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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우도 금강사 제초작업에서 든 생각 한 자락
제초작업의 양면성과 웃음의 의미 및 우리의 보물은

 

 

 

부지런한 처사님이 아침 일찍부터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 관세음보살과 동자승 뒤로 성산 일출봉이 보입니다.

덕해 스님께서 벤 풀을 빗자루로 쓸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풀이 무성합니다.

무심했었습니다. 바삐 지낸 탓입니다.

 

식전(食前)부터 “애~~~ 앵”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가 진동합니다.

밖을 살피니, 한 처사가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 절집의 어지러운 마당이 많이 거슬렸나 봅니다.

 

 

새벽 예불 후, 서예 연습에 몰두하였을 덕해스님(제주도 우도 금강사)도 머리를 문 밖으로 쏙 내미시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이심전심의 염화미소였습니다.

 

벌써 이럴 것임을 알았던 게지요. 그 모습이 어찌나 자애롭던지, 반할 지경이었습니다.

 

 

 

“일찍 오셨습니다.”
“아침에 풀 베어 놓고 일 가려고요.”

 

 

부지런한 손놀림입니다.

읽던 책을 접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스님은 이미 나와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예상 못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생각하는 순간 몸이 움직인 게지요.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불상을 배치하는 원리를 떠올렸습니다. 

 

 

불상은 대개 부처님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합니다.

 

사자를 새긴 관을 쓰신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상징합니다.

또 코끼리 문양의 관을 하신 보현보살은 행(行)을 나타냅니다.

이는 “정신과 육체가 함께 움직여야 이상적인 걸 일깨우기 위함이다”고 합니다.

 

 

“절집 주위가 점점 깔끔합니다.”

 

 

그가 뜻하지 않은 칭찬에 미소 지었습니다.

제주도 우도봉과 성산 일출봉을 뒤 배경 삼아 움직이던 그가 관음보살상 및 동자승과 나란히 선 모습에서 부처를 생각했습니다.

 

부처가 어디 따로 있던가요. 행하면 그게 부처님이신 거죠.

그가 지나간 자리에 널브러진 풀의 흔적들은 스님께서 정리하셨습니다.

 

 

 

새벽 예불 후의 은은한 우도 금강사 풍경입니다.

관세음보살과 동자승 그리고 보시하는 처사...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조사뿐다는 표현이 재밌었습니다.

 

 

 

“저건 풀을 베는 게 아니라 사투리로 풀을 완전 ‘조사뿌네요’. 그렇지요?”

 

 

스님께선 안절부절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아쉬움에 내뱉은 말씀이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사뿐다>는 단어가 왠지 처절하면서도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야생에만 존재했던 단어처럼 묘한 맛과 여운이 살아났습니다.

 

 

“저 처사님 얼굴이 마치 ‘살생부’를 손에 든 ‘한명회’ 같지 않습니까?”
“스님 어찌 저런 덕행에서 한명회를 떠올린단 말입니까! 너무 의욉니다.”

 

 

반발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는 땀과 제초작업 중 튄 풀이 뒤엉켜 얼굴이 엉망이었습니다.

스님께선 잘려나가 튄 풀의 파편과 땀을 피의 아우성으로 읽은 겁니다.

 

그 모습이 자연스레 조선 세조 때 처절했던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리게 한 거죠.

우리네 역사에 이 뿐이겠어요?

 

 

그렇더라도 스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제초작업의 양면성을 같이 봤다는 겁니다.

 

칼날에 쓰러진 풀들의 아우성과 절집을 깨끗이 치우는 처사의 기쁨.

즉, 잡초들의 죽음에 가까운 고뇌(苦惱)와 부처님이 기거하는 절집에 행한 덕행(德行)이었습니다.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둘째,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살생부와 한명회를 떠올린 내공입니다.

 

근본은 아마 <세월호 참사>지 싶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눈 뻔히 뜨고서도 살리지 못한 중생들의 죄책감.

스님은 이를 ‘이 시대의 무능’으로 표현했습니다.

어쨌거나 무능한 정부는 살생부를 움켜쥔 허황된 한명회가 된 꼴이지요.

 

 

혼자 계신 스님은 항상 '행'이었습니다.

제주도 우도 금강사, 절집 같지 않아 좋았습니다.  

대학살에도 살아남은 덕해스님의 씀바귀 밭입니다.

 

 

암튼, 알고 보니 스님께서 안절부절 하신 이유는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아~ 글쎄, 본인이 아끼는 야채 쌈 밭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까, 노심초사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 야채 쌈은 부드럽고 독특한 향으로 인해 토끼가 좋아하며 잘 먹는 <씀바귀>였습니다. 요즘 말로 ‘헐’이었지요.

 

 

씀바귀(Ixeris dentata)는 국화과의 다년생 풀입니다.

뿌리와 어린 순은 나물로 먹습니다. 잎의 상처에서 분비되는 흰 수액은 쓴맛이지만 기름 혹은 초간장에 무쳐 먹으면 오히려 입맛을 돋운다고 합니다.

 

저는 이를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걸 스님께선 쌈으로 드신다니 자연식에 놀라울 뿐입니다.

 

 

“다행이 스님의 쌈 밭은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네요.”
“그러게요. 이게 다 부처님의 가피지요.”

 

 

한담을 나누며 자신을 바라보는 걸 느꼈을까.

그가 잠시 손을 멈추고 땀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우릴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습니다.

하얀 이가 더욱 하얗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그가 잡초들에겐 한명회였을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씀바귀 밭은 왜 치지 않고 두셨어요?”
“스님이 즐기는 야채 쌈 밭인 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쳐요. 스님 맛있게 드시라고 그냥 뒀어요.”

 

 

씀바귀 밭을 남긴 건 그가 스님을 위해 베푼 최대한의 <자비>였습니다.

누가 스님이고, 누가 처사인지 경계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실소유주로 구원파 목사였던 유병언.

그는 목사와 신도의 경계를 넘어 신계에 존재했다지요?

유씨도 죽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쯤에서 시 한편 읊지요.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시 ‘쓴’ <웃음>입니다.

 

 

국화를 다듬는 덕해스님.

 

 

 

      웃 음
                고 변재환

 

  스님이 칼 갈고
  목사가 약을 판다

 

  목 좋은 자리에서
  매일 굿판 펴

 

  두 분 성인(聖人)
  긴급 회동하시니

 

  부처님 장발하고
  예수님 삭발하셨더라

 

 

웃음을 잃은 현시대에 입장 바꿔 생각하며 서로를 잘 보살피라는 발상이 도드라집니다.

또한 일어날 수 없는 두 분 성인의 긴급 회동(여와 야)에도 민생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구도자답게 활동해야 성인의 뜻처럼 현실 속에서 천당과 극락이 될 수 있다는 간절한 바람이지 싶네요.

 

 

하여간, 스님께서 씀바귀 밭을 지켜 준 그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제가 금강사에 오기 전까지 절에 한 번도 온 적 없답니다. 우연히 옛 것을 좋아한 제가 밖에서 돼지 여물통을 차에 실어왔다가 절에 내려놓지 않고 그냥 갔다가, 뒤에 돼지 여물통을 갔다 주러왔던 인연으로 절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우도 금강사에서 얻은 최고의 보물 중 하나지요.”

 

 

그렇다면 속세에 있는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들의 2세, 아이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아이들을 위해 정부가 철석같이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아직까지 미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야겠습니다.

 

 

스님께서 내온 저녁 공양에 고추와 함께 씀바귀 쌈이 올랐습니다.

속가에서 쌈밥을 즐겼던지라 쾌재를 불렀습니다. 쌈부터 맛보았습니다.

 

씀바귀를 손에 펼쳐 밥을 얹고, 그 위에 된장을 올린 다음 도르르 말아 입에 넣었습니다.

신선한 야채의 향은 쌉스름 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엄청 자비로운 맛이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이 저녁 공양에 올린 씀바귀 쌈입니다. 맛요?

부처님 왼편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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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돌고도는 역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절 같네요
    쪽바리 제주도도 일본땅이라 할만하네요~
    그래서 땐놈들한테 시민권주면서 파는것인가요
    과거의 어느때로 다시 간 느낌?

    2014.08.03 20:31

박근혜 대통령 귀는 당나귀 귀일까? 아닐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양치기 소년’의 가르침

 

 

 

 

세월호 참사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지혜와 교훈을 같이 배우기 바란다는 숨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중 두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삼국유사> 중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부터 소개하지요. 다음은 삼국유사(삼중당출판사) 상편(P 154~155)에 나오는 내용을 약간 각색한 것입니다.

 

 

“신라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귀가 갑자기 커져 마치 당나귀 귀와 같이 되었다. 이는 오직 복두장인(이발사)만 알았다. 그 장인은 왕의 비밀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장인은 죽음이 다가오자 대숲 속에 들어가 대나무들을 보고 외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 뒤로 바람이 불면 도림사 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 소리가 울려 나왔다. 왕은 대나무들을 베어 내고 대신 산수유를 심었다. 그 뒤로는 바람이 불면 이런 소리가 났다.

 

‘임금님 귀는 길기도 하다.’”

 

 

경문왕의 <귀 이야기>는  그리스의 마이다스왕 이야기와 흡사합니다.

 

이발사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하고 싶었던 망을 토해낸 걸 문학에선 ‘카타르시스’, 즉 정화 또는 배설이라 합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걸 일깨우고 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는 역발상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경향입니다. 이를 두고 “사람 입이 하나인 이유는 적게 말하고, 귀가 두 개인 건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거라죠?

 

 

이처럼 해석하면 ‘임금님 귀’는 백성의 말을 듣는 귀는 크게 열고, 국민의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여라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뿐만 아니라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본질은 대나무에서 산수유로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국가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백성이 내뱉는 말(여론)을 막지 말고, 그것을 참고하여, 오로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양 치는 소년이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며 소리쳤다. 동네 사람들은 늑대를 물리치고자 무기를 들고 나타났으나, 소년의 거짓말임을 알아차린다. 어느 날 정말로 늑대가 나타났다.

 

양치는 소년이 또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하지만 어른들은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고, 아무도 돕지 않았다. 이로 인해 마을의 모든 양은 늑대에게 잡혀 먹고 말았다”

 

 

여기에서 교훈은 간단합니다. 계속되는 거짓말에 익숙하면, 나중에 진실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에 반해 평소에 정직하면 자신이 필요할 때 타인에게 신뢰를 쌓은 관계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정성근 후보자.(사진 오마이뉴스 남소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후 국가 개조의 첫 단추로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국민들은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와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및 정종섭 안전행정부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는 아파트 매매와 사무실 임대료 관련 국회 인사청문회 ‘위증 논란’으로 <양치기 소년>이 되었습니다. 또 인사 청문회 정회 중 폭탄주 논란까지 더해진 상황입니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동네 사람들이’ 외면했던 것처럼 정성근 후보자를 향한 자비는 없어야 합니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한 마을의 모든 양들이 늑대에 의해 몰살되었듯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의 어린 학생들이 몰살되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국민들은 임금님 귀가 제대로 작동할지 ‘어디 보자!’ 하며 지켜보는 중입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늑대가 나타났다’란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습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 귀는 당나귀 귀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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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국가 개조, 선출직과 인사 그리고 원칙 

 

 

 

세월호 참사, 두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일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인사는 만사다.”

 

 

아시다시피, ‘교육’‘인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말속에는 ‘공허’가 가득합니다. 왜냐? 교육과 인사의 중요성을 뻔히 알면서도 간과되기 일쑤이니까. 꼭 뒤 따라야 할 행동과 실천 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최근 가슴 아프게 교육과 인사의 허상을 현재진행형으로 직접 목격 중입니다. 먼저,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그토록 강조했던 모든 교육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생생한 현장으로 다가왔습니다.

 

살아 있던 아이들을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한 비통한 광경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던 안타까움…. 그 후 주위에서 한 숨 섞인 넋두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한 명도 살리지 못한 우리의 민낯에 절망했다. 나라를 이대로 둬야 하는가. 죽은 자식을 본 부모의 심정은 어쩌겠는가?”

 

 

여기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써의 절망과 반성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버젓이 살아 있는 학생들을 구조해야 할 판에 오히려 정부가 우리 아이들을 바다에 생매장시킨 꼴이었으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밑바탕에 관피아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 부패의 뿌리를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국민은 더 이상 국가와 사회에 만연한 부패 고리를 그냥 둬서는 안된다고 자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부각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자연스레 사회 교육이 된 것입니다.

 

 

국민의 비통함을 알았을까? 박근혜 정부는 난데없이 ‘국가 개조’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반성의 당사자가 국가와 국민을 개조하겠다는 발상은 일부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일정 부분 각종 비리와 특혜 등 국가를 불안케 하는 뒤틀린 정의와 부패를 끊어내기 위해 국가 혁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국가 개조 시발점으로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부처 개각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내세웠던 인사는 ‘빚 좋은 개살구’가 되었습니다.

 

 

일례로 안대희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인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었던 정홍원 국무총리가 유임되었습니다. 국가 개조의 당사자를 다시 그 자리에 앉힌 꼴입니다.

 

 

물론 청와대에선 “고위직 제안을 거부하는 인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와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및 정종섭 안전행정부장관 후보자는 논문 표절, 병역 특혜, 위장전입, 탈세 등 각종 비리로 인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많은 질타를 받았습니다.

 

 

특히 교육계는 한 목소리로 제자가 쓴 논문을 가로채 지원금까지 챙긴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에게 국가 교육을 맡길 수 없다고 반발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만사라던 인사가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세월호 참사를 향한 노란 리본은 분노이자 변화의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곱씹을 게 있습니다.

 

지난 6ㆍ4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시도교육감 당선 현황입니다. 17개 시·도 교육감 중 13개 선거구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습니다.

 

 

이는 세월호 참사에 화가 난 엄마들이 그동안 보였던 정치 성향 투표에서 벗어나 소신 투표를 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는 우매한 시대는 가고 현명한 시대가 온 것을 알리는 출발점인 셈입니다.

 

 

유권자들의 변화에 발맞춰 이제 정치도 변해야 합니다. 선출직에게 부여되는 각종 자리의 임명권. 즉, 인사에 대한 원칙을 새롭게 바라봐야 할 시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6ㆍ4 지방선거에서 전라남도 교육계의 수장에 오른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의 말은 새겨볼 만합니다.

 

 

“선출직은 선거에서 당선된 순간, 유권자들로부터 인사권을 부여 받는다. 문제는 위임된 인사권을 자기 것인 마냥 휘두르는데 있다. 위임된 인사권은 국민의 눈높이 맞게 행하면서 국민에게 다시 되돌려 주는 게 필요하다.”

 

 

그렇습니다. 유권자로부터 위임된 인사권은 인사권자의 마음대로 무소불위로 휘둘러서는 안됩니다. 다양한 검증을 통해 국민의 요구와 입맛에 맞게 정당하게 행해져야 합니다. 그 바탕은 소통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말세일수록 헛된 말들이 횡횡한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항간에 이런 이야기가 떠돕니다.

 

 

“정감록에 이번 대통령이 조선시대의 마지막 임금이며, 다음 대통령부터는 세계 천년을 이끌어 갈 찬란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이 말이 허황된 거라고 생각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이 말처럼 찬란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꾸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게 자랑스러운 그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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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채 전남도교육감후보,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겼을까?
세월호 사건에서 얻은 교훈 “학교 안전지대 만들겠다!”

 

 

 

5월의 함성이...

 

 

 

오늘은 5ㆍ18 민주화운동 34주년 되는 날입니다.

 

 

1980년 5월.

 


많은 사람에게 영광의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민주 영령들이 묻힌 국립 5ㆍ18 민주묘지에는 오늘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나는 5ㆍ18 당시 광주에 있었다. 5ㆍ18 후 내가 살아남은 게 부끄러웠다.”

 

 

장만채 전라남도교육감 후보의 국립 5ㆍ18 민주묘지를 찾은 소감입니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겼을까?

아마, 자신을 이겨야 했던 그 무엇인가가 있었을 겁니다.

 

 

장만채, 그의 “살아남은 게 부끄러웠다”는 말이 가슴을 찌릅니다.

상식적으로 살아남은 자체는 자랑스러운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짐으로 남는 현실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아픈 가슴으로 남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1980년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민주 영령들 뿐 아니라 세월호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절규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따뜻한 안전지대로 만들겠다.”

 

 

전라남도교육감 선거에 다시 나선 장만채 후보의 선거 각오입니다.

 

어디 학교뿐이겠습니다.

대한민국 곳곳이 안전지대가 되어야지요.

뻔히 눈 뜨고 보면서 구조자 ‘0’을 기록했던 세월호 참사.

 

 

슬픔이 가득한 중에도 우리는 그 희망을 또 찾아야 합니다. 어디에서?

 

 

“교육이 미래다!”

 

 

누구나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아무나 미래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잔말 그만하지요. 국립 5ㆍ18 민주묘지 사진 보시죠.

 

 

 

 

민주묘지로 가는 길에는...

 

 

가슴 아픈 노란리본이...

 

 

나부끼는 리본을 보며 또 아린 가슴을 부여잡습니다...

 

 

어떤 마음을 글로 써야할지...

 

 

민주 묘지로 들어가는 입구 '민주의 문'

 

 

저기가 민주묘지입니다.

 

 

장만채 전남도교육감 후보가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온 지인들도 한컷했습니다.

 

 

교육이 미래지요...

 

 

민주 묘지에는 일반인의 발걸음도 잦았습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5월 광주에서 살아남았던 장만채. 그도 살아남은 게 부끄러웠답니다.

 

 

민주 영령이시여! 편히 잠들소서!!!

 

 

기억해야 할 5월 광주.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의 분향이 부끄럽지 않은 조국을 만들어야겠지요! 

 

 

시리디 시린 가슴. 이젠 현실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아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5월 광주 당시를 회상하는 장만채.

 

 

곳곳에 단체 방문객들이 보였습니다.

 

 

살아남은 자는 지금, 조국의 미래를 위해 또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행방불명자들의 묘에서 쓰라린 역사의 현장을 되새깁니다.

 

 

5월, 그 이름 누가 욕되게 하리오!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5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솓네!

 

 

5월 영령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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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성불사에서 본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연등…
넋두리, 연등,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카네이션

 

 

 

어떻게 이런 일이... 

 

 


# 1. 넋두리

 

요즘,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턱턱 막힙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후부터입니다.

이후 저희 집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딸의 마중을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은 밤 10시 15분에서 30분 사이입니다.

 

차에서 내리는 딸은 마중 나온 엄마와 아빠, 혹은 엄마 또는 아빠를 보고 활짝 웃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가족애의 표현이 달라진 겁니다.

 

 

아이들에게 언제 어떤 사고가 닥칠지 모르기에 미리미리 사랑하는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안아주는 등의 사랑을 마음껏 주는 실천을 하는 거지요.

 

부모입장에선 부모로서 더 잘해줄 걸 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는 몸짓입니다.

또 자식 입장에선 한 번이라도 더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이지요.

 

 

부처님 오신 날 성불사에 있던 연등...

 

 

 

# 2.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연등

 

지난 6일,
부처님 오신 날 경남 창원의 여항산 ‘성불사’를 갔습니다.

 

막막한 가슴 부처님께 의지하려고.

법당 천장에 달린 연등 하나를 보고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연등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극락왕생”

 

 

두 눈 크게 뜨고 구조를 간절히 기다리던 아이들을 외면했던 어른들이 참회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식 둔 부모라면,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보란 듯이 생명을 외면했습니다.

부디 저승에서는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3.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

 

 

“분향소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울던지….”

 

 

아내가 전한 딸과 친구들의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 모습입니다.
딸 친구들이 분향소 간다고 데려다 줬더니 분향하면서 엄청 울었다고 합니다.

 

왜 물었냐고 물었더니,

 

 

“불쌍하잖아.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 죽어야 했던 언니 오빠들이 가엽잖아.”

 

 

헉.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제 저도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왠지 분향소를 찾지 않으면 죄인인 기분이었습니다.


분향소를 틈틈이 지키는 이오성 씨는

 

“많은 사람들이 분향소를 찾는다. 지난 연휴기간에는 여수를 찾은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람 마음은 똑 같나 봅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카네이션에는 핀이 없었습니다...  

안마 쿠폰을 뽑았으나...

 

 

#4. 아이들이 어버이날에 준 선물을 보고

 

어제는 어버이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 박스를 주더군요.
봤더니, 카네이션과 쿠폰이었습니다.

 

 

“카네이션 직접 만들었어요. 그런데 세월호 사고로 가슴 아픈 어른들이 가슴에 달지 않았으면 해서 핀은 달지 않았어요.”

 

 

그래, 무슨 염치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겠니,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쿠폰을 뽑았습니다.


제가 뽑은 쿠폰은

 

“안마 5분.”

 

아내가 뽑은 쿠폰은

 

“10초 안아주기.”

 

고 1 딸과 중 3 아들은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가슴이 시립니다.
우리의 아들이자 딸이었던 그 많은 학생들의

 

‘살려 주세요!’

 

했을 절규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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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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