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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심상찮았던 구리로 만든 남해사 ‘청동 반가사유상’
서현스님이 현몽
 후 안동서 발견했다는 ‘청동 반가사유상’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본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어”





웃는 듯 마는 듯, 염화미소...






“반가사유상 전시 소식 들었어요?”


혜신스님 물음입니다. 목 넘김이 부드러운 녹차 맛만큼이나 맛난 소식입니다. 그렇잖아도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특별전이 지난 달 24일부터 오는 6월1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이란 소식을 들었지요.


무척 반가웠습니다. 반가사유상 전시 소식이 반가운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아직까지 국보로 지정된 적 없는 ‘청동’ 반가사유상의 진품 여부를 따질 절호의 기회지 싶어 섭니다.






첫눈에 심상찮았던 구리로 만든 남해사 ‘청동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재 전시 중인 우리나라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금으로 만든 ‘금동’입니다. 금동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비로운 미소를 띤 채, 깊은 사색에 잠긴 표정에, 무한한 평정심과 숭고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 일본 반가사유상은 ‘나무’입니다. 이 목조 반가사유상은 “7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며, 녹나무로 만든 11개의 조각을 끼워 맞춰 완성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불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을 직접 감상하는 즐거움은 아주 클 것입니다. 반가사유상의 문화재 등록 현황은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11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보물 제331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보물 제64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등 대부분 ‘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서 전시중인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 만남전


 

 


각설하고, 청동 반가사유상을 처음 본 건 지난 해 6월 즈음입니다. 여수 남해사 법당의 부처님을 뵙던 자리에서였습니다. 첫 눈에 심상찮았습니다. 다리 한쪽을 올리고 턱을 괸 이상한 형상이었습니다. 특히 녹이 잔뜩 낀 모습이 괴기스러웠습니다.


스님께 여쭸더니, “구리로 만든 청동 반가사유상”이라더군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이후 수시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남해사 법당 오른쪽에 녹이 낀 불상이 있었습니다.


 

 



삼매경에 빠진 미륵보살, ‘청동 반가사유상’ 진품일까?




- 못 보던 이색 불상이 있던데 무슨 불상입니까?


“법당 좌측에 있는 게 아미타 부처님. 중간에 석가세존 본존 사리. 우측에 있는 게 구리로 만든 청동 반가사유상입니다. 반가사유상 처음 보시죠? 아주 귀한 겁니다.”




- 반가사유상이란 무엇 무슨 뜻입니까?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리고, 약간 앞으로 숙인 얼굴 왼쪽 뺨에 오른손을 살짝 괸 상태의 불상입니다.


한쪽 발을 올려놓았다 하여, 반가부좌의 줄임말인 ‘반가(半跏)’와 깊이 생각한다는 ‘사유(思惟)’에서 온 말입니다. 한 마디로 삼매경에 빠진 미륵보살입니다.”




- 이건 고증 받았습니까?


“반가사유상은 흙, 돌, 나무, 금, 구리(청동)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5개가 국보 혹은 보물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입니다. 반면, 우리 남해사 반가사유상은 ‘구리’로 만들었습니다.


문헌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반가사유상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 진품으로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문화재청 등이 고증하길 기대합니다.”




- 그동안 고증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예전엔 반가사유상 크기가 15~30㎝ 내외, 다시 말해 40cm 이하만 진품이란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우리 남해사에서 보관 중인 반가사유상은 높이가 74cm로, 너무 크다며 진품이 아닐 거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고증 받을 엄두를 못 냈습니다.


요즘엔 크기가 15㎝에서 2m까지 다양해 고증 받을 만합니다. 실제로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높이가 각각 83.2㎝와 93.5cm입니다. 이번 기회에 청동 반가사유상도 고증 받을 생각입니다.”



청동 반가사유상입니다.


 

 



서현스님이 현몽 후 안동서 발견했다는 ‘청동 반가사유상’




- 어떻게 남해사에서 청동 반가사유상을 모시게 됐습니까?


“청동 반가사유상을 발굴하신 서현스님께서 강원도 양양 불탑사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이걸 불탑사 의륜스님께서 우리 남해사에 ‘원만불사 성취를 기원하며 본조불 1위’를 창건 시주하시어 받아 모시고 있습니다.”




- 청동 반가사유상은 언제 발견된 것입니까?


“반가사유상은 경북 경주, 봉화, 안동, 영주 일대에서 주로 발견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집니다.


입적하신 서현스님께서 경북 안동시 서후면 애련암에서 수행하실 때 꿈에 계시를 받는다는 선몽 덕분에 안동 학가산 절터에서 2003년 2월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걸 사람들이 그저 땅속에 있던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했답니다.”




이렇게 시주 받았답니다.




- 청동 반가사유상을 발견하게 된 서현스님의 꿈,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서현스님께서 꿈에 안동 학가산 절터에 갔더랍니다. 가보니 부처님께서 땅 위에 서 계시더랍니다. 꿈에서 깬 후 실제로 학가산 절터 직접 가봤답니다.


둘러보니 땅위로 뭔가 솟아나와 있더랍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부처님 머리만 땅밖으로 나와 있더랍니다. 그걸 서현스님께서 발굴했다고 합니다.”




- 이 청동 반가사유상을 진품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검증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불교문화의 자부심인 반가사유상은 은은한 미소를 최고로 칩니다.


남해사에 보관 중인 청동 반가사유상도 미소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잔잔하게 웃는 듯 마는 듯한 고요한 미소가 일품입니다. 탄소 연대 측정 등을 통해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혹, 진품으로 생각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인 6∼7세기에 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남해사 반가사유상과 비슷한 것들이 시중에 더러 있습니다.


저는 주물 두께에 주목합니다. 다른 건 두께가 두꺼운데, 이건 훨씬 얇습니다. 주물 두께가 이렇게 얇은 건 오직 하나입니다. 이게 주물 기술이 매우 발달한 삼국시대 것이라 생각하는 근거입니다. 문화재청 등에서 검증하면 밝혀질 것입니다.”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사진 문화재청)



남해사에서 보관 중인 청동 반가사유상.

녹이 낀 상태라 문화재일 경우 시급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본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어”



스님과 이야기 나눈 후 진지해졌습니다. 만일 이 청동 반가사유상이 진품이라면? 없던 긴장감마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불상이거니,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문화재, 그것도 국보급일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겁니다.


어찌됐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감격이었습니다. 스님께 혹시 이 청동 반가사유상이 국보일 경우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여쭸습니다.



“20여 년 전 소더비경매장에서 1,000억 원에 경매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피식 웃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치에 눈이 먼 어리석고 아둔한 중생이라 놀리실까봐! 그러니 중생이지요. 사실, “국보 83호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특별전에 출품할 때 보험가를 약 500억 원으로 평가했다”고 하니,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곡선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참고로,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 지정은 “시·도 지정신청, 1·2·3·4차 검증, 문화재지정 고시, 문화재지정서 교부, 문화재지정대장 작성 등의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 가치 정도인 진품 여부가 밝혀진다”고 합니다.


문화재 지정을 신중히 하는 이유는 “황자총통처럼 모조 제작된 것을 교묘히 기만하여 국보로 지정 의결하게 했던 예”가 있어섭니다. 그렇다고 마땅히 지정돼야 할 것을 기피해서 안 될 일입니다.



혜신스님을 졸랐습니다. 어떻게 감상해야 해야 아주 잘 볼 수 있는지 등을 알고 싶었습니다. 스님께서 허허 하시더니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챙긴 이불을 마룻바닥에 깔았습니다. 법당에 들어가 넙죽 절을 하셨습니다. 녹이 잔뜩 낀, 투박한 청동 반가사유상을 들어 올렸습니다. 반가사유상이 마루의 이불 위에 놓였습니다. 반가사유상 감상법을 설명했습니다.



“이 청동반가사유상의 관상은 과거 현재 미래에서 가장 완벽한 상입니다. 미소는 참으로 아름다운 염화미소입니다. 특히 소량의 청동을 사용한 까닭에 곡선의 어울림이 완벽합니다.


다만, 불탑사에서 보관할 때 비가 새는 곳에 삼년간 방치하여 녹이 많이 생긴 점이 아쉽습니다.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다시 본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대로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 줘야 합니다.”



문화재 또한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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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네놈이 차 맛을 알아?’…‘어쭈 요놈 봐라!’
여수 남해사 혜신스님과 봄 향 가득한 매화차를 마시며...

 

 

 

 

 

차 한 잔의 여유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지요...

 

영취산 진달래축제가 열리는 진달래 군락지는 진달래꽃이 마구 피는 중이었지요.

 

 

 

매화,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산수유, 동백 등….

 

봄 꽃 천지입니다. 덕분에 봄 향이 그윽합니다. 이런 때 봄바람에 실려 온 봄 향기를 흠뻑 맡아 주는 게 자연에 대한 예의지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던 진달래꽃이 그리웠습니다.

 

 

지난 주말, 진달래꽃 보러 여수 영취산 자락으로 행했습니다. 이번 주, 진달래 축제가 예정되었기에 미리 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지요. 영취산 진달래를 향한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수의 유혹, 시 한 구절로 대신하렵니다.

 

 

    여수 가는 길
                                           신 병 은

 

 

    자네,
    문득 세상살이 힘들 때가 있지
    세상에 덜렁 혼자뿐이라고
    아니다 아니다 이게 아니라고
    막다른 골목에서 고개를 흔들 때
    마음의 짐일랑 그대로 팽개치고
    빈 몸 그대로 여수로 오시게
    먼 길 달려온 자네에게
    늘 넉넉하게 일렁이는 바다가
    바람을 닮은 섬들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중심은 아니라고
    흔들리는 것은 잠시일 뿐이라고
    넌지시 귀뜸해 줄 걸세
    때로는 사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 거냐며
    생미역 한 줄기 풀어
    엉기고 맺힌 생을 해장시켜 줄 걸세
    자네, 외로움이 얼마나 심했냐고
    겨울 이기고 돌아온 동백꽃 웃음이
    옷깃을 풀고 와락 안겨들 걸세

 

 

 

올해는 진달래꽃보다 토굴같은 절집과 인연이 닿았나 봅니다.

 

 

지난해 올랐던 영취산 진달래 축제장

 

남해사의 소박한 법당입니다. 요기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었지요...

 

 

 

 

진달래꽃 보러 가던 중, 눌러 앉은 남해사와 차 한 잔

 

 

진달래꽃 가득한 영취산.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 끝물에 올랐던 지라, ‘에라 모르겠다’하고 눌러 앉은 게 영취산 자내리 ‘남해사’였습니다. 죽공예 하는 지인이 몇 번이나 스님과 차 한 잔을 권했는데, 이제야 그와 찾게 된 겁니다. 올해 ‘인연’은 진달래꽃보다 남해사에 닿은 게지요.

 

 

“스님, 절에 계십니까?”
“중이, 어디 가겠습니까!”

 

“스님, 차 한 잔 주세요.”
“언제든지….”

 

 

남해사, 보통 절집이 아니었습니다. 그 흔한 마당도, 탑도 없었습니다. 초라한 흙집만이 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게 무슨 절이야~’란 말은 온당치 않았습니다. 흙집을 차지한 부처님 도량은 마음 가득 자리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마음을 여니, 모든 게 새로웠지요.

 

 

“이게, 부처님 진신 사리야.”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절집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요. 다들 부처님 사리는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는 동요처럼 숨바꼭질 하듯, 꼭꼭 숨겨 두었기에, 중생이 접하기 어려웠지요. 진달래꽃을 대신한 발걸음이 횡재수가 될 줄이야!

 

 

 

진달래꽃의 향기가...

 

 

여기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담겨 있습니다.

 

 

진달래곷의 유혹을 물리치고 갔던 남해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요게 부처님 진신사리입니다. 두 종류지요.

 

 

 

 

‘네놈이 차 맛을 알아?’…‘어쭈 요놈 봐라!’

 

 

“무슨 차를 드릴까. 가만, 먼저 발효차부터 마실까.”

 

 

‘~까’, 다음에는 보통 물음표(?)가 오지요. 그런데 남해사 스님 어법은 특이했습니다. 인산당 혜신스님 말씀은 ‘~까’ 다음이 마침표(.) 비스므리 했습니다. 어법의 독특함에 앉았던 모양새를 다잡았습니다.

 

 

“여수 사람들은 작설보다는 발효차를 많이 마시드라고. 발효로 시작할까.”

 

 

서로 통하면 됐지, 차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된장이 제 맛을 내기 위해 발효 되듯, 첫 만남을 ‘발효’로 준비하신 스님의 운치가 멋있거니 했습니다. 왜냐하면 첫 만남을, 발효차를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데우자는 의미였으니까. 슬며시, 혹은 잠시, 무릎 꿇어 ‘불(佛) · 법(法) · 승(僧)’의 예를 차렸습니다.

 

 

“차 맛이 기 막힙니다. 스님께서 차를 정말 잘 우리시네요.”
“물이 좋아서지요. 차는 요기 앉으신 장형익 씨가 우려내는 설차가 최고지요.”


“어디 물입니까?”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떠왔습니다.”


“어쩐지, 차에서 지리산 향이 나더라니….”
“….”

 

 

스님께서 ‘미소’ 지으셨습니다. 여기서 신구 선생님을 떠올렸지요. 그가 사바세계 대중에게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외치던 광고 장면과 함께. 이처럼 스님의 그윽한 미소에는 무언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네놈이 차 맛을 알아?’, ‘네놈이 지리산 향을 알아?’를 넘어 ‘어쭈 요놈 봐라!’라는 놀라움이랄까.

 

 

 

 

 

지난해 영취산 진달래 축제 끝물에 올라 찍었던 사진입니다.

 

 

매화는 사군자지요, 왜?

 

매화차의 향이... 

 

 

 

 

아홉 번 덖은 작설차, 다시 또 불에 데워 마시는 이유

 

 

“스님, 이쯤에서 작설로 넘어가심이….”

 

 

스님께서 라이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작은 초에 불 붙였습니다. 불 위에서 작설이 덖어졌습니다. 향이 피어올랐습니다. 작년 기운으로 만들어진 작설 향의 여운이 복잡했습니다. 지난 해 가슴 아팠던 우리네 기운이 담긴 것 같습니다.

 

 

“차는 한 번 열면 눅눅해져. 제대로 마시려면 불에 살짝 덖어주는 게 좋아.”

 

 

이게 어디 ‘차’ 뿐이던가요. 노동 시장에서 단 물 빼먹고 나면 버려지는 인생사. 그나마 다시 써 주는 것이 행운이지요. 이 걸 아는 까닭에 아홉 번 덖어 낸 작설까지 다시 또 불에 데워 맛을 음미하는 게지요. 다시 덖는 건, 소위 말하는 리모델링 혹은 업그레이드 과정이지요. 그렇게 다시 태어난 작설은 엄청 겸손한 맛입니다.

 

 

“스님, 다시 덖은 작설, 다른 잔에 주시면….”
“….”

 

 

작설이 우러날 때쯤, 찻잔을 바꿔주시더군요. 그런데 제 잔만 바꿔주시는 거 있죠. 이유를 알 거 같았습니다. 두 분은 이미 예전부터 마시던 차라 맛의 진면목을 알기 때문인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새 잔으로 마시면서 작설 고유의 맛을 탐닉해라’는 암묵적 강요였달까. 작설 향이 고스란히 입속에 안겼습니다.

 

 

 

우주의 기운을 담은 매화꽃...

 

 

매화 꽃봉우리를 따 말리면 매화차가 되지요...

 

봄향기에 취해...

 

 

 

 

우리네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봄 향을 맛볼까.”

 

 

감지덕지. 봄 향을 간직한 차는 어떤 걸까? 스님께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허리를 세워 병 하나 집으셨습니다. 그리곤 뚜껑을 열어 “봄 향 맡아 봐!”라며 코에 대 주셨습니다. 아~, 향이….

 

 

 

매화차를 담은 용기에 향이 가득하고...

 

 

요런 걸 따서 말려야 매화차가 되지요...

 

스님께서 작은 매화꽃봉오리를 따 보여주시더군요.

 

 

“무슨 찬지 알겠지. 특별히 내는 매화차야.”

 

 

매화차와의 첫 만남은 오로지 ‘감사’였습니다. 매화차는 스님께서 직접 만드셨답니다. “150도가 넘는 쩔쩔 끓는 방에서, 창호지 위에 놓고, 이틀 간 말려 차로 냈다”더군요. 그래선지, 목 넘김이 부드러웠습니다. 매화 향은 작설 향과 어우러진 봄의 교향곡이었습니다. 그만큼 신선하고 감미로웠달까.

 

 

“운명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타인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하신다면 본인의 운명도 기쁘고 즐거우며, 행복한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즐거운 이들과 함께 있으면 즐거운 물이 들고, 기쁜 이들과 함께 있으면 기쁜 물이 들게 되며, 행복한 이들과 같이 있으면 행복이란 물이 곱게 물들어서 아름다운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매화차. 아직도 입안에 달달한 봄 향기로 남아 있습니다. 매화차, 잊혀 지지 않는 맛으로 남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것은 혹독한 겨울이란 시련을 이겨 낸 끝에, 꽃망울을 피워 낸, 인내의 향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네의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여수 섬달천에서 본 매화, 다도해...

 

차는 여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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