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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비상도 1-43

 

“왜 결혼하지 않으세요?”…“고독과 결혼한 셈.”

“제가 존경하는 사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주제는 권선징악이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주인마담은 두 사람이 자리에 앉기가 바쁘게 너스레를 떨었다.

 

 

  “회장님께서 그동안 통 안보이시기에 어딜 가셨나 했죠.”
  “자주 못 들러 죄송합니다. 일이 좀 생기는 바람에…….”
  “그런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시네요?”

 

 

 그녀는 비상도를 향해 가벼운 목례를 했다.

 

 

  “오늘은 제가 존경하는 사부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남편이 가고 난 후 성 여사가 남편이 가졌던 회장의 직함을 이어받은 모양이었다.

 

 

  “이곳에 자주 오시는지요?”
  “아주 가끔요. 남편을 보내고 울적해서 혼자 두어 번 오긴 했는데 더 슬퍼지더군요.”

  “그럼 아이들은?”
  “딸 아이 하나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외국에서 공부 중이라 집이 절간이죠.”


  “엄마를 닮았으면 예쁘겠습니다.”
  “글쎄요. 애 혼자라 외로울까 걱정이 돼요.”


  “저 보다야 낫죠.”
  “사부님께선 용화가 있질 않습니까?”


  “하긴…….”

 

 

 성 여사도 술을 잘 하지는 못하는 편이었다.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 얼굴빛은 벌써 앵두 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가 술기운을 빌어 조심스럽게 용화 문제를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요. 용화를 제게 맡기시는 게 어떨는지요? 이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무엇보다 사부님께서 집을 비우시는 일이 잦으실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이에요.”
  “여러모로 여사님께서 맡아 주시면 도움이 될 테죠.”


  “사부님께서 제 집으로 찾아오실 명분을 제가 챙겨 드리는 거예요.”
  “하하…. 그렇습니까. 다른 볼 일도 있고 하여 조만간 제가 집을 한 번 다녀와야겠습니다. 아이의 의향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겨울밤을 즐기는 사람들은 좀처럼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사부님께선 왜 결혼을 하지 않으세요?”
  “산중의 고독과 결혼한 셈이죠.”


  “고독을 사랑할 가치가 있던가요?”
  “사랑하다 보니 고독이 새끼를 낳더군요. 밤마다 그놈을 재우려고 또 밤잠을 설칩니다.


  “그 고독은 무정란에서 태어난 것이로군요.”
  “그런 셈이죠.”


  “갑자기 옛날에 배웠던 시조가 생각나네요.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고이고이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면 마디마디 이어리라.’ 던…….”
  “황진이의 고독도 유정란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한두 송이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사부님, 너무 좋은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눈 오는 기념으로 제가 시 한 수 낭송 해 볼까요?”
  “눈 오는 날의 시 낭송이라. 눈감고 들어 볼게요.”

 

 

 비상도는 손을 뻗어 오는 눈을 받았다. 눈은 쌓이지 않고 금방 녹았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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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잠?’ 혹은 ‘인생=바다?’
[범선타고 일본여행 17] 잠자리와 시조(詩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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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에서의 사색.

여행은 먹거리도 먹거리지만 잠자리가 편해야 합니다. 쌓인 피로 푸는 데는 깊은 잠이 최고니까요. 잠자리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유형을 살펴볼까요?

# 1. 누우면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다.

범선타고 시작한 7박 8일의 일본 여행길. 피로 덕에, 누우면 ‘푹 자야지’ 할 새도 없이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습니다. 도둑이 훔쳐가도 모를 만치. 아마, 이렇게 잠들지 않았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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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에서의 잠.

                     다 부르지 못한 노래

                 내가 나를 지우고 싶다
                 무력(無力)만을 즐겨온 나

                 이성(理性)을 갉아먹고도
                 부화 못한 너로 하여

                 그 숲속
                 헤매온 낮과 밤
                 허울도 벗기고 싶다

                 부질없이 쌓은 탑
                 그 오만도 다 지우고

                 죽어서도 피어나는
                 가슴 속에 물린 씨앗

                 지니고
                 떠난 어머니의
                 푸른 향낭이고 싶다

                                 - 시조시인 ‘송길자’ 님의 <다 부르지 못한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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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서 본 바다.

# 2. 파도에 흔들리는 게 요람 같다.

자느라, 출렁이는 배에서의 잠자리가 어떤지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기발하게 표현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조병기 신부. 정말 신부다운 말씀을 하십디다.

“배라서 잠자리가 불편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파도에 출렁이는 것이 꼭 엄마가 아기 안아 흔들흔들 얼러 재우는 것처럼 포근하대. 배가 요람이야, 요람!”

‘어쩜 이리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감탄에 감탄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배에서의 잠자리가 요람이었던 것 같더군요. 조 신부님의 표현에 대한 답가(答歌) 하나 읊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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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의 밤.

                       배(船)

                 노 저어
                 건너가는
                 하루해는 바다인 거

                 뒤웅박 같은 내 배
                 휘말리는 높은 파도

                 뱃머리
                 돌리는 하늘가
                 떠오르는 저녁별

                                         - 시조시인 ‘송길자’ 님의 <배(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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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기 신부.


# 3. ‘불면의 밤’ - 멀미에 혼자 울다.

바뀐 잠자리로 힘든 사람은 죽을 맛이었을 겁니다. 여행 동안 힘들어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순애 문인화가(文人畵家). 그의 심정 들어 보실래요?

“출항하자마자 멀미에 시달렸어요. 첫날부터 막막한 여행길이 될까봐, 혼자 누워 울었어요. 눈물이 나오데요. 배가 정박한 후,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좋더라고요. 배려해 주는 사람도 생기고. 배려를 배운 것 같아요.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 같구요!”

혹, 첫날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이순애 화가께 ‘송길자’ 시조시인의 <불면의 밤>을 뒤늦은 선물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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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애 화가.

                           불면의 밤

                 욕망을
                 불지르고
                 버텨온 자존도 헐고

                 한 가닥 양심 가책
                 촛불처럼 꺼진 날들

                 차라리
                 바다 깊숙이
                 수장되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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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바다는 두렵다. 왜? … 잔잔하지 않으면,

이제,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야합니다. 함께했던 소설가 양원옥 님은 바다 여행에 대해 이렇게 평합니다.

“바다는 잔잔할 때는 괜찮은데 그렇지 않을 때는 두렵다. 사람이 물에서 태어났는데도. 상황이 언제 어떻게 될 줄 모른다. 육지 여행은 즐거운데 바다 여행은 그래서 두려운 것.”

잠이 내일을 지탱하는 힘이듯, 두려움의 경험도 새로운 용기가 되겠지요. 그래서 ‘여행=잠?’ 혹은 ‘인생=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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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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