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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 보기 위해 15년 만에 찾은 용월사, 과연?

잠의 훼방꾼과 새벽예불, 그리고 모두 내려놓기
‘나를 잊는 10분 새벽 명상’과 옷을 훌훌 벗고
“아침 공양은 살짝 익힌 토마토와 사과 한 조각”
[절집 순례] 여수 돌산 용월사, ‘새벽예불’과 ‘해돋이’












“절에서 자고 싶어요.”



아내, 절집에서의 하룻밤을 요구합니다. 여수 돌산 용월사를 떠올렸습니다. 그동안 날씨 때문에 해돋이를 번번이 놓친 아쉬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새벽예불과 해돋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였습니다. 미리 원일스님께 허락을 구했습니다. 언제든 환영이라네요. 지난 5일 밤, 용월사로 향했습니다.









‘해돋이’ 보기 위해 15년 만에 찾은 용월사, 과연?




“해가 안 뜰 것 같은데.”



스님 말씀대로 날씨는 해돋이를 허용하지 않을 기세였습니다. 또 해돋이를 놓칠 판이었습니다. 용월사 해돋이가 이렇게 보기 힘들 줄이야. 집 안방에 누워 지겨울 정도로 보는 아침 해이건만. 그런데 유독 용월사 해돋이와 궁합이 영 시원찮습니다.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을까, 싶습니다.



일출 명소 여수 용월사의 해돋이를 본 게 15년 전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0년 1월1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신년 초, 당시 대다수가 그랬던 것처럼 소원을 빌어 보겠다고, 어린 아이들을 안고 수많은 사람 틈에 합류해 해돋이 구경에 나섰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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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훼방꾼과 새벽예불, 그리고 모두 내려놓기



“쏴~아! 쏴~~아! 쏴~~~아!”



절벽 위에 세워진 용월사. 새벽예불에 참여하려면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머리를 눕혔습니다. 끊임없이 파도소리가 들려옵니다. 바닷물 수위가 높은 8물 사리라 지척이어선지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절집에 누워 듣는 파도소리. 평소 같으면 ‘운치’였을 겁니다. 지금은 깊은 번뇌를 불러오는 ‘잠의 훼방꾼’일 뿐.



잠결에 세면장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납니다. 부지런한 나그네가 벌써 일어난 걸까. 목탁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합니다. 새벽 3시 50분. 서둘러 일어납니다. 총총 걸음으로 새벽어둠을 뚫고 무량광전으로 향합니다. 발에 밟힌 돌 소리가 염주 굴리는 소리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 불공에 한창입니다. 수많은 날, 홀로 석가모니 세존을 찾았을 스님 뒤에 자리 잡았습니다. 욕심과 번뇌 대신 무욕과 해탈을 구하려는 심산입니다. 절을 합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춥니다.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습니다. 욕망 덩어리인 ‘나’가 사라집니다. 바라는 마음이 크고 깊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위안입니다. 삼매경!








‘나를 잊는 10분 새벽 명상’과 옷을 훌훌 벗고



“풍경소리와 함께 명상하세요.

바람이 일으키는 풍경소리를 인식하고, 고요를 인식하며, 명상하세요!”



불공을 마친 스님께서 ‘나를 잊는 10분 새벽 명상’을 권합니다. 고요 속에 들어간 스님을 보며, 명상에 돌입합니다. 눈을 감습니다. 풍경소리가 바람에 일렁입니다. 눈을 뜹니다. 풍경소리가 잦아듭니다. 다시 눈을 감습니다. 순식간에 고요 속으로 들어갑니다. 깨어있음에 마냥 행복합니다. ‘나를 찾는 10분 새벽 명상’,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여명과 어둠 사이에서 남해 바다를 굽어보고 계십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이 불빛을 발사하며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해돋이는 접었습니다. 흐릿한 날씨에 해돋이는 욕심입니다. 대신 밤새 철썩였던 파도를 확인합니다. 무수히 몸을 던져 기꺼이 부셔졌던 파도 덕분에 잠을 푹 잤습니다. 생각의 고리들을 끊을 수 있었기에.



“목욕 갈까요?”



스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목욕탕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나그네에게서 살짝 술기운이 돕니다. 맑음을 얻으려는 애틋한 몸짓으로 읽힙니다. 훌훌 옷을 벗습니다. ‘나’를 벗으니 ‘진정한 나’가 됩니다. 탕 속에 들어갑니다.



“아, 시원타!”








“아침 공양은 살짝 익힌 토마토와 사과 한 조각”



“우리 용월사 해돋이는 겨울이 더 멋있어요.

여름에는 해가 남해도에서 뜨지요. 겨울에는 해가 바다에서 뜨고요.

차 한 잔 하시게 찻방으로 오세요.”



스님, 차를 권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아침 공양은 살짝 익힌 토마토와 사과 한 조각”이라며 냉장고에서 토마토와 사과를 꺼냅니다. 아리송합니다. 아침 공양을 같이 하자는 건지, 이렇게 드신다는 소개인지. 염치 불구, 아내와 함께 찻방으로 갑니다. 스님, 사과를 깎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햇차 드셔 보셨어요?”
“아직입니다.”


“선암사에서 만든 우전 마셔 보세요.”
“감사합니다, 스님!”



녹차 향이 은은합니다. 목 넘김이 부드럽습니다. 살짝 익힌 토마토 한 조각을 입에 넣습니다. 씹다 삼킵니다. 사과를 들어 베어 뭅니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아주 경쾌합니다. 스님께서 나눠주신 아침 공양은 꿀맛이었습니다.



“깨달음은 한 순간에 옵니다.

깨달으면 팔만대장경 해석이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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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아내가 남편과 동반 여행 꿈꾼 ‘운문사’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
어둠 속에 움직이는 비구니들 발걸음으로 ‘위안’
[경북 청도 선문답 여행] 학인스님들의 ‘운문사’

 

 

 

 

운문사 가는 길 

새벽예불 후 불이문으로 향하는 비구니 스님들.

운문사 입구 가는 길...

 

 

 

“처녀 때 청도에 세 번 왔어요. 두 번은 혼자 왔고, 한 번은 친구랑 같이 왔지요.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운문사 새벽예불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힐링’이 됐어요. 그땐 꿈도 많았는데….”

 

 

20여 년 전, 경북 청도 운문사 여행에 대한 아내의 회고담입니다. 여자 혼자 6~7시간 버스 타고 여행에 나선 자체가 놀랍습니다. 겁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집니다. ‘뻔’한 인생살이 남자의 옹졸한 변명 한 번 하지요. ‘꿈’ 좋지요. 그러나 삶에 대한 미련이 아직 있는 걸 보니, 삶이 별 거 아니라는 걸 여적 모르나 봅니다. 이걸 알면 벌써 도인 됐겠죠.

 

 

가을이 물든 운문사 

처진 소나무 

처진 소나무

 

 

 

“옛날엔 여수에서 청도로 바로 오는 버스가 없어, 경주를 거쳐 왔어요. 다시 오기가 힘들어 한번 오면 4박 5일씩 민박하며 머물렀죠. 당시에도 300여명이 함께 부르는 새벽 예불 소리는 듣는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어요. 이번에도 새벽예불은 꼭 하게요.”

 

 

아내는 추억담을 말하며 신이 났습니다. 지난 10월31일~11월1일 청도 운문사 가을여행엔 부산의 공덕진·김남숙 부부, 최명락 교수(전남대 생명산업공학부), 저희 부부까지 다섯이 나섰습니다. 당초 합류가 예정됐던 창원의 박천제·전영숙 부부는 큰 딸의 출산과 맞물려 무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하여튼 이번 여행의 백미는 운문사 새벽예불이었으니...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

 

 

 

“똑·똑·똑·똑·똑·똑·똑·똑·똑….”

 

 

도량석. 목탁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가로질러, 가람 사이를 돌아 나오더니, 공중으로 휘몰아치더이다. 이어 절집 주변을 밝히는 불이 하나 둘 켜지더이다. 운문사의 첫 새벽을 밝히는 목탁소리가 마치 소 울음소리처럼 들리더이다. 청아한 목탁소리. 누가 도량석을 쳤을까? 도량석에 이어 법고와 목어, 범종 등을 차례로 치더이다. 이를 보며 제주도 우도 금강사 덕해 스님 말씀을 떠올렸더이다.

 

 

“도량석은 스님을 깨우는 자명종입니다. 도량석을 담당한 학인스님은 다른 학인스님보다 30분 먼저 깨어, 절 주위를 돌며 스님들이 일어나길 재촉하지요. 때문에 스님들은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려고 도량석 당번을 많이 꺼리지요. 번을 써는 스님 목탁소리에 따라 큰스님 기분이 달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하기 위해 나선 수행 길에도 걸림돌이 있는 걸 보니, ‘잠’은 공부하는 모든 이들이 넘어야 할 태산이나 보더이다. 2년 전, 우도 금강사에 잠시 머물 때, 새벽을 가르는 목탁소리에 깨어 허겁지겁 도량석 중인 스님의 뒤를 따르던 기억이 새롭더이다. 이런 날, 스님께선 아침 공양으로 마음 속 특별식을 내주셨더이다.

 

 

부지런한 스님들은 벌써 불이문을 넘어 대웅보전으로 향하더이다. 걸음걸음이 어찌나 사뿐이던지 발자국마저 남지 않은 것 같더이다. 뿐만 아니라 법고와 범종 소리가 공중을 가로질러 천지자연을 일깨우더이다. 학인스님들의 행렬이 바빠지더이다. 비로소 운문사 절집으로 오는 ‘솔바람 길’에 붙어 있던 문구를 떠올렸더이다.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 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입니다.” - 법구경 -

 

 

 

 

 

 

 

 

어둠 속에 움직이는 비구니들 발걸음으로 ‘위안’

 

 

건망증 때문일까. 운문사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걸 깜빡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에서 “운문사의 아름다운 다섯” 중 으뜸으로 꼽았던 “아직은 선량하고 앳되면서도 뭔가 해볼 의욕으로 빛나는” 학인스님들의 눈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 더 아쉬웠습니다. 대신 어둠 속에 움직이는 비구니들의 발걸음을 본 것으로 위안 삼았습니다.

 

 

학인스님을 따라 대웅보전에 들었습니다. 스님들은 층층이 앉았습니다. 스님 한분이 새벽예불에 참여한 중생들을 안내했습니다. 새벽예불이 시작되었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멀리서만 들었던 은은하고 낭랑한 비구니들의 합창소리를 법당 안 바로 옆에서 직접 들을 줄이야! 아마, 인연의 한 자락이 운문사와 맞닿았나 봅니다.

 

 

학인스님들이 거처하는 도량과 은행나무. 

불이문... 

불이문 안쪽의 모습은 정중동이었습니다.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 이미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공허한 공상에 젖지 말며, 오직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하라 -”

 

 

청도 여행 중, 최명락 교수가 차 안에서 정성들여 은은하게 암송해준 금강경 일부입니다. 그는 금강경 암송 후, 위 구절이 금강경의 핵심 중 하나라며 다시 또 자세히 풀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현행원품까지 알려주시데요. 이 때문일까. 법당에 올라 부처님 앞에서 처음으로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을 되새김질했습니다. 백팔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기온 0℃라는 일기예보 덕에 껴입었던 옷이 부담이었습니다.

 

 

새벽예불이 끝났습니다. 천천히 한 사람 한 사람 법당을 빠져나갔습니다. 댓돌에 놓여 있던 수많은 신발들이 하나 둘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자기 것인지 어떻게 알까? 아내 말로는 “자기만 아는 다양한 표식으로 구분한다!”더군요. 확인 못한 게 아쉽습니다. 암튼, 일렬로 줄지어 가는 학인스님들의 행렬에서 묘한 여운을 느꼈습니다.

 

 

 

도량석 후 불이문을 나서는 스님... 

 

새벽예불을 위해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스님...

 

 

 

 

“절을 하니까 다 내려놓게 되데요. 참 신기해요.”

 

 

“드디어 나도 소원을 하나 갖게 되었다. 늙어서 정년퇴직하고 나면 청도 운문사 앞 감나무 집을 사서 여관이나 하면서 사는 것이다.”(262쪽)

 

 

이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에서 “신경림 선생과 술자리에서 전해들은 소설가 이문구 씨의 평생소원을 전해 듣고 갖게 됐다”던 소원입니다. 유 교수가 감나무 집을 샀다는 소릴 아직 전해 듣지 못한 바, 그의 꿈은 아직 유효하겠죠. 그만큼 운문사가 탐이 났던 게지요. 욕심이 생기니 감나무 집까지 넘보게 되고...

 

 

 

도량석 후  법고, 목어, 범종을 칩니다.

무릇 수행이란... 

예불 후 불이문으로 향하는 스님들 행렬에서 묘한 여운을 느낍니다.

 

 

 

 

결혼 전, 아내 소원도 유홍준 교수 꿈과 엇비슷했습니다. 아니, 아내 소원이 유 교수보다 더 소박했습니다. 집을 사겠다는 유 교수의 소유욕(?)과 차원이 다르지요. 아내 소망은 단지 “남편과 함께 청도 운문사를 여행하는 것”뿐이었으니. 무욕(無慾)을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인이지 싶습니다. 이는 물론 아내가 유 교수의 가르침을 가슴에 간직했기에 받은 선물이리라!

 

 

“내 생애 두 번째로 법당에 올라 부처님께 절을 했어요. 첫 번째는 창원 성불사 법당이고, 두 번째가 여기 운문사에요. 내가 이렇게 많이 절을 하다니 놀라워요. 절을 하니까 다 내려놓게 되네요. 참 신기해요.”

 

 

아내 말에 공감입니다. ‘나를 내려놓게 만드는 힘’은 법당을 나가 일렬로 줄지어 되돌아가던 학인스님을 보면서 느꼈던 ‘묘한 여운’과 비슷했습니다. 아마도 이 ‘힘’ 때문에 유홍준 교수는 “운문사 앞 감나무 집 여관”을 소원했지 싶습니다. 또한 아내도 이 ‘여운’ 덕분에 “결혼 후 남편과 운문사 여행”을 꿈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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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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