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 만진 영광, '다솔사'서 느끼다!

풍수지리설의 시조 도선 국사와 만남에 ‘감동’
‘고집멸도’, 모든 중생은 열반에 들 운명?
개, ‘네가 부처로구나’...염화미소와 이심전심

 

 

 

 

다솔사 가는 길입니다. 아름드리 숲길은 걸어주는 게 예의입니다.

 

 

 

 

가을 때문이지 싶습니다. 여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나를 되돌아보고픈 용기가 났습니다. 지인과 시절 인연을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국도와 지방도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여기 경남 사천 곤양에 다솔사라는 절이 있어. 아늑한 절이지. 40여 년 전 대학 때 갔었는데, 그 기억이 지금도 새롭네.”

 

 

지인의 설명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동안 듣도 보도 못했던 ‘봉명산(鳳鳴山) 다솔사(多率寺)’에 혹했습니다. 정처 없이 천천히 떠도는 중에도 가보고 싶었습니다. 하여튼 다솔사란 이름만으로도 묘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다솔사로 향하면서 지인이 말했습니다.

 

 

“옛날엔 차 몰고 가다가 들르고 싶으면 그때그때 쉬었다 가곤 했는데, 오랜만에 그런 여행 하는 기분이네.”

 

 

여행, 이런 게 맛있지요. 이런 여행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다솔사로 가는 내내 보너스 받은 것 같았습니다. 또한 저승사자에 이끌려 옥황상제 앞에선 중생이, 옥황상제에게 때를 쓴 끝에 며칠간의 삶을 보장받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분명한 건 정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봉명산 다솔사 가람 

편백나무 숲길

 

 

 

 

“교수님, 이런 길은 차를 두고 걸어가는 게 길에 대한 예의 같아요.”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너무나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차를 되돌려 주차 후, 약수 한 모금 마시고 걸었습니다. 아름드리 정겨운 솔밭과 쭉쭉 뻗은 편백나무 숲이 어우러진 맑고 싱그러운 길이 일주문(一株門)과 천왕문(天王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걷는 자체가 자연과 교감이었습니다.

 

 

“다솔사는 503년(신라 지증왕 4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영악사로 창건했다. 신라시대 자장 법사(610~654), 의상 대사(625~702), 도선 국사(827~898) 등에 의해 중수됐다. 도선 국사가 중수하면서 다솔사라 다시 개칭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숙종 때 재건되었다가 1914년에 불탄 걸 다시 지었다.”

 

 

1500여년 된 다솔사를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게다가 고려 태조의 출현 등을 예언한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시조이며, ‘도선비기’로 세간에 유명한 도선 국사와의 만남만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풍수지리설에 기반 한 해석이 뒤따랐습니다.

 

 

“다솔사가 앉은 봉명산은 명당 중의 명당인 장군대좌다. 봉명산 봉우리는 장군봉이다. 장군이 있으면 군사가 모여야 하고, 군사는 북을 쳐서 모으듯 절 뒤편 큰 바위가 북 바위고, 법당 앞에 흐르는 샘물이 장군수다. 풍수에 맞게 장군이 군사를 ‘많이 거느린다’는 의미로 다솔사라 했다.”

 

 

이를 증명하듯 다솔사 오르는 길에 ‘어금혈 봉표(御禁穴 封標-어명으로 다솔사 도량에 묘자리를 금하게 한 표석)’라는 음각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 설까. 땅의 음덕을 보려고 묘를 많이 썼다 합니다. 이곳에 묘를 쓰면 집안에 장군이 나온다나. 사람들이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자신이 지은 덕에 따른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모르는 게지요.

 

 

 

대양루 

어금혈 봉표 

1500여년 된 절집 다솔사 

 

 

 

대양루를 돌아 대웅전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대웅전에 ‘적멸보궁(寂滅寶宮)’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대웅전은 보통 부처님 불상이 앉아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적멸보궁은 부처님 몸인 진신사리가 있는 곳이라 불상이 없습니다. 부처님 몸을 불상이 대신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내부를 보니, 안에서 건물 밖의 부처님 진신 사리탑을 볼 수 있도록 벽면이 유리로 만들어졌습니다. 매무새를 추스르고 삼귀의(三歸依) 예를 차렸습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다솔사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발견된 건 “1978년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면서 적멸보궁 사리탑을 건립하고 불사리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는 두 종류입니다. 부처님 피부가 사리가 된 '백(흰색) 사리'와 혈관이 사리가 된 '적(붉은 색) 사리'로 나뉩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인 백사리와 흑사리입니다.

올 4월, 남해사 혜신스님의 도움으로 찍었습니다.

 

 

 

 

부처님과 인연이 남달랐을까. 올해 4월, 여수 남해사 혜신스님의 배려로 부처님 진신 사리인 백 사리와 적 사리 2과를 직접 손으로 만져 봤습니다. 당시, 사리를 손으로 만지면서도 무덤덤했습니다. 그랬는데, 이곳 다솔사 진신 사리탑을 보니 만져본 자체로도 영광임을 느낍니다. 3년 전, 어느 점술가의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스님 될 운명을 용케 피하셨습니다. 스님이 되셨을 때보다 덜하지만 문필가로 이름을 널리 알릴 운명입니다.”

 

 

웃어 넘겼습니다. 하지만 웃을 수만 없었습니다. 한 때 잠시 스님이 되고자 고민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이때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기독교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으나, 불교와 더 가깝게 지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전생부터 부처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탑 

대웅전 격인 적멸보궁 

사리탑을 돌며 소원을 빌면...

 

 

 

 

 

“참선본시불방편(參禪本是拂方便) 참선이 곧 부처님의 방편이라!
성공방각차신한(成功方覺此身閒) 공을 이루어 깨치면 이 몸 한가하리니!“

 

 

부처님 사리탑으로 돌아가던 길에 본 글귀입니다. 중생이 어찌 부처님의  큰 뜻을 헤아릴까. 마음 비워 합장하며, 부처님 사리탑 주위를 돌았습니다. 대박 수능, 대입 합격 등을 기원하는 소원이 많았습니다. 모든 중생들, 부디 부처님 전에 촛불 밝혀 경이로운 인연 짓기 바랄 뿐입니다. 다음은 다솔사가 권하는 부처님 사리탑 참배 방법입니다.

 

 

“연화대 차물에 손을 세 번 담궈 몸을 청정하게 한 후 탑전에 오르십시오. 호신불을 수지합장하고 사리탑전에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면서 소원을 기원합니다.”

 

 

부처님께선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뜻하는 ‘고(苦)’, 괴로움의 원인으로 번뇌의 모임인 ‘집(集)’,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인 ‘멸(滅)’,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이르는 ‘도(道)’ 등 ‘고집멸도’”를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이 곧 부처”라던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중생은 모두 열반에 들 운명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냐? 하는 것만 다를 뿐이지요.

 

 

 

 

나무의 위용에 압도당했습니다. 

 불상을, 유리를 통해 보는 부처님 진신 사리탑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숨결이 스며 있는 안심료.

 

 

 

 

안심료(安心寮)를 찾았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솔사 안심료는 “노년의 만해 한용운 선생이 주도한 항일 비밀 결사단체 만당의 근거지였으며,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곳이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동리 소설 <등신불>이 저술된 곳이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네가 부처로구나!”

 

 

안심료 앞에 앉아 있는 개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한 처사님, 저를 보더니 씩 웃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그의 염화미소(拈華微笑)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느꼈습니다. 해우소로 향했습니다. 몸에 쌓인 욕망 덩어리를 배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근심마저 시원하게 비웠습니다. 다솔사의 온화한 지세가 온 몸을 휘감았습니다.

 

 

“교수님, 다솔사를 안내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예정 없이 결행했던 다솔사 여행은 횡재였습니다. 소리 없이 가을이 깊어갑니다. 우리네 삶도 깊어가는 가을처럼 깊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고즈넉한 길에는... 

해우소에서 물욕을 내려놓았습니다. 

삶은 때때로 휴식이 필요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hanwhablog.com BlogIcon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즈넉하니 힐링하기 좋은 장소같습니다 :) 잘 보고 갑니다 ~

    2015.10.20 09:00 신고

“다른 사람이 날 얼마나 칠칠맞게 봤을까?”
이빨에 낀 게 김 가루였다면? ‘영구 없다’


식사 후, 치아를 살피지만 종종 잊는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 간혹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낀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조금 민망하더군요. 하여, 다른 사람 이에 고춧가루 낀 걸 보는 즉시 말해주는 편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커피숍에 갔습니다. 이야기 도중, 얼굴을 봤는데 치아 사이에 빨간 게 보이더군요. 고춧가루대요.

잠시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ㅋㅋ~. 그렇더라도 장난기가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치를 먹을 때 종종 치아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지요.

이빨에 낀 게 김 가루였다면, ‘영구 없다’?

“이빨에 고춧가루 끼었어요.”

보통 이럴 때 입을 다물고 오물오물 치아 정리를 하지요. 그런데 예상치 않은 반응이더군요.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거야.”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치아에 고춧가루가 낀 줄 모르고 있다가 민망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 기분 이해했지요. 조금 있으니, 화를 다스린 지인이 그러더군요.

“너한테 화 낸 거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날 보고 얼마나 칠칠맞게 봤을까? 하는 거 때문에 그랬다. 고맙다.”

뒤늦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이빨에 낀 게 고춧가루였기 망정이지, 김 가루였으면 어땠을까? 아마, 영구 된 기분이겠죠?

치아에 낀 고춧가루와 바지 지퍼 올리지 않은 것은 즉시 말해 주는 게 작은 예의일 것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해주려니 민망해 할것같고,
    말안하려니 바보 만드는것같고... 난감하죠? ^^;

    2011.01.06 11:17 신고

연애편지 어떻게 처리할까, 의견교환 필요
생각하면 ‘연애편지 왜 버렸을까?’ 아쉬워

결혼 전, 사귀었던 과거 연인과 나눴던 ‘연애편지를 버려야 할까?’ ‘간직해야 할까?’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저도 연애편지를 결혼 전에 버렸습니다. 하지만 결혼 14년이 된 지금에는 꼭 버릴 필요까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버려야 했을까? 이유를 들자면 막연히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배우자에 대한 예의라고 여겼으니까. 이게 맞는 것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애편지 어떻게 처리할까, 의견교환 필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연애편지 언제 버렸는가?”
“결혼 후 임신하고. 살다보니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버렸죠.”

결혼 전에 연애편지를 버리지 못한 건 “이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해도 좋을까?”란 생각에 집중하다 보니, 연애편지에 대한 생각을 잊은 탓도 있습니다. 또 굳이 버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그럴 수 있습니다. 

만일 아내가 제게 연애편지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물었다면 의견 교환이 충분히 한 후 거기에 맞는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해답은 ‘왜 버려’였겠지만.

이 경우 연애편지가 간혹 부부싸움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양해된 상태라면 상대방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겠지 싶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연애편지 왜 버렸을까?’ 아쉬움 남아

“당신은 연애편지를 왜 버린 거야?”
“그냥 버려야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

이렇듯 대개 뚜렷한 생각 없이 예의상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의 사람은 정리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결혼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과거 연애편지도 정리되는 게지요.

“자기 삶을, 당신의 앳된 청춘을 몽땅 버렸네. 그걸 왜 버렸어?”
“그러게 말이야. 당신 편지만 남기고 죄다 버렸잖아. 지금 생각하면 아까워 죽겠어. 내가 왜 버렸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연애편지를 버렸을까?’아쉬움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머릿속 기억이 추억으로 남은 이상 버리고 버리지 않고는 별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역시 인생은 긴 호흡으로 살아야 제 맛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니까 말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isblog.joins.com/jk7111 BlogIcon 둔필승총   수정/삭제   댓글쓰기

    버렸으니까 그런 아쉬움이 남는 거 아닐까요?
    언제 그 불씨가 대형화재가 될지....ㅎㄷㄷ
    그냥 버리고 아쉬움으로 간직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 소심장이...^^;;;

    2010.07.09 09:39
  2.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추억을 먹고 사는 건 분명해요.

    2010.07.09 10:55 신고
  3. Favicon of http://yiybfafa.tistory.com BlogIcon 해피아름드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흠~~전 첫사랑이랑 결혼했다고 마구마구 우기고 있습니다..ㅋㅋ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2010.07.09 18:16 신고

BLOG main image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각자의 인생사가 다 '섬'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풀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론 진짜 섬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요.
by 임현철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587)
알콩달콩 섬 이야기 (141)
아름다운 여수 즐기기 (112)
알콩달콩 여행 이야기 (162)
알콩달콩 세상 이야기 (422)
알콩달콩 가족 이야기 (476)
알콩달콩 문화 이야기 (205)
장편소설 연재 (68)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22,194
  • 51 58

임현철의 알콩달콩 섬 이야기

임현철 '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임현철. All rights reserved.

Textcube TNM Media
임현철'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