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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 유람, ‘아 제게, 서방바위구나!’ 다양한 조각품
[섬에서 함께 놀자]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백도’




구경하느라 정신없습니다.

유람선 선착장...

옥황상제 전설이 서린 백도...






살~다~보~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담은 신화, 전설, 민담 등을 듣곤 합니다. 이럴 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냥 씩 웃고 넘어가는 게 상책입니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여행의 백미는 단연 ‘백도(白道)’ 유람입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백도에는 인간계를 넘은 무협지 같은 신계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백도 가는 배 떠요?”



날씨 등으로 인해 백도 행 유람선이 뜨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지인, “거문도 여행에서 백도 구경 못하면 ‘앙꼬 없는 찐빵’ 먹는 격이다”며 걱정스레 유람선 관계자에게 연신 묻습니다. 다행히 뜬다고 하네요. 백도 행 유람선 표를 예매하고 배에 올랐습니다. 배가 뜨기만을 기다렸지요. 앗,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인이 배에 올랐습니다. 문자를 날렸습니다.



“백도 행 유람선에서 지금 뭐하는 거임? 일 안하고 여긴 웬일?”



그녀가 화들짝 놀랍니다. 작은 배 안에서 숨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 금방 들통 납니다. 아내 지인인 그녀는 여수시에서 건강가정 지원 업무 등을 맡고 있는 최윤영 씨입니다. 역시나, “북한 이탈주민의 지역 정착을 위한 거문도-백도 탐방 인솔 차 왔다”네요. 그럼 그렇지. 여유 있게 놀러 다닐 팔자가 아니지요. 아내에게 그녀 사진 보냈더니, “무슨 일이냐?”면서 “다른 여자랑 동행했으면 딱 걸렸을 텐데”라고 농을 던집니다. 믿음이지요.



맨 앞쪽, 물개바위...

아스라이 백도...

서방바위와 각시바위




옥황상제 아들과 용왕 딸 인연 맺고 돌로 변한 ‘백도’



39개 무인군도로 이루어진 백도는 상백도와 하백도로 구분됩니다. 백도는 기암괴석과 천혜의 비경을 자랑합니다. 백도는 1979년 12월, 명승 제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아울러 2016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학술적 엄정보호구역로 인증된 국제적 보호지역입니다. 백도는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봐야 할 ‘신비의 섬’입니다. 왜냐하면 신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이니까.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습지요.



“태초에 옥황상제 아들이 노여움을 받아 바다로 귀양 왔다. 그는 용왕 딸과 눈이 맞아 바다에서 풍류를 즐겼다. 옥황상제가 아들이 보고 싶어 신하들을 보내 데려오게 했다. 신하들마저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아들과 신하들을 돌로 만들었다. 이것이 백도가 되었다. 섬을 세어보니 백 개에서 한 개가 모자라, 일백 백(百)에서 하나(一)를 뺀 흰 백(白) 자를 붙였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백도 전설입니다. 백도 전설은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신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동명성왕 어머니가 용왕 딸인 하백녀 유화부인이고, 동명성왕 아버지가 하느님 아들 해모수였던 것처럼, 백도는 옥황상제 아들과 용왕 딸”이 만나 인연을 맺은 겁니다. 동명성왕 신화와 다른 점은 백도는 돌로 변하는 통에 후손이 없다는 것 뿐!



그래, 백도의 기운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어느 풍수가에 따르면 “백도는 하느님이 내려오는 상제봉조(上帝奉朝)의 정기가 서렸고, 용왕이 바다를 가르고 달려 나오는 해룡농주(海龍弄珠)의 세찬 기백이 서려 있는 천하제일의 기관(奇觀)”으로 보고 있습니다. 후세를 원하시거나, 천하제일의 기운을 느끼시려거든 거문도 백도에서 느끼시길.



피아노 치는 연주자...

모든 게 조각입니다...

아름다운 백도는 기운도 천하제일입니다...



백도 유람, ‘아 제게, 서방바위구나!’ 다양한 조각품



거문 항에서 1시간여 동안 달리자 백도가 보입니다. 39개의 섬을 도는 데 약 40분이 걸립니다. 허나, 백도에는 내릴 수 없습니다.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 중이라 학술 연구 등의 목적으로 허가받은 사람만 상륙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천연 희귀 조류와 식물들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요. 유람선, 백도 절경을 소개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상백도에는 형태가 병풍같이 생겼다 하여 ‘병풍바위’. 옥황상제가 연락을 취하던 ‘나루섬’. 하늘에서 내려 온 신하 형제가 숨어 있는 ‘형제바위’. 먹을 양식을 쌓아 놓았다는 ‘노적섬’. 옥황상제 아들과 풍류를 즐기고 새를 낚아채려다가 돌로 변했다는 ‘매 바위’. 신하가 내려올 때 쓰고 왔다는 갓 모양의 ‘탕건여’. 상백도에는 태양열 무인등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하백도에는 옥황상제 아들이 바위로 변했다는 ‘서방바위(성기바위)’. 용왕 딸이 바위로 변했다는 ‘각시바위’. 이들의 패물상자였다는 ‘보석바위’. 궁성을 쌓고 지냈다는 ‘궁성바위’. 돌부처처럼 우뚝 솟아있는 ‘석불바위’. 신하가 가지고 왔다는 ‘도끼여’.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요술바위’. 그리고 촛대바위, 원숭이바위, 감투바위, 거북바위, 진돗개바위….”



백도의 바위 감상법 안내에 따라 고개만 돌리는 데에도 힘이 듭니다. 어디를 봐야할지 헷갈립니다. 알쏭달쏭하다가도 “아 제게, 서방바위구나!”하며, 기쁘게 쫓아갑니다. 어떻게 저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 감탄에 또 감탄합니다. 날씨가 좋아 감상하기 최적의 조건이었다나. 거문 항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상쾌합니다. 기운이 솟구치는 듯합니다.



탕건여...

새터민과 온 지인...

귀를 쫑긋, 진도개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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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진신 사리 만진 영광, '다솔사'서 느끼다!

풍수지리설의 시조 도선 국사와 만남에 ‘감동’
‘고집멸도’, 모든 중생은 열반에 들 운명?
개, ‘네가 부처로구나’...염화미소와 이심전심

 

 

 

 

다솔사 가는 길입니다. 아름드리 숲길은 걸어주는 게 예의입니다.

 

 

 

 

가을 때문이지 싶습니다. 여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나를 되돌아보고픈 용기가 났습니다. 지인과 시절 인연을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국도와 지방도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여기 경남 사천 곤양에 다솔사라는 절이 있어. 아늑한 절이지. 40여 년 전 대학 때 갔었는데, 그 기억이 지금도 새롭네.”

 

 

지인의 설명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동안 듣도 보도 못했던 ‘봉명산(鳳鳴山) 다솔사(多率寺)’에 혹했습니다. 정처 없이 천천히 떠도는 중에도 가보고 싶었습니다. 하여튼 다솔사란 이름만으로도 묘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다솔사로 향하면서 지인이 말했습니다.

 

 

“옛날엔 차 몰고 가다가 들르고 싶으면 그때그때 쉬었다 가곤 했는데, 오랜만에 그런 여행 하는 기분이네.”

 

 

여행, 이런 게 맛있지요. 이런 여행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다솔사로 가는 내내 보너스 받은 것 같았습니다. 또한 저승사자에 이끌려 옥황상제 앞에선 중생이, 옥황상제에게 때를 쓴 끝에 며칠간의 삶을 보장받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분명한 건 정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봉명산 다솔사 가람 

편백나무 숲길

 

 

 

 

“교수님, 이런 길은 차를 두고 걸어가는 게 길에 대한 예의 같아요.”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너무나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차를 되돌려 주차 후, 약수 한 모금 마시고 걸었습니다. 아름드리 정겨운 솔밭과 쭉쭉 뻗은 편백나무 숲이 어우러진 맑고 싱그러운 길이 일주문(一株門)과 천왕문(天王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걷는 자체가 자연과 교감이었습니다.

 

 

“다솔사는 503년(신라 지증왕 4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영악사로 창건했다. 신라시대 자장 법사(610~654), 의상 대사(625~702), 도선 국사(827~898) 등에 의해 중수됐다. 도선 국사가 중수하면서 다솔사라 다시 개칭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숙종 때 재건되었다가 1914년에 불탄 걸 다시 지었다.”

 

 

1500여년 된 다솔사를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게다가 고려 태조의 출현 등을 예언한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시조이며, ‘도선비기’로 세간에 유명한 도선 국사와의 만남만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풍수지리설에 기반 한 해석이 뒤따랐습니다.

 

 

“다솔사가 앉은 봉명산은 명당 중의 명당인 장군대좌다. 봉명산 봉우리는 장군봉이다. 장군이 있으면 군사가 모여야 하고, 군사는 북을 쳐서 모으듯 절 뒤편 큰 바위가 북 바위고, 법당 앞에 흐르는 샘물이 장군수다. 풍수에 맞게 장군이 군사를 ‘많이 거느린다’는 의미로 다솔사라 했다.”

 

 

이를 증명하듯 다솔사 오르는 길에 ‘어금혈 봉표(御禁穴 封標-어명으로 다솔사 도량에 묘자리를 금하게 한 표석)’라는 음각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 설까. 땅의 음덕을 보려고 묘를 많이 썼다 합니다. 이곳에 묘를 쓰면 집안에 장군이 나온다나. 사람들이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자신이 지은 덕에 따른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모르는 게지요.

 

 

 

대양루 

어금혈 봉표 

1500여년 된 절집 다솔사 

 

 

 

대양루를 돌아 대웅전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대웅전에 ‘적멸보궁(寂滅寶宮)’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대웅전은 보통 부처님 불상이 앉아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적멸보궁은 부처님 몸인 진신사리가 있는 곳이라 불상이 없습니다. 부처님 몸을 불상이 대신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내부를 보니, 안에서 건물 밖의 부처님 진신 사리탑을 볼 수 있도록 벽면이 유리로 만들어졌습니다. 매무새를 추스르고 삼귀의(三歸依) 예를 차렸습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다솔사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발견된 건 “1978년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면서 적멸보궁 사리탑을 건립하고 불사리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는 두 종류입니다. 부처님 피부가 사리가 된 '백(흰색) 사리'와 혈관이 사리가 된 '적(붉은 색) 사리'로 나뉩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인 백사리와 흑사리입니다.

올 4월, 남해사 혜신스님의 도움으로 찍었습니다.

 

 

 

 

부처님과 인연이 남달랐을까. 올해 4월, 여수 남해사 혜신스님의 배려로 부처님 진신 사리인 백 사리와 적 사리 2과를 직접 손으로 만져 봤습니다. 당시, 사리를 손으로 만지면서도 무덤덤했습니다. 그랬는데, 이곳 다솔사 진신 사리탑을 보니 만져본 자체로도 영광임을 느낍니다. 3년 전, 어느 점술가의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스님 될 운명을 용케 피하셨습니다. 스님이 되셨을 때보다 덜하지만 문필가로 이름을 널리 알릴 운명입니다.”

 

 

웃어 넘겼습니다. 하지만 웃을 수만 없었습니다. 한 때 잠시 스님이 되고자 고민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이때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기독교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으나, 불교와 더 가깝게 지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전생부터 부처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진신 사리탑 

대웅전 격인 적멸보궁 

사리탑을 돌며 소원을 빌면...

 

 

 

 

 

“참선본시불방편(參禪本是拂方便) 참선이 곧 부처님의 방편이라!
성공방각차신한(成功方覺此身閒) 공을 이루어 깨치면 이 몸 한가하리니!“

 

 

부처님 사리탑으로 돌아가던 길에 본 글귀입니다. 중생이 어찌 부처님의  큰 뜻을 헤아릴까. 마음 비워 합장하며, 부처님 사리탑 주위를 돌았습니다. 대박 수능, 대입 합격 등을 기원하는 소원이 많았습니다. 모든 중생들, 부디 부처님 전에 촛불 밝혀 경이로운 인연 짓기 바랄 뿐입니다. 다음은 다솔사가 권하는 부처님 사리탑 참배 방법입니다.

 

 

“연화대 차물에 손을 세 번 담궈 몸을 청정하게 한 후 탑전에 오르십시오. 호신불을 수지합장하고 사리탑전에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면서 소원을 기원합니다.”

 

 

부처님께선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뜻하는 ‘고(苦)’, 괴로움의 원인으로 번뇌의 모임인 ‘집(集)’,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인 ‘멸(滅)’,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이르는 ‘도(道)’ 등 ‘고집멸도’”를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이 곧 부처”라던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중생은 모두 열반에 들 운명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냐? 하는 것만 다를 뿐이지요.

 

 

 

 

나무의 위용에 압도당했습니다. 

 불상을, 유리를 통해 보는 부처님 진신 사리탑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숨결이 스며 있는 안심료.

 

 

 

 

안심료(安心寮)를 찾았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솔사 안심료는 “노년의 만해 한용운 선생이 주도한 항일 비밀 결사단체 만당의 근거지였으며,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곳이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동리 소설 <등신불>이 저술된 곳이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네가 부처로구나!”

 

 

안심료 앞에 앉아 있는 개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한 처사님, 저를 보더니 씩 웃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그의 염화미소(拈華微笑)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느꼈습니다. 해우소로 향했습니다. 몸에 쌓인 욕망 덩어리를 배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근심마저 시원하게 비웠습니다. 다솔사의 온화한 지세가 온 몸을 휘감았습니다.

 

 

“교수님, 다솔사를 안내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예정 없이 결행했던 다솔사 여행은 횡재였습니다. 소리 없이 가을이 깊어갑니다. 우리네 삶도 깊어가는 가을처럼 깊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고즈넉한 길에는... 

해우소에서 물욕을 내려놓았습니다. 

삶은 때때로 휴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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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anwhablog.com BlogIcon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즈넉하니 힐링하기 좋은 장소같습니다 :) 잘 보고 갑니다 ~

    2015.10.20 09: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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