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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굴비는 말려서 낸 보리 굴비와 씨알이 큰 조기"
영광굴비 101년 째, 정성인(75) 인터뷰 “직거래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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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브랜드 파워가 뛰어난 영광 굴비.

굴비는 이름만 들어도 영광 법성포를 떠올릴 정도로 브랜드 파워가 대단하다.

굴비 중 최고는 “3월 중순 곡우사리 전후하여 칠산 앞바다를 지날 때 가장 알이 충실하고 황금빛 윤기가 있는 참조기”를 친다. 영광 굴비는 “이때 잡은 참조기를 이용하여 소금에 절여 법성포 해풍에 말린 것”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원양어선이 발달해 조기떼가 칠산 앞바다에 올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칠산 앞바다에서 그렇게 많은 조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하여, “영광 굴비로 만드는 범위가 남해와 동지나해에서 잡힌 조기까지 확대됐다”고 한다.

일본에선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사업이 많다. 많은 것은 400년을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100년 넘은 가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영광 굴비 사업으로 100년을 넘은 곳이 있었다.

다음은 영광 법성포에서 굴비 가업을 3대에 걸쳐 101년째 이어오고 있는 (주) 월랑유통 정성인(75) 씨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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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01년째 가업을 이어 온 정성인(75)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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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굴비 등 영광 굴비 세트.


영광 굴비 장사 올해로 101년째, 직거래가 대안

- 언제부터 영광 굴비사업이 가업으로 이어져 왔는가?
“지난해가 100년이었으니 올해로 101년째다. 해상 객주였던 아버지께서 배에서 받아 육지로 팔았는데, 영광 굴비 장사는 19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 전에 행상이셨던 할아버지까지 더하면 100년이 훨씬 넘었다.”

- 몇 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가?
“할아버지, 아버지, 나, 그리고 아들까지 4대째다. 손자도 이걸 이어받지 않겠냐 싶다. 그러면 5대에 걸쳐 가업이 이어지는 거다.”

- 100년이 넘게 장사를 이어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정직과 부지런함이다. 정직은 사람을 항상 믿고 신뢰하게 한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물건을 댈 때도 이 가격에 맞춰 달라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거부했다. 백화점 등에서 요구하는 가격에 맞추려면 국산 굴비로는 물건을 대지 못하는 가격이었다. 그러려면 중국산을 써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다른 곳에서 납품을 받았다.

부지런은 다 알 것이다. 질 좋은 조기를 사려면 일찍부터 서둘러야 하고, 1, 2개 주문에도 발품을 팔아 갖다 줬다. 택배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광주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배달했다. 차비와 시간 등을 따지면 이문이 남지 않는데 뭐 하러 주문 받느냐고 하지만 장사란 그게 아니다.”

-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파는 영광 굴비와 영광 법성포에서 직접 파는 굴비 가격 차이는 어느 정도 나는가?
“보통 2배 차이다. 그런데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더 싼 납품단가를 원한다. 자기들만 이익을 보는 거다. 밑지고 장사할 때도 있다. 납품 몇 개월 만에 1억 원을 손해보고 손 턴 곳도 있다. 그러니 변칙이 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칙으로 소비자를 속일 수가 없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같이 살려면 오로지 직거래가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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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의 본산지 영광 법성포구의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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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영광 굴비를 말리던 법성포구 덕장.


조리 형국의 법성포, 과거에는 전국 상인들 몰려

- 1900년대 초와 지금의 영광 굴비 가게 숫자를 비교하면 얼마나 늘었는가?
“아버지께서 1900년 초에 문을 열 때 열다섯 집쯤 되었다고 말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것이 1970년대에 60여 집으로 늘었고, 지금은 600여 집 된다. 정말 많이 늘었다.”

- 옛날의 법성포 모습은 어땠는가?
“법성포는 조리 형국이다. 때문에 바람 등을 막아줘 태풍 피해가 거의 없다. 옛날 법성포구는 순창, 남원, 구례, 장성, 서울, 인천 등 전국 상인들이 생선을 받기 위해 몰려 북적였다. 지금은 매립되어 거의 육지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꽤 규모가 큰 포구였다.”

- 조기 고르는 법이 따로 있는가?
“먹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맛 좋은 조기를 고르기란 쉽지 않다. 가장 신경 쓰는 게 고기 색깔이다. 노르스름하니 색깔이 좋아야 신선도가 좋다. 고기가 나쁘면 좋은 굴비를 만들 수 없으니 제일 신경 쓰는 게 선도다. 특히 중국산은 쓰지 않는다.”

- 사업 원칙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거래하는 곳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괜히 들어가 봤자 욕만 먹고, 서로 손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무섭게 들어온다. 거래처를 잃기도 했으나 원망하지 않는다. 세상은 다 자기 먹고 살 게 있다. 아들에게도 이걸 가르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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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업의 발달로 영광 굴비 재료로 쓰이는 조기 어장이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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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굴비 중 하나인 마리 당 10만원짜리 굴비를 아들 정형석 씨가 들어 보이고 있다.


명품 굴비, 말려서 낸 보리 굴비와 큰 조기

- 몇 년 전, TV에서 영광 굴비의 문제점을 방영한 적이 있다. 파장이 컸다는데 영광 굴비의 타격은 어느 정도였는가?
“말도 마라. 정말 타격 많았다. 주문도 사람 발걸음도 뚝 끊겼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조기가 칠산 앞바다까지 올라오기 전에 다른 어장에서 다 잡힌다. 때문에 영광 칠산 앞바다에서 잡힌 조기는 물량이 딸린다.

영광 굴비로 만드는 조기가 남해와 동지나해 등에서 잡힌 조기까지 확대된 것이다. 고기 씨가 말라 어쩔 수 없다. 같은 바다에서 잡는 고기도 우리나라 배가 잡으면 국산, 중국이 잡으면 중국산인 게 현실이다. 대신 영광 법성포 해풍 속에서 염을 잘 해 만든 게 영광 굴비다. 그래서 영광 굴비 진품인증시스템인 휴대폰 인증제를 도입했다.”

- 언제 잡히는 굴비가 맛있는가?
“조기가 산란을 위해 동지나 해역부터 추자도와 흑산도를 거쳐 서해안으로 회유하는 참조기가 3월 중순 곡우사리 전후하여 칠산 앞바다를 지날 때 가장 알이 충실하고 황금빛 윤기가 있다. 이때 잡은 참조기를 이용하여 소금에 절여 법성포 해풍에 말린 것을 영광 굴비라 한다. 그러나 사실 현재는 칠산 앞바다에서 그렇게 많은 조기가 잡히지 않는다.

원양어선이 발달해 조기떼가 칠산 앞바다에 올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영광 굴비로 만드는 범위가 남해와 동지나해에서 잡힌 조기까지 확대됐다. 조기는 10월에서 4월까지 잡힌다. 가을에 잡은 조기는 살이 연해 맛있다. 봄에 잡은 조기는 알이 풍부하고 영양이 많다. 명품 굴비는 말려서 낸 보리 굴비와 씨알이 큰 굴비를 말한다. 요즘은 큰 조기가 잘 잡히지 않아 귀해서다.”

- 영광 굴비가 널리 알려진 맛의 비결은 무엇인가?
“맛의 비결은 영광 법성포 해풍과 염이다. 천일염으로 간을 한 후, 갱수(소금 물)가 빠져야 조기가 고실고실하고 맛이 좋다. 크기에 따라 간하는 시간이 다르지만 평균 4시간 전후로 보면 된다. 그리고 6개월 이상 숙성해야 영광 굴비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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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괄 굴비의 명품으로 꼽히는 통보리 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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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굴비를 만드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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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catstory.kr BlogIcon 야옹서가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 아파트로 영광굴비 판매트럭이 오곤 합니다. 진짜가 아니면 1천만원 배상한다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서 선뜻 구매하게 되진 않더라구요. 이렇게 직접 현지로 가서 볼 수 있다면
    생생한 공부가 되겠네요.

    2010.09.13 12:12 신고

오탁번 시인을 울게 한 ‘영광 굴비’
[알콩달콩 부부이야기 11] 백제불교 도래지와 음담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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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의 경지에 오른 순간.

“씻을 수 없는 죄는 그 사람의 행동만으로 짓는 것은 아닙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진리가 마음에서 시작되었으니 마음 밖에서 진리를 찾지 마십시오.”

아내와 함께 석가탄신일에 들렀던 해당화가 활짝 핀 영광의 백제 불교 도래지에서 마주했던 법문입니다. 왜 이런 가르침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육신의 주인은 나인데 정신의 주인까지 나일까? 장담할 순 없습니다.

굴비의 고장, 영광 법성포에는 굴비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하나가 더 있더군요. 백제시대 최초의 불교 도래지. 이곳에서 법성포의 유래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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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특산물 '굴비'

불법(佛法)을 들여온 성스런 포구 ‘법성포’

“법성포는 마라난타 존자(서기 384년, 백제 침류왕 원년)가 중국에서 바다 길을 통해 영광 법성포에 당도하여 불교를 전파했던 곳이다. 백제시대, 법성포 지명은 ‘아무포(雅無浦)’로 ‘아미타불’의 의미를 함축한 지명이다. 고려시대, 불법(佛法)을 꽃피웠다 하여 ‘부용포(芙蓉, 연꽃의 다른 이름)’로 불리다 고려 후기부터 ‘성인이 불법(佛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으로 ‘법성포(法聖浦)’라고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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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불가에서는 불(佛)ㆍ법(法)ㆍ승(僧)을 삼보(三寶)라고 합니다. 불은 부처요, 법은 불경(佛經)이며, 승(僧)은 성인(聖人)을 이릅니다. 이로 보면 ‘법을 가지고 성자가 도래한 곳’인 법성포는 이보(二寶)에 마음까지(佛心) 더해지니 가히 삼보(三寶)를 지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광이란 지명도 ‘무량한 깨달음의 빛’이란 뜻으로 해석되는바, 이곳에 원불교성지와 불갑사가 들어선 게 우연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의미에 맞춰 영광 특산품 굴비에는 재미있는 음담패설(패관문학, 전래야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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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로 가다가...

오탁번 시인을 울게 한 ‘굴비’

소설가이자 시인인 오탁번은 <굴비>란 시를 발표하면서 제목 옆에 “항간의 음담인데 얼마 전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란 설명을 붙였을 정도입니다. 오탁번 시인이 눈물을 흘리며 쓴 시 <굴비>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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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음 다잡아 해탈한 ‘사내’

아내의 불륜(?) 이야기를 듣고서도 기꺼이 사랑을 나누는 사내. 그는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아내까지 해탈의 경지로 이끄는 크고 넓은 아량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탁번 시인을 울게 만든 힘은 바로 이것이었겠지요.

결국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과정을 굴비를 매개로 했다는 데에서 ‘해탈=굴비’로 동일시하려는 의도를 유추해볼 따름입니다. 하여, 해탈한 사내를 통해 바로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했던 승려 ‘마라난타’와 영광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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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불교 최초도래지 바닷가.

하지만 현실에선 배우자의 불륜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믿음과 신뢰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허나, 여기에선 쾌락을 쫓은 불륜이 아닌, 살기 위한 것인 만큼 제고의 여지는 남겨야겠지요. 몸과 마음을 어찌 다스려야 할지 사색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내는 해안도로에 줄지어 활짝 핀 해당화가 너무 예쁘다 탄성입니다. 해당화는 바닷가에 피어야 맛이라고요. 해당화 마음 뺏긴 아내를 어떡해야 하나요? 하하.

세상살이, 마음먹기 나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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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마음을 빼앗은 해당화와 바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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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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