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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건, 돈이 아닌 ‘철학’

사람을 철들게 한 ‘흥국사’ 여행, 그리고 깨우침
자연에서 얻은 지혜 ‘고집멸도(苦集滅道)’
‘부처님 오신 날’ 연등 설화와 삶의 성숙
생로병사 뿐 아니라, 삶의 애착 또한 생명의 신비

 

 

 

그늘을 만들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겨내야 했을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살아보니 이제야 ‘아픔’ ‘성숙’의 상관관계를 알 것 같습니다. 삶은 찰떡궁합처럼 따라다니는 두 단어를 연상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성공과 실패 혹은 불행과 행복처럼. 아픔은 성숙을 밑바탕에 깔고 오는 거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괴로움 자체입니다. 이로 보면 삶은 깨우침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나무에 상처가 남았습니다, 왜?

 

 

여수 흥국사 뒷모습입니다. 뒷모습이란...

 

 

 

“인생이 이렇게 꼬이다니….”

 

 

요즘, 한 숨 쉬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만큼 살기 팍팍하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한탄은 대부분 경제 및 정치적 상황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돈’도 결국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하여,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학(哲學)’이 동원됩니다. 자연에서 지혜를 얻자는 게지요.

 

 

불교에서는 삶의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찾습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며(苦), 번뇌의 집합체(集)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통과 번뇌를 딛고 일어설 해탈이 필요하며(滅), 깨닫기 위한 실천 수행이 요구된다(道)는 거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냐고요?

 

 

 

깨달음은...

 

 

흥국사 가람 배치가 한 눈에...

 

 

꽃과 어울린 흥국사 

 

연등에도 설화가 스며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내와 ‘나’를 찾기 위한 선문답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곳은 여수 ‘흥국사(興國寺)’였습니다. 흥국사는 1196년(고려 명종 26년) 보조국사 지눌스님께서 창건하셨습니다. 흥국사는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흥국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른 ‘의승수군’의 본거지입니다. 오래된 절집인 만큼 흥국사에는 문화재가 수두룩합니다. 보물만 해도 대웅전(보물 제396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578호), 홍교(보물 제563호),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보물 제1862호) 등 10여점에 달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탱화 또한 인상적입니다.

 

 

 

흥국사에는 많은 보물이 있습니다. 득도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흥국사 대웅전 안에도 보물이 수두룩. 깨달음...

 

 

 

 

 

이 자체가 보물입니다..

 

 

 

흥국사 입구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기 위한 연등(燃燈)이 걸렸습니다. 명선스님께선 연등에 대해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으로, 어둠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불을 밝히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다음은 연등에 관한 설화를 각색한 것입니다.

 

 

연등에 깃든 설화는 공덕...

 

 

“부처님 생전에 가난한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여인은 부처님께 등불공양을 올리고 싶었으나 가진 게 없었다. 여인은 하루 종일 구걸하여 얻은 동전 두 냥으로 등과 기름을 사, 부처님께서 지나가실 길목에 작은 등불을 밝히고 간절히 기원했다.

 

 

‘부처님, 저에게는 공양할 것이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등불 하나를 밝혀 부처님의 크신 덕을 기리옵니다. 이 등을 켠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음 세상에 태어나 성불하게 해주십시오!’

 

 

세찬 바람에 왕과 귀족 등 다른 사람들이 밝힌 등은 하나 둘씩 꺼졌다. 그러나 여인의 등불은 꺼질 줄 몰랐다. 아난은 깊은 밤 이 등불을 끄려했다. 하지만 등은 꺼지지 않았다. 이를 보고 계시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 등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한 여인이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이 공덕으로 인해 앞으로 30겁 뒤에 성불하여 수미등광여래가 되리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가난한 한 여인의 마음을 훤히 보시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 지극 정성이면 못할 게 없습니다. 살기 힘든 세상, 어려움과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삶을 성숙으로 이끌 것입니다.

 

 

 

 

상처, 스스로 이겼습니다.

 

 

아픔이 이렇게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아픔 중에도 꽃 피웠습니다.

 

 

 

“저, 나무 좀 봐요!”

 

 

나름, 나무 박사인 아내. 흥국사 입구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콕 집어 가리킵니다. 무엇 때문일까?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렇지만 중생의 눈에는 보통 나무와 별 차이 없습니다. 다름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 나무를 지목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아내, 나무를 보며 말합니다.

 

 

“저기 나무줄기에 볼록 튀어 나온 부분 있잖아? 저건 나무가 아픈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 거야. 상처는 저렇게 흔적으로 남아요.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자란 게 대단하지요. 그러나 생명은 무엇이든 무심코 라도 건들이지 않는 게 좋아요. 사람도 나무와 마찬가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게 최선이지요.”

 

 

 

가지가 꺾이자 직각으로 다시 자랐습니다. 생명의 신비...

 

 

 

아내는 자연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보았습니다. 굳이 스님에게 설법 청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배움이자 깨우침이었습니다. 이게 선문답 여행의 묘미지요. 어쨌거나, 상처가 아픈 흔적으로 남았다니, 충격입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상처가 작길 바랄 뿐입니다.

 

 

“저기 봐요. 가지가 꺾이자 직각으로 다시 자랐잖아. 아픈 만큼 성숙한 거죠. 싹이 나고 자라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뿐 아니라, 저렇게 끈질긴 삶의 애착 또한 생명의 신비지요.”

 

 

아내, 자연의 진리를 깨우친 걸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내는 여전히 사랑스런 여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아내와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욕심이라면, 받은 상처 모두 다 용서하시길.

 

여행은 사람을 철들게 합니다.

 

 

 

생명이 함께 상생해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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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숨 쉬게 한, 절집 용월사에서의 긴 하룻밤 

 

“때론 넘치게 두는 것도 비우는 한 방법이지요!”

 

 

 

 

 

여수 용월사입니다.

 

 

여수 갯가길 1코스 중, 돌산 월전포와 삼섬 풍경입니다.

 

 

용월사 가는 길입니다.

 


‘올 한 해 잘 살았을까?’

 

 

언제나처럼 또 연말입니다. 이 시점에 서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그저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지나 온 시간을 돌이켜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중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이럴 때 훌쩍 절집으로 떠나곤 하지요.

 

 

“스님, 하룻밤 쉬고 싶은데…. 일행이 있습니다.”
“언제나 오십시오.”

 

 

거절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또한 쉴 곳이 있다는 게 천만다행입니다. 이럴 때 삶이 고맙지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여수 갯가길을 걸었습니다. 돌산 월전포 앞 삼섬이 눈에 포근히 들어오더군요. 자연은 인간을 스스럼없이 꼭 안아주었습니다.

 

 

- 여수 갯가길 걸어 보셨어요?
“아니. 말로는 들었는데 걷는 건 이번이 처음일세.”

 

 

- 허허? 고향 길에 난 여수 갯가길을 안 걸었다니 의왼데요?
“그러게. 초등학교 다닐 때 수업 마치고 소 꼴 먹이곤 했던 곳인데…. 예나 지금이나 풍경은 끝내주는군.”

 

 

 

 

 

이곳에 서니 절로 시인이 됩니다.

 

 

지인이 감탄 중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 갑니다.

 

 

나보다 먼저 승진한 이는 나를 밟고 일어선 사람?

 

 

 

겨울 속 여수 갯가길은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갯가길을 걷는 갯가꾼들과 종종 마주쳤습니다. 많은 사람 중, 유독 한 지인과 자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자체가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은은한 향을 지녔던 지라 더욱 즐거웠지요. 지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 나이 60 이후 달라지는 게 있던가요?
“많지. 앞만 보며 직장 다니고 있을 땐 몰랐어. 예전엔 용서되지 않은 것들이 나이 먹으니 자연스레 다 용서가 되데. 그래 마음이 편해. 욕망으로 가득했던 마음을 하나 둘 내려놓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

 

 

- 어느 것이 용서 되지 않던가요?
“나를 더럽게 밟고 딛고 일어선 사람들은 얼굴조차 보기 싫었어. 그래도 봐야하니 불편했지. 그 사람들이 건네는 악수도 꺼려했지, 심지어 일부러 피했으니까. 그런데 60이 넘으니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람까지 만나면 먼저 가서 인사하게 되더라고. 세월이 내게 너그러움을 선물한 것 같아.”

 

 

지인이 애써 피한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웠습니다. 그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이처럼 속세는 말 그대로 속세였습니다.

 

 

 

 

무량광전입니다. 

 

 

수행 중인 원일스님.

 

 

여수 용월사 무량광전에서 본 풍경

 

 

 

- 어떤 사람을 피한 거죠?
“직장 생활에서 나보다 먼저 승진한 사람은 나를 발판 삼아 일어선 사람이라 봐도 무방하지. 그 중 나를 음해하고 올라선 사람들이 있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을…. 그들을 미워했지. 지금 생각하면 시기만 다를 뿐 다들 승진하는 거였는데, 그땐 먼저 승진해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 왜 그랬을까?”

 

 

- 피했던 사람들은 자기를 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모르지. 혼자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상대방이 알게 하면 되나. 모르니까 만나면 반갑다고 악수하려 손을 내밀었던 거지. 지금은 용서까지도 내려놨어. 아무래도 용서에도 때가 있나 봐. 세월은 사람을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거 같아. 이게 자연이지.”

 

 

자신의 마음을 갈무리 하는 내공이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혼자만 간직했던 비밀을 아낌없이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온몸을 바쳐왔던 삶에서 얻은 결과를 전해주는 자체가 고마움이었습니다. 이심전심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나무 석가모니불!

 

 

낮은대로 임하소서!

 

 

 

“때론 넘치게 두는 것도 비우는 한 방법이지요!”

 

 

걷다 보니, 어느 새 용월사 앞이었습니다. 스님에게 하룻밤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기꺼이 마음 한 칸을 내어 주셨습니다. 겨울, 절집에서의 하룻밤은 무척이지 길었습니다. 그 긴 밤을 가득채운 건, 파도 소리와 녹차 및 해수 관음보살의 미소였습니다. 이런 자리에 선문답이 빠질 수 없었지요.

 

 

- 스님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안 되면 방법을 달리 하세요.”

 

 

- 어떻게요?
“애써 내려놓으려 하지 말고, 자연스레 그냥 흘러넘치게 두세요. 비우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때론 넘치게 두는 것도 비우는 한 방법이지요.”

 

 

헉. ‘비우면 채워진다!’는 세상 이치에 얽매여, 늘 마음을 비우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비우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욕심과 욕망 등 나를 둘러싼 것들을 내려놓은 것 같으나, 실상은 욕망의 틀 속에 갇힌 여전한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자만심이 가득했던 게지요. 스님이 잡보장경의 한 구절을 던졌습니다.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동백이 만발합니다.

 

 

새벽 예불 전 도량석 중입니다.

 

 

법당 불 밝히는 원일스님.

 

 

새벽 3시 30분. 새벽 예불에 나섰습니다. 혼탁한 가슴에 맑음이 내려앉았습니다. 예불을 마치신 스님 한 마디 하시더군요.

 

 

“매일 같이 부처님을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떤 날은 방긋 웃었습니다. 어떤 날은 말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인상 쓰고 계신 날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10년. 드디어 알았습니다. 매일 달랐던 부처님의 형상이 실은 내 마음 속에서 왔다는 걸.”

 

 

스님께서 언제나 하시는 염불, “나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나무 원만보신 노사나불! 나무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속에는 우주 진리를 밝힐 그 뜨거움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인과 스님은 선각자였습니다. 다만, 가여운 중생만이 그걸 모르고 지나쳤을 뿐….

 

 

이렇게 한 해 마무리 중입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온 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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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7 23:00

[장편소설] 비상도 1-33

 

아랫사람이 잘못 저지르면 윗사람이 책임지는 법

“친일청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오.”

 

 

장편소설「비상도」줄거리

 

 <비상도>는 역사ㆍ영웅 장편소설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백남재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동해는 산으로 들어가 스님(김대한)의 훈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중국 왕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비상권법을 전수받은 고수다.
 두 아이는 비상권법이 고려 왕실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던 고려국의 무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회장은 따로 준비되어 있는 소파에 앉았고 비상도에게 맞은편의 소파를 손으로 가리켰다.

 

 

  “내가 진 빚이 무엇인지 말해보게.”


  “지난번에 제 스승님께서 찾아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립운동 했다던 자의 아들 말인가?” 


  “그분이 제 스승입니다.”

 

  “그래서?”


  “친일파의 자제로써 독립투사의 아드님이신 그분에게 선친을 대신해 사과의 말씀을 드릴 수 있었다고 봅니다.”

 

  “어째서인가?”


  “회장님의 선친께서 그분의 어른을 고문하여 옥사시킨 사실을 알고 계실 텐데요?”

 

  “그럴 리가 있는가? 같은 동포끼리…….”

  “선친이 일제강점기 형사였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직업이었지.”


  “독립투사를 잡아 고문하고 죽인 것도 직업이오?”

 

 

 비상도의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모르는 일이네. 설령 그렇다 해도 내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보네. 당사자가 죽으면 그 죄 또한 없어지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아랫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윗사람이 책임을 지는 법이올시다. 또한 윗사람이 잘못을 했다면 아랫사람이 그 죄를 통감하는 법이오. 그분의 선친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잃은 분이시고 회장님의 선친은 그분들이 흘린 피 위에서 권력과 부를 틀어쥔 사람입니다. 선친이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면 응당 그 자식 된 자가 선친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올시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꼭 못난 자들이 과거 운운하며 남이 애써 모은 재산을 시샘하고 공짜로 얻어먹으려 달려드는 법이지.”

 

 

 비상도의 얼굴이 순간 험하게 일그러졌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그것은 친일의 대가로 얻은 재산일 뿐이오.”


  “나는 자네 스승인가 뭔가 하는 사람에게도 분명히 말했지만 이 땅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을 명심해 주게. 다시 말해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벌 수 있으며 또한 승자독식이 용납되는 곳이란 말일세.”

 

 

 비상도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나는 당신네들이 가진 재산 따위에는 관심이 없소. 하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친일청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오.”


  “거듭 말하지만 내 어른은 그 당시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었어.”

 

 

 그 순간 비상도의 손이 회장의 뺨을 후려갈겼다.

 

 

  “일본 놈의 개돼지 노릇을 하면서 말이오? 내가 당신에게 손을 댄 것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무수히 숨져간 애국지사들이 반민족행위자를 향해 던지는 한 맺힌 절규라 생각하시오.”


  “네놈이 감히…….”

 

 

 일어서려는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비상도가 손을 뻗었다. 송풍에 맥을 눌린 그가 맥없이 소파에 뒷목을 젖혔다.  (계속…)

 

 

 

 

 

 

 다음은 올 1월 갑작스레 고인이 되신 고 변재환 씨의 미발표 유고작품을 그의 가족에게 지적재산권을 위임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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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때문에 벌어지는 정치놀음 향한 넋두리

 

학생들 밥은 야박하게 굴더니 자기는 잘도 챙겨 먹네. 이렇게 주는 게 우리네의 밥 인심인 것을...(사진 오마이뉴스)

 

오늘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D-데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정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우리네가 표현하는 정(情)은 이 한 마디에 몽땅 압축되어 있다.

“밥 먹었어?”

아무리 가난해도, 식사 전이라면 언제인들 기꺼이 밥을 냈다. 찬밥에 물을 내올망정.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갈 때 양심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곳간을 털어 진심어린 정을 나눴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부터 살리자는 심정이었을 게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란 철학이었다.

그런데 ‘밥’ 때문에 야단법석이다.
이를 요즘 아이들이 쓰는 표현을 빌려보자.

‘밥이 야박하다’

이 말을 풀면 이렇다. 밥 때문에 사람들이 엄청 야박해졌다.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밥 먹이자는데 어른들이 단계를 찾는다.

개뿔. 단계는 무슨 단계.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래서야 찬밥에 물 말아 먹는 들, 목에 안 걸릴까? 켁켁~.

내가 학생이라면 이런 말 나올 것 같다. 

‘에이~, 줘도 더러워서 안 먹는다’

이 소릴, 아이들 버전으로 하자면 이런 노랫말이 가능하다.

 

“♩♪♬ 쏘리 쏘리 쏘리 쏘리~, 미쳐 미쳐 미쳐 미쳐~♪♬♩♪♬”

 

이명박과 오세훈 VS 전두환과 노태우, 누가 더 나쁠까?

 

서론이 길었다. 그래도 본론이니 참으시라. 여기서 퀴즈 하나 풀자. 

이명박과 오세훈 VS 전두환과 노태우, 누가 더 나쁠까?

 

삐~익 : 이명박과 오세훈. 땡!
삐~익 : 전두환과 노태우. 땡!

 

대체 정답이 뭐야?
녜, 정답은 이명박과 오세훈도 나쁘고, 전두환과 노태우도 나쁘다. 즉, 다 나쁘다.
피~. 왜 다 나빠?
설명할 테니 찬찬히 들어보시라.

첫째, 오세훈.
밥 때문에 아이들 기 팍팍 죽인다. 그것도 모자라 시장 자리까지 걸었단다. 승부수라나. 이건 아는지 몰라? 먹는 걸로 사람 놀리는 놈이 세상에서 제일 나쁘다는 사실.

둘째, 이명박.
안하다던 4대강 공사에 22조원이 넘는 돈을 쳐 박았다. 이를 두고 후세에 길이 남을 치적이란다. 그러긴 하다. 치적도 좋은 치적만 있는 게 아니다. 반면교사도 있다.

셋째, 전두환.
수천 명이나 죽였다. 그도 자리를 걸었다. 대통령 5년 단임. 그 후 그는 목숨 보전을 위해 죽마고우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그러다 된통 당했다.

넷째, 노태우.
자칭 구국의 결단이란 6ㆍ29 선언. 젖먹이가 봐도 꼼수가 뻔한데 구국의 결단이라니.
그리고 3당 야합. 결국 뒤통수 맞았지. 청문회와 철장 속으로 팍.

그렇다 치자.

이명박ㆍ오세훈 VS 전두환ㆍ노태우, 누가 누가 더 나쁠까?
이번에는 편을 가르자. 둘씩.

 

삐~익 : 전두환과 노태우. 땡!
삐~익 : 이명박과 오세훈. 빙고!

 

왜?
그걸 몰라서 물어?
(5ㆍ18은 제쳐두자) 전두환과 노태우는 그래도 양심이 있었다.
있는 놈에게 삥 뜯었을 뿐, 없는 놈에게 삥 안 뜯었다.

그런데 이명박 오세훈은 어때?
없는 놈들이 애써 죽기 살기로 낸 세금까지 걷어 있는 놈에게 죄다 몰아준다.
있는 놈한텐 삥 안 뜯고, 없는 놈한테만 삥 뜯는다.

 

쏘리 쏘리 쏘리 쏘리~, 미쳐 미쳐 미쳐 미쳐~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스스로를 정 많은 민족이라 칭한다.
우리네가 표현하는 정(情)은 이 한 마디에 모조리 들어 있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우리네는 이를 ‘용서의 미덕’이라 부른다.
그래서 악행들을 쉬 잊는다. 설령 죽을죄를 지었더라도.

어떤 이는 그러면서 입바른 소리로 ‘회개’라고 한다.
세 살 박이 아이도 다 안다. 그들이 ‘한통속’이란 걸.
이를 흔히 쓰는 말로 표현하면 이렇다.

‘그놈이 그놈’

그래서다. 밥이 정말이지 야박하다.
설마설마 했는데 요즘 들어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는 속담이 확실히 바뀌었다.
‘네가 아무리 울어 봐라 젖 주나’로. 내가 젖 먹이라면 이런 말 나올 것 같다.

‘에이~, 더러워서 차라리 굶어 죽고 만다.’

그래서다.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이것뿐이다.

“♩♪♬ 쏘리 쏘리 쏘리 쏘리~, 미쳐 미쳐 미쳐 미쳐~♪♬♩♪♬”

진정코 국민을 위하는 지혜로운 정치 지도자가 아쉬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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