을 보는 느낌이랄까. 다 쓰러져 가는 토굴이 중생들의 민낯 같아 애착이 큽니다.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췄습니다. 토굴 입구에는 오죽이 늘어집니다. 좁은 마당에는 고무 통이 자리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연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여유롭게 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해사에는 특별한 게 있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 2과가 있습니다. 석가세존의 피부가 사리가 된 백사리(백색)와 피가 사리로 바뀐 피사리(적색)가 각각 1과씩 모셔져 있습니다. 이는 태국 아유타 사원에서 천일 수행정진하고 회향할 때 주지스님으로부터 시주받은 거랍니다. 부처님 사리를 손으로 직접 만져볼 영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스님, 매화차 있어요?”
“우전으로 입맛을 돋운 후 매화로 마무리해요.”



얻어 마시는 입장에도 큰소리 ‘뻥뻥’입니다. 중생이 마셔 본 바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차 맛은 남해사 혜신 스님께서 내는 차입니다. 차를 만든 사람의 기운, 차를 우려내는 물, 차를 담아내는 용기 등 삼박자가 절묘하게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마시고 싶은 차를 주문합니다. 스님도 주문이 싫지 않은 걸로. 차를 마시며 문답에 돌입합니다.

 

 



 

부처님 진신사리 2과입니다.

 

남해사 혜신스님

 


 

진신사리함입니다.


 

 



- 스님들도 생일을 챙기나요?
“속세에서나 챙기지, 출가한 승려가 생일은 무슨.”


 

 


- 근데, 왜 부처님 생일은 탄신일이라고 크게 챙기나요?
“본인 생일도 지나치는데 석가탄신일이라고 성대하게 지내는 건 좀 그렇지요? 묵묵히 조용히 부처님 뜻을 기리면 좋은데. 부처님 오신 날을 성대하게 지내는 마음속에 행여나 여래와 거래를 하려는 (불순한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 부처님 오신 날은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
“악업 보태지 말고 공덕 쌓는 일을 해야지요. 또 수행 증진하심이 곧 부처님 탄신의 기쁨과 같습니다.”

 

 



 

은적사 일주문입니다.

 

대웅전 대신 극락전을 씁니다. 왜? 아시죠!

여유롭습니다.

 

 



은적사 종효스님, “성 안 내는 얼굴이 참 공양”


 

 


은적사. 관성스님께서 절집 입구 텃밭에서 열무를 캐시다 말고 일행을 맞았습니다. 주지이신 종효스님께선 외출”중이라더군요. 약속보다 좀 일찍 왔다 했더니 조금 기다리랍니다. 막간을 이용해 은적사 대웅전인 ‘극락전’의 부처님 전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인간적인 욕망도 함께 올렸습니다. 부디 중생에게….


 

 


“오랜만입니다. 혼자 놀지 말고, 우리 같이 놀자고~.”

 

 



종효스님, 중생을 보자마자 ‘삐딱선’입니다. 삐딱선도 ‘선’의 일종이거니 위로하며 받아들입니다. 이 정도도 감지덕지지요. 일 년 넘게 멀리했으니. 이심전심. 스님 마음을 알지요. 스님 죄송해요!



 

관성스님과 한담 중인 지인.

 

종효스님 차를 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번뇌는...

 




“스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미리 한 말씀 하시지요?”
“허허, 한 말씀은 무슨. 저기 있는 말로 대신하지. 차나 마시자고.”



무슨 말이 쓰여 있을까? 스님께서 가리킨 벽에는 작은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액자 속 글귀가 마치 중생의 조급증을 아는 듯, 큰 스님이 중생에게 여유를 찾으라고 호통 치는 것처럼, 글귀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한 번에 읽히기를 거부합니다. 차분히 읽기까지 인내가 필요했지요.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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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아내가 남편과 동반 여행 꿈꾼 ‘운문사’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
어둠 속에 움직이는 비구니들 발걸음으로 ‘위안’
[경북 청도 선문답 여행] 학인스님들의 ‘운문사’

 

 

 

 

운문사 가는 길 

새벽예불 후 불이문으로 향하는 비구니 스님들.

운문사 입구 가는 길...

 

 

 

“처녀 때 청도에 세 번 왔어요. 두 번은 혼자 왔고, 한 번은 친구랑 같이 왔지요.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운문사 새벽예불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힐링’이 됐어요. 그땐 꿈도 많았는데….”

 

 

20여 년 전, 경북 청도 운문사 여행에 대한 아내의 회고담입니다. 여자 혼자 6~7시간 버스 타고 여행에 나선 자체가 놀랍습니다. 겁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집니다. ‘뻔’한 인생살이 남자의 옹졸한 변명 한 번 하지요. ‘꿈’ 좋지요. 그러나 삶에 대한 미련이 아직 있는 걸 보니, 삶이 별 거 아니라는 걸 여적 모르나 봅니다. 이걸 알면 벌써 도인 됐겠죠.

 

 

가을이 물든 운문사 

처진 소나무 

처진 소나무

 

 

 

“옛날엔 여수에서 청도로 바로 오는 버스가 없어, 경주를 거쳐 왔어요. 다시 오기가 힘들어 한번 오면 4박 5일씩 민박하며 머물렀죠. 당시에도 300여명이 함께 부르는 새벽 예불 소리는 듣는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어요. 이번에도 새벽예불은 꼭 하게요.”

 

 

아내는 추억담을 말하며 신이 났습니다. 지난 10월31일~11월1일 청도 운문사 가을여행엔 부산의 공덕진·김남숙 부부, 최명락 교수(전남대 생명산업공학부), 저희 부부까지 다섯이 나섰습니다. 당초 합류가 예정됐던 창원의 박천제·전영숙 부부는 큰 딸의 출산과 맞물려 무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하여튼 이번 여행의 백미는 운문사 새벽예불이었으니...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

 

 

 

“똑·똑·똑·똑·똑·똑·똑·똑·똑….”

 

 

도량석. 목탁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가로질러, 가람 사이를 돌아 나오더니, 공중으로 휘몰아치더이다. 이어 절집 주변을 밝히는 불이 하나 둘 켜지더이다. 운문사의 첫 새벽을 밝히는 목탁소리가 마치 소 울음소리처럼 들리더이다. 청아한 목탁소리. 누가 도량석을 쳤을까? 도량석에 이어 법고와 목어, 범종 등을 차례로 치더이다. 이를 보며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 말씀을 떠올렸더이다.

 

 

“도량석은 스님을 깨우는 자명종입니다. 도량석을 담당한 학인스님은 다른 학인스님보다 30분 먼저 깨어, 절 주위를 돌며 스님들이 일어나길 재촉하지요. 때문에 스님들은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려고 도량석 당번을 많이 꺼리지요. 번을 써는 스님 목탁소리에 따라 큰스님 기분이 달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하기 위해 나선 수행 길에도 걸림돌이 있는 걸 보니, ‘잠’은 공부하는 모든 이들이 넘어야 할 태산이나 보더이다. 2년 전, 우도 금강사에 잠시 머물 때, 새벽을 가르는 목탁소리에 깨어 허겁지겁 도량석 중인 스님의 뒤를 따르던 기억이 새롭더이다. 이런 날, 스님께선 아침 공양으로 마음 속 특별식을 내주셨더이다.

 

 

부지런한 스님들은 벌써 불이문을 넘어 대웅보전으로 향하더이다. 걸음걸음이 어찌나 사뿐이던지 발자국마저 남지 않은 것 같더이다. 뿐만 아니라 법고와 범종 소리가 공중을 가로질러 천지자연을 일깨우더이다. 학인스님들의 행렬이 바빠지더이다. 비로소 운문사 절집으로 오는 ‘솔바람 길’에 붙어 있던 문구를 떠올렸더이다.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 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입니다.” - 법구경 -

 

 

 

 

 

 

 

 

어둠 속에 움직이는 비구니들 발걸음으로 ‘위안’

 

 

건망증 때문일까. 운문사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걸 깜빡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에서 “운문사의 아름다운 다섯” 중 으뜸으로 꼽았던 “아직은 선량하고 앳되면서도 뭔가 해볼 의욕으로 빛나는” 학인스님들의 눈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 더 아쉬웠습니다. 대신 어둠 속에 움직이는 비구니들의 발걸음을 본 것으로 위안 삼았습니다.

 

 

학인스님을 따라 대웅보전에 들었습니다. 스님들은 층층이 앉았습니다. 스님 한분이 새벽예불에 참여한 중생들을 안내했습니다. 새벽예불이 시작되었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멀리서만 들었던 은은하고 낭랑한 비구니들의 합창소리를 법당 안 바로 옆에서 직접 들을 줄이야! 아마, 인연의 한 자락이 운문사와 맞닿았나 봅니다.

 

 

학인스님들이 거처하는 도량과 은행나무. 

불이문... 

불이문 안쪽의 모습은 정중동이었습니다.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 이미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공허한 공상에 젖지 말며, 오직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하라 -”

 

 

청도 여행 중, 최명락 교수가 차 안에서 정성들여 은은하게 암송해준 금강경 일부입니다. 그는 금강경 암송 후, 위 구절이 금강경의 핵심 중 하나라며 다시 또 자세히 풀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현행원품까지 알려주시데요. 이 때문일까. 법당에 올라 부처님 앞에서 처음으로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을 되새김질했습니다. 백팔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기온 0℃라는 일기예보 덕에 껴입었던 옷이 부담이었습니다.

 

 

새벽예불이 끝났습니다. 천천히 한 사람 한 사람 법당을 빠져나갔습니다. 댓돌에 놓여 있던 수많은 신발들이 하나 둘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자기 것인지 어떻게 알까? 아내 말로는 “자기만 아는 다양한 표식으로 구분한다!”더군요. 확인 못한 게 아쉽습니다. 암튼, 일렬로 줄지어 가는 학인스님들의 행렬에서 묘한 여운을 느꼈습니다.

 

 

 

도량석 후 불이문을 나서는 스님... 

 

새벽예불을 위해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스님...

 

 

 

 

“절을 하니까 다 내려놓게 되데요. 참 신기해요.”

 

 

“드디어 나도 소원을 하나 갖게 되었다. 늙어서 정년퇴직하고 나면 청도 운문사 앞 감나무 집을 사서 여관이나 하면서 사는 것이다.”(262쪽)

 

 

이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에서 “신경림 선생과 술자리에서 전해들은 소설가 이문구 씨의 평생소원을 전해 듣고 갖게 됐다”던 소원입니다. 유 교수가 감나무 집을 샀다는 소릴 아직 전해 듣지 못한 바, 그의 꿈은 아직 유효하겠죠. 그만큼 운문사가 탐이 났던 게지요. 욕심이 생기니 감나무 집까지 넘보게 되고...

 

 

 

도량석 후  법고, 목어, 범종을 칩니다.

무릇 수행이란... 

예불 후 불이문으로 향하는 스님들 행렬에서 묘한 여운을 느낍니다.

 

 

 

 

결혼 전, 아내 소원도 유홍준 교수 꿈과 엇비슷했습니다. 아니, 아내 소원이 유 교수보다 더 소박했습니다. 집을 사겠다는 유 교수의 소유욕(?)과 차원이 다르지요. 아내 소망은 단지 “남편과 함께 청도 운문사를 여행하는 것”뿐이었으니. 무욕(無慾)을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인이지 싶습니다. 이는 물론 아내가 유 교수의 가르침을 가슴에 간직했기에 받은 선물이리라!

 

 

“내 생애 두 번째로 법당에 올라 부처님께 절을 했어요. 첫 번째는 창원 성불사 법당이고, 두 번째가 여기 운문사에요. 내가 이렇게 많이 절을 하다니 놀라워요. 절을 하니까 다 내려놓게 되네요. 참 신기해요.”

 

 

아내 말에 공감입니다. ‘나를 내려놓게 만드는 힘’은 법당을 나가 일렬로 줄지어 되돌아가던 학인스님을 보면서 느꼈던 ‘묘한 여운’과 비슷했습니다. 아마도 이 ‘힘’ 때문에 유홍준 교수는 “운문사 앞 감나무 집 여관”을 소원했지 싶습니다. 또한 아내도 이 ‘여운’ 덕분에 “결혼 후 남편과 운문사 여행”을 꿈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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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숨 쉬게 한, 절집 용월사에서의 긴 하룻밤 

 

“때론 넘치게 두는 것도 비우는 한 방법이지요!”

 

 

 

 

 

여수 용월사입니다.

 

 

여수 갯가길 1코스 중, 돌산 월전포와 삼섬 풍경입니다.

 

 

용월사 가는 길입니다.

 


‘올 한 해 잘 살았을까?’

 

 

언제나처럼 또 연말입니다. 이 시점에 서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그저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지나 온 시간을 돌이켜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중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이럴 때 훌쩍 절집으로 떠나곤 하지요.

 

 

“스님, 하룻밤 쉬고 싶은데…. 일행이 있습니다.”
“언제나 오십시오.”

 

 

거절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또한 쉴 곳이 있다는 게 천만다행입니다. 이럴 때 삶이 고맙지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여수 갯가길을 걸었습니다. 돌산 월전포 앞 삼섬이 눈에 포근히 들어오더군요. 자연은 인간을 스스럼없이 꼭 안아주었습니다.

 

 

- 여수 갯가길 걸어 보셨어요?
“아니. 말로는 들었는데 걷는 건 이번이 처음일세.”

 

 

- 허허? 고향 길에 난 여수 갯가길을 안 걸었다니 의왼데요?
“그러게. 초등학교 다닐 때 수업 마치고 소 꼴 먹이곤 했던 곳인데…. 예나 지금이나 풍경은 끝내주는군.”

 

 

 

 

 

이곳에 서니 절로 시인이 됩니다.

 

 

지인이 감탄 중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 갑니다.

 

 

나보다 먼저 승진한 이는 나를 밟고 일어선 사람?

 

 

 

겨울 속 여수 갯가길은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갯가길을 걷는 갯가꾼들과 종종 마주쳤습니다. 많은 사람 중, 유독 한 지인과 자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자체가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은은한 향을 지녔던 지라 더욱 즐거웠지요. 지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 나이 60 이후 달라지는 게 있던가요?
“많지. 앞만 보며 직장 다니고 있을 땐 몰랐어. 예전엔 용서되지 않은 것들이 나이 먹으니 자연스레 다 용서가 되데. 그래 마음이 편해. 욕망으로 가득했던 마음을 하나 둘 내려놓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

 

 

- 어느 것이 용서 되지 않던가요?
“나를 더럽게 밟고 딛고 일어선 사람들은 얼굴조차 보기 싫었어. 그래도 봐야하니 불편했지. 그 사람들이 건네는 악수도 꺼려했지, 심지어 일부러 피했으니까. 그런데 60이 넘으니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까지 만나면 먼저 가서 인사하게 되더라고. 세월이 내게 너그러움을 선물한 것 같아.”

 

 

지인이 애써 피한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웠습니다. 그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이처럼 속세는 말 그대로 속세였습니다.

 

 

 

 

무량광전입니다. 

 

 

수행 중인 원일스님.

 

 

여수 용월사 무량광전에서 본 풍경

 

 

 

- 어떤 사람을 피한 거죠?
“직장 생활에서 나보다 먼저 승진한 사람은 나를 발판 삼아 일어선 사람이라 봐도 무방하지. 그 중 나를 음해하고 올라선 사람들이 있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을…. 그들을 미워했지. 지금 생각하면 시기만 다를 뿐 다들 승진하는 거였는데, 그땐 먼저 승진해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 왜 그랬을까?”

 

 

- 피했던 사람들은 자기를 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모르지. 혼자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상대방이 알게 하면 되나. 모르니까 만나면 반갑다고 악수하려 손을 내밀었던 거지. 지금은 용서까지도 내려놨어. 아무래도 용서에도 때가 있나 봐. 세월은 사람을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거 같아. 이게 자연이지.”

 

 

자신의 마음을 갈무리 하는 내공이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혼자만 간직했던 비밀을 아낌없이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온몸을 바쳐왔던 삶에서 얻은 결과를 전해주는 자체가 고마움이었습니다. 이심전심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나무 석가모니불!

 

 

낮은대로 임하소서!

 

 

 

“때론 넘치게 두는 것도 비우는 한 방법이지요!”

 

 

걷다 보니, 어느 새 용월사 앞이었습니다. 스님에게 하룻밤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기꺼이 마음 한 칸을 내어 주셨습니다. 겨울, 절집에서의 하룻밤은 무척이지 길었습니다. 그 긴 밤을 가득채운 건, 파도 소리와 녹차 및 해수 관음보살의 미소였습니다. 이런 자리에 선문답이 빠질 수 없었지요.

 

 

- 스님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안 되면 방법을 달리 하세요.”

 

 

- 어떻게요?
“애써 내려놓으려 하지 말고, 자연스레 그냥 흘러넘치게 두세요. 비우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때론 넘치게 두는 것도 비우는 한 방법이지요.”

 

 

헉. ‘비우면 채워진다!’는 세상 이치에 얽매여, 늘 마음을 비우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비우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욕심과 욕망 등 나를 둘러싼 것들을 내려놓은 것 같으나, 실상은 욕망의 틀 속에 갇힌 여전한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자만심이 가득했던 게지요. 스님이 잡보장경의 한 구절을 던졌습니다.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동백이 만발합니다.

 

 

새벽 예불 전 도량석 중입니다.

 

 

법당 불 밝히는 원일스님.

 

 

새벽 3시 30분. 새벽 예불에 나섰습니다. 혼탁한 가슴에 맑음이 내려앉았습니다. 예불을 마치신 스님 한 마디 하시더군요.

 

 

“매일 같이 부처님을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떤 날은 방긋 웃었습니다. 어떤 날은 말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인상 쓰고 계신 날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10년. 드디어 알았습니다. 매일 달랐던 부처님의 형상이 실은 내 마음 속에서 왔다는 걸.”

 

 

스님께서 언제나 하시는 염불, “나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나무 원만보신 노사나불! 나무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속에는 우주 진리를 밝힐 그 뜨거움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인과 스님은 선각자였습니다. 다만, 가여운 중생만이 그걸 모르고 지나쳤을 뿐….

 

 

이렇게 한 해 마무리 중입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온 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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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7 23:00

사르르 연꽃, 금강사의 속삭임으로 피어나다!

변재환 시 <꽃의 수모>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제주도 우도 금강사] 우리들 마음과 연꽃 이야기

 

 

 

 

사랑놀음은 태어난 특권...

바람 틈 사이로 본 제주도 우도 금강사 대웅전

그대, 고매한 향이여!

 

 

연꽃.

 

언제 들어도 가슴 시리더이다!
왜 시린지 모르겠더이다.
언제부턴가 그저 바라 만 봐도 시리더이다!
아마도 연꽃의 속삭임에 반했나 보더이다.
연꽃의 속마음에 푹 빠졌나 보더이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

 

 

연꽃!

 

새벽아침에 피어나는 연꽃 좀 보아요.
뭐가 그리 좋으신지 보기를 재촉하더이다.
곁눈을 주었더니 수줍은 모습으로 다가오더이다!
어찌나 예쁘던지 사랑하고 말았더이다.
유혹은 더 이상 없으려니 했더니 아직 남았더이다.!
가슴에 와 푹 안길 그녀….

 

 

연꽃.

 

저녁에 시든 꽃잎이 보이더이다.
스님, 연꽃은 저녁에 문을 닫는다!
말에서,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보았더이다.
식구들 함께 앉아 밥 먹는 풍경을 떠올렸더이다.
아직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 심정,
금강사 연못 속 연꽃으로 피어났더이다!

 

 

 

 

끄적거리다 지인의 시 한 편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꽃을 이렇게 표현했을까?

 

 

 

     꽃의 수모

                        고(故) 변재환

 

  돈 냄새 보다
  꽃향기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백에 두셋은 있었다

 

  꽃 축제가 있던 날
  누군가가 허공에다 돈을 뿌렸다
  꽃향기를 맡고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가 바라 본 꽃과 내가 본 꽃은 서로 다른 이름이었나 봅니다.

 

맞습니다. 금강사 연꽃에는 속삭임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연못의 어울림...

 덕해스님의 새벽 예불 소리가 낭낭히 퍼지자 만물이 하나 둘 깨고...

예불소리에 기지개 켠 금붕어님! 노닐기 시작하는데...

 가족이란 이름의 연꽃...

연, 꽃으로 피어나다! 

우도 금강사 대웅전 옆에는 용왕님을 모셨더이다. 그 말 아래 연과 붕어가... 

우리도 좀 먹고 살자... 

그녀를 향한 구애... 

우도의  새벽... 관세음보살 발 아래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나더이다.

 초록은 동색?

 공존의 세월만큼 인연이... 

스님의 예불 소리에 만물이 깨어나고...

 가슴 시리게...

새악시 볼처럼 수줍어 하는 그녀. 

고고하게 핀 그녀! 

우리네 삶도 이렇듯 활짝 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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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불짜리 웃음을 지니신 어느 스님의 고뇌...

불전함 도둑에 대한 스님의 일갈에 웃었던 이유가
도선생 다녀간 후 어머니 말씀, ‘있는 집에서 털지!’
스님이 꺼내신 화제 ‘불전함’, 무슨 사연 숨었을까?
맑은 사람 눈에 그의 탁함이 고스란히 보였던 것?

 

 

 

 

 

분별이 없어야 한다, 했거늘….

 

아무리 도가 높으신 분이어도 기분 나쁜 것과 기분 좋은 것의 구분은 있나 봅니다.

 

분별을 들고 나온 이유가 있겠죠?

 

 

 

새벽 예불을 준비하는 도량석 중인 덕해스님. 만물을 깨우고 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입니다.

보통 절집과 달리 엄청난 보물이 기거하고 있습니다.

 

 

 

도선생 다녀간 후 어머니 말씀, “있는 집에서나 털지….”

 

 

“뭐 가져갈 게 있다고 이렇게 홀딱 뒤졌을까?

좀 있는 집에 가서나 털지….”

 

 

수년 전,

밤손님에게 집을 털린 어머님께서 웃으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 새벽 예배를 다녀왔더니, 도선생이 농과 서랍, 찬장 등 뭣이든 숨길만한 곳은 죄다 뒤집어 놓았다더군요.

 

거기에 통장과 도장은 잘 챙겼더군요. 하여, 어지러운 중에 몸만 홀라당 빠져 나가신 도선생님 전에 기도했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관세음보살상과 뒤로 보이는 성산 일출봉이 멋진 풍경화입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에 갔더랬습니다.

선암사, 낙산사, 봉정암 등을 거친 후, 지금은 금강사에서 홀로 절집을 지키시는 덕해 스님을 뵙기 위함이었습니다.

 

스님과 매일 차를 마셨드랬습니다.

차가 좋아서였을까? 자연이 좋아서였을까? 벗이 좋아서였을까? 정신이 하루가 다르게 맑아졌더랬습니다.

 

 

“스님, 시주는 좀 들어옵니까?”

 

 

무심코 던진 말이었습니다.

근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스님께선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스님 얼굴에 가벼운 일렁거림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비웠다는 듯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전에 자리한 불전함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스님이 꺼내신 화제 ‘불전함’, 무슨 사연 숨었을까?

 

 

“한 달에 10만원도 안 들어옵니다.”

 

 

개구쟁이 동자승처럼 백만 불짜리 웃음을 가진 스님의 대답치곤 궁색했더랬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제주도 우도라 돈 좀 되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닌 사정이었습니다. 하기야 절집을 찾는 관광객이 거의 없고, 신도가 많지도 않은 형편이라 이해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한 달에 들어오는 시주가 10만원이 안 된다니, 시주 더러 좀 해주시길….

 

 

“스님, 금강사에 오신 후 기억나는 사건 있으면 하나 이야기해 주세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던 질문이 또 낭패였더랬습니다. 말이 새는 날이었습니다. 통 큰 스님이어 설까. 괘념치 않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뭐가 있을까?”

 

 

스님은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하나 있다며 꺼내신 화제가 <불전함>이었더랬습니다.

 

 

“밖에 나갔다 왔더니 뭔가 이상해.

여기저기 살펴보니 불전함이 털려 있는 거라.

한번이라 배고픈 사람이 가져갔겠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하고 보시 한샘 쳤어.”

 

 

스님, 배움과 수양이 깊어 여기에서 이야기 진도가 끝나는 줄 알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웬걸. 아뿔싸! 무방비 상태에서 느닷없이 죽비로 뒤통수를 한 대 호되게 쥐어 터진 듯한 일갈이 터져 나왔더랬습니다.

 

 

백만불짜리 웃음을 지닌 덕해스님.

 

 

 

맑은 사람 눈에 그의 탁함이 고스란히 보였던 것?

 

 

“너, 우리 절에 다시는 오지 마.

다음부터 내 눈에 띠는 날에 너는 죽는다.

그렇게 살지 마.”

 

 

깜짝 놀랐드랬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지요. 아, 글쎄. 절에 오지 마라니…. 눈에 띠는 날에 죽는다니…. 그렇게 살지 마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내심 당황스러웠습니다. 그건 공중에 던진 스님의 진심 어린 가르침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드랬습니다.

 

 

“놀라기는….

 

그런데 어느 날 또 불전함이 털린 거라.

간혹 절에 와서 되지도 않은 말을 하고, 일을 도와 준 척하던 한 사람이 있었지. 그 사람에게 냉정하게 정색하며 던졌던 말이야.”

 

 

난 또 뭐라고.

그렇지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에 의해 암묵적 불전함 털이꾼으로 지목된 그는 자기 딴에는 스님에게 강하게(?) 반항했더랍니다.

 

 

“스님, 뭣 땜에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

 

 

그런데 반발이 아주 어설펐답니다. 속 보였답니다.

스님이 그를 불전함 털이범으로 지목한 것은 순전히 육감이었답니다. 맑은 사람 눈에는 그의 탁함이 고스란히 보였던 게지요.

 

 

 

바람의 길목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진한 여유로움입니다.

 

 

 

불전함이 털리고 나니까 얼마나 들어 있는지 궁금하대!

 

 

“불전함 처음 털렸을 때 낌새가 이상했는데, 그냥 넘긴 게 화근이었어.

다행이 우리 절에 CCTV가 없어 망정이지, CCTV가 있었다면 호되게 망신살 뻗쳤을 거야.

 

훗날 그는 제주도 어느 절에서 불전함을 털다 결국 경찰서에 잡혀갔대.”

 

 

인과응보(因果應報).

불가에선 업을 지우기 위한 보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스님께선 본의 아니게 도둑을 키운 꼴이 되었습니다.

 

잡히기 전에 더 따끔한 맛을 보였더라면 그는 교화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여기에 머물렀을 때, 스님의 기상천외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궁금했는지 알아?”

 

 

스님, 구도자란 무엇입니까?

 

 

 

스님의 깊은 속, 알 길이 없었드랬습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할 수 없이 물었지요. 그랬더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불전함 털리기 전에는 그 속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어.

그런데 불전함이 털리고 나니까 얼마나 들어 있었을까?

그게 궁금하대. 너무 궁금해 잠도 안 오더라니까.”

 

 

하하하하. 실없이 웃음이 터졌드랬습니다.

나 원 참! 스님은 없는 살림에 뭐 가져 갈 게 있다고, 그렇게 궁금하셨을꼬. 여기에서 원효스님을 해탈의 경지로 끌어 올린 <원효대사와 해골바가지> 설화를 떠올렸습니다.

 

 

“좀 있는 집에 가서나 털지….”

 

 

앞서 끄집어냈던,

어머니께서 없는 집 털어 간 도선생님을 보고, 가엽게 여겨 하신 말씀입니다. 팔순을 넘기신 어머님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 원효대사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의 불전함 이야기는 뒤늦게 어머니를 새롭게 알게 하신 원동력이었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덕해스님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화입니다.

금강사 뒤로 보이는 우도봉이 송두리째 안개에 막혀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관세음보살상과 소나무가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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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승낙 조건 중 하나였던 ‘새벽 예불 구경’ 이유가

잠이 부족한 학승들에게 곤혹이었을 ‘목탁소리’
스님이 전한 ‘도량석’에 얽힌 사연에 빙그레 웃고…
새벽 예불에 들어 있는 ‘남들을 깨운다’는 의미는?

 

 

 

 

세상을 일깨우는 도량석 중인 스님...

새벽 예불을 마친 제주도 우도 금강사.

 

 

 

 

18년 전, 아내는 나그네의 청혼을 받아주는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로 ‘새벽 예불 구경’을 내걸었습니다.

 

전혀 예상 못한 기상천외한 제안이었습니다. 호기롭게 ‘까지 꺼 그거 못하겠냐?’ 싶어 “좋다”고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경북 청도 운문사로 향했었습니다. 운문사의 새벽, 앳된 비구니들의 예불소리는 웅장함을 넘어 자비였습니다. 이후, 새벽 예불은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구도는 자신을 낮추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똑 똑 똑 똑 ~~~~~~ 또르르르~~~~~~’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께서 대웅전 앞에 섰습니다. 목탁소리가 새벽을 갈랐습니다. 청아했습니다. 목탁소리엔 일정한 음률(音律)과 시어(詩語)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선지, 나그네를 깨우는 신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나그네는 공(空)이 되어갔습니다.

 

 

덕해 스님께서 목탁을 두드리며 걷습니다.

동시에 염불이 나옵니다. 목탁과 어울린 염불소리는 절묘한 조화로 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 스님의 부드러우며 절제된 발걸음은 춤사위처럼 사뿐했습니다. 이에 반했는지, 한 처자가 문을 열고나왔습니다. 그녀는 합장한 채 스님을 뒤따랐습니다.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의 행복이었지요. 아내는 이런 행복을 어찌 알았을까?

 

 

“마하반야~ 바라~ 밀다심경~~~”

 

 

절집의 새벽 예불은 보통 새벽 3시30분 혹은 새벽 4시에 시작됩니다. 순서는 도량석, 종성, 종치며 염불, 법고, 운판, 목어, 범종, 작은 종(운집새), 법당 예불 순입니다. 절집 규모와 도량 크기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이 과정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삶의 재미지요.

 

 

 

목탁소리는 신심이었습니다.

 

 

 

 

잠이 부족한 학승들에게 곤혹이었을 ‘목탁소리’

 

 

세상이 좋은 것뿐이라면 이 무슨 재미.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좌절도 있는 법. 목탁소리는 잠이 부족한 젊은 학승들에게는 아주 ‘곤혹’입니다.

 

 

수학능력시험을 코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자신을 깨우러 온 엄마를 보며 “1분만 더, 1분만 더”를 간절히 외치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떠올려도 무방합니다. 꿀잠의 맛이지요.

 

 

“도량석을 담당한 학승은 따로 잔다.

그래야 잠이 부족한 다른 학승들이 부산함에 깨지 않고

조금이나마 더 잘 수 있으니까. 이는 배려의 미학이다.

보통 도량석 담당은 1주 단위로 돌아간다.”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의 설명입니다.

 

 

 

연꽃처럼...

 

 

 

 

<도량석(道場釋)>은 새벽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의식으로, 목탁과 염불로 잠든 스님들과 삼라만상을 깨우는 새벽 예불의 서막입니다. 도량석을 담당한 학승은 3시에 일어나 절집 곳곳을 돌며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욉니다. 이 소리에 스님들이 깨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벽 예불을 준비합니다.

 

 

도량석은 스님들의 알람 자명종인 셈입니다.

 

 

도량석과 새벽 예불 사이는 30 내지 40분의 시간 여유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도량석 담당을 둘러싼 치열한 줄다리기가 전개됩니다. 마치 군대에서 한참 잘 시간에 불침번 서는 걸 꺼리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매 한 가지. 하긴 이게 세상살이 묘미지요.

 

 

“절집 마당만 돌다가 올해부턴 우도를 안았습니다.”

 

 

지난 밤,

덕해 스님과 차를 마시며 새벽예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말입니다. 모든 중생의 고통을 짊어지셨던 부처님을 따르기 위해 더 안아야 함을 아신 게지요. 어찌 우도뿐이겠습니까!

 

 

 

도량석을 위해 대웅전 앞에선 스님.

 

 

 

 

스님이 전한 ‘도량석’에 얽힌 사연에 빙그레 웃고…

 

 

새벽, 어둠이 가득합니다.

어둠 속에 가로등 불빛이 빛나고 있습니다. 덩달아 하늘에선 달과 별이 마지막 빛을 발하는 중입니다. 조금 있으면 밝음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릅니다. 스님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 뒤를 합장한 채 묵묵히 걸었습니다. 새벽의 상큼함이 스리슬쩍 마중 나왔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찾은 우도 금강사에선 도량석과 새벽 예불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하기보다 과정을 넌지시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만했습니다. 올해는 달랐습니다. 다시 찾은 금강사에선 도량석과 새벽 예불에 참여했습니다. 보는 것(智)과 하는 것(行)의 차이를 이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자연스레 선사한 ‘내공’ 덕분이었습니다.

 

 

“똑똑똑똑~, 마하반야~”

 

 

목탁소리에도 원칙이 있었습니다.

새벽 목탁소리는 잠든 나무와 풀벌레 등 만물에게 놀라지 말고 일어날 준비를 하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해 점점 커집니다.

 

반대로 저녁 목탁소리는 크게 시작해서 잦아듭니다. 조용히 휴식 취할 준비를 하란 거죠. 그러니까, 목탁소리는 삼라만상에 대한 부처님의 배려의 자비가 숨어 있습니다.

 

 

“시계가 귀하던 과거에는 어떤 스님이

도량석을 하느냐에 따라 예불 시간이 달랐다.

 

잠 없는 스님께서 도량석을 맡으시면

새벽 예불이 일찍 시작되는 관계로 예불 후

한참이 지나서야 아침 공양을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예불 후 바로 아침 공양을 했다.”

 

 

덕해 스님이 전한 도량석에 얽힌 사연입니다. 빙그레 웃었습니다. 머리 깎고 출가한 구도자의 세계는 우리네 세상과는 한참 다를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구도자였으나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에 매여야 하고, 공양을 해야 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극락’인 것을…. 가르침이었습니다.

 

결혼이 곧 구도자의 길이었으니….

 

 

 

구도의 길은 간절함이었습니다.

 

 

 

 

새벽 예불에 들어 있는 ‘남들을 깨운다’는 의미는?

 

 

세속적인 나그네가 생각하는 새벽예불의 맛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깨달음의 경계를 넘나들고자 하는 수행.

둘째, 만물이 잠든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고 정진하는 수양.

셋째, 남들보다 일찍 얼어난 만큼 하루를 더 길고 알차며 값진 시간을 만드는 토양이지 싶습니다.

 

 

“남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과 곤히 자는 남들을 깨운다는 것이다.” 

 

 

새벽예불에 대한 덕해 스님의 답입니다. 새벽 예불을 보는 눈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깊이에 차이가 납니다. 그건 “남들을 깨운다!”는 사실입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 함께’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아름드리나무가 인간에게 사랑받는 건 우리에게 주는 그늘이 푸짐하기 때문이듯….

 

 

언제부터인가,

목탁소리에 스민 울림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목탁을 치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달랐습니다. 어떤 이의 소리는 그저 소리일 뿐이었으나, 어떤 이의 소리는 편안함과 위안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목탁소리에 구도의 깊이와 마음의 넓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새벽 예불을 올립니다.

독송마저 감미롭습니다. 땀이 방울방울 떨어집니다. 혼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혼자 기거하는 절, 게으름을 피울 만하나 늘 한결같습니다. 삶 자체가 곧 구도였으니 당연한 게지요. 여기에서 아내가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새벽 예불 함께 보기를 내세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 언제나 늘 한결 같기를….’

 

 

 

나를 낮추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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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으로 흐르는 법고소리에 땀이 흥건하고…
홀로 절집을 지키는 스님의 절제된 ‘안빈낙도’

 

 

 

 

섬 속의 섬 우도에 하나 뿐인 절집 금강사입니다.

절집 같지 않은 곳이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보물이 있습니다.

눈 뜬 자에게만 보이는 그 보물은 홀로 빛나고 있습니다.

 

 

 

일상.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속에는 그 사람의 삶의 정신이 녹아 있습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한 중에도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는 가운데 도를 지키며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옛 조상들은 이 같은 향기로운 삶을 선비의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습니다.

 

이 어찌 선비뿐이겠습니까. 구도자의 삶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러나 안빈낙도는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찌질한 삶의 표본으로 전락했습니다.

돈이 우선인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쾌락과 편안함만 쫓다보니 정신이 쇠퇴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스스로를 채찍하며 굳건히 자신을 이기며 지켜가는 한 구도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주도 우도에 하나 뿐인 절집 금강사에서 수양하는 덕해 스님이었습니다.

 

 

 

 

 

 

“똑! — 똑! — 똑! — 똑! — 똑!”

 

 

고요한 새벽을 일깨우는 스님의 목탁소리.

그 소리에 자다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숨죽이며 목탁소리의 방향을 쫓았습니다.

새벽 목탁소리에 빠져 들었습니다.

 

새벽예불 소리 속에는 우주의 질서를 본래대로 환원시키는 힘이 들어 있었습니다.

생명을 일깨우는 태초의 소리였습니다.

 

 

비몽사몽.

목탁소리에 맞춰 한 여인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손짓, 발짓, 몸짓에는 정성이 가득했습니다.

바라춤인지, 승무인지, 봉산탈춤인지 분간되지 않은 아름다운 춤사위에 넋을 잃었습니다. 

 

 

 


 


“처사님 아침 공양 하시지요.”

 

 

스님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공양주 보살이 없어 스님이 낸 나물과 밥.

조촐한 아침 공양 속에는 천지간의 기(氣)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아닌데도, 이미 영락없는 산해진미였습니다.

 

 

“차 한 잔 하시지요.”

 

 

차(茶)를 내는 스님의 손길에 여유가 묻어났습니다.

다향의 은은함이 가슴 속으로 천천히 들어왔습니다.

 

찻잔 속에서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신선되길 바라는 어줍잖은 생각이 일었습니다.

 

 

 

 

 

스님이 아침 예불에 나섰습니다.

보살 한 분이 합세했습니다.

 

대웅전에 가득한 ‘뚝딱! — 뚝딱! — 뚝딱! — 뚝딱! — 뚝딱!’ 법고소리.

절정으로 흐르는 법고소리에 땀이 흥건했습니다.

부처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습니다.

 

 

 

“스님, 뭐하세요?”

 

문을 열었습니다.

스님이 앉아 빨래를 개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수건을 ‘탁~탁’ 펴며 올곧게 접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 자체가 배움이었습니다. 가르침은 간단했습니다.

 

 

‘길이 아니거든 가지 말고, 말이 아니거든 듣지 마라!’

 

 

올바른 길이나 옳은 말이 아니면 그것을 듣고 행하는데 있어 신중하라는 의미.

나쁜 길, 나쁜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따라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홀로 절집을 지키는 스님의 생활은 절제된 안빈낙도였습니다.

 

 

 

스님의 안빈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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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 예찬한 운문사의 다섯 가지 아름다움


운문사에 내려앉은 단풍.


명품으로 꼽히는 여승들의 새벽 예불 등을 자랑하는 경북 청도 운문사(雲門寺).
그래선지 운문사를 떠올리면 항상 가슴이 저밉니다.

 


운문사 솔숲 길입니다.

담장 안에도 단풍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청도에 다녀왔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여승들이 수도 중인 운문사에 짙게 깔린 정적은 수양 정도를 나타내는 듯했습니다.
여기에 단풍까지 더해져 명불허전이었습니다.

 


길에도 단풍이 앉아 있었습니다.

단풍 정취 있었습니다.

운문사에는 일주문과 사천왕상이 없이 이렇게 바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입니다.

 

‘구름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운문사는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운문사의 아름다움 다섯 가지’를 꼽을 만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서 항시 사미니계를 받은 200여명의 비구니 학인스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방문한 운문사에서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비구니의 모습은 뒷모습을 보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둘째는 장엄한 아침 예불입니다.

250여명의 낭랑한 목소리가 무반주 여성합창을 생음악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예불은 수년 전 아내와 여행에서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답니다.

셋째는 운문사 입구의 솔밭입니다.

운문사 진입로 1km 남짓한 길 양옆의 아리따운 홍송의 자태를 보고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소나무에는 아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동아 전쟁’ 때 송진을 공출하기 위해 받아낸 아픈 자국이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넷째는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입니다.

운문사는 연꽃이 소담하게 피어오르면서 꽃봉오리 화판이 아직 안으로 감싸인 자태이며 바로 그 화심에 해당되는 자리에 절집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운문사는 평안한 느낌이 크게 다가오나 봅니다.

다섯째, 일연스님의 삼국유사가 운문사에서 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산 자락에는 안개가 밀려들었습니다.

여승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고요는 천지에 깔려 있었습니다.

수행공간이라 합니다.

대웅보전은 묵언 수행 중이었습니다.

삼층석탑입니다. 

 

이 밖에도 운문사의 명물은 처진 소나무(반송, 천연기념물 180호), 금당 앞 석등(보물 193호), 작갑전에 모셔져 있는 사천왕 석주(보물 318호), 석조여래좌상(보물 317호), 삼층석탑(보물 678호) 등이 있습니다.

운문사는 가족 여행으로 와 보고 싶은 곳인데 미루다 저만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운문사에 자리한 2개의 대웅전을 보고 나니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그래, 내년 1월 1일 이곳에서 비구니의 새벽 예불을 함께 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단풍이 잦아들면 침묵에 휩싸이겠지요.

풍취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단풍은 또 싱그러움을 잉태할 것입니다.

마당을 쓸어도 공덕이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고요가 환희로 가득 찰 것입니다.

운문사를 둘러보는 것도 사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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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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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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