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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김치 담는 거만 빼고 다 한다?

아이들과 김치 담는 재미도 ‘솔솔’
[아버지의 자화상 2] 김치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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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술 먹고 밤늦게 들어오는, 혹은 가끔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무섭고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천만의 말씀. 무뚝뚝한 아버지도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웃음을 보여줄 때가 있답니다.

퇴근 무렵,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들뜬 목소리입니다.

“엄마가 오징어볶음 한다고 빨리 오시래요. 아빠, 빨리 오실 거죠?”
“아빠 약속 있는데 어쩌지?”

“아빠, 자식인 우리가 기다리는데 빨리 오세요, 네!”
“그래? 그러자!”

오늘은 아이들과 김치 담는 날

집에 들어서니 아내는 “깍두기랑, 채김치랑 담아주려고 했는데 일찍 오네요?” 합니다. 옆에는 무 두개와 파가 놓여 있습니다. 오징어볶음을 먹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느니 같이 움직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를 씻어 도마와 칼을 들고, “얘들아, 우리 김치 담자” 하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이들도 칼을 찾아옵니다. 깍두기를 먼저 담기로 합니다.

아내를 제쳐두고 아이들과 김치 담을 생각을 한 건 지인 때문입니다. 전에, “김치 담는 거만 빼고 다 한다”는 말에 “김치 담는 게 뭐 일이라고….”란 생각으로 아이들과 김치를 담아봤기 때문입니다. 그때 맨손으로 고춧가루를 버무린 후 몇 시간 동안이나 손이 화끈거려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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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께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아이들과 거실에 앉아 무를 자릅니다. ‘아빠는 잘하네?’ 합니다. 성큼성큼 자르는 게 부러운 눈칩니다. ‘서당께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어머니가 담아주신 채김치를 맛있게 먹은 세월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은 칼을 큰 걸로 바꿔 하고 싶다는 둥, 아빠가 잘라 놓은 무 말고 자기가 무를 자르면 아빠가 그걸 깍두기로 자르라는 둥, 무가 잘 안 잘라지더니 칼등으로 잘랐다는 둥 말이 많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가 사라집니다.

하나를 더 씻어 절반은 조림용으로 두고 절반은 자릅니다. 생채는 얇게 잘라야 합니다. 좀 두껍게 썰면 투박하니 멋대가리가 없고, 너무 얇게 썰면 버무릴 때 부러지니 신경 써야 합니다. 무를 끝까지 자르려 애쓰지만 중간에 끈깁니다. 이게 기술인 거죠.

김치담기의 마무리는 설거지?

깍두기를 소금에 절인 후 파를 자릅니다. 그리고 비닐장갑을 찾습니다. 전에 혼난 기억으로 인해 노하우가 생긴 거죠. 갈아놓은 고춧가루에 깍두기를 버무리자 “재밌는 거 아빠만 한다”며 아이들이 달려듭니다.

아이들과 버무린 깍두기를 번갈아 먹여주며 간을 본 후, 그릇에 나누어 담습니다. 그런 후, 절여놓은 생채 물기를 짜고, 파를 송송 썹니다. 아이들과 함께 고춧가루를 주물럭주물럭 버무려 채김치마저 완성합니다.

이걸로 김치담기 끝? 그게 아닙니다. 김치담기의 마무리는 설거지입니다. 식탁이 풍성합니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릅니다. ‘시장이 반찬’이 아닌 ‘김치 담는 재미가 반찬’이 됩니다. ‘좋은 생각’이란 잡지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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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새싹을 틔우려면 양을 적당히 조절해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애정은 변함없는데,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도 한가지인데 서로 서운하고 섭섭해 하는 것은 그 사랑이 너무 무거운 까닭이라고. 사랑이 너무 두터우면 새싹이 나오지 않을 수 있으니까 양을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는.”

사랑의 새싹을 틔우기 위한 적당한 양의 조절은 어찌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케 하는 글귀입니다. 김치담기도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추억이자 행복 아닐까요?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김치 담은 내용을 일기로 쓴다 합니다. 고맙기도 하지요. 일기까지 쓴다니….

권위와 허울, 다 던져버리고 아이들과 알콩달콩 재미삼아 이런 추억 만들기도 괜찮을 겁니다. 아주 가끔 말입니다. 얼마나 재미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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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버지도 그저 인간이고 싶다!

“아이들 키우는 건 정성이야, 정성!”
[아버지의 자화상 25] 키

부모에게 자식은 ‘뱃속에서 죽을 때까지 애가심이다’ 합니다. 뱃속에 있을 때는 건강하게 태어나길. 태어나선 아프지 않기를.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하길. 커서는 직장과 결혼 및 후손 등 시시각각 애달음이 변합니다.

자식이 자라는 동안 부모의 관심사 중 하나는 ‘키’일 것입니다. 산모들에게 덕담으로 건네는 “작게 나서 크게 키워라”는 말은 이제 “적당히 나서 크게 키워라”는 말로 변했을 정도니까요. 그만큼 키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말일 것입니다.

“아이가 너무 작아 걱정이다. 뭘 좀 골고루 많이 먹어야 쑥~욱 쑥 클 텐데, 통 뭘 먹지 않는단 말이야. 자네, 아이는 어쩐가?”

호프를 마시다, 정성권이란 친구가 던진 말입니다. 동변상련입니다. 그러나 속내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180㎝, 저는 173㎝로 7㎝의 차이가 납니다. 그의 부모는 큰 편이고, 제 부모는 보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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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권 가족.

“음식 가리는걸 보면 어찌 꼭 그리 나를 닮았는지”

“자네는 그래도 크지 않은가? 유전적으로도 아이가 클 소지는 얼마든지 있잖아.”
“그러긴 하네. 나도 중학교 때까진 작았잖아. 고등학교 때 갑자기 10㎝ 이상씩 자랐거든. 아이가 음식 가리는걸 보면 어찌 꼭 그리 나를 닮았는지. 웃음이 나온다니까. 그걸 보면 걱정이 안 돼. 그런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가 봐….”

“키 크게 하려고 성장 클리닉까지 동원한다는데 자네는 어떤 방법을 쓰고 있는가?”
“좋다는 음식과 한약도 먹여 보고 했는데 신통찮아. 스트레칭이 최고라 하데. 그래서 지금은 요가와 줄넘기, 철봉 등을 같이 시킨다네.”

정성권,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합니다. 줄넘기는 하고 있으니 됐고, 요가와 철봉이라? 호르몬 투여와 수술 등 병원 클리닉까진 아니더라도 비교적 쉬운 것은 해봐야겠죠. 제 아이들은 학급에서 제일 작은 축입니다. ‘부모가 작아 자녀도 작다는 건 다 옛말이다’ 하지만, 꽤 신경 쓰입니다.

아이들의 친구를 보면 머리통 하나가 더 큽니다. 저렇게 키 차이가 나는데 꼭 그리 큰 놈들과 어울리는지. 속 터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씩씩하긴 합니다. 안 크는데 어쩌겠습니까? 아이도 “왜 안 크지?” 속상하겠지요.

“아빠! 되게 기분 나빠요. 글쎄, 2학년짜리 후배 남자 아이가 와서 반말을 하잖아요. 같은 학년인 줄 알았다고. 키가 작다고 나를 같은 학년으로 취급한다니까!”

작은 키는 본인은 고사하고 주위에도 스트레스가 되고 있습니다. 초등 4학년 딸, 말은 이래도 속상함은 잠시 뿐입니다. 먹을 때, 고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지만 깨작깨작 소식(小食)에 편식(偏食)은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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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차이가 크죠?

“때가 되면 클 놈은 다 자랄 텐께!”

“몸에 좋다는 거, 해다 먹여도 쓰다고 못 삼켜. 하는 수 없이 오곡을 미숫가루로 갈아 먹이고, 홍삼에 꿀까지, 얼마나 애 써야 하는데. 음식도 한 놈이 잘 먹으면, 한 놈은 입에도 안대지. 크는 비법을 그냥 날로 먹으려고? 아이들 키우는 건 정성이야, 정성!”

양동헌 씨의 경웁니다. 키가 큰 자식을 둔 부모들도 키우기까지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합니다. 그냥 절로 되는 건 없겠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듭니다.

“키가 안 커 속 썩었는데 중 3이 되니까 쑥쑥 자라더라고. 기다려봐. 때가 되면 클 놈은 다 자랄 텐께!”

장갑종 씨의 말입니다. 가진 자의 여유로 치부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맞는 말입니다. 때가 되면 절로 크지 않겠어요?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겠지요.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의 평균키는 남자 173.3㎝, 여자 160.9㎝라 합니다. 10년 전과 비교해 3㎝와 2.7㎝가 커졌다 합니다. 앞으로 영양상태가 좋아 평균 신장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위안이지요.

키는 영양 뿐 아니라 수면ㆍ운동ㆍ유전 등 4가지 이상의 요소가 합해져야 숨어 있는 키까지 끄집어 낼 수 있다 합니다. 성장판이 닫히면 자라기 힘들다 하니 그 전에 자라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지요.

때로는 아버지도 그저 인간이고 싶다!

허나, 제가 여기서 말하려는 건 ‘어떻게 하면 자녀의 키를 키울까?’가 아닙니다. 뭔고 허니,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어느 아버지나 자녀에 대한 관심은 지대합니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관심의 대상이니까요.

문제는 아닌 척, 관심 없는 척 한다는 거죠.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꼭 말로 물어야 표현한다는 겁니다. 아버지 스스로도 표현하려고 노력 해야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줬으면 좋지 않겠냐 하는 겁니다.

아버지들도 때로는 위엄(?)을 지키는 위치보다 가족들이 먼저 아버지를 키워주는 걸 원하고 있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아버지도 그저, 한 인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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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그저 인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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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시켰어요?”, “별거 없어!”

세상을 만든 발명가 아버지, 그 대가를 치르다!
[아버지의 자화상 24]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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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딱딱한 부자연스런 사람도 자녀 이야기를 건네면 몰라보게 살아납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이런 존재, ‘희망’인 셈이지요. 주변에 소위 내놓을 만한 대학(이하 '내논대')이라는 곳에 진학한 자녀를 둔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간혹 그분들에게 묻죠.

“대체 어떻게 공부시켰어요?”

그러면 굳었던 표정이 밝아집니다. 덤으로 자세가 확 바뀌죠. 다리를 꼬고, 담배를 꼬나물며 한다는 말,

“별거 없어!”

이럴 땐, 정말 힘 빠지죠. 괜히 물었나? 허나,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들어두는 게 좋지 않겠어요? 살살 구슬리는 수밖에….

공부할 놈은 타고 나나 봐, 그래도 노력이 필요하지

“그러지 말고, 잘난 자식 키우는 비결이나 좀 들어봅시다!”

그때서야 움직이죠. 그도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잠시 우쭐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죠. 아버지의 특권이랄까 그런 거죠.

“가만 둬도 그리 돼대! 내가 아무리 봐도 공부할 놈은 타고 나나 봐. 요즘 얘들이 시킨다고 하나. 다 제가 하려고 해야 되는 거지. 그러나 아무리 머리가 좋더라도 노력 없으면 안되는 것 같아. 밤에도 자는가 하고 보면 불이 켜졌어.”

터지기까지가 문제지 한 번 터지면 일사천리입니다. 뒤에는 어떻게 벗어날까, 궁리까지 하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자식이 하려고 해야 되는 거겠죠. 알면서도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건 부모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요? 이율배반이죠.

“처음에는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를 했지. 그 놈은 시험 본다 해도 대충 대충이야. 그런데 시험 점수 받아오는 것 보면 많아봐야 한두 개 틀릴까 나머진 백점이야. 이런 놈한테 공부해라 가 뭐 필요해. 뒤에서 뒷바라지만 조용히 하면 돼.

가만 보면 공부는 집중력인 것 같아. 집중력이 무서워. 공부할 때는 아무리 큰 소릴 쳐도 그 소릴 듣지 못해. 가서 콕 찔러야 그때 반응을 보여. 지 말로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잠깐씩 예습 복습하는 게 도움이 된다대. 그게 자기 방법인가 봐. 학원에서도 저놈은 서로 데려 가려고 난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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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은 타고 났을까요?

아이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찾는 게 ‘최고’

공부에 비결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최고죠. 그 방법을 언제 찾느냐에 따라 어려서 튀는 아이, 늦게 튀는 아이로 나뉘는 거죠. 그래서 부모가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하는 것이고요. 또 다른 아이를 둔 부모의 경우입니다.  

“그 놈은 아예 컴퓨터 게임을 갖고 살아요. 지금도 눈이 시뻘개질 만큼 밤을 꼴딱 새요. 지가 다 알아서 하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옆에서 ‘게임도 잠은 자면서 해라’ 그래요. 공부를 안 하는데도 잘하는 것 보면 신통방통해요. 초등학교 때 수학에 재능이 있어 선생님이 영재 반에 들자고 해 들어간 게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걸 ‘자식 복이 많다’ 해야 되나요? 아님 타고났다 해야 되나요? 저도 부러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며칠 전까지 아이에게 신경을 썼었죠. 왜냐고요? 방학 전, 아이들의 학기말 시험이 있었거든요.

큰 아이가 4학년이 되니 이제 몸풀 준비를 슬슬 해야겠더라고요. 그렇다고 학원에 보내는 것도 아니니 부모로서 역할이 있지 않겠어요? “책 가져와라” 했지요. 그런데 “책이 없다”더군요. 헐~. 학교에 두고 다니는 거죠.

원리를 알려면 책이 최곤데. 문제집을 들었죠. 함께 하다 보니 “아, 이건 정확히 모르는구나”, “이건 깨우쳤구나” 등등의 구분이 되더라고요. 칭찬으로 아이의 잠자는 의욕을 깨웠죠. 주말동안 이렇게 아이와 문제를 풀었답니다.

아이 시험이 곧 부모 시험? 포기할 수 없는 게 자식?

하다 보니, 일요일 밤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성질이 나더라고요. 잊고 있었던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죠. 공부 스트레스, 역시 보통이 아니더군요. 그래도 ‘부모 된 행복’으로 참을 수밖에. 그렇다고 ‘내논대’를 다니길 바라는 것도 아닌데….

제겐 위안이 하나 있습니다. 꼭,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부모는 떨어져 지내는 관계로 그렇게들 “보고 싶다!” 하더라고요. 바로 이것이지요. 옆에서 항상 볼 수 있는 것, 이상 뭘 바라겠어요. 시험 준비 끝나고 나니 딸이 그러더군요.

“다음에도 아빠랑 같이 공부할거야!”

그래? 하고 말았지만, 속으로 ‘싫거덩’ 했지요. ‘자식 가르칠 부모 없다’던 말이 만고의 진리(?)쯤 되는 것 같아서. 이쯤 되니 결혼 초년병과 총각시절 때가 생각나더군요. “아이가 시험 보는데 왜 부모가 시험 보는 것 같죠? 그러지 마세요, 제발!” 그랬었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 못한 거죠. 그래서 지금 아버지들은 학원에서 밤늦게 귀가하는 자식을 안스러운 표정으로 묵묵히 기다리거나, 혹은 만사 제치고 차를 몰아 데리러 가나 봅니다. 포기할 수 없는 게 자식인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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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어야 하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자식의 자식에겐 이런 세상 전해주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건강이 최고인 줄 알면서도 공부에 매달리게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 발명가 중 하나인 죄로 우리 아버지들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고생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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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씨가 말라 살기도 힘들 텐데…”

그게 오히려 인면수심(人面獸心)이겠지요!
[아버지의 자화상 22] 덕(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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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부가 가져 온 마음의 선물입니다.

일요일 저녁, 부모님을 뵈러 갔었습니다. 현관에 못 보던 신발이 놓여 있습니다. ‘손님이 오셨나?’ 싶어 거실을 보았습니다. 중년의 부부가 빙그레 웃음 지으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래 만에 뵙네요. 잘 지내시죠? 요즘 기름 값도 비싼데 어장은 잘 되세요?”
“그럭저럭 해요. 먹고 살려면 열심히 (고기) 잡아야지 어쩌겠어요.”

인사 나누는데 아버지께서 “아이, 요거 좀 봐라. 이리 큰 고기를 준다고 여기까지 왔구나. 고맙게!” 하시며 커다란 생선을 들고 자랑 하십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왜냐고요? 이런 부모님의 자랑이 꼭 ‘좀 본받아라!’ 하는 것 같아서요. 당신들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자식 된 도리를 제대로 못하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분이 “고마운 부모님 찾아왔다”며 정겹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바다에서 잡은 돔, 꽃게, 쭈꾸미, 소라, 조기, 오징어 등을 죄다 들고 오셨으니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웠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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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부입니다. 사진이 그렇죠?

그게 오히려 인면수심(人面獸心)이겠지요!

부부가 새벽부터 연근해에 나가 여덟 시간 여를 그물과 씨름하며 잡은 고기를 기꺼이 나누는 그들. 자식은 겨우 생색내며 쥐꼬리만한 보탬을 간간이 드리는 실정인데, 그들의 나눔에서 뒤통수를 맞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인면수심(人面獸心)이겠지요!

“기름 값이 올라 비용도 만만찮고, 고기 씨가 말라 잡기도, 살기도 힘들 텐데…. 그거 팔아 아이들에게 보태시지 가져오셨어요. 그래? 고맙습니다.”
“부모님이 저희들에게 얼마나 고맙게 대해 주셨는데요. 이건 ‘새 발의 피’지요.”

키워주신 은덕을 모르는 자식에게 ‘쥐구멍이라도 찾아라’는 일침(一針)입니다. 옳은 말이지요. ‘새 발의 피’는 고사하고 피 자체도 나지 않았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까 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렇게 좋은 아들 딸이 또 있으니 참 좋으시겠어요. 자식이 못하는 걸 이분들이 다 하시네요.”
“맞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지요. 연고도 없이 흘러 들어온 우리를 맛있는 거 갖다 주시고, 이리저리 부족한 게 없나 살펴주시고, 따뜻하게 맞아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그 은혜를 어찌 다 갚겠어요?”

아버지께서는 옆에서 ‘허허’ 하고 계십니다. 그랬다는 말인지, 아니란 말인지 도통 모르게 말입니다. 못난 자식, 은근히 용심이 납니다.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봅니다.

막내인 제가 대학 다닐 때, 부모님은 홀로 사시는 동네 할아버지 댁을 살피셨지요. 밥, 된장국에서부터 과일, 고기까지 드십사 남 몰래 드나드셨지요. 똥 수발, 이불빨래까지 하시면서. 저는 이런 모습, 지켜보기만 했지 아직까지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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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절대자가 천사를 보내 ‘저 자식 놈, 좀 깨우쳐라’ 했나?

“왜, 가시려고요? 같이 드시고 가시지요. 가져오신 것 같이 먹으면 얼마나 맛있겠어요? 이야기도 좀 더 나누시고요.”
“아닙니다. 지난 4월에 친정 어머니가 딸래 집에 오셔서 돌아가셨는데 그 뒷수발을 다 해주셨어요. 이렇게 얼굴 뵙는 것으로도 배가 부릅니다. 일이 있어 그만 일어나 봐야겠어요.”

괜히 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얼굴 뵙는 것으로도 배가 부르다니요. 아무래도 절대자가 천사를 보내 ‘저 자식 놈, 좀 깨우쳐라’ 했나 봅니다. 부모님도 낯이 간질거리셨는지 한 마디 보태십니다.

“아이, 야들 엄마가 어찌 돌아가셨는지 아냐? 혼자 살던 엄마가 돌아가실 걸 알았는지 집 정리 다하고, 딸래 집에 온 거라. 있는 돈 십 원짜리 하나까지 옆에 다 나눠주고, 그날 새벽예배 드린 후 눈을 감으셨지. 너무 현명하게 돌아가셨어. 가시는 날까지 덕을 베풀고 가셨지.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할 텐데….”

그들은 한사코 저녁을 마다하고 기어이 가셨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지나 온 세월을 돌이키게 했습니다. 덕을 베푼다는 건 고사하고, 상처는 주지 않았는지? 남의 아픔을 함께 해 준 적은 있었는지? 행여 그나마 작은 쪽박마저 깨트리진 않았는지?

어느 것 하나 진정으로 같이 한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마, 부모님의 실천궁행(實踐躬行)을 잘못 배운 것 같습니다. 아등바등 살았는데 이제라도 정신 차려야겠습니다. 그런다고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그래도 두고두고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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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초등생을 홀로 두고 오는 길입니다!”

지난해 유학생 초등생 절반 넘어, 조기유학이 대세?
[아버지의 자화상 21] 조기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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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박세리의 성공 이후 폭넓은 분야에서 젊은이들의 해외진출 러시를 이끌었습니다. 부모들의 자녀교육 범위도 국내를 넘어 외국으로까지 넓혀진지 오래입니다.

그만큼 부모에게 있어 자녀교육은 지대한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예전 교육이 인성 중심이었다면 요즘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중심에 영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여, 부모들은 손쉬운 영어 습득 방편으로 유학이나 해외연수를 택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의 해외유학생은 이민자 등을 포함해 2005년 7,090명, 2006년 1만 890명에서 지난해 1만 5,237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초등학생 해외유학은 2005년 2,453명, 2006년 4,941명, 2007년 8,298명으로 매년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중학생은 2005년 2,520명에서 지난해 4,379명으로 증가했습니다. 또 고등학생은 2005년 2,117명에서 2006년 3,466명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2,560명으로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유학생 1만 5,237명 중 초등학생의 유학은 8,298명으로 절반을 넘었다고 하니 점차 유학 방향은 조기 유학 쪽으로 확실히 바뀐 것 같습니다.

“왜 우세요?”…“초등 4학년을 홀로 두고 오는 길”

한 지인은 올 초 초등학교 4학년 자녀 유학을 위해 호주에 갔다가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합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이가 몹시 눈물을 훌쩍이더랍니다. 큰 일 있나 싶어 조용히 물었답니다.

“왜, 우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중학생 아이를 공부 땜에 홀로 두고 왔어요. 그 어린 것이 아무도 없는 타국에서 혼자 잘 견디려는지….”
“그러지 마세요. 저는 외국에 초등 4학년을 홀로 두고 오는 길입니다!”

이 말에 그는 자세를 바로 하더니 눈물을 멈추더랍니다. 외국에 어린 자녀를 홀로 두고 온 부모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동변상련이었겠죠. 그래서 기러기 아빠들이 늘어만 가는 거겠죠.

누군들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학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겠습니까? 문제는 형편상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겠죠. 그런 아버지 심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자격지심 또는 열등감을 자학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밖에. 이 때문에 아버지의 자녀 교육에 대한 가치관 정립이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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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마음껏 주지 못해 그게 제일 미안하지

중학생 딸을 호주로 유학 보낸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빨리 외국유학 보낸 이유라도 있나요?”
“아이가 학교에 통 적응을 못해. 차라리 외국에서 한 번 배워봐라 싶어 이모에게 보냈지.”

“잘 적응했나요?”
“너무 좋다며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거기서 다니겠다더군. 그래라 했지. 지금은 아이가 자기를 찾은 것 같아 백 번 잘했구나 생각해.”
 
“아쉬움은 없던 가요?”
“너무 보고 싶대. 한 달음에 달려갈 수도 없고…. 아이 사진 보며 지냈지. 아무리 이모가 있다 손치더라도 부모 정, 가족의 정이 그리울 텐데도 아이가 잘 견뎠지. 부모 정이 필요할 때 마음껏 주지 못해 그게 제일 미안하지. 한편으론 무척 대견해.”

유학생활을 꿋꿋하게 견딤에 대해 대견해 하면서도 아쉬움의 정점에는 가족의 정, 부모의 정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아이들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옳은가?’, ‘기러기 아빠는 어떤가?’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유년기(幼年期)가 되지 않기 위한 고민 필요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아버지 각자 몫입니다. 분명한 것은 부모가 해야 할 것과 아이가 해야 할 것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거죠.

몇 년 전, 캐나다 공항에서 가이드가 인솔하는 많은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었습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어학연수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 했습니다. 시끄럽게 소리 내며 줄을 지어 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었습니다.

여름방학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떠날 것입니다. 또 여름학기를 이용한 유학 대열도 예상됩니다.

이를 대비하여 ‘조기유학이 올바른 것일까요?’ 묻기 전에 ‘올바른 조기유학은 어떤 것일까요?’ 묻는 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가치관은 여기에서 작용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가치관이 분명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점은 나갔다 들어 온 후에 나타나겠지요?

성공적인 조기유학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진지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아이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병행돼야 하겠지요. 잃어버린 유년 시절이 되지 않기 위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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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식 키우면 잘 키우겠는데….”
[아버지의 자화상 4] 행복

“장담 못할 세 가지는 자식 키우는 부모, 배(船) 사업가, 소(牛) 키우는 농장주다. 왜냐하면 자식은 어찌 될지 몰라 말 못하고, 배 사업가는 파도에 언제 뒤집어 질지, 어디로 떠밀려 갈 줄 모른다. 농장주는 풀어놓은 소가 언제 뉘 집 작물을 먹어 치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양기원 씨의 말입니다. 배와 소에 대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에 대한 소회는 대체로 공감하고 끄덕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자식에 대해 장담하면 뒤에 후회가 따른다.”며 “자식 자랑을 삼가라!”고 충고하기도 하대요. 근데 정말 그런 것 같더군요.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는 특별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또 그 특별함을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학업 성적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세상이다 보니 ‘내 아이 어디 갔네’하고 자랑할 수 있다면 오죽이야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이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자식들이 다 공부 잘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그러다 기대치가 낮아지고 “이놈은 이것 잘하고, 저놈은 저것 잘해야 사회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는 체념 아닌 체념으로 위안 삼기도 합니다. 또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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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재능을 지켜보는 게 최선?

주변에 초등학교 1학년인 ‘송정우’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녀석은 세 살부터 숫자와 영어를 가지고 놀더군요. 주위 사람들의 자동차 번호, 전화번호, 아파트 호수, 생일까지 줄줄 외웠지요. 그리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숫자 문제 내줘요.”하고 귀찮게 하던 아이였죠.

이를 보고 ‘학문을 하기 위해 타고난 아이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타고 난 아이가 아닌 이상 노력이 필요한 데 그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쉽지 않더군요. 자라는 아이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타고난 아이더라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저도 지금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장점이 있을까? 어떤 재능이 있을까? 이럴 땐 이곳에, 저럴 땐 저곳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출중한 재능을 꼽기가 쉽지 않더군요. 좀 더 지켜보자는 쪽입니다. 그러다 세월이 훌쩍 지나갈 수도 있겠죠.

간혹 부모들의 이런 때늦은 후회, 아쉬운 넋두리를 듣곤 합니다.

“너무 바빠, 자신만 알다보니 세월이 가버렸다. 다시 자식 키우면 잘 키우겠는데….”

시행착오를 겪고 삶의 이치를 알다 보니 깨닫지 못한 것을 보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으론 이게 세상이지 싶기도 합니다. 다시 자식을 키운다면 또 다르겠지요. 그러나 세월은, 세상은, 삶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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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마음먹지 말고, 마음먹은 대로 살아라!

언젠가 책을 통해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내용은 대충 이러했습니다.

“결혼해서 살기 위해 마음먹지 말고, 마음먹은 대로 살아라!”

이 말 속에는 구구절절한 아버지의 마음이 스며 있다는 걸 알 것입니다. “키울 때 정 많이 주고 많이 사랑할 걸….”하는 때늦은 후회가 스며 있다는 것도 눈치 챘을 것입니다. 딸 키우면서 대화도 제대로 못하고, 지켜만 봤는데 어느 새 자라 시집을 간다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결혼한 딸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또 말없이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야겠지요. ‘저것이 잘 살까?’, 혹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안고 말입니다. 때늦은 후회 전에 아이에게 먼저 다정스레 다가서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기 좋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기 나름”이란 광고 카피가 있었겠습니까? 행복은 완전함에서보다 뭔가 부족한 것에서 더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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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할까요? 아버지의 마음은 같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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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역할이 ‘가치’여야 할 이유?
[아버지의 자화상 18] 해외연수 & 유학

“아버지? 존경하고 좋아했지. 우리 클 땐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했잖아.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그게 아니여. 가족끼리 어디 가자면 컸다고 ‘약속 있어요’ 하고 빠지기 일쑤지. 이럴 땐 그래라 해야지 어쩌겠어. 안 그래?”

자녀들이 크다보니 마음먹고 가족끼리 여행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입니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들은 이해할 것입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세상 많이 변했습니다. “전에는 이랬는데….” 해도 소용없습니다. 시대 흐름이겠지요. 아무리 ‘구시대 아버지가 아니다’ 해봐야 시대가 변했는데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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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해외연수와 유학을 고려 안할 수 없고…”

박상열. 3남매를 둔 그도 어렵게 시간을 쪼개 아이들과 도서관도 가고, 나들이와 여행 및 산행도 곧잘 합니다. 왜? 아버지로서 해야 하니까. 그의 하소연입니다.

“예전에는 애를 낳기만 하면 절로 큰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열심히 돈 벌어야지, 같이 놀아야지, 신경 써야지, 할 일이 너무 많다. 예전 같으면 형제끼리 저리 부대끼며 살았는데. 지금은 아이들 해외연수와 유학을 고려 안할 수도 없고, 힘들다.”

맞는 말입니다. 형제가 많다보니 문제 해결도 형제끼리 알아서 처리했는데 지금은 아이를 적게 낳는 형편이니 부모의 간섭이 늘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주위에서 앞 다퉈 해외연수에 유학까지 보내니 이도 무심코 넘길 수만 없는 일이지요.

박상열 씨도 아이가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큰 딸을 한 달 가량 유럽 여행을 보낸 적이 있다 합니다. 그런 후, 넓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딸을 보고 흐뭇했다 합니다. 레이첼 카슨의 “아는 것은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배움을 실천한 것이겠지요.

‘맹모삼천지교’에 대한 해석의 변화

이쯤 되면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맹자는 어려서 살던 묘지 근처에서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고 다녔다. 그래 시장 근처로 이사 했더니 물건 파는 흉내를 내고 다녔다. 그래 글방(학교)이 있는 곳으로 옮겼더니 공부하는 시늉을 내더라.”

이 맹모삼천도 요즘에는 그 해석이 달라졌습니다. 과외와 학군 열풍에 휩싸인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합니다.

“국내에서 학원과 과외로 아이 찐 빼지 말고 일찌감치 공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외국에서 공부시키는 것이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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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버지와 자녀 관계가 그립네요.

또 다른 사람은 장의사ㆍ시장ㆍ학교로 이사를 다닌 이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합니다. 그 해석도 한 번 들어보시지요.

행동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

“맹자에게 제일 먼저 인생의 죽음을 가르쳤다. 그 다음 시장에서 삶의 현장을 체험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삶과 죽음을 체험한 사람만이 참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귀가 솔깃할 만치 재미있는 해석입니다. 아마, 무릇 교육은 아이의 그릇이 되는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하여, 저는 맹모삼천을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삼사이행(三思而行)’ - 행동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

물론 저도 자녀 교육에 있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습니다. 해외연수나 유학이 무분별하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자식의 그릇과 교육에 대한 부모의 생각’ 이런 의미라면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겠지요.

결국 부모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자녀 교육을 하느냐에 달린 거겠죠. 아버지의 역할이 바로 ‘가치’여야 할 이유,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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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웁니다!”, 울기 전에…
[아버지의 자화상 2] 부모님 모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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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묵묵히 자식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말에도 직장에 나가야 하는 내게 아이들은 ‘아빠는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고, 또 일 나가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다고 철없는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단다’ 하고 설명할 수도 없고…. 이럴 때 아버지가 내 자리를 대신했다.”

양기원 씨는 일로 바쁜 자신의 빈자리를 그의 아버지가 대신했다 합니다. 묵묵히 자기를 지켜주셨던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또 묵묵히 손자를 지켜주셨다 합니다.

양 씨는 줄곧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아빠가 뭐라 나무라기 전에 할아버지께서 먼저 아이들에게 ‘예의’를 가르치시니 좋았다.”며 “덕분에 자신도 ‘욱’하는 성질이 고쳐졌다” 합니다.

이렇듯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교육일 것입니다. 지혜보다 더 나은 교육은 없을 것입니다. 삶의 지혜는 쉽게 얻지 못하니까요. ‘지식보다 지혜’가 우선이란 걸 알면서도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는 핑계로 배울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우매한 일이겠지요.

“다시 키운다면 정말 잘 키우겠는데….”

언젠가 들었던 아버지의 넋두리입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너희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도 모르게 세월이 훌쩍 가버렸구나. 그 시절이 돌아오지 않겠지만 다시 너희들을 키운다면 정말 잘 키우겠는데…. 너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제가 당신의 뜻대로 자라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아님, 알콩달콩 사는 정을 느끼지 못해 아쉽다는 뜻일까요? “너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신의 넋두리가 못내 가슴에 걸립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모시기란, 아니 부모님과 함께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어려움에 대해 부모님과 함께 살아본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맞습니다. 막내이기 이전에 자식인 저도 아직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는데 그 속을 어찌 알겠습니까? 부자지간이 같이 앉아 있어도 구박(?)이 심한데 그 속을 어찌 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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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 간은 구도자의 길일까요?

“짐이 되고 싶지 않구나”…짐이라니요.

핑계 하나 대야겠습니다. 부모님과 저의 따로따로 동거의 명분은 이렇습니다.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벌써 짐이 되고 싶지 않구나. 우리 두 부부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살다가 혼자되면 그때 같이 살란다.”

짐이라니요…. 어찌 보면 부모 자식 간의 현명 합의요, 결정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명하지 못한 처사요, 결정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상생인 것 같으나, 상생이 아니라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제일 먼저 느낄 때는 ‘돌아가신 후’라 하더군요. 과연 그럴까요? 이도 살아봐야 알겠지요. 이 대목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자기가 경험해서 느낄 때는 이미 늦다. 경험하기 전에 한 발짝 앞서 느껴야 한다.”

“불효자는 웁니다!”, 울기 전에…

이제야 아버지의 가르침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설까, 아버지가 참으로 그립습니다. 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다하지 못한 효도를 후회하는 마음과 비슷할 것입니다. 이런 노래가 있었죠?

“불효자는 웁니다!”

자식 된 도리? 세월 지나면 알겠지요.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의해 큰 아이들은 뭔가 다른 것이. 때론 불편했더라도, 그것은 훗날 때론 의지가 되고, 때론 큰 힘이 될 것임을….

잠시라도 부모를 모시지 않은 자식은 늦은 후회로 가슴에 응어리진다 하니 응어리를 만들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음만 가지고는 안되겠지요? 차근차근, 하나하나 준비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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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그랬듯 자식도 어깨에 짊어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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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 살기가 제일 어렵다”
[아버지의 자화상]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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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으면 옆에서 잘 거지?”
“무서워서 죽은 사람과 어찌 자요?”
“무섭긴 뭐가 무서워? 아빠는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팔 다리 주무르며 옆에서 잤는데….”
“아빠! 그래도 저는 무서워서 못자요.”

어느 날, 지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자는 게 무섭다며 꺼려했다 합니다. 아직 철이 없어 그랬겠지요. ‘주검 옆에 자지 않는다’는 말에 서운했을 지라도 가슴 아프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지고지순한 ‘자아희생’의 사랑이라 하니까요.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라 합니다. 자녀가 몇이든 부모는 사랑을 나누지 않고, 모든 아이에게 모든 사랑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한 만큼 자식에게 받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투자겠지요.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인 이유겠지요.

부모 자식 간 인연은 죽음 전에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오래 사실 걸로 착각하고 뒤늦게 “우리 아버지는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있을 때 잘해”라는 소리가 어째 만고의 진리처럼 느껴집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잘하는 게 최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당황스럽고, 당혹스럽다 합니다. 누구나 죽는 것을 알지만 유독 아버지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당신을 어찌 쉬이 보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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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채. 그도 “아버지를 보내드리기가 제일 어려웠다” 합니다. 그는 주검으로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고 이런 마음이 들었다 합니다.

“세상에서 아버지로 살기가 제일 어렵다. 원망과 불만 등을 극복하지 못한 죄인 같은 느낌. 더 많은 아버지의 사랑과 정을 만들지 못했던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 내가 못했구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무덤 안고 통곡하네

그래서 상여소리는 구성지고 구슬픈가 봅니다.

이길 가면 언제 오나/ 다시 못 올 가시밭길/ 어이 어이 어어
북망산천 왠말인가 / 황천길은 머나 먼 길/ 어이 어이 어어
한번 가신 우리 부모/ 다시 한 번 못 보신다/ 어이 어이 어어
살아생전 못 모신 죄/ 어디 가서 사죄할까/ 어이 어이 어어
북망산천 찾아가서/ 무덤안고 통곡하니/ 어이 어이 어어
너 왔구나 소리 없다/ 누구에게 한탄하랴/ 어이 어이 어어
초로 같은 우리 인생/ 백발 되면 황천길에/ 어이 어이 어어
황천길이 왠말인가/ 산천초목 무심하다/ 어이 어이 어어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저승길로 나는 가네/ 어이 어이 어어

김동채 씨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6개월간 아버지의 무덤을 시도 때도 없이 들렸지. 아쉬움에 쉽게 보내드릴 수가 없어서. 6개월쯤 지나니 아버지를 고이 보낼 수 있었지. 역시 세월보다 더한 약은 없는가 보다. 그리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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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채 씨.



아버지가 계실 때는 무덤덤하다가도 없으면 아쉬운 게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그래서 묵묵히 지켜주는 버팀목이 아버지겠지요. 그가 한 마디 덧붙입니다.

“세상사는 법은 학교나 직장에서 배우지만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배우질 못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사회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버지가 가정에서 귀감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의 반면 교사인 아버지로서 항상 몸가짐을 조심할 밖에….”

그렇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준비는 소홀히 합니다. 시스템 자체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살이가 각박해 바쁘게 살아야겠지만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늘이 주신, 부모가 주신 목숨 다하기 전에 아버지로서의 자신과 자식으로의 자신을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있을 때 잘해야”겠지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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