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행복’이란? 괴로움이 없는, 즐거움이란 의미
법문 -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팔정도'

 

 

 

 

 

‘새 술은 새 부대에….’

 

 

2013년이 되니 새로운 마음을 담기 위한 노력이 뒤따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롭게 출발하려는 노력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다만, ‘도로 아미타불’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신년, 마음을 잡기 위해 지인과 6일 경남 창원의 절집 ‘성불사’를 찾았습니다.

 

법문을 들으면 행여 알지 못하던 새로운 길이 보일까, 싶어.

‘마음이 열리면 눈까지 열린다’는 이치를 믿었던 게지요.

 

성불사 청강스님께서 설법에 나섰습니다.

 

 

 

설법 중인 청강 스님.

 

 

“수많은 생명 중, 나무나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행복이지요?”

 

 

스님은 ‘행복론’을 화두로 제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지간에는 많은 생명이 있습니다.

하루살이, 물고기, 개, 돼지, 나무, 잡초 등 많은 미물 가운데에서도 으뜸이라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이 축복에 행복하지 않다면 그 무엇에 행복을 느끼겠습니까.

 

 

“행복은 무엇입니까? 행복이란 괴로움이 없는, 즐거움이란 의미입니다. 삶의 고통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비로써 깨달음을 얻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육신으로 오는 고통은 다양할 것입니다.

 

우선 몸의 상태, 얼굴 생김새 등에서 오는 신체적 고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잘났으면 잘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이기기보다 얼굴까지 고쳐가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요즘입니다.

 

 

정신적 고통은 또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충격.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에서 오는 치떨림.

 

노력한 만큼 얻지 못하는 대가의 부족에서 오는 불만족.

일자리를 구하려고 애쓰지만 번번이 밀려나는 좌절에서 오는 상실감 등을 그 어디에서 충족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나로부터 기인한다.’

 

 

욕망의 근원은 자신이라지만 모든 걸 내 탓으로만 돌리기엔 너무 ‘차별’ 혹은 ‘다름’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삶의 고통과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고통 속에 있는 중생들에게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법, ‘팔정도’를 안내하셨습니다.

 

 

팔정도(八正道)는 어리석은 중생을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올바른 여덟 가지 길을 말합니다.

 

팔정도는 부처님이 초기 교단에서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하신 행위이자 실천 규범입니다.

 

팔정도는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을 말합니다. 하나씩 풀지요.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를 말합니다.

정견은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

사물의 진실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부나 아첨 없이 자신이 느끼는 대로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물이나 이치를 바라보는 깊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사유(正思惟)는 ‘바른 생각’입니다.

이는 말이나 행동에 앞서 하는 정당한 생각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여건 속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인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정사유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견을 버리고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정어(正語)란 ‘바른 말’, ‘곧은 말’, ‘옳은 말’을 뜻합니다.

주어진 일에 있어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한 후에 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게지요.

정어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직언(直言)이라 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면 안됩니다.

바른 말은 진실하고 부드러워서 남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정업(正業)은 ‘바른 신체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행동 하나하나를 바르게 하되, 내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행동입니다.

 

 

정명(定命)은 ‘바른 생활’입니다.

남을 등쳐먹는 직업이 아닌 올바른 직업을 가지고, 그 직업에 충실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정정진(正精進)은 ‘바른 노력’입니다.

어떤 이상을 가지고 그 이상을 추구하기 위하여 꾸준히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잘못된 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정념(正念)은 ‘바른 생각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생각을 항상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정(正定)은 ‘바른 선정’입니다.

아무런 번뇌와 망상 없이 맑고 고요한 물과 같은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에구머니나, 이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 이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팔정도는 <바르게 살라>는 의미를, 단지 여덟 가지로 풀어 헤친 것입니다.

 

고통 많은 삶을 괴로움 없는 즐거움을 찾아 행복해 지는 게 인생의 궁극적 목표일 것입니다.

 

부디, 모두 행복한 한해 되시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스님의 설법 듣고 가슴 뜨끔했던 사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 중생아….”

 

 

  

 

 

“지금 들어 가. 들어가라니까.”
“옆에서 잔소리 할 거면 내리던지, 아니면 뒤로 가.”

 

 

‘아뿔싸, 실수 했네’ 싶었습니다.

운전대 잡은 아내의 오금 박는 소리에 입 꼭 다물었습니다.

 

이게 그렇습니다.

 

운전 중 끼어들기를 할지 말지, 시야 확보가 곤란한 버스 및 화물차 뒤를 따라가는 답답함 등이 원인입니다.

 

나름 훈수인데, 아내에게 잔소리일 뿐입니다.

 

 

왜 그럴까?

운전석 옆에 앉아 입 다물고 조용하면 좋으련만, 한 마디씩 건네야 직성이 풀립니다. 나쁜 습관입니다. 아내의 날카로운 소리를 들어야 멈춥니다. 저도 고쳐야겠습니다.

 

 

지난 일요일, 아내와 창원 성불사에 갔습니다.

혼자 다니던 절집에 처음으로 아내와 같이 간 것입니다.

 

남편이 다니는 흔적을 알려줘야 그나마 관심을 갖지 않을까 싶어섭니다.

중년에 기죽어 사는 남편의 비애 혹은 사랑의 몸짓인 셈입니다.

 

법당에 앉았습니다.

 

 

설법 중인 성불사 청강스님입니다.

 

 

 

 

스님의 설법 듣고 가슴 뜨끔했던 사연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면, ‘아이고 저 원수’ 그러죠?”

 

 

청강스님 말씀에 듣던 내 가슴도 뜨끔했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는 긍정과 부정의 경계에 있는 애매모호한 미소를 일순간 지었습니다. 나도 아내에게 원수일까?

 

 

“남편을 부처님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남편이 늦게 온다고 저 원수? 그러지 말고, 남편을 부처님처럼 귀하게 여기면서 칭찬과 격려를 하면 남편이 집에 빨리 들어옵니다.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나옵니다. 나를 낮추면 해결됩니다. 이게 부처님의 자비입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는 ‘맞아, 그래야지’ 하면서도 뒤돌아서면 잊고 사는 게 중생입니다. 설법 후,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이 어찌 그리 내 마음을 잘 알까. 당신이 늦게 들어오면 아이고 저 원수 그러는데…. 지금부터 당신을 부처님으로 알아야겠네.”

 

 

아내는 그러면서 “아이고 내 부처님”이라며 안을 듯 달려들었습니다.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원수였다는 것을. 지금껏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아니, 지금이나마 알아서 다행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던 나를 이제나마 알게 되었으니.

 

 

아내의 확인은 계속되었습니다.

 

 

작은 음악회도 열렸습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 중생아….”

 

공양시간, 스님에게 아내를 소개했습니다.

아내는 절 법당에 들어 온 것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설법 들은 소감을 말했습니다. 

 

 

“스님, 꼭 저에게 하신 말씀 같았습니다.”
“남편이 늦게 들어옵니까? 부처님 하세요.”
“알겠습니다. ‘남편=부처님’ 하고 살겠습니다.”

 

 

짧게 오간 말 속에 아내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몇 마디에 하고 싶어도 다 쏟아내지 못할 남편에 대한 아내의 애증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남편을 부처님으로 알고 산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옆에서 스님에게 한 마디 건넸습니다.

 

 

“스님, 남편들을 바보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립니까?”
“그게 아니다. 남자들 편들어 준거다.”


“뭐가 편입니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 중생아….”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상냥해지고, 살가워졌습니다. 함께 다닌 덕분입니다.

또한 남편에 대한 기대치는 줄었을망정, 가방 하나 메고 혼자 훌쩍 떠나던 남편의 흔적과 체취를 맡은 안도감도 있었을 겁니다.

 

 

삶이 다 그런 것을….

 

 

삶이 번뇌인 것을...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by 임현철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587)
알콩달콩 섬 이야기 (141)
아름다운 여수 즐기기 (112)
알콩달콩 여행 이야기 (162)
알콩달콩 세상 이야기 (422)
알콩달콩 가족 이야기 (476)
알콩달콩 문화 이야기 (205)
장편소설 연재 (68)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22,276
  • 42 91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임현철 '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임현철. All rights reserved.

Textcube TNM Media
임현철'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