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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정겹고 훈훈한 드라마
“아버지? 나에게 당신은….”

[아버지의 자화상 42] 추억 속의 아버지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요즘, 된장 같은 추억 속의 드라마를 본 듯하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가 그러했다.

부모 노릇, 자식 노릇 하기 쉽지 않다.

“아버지? 나에게 당신은….”

내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가에 따라 주제의 경중이 달라지겠지만, 무겁고도 가벼운 주제기도 하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웃고 또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정감과 훈훈한 추억이 샘솟는 드라마였다.

“아부지는 바람처럼 물처럼 떠도는 사람인기라!”

21일,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첫 방송에서 경숙이가 집 식구 건사를 외면하고, 기생집에서 노는 아버지에게 느끼는 아버지는 이랬다.

“아부지는 바람처럼 물처럼 떠도는 사람인기라.”
“내는 지밖에 모르는 아부지 필요 없어예.”

유년의 초상이었다. 여기에는 6ㆍ25와 1950년대만큼 모질고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우리네 아버지ㆍ어머니,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유년에 대한 추억은 찐빵과 씨름, 나물 캐기에 녹아나 있었다.

모질게도 가난했던 시절, 나물 캐며 모은 돈으로 우람한 체격의 친구에게 찐빵을 먹여가며, 씨름시합에서 쌀 한가마니를 타려는 배부름에 대한 갈망. 찐빵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꼴딱꼴딱 침을 넘기는 풍경.

배터지게 혼자 찐빵을 독차지한 후 나선 씨름판에서 결국 똥을 싼 친구. 이로 인해 씨름을 망친 아이들의 분통과 놀림. 부유한 친구의 과자 유혹과 거드름에 맛서는 주먹질과 매타작. 부잣집에서 허기진 배 채우기를 희망했지만 어그러진 꿈.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소중한 물품들을 팔아야 했던 어머니. 과거에 대한 향수였다.

해학적 드라마에서 그릴 아버지를 기대하다

드라마 제작진이 밝혔듯 “흥겨우면서도 눈물 나고, 눈물 나면서도 웃음 짓게 하는 뽕짝 같은 드라마”였다. 그래서 “모든 아픔을 아우르는 혈육의 정과 사랑을 모두가 되새길 수 있는”것처럼 여겨졌다.

아이들에게 “너흰 저런 시절을 모르지?”하며 애타게(?) 그 시절을 설명하기도 했다. 녀석들도 삐식삐식 웃음을 질질 흘렸다.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아버지는 끝까지 무능한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고 말았다. 요즘 아버지들이 겪는 무능(?)처럼. 그것은 터진 6ㆍ25 전쟁이 나자 가족을 버리고 혼자 피난 가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전쟁에서 남자는 죽지만 여자들은 안 죽는다. 피난은 다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나 혼자만 가는기라.”

이런 해학적 아버지를 대하며 6ㆍ25에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세대의 고통을 그리기 됐다. 4부작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그릴 우리들의 아버지와 삶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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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끝에 아이 낳은 아버지의 감격
[아버지의 자화상 40] 탄생


“핏덩이를 보자마자 아이 손가락이 다 있는지, 발가락 개수는 맞는지부터 셌다. 그리고 다른데 이상은 없는지 살폈다.”

막 나은 아이를 보는 부모의 심정입니다. 건강이 제일이기에 무심코 나오는 행동일 것입니다. 최근 만난 지인은 이를 넘어 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건강한 아이를 낳다니…. 나는 건강한 아이 못 낳을 줄 알았다. 이렇게 멀쩡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다니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마흔 넘어 결혼한 지인은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감격해 했습니다. 이렇게 행복해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늦은 결혼도 결혼이지만 두 차례나 유산한 끝에 낳은 아이라 더욱 그렇다.”

혈압 약 복용으로 건강한 아이 못 낳을 줄 알았는데

왜 아니 그러겠습니까. 두 차례나 유산했다면 그와 그의 아내가 겪었을 아픔이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보다 더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수년간 약을 먹었다. 혈압 약이었다. 이 약 때문에 건강한 아이를 간절히 고대했지만 못 낳을 줄 알았다. 그런데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모든 것에 너무너무 감사하다.”

그의 얼굴에 행복과 감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아들이야, 딸이야?”
“아들.”
“잘했네. 축하하네.”

눈을 치뜨고 아들을 힘주어 말하는 그에게서 넘치는 자랑스러움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론 우습기도 했습니다.

그는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이 낳은 기쁨으로 인해 삶의 목표가 뚜렷해진 것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부자지간에 어떤 교감을 가져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합니다.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거죠?”…“살아 봐!”

“아이가 밤이면 깨어 우는 바람에 밤낮이 바뀌어 힘들지만 그래도 마냥 행복하다. 아이들 먼저 낳아 키운 부모들 보면 무척 부럽다. 다들 이렇게 키웠을 텐데 아이 낳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기쁨이다. 그러나 어깨가 무겁다.”

부모라면 누구든 갖는 행복한 부담이지요. 아이 키우려면 왠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인 것이죠. 그는 헤어지기 전, 물었습니다.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거죠?”

딱히 해답이 있을 리 없습니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방식이 있을 테니까. 그래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살아 봐!”
“그게 정답이네요.”

그러고 보니, 아이 낳을 때가 생각납니다. 세상을 얻는 기분이었지요. 다시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 사는 것도 자신을 다스리는데 도움 되겠지요?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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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하는 시간
[아버지의 자화상 38] 자장면과 짬뽕

“목욕탕 가자.”

아버지의 제의에 대한 아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반길 경우 아직 어리다는 반증이고, 보통이면 조금 큰 상황이며, 거부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라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아들이 성장 정도와 상관없이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아버지의 눈높이가 자식에게 맞춰져 이상적인 부모 교육을 실현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허나 그렇지 않다면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도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라 아직 판단할 처지는 아니지만 스스럼없는 부자지간이 되려고 노력 중인 아버지일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게 있습니다.

“아빠, 우리 목욕 가요.”
“그러자.”

이런 상황이라 아직까진 긍정적 요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긍정 요소가 계속 이어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아이들을 키운 아버지들께서는 “다 키워봐야 안다. 더 키워봐라.”하지만 가만히 앉아 크기만을 기다릴 순 없겠지요.

목욕 전 후 부자지간 교감 이루는 법

아버지들의 노력 중 하나는 목욕 전 후에 이뤄지는 교감을 들 수 있습니다. 그 교감은 서로의 때를 밀어주는 육체적 교감과 음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이 방법을 간혹 이용하고 합니다.

“아들. 목욕하고 뭘 먹을까? 먹고 목욕탕 갈까?”
“아빠, 배고프니 먹고 가요.”

“어디로 갈까?”
“중국집으로 가요.”

목욕탕 가는 길에 중화요리 집에 먼저 들렀습니다. 여기에도 부자지간 대화거리는 있습니다.

“우리 뭘 먹지?”
“자장면. 짬뽕. 아빠, 우리 하나씩 시켜요. 나눠 먹게요.”


자장면이 주는 보너스 “아빠, 짱!”

자장면을 오른쪽으로 쓱쓱 비비고, 왼쪽으로 쓱쓱 비비던 녀석이 드디어 한 젓가락 들어 올려 입에 넣습니다. 짬뽕도 나눠주며 맛있게 먹는 자식 보는 아버지 입장에선 흐뭇하면서도 다소 걱정되기도 하지요.

“야, 안 뺐어 먹을 테니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얹힐라.”

다 먹은 후 입에 묻은 춘장을 보며 “입 좀 봐라, 잔뜩 묻었네?” 한 마디에도 녀석 즐거운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닦아내지요. 여기에서 추가할 말이 있습니다. 덤으로 보너스가 떨어지는 말입니다.

“자장면이 그렇게 맛있어?”
“예. 아빠 짱!”

이렇듯 자장면에도 부자지간 교감 순간이 속속 들어 있지요. 저도 어릴 적 목욕 후 아버지와 먹었던 자장면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자장면에 스민 부자지간의 추억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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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왜 쓰고, 그리게 하셨을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거울?
[아버지의 자화상 1] 벼루, 먹, 우리나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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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거리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과거는 현재를, 현재는 미래를 나타내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삼십여 년 전.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여름철이면 정어리를, 겨울에는 돔을 주로 잡았던 듯합니다.

지금은 물고기 씨(?)가 말라, 어민들이 삶의 터전인 황폐화된 어장을 떠나는 실정이지만, 이때만 해도 고기가 넘쳐 났지요. 특히 기억되는 건 잡아온 정어리를 털 때, 그물 뒤에 서서 땅에 떨어지는 정어리를 줍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광경입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에게 뭐라 한 마디 하실 법도한데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제가 재미삼아 주어온 정어리로 만든 찌개는 아버지께서 가져오신 것 보다 ‘더 맛있었다’는 순전히 혼자만의 별난 기억도 있습니다. 굳이 정어리를 주어올 필요가 없었는데도 사람들 속에서 주웠던 것은 눈망울을 크게 뜨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입니다.

초등시절, 붓글씨와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게 하셨던 ‘아버지’

제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하게 각인(刻印)되었던 무렵은 초등학교 사학년 때였습니다. 이때 당신은 붓으로'一'자(字)와'l'자(字)를 쓰게 하시고, 우리나라 지도를 사실대로 그리게 하셨던 기억입니다.

당시, 벼루와 먹을 가져오라시며 화선지 대신 신문을 펼쳐놓고, 벼루에 물을 부어 먹 가는 법을 일러주셨죠. 그리고 ‘이렇게 해 봐라’ 했던 아버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대한 저는 당시 팔 아픈 줄도 모르고 내내 먹만 갈았었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는 붓에 먹을 묻혀 신문 위에 ‘ㅡ’자만 쓰게 하셨지요. 그 후에는 ‘l’자만 썼었지요. 그 때, 왜 아버지는 똑 같은 글자만 쓰시게 하실까? 의아했지요. 덕분에 그렇잖아도 튀어 나온 입이 더욱 튀어나왔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붓글씨를 배운 후 아버지는 위도와 경도를 그리는 방법을 일러 주시며, 도화지에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게 하셨습니다. 위도와 경도 그리는 데는 자와 콤파스, 지우개 등이 필요했지요. 자로 간격을 재고, 그 간격에 맞게 도화지에 그리는 작업은 많은 신경을 써야 했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지우고 다시 그려야 했었지요.

위도와 경도가 그려지면 우리나라 지도의 외곽선을 옮겨야 했구요. 우리나라 지도 그리기는 꼭 압록강에서 시작해 압록강에서 끝이 났지요. 제일 쉬웠던 부분은 두만강과 남해안이었던 거 같습니다. 제일 어려웠던 곳은 영일만 부근의 호랑이 꼬리와 서해안이었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고기 잡으러 가실 때는 의례히 '一','l'쓰기와 지도 그리기는 숙제로 남았고, 오시면 검사를 맡아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칭찬과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유년(幼年)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입니다. 이 과제는 5학년까지 계속되었고, 이후로 아버지의 숙제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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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런 것이겠죠?

세상을 넓게 보고 큰 뜻을 품어라 시던 ‘아버지’

당시에 저는, 아버지가 내려주신 과업(課業)을 나름대로 즐겼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 아마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은 나만의 숙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 먹을 갈던 때의 부드러운 감촉, 우리나라 지도를 그린다는 사실에 대한 흥분 등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 졸업 후 3년여 동안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때로 다른 과목을 대신 채우곤 했는데,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면 ‘선생님 지도 참 잘 그리네요!’ 하는 소리를 듣곤 했지요. 그만큼 지도 그리는 데에는 뿌듯한 자신감이 묻어 있지요. 이것이 제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흔적입니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一'자와'l'자만 왜 쓰게 하셨을까? ‘人’(사람인)과 ‘ㆍ’(점, 마침표) 와 서예가들이 즐겨 쓰는 도(道)ㆍ불(弗) 등 폼 나는 다른 글자들도 많은데…….

또한 아버지는 우리나라 지도를 왜 그리게 하셨을까? 민족의 비극이었던 6ㆍ25를 겪었던 아버지는 왜 남쪽만 그리게 하지 않고, 남과 북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도(全圖)를 그리게 하였을까? 등이 많이 궁금했지요.

지금은, 아마 ‘말을 아끼면서 한 길로, 자신을 세워가라’, ‘우주의 중심인 우리나라만 제대로 알아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넓게 보고 큰 뜻을 품어라’ 는 뜻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느낌입니다.

아버지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여쭤보질 않았습니다. 아니, 굳이 여쭤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론 꼭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뭐라 말씀 하실까? 궁금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저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둘을 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까?’ 걱정입니다. 지인들은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아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지녀라”는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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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정박한 배, 그리고 그 위를 다니는 새?

지금 제가 주제넘게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까?’ 감히 생각하는 건, 대책 없이 결행했던 결혼과 부모로서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들을 낳고 기를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고민을 아는지 아내는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삶 속에서 부모가 몸소 보여주는 것 이상의 교육은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부여한 과제(課題)는 혹여 ‘당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은 아니었을까?’ 막연히 추측하며, 오늘도 내일의 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적에도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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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가정교육, 성공의 관건은 ‘선택 한계’

“저도 어였한 10대랍니다”, “전 인제 글씨도 잘 써요”
[아버지의 자화상 23] 가족 그림과 편지

자녀를 둔 아버지의 삶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가정교육일 것입니다. 아이가 제대로 커 가는지, 제 나이에 맞는 정신 성장을 하고 있는지 살피는 건 그 기본일 것입니다. 특히 기본 중 끊임없는 선택의 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여부가 가정교육 성공의 관건일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유아기와 어린이 시절에는 부모의 울타리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가운데 선택의 폭을 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청소년기에는 부모의 울타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한계로 자녀의 선택을 도와야 하겠지요.

결혼 10년째 맞이하는 아내의 생일은 아이들이 제 나이에 맞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여, 아이들에게 엄마에게 줄 생일 선물로 ‘가족 그림’과 ‘편지’를 요청했습니다.

아이들은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지요. 잔소리를 좀 했지만. 도움 될 수도 있으니 한 번 보시는 것도 괜찮겠지요? 참, 가족 그림은 사진으로, 편지는 글로 보셔야겠군요. 먼저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의 그림과 글부터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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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였한 10대랍니다!”- 어린 티를 벗어가는 딸

엄마께

엄마, 안녕하세요?
전 엄마의 맞딸 유빈이에요.
제가 짜증부리고 울었을 땐 정말 제가 생각해도 말광량이였죠?
하지만 지금은 반성하고 있답니다! *^^*
지금은 저도 어였한 10대랍니다.
세월이 흘러흘러 저도 나이를 먹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엄마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엄마의 귀한 생일을 너무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정말로 엄마 생신을 추카 드려요. *ㅎㅎ*

나름대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엄마의 맞딸”? 꼭 무슨 경고 같기도 하죠? 가정에서 맏이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부각시켜 자신의 요청을 무시하지 말길 바라는 경고. 또 다른 측면에선 맏이니 잘 하니 믿어 달라는 주문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는 “지금은 저도 어였한 10대랍니다.”란 문장에도 그대로 스며 있습니다. 10대 임을 “세월이 흘러 흘러 저도 나이를 먹게 되었어요.”라며 강조하며 “반성하고 있으니” 대접해 달라 요청하는 게지요. 그리고 “엄마의 소중함을 알”아 “귀한 생일을 감사하게 여”길 만큼 자랐다고 항변합니다.

이로 보면 생활에서 긍정과 부정에 대해 적절히 사용하는 법을 느끼는 거죠. 어린 티를 벗은 것 같습니다. 이제 청소년기로 들어설 준비를 시키는 게 옳겠다는 판단입니다. 무리는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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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제 글씨도 잘 써요”- 성장이 필요한 아들

다음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편지입니다.

엄마께

엄마 저 태빈이에요.
전 인제 그림도 잘그리고
글씨도 잘써요 그리고
절 키워 주셔서 감사
해요 우주 만큼사랑해요

공간적 제약이 있긴 허나, 문장 기호와 띄어쓰기, 줄 바꿔 쓰기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합니다. “그림도 잘 그리고 글씨도 잘 쓴”다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니깐요. 한편으론 ‘이제는 잘 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이해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 정도는 어린이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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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평 - 아빠를 부담스러워 하는 아들, 생각이 잡힌 딸

그림에서도 4학년 딸과 3학년 아들의 차이는 확실히 나타납니다. 딸 그림은 아빠와 엄마가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딸은 아빠 옆에, 동생은 엄마 옆에 배치했지요. 엄마보단 아빠와 더 친한 현실을 그렸구요. 밥을 주로 챙기는 동생 옆에 강아지를 그려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을 읽을 수 있구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아들 그림은 부부인 엄마 아빠를 크게 그려 중심이 부모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허나, 엄마 옆에 자신을, 자신 옆에 누나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빠를 제일 멀게 두었지요. 아빠에게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특이한 것은 위 오른쪽 귀퉁이에 ‘태양’을 그려 넣었다는 겁니다. 편지에서 쓴 ‘우주’란 단어와 그림에서의 태양이 같다고 봐야겠지요. 가슴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삶을 어떻게 선택하도록 해야 할지 갈림길이 나타나고 있는 게지요.

초보자의 아주 서투른 분석이지만 아버지로서 역할이 아이의 삶을 결정지을 중요한 시기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어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러나 조언자에 머물 수밖에 없음은 알고 있습니다.

선택은 아이의 몫이니까! 그럴 작정입니다.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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