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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열 개인전 - 빛의 속살을 그리다
작가 강종열을 구해낸 한국 미술판 ‘쉰들러 리스트’
대작 ‘동백’ 구상과 스케치 및 완성까지 2년 걸려
“동백 숲은 생명이 산란하는 느낌이어서 참 좋다!”

강종열 개인전 <빛의 속살을 그리다>에 감탄하다

 

 

 

 

 

 

강종열 그에게 동백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강종열 화백.

 

동백은?

 

 

 

 

 

 

 

 

잊고 있었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잊었던 기억을 희미하게나마 되살린 건, 아내였습니다.

 

 

 

 

- 당신 오늘 뭐해?
“내가 말 안했나? 오늘 딸하고 전시회 데이트 있는데.”

 

 

- 무슨 전시회인데?
“우연히 본 동백 그림이 참 좋더라고. 딸이랑 그림 전시회 가기로 했어.”

 

 

- 혹시 강종열 화백 전시회야?
“어. 오늘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라 꼭 가야 돼.”

 

 

- 지인이 가족과 같이 강 화백 전시회 꼭 보라더니 기막힌 우연인데?
“잘됐네. 우리 같이 가게.”

 

 

 

이렇게 마치 뭐에 홀린 듯 여수시 웅천 예울마루로 향했습니다. GS칼텍스 예울마루 앞 풍경은 한산하고 여유로웠습니다. 장도 등 섬들이 보이고, 섬과 육지를 오가는 통로인 장도 방파제가 사라졌습니다. 물이 들어 방파제를 삼켰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 자체였습니다.

 

 

 

 

 

예울마루 앞 풍경이 그림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전시회입니다.

 

 

예울마루

 

 

 

 

 

“진짜 열정을 바친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전시회에 가면서 여수막걸리 임용택 대표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전시회에 다녀온 임 대표가 감탄에 감탄을 쏟아내며 볼 것을 권했기 때문입니다.

 

 

 

“강종열 그림 전시회에 한번 가 봐. 종열이가 그림에 진짜 열정을 바쳤더라. 가족이 같이 못 보면 너 혼자서라도 꼭 봐라.”

 

 

 

임용택 대표가 무언가를 권하는 건, 술을 제외하고 단연코 처음이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임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진짜 열정을 바친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궁금증이 밀물처럼 확 밀려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깨알같이 자랑 했습니다.

 

 

 

“예전에 강종열 화백이 살기 힘들 때, 예술가 후원 내지는 지원을 위해 그림을 샀는데, 그 그림도 이번에 함께 전시한다고 주라 하데. 우리 소장품 이외에 과거에 팔린 다른 몇몇 작품들도 함께 전시하더라고.”

 

 

 

그가 달리 보였지요. 역시 그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가슴이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림을 사고 전시회나 공연을 보는 건 힘든 예술가를 위한 배려 속 나눔의 한 방법입니다. 가난한 예술가를 위해 기꺼이 투자하는 배려가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래, 전시회 가겠다고 마음먹은 거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내에게 스케줄을 묻기 전까지 지인의 권유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 뭡니까. 그럼, 강종열 화백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동백

 

뒷골목

 

 

동백

 

 

 

 

 

강종열 화백의 전시회 <빛의 속살을 그리다>

 

 

 

 

강종열 화백의 전시회는 <빛의 속살을 그리다>란 주제 아래 ‘21세기 인상주의를 열다’란 부제로 마련된 그의 회화 40년 기념전입니다.

 

 

알고 보니, 전시 기간은 1월 15일부터 2월 14일까지였는데, 오는 21일까지로 1주일을 늘렸더군요. 지방에선 드문 입장료(1,500원에서 3,000원)가 붙은 전시회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강종열 화백의 기획 초대전은 네 가지 소주제로 나뉘었대요.

 

 

첫째, 어촌 여수의 풍경과 노인과 어부라는 서민의 삶을 표현한 초기 작품.

둘째, 그가 자신을 대하듯 꾸준하게 그려왔던 동백꽃.

셋째, 신생 독립국 동티모르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동티모르 그림.

넷째, 예전 전시회에서 팔았던 그림 전으로 구분되었더군요.

 

 

 

 

조씨영감

 

바닷가 이야기(슬픈 하루)

 

등대 가는 길

 

남산동과 봉산동 사이

 

 

 

 

 

재미있게 다가왔던 건 여수 토박이의 시선으로 우리의 암울한 시대를 가감 없이 표현했던 초기 작품 <등대로 가는 길(97*130.0cm, 1988)>, <뒷골목(145*112cm, 1984)>, <남산동과 봉산동 사이(53.0*90.5cm, 1989)>, <바닷가 이야기(슬픈 하루, 97.0*130.3cm, 1991)>, <(45.0*53.0cm, 1986)>, <향일암 가는 길(임포마을, 97.0*130.3cm, 1993)>, <조씨 영감(어부시리즈)> 등이었습니다.

 

 

 

 

왜냐면 여기에 등장하는 풍경은 여수에 사는 우리들이 늘상 접했던 친숙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굴곡진 삶의 한 가운데에 내팽개쳐진, 친근한 ‘서민’이라는 이름의 인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말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첫 국선 입상작품인 <정오(145.5*97.0cm, 1977)>는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지요.

 

 

 

 

기상천외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30m가 넘는 대작 ‘동백’이었지요. ‘저걸 어떻게 그렸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작가에 따르면 대작 ‘동백’은 “여수의 상징인 동백 숲을 매개로 생명의 잉태와 삶의 질곡을 빛으로 묘사한 거”라 합니다. 그래선지 힐링을 불러오는 묘한 매력 가득했습니다. 정말이지 강종열 화백이 일냈지 싶었습니다.

 

 

 

 

 

향일암 가는 길

 

 

강종열 화백의 첫 국전 입선작품인 <정오>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대작 <동백>입니다.

 

 

 

 

 

작가 강종열을 구해낸 한국 미술판 ‘쉰들러’들

 

 

 

이국적 그림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강점기에서 벗어나 2002년 독립을 이룬 동티모르의 암담한 현실이 화폭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해방을 얻기까지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의 삶과 풍경들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 평화를 되새기게 했다. 암튼, 우주 속 존재에 대한 성찰의 기회였습니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개인전 66회, 단체전 500회를 거치면서 팔렸던 작품들을 다시 모아 전시 중이대요. 그 작품들 옆에는 소장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이들은 40년 전, 스물일곱 나이에 지역에서 험난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배고픈 그에게 작은 힘을 보탰던 아름다운 사람들 명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작가 강종열을 구해낸 한국 미술판 ‘쉰들러’들이었습니다.

 

 

 

하여, 이를 보고 옛날 선비들이 사랑방을 두고 자기 집을 찾는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던 공존공생의 현장을 떠올렸습니다. 이런 거룩한 상생의 문화를, 돈만 쫒는 졸부들이 감히 어찌 알겠습니까. 그림 한 점이, 있는 사람에겐 별 거 아니지만 없는 사람에겐 꿈과 목숨을 좌우하는 ‘생명의 발아 점’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암튼, 아내와 딸과 함께 전시장을 두 번이나 꼼꼼히 둘러보았습니다. 지금껏 전시회에서 한 번 본 걸 다시 둘러보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말입니다. 디자이너가 꿈인 딸은, 그래서 미술학원에서 고강도 수업 중인 딸에게 대작 ‘동백’이 달랐나 봅니다. 글쎄, 대작 ‘동백’ 앞에서, 치마를 입은 채로, 전시실 바닥에 앉더니, 그대로 드러눕지 뭡니까. 이심전심일까. 이를 본 강종열 화백, 그도 놀라며 그러더군요.

 

 

 

“그게 바로 동백 숲속에 누워서 힐링하는 거다.”

 

 

 

 

 

강종열 화백의 대작 <동백> 앞에서 누워 힐링하는 딸입니다.

 

 

 

 

 

 

대작 ‘동백’ 구상과 스케치 및 완성까지 2년 걸려

 

 

 

다음은 ‘강종열’ 화백과 인터뷰입니다.

 

 

 

 

강종열 화백과 제 딸~^^

 

 

 

- 동백꽃의 작가로 불린다. 동백이 주는 의미는?


“동백은 여수의 상징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뿌리 같은 거다. 왜냐하면 동백은 겨울을 참고 견디는 엄청난 힘이 있다. 이는 강인한 정신력이지 싶다. 반면에 동백은 고우면서도 수줍은 구석도 있다. 한편으로 동백꽃은 한 잎 한 잎 떨어지지 않고, 깨끗하게 통으로 떨어진다. 이런 게 나와 닮은 것 같다. 그래 ‘동백=나’로 본다. 동백을 그리는 건 내 자신을 그리는 것이다.”

 

 

 

 

- 입이 쩍 벌어질 규모다. 대작 ‘동백’의 크기는?


“200호짜리 10개를 붙였으나, 실제 크기는 3,700호다.”

 

 

 

 

- 대작 ‘동백’을 그리는데 걸린 기간은?


“그림 그리기 위해 여수에서부터 전국 유명 동백 숲을 전부 찾았다. 심지어 대마도에 있는 동백 숲에도 다녀왔다. 그러니까 동백 숲을 보고 구상하며 스케치 한 후 그림 그리기까지 합하면 2년이 걸렸다. 순수하게 붓을 댄 기간은 1년 2개월이다.”

 

 

 

 

- 대작 ‘동백’을 보면 물감이 엄청 들었단 걸 알 수 있다. 사용한 물감 양은?


 

“사람들이 재미삼아 물어보곤 한다. 사실 물감이 엄청 들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물감이 두껍게 사용돼 깊이가 있다. 물감이 얼마나 들었냐고 물어오면 여수 시세로, 아파트 한 채 값은 들었다고 대답한다.”

 

 

 

 

 

 

 

그림을 설명하는 강종열 화백입니다.

 

 

 

 

 

“동백 숲은 생명이 산란하는 느낌이어서 참 좋다!”

 

 

 

 

- 대작 ‘동백’은 왜 그리게 되었나?


“유럽 등 각종 전시회에서 화가 ‘모네’의 대작 <수련>을 봤는데,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더라. 그래 빛을 다른 각도에서 한 번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정신적 뿌리 같은 강인한 동백 숲의 빛을 그리면서 인상주의 그림과 다른 빛의 모형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걸 ‘21세기 신인상주의’로 이름 붙였다. 더불어 한국 미술사에 영원히 남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화가의 욕망이랄까.”

 

 

 

 

- 대작 ‘동백’ 그림 완성 후에 느낌은?


“하루에 10시간씩 꾸준히 육체적 정신적 노동 끝에 얻은 그림이다. 그림 그리는 동안 팔다리가 성한 곳이 없다. 그만큼 온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선지 완성 후 신비스러웠고, 자부심과 희열도 느꼈다. 후회 없고 만족한다.”

 

 

 

 

- 내가 보기엔 동백 숲이 대체로 어둡다. 이유는?


“실제로 동백 숲에 들어가면 어둡다. 동백 숲은 더 어두워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다른 숲도 그러겠지만 특히 동백 숲은 검고 촘촘해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다. 어두운 동백 숲은 생명(빛)이 산란하는 듯한 느낌이어서 참 좋다. 뿐만 아니라 동백 숲 속의 동백 잎은 어둠 속에서 빛의 파장에 따라 수 만 가지 색깔로 변한다. 이 느낌이 좋아서 어둡게 표현했다.”

 

 

 

 

- 대작 ‘동백’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은?


“입소문이 나서 지역 사람뿐 아니라 전국에서 사람이 온다. 한 번 전시회를 보고 간 사람들이 두 세 번씩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시 기간을 1주일 연장했다. 아마, 이런 크기의 그림은 안보다가 보니 생소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어떤 관람객은 작품 ‘동백’에서 진한 녹색과 푸른 바다의 느낌이 함께 난다고 한다. 맞다. 잎의 녹색과 바다색의 깊이를 조화롭게 표현하려 했다. 다들, 관심 있게 봐 줘서 감사하다.”

 

 

 

 

 

 

 

강종열 화백은 국내 최초의 동백꽃을 전문 작가이며, 여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특히, 2011년에는 국제박람회기구 BIE 사무총장에게 여수를 상징하는 동백꽃 그림을 선물하여 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개최를 기원했습니다. 또한 2014년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에게 작품을 직접 선물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강종열 화백은 미국과 프랑스, 중국,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을 돌며 전시회를 열었으며 개인전 66회, 단체전 500회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워싱턴 시립은행, 필리핀 대통령궁, 만델리용시 미술관, 동티모르 대통령궁,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바티칸 성당, 원자력병원, 해양수산부, 광주시립미술관, 여수시티파크 등 세계 곳곳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전시회 풍경...

 

 

동백 그림은 강종열 화백을 상징합니다.

 

동백은 우리 민족처럼 강인함이 있습니다.

 

 

 

 

강종열 화백 전시회는 내일까지(2월 22일)이니 서두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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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건, 돈이 아닌 ‘철학’

사람을 철들게 한 ‘흥국사’ 여행, 그리고 깨우침
자연에서 얻은 지혜 ‘고집멸도(苦集滅道)’
‘부처님 오신 날’ 연등 설화와 삶의 성숙
생로병사 뿐 아니라, 삶의 애착 또한 생명의 신비

 

 

 

그늘을 만들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겨내야 했을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살아보니 이제야 ‘아픔’ ‘성숙’의 상관관계를 알 것 같습니다. 삶은 찰떡궁합처럼 따라다니는 두 단어를 연상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성공과 실패 혹은 불행과 행복처럼. 아픔은 성숙을 밑바탕에 깔고 오는 거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괴로움 자체입니다. 이로 보면 삶은 깨우침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나무에 상처가 남았습니다, 왜?

 

 

여수 흥국사 뒷모습입니다. 뒷모습이란...

 

 

 

“인생이 이렇게 꼬이다니….”

 

 

요즘, 한 숨 쉬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만큼 살기 팍팍하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한탄은 대부분 경제 및 정치적 상황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돈’도 결국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하여,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학(哲學)’이 동원됩니다. 자연에서 지혜를 얻자는 게지요.

 

 

불교에서는 삶의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찾습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며(苦), 번뇌의 집합체(集)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통과 번뇌를 딛고 일어설 해탈이 필요하며(滅), 깨닫기 위한 실천 수행이 요구된다(道)는 거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냐고요?

 

 

 

깨달음은...

 

 

흥국사 가람 배치가 한 눈에...

 

 

꽃과 어울린 흥국사 

 

연등에도 설화가 스며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내와 ‘나’를 찾기 위한 선문답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곳은 여수 ‘흥국사(興國寺)’였습니다. 흥국사는 1196년(고려 명종 26년)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 창건하셨습니다. 흥국사는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흥국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른 ‘의승수군’의 본거지입니다. 오래된 절집인 만큼 흥국사에는 문화재가 수두룩합니다. 보물만 해도 대웅전(보물 제396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578호), 홍교(보물 제563호),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보물 제1862호) 등 10여점에 달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탱화 또한 인상적입니다.

 

 

 

흥국사에는 많은 보물이 있습니다. 득도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흥국사 대웅전 안에도 보물이 수두룩. 깨달음...

 

 

 

 

 

이 자체가 보물입니다..

 

 

 

흥국사 입구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기 위한 연등(燃燈)이 걸렸습니다. 명선스님께선 연등에 대해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으로, 어둠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불을 밝히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다음은 연등에 관한 설화를 각색한 것입니다.

 

 

연등에 깃든 설화는 공덕...

 

 

“부처님 생전에 가난한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여인은 부처님께 등불공양을 올리고 싶었으나 가진 게 없었다. 여인은 하루 종일 구걸하여 얻은 동전 두 냥으로 등과 기름을 사, 부처님께서 지나가실 길목에 작은 등불을 밝히고 간절히 기원했다.

 

 

‘부처님, 저에게는 공양할 것이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등불 하나를 밝혀 부처님의 크신 덕을 기리옵니다. 이 등을 켠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음 세상에 태어나 성불하게 해주십시오!’

 

 

세찬 바람에 왕과 귀족 등 다른 사람들이 밝힌 등은 하나 둘씩 꺼졌다. 그러나 여인의 등불은 꺼질 줄 몰랐다. 아난은 깊은 밤 이 등불을 끄려했다. 하지만 등은 꺼지지 않았다. 이를 보고 계시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 등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한 여인이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이 공덕으로 인해 앞으로 30겁 뒤에 성불하여 수미등광여래가 되리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가난한 한 여인의 마음을 훤히 보시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 지극 정성이면 못할 게 없습니다. 살기 힘든 세상, 어려움과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삶을 성숙으로 이끌 것입니다.

 

 

 

 

상처, 스스로 이겼습니다.

 

 

아픔이 이렇게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아픔 중에도 꽃 피웠습니다.

 

 

 

“저, 나무 좀 봐요!”

 

 

나름, 나무 박사인 아내. 흥국사 입구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콕 집어 가리킵니다. 무엇 때문일까?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렇지만 중생의 눈에는 보통 나무와 별 차이 없습니다. 다름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 나무를 지목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아내, 나무를 보며 말합니다.

 

 

“저기 나무줄기에 볼록 튀어 나온 부분 있잖아? 저건 나무가 아픈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 거야. 상처는 저렇게 흔적으로 남아요.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자란 게 대단하지요. 그러나 생명은 무엇이든 무심코 라도 건들이지 않는 게 좋아요. 사람도 나무와 마찬가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게 최선이지요.”

 

 

 

가지가 꺾이자 직각으로 다시 자랐습니다. 생명의 신비...

 

 

 

아내는 자연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보았습니다. 굳이 스님에게 설법 청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배움이자 깨우침이었습니다. 이게 선문답 여행의 묘미지요. 어쨌거나, 상처가 아픈 흔적으로 남았다니, 충격입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상처가 작길 바랄 뿐입니다.

 

 

“저기 봐요. 가지가 꺾이자 직각으로 다시 자랐잖아. 아픈 만큼 성숙한 거죠. 싹이 나고 자라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뿐 아니라, 저렇게 끈질긴 삶의 애착 또한 생명의 신비지요.”

 

 

아내, 자연의 진리를 깨우친 걸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내는 여전히 사랑스런 여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아내와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욕심이라면, 받은 상처 모두 다 용서하시길.

 

여행은 사람을 철들게 합니다.

 

 

 

생명이 함께 상생해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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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대교의 저녁노을.

 

여수 화양면의 석양 속 금빛 바다

돌산 안굴전에서 본 해넘이 풍경

 

 

일상이라는 게 매일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변하지 않은 건 없다고 했을까?

 

 

 

자연은 어디가 더 멋있다는 말로 표현 불가합니다.

어디든 그대로의 멋이 스며 있기 마련이니까.

여기에 양념으로 스토리텔링이 추가되면 의미가 깊어집니다.

 

 

해는 보통 인간에게 하루 두 번의 바라봄을 허용합니다.

한 번은 해돋이와 일출이라 말하는 아침입니다.

이는 하루의 시작을 떠오르는 햇살처럼 활기차게 보내라는 의미 아닐까.

 

 

두 번째는 해넘이 또는 일몰이라 불리는 저녁입니다.

이는 하루를 정리하며 반성하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더불어 내일을 새롭게 준비하라는 배려도 숨어 있는 듯합니다.

 

 

좀 더 깊게 들어가,

우주 생명의 근원인 태양이 인간에게 두 번이나 바라보길 허락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면 참 재밌습니다.

 

 

제 생각으론 첫째, 변덕이 죽 끓는 인간에게 두 번을 더 깊이 생각하란 의미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째, 우주의 틀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근본적 물음을 찾길 바라는 염원쯤으로 읽힙니다. 별 소리 다 하네….

 

 

여행을 가거나 드라이브 또는 산책에서 해넘이 감상을 자주 합니다.

해돋이는 부지런을 떨거나 작심해야 볼 수 있긴 허나 저는 해돋이 보다 해넘이를 더 선호합니다.

 

집이 바닷가를 향한 동향이라서 거의 매일 해돋이를 보거든요.

그래 지겹다는 일천한 생각이 듭니다.

 

 

최근 몇 군데 해넘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섬 속의 섬 제주도 우도, 여수 돌산의 굴전, 여수 화양면 이목과 벌가 등 서부 해안이었지요. 멋스러움이 제각각이더군요.

 

 

자연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놀랍습니다.

 

 

 

<여수 화양면의 해넘이>

 

 

 

 

 

 

 

 

<제주도 우도 금강사에서 본 일몰>

 

 

 

 

 

 

 

 

<돌산대교와 안굴전의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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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즐기기] 여수 돌산 ‘갯가길’과 보리딸기

 

 

여수 돌산에서 만난 보리딸기입니다.

 

 

“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길이 나그네에게 묻습니다.

 

“….”

 

대답이 없습니다. 침묵이 금. 굳이 물음이 필요 없습니다. 나안의 나를 만나면 그만이니까.

 

 

 돌산 갯가길에서 본 오동도와 오동도등대입니다.

"다 어디갔어?"

바다에 떠 있는 상선과 뒤로 보이는 경남 남해까지 그림입니다. 

유혹하는 보리딸기. 

시원한 바다. 

아직 안 따먹었네... 

 길은 나그네의 동반자입니다.

 다 따먹었네?

 바다와 오동도

돌산 달박금이의 용월사입니다. 

 하나라도 먹을래?

바다를 향한 용월사는 해돋이 명소입니다. 

색이 곱습니다. 

바닷길에도 보리딸기가 있습니다. 

 한 손 가득 땄습니다.

무더위에 바다가 그립습니다. 

느리게 걸으니 천하가 보입니다. 

상선들이 쉬고 있습니다. 

보리딸기 한아름 먹었더니 이제 물립니다. 

갯가길에서 본 해안 풍경 

 강한 유혹입니다.

하동 마을 

먹을래? 

갯가길의 해안 풍경은 휴식입니다. 

 아 맛있겠당~^^

 갯벌이 드러났습니다.

친구,  보리딸기 먹느라 정신 없습니다.

 더 먹어?

달박금이(월전포)에서 본 바다와 섬의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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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소호동에서 본 가막만과 웅천입니다.

처음에 이 풍경을 대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되는 광경이었으니까...

 

 

이름하여, <신계 VS인간계>로 이름 붙였습니다.

 

 

신계와 인간계의 구분은 축구에서 구분하던군요.

신계는 골폭풍을 일으키는 메시와 호날두를,

인간계의 최고봉은 팔카오를 꼽더라고요. ㅋㅋ~^^

 

 

그렇다치고 이 사진 속에서 구름 위의 신계는  

넉넉함과 여유로움의 천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인간계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개인의 이익을 쫒아 개발하는 욕망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정말 끝이 없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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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erylest.tistory.com BlogIcon mongoo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아직 젊은데도 저런 곳에서 신선놀음 하고싶은 마음이 드네요...ㅋㅋ
    안구정화 하고 가요^^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3.06.20 07:49 신고

[사진] 여수 소라면 현천에 가득한 매화 꽃바람

 

 

 

 

 매화 꽃바람이 진동할 태세입니다.

 

 

 

 

봄은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어느 새 소리 소문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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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목을 보는 총각들의 민망한 웃음도 재미
시를 읽는 즐거움이 가득한 산책로는 ‘횡재’

 

 

 

수줍은 듯 피어난 정열의 동백꽃입니다.

 

 

봄기운이 어느 새 살랑살랑 사랑스럽게 다가옵니다.

유난히 추웠던 긴 겨울의 동장군도 자연의 흐름 앞에선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순환이란 자연의 이치는 그래서 위대한 것 같습니다. 사는 동안 자연을 느끼기 위한 발걸음 또한 인간의 본능인가 봅니다.

 

 

설익은 봄기운을 가슴으로 맞이하기에는 오동도가 제격입니다.

1일, 자연의 이치를 아직 잘 모르는, 그래서 가기 싫다는 아이들과 동백꽃 향기가 그립다는 아내와 함께 찾은 곳이 오동도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오동도는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 초에 혼자 찾았는데 또 오동도를 찾은 겁니다.

 

 

오동도 입구에는 동백열차를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방파제 옆 바다 위에서 모터보트가 바다를 가로질러 하얀 물보라를 일으켜 때 이른 상춘객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습니다. 아직 겨울이 완연히 물러나지 않은 상태인데도 ‘아~, 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였습니다.

 

 

“밖에 나오니 기분 좋다. 여보, 봄 산책 고마워요.”

 

 

아내는 봄맞이가 기분 좋나 봅니다.

여심은 봄기운에 민감하나 봅니다. 뜻하지 않은 고마움 표시에 저까지 기분 좋아 집니다. 봄을 타는 여심은 초장에 진정시키지 않으면 봄 동안 내내 가슴앓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봄맞이는 여심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만점입니다.

 

 

오동도 입구입니다.

오동도는 오동나무를 닮았다 하여 이름지었습니다.

유람선 타는 곳입니다.

시원하게 바다를 가르는 모터보트가 마음 설레이게 합니다.

동백열차입니다.

 

 

 

 

남근목을 보는 총각들의 민망한 웃음도 재미

 

 

오동도는 “멀리서 보면 오동잎처럼 보이고, 오동나무가 많다”하여 ‘오동도’라 불립니다. 그렇지만 지금 오동도에는 오동나무가 몇 그루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려 공민왕 때 신돈은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새가 찾아드는 오동나무라 새로운 임금이 나올까 봐 베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동도는 또한 화살을 만드는 대나무 종인 신이대가 섬 전체에 퍼져 ‘죽도’라고도 부릅니다. 오동도 방파제를 지나면 입구에 모형 거북선과 판옥선, 음악 분수가 관광객을 맞이합니다. 음악분수는 매시 정각에서 15분간, 30분에서 15분까지 연출됩니다.

 

 

동백열차 탑승장, 홍보관 옆을 지나면 보이는 지압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야외 공연장을 만납니다. 그리고 해안 절벽에서는 길게 뻗은 방파제와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들을 보게 됩니다. 해변에서 등대 쪽으로 오르다 보면 남근목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으로 가는 길은 지난 해 생겼습니다.

 

 

남근목은 결혼 후 임신이 안 된 부부가 함께 만지면 아이를 잉태한다는 소문이 나 자녀를 기다리는 부부들이 소리 소문 없이 찾는 곳입니다. 뿐 만 아니라 호기심 많은 처녀까지 한 번씩 만지고 지나치며 웃음 흘리는 유희의 대상입니다. 그걸 보는 총각들의 민망한 웃음도 재미있습니다.

 

 

오동도 등대 오르는 길은 동백나무와 신이대 터널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여심화의 고향 오동도 동백은 11월부터 5월까지 장장 7개월 동안이나 꽃을 피웁니다. 동백꽃이 가장 흐드러지게 피는 절정기는 3월입니다. 동백꽃을 주제로 한 동백꽃 축제가 열릴 법하지만 축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백은 개나리나 벚꽃 산수유 꽃처럼 잎이 떨어진 상태에서 활짝 만개하는 모습으로 다가오기보다, 잎 사이에 숨어 수줍게 피어나기 때문에 만개한 모습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동백꽃의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거북선과 판옥선입니다.

오동도 광장의 음악분수입니다.

자전거를 타는 상춘객이 부럽습니다.

카멜리아입니다.

오동도 동백은 3월이 절정입니다.

해안 풍경입니다.

남근목입니다.

노천 카페에서 동백 차 등을 마시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해돋이 명소 가는 길입니다.

오동도 등대입니다.

오동도 등대를 돌아가는 산책로입니다.

 

 

 

 

시를 읽는 즐거움이 가득한 산책로는 ‘횡재’

 

 

오동도 등대는 10초에 1섬광으로 약 45km까지 전달됩니다.

1952년 5월 처음 불을 밝혔습니다. 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거문도 등대에 비해 짧지만 여수와 남해 등 연근해 어민에게는 소중한 등불이었습니다. 오동도 등대는 높이 27m의 백색 팔각형 콘크리트 구조로 개축하였습니다.

 

 

오동도 등대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람객은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8층 전망대에서 오동도의 울창한 수목과 함게 시원하게 펼쳐진 여수, 남해, 하동, 돌산 등 남해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엑스포가 열렸던 2012여수세계박람회장까지 감상 가능합니다.

 

 

“어, 오랜만이네~. 잘 살고 있지?”

 

 

전망대에서 나오면서 뜻하지 않게 지인을 만났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에서 예기치 않게 사람을 만나는 반가움은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오동도 일출 명소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소녀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등대 옆을 돌아 나옵니다.

 

 

이 산책로를 걷는 즐거움은 따로 있습니다. 횡재한 기분입니다. 오동도를 다녀간 시인들의 시(詩)가 군데군데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시어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또한 해변에는 소라바위, 병풍바위, 지붕 바위, 코끼리 바위, 용굴 등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봄의 상큼한 바람을 쐰 가족들 얼굴은 신선한 생기로 넘쳐납니다. 이 맑은 기운은 이제 본격적으로 닥칠 봄의 나른함을 이기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오동도 등대를 지나 용굴 가는 길 초입입니다.

해안에서 본 오동도 등대입니다.

시가 곳곳에 있습니다.

오동도에서 본 돌산과 돌산2대교입니다.

오동도의 철이른 봄이 여심을 부르고 있습니다.

오동도 방파제와 2012여수엑스포장입니다.

꽃은 보는 자체가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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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나 건빵이라고? 나는 물메기탕이여

한 잔 했다고? 속 풀이로 나만한 게 없어

[여수 맛집] 삼성식당-물메기탕

 

 

 

 

 

 

 

 

 

“점심 먹게 내려와.”

 

 

우리 나이로 올해 팔십 구세인 어르신께서 호출이십니다.

 

어떤 맛있는 걸 드시자고 할까.

지인과 함께 총총 걸음으로 어르신의 놀이터로 갔습니다.

 

 

“저희 왔습니다.”


“식사하러 가시죠. 뭘 드시고 싶으세요?”


“뭐 그리 급해. 앉아 봐. 이야기나 하다 가게.”

 

 

점심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직장인이 이럴 때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구십이 가까운 어르신에게 사정 이야길 올릴 수도 없고.

살며시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밖에.

 

 

“우리 뭐 먹을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어르신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하세요. 저희는 아무거나 좋습니다.”


“그래. 오늘은 물메기탕 어때. 시원하니 속 풀이에도 좋고.”

 

 

 

 

 

 

 

 

 

사람 기운 나게 하는데도 최고, ‘물메기탕’

 

 

이렇게 물메기탕을 먹으러 간 곳이 여수시 중앙동 삼성식당입니다.

 

팔십 구세인 어르신이 찾는 물메기탕 집은 맛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르신이 말하는 물메기탕에 대한 여수 사람들 인식입니다.

 

 

“옛날에는 물메기를 누가 알아 줬간디. 물메기는 고기 취급도 안했어.”


“맞습니다. 서대도 물메기와 마찬가지였지요.”


“지금은 고기가 안 잡히다 보니까 생선이 귀해 물메기도 생선 대접 받는 거지.”

 

 

끓여 낸 물메기탕을 다시 한 번 더 조립니다.

보글보글 끓는 물메기탕을 보며 어르신이 수저를 들며 “어여, 먹어” 합니다.

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하자, 어르신 주인장을 부릅니다.

 

 

“여기 얼마여?”


“1인 1만원, 다해서 3만원입니다.”


“여기 있소.”


“어르신 저희들이 낼 건데요.”

 

“계속 얻어먹으면 쓰나. 간혹 나도 내야지. 물메기탕 먹고 일 열심히 해.”

 

 

어르신의 격려에 힘이 솟았습니다.

물메기탕은 속풀이에만 좋은 줄 알았더니 기운 나게 하는데도 최고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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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의 금오도 비렁길 4코스를 가슴에 품다!
금오도 비렁길 가는 네 가지 방법과 코스 안내

  

 

 

 

 

 

여수 금오도 비렁길 4코스에서 본 풍경입니다. 고요의 바다입니다.

 

바다와 나란히 걷는 비렁길입니다. 동행의 바다입니다.

 

 

 

“오늘 비렁길 산행 주제는 ‘힐링’이다.”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은 ‘삶의 길’이었고, 나를 질책하는 반성의 ‘시간 길’이었습니다.

또 미래를 위한 체력 ‘투자의 길’이였으며, 나를 오롯이 보려는 ‘만남의 길’이였습니다.

 

친구에게도 길은 저와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래선지, 벗이 던진 말 한 마디가 더욱 의미롭게 들렸습니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여수시 남면 금오도 비렁길 순례와 안도 낚시여행에 나섰습니다.

 

산행과 낚시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절묘한 궁합은, 한 번에 두 마리를 토끼를 잡으려는 사냥꾼의 얄팍한 잔꾀 같으나, 사실은 함께 즐기고자 하는 중년의 묘책이었습니다. 섬이라 가능한 겁니다.

 

 

 

 

금오도 비렁길 가는 네 가지 방법과 코스 안내

 

 

 비렁길의 동백숲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이게 문제죠. 지켜야 할 일입니다.

 

비렁길은 바다 엿보기가 가능합니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은 절벽의 순 우리말 벼랑의 여수 사투리인 비렁에서 이름을 딴, 바다를 보며 걷는 해안 길에서 유래했습니다.

 

금오도 비렁길을 가는 방법은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수 여객선 터미널 옆 중앙동 물량장에서 약 2시간 여 동안 배를 타고 가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백야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야 합니다.

세 번째는 돌산 신기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선을 이용한 방법입니다.

 

비용을 줄이려면 세 번째 방법이 좋습니다.

불편을 감수한 섬 여행을 편하게 즐기려면 차를 가져가길 권합니다.

 

왜냐하면 금오도에 있는 대중교통은 버스 1대, 택시 2대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에 맞춰 운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비렁길을 찾는 분들에게 욕 많이 먹습니다.

 

그래선지, 다음 달부터 버스가 2대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여하튼 섬 여행은 불편이 따라야 제 맛입니다.

 

 

 

돌산 신기에서 배를 타면 금오도 여천에 도착합니다. 

 

 

운항시간표입니다. 동절기와 하절기가 다르니 주의해야 합니다.

 

 

금오도에는 버스 한대와 택시 두대 뿐입니다. 불편하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비렁길 안내도입니다.

 

 

비렁길은 총 5코스로 나눠집니다.

 

1코스는 함구미~미역널방~송광사 절터~신선대~두포까지 5㎞ 거리에 2시간 정도 걸립니다.

 

2코스는 두포~굴등 전망대~촛대바위~매봉전망대~학동까지 이어지며 3.5㎞, 1시간여가 소요됩니다.

 

3코스는 직포~갈바람 전망대~매봉 전망대~학동까지 3.5㎞, 1시간30분 소요됩니다.

4코스는 학동~사다리통 전망대~온금동~심포 3.2㎞ 1시간이 걸립니다.

5코스는 심포~막개~장지까지 3.3㎞ 1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종주코스로 함구미에서 장지 마을까지 총 18.5㎞, 6시간 30분가량 소요됩니다. 또 함구미에서 안도까지 25.7㎞ 구간에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길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선택한 코스는 비렁길 4코스와 5코스였습니다.

 

 

 

 

비렁길은 인간을 도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비렁길에서 본 바다는 호수 같습니다. 마음의 바다입니다. 

 

 

비렁길에는 대나무 숲도 있습니다. 서로가 공존하는 여유의 길입니다. 

 

비렁길에서 바다를 보노라면 가슴이 넓어집니다.

 

 

 

 

“여보게, 친구. 산행은 생각하며 위를 보고 걸어가면 힘들어.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버리고 아래를 보며 걸어야 편해. 세상살이, 위만 보고 가다 보면, 쫓아가느라 여유를 즐길 틈이 없지만, 아래를 보고 천천히 가면 주위도 봐지고, 삶의 여유가 생기는 이치야.”

 

 

친구 말 속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습니다.

길을 걷는다는 건, 산을 타며 체력 보강이란 일차 목적보다는 나를 비우려는 최종 목적이 우선이니까.

 

이렇듯 비렁길은 바다 구경과 산행이 어우러져 마음의 여유로움을 더해 평범한 인간을 도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듯했습니다.

 

금오도 비렁길 4코스는 지난 가을 태풍으로 인해 폐쇄했던 것을 다시 열었습니다.

아직까지 군데군데 복구 또는 개선 중에 있는 현장이 있습니다만 풍경 자체가 만족감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동백, 꽃 이름처럼 겨울에 핀 동백꽃이 일상생활에서 남은 울적한 마음 찌꺼기까지 거둬갑니다.

 

 

 

비렁길엔 줄기만 남은 나무도 있습니다. 본질을 찾고자 하는 가르침입니다.

 

비렁길을 동행했던 친구들입니다.

 

 

 

비렁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바다는 다채로운 느낌입니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은빛 바다, 풍어의 즐거움을 준 풍요의 바다, 어부의 목숨을 앗아 간 고통의 바다, 레저의 기쁨을 마주하는 여가의 바다 등 각자의 마음 상태에 맞게 받아들이면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비렁길에서 되도록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나’‘우리’입니다. 이는 비움에서 출발해야 보인다고 합니다.

 

나를 비우기 위한 노력이 더 늦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야 만족할 수 있으니까….

 

 

 

비렁길에서 동백꽃을 만났습니다. 반가움이었습니다.

 

비렁길에선 양식장도 보입니다. 생산을 돕는 풍요의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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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한 금오도 비렁길 3코스 탐방
선택 가능한 총 6코스의 금오도 비렁길
‘나’는 사라지고 자연이 되어가는 ‘비렁길’

 

 

 

  

 

 

 

 

명성황후가 사랑한 섬 전남 여수 금오도(金鰲島).

이 섬은 자라를 닮았다 하여 금오도라 불립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은 예로부터 신비의 섬이자 자연의 보고였습니다.

 

조선시대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임금의 관(棺)을 짜거나 판옥선 등 전선(戰船)의 재료인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黃腸封山)이었을 만큼 원시림이 잘 보존된 곳으로 숲이 우거져 검게 보인다 해서 ‘거무섬’으로도 불렸습니다.

 

금오도는 조선시대 고종이 명성황후가 살던 명례궁에 하사한 섬입니다. 명례궁에서는 이곳에 사슴목장을 만들어 사람의 출입과 벌채를 금한 곳이기도 합니다.

 

금오도 해안 기암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비렁길’ 이는 절벽의 순우리말 ‘벼랑’의 여수 사투리 ‘비렁’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본래는 땔감과 낚시를 위해 다니던 해안 길이었습니다.

 

여수 혹은 돌산 신기에서 배를 타고 금오도 함구미 또는 여천에서 내리자마자 시작되는 비렁길은 함구미 마을 뒤 산길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완만한 경사 탓에 남녀노소 무리 없이 해안절벽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선택 가능한 총 6코스의 금오도 비렁길

 

지난 6일 고등학교 친구 네 명과 함께 금오도 비렁길 중 3코스를 걸었습니다.

비렁길은 총 6개 코스로 구분되어 자신의 체력에 맞게 선택해 걸을 수 있습니다.

 

1코스는 함구미~미역널방~송광사 절터~신선대~두포까지 5㎞ 거리에 2시간여가 소요됩니다.

 

2코스는 두포~굴등 전망대~촛대바위~매봉전망대~학동까지 이어지며 3.5㎞, 1시간 정도 걸립니다.

 

3코스는 직포~갈바람 전망대~매봉 전망대~학동까지 3.5㎞, 1시간30분이 소요됩니다.

 

4코스는 학동~사다리통 전망대~온금동~심포 3.2㎞ 1시간이 걸립니다.

 

5코스는 심포~막개~장지까지 3.3㎞ 1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종주코스로 함구미에서 장지 마을까지 총 18.5㎞, 6시간 30분가량 소요됩니다.

 

이밖에도 함구미에서 안도까지 25.7㎞ 거리(3시간)에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길 수 있으며, 해돋이와 해넘이 구경도 가능합니다.

 

 

 

 

 

 

 

 

‘나’는 사라지고 자연이 되어가는 금오도 ‘비렁길’

 

“쌀쌀 가자.”

 

‘빠르게’에 익숙한 친구의 발걸음을 보며 한 친구가 ‘쌀쌀’을 주문합니다.

‘쌀쌀’은 천천히 느리게란 의미의 여수 사투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올레길, 둘레길 등과 마찬가지로 비렁길을 걸을 때에는 천천히 걷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빠르기를 재촉해 땀을 쭉 빼는 등산 개념보다 천천히하는 산책 의미가 묻어나야 합니다.

 

산책은 자연을 느끼며 주위를 살펴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 묘미가 있습니다.

 

천천히 걷다보니 자연의 일상이 오롯이 가슴으로 들어옵니다.

 

바다를 가로질러 가며 흰 파도를 일으키는 배.

벼랑 사이에서 자라는 소나무. 태풍에 꺾인 나무들. 가을의 색감까지….

 

그제야 ‘나’는 사라지고 자연이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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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hdjungin.tistory.com BlogIcon 청년한의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오도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 아직 못가봤네요..
    저도 금오도 절벽길을 쌀쌀걸으며 자연을 느끼고 싶습니다.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2012.11.30 09:31 신고

태풍의 흔적을 보며 우리의 삶을 생각합니다!

세상이, 자연이 얼마나 썩었으면 뒤집으려 해?

 

  

 

다섯 손가락에 든다는 초강력 태풍 ‘볼라벤(BOLAVEN)'이 남긴 흔적이 많습니다.

 

이 상흔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태풍 '덴빈(TEMBIN)'이 온다고 합니다.

바로 직전 몸소 체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슬기롭게 '자연의 경고'를 알아야겠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저 매년 오는 태풍의 하나일 뿐이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무딘거죠. 맞습니다.

이 썩을 놈의 태풍.

도대체 세상이, 자연이 얼마나 썩었으면 다 뒤집으려는 걸까.

 

여수에서도 ‘볼라벤’이 남긴 상처는 많습니다. 피해도 여러 모습입니다.

삶이 다양하듯, 태풍이 남긴 교훈이 많겠죠?

흔적을 보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게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시죠.

 

 

 

태풍 전, 소호동 해변입니다. 바다가 화가 나 있습니다.

태풍 후, 소호동 해변입니다. 바다의 화가 사그러 들었습니다.

여수 소호 요트장 선착장입니다.

여수 소호동 해변의 성난 파도입니다.

상가도 휴식하며 태풍에 대비했습니다.

여수 오동도 방파제입니다. 바다가 엄청 화났습니다.

여수 선소 인근 해변에는 요트가 파도에 밀려왔습니다.

대나무도 태풍이 몰고 온 바람에 정신없이 흔들렸습니다.

태풍이 지나가자 끊겼던 전선을 잇고 있습니다.

도로에는 해일의 여파로 스티로폼이 밀려왔습니다.

가로수는 뽑히고 부러졌습니다.

돌산대교에서 보니, 태풍이 잠잠해지고 있습니다.  양식장 피해 규모는 아직 모릅니다.

태풍 후, 파도가 잠잠해졌는데도 아직 잔파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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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츠 가장물 통해 배워야 할 축제 핵심 5가지

여수-가라츠시 한일 교류 30주년 길놀이를 보니

 

 

 제46회 진남제 모습. 

 

 

“200여 년 동안이나 군찌 축제 가장물로 사용했던 비룡을 가져 와 여수에서 길놀이를 하니 감회가 새롭다.”

 

이노루에 카스히코(54) 씨 소감이다. 그는 지난 2일 여수세계박람회 ‘일본 국가의 날’을 맞아 여수를 방문했다. 그는 이날 한국 여수시와 일본 가라츠시의 자매결연 30주년 기념 길놀이에 참석했다. 그의 말처럼 일본 가라츠 축제 가장물(야마)을 가지고 한국에서 길놀이를 할 줄 뉘라서 알았겠나.

 

한ㆍ일 양국의 길놀이에 사람이 몰렸다. 여수 박람회장 3문으로 일본의 가장물이 나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느 새인가,  가라츠시가 가져온 가장물과 길놀이 참여하는 가라츠 시민들이 행사 복장으로 나타났다.

 

이날 행사에는 가라츠시 사카이 토시유키 시장 일행 160여명이 참여했다. 여수 또한 김충석 시장을 비롯한 500여명이 길놀이를 꾸몄다. 여수 엑스포 현장과 도로 위에서 길놀이를 펼치기 위해 여수에 온 사람들이 대단하게 보였다.

 

사카이 토시유키 시장은 “선배들이 소중히 이어왔던 교류의 전통을 앞으로는 우리가 계속 이끌어 한ㆍ일 간 소중한 교류 역사를 이뤄가고 싶다.며 “계속해서 우리의 아들 손자까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충석 시장은 “여수 박람회를 위해 전세기를 띄우고, 비틀호 등을 통해 3천여 명이 단체로 여수를 방문할 예정이다”면서 “여수와 가라츠의 자매결연 30주년을 계기로 더욱 활발하게 교류가 이뤄져 한ㆍ일 간 좋지 않은 감정이 풀어지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필자는 가라츠의 축제 가장물과 축제 진행 방식을 우리 진남제와 비교했다. 배운 점은 대략 5가지였다.

 

한일교류 30주년을 기념하는 길놀이.

김충석 여수시장과 사카이 토시유키 가라츠시장

길놀이에 나선 진남제 가장물 등풍용왕.

 

 

첫째, 가장물의 움직임
가라츠시 가장물 ‘비룡’은 위풍당당 위 아래로 움직이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진남제에 사용되는 가장물이 고정 형태인데 반해 일본의 가장물은 움직였다. 움직이는 가장물이 마치 3D 입체영화처럼 느끼게 했다. 차원이 달라 신선했다.

 

둘째, 가장물 재료
견고하게 보이는 가장물 재료가 플라스틱 혹은 FRP겠지 했다. 아니었다. 일본 가라츠 축제를 몇 차례 참관한 경험이 있는 진남제전보존회 이복의 이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저 가장물은 우리네로 말하면 창호지만으로 한 장 한 장 붙여 만든 것이다. 종이로 만들었지만 어떤 것보다 견고하다. 또 가장물을 정성 들여 만들었을 그 손길을 생각만 해도 부럽다.”

 

그저 축제랍시고 보기 좋게, 이동하기 편하게 만들어 꾸미는 우리의 가장물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기껏해야 수천만 원으로 폼만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에 더해 가장물을 만들면서 “이걸 가장물이라고 만들었나?”란 소리까지 나오는 우리네 현실에선 일본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가장물이었다.

 

 

가장물을 이동시키는 낡은  차량 내부.

일본 가라츠시의 튼튼한 축제 가장물. 

우리의 가장물을 이동시키는 차량은 폐차를 몇 번하고도 남는다.

 

 

셋째, 견고성
종이로 만든 비룡이 위엄은 종이를 붙여 만들었으나 어떤 재료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견고함이 있어 보였다. 또한 비룡을 싣고 가는 바퀴도 견고한 나무로 만들어 매년 수리하지 않아도 될 만큼 튼튼해 보였다.

 

그러니 가장물이 낡았네 하는 푸념 자체는 설 땅이 없었다. 46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온 여수 진남제. 여기에 사용되는 가장물을 이끄는 자동차 동력은 폐차 직전의, 아니 폐차가 몇 번 되고도 남는 실정이다. 통제영길놀이에 나서려면 몇 차례 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판에 제대로 만든 가라츠시 가장물을 보니 부러웠다.

 

넷째, 축제 참여 정신
한 때 가라츠시에 파견되어 그들 문화를 직접 체험했던 여수시 모 과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가라츠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남녀노소 없이 모든 동네 사람, 심지어 객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까지 고향으로 내려 와 축제에 참여한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가 된다.”

 

인력 동원이 아닌 매년 꾸준하게 참여하는 자발적 축제임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이는 매년 통제영길놀이 참여 단체 구하기에 애를 먹는 우리와는 판이한 구조였다. 자원봉사란 허울 아래 길놀이 참여 단체에게 소액의 출연료를 줘야하고, 몇 번이나 대상 단체를 찾아 헤매고 쫓아다니며 섭외하는 우리와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올해 개최했던 46회 여수거북선축제는 갑작스레 급조된 한시적인 여수거북선축제 추진위원회를 앞세워야 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이는 진남제 역사에 비춰 볼 때 신뢰와 믿음 부족에서 오는 반발인 셈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될 정책 중 하나다.

 

물론 진남제전보존회도 외부에서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등을 분석하여 이에 따른 오해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자정 노력과 변화 의지가 있을 때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 가라츠 가장물은 사람들이 끌어 화합을 강조했다.

가라츠는 남녀노소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화합 마당임을 알 수 있었다.

얼굴 표정에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다섯째, 축제의 기본인 화합정신
아시다시피 축제는 해묵은 불신과 반목을 털어내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동단결, 즉 화합의 장이다. 그러기 위해 모두가 마음을 여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어린아이부터 팔십 어른까지 모든 세대가 화합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일본 가라츠 시에서 선보인 ‘비룡’은 축제의 화합정신이 계층을 넘어 세대에까지 미쳤다는 점이다. 실제로 가라츠는 “여수에서의 길놀이 가장물 중 ‘비룡’을 택한 후, 이를 움직일 인원을 각 마을별로 뽑아왔다”고 한다.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모든 세대가 어우러졌다.

 

이로 볼 때 그들이 축제 인원구성을 어떻게 하는지가 엿보였다. 또한 가장물을 동력에 의지하지 않고 사람이 직접 끌어 나가는 모습에서 힘을 하나로 합치는 화합의 의미가 충분히 묻어났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들었던바 “한국적 전시 행렬로 인해 열정 넘친다는 가라츠 군찌 축제의 참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어쨌거나, 여수의 통제영길놀이 가장물 ‘등풍용왕’, 일본 가라츠시의 군찌 축제에 사용되는 가장물 ‘비룡’의 한일 교류 30주년 기념 길놀이는 46년 역사를 가진 진남제에 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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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비워야 편하다니까. 안그럼 못살아”
부부의 연, 싸워도 금방 화해하는 부부되길

 

 

결혼 26년차 부부입니다.

지난 토요일, 결혼 26년 차 부부랑 여수 금오도 비렁길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출발 전부터 삐걱했습니다.

만나기로 한 그들 부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집 앞에서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한참 만에 나타나더군요. 그들 부부 씩씩 대더군요.

“나들이 가기로 했으면 간다, 안 간다 말도 없이 아침에서야 집에 들어와.”

남편은 잔뜩 화가 나 있었습니다. 안 봐도 비디옵니다. 하여 남편 편을 들었습니다.

“남편 버리고 집 나가 아침에 들어왔단 말예욧. 그건 말도 안 돼.”

아내가 머쓱해 할 줄 알았더니 천만의 말씀, 다짜고짜 변명을 늘어놓지 뭡니까.

“날 좋아하는 후배에게 새벽에 전화가 와서 무슨 일 있나 싶어 나갔다가 이야기 하다 보니 그리 됐어요.”

틀어진(?) 남편, 가만있을 리 있나요. 날카로운 목소리로 한 마디 툭 쏘아 붙였습니다.

남편 : “아무리 그래도, 아침에 들어온 아내를 어떤 남편이 반길까?”
아내 : “서울서 오랜만에 와 남편만 보고 가냐?”

26년 차 부부의 신경전을 지켜보는 자체가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세상살이 3대 재미 중 하나가 싸움 구경이라잖아요. 싸움은 옆에서 부추겨야 더 맛이 나지요.

여수 금오도 비렁길에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나 : “형수는 뭘 잘했다고 변명? 남편 잘 만난 줄이나 아세요. 형님이 도인이네요.”
남편 : “난 괜찮아. 마음 비워야 편하다니까. 안 그러면 못살아.”

잠시 멈칫했습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싶었습니다. 왜냐고요? 이러면 싸움 구경이 김빠지니까. 여객선터미널로 향했습니다. 표를 예매하고 배 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내 : “젊은 오빠가 커피 한 잔 빼 줘요.”
나 : “뭐가 예쁘다고 커피 빼 달래. 제가 빼 줄 것 같아요.”

아내 : “아잉~. 젊은 오빠 커피 한 잔 빼 주라니까.”
나 : “싫어욧. 형님 화 안 나세요.”
남편 : “화는 무슨. 남편과 아이만 보고 살다가 아이들 다 키운 후 아내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 줄 수 있는 건 자유 밖에 없어.”

남편의 화가 풀렸음을 직감했는지 신경애 씨 코맹맹이 소리를 풀어내더군요.

여수 금오도 비렁길입니다.

아내 : “역시 우리 남편 최고당~. 오늘 밤 우리 남편 등 빡빡 밀어줘야지~잉.”
남편 : “….”
아내 : “앙탈 부리기는…. 내가 사랑해 줄~겡.”

애교 작렬입니다. 잠시 신경전을 벌이던 그들 부부가 손잡고 가는 걸 보니 남편 화가 싹 풀린 듯합니다.

예전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는데, 지금은 ‘부부싸움은 바로 끝장의 지름길이다’고 하더군요. 저도 아내와 살아보니 “지는 게 이기는 것이여”란 어른들 말씀이 허튼 소리가 아니더군요.

하늘이 맺어준다는 부부의 인연, 이들 부부처럼 싸워도 금방 풀고 화해하는 부부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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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목탁 소리와 함께 보리암과 하나되다
[절집 둘러보기] 기도 도량 남해 보리암

 

▲ 경남 남해 보리암은 구름 속에 있었다.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여, 만남의 기회를 미뤘었다.

인연이 이제야 닿았을까.
드디어 지난 15일 광복절 아침,
경남 남해 보리암을 만났을 수 있었다.

사실, 남해는 내가 사는 여수와 가까운 거리다.
배로 30여분이면 닿을 수 있고, 육지로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남해의 다른 곳은 몇 번이나 갔는데 유독 보리암만은 만남이 어려웠다.
그러니까 남해 금산 보리암에 안기기까지 4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마~하~반~야~….”

거의 반 백 년 만에 얽힌 묘한 인연일까.
보리암과 상견례는 가족들과 함께 했다.
세상사 인연이라지만 절집은 공덕이 쌓여야 가능한 인연.
왠지 이제야 세상에 태어난 업보를 지운 느낌이다.

 


▲ 구름이 바위들을 가리고 있었다.
▲ 보리암 가는 길은 가파랐다.

▲ 보리암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은은한 목탁 소리와 함께 보리암과 하나 되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보리암 가는 길은 서늘했다.
보리암 오르는 길은 가파랐다.
쉬 오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꾸역꾸역 올랐다. 땀이 주르르 흘렀다.
공덕을 쌓는 것이라 여겼다.

보리암 가는 길은 여유가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 그저 마음의 여유랄까.

그 길에서 난 나그네일 뿐이었다.
보리암은 구름 속에 있었다.
속세의 고통을 짊어진 중생을 표현하는 듯했다.

‘똑~똑~똑~똑~’

목탁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가슴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렇게 난 보리암과 하나가 되었다.  

 


▲ 중생들이 끊임없이 기도를 드렸다.
 ▲ 중생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왜 그랬을까?
▲ 보리암에는 끊임없는 염원이 이어졌다.
▲ 보리암에 서니 나마저 동자승이 된 기분이었다.
  

 

자연 속에 절집을 넣은 듯 아기자기한 ‘보리암’

 

보리암은 바위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 정원이 인위적이라면,
한국 정원은 자연스러움이 빛나는 정원이라고 한다.
보리암은 자연과 어울리는 한국의 정원을 산중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다른 절집이 편평한 곳에 자리해 밋밋한 맛이라면,
보리암은 자연 속에 절집을 넣은 듯한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어터지나 보다.
기도도량 보리암은 자연 뿐 아니라 사람까지 품고 있었다.


하나 아쉬움이 있었다.
툭 트인 시야를 하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당초 생각했다. 한 번의 인연으로 보리암을 알 것이란 믿음은 없었다.
그래서 더 가슴에 넣었나 보다.

앞으로 맺을 보리암과 인연이 기대되는 까닭이었다.

 



▲ 보리암을 이렇게 가슴에 품었다.



▲ 무슨 복을 빌까?


▲ 절집 보리암은 기붕 마저 자연과 하나였다.
▲ 보리암과 인연이 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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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epaktakraw.life BlogIcon 모피우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님 기도 할 때 보리암에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받은 느낌은 하늘에 앉은 보리암이었습다.
    날씨가 너무 좋았었습니다. 오랜만에 보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2011.08.19 20:09 신고


영화감독 만나며 남도 음식 즐기다!

 

 

맛의 수도 여수 움식의 별미 중 하나인 서대조림이다.

 

 

“여자만 들어오는 집이냐구요? 아니어요. 남자분도 들어오세요.”

서울 맛집, 인사동 맛집으로 꼽히는 여자만(汝自灣) 입구에 쓰인 문구다.
여자만 출입이 가능한 집으로 오해받곤 하나 보다. 재치와 해학이 묻어난다.

여자만은 ‘여수와 고흥 사이의 바다를 일컫는 이름이다.'(순천만의 옛 이름)
여수에서 사는 사람으로 남도 음식 전문점 인사동 ‘여자만’의 명성은 더욱 반갑다.

특히 여자만은 <영심이>, <고추밭에 양배추> 등의 작품을 연출한 영화감독 이미례 씨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인상적이다. 

 


음식점 이름인 '여자만' 등에 대한 설명이 이채롭다.

'여자만'은 영화감독이 운영하는 음식점임을 강조했다. 

 

여자만을 찾은 건 서울서 암 투병 중인 지인 문병하러 왔다가 남도 음식이 그립다는 소릴 듣고서다.

병 특성 상 음식까지 가려야 하니 특별히 엄선한 곳이다.
왜냐면 이곳은 맛의 고장 남도에서 직접 공수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메뉴판에 적힌 남도 음식 참 다양하다.
손님이 원해 알배기 간장 꽃게장, 묵은 김치, 어리굴젓 등도 판매한단다. 믿음이 간다.

  


인사동에 자리한 '여자만' 입구. 남자도 입장 가능하단다. ㅋㅋ~^^ 


여자만의 먹거리 자랑 중 하나인 짱뚱어탕. 


메뉴판. 남도 음식의 진수인 하모 샤브샤브, 민어, 꼬막까지 있어 반가웠다.

 

 

메뉴판을 보면 언제나 고민이다.

"뭘 먹지?"

여자만의 여름 보양 특선으로 여수의 자랑 하모 샤브샤브, 하모(양념, 소금)구이, 서대회와 여자만의 짱뚱어탕, 신안 목포의 민어회, 벌교 참 꼬막 등이 무척이나 반갑다.

메뉴판을 보는데 지인이 말을 던진다.

“우리 각시 저녁에 뭘 해 먹일까? 고민이었는데, 자네가 내 짐을 덜어줬네.”

그렇다면 나야 언감생심.
투병 중인 지인 아내에게 음식 선택권을 맡겼다.
그녀가 택한 음식은 짱뚱어탕과 서대조림.

음식을 시킨 후,

  

“이미례 감독님 계시냐?”
“계시다”

용기를 내 뵙기를 청했다.

잠시 후 나타난 이미례 감독.(이 무슨 횡재?)

꾸미지 않은 탓일까? 시골 아줌마처럼 푸근하다.
음식을 제공 받는 여수의 한 식당을 댔더니 더욱 반긴다.(이런~, 이야기에 정신 팔려 인증 샷을 놓쳤다.)

이 감독은 인사 끝에 우리에게 고향의 특산물 '여수 돌산 갓김치'를 덤으로 주었다. 

 

 

 

짱뚱어탕이 먼저 나왔다. 추어탕처럼 갈아 만들었다.
통으로 나오는 짱뚱어에 익숙한 탓에 좀 서먹하다.

하지만 맛은 아주 좋다. 투병 중인 지인도 부담 없이 맛있게 먹는다. 그걸 보니 흐뭇하다.

 

다음으로 나온 건 서대조림.
사실, 서대는 다른 지역에선 생소한 여수의 명품 특화요리다.
지인이 맛을 본다. 웃는 걸로 봐선 대박이다.

무와 감자에 간이 적당히 스며들었다.
간이 제대로 들지 않으면 팍팍한 느낌인데 부드럽게 씹힌다.
서대도 쫀득쫀득하다. 여수에서 먹는 맛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자만의 자랑 짱뚱어탕.


여수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서대조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먹고 난 후 돌아온 말.

“자네 덕에 우리 각시가 평소보다 밥을 많이 먹었네. 잘 먹었고, 감사하네.”

음식 대접하고 이런 말 들어야 보람이다.
7만여 원 들여 치사를 받았으니 효용 가치가 최대로 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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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생선회는 씹는 질감이 특히 좋다

“회의 질감을 즐기려면 회만 먹는 게 좋다!”
[여수 맛집] 생선회 - 수산물특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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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객선터미널 옆에 마련된 회 뜨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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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이 최고인 자연산 회.


“요리는 과학이요, 문화다.”

여수를 방문했던 서울 모 호텔 조리장의 말입니다. 공감입니다. 된장이나 고추장, 그리고 간장까지 발효 과학이 만든 우리네 먹거리 문화니까요.

생선회, 다들 좋아하실 겁니다. 맛의 수도 ‘여수’답게 여수에는 다양한 자연산 생선회가 널리고 널렸습니다.

지인은 산지에서 먹는 생선회 맛에 대해 이렇게 극찬하더군요.

“자연산 생선회는 양식과는 달리 씹는 질감이 특히 좋다. 여기에 신선도와 아름다운 여수 경치까지 어우러지니 맛이 더 좋을 수밖에.”

맞는 말이지요. 이번에는 생선회를 싸게 먹는 방법을 소개할까 합니다.

 회를 제외한 것들이 회 먹는 집의 기본 세팅입니다.

  새롭게 지은 수산물특화시장.

생선회 뜨는 집과 먹는 집이 따로따로 ‘수산물특화시장’

여수에서 생선회를 싸게 먹는 법은 남산동 수산시장, 수산물특화시장, 서시장, 진남시장 등지의 수산물 가게에서 회를 떠 인근의 회 먹는 집에서 먹으면 싸게 먹을 수 있습니다. 

여객선터미널 옆의 수산물특화시장을 찾았습니다. 미리 자연산 도다리와 줄돔을 주문한 상태였습니다. 하여, 회 뜨는 장면은 놓쳤습니다. 허나, 음식은 눈으로 먹는 재미도 쏠쏠하니 회 뜨는 장면까지 보면 맛이 더 삽니다.

여기서 잠깐, 물고기 머리 자르는 걸 보고 입맛 없다는 사람도 있으니 비위 약한 사람은 보지 않길 권합니다.

1층에서 회를 사서 이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면 메추리알, 다시마, 쏙, 감자, 고구마, 고동, 콩, 매운탕, 묵, 된장 등 기본 상차림이 1인 3천원입니다. 그 외에 주류 3천원, 매운탕 5천원 등입니다.

일반 횟집과는 달리 회를 담는 그릇이 회 뜨는 집에서 보낸 그대로입니다.  


“회의 질감을 즐기려면 회만 먹는 게 좋다!”

본 메뉴인 회가 나왔습니다. 모두들 얼굴이 급격하게 환해집니다. 역시, 먹을 것 앞에선 장사 없나 봅니다.

지인은 회 먹는 방법에 대해 “회의 질감을 즐기려면 회만 먹는 게 좋다.”면서 “이외에도 막장 혹은 소금 등에 찍어먹거나, 일반적으로 먹는 야채에 초고추장을 얹어 먹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매운탕이 나왔습니다. 맛요? 끝내주더군요.

이렇게 매운탕을 끓여주는데 단돈 5천원입니다.

아~, 먹고 싶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새로 지은 수산물특화시장에 흠이 있었습니다. 이용객들에게 주차요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물론 1시간 이내는 받지 않았지만, 관광객의 이용 편의를 위한 무료 주차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어요. 주차요금, 작은 거지만 손님 입장에선, 이용객 입장에선 꽤 신경 쓰이는 대목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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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수 가게 되면 좋은 참고가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저..회 킬러에요..

    2010.12.01 10:16 신고

섬 여행 시, 장애인의 이동 불편 줄여야
장애인인 정하균 국회의원과 섬에 가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섬에 가기 위해 움직이는 정하균 의원 일행.

육지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섬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은 아직까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 일요일(4일) 오전, 정책토론회 참석 차 여수에 온 정의화 국회부의장(한나라당, 부산 중구ㆍ동구), 정하균 의원(미래희망연대 비례대표), 김성곤 의원(민주당, 여수 갑) 일행과 함께 사도 등 섬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배를 타려면 계류시설을 지나 배에 올라야 했다. 비장애인은 문제가 없었지만 교통사고로 경추가 손상되어 사지마비 장애인인 정하균 의원이 문제였다.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그가 혼자 배에 오르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비애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해야 했다.

정하균 의원의 경우로 확인함이 더욱 더 피부에 와 닿을 것 같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계류시설을 지나기도 쉽지 않았다.

배에 오르기 위해 난관에 부딪친 정하균 의원이
인상쓰는 대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이런 불편 앞에 "웃으면서 하나씩 고쳐나가는 습성이 생겼다"고 한다.

전동휠체어의 무게도 만만치 않아 여러 사람이 달라붙었다. 

휠체어를 올린 후 등에 업혀 배에 오르는 정하균 의원.
후천성 척수장애는 그를 이렇게 변하게 했다.

편의증진법은 있으나마나한 사문화 된 법 규정?

사실 우리나라에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을 위한 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이하 편의증진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의증진법’제4조는 “장애인 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동등하게 이용하고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 조항은 사문화 된 규정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장애인이 배에 타기 위해서는 주위의 도움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육지 여행에서 섬 여행으로 관광 패턴이 변하고 있는 요즘, 섬으로 가는 장애인들의 불편함도 줄이려는 노력도 이제는 필요한 시점이다.

배가 도착하자 내리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

 섬에 가려했으나 도저히 갈 수 없어 그가 포기했다.

 내리기도 장난 아니다. 이런 불편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배에서 내리는 정하균 의원을 바라보는 정의화 국회부의장.
그가 바라보고 있자 한 공무원이서 조용히 정답을 내놓았다.

"장애인이 배에 쉽게 탈 수 있도록 시설을 보완해라"

배에서 힘겹게 내린 정하균 의원과 정의화 국회부의장(우), 김성곤 의원(좌).
정하균 의원도 비장애인으로 살다 교통사고 후 장애를 갖게 됐다.

그가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여기저기를 다니는 것은
"직접 몸으로 보여줘야 고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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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yiybfafa.tistory.com BlogIcon 해피아름드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네요
    함께 부딪히고 경험하지 않으면..아픔을 이야기하기 어려워요..ㅠㅠ
    좋은 하루 되세요~

    2010.07.06 08:10 신고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oga2641 BlogIcon 모과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의원께서 비자애인이었다가 장애인이 돼셔서 더 크게 느끼실겁니다. 장애인을위해서 처음 부터 시설을 편리 하게 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2010.07.06 13:07

그림은 은조와 기훈을 연결하는 소통 도구
꼽추 화가 ‘손상기’와 닮은 주인공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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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빛> 1984, 145.5×112cm, 캔버스에 유채, 김인경 소장.

<신데렐라 언니> 4회 마지막에 잠시 그림 전시회 장면이 나왔습니다.

<손상기 전>. 이를 보니 반가움이 앞서더군요. 사실, <신데렐라 언니>에 천재 화가 손상기 화백이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곱씹어 보니, 은조(문근영 분)와 기훈(천정명 분)과 연결고리가 분명히 있더군요. 은조는 엄마와 잡초처럼 살다 안정을 찾은 경우였습니다. 기훈은 재벌가의 숨겨진 자식으로 태어나 이복형제와 엄마에게 시달림 받는 상처받은 영혼이었습니다.

39세에 요절한 손상기 또한 꼽추 장애를 뛰어 넘은 천재화가입니다. 세상과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묘하게 연결시키는 묘미가 빛났다고 할까. 앞으로 <신데렐라 언니>에서 전개될 세상과 맞서는 대목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영원한 퇴원> 1985, 112×145.5㎝, 캔버스에 유채.

은조와 기훈을 대변하는 <따스한 빛>과 <영원한 퇴원>

효선이가 은조에게 말했던 “기훈이 가장 좋아한다.”던 작품은 <영원한 퇴원>입니다. 또 은조가 처음에 봤던 작품은 <따스한 빛>입니다. 손상기의 대표작품 중 하나입니다.

미술은 ‘꼽추’라는 신체적 불구를 딛고 일어서 가난과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시켜 삶의 정열을 불사를 빛이었습니다.

작품 <따스한 빛>자신의 신체장애에 대한 표현이자 소외된 이들의 서울 도시풍경입니다. <따스한 빛>에서 실제보다 높게 표현된 담벼락은 서울 아현동 달동네의 적막함과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원한 퇴원>은 손상기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텅 빈 병상위에 덩그러니 놓여 진 지팡이는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나타냅니다. 여기에는 길손이 잠시 머물다 가는 허무의식과 초월의식이 교차합니다.


<자라지 않는 나무> 1985, 130×130㎝,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자라지 않은 나무>는 꼽추(구루병)를 앓게 된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태어났다는 게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던 손상기

손상기, 그는 어떤 화가였을까? 그는 1949년 여수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무에서 떨어져 꼽추가 됩니다. 1976년 구상전에 <자라지 않은 나무>를 출품한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섭니다.

그는 임종 직전까지 회화ㆍ드로잉ㆍ판화 등 1,500여점을 남겼습니다. 대표작은 <자라지 않는 나무>, <시들지 않는 꽃>, <공작도시> 연작, <가족, 그리고 고향> 등으로 나뉩니다. 1988년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난 천재화가 손상기에게 삶은 무엇이었을까?

“살아있다는 것은 의식하고 활동적이고 무엇에 관련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의식 상태를 확장하고 심화시킴으로써 우리들 자신이 살아있는 상태를 증대시켜, 삶의 경험을 발견하고 고조시키고 순화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삶은 긍정이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던 게지요. 이런 희망은 “태어났다는 게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 세상은 몹시 험하지만 한 번은 살아볼만한 게 세상이다!”란 외침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나머지 대표작을 감상하지요.


<공작도시-난지도> 1983, 162×112cm, 캔버스에 유채.

손상기는 사회 약자를 다룬 ‘공작도시’ 연작에서 난지도를 통해
하층민과 동질감을 갖을 정도로 이들의 삶을 이해했다 합니다.  


<시들지 않는 꽃> 1981, 73×50㎝, 캔버스에 유채.

생명의 영원성을 강조한 것으로,
꺾인 나무여서 더 이상 꺾일 게
없음을 나타내는 역설적 표현이라 합니다.  


<공작도시-귀가> 1985, 112×145.5cm, 캔버스에 유채.

도시는 손상기에게 소통의 부재가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공작도시는 막힌 소통을 뚫는 소통의 도시였던 셈일 것입니다.  


<장날> 1973, 162×130.3cm 캔버스에 유채, 김창일 소장.

고향인 여수를 배경으로 힘든 항구생활을 따뜻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평을 듣는 작품입니다.


<비어있는 항구> 1987, 100×100cm, 캔버스에 유채, 허담 소장.

1988년 작고하기 한 해 전에 그린 <비어있는 항구>는 손상기 화백이
마지막으로 다녀 온 고향 여수 풍경을 을씨년스레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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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림 정말 좋네여

    2010.04.28 06:40

돌산갓김치, 육류ㆍ어류 어느 것과도 어울려
해풍에 말린 과메기, 쫄깃쫄깃 씹는 맛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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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갓김치와 구룡포 과메기 궁합은?

지지난 주 1박 2일에 ‘돌산 갓김치’가 소개되었습니다. 김에 돌산 갓김치만 올려 먹던 강호동의 폼이 애절하더군요. 결국 밥을 얹어 갓김치 김밥을 완성해 먹었지만….

전남 여수 돌산 갓김치 맛 품평 장면도 재미있었죠. 여기에서 프로그램도 살고 지역도 사는 일석이조, 긍정의 효과가 고스란히 읽히더군요. 이런 게 더불어 사는 상생 아닐까, 싶네요.

저도 상생의 효과를 거둬볼까 합니다. 지난 주 1박2일에 소개됐다고 돌산 갓김치만 덩그러니 소개하면 별 맛이 없겠죠? 하여, 겨울철 별미로 꼽히는 경북 포항 구룡포 ‘과메기’를 덩달아 소개하려고요. 의미를 붙이자면 호남과 영남, 맛의 만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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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갓김치.

돌산 갓김치, 육류ㆍ어류 어느 것과도 어울려

음식은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먹든 간에 즐겁게 먹는 것이겠지요.

돌산 갓김치는 효소 함량이 많고, 독특한 향으로 인해 부드럽고 감칠맛이 일품입니다. 또 암 세포를 죽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돌산 갓김치는 싱건지, 백김치, 총각김치와 더불어 ‘김치의 사군자’로 불립니다.

돌산 갓은 알칼리성 토질에 해풍을 맞고 자라 독특한 맛이지요. 게다가 톡 쏘는 맛과 부드러운 맛, 중간 맛 등 3가지 맛으로 나눠져 먹는 사람 취향에 맞춰 골라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돌산 갓김치는 육류와 어류 어떤 것과도 잘 어울립니다. 하여, 고른 게 포항 구룡포 과메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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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갓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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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과메기.


해풍에 말린 과메기, 쫄깃쫄깃 씹는 맛 일품

구룡포 과메기는 생선 눈을 나란히 꿰어 말리는 ‘관목(貫目)’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냉동으로 보관하다, 겨울철 바닷가 해풍 속에 수분 함유량이 40% 정도까지 말려 만듭니다. 냉동과 해동 상태를 오가는 게 특징이지요.

포항 등에서 과메기 쌈은 생김, 배추, 미나리 잔파, 미역, 다시마, 마늘, 청양고추 등과 함께 먹는 게 기본입니다. 비릿한 맛을 죽이고 바다 향을 살리기 위함이라 합니다. 그러나 집에서 이걸 다 갖추고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먹는 법을 택할 수밖에.

저희 집에서는 과메기 구이를 선호합니다. 과메기를 불판에 올려 구은 후 청주, 고추장, 청양고추, 간장, 꿀,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을 끼얹어 약간 구워 먹습니다. 그러면 비린 맛이 없고 쫄깃쫄깃해 씹는 맛이 일품입니다.

돌산 갓김치와 구룡포 과메기 궁합은 어떨 것 같나요? 말만으로도 먹는 즐거움 충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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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과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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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eedam.tistory.com BlogIcon leedam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과메기가 제철이군요 ^^ 김치와 함께먹으면 맛이 좋겠어요 ^^

    2009.12.15 21:00 신고

2012여수세박 블로그 이벤트 2가지

세박도 참여하고 경품도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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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공동 발전을 위한 여수세박 지원협정식.

2012여수세계박람회(이하 세박) 성공 개최를 위해 남해안이 뭉쳤습니다. 불구경만 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지구 3대 축제 중 하나인 세박을 기회로 남해안 공동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포석입니다. 남해안 뿐 아니라 전국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에 남해안이 뭉쳤다란 간단한 포스팅과 세박 이벤트를 소개합니다.



1.

2012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동석, 이하 조직위)는 세계박람회 성공 개최를 지원하기 위해 구성된 민간주도의 지원협의체인 부산발전협의회(위원장 신정택), 전남도 범도민지원협의회(의장 황금추), 여수시준비위원회(대표공동위원장 김광현), 부산광역시(시장 허남식), 전라남도(도지사 박준영), 여수시(시장 오현섭)와 함께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협약식은 지난 24일 오전 11시 여수시청에서 열렸습니다. 이는 ‘2012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적 개최 기원 메시지 작성과 세계박람회 참여분위기 조성 및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하고 실행시키기 위한 협약입니다.

협약에 따라 조직위와 부산발전협의회, 범도민지원협의회, 여수시준비위원회, 부산광역시, 전남도, 여수시는 세계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관광·숙박 및 투자정보 교류를 강화하고, 인적 네트워킹 사업을 공동추진하면서 세계박람회장 사후 활용을 위한 여건 조사 등 실질적 전략방안 마련에 공동대처 할 계획입니다.

 

2.

이 포스팅은 다름 아닌 ‘2012여수세박 공식 블로그 이벤트’ 안내입니다. 홍보자원봉사자로 세계박람회에도 참여하고, 경품도 챙기시길 바랍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어요.

<2012여수세계박람회 공식 블로그 이벤트>

첫번째 이벤트니다.(사진을 보세요.)

 다음은 참여방법 안내입니다.

 

주의 사항

- 이벤트 기간 : 2009년 11월 5일 ~ 2009년 12월 3일
- 당첨자 발표 : 12월 10일

* 당첨자는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개별 연락하며 1주일 이내에 연락이 되지 않으면 취소가 될 수 있으니 정확한 주소를 남겨주세요. 제세공과금은 당첨자 부담입니다.

* 이벤트를 실시하는 2012여수세계박람회 공식 블로그 주소

블로그 스크랩 이벤트 주소 http://blog.naver.com/expo_2012/50075198209


두번째 이벤트입니다.(사진을 보세요.)

위젯 설치로 2012여수세박 홍보자원봉사자 참여 및 퀴즈


* 위 내용이 잘 안보이시는 분을 위해 다시 문제 나갑니다.

-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단어를 넣어주세요.

 문제 : 2012여수세계박람회 주제는 살아있는 ○○, 숨쉬는 ○○입니다.

위의 정답과 함께 내 블로그에 여수세계박람회 위젯을 설치하면 여수세계박람회를 응원하는 희망세박 홍보자원봉사자가 됩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개최를 위해 활약해주세요~. 

* 주의사항

- 이벤트 기간 : 2009년 11월 12일~ 2009년 12월 15일
- 당참자 발표 : 2009년 12월 21일

* 이벤트를 실시하는 2012여수세계박람회 공식 블로그 주소

위젯 설치 및 퀴즈 이벤트 주소 http://event.expodream.kr/event3/


* 이웃 블로그에 알려주시거나 이벤트를 날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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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벤트 성공적으로 행해지기를 바랍니다.

    2009.11.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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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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